2011.11.0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흔들리고 있는 세계경제가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지 3개월이 넘어간다. 올해 8월5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전후해 위험해진 세계경제는 남유럽 채무 국가들의 부실 우려가 한껏 증폭된 뒤로 근본적인 대책은 고사하고 임시방편들도 국면을 진정시키는 데 역부족이다. 결국 세계경제의 문제해결과 미래 방향 제시를 위한 포괄적인 협력을 하기로 된 G20 정상회의가 다가왔건만 어떤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어떤 합의를 해낼지 실마리도 잡히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G7을 역사적 유물로 만들고 새로 탄생한 G20에 대한 기대가 지금처럼 낮은 적도 없었다.

한국 금융시장은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정도에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하면서 3개월 동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주가와 채권가격·환율 등 주요 금융가격 변수들이 상당히 높은 폭으로 변동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금융시장이 충분히 유럽발 금융위기 충격을 견딜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불안 요소는 있겠지만 2008년에 비하면 충분히 충격을 흡수할 만한 여력이 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고, 금융시장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근거는 있다. 2008년 기억을 돌이켜 보면 당시 외국에서 한국 금융시장 불안 요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은행의 단기 외화차입 비중이 외환 보유고의 80%로 너무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의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중)이 125% 이상으로 높고 당연히 고객 예금 이외에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기 외화차입 비중이 49%로 낮아졌고 시장성 수신 비율도 절반 정도 떨어진 12% 남짓에 불과하니 웬만한 금융충격이 와도 견딜 만하다는 것이다. 외환보유고도 당시보다 700억달러쯤 더 늘어났다. 외환보유고는 3천100억달러가 넘는데 이미 한·일, 한·중 통화스와프까지 맺어 둔 상태다.

그러나 3년 동안 여건이 개선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과거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고 규모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불어나는 특성을 감안하면 약간의 개선만으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불안한 요인은 금융위기 이후 2년 넘게 우리 자본시장으로 유입된 해외자본 규모가 불안을 걱정할 만큼 너무 크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유입된 자금을 보자. 2009년 3월 저점 대비 지난 7월까지 450억달러가 순유입됐다. 그동안 주가도 올라서 잔액평가 가치로 늘어난 금액은 무려 1천700억달러다. 우리나라 증권 투자자금 순유입이 다른 신흥국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 한국은행 설명이다.

채권시장에도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왔다. 같은 기간 채권시장에서는 증권시장과 비슷한 규모인 410억달러가 유입됐다. 최악의 경우 지금까지 유입됐던 자금이 금융위기로 저점을 이뤘던 상태로 되돌아간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800억~900억달러가 빠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천500억달러에 달하는 은행의 단기 외화차입까지 포함하면 우리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규모다. 그동안 유입이 많아서 주가가 오르고 채권금리가 내려가서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유출 가능성에 대한 위험부담도 같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런 자금유입은 우리 국민경제를 위해 우리가 원했던 것인가. 지난 수십년 동안 ‘외자 유치’가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당연히 여겼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 증권시장에 들어온 외국자금은 자국의 경제위기 대처 방편으로 미국과 선진국이 과잉 유동성을 공급하고, 이것이 아시아와 한국으로 흘러 들어온 것에 불과하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 외에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만한 요인이 없다. 불안정성만 키울 뿐이다. 흔히 외자유치라고 말하는 외국인 직접투자는 2009~2010년 동안 320억달러에 머물렀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기간 우리의 해외투자는 410억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외자 유치국이 아니라 해외 투자국이 된 것이다.

증권시장에 대규모 자본 유출입이 빈번해 불안을 조장한다 하더라도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최근의 국제 추세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투기적 단기자본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자본통제(capital control)’ 정책이 각 국가의 거시건전성 안정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정당한 경제정책으로 수용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개방을 선도해 왔던 IMF조차 ‘최후의 수단’이라는 단서가 있지만 자본통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 성명에도 이미 자본 유출입 통제에 대해 용인한 문구가 삽입된 바 있다.

국내 자본시장으로의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 국민경제에 유익한 측면보다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부작용이 더 크다면, 외자유치가 이제 우리경제 발전에 절대 명제가 아니라면, 더욱이 이에 대한 규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용인하는 상황이라면, 자본 유출입 변동에 불안해하면서 그때그때 연기금을 동원해 주가를 떠받치거나 외환보유고를 투입하면서 환율 방어에 나서는 소란을 피울 필요가 있을까. 적절한 자본통제 장치를 도입하면 그뿐이 아닌가. 그렇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유시장에 대한 무모한 신념 정도가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갖가지 위험성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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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1년 10월은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시점 못지않게 국내·외적으로 격변의 나날이었다. 유럽의 국가부채와 은행부실 우려는 매일처럼 바뀌는 요인들로 인해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흔들렸다. 미국 경제전망도 날마다 다른 신호를 보내며 쏟아지는 지표들로 인해 우왕좌왕했다. 그에 따라 전 세계 주가도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며 방향을 잡지 못했다. 한 마디로 방향도, 해법도 전혀 알 수 없는 혼미함과 이를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무력함의 극치를 보았다. G20 정상회의를 코앞에 둔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세계 경제가 재차 위기국면에 접어들면서 터져 나온 월가 시위도 2011년 10월을 흔든 대사건이었다. 캐나다의 한 온라인 매체 제안으로 시작된 월가 점령시위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그러나 월가 시위는 10월 들어서 미국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10월 내내 가장 중요한 세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는 이제 세계 경제위기 시대의 아이콘이 됐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공통 언어가 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시작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치인이 아닌 안철수와 박원순의 등장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최대 이슈가 됐다. 월가 점령시위가 전통적인 진보운동 조직이 아니라 온라인을 매개로 한 청년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됐던 것처럼, 안철수와 박원순 두 인물은 기존 정치권의 장벽을 단숨에 넘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서울시장 선거 분위기에 묻히기는 했지만, 5년을 끌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국회에서 ‘끝장 토론’을 통해서라도 막아보려는 노력이 전개됐다. 2011년 10월은 한미 FTA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역사적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단선적으로 증폭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사건이 발발하고 극대화하며 다시 소강국면으로 접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사건은 역사의 흐름에 자기 궤적을 남겨 놓는다. 폭풍처럼 우리사회 지형을 흔들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후폭풍은 있겠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다시 평온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미 FTA 국회 공방도 어떤 식으로든 한 꼭지점을 지나고 다시 일상 속에 잊힐 수 있다.

월가의 시위도 마찬가지다. 이미 세계의 화두가 될 정도로 확산됐지만 무한정 단선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월가 시위운동 확산 속도가 둔화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요 언론들은 ‘관심 저하’, ‘민폐’ 등의 단어를 동원하면서 운동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다가올 추위 때문에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아예 속단하는 언론보도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럴 수 있다. 아울러 현재로서는 불행하게도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유럽 채무위기도 G20 정상회의 이후 소강 국면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우려했던 한미 FTA의 부정적 파괴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월가 시위운동이 2011년 10월의 역사에 뚜렷이 새겨놓은 새로운 이정표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경제가 안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향후 사회의 전면에 다시 부상하게 되면 더욱 거대한 모습으로 과거의 흔적 위에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위기는 점점 더 편의적인 처방이 연속되면서 위기구조가 커지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구조개혁이란 위약한 금융규제나 미미한 공공 일자리 창출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월가 시위대가 말하고 있는 1%대 99%로 나뉘어 있는 경제적 양극화와 99%의 소득과 생활정체 상황을 개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절반에 가까운 부가 1%에 쏠리는 경제적 재생산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그 어떤 통화정책과 경기부양정책으로도 실물경제의 장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시점에서는 변변한 저항도 못한 채 위기를 일으킨 금융회사에 구제금융을 해주는 것을 지켜봤던 시민들이 3년 만에 다른 모습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는 것이 월가 시위였다. 이제 미국과 세계의 99%는 자신들이 누구와 함께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저항의 이유와 목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월가 시위도 사라질 수 없다. 더 크고 정제된 힘으로 저항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작금의 세계 경제위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월가 시위운동 안에, 그 발전과 확산에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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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4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가 유배를 살았던 역사의 땅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쯤 될 법한 중국 최남단 섬 하이난다오(海南島)가 지난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이 주도하는 두 개의 정상회의와 포럼이 열렸기 때문이다. 브릭스(BRICS) 정상회의와 보아오(博鰲)포럼이 그것이다.

G7, G20과 브릭스 정상회의

2009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여 올해로 3번째로 13~14일까지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를 먼저 살펴보자. 브릭스(BRICs)라는 용어는 2001년 미국 월가의 최대 금융세력인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 사장인 짐 오닐이 향후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브라질이 세계경제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 만들어낸 용어다. 스스로 만든 개념이 아닌 서방의 월가가 이름을 붙여준 이래 10년 만에 이들 국가들은 스스로를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세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를 참여시킴으로서 당초의 4국 브릭스(BRICs)가 아닌 5개국의 브릭스(BRICS,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칭하기 위해 소문자 s를 대문자 S로 바꾸어 부름)로 확대되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만모한 싱 인도 총리,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함께 새로 회원국이 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컵 주마 대통령까지 5개국 정상이 모두 참석한 3차 회의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 면적의 26%, 전 세계 인구의 42%,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18%, 세계 교역의 15%를 차지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를 3조 9300억 달러 보유하고 있다는 그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의 전망, 함께 번영을 누리다’라는 주제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는 “싼야 선언”을 채택하면서 최근의 세계질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하고도 독자적인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서방의 리비아 무력 개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선언은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정세에 대해 혼란을 우려”하지만 “우리 모두는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원칙에 동의”하며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리비아 사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못 박았던 것이다. 동시에 국제질서에 대한 평화적이고 공정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엔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방향에서 유엔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상회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 질서 변화에 대해서도 서방과 다른 목소리를 표방했다. 선언은 국제통화질서 개혁과 금융시스템 개혁에 대해서 “세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정의롭고 포괄적이면서 잘 관리되는 국제통화와 금융시스템이 구축돼야 하고 이런 시스템이 개도국과 신흥경제대국들을 이익을 대변할 것”을 요구했다. 달러체제에 대한 개혁의 요구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금융 위기는 오늘날의 국제 통화 금융의 결함과 부족함이 드러났다”며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통화 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옹호"한다는 선언을 한 것은 현재의 달러중심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

동시에 정상회의는 그간 달러체제를 뒷받침해왔던 중요한 두 개의 국제 금융기구인 세계은행과 IMF의 개혁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목소리를 냈다. 특히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 65년 동안 미국과 유럽이 독점해온 두 개의 금융기구 지배구조에 대한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과 유럽이 독식하고 있는 세계은행과 IMF의 지배구조는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것으로 현재의 요구에 맞게 바뀌어야” 하고 "세계은행과 IMF 운영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배제한 채 미국과 유럽의 자동순환 시스템이 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더불어 최근 신흥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자본 이동 통제에 대해서도 “국가 간 거대한 자본이동이 갖는 심각한 위협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무분별한 자본 자유화, 개방화에 대한 통제를 분명히 했다.

중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는 마침 14~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G20재무장관회의(G20정상회의는 올해 11월 프랑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와 비교되면서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서방 선진국이 중심이 된 G7의 확대판인 G20정상회의와 브릭스 정상회의가 어떤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국제질서에 영향을 미칠지 서방 언론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IMF나 G20정상회의 조차 최근 무분별한 자본유출입이 신흥국 금융시장에 주는 피해를 인정하고 있고 원자재시장에 대한 금융투기세력의 재 개입에 대한 우려를 외면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브릭스 정상회의의 강한 입장표명은 이런 경향을 더욱 굳히게 될 것이다.

후진타오가 제안한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과 한국

브릭스 정상회의가 G7, G20정상회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면 지난 14~16일 동안 같은 장소에서 ‘포용성 발전: 공통 의제와 새 도전’을 주제로 10번째 열렸던 보아오(博鰲)포럼은 서방세계의 다보스 포럼과 비교되기도 한다. 알려진 대로 매년 1월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공식명칭 세계경제포럼(WEF)은 서방 선진국 정상들과 기업가들이 주도하는 연례 세계경제 포럼으로서 흔히들 ‘부자 클럽’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서방 선진국들 위주의 포럼이다.

이와는 달리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며 2001년 이후 10년째 아시아지역의 경제 협력과 역내 지속 가능한 발전방안 제시를 목표로 현재 2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보아오 포럼은 지금까지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 중국의 부상을 배경으로 브릭스 정상회의와 함께 개최하는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아시아인들은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을 공유하고 있으며, 아시아 일체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아시아인들이 갈수록 단결하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아시아의 공동 발전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안보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존중과 선린우호 촉진 ▶발전 방식 전환과 전면적 발전 추구 ▶발전 기회 공유와 공동의 도전에 대한 응전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공동 안보 촉진 ▶호혜공영과 지역협력 심화라고 하는 아시아를 위한 5대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G2체제(미국과 중국의 양 강 체제)가 점차로 실체를 드러내는 가운데, 중국은 한편에서는 전 세계 비서방 대국들을 BRICS라는 틀로 규합해 나가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자신이 속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구상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이는 말 뿐이 아닌 실제적 경제력과 국력의 신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구별된다.

문제는 서방 선진국이 중심 된 OECD와 G20의 구성원이기도 하면서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의 일원이기도 하고 아직은 신흥국 틀 범주에 속해 있는 한국의 위치이다. 그리고 적어도 실물경제 관계만 놓고 보면 미국, 일본, EU의 모든 수출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수출비중을 중국(홍콩 포함)과 맺고 있는 한국 경제의 위치이다. 또한 세계 금융시장을 여전히 쥐락펴락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글로벌 자본 이동에 의해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신흥시장인 한국 금융시장의 처지이다.

한국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아시아의 일원이기 보다는 일본과 미국을 추종하며 태평양 국가로 편입되기를 원했고 서구의 경제모델을 닮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경제와 정치, 군사적으로 한미 동맹구조가 오히려 강화되면서 중국, 러시아 등 대륙 국가들과의 갈등관계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분명히 역사적 환경변화 추세와 맞지 않으며 향후 미래의 우리 국익과도 충돌할 개연성이 크다. 과연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가. 지난 주 하이난다오 섬에서 열린 두 개의 정상회의와 포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 반추해 물어보아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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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10.07.29 11:33
새로운 축적체제를 꿈꾸는 메가 뱅크 구상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보고서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MB맨으로 잘 알려진 어윤대 국가브랜드 위원장이 KB금융회장으로 내정되자마자, 우리은행에 대한 인수합병 의사를 밝혔다. 정운찬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세종시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듯이, 어윤대의 내정과 메가 뱅크를 향한 그의 급한 행보는 ‘행동대장’을 내세워 기동전을 펼치는 전형적인 MB스타일의 정책추진 방식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정부만 일방적으로 메가 뱅크의 추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한국의 선두 금융기관들도 “메가 뱅크로의 재탄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고 있다. 메가 뱅크 계획은 MB의 측근인사와는 무관하게 추진되어 왔다. 다만 이 계획의 필수 요소인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민-관의 의견조율 과정이 측근인사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은행 설립 계획은 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정부와 경영계가 강력히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개혁에서 화룡점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획 자체는 동북아 금융 허브 프로젝트와 자본시장통합법(2009년 2월부터 시행)과 함께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어 왔다. 메가 뱅크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아젠다인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에 맞게 금융체제를 재편하면서 그 짝으로서 함께 추진된 금융 산업의 대형화, 겸업화, 증권화의 구체적 실현 형태이다. 처음에는 외환은행 매각에서 얻은 ‘교훈’으로 인해 은행의 민영화 시점과 그에 대한 여론을 저울질 하다가 기회를 놓쳤고, 최근에는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지금까지 연기돼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메가 뱅크 계획이 세계적인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었다면, 금융안정성을 기본화두로 G20이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체제 개혁에서는 추세적 변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난파선을 홀로 고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은 오는 11월 G20회의의 주최국이다. 주최국은 회원국들의 다양한 시각 차이와 의견 차이를 조율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과연 MB정부는 세계적 차원에서 금융안정성을 위한 공조를 주도하면서, 국내에서는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를 동시에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금융 산업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리와 연쇄파산(too interconnected to fail) 구조를 이번 세계적 위기의 핵심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금융 산업의 대형화, 겸업화, 증권화에 대한 규제를 다시 강화함으로써 금융기관의 크기와 영업범위를 일정정도 제한하는 개혁을 추진 중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일명 볼커 룰을 통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업무 사이에 일정한 높이의 차단벽을 설치해, 과거의 글라스-스테갈 Glass-Steagall 법안의 취지를 일부 재도입 하려고 한다. 또한, 규모에 대한 규제안으로서 현재 존재하는 단일 은행의 예금규모가 전체 예금 시장의 10퍼센트를 상회할 수 없도록 한 법률을(Riegle-Neal Act) 확대하여 부채에도 10퍼센트 제한 규칙을 적용할 예정이다. 규모에 대한 규제안 자체가 일정 정도 사업 범위의 축소를 강제하는 효과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J.P. Morgan Chase와 Citigroup은 자산규모 축소를 위해 자산운용사나 상품트레이딩 자회사를 매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주식, 채권, 파생금융상품 거래, 사모투자펀드, 헤지펀드 등에 대한 상업은행의 자기자본투자를 금지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대형은행의 영업범위도 축소시킬 계획이다.
 
왜 한국정부와 금융계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면서까지 이미 파산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려는 것일까? 관계자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 글로벌 경쟁력, 업무 영역의 다변화와 확장을 통한 위험 분산 등을 초대형 은행이 필요한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세 가지 모두 타당성은 별로 없다. 먼저, 현재 한국 은행업의 집중도로 보았을 때 이미 규모의 경제 효과는 한계를 넘어섰고, 더 커질 경우에는 규모의 불경제 효과 diseconomy of scale가 발생할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계효용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규모가 더 커지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표1] 미국과 한국의 상위3개 은행* 집중도(점유율 CR3) 단위: 퍼센트
출처: 한국 금융감독원,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 한국의 경우 현재 상위 3개 은행에 국민, 신한, 우리 은행이 포함되고, 미국의 경우 Bank of America, Citigroup, JP Morgan Chase 은행지주그룹이 포함된다.
** 합병 후는 국민, 신한, 하나은행이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을 인수합병 한다고 전제한 3대 은행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처럼 예금이든 부채이든 개별 은행이 10퍼센트 점유율을 상회할 수 없는 규정을 적용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은행들을 쪼개어 독립시켜야 한다. 이미 주요 은행들의 자산/예금/부채가 10퍼센트를 넘어서 있다. 현재 상위 3대 은행인 국민, 신한, 우리은행을 합쳐 시중은행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총자산-예금-총부채 순으로 65.6-66.8-65.8퍼센트에 이른다. 시중은행에 지방은행을 합친 일반은행 전체에 대비하면 59.5-60.5-59.6퍼센트, 여기에 농협, 산업은행 등 특수은행까지 합친 은행 전체에 대비해서는 40.8-47.6-40.7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금 현재도 규모축소의 대상인 미국 은행산업의 집중도보다 훨씬 높은데, 만약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이 매각되어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으로 인수합병 된다면 집중도는 이보다 훨씬 높아진다. 시중은행 전체 대비 총자산이 88퍼센트, 일반은행대비 80퍼센트, 은행 전체 대비 55퍼센트로 높아진다. 예금과 총부채도 이 수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메가 뱅크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교과서를 되뇌고 있는 것이다.
 
업무 영역의 다변화를 통한 위험 분산도 회의적이다. 지금 확장하려고 하는 업무영역은 투자은행의 영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리스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한국의 3대 은행 중 어느 하나라도 위기에 빠진다면 국민경제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집중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수합병을 통해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독점력을 가진 은행들을 만들어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도 집중도가 더 높아져 대마불사 논리가 강화되면 “시장규율이 약화되는 현상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져 “금융시스템 리스크”도 증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게 되면 통합되는 은행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금융계와 정부가 원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한 규모의 은행이다. 금융적 차원의 규모만 늘리면 되는 것이다. 시중에 위치하고 있는 각 은행의 점포들이 매우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은행들이 합치게 된다면 상당수의 점포들이 통폐합되고, 일자리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합병할 경우 중복점포로 인한 ‘잉여인력’이 7000명에서 1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도 나와 있다.
   
[그림1] 신규산업투자Green-Field Investment의 한계점 도달
출처: 세계은행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한국정부와 주요 은행들이 원하는 것은 ‘판돈’을 키워 좀 더 큰 ‘게임’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를 단지 투기성향의 강화라고 이해해선 안 된다.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금융 산업의 대형화/겸업화/증권화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집적과 집중을 이룬 한국의 지배적 자본들이 (1) 한국 안에서 신규산업투자Green-Field Investment 중심의 축적체제를 더 이상 확대하기에는 어려운 한계점에 달했고, (2) 초국적인 차원에서만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대부터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일찌감치 높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이룬 한국의 지배적 자본은 더 이상 국내에서는 세력을 확장할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 한국의 거대자본이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신규산업투자나 초국적 M&A를 통한 것인데, 이때 절실히 필요한 것이 거대 금융자본이다.
 
그림1은 자본주의의 발전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사용할 수 있는 (인구의) 도시화와 (GDP 대비) 고정자본형성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산업화 초기에는 도시화에 따라 자본형성이 비례해 증가하다가 감소하기 시작해 일정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중국이 하고 있는 것처럼 소위 개도국 형 축적을 지속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은 선진국 형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새로운 축적의 기회를 모색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지배영역을 초국적으로 확대하면서 금융자본 역시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커져야 한다는 지배층의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기업들의 비즈니스 벤치마킹은 한국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 산업 쪽에서도 국내에서의 사업 확장은 포화상태에 달했다고 인식하고 금융계의 ‘삼성전자’를 꿈꾸고 있다. 한동안 주력했던 주택대출과 개인 신용대출도 사업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이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초대형 은행으로 발돋움 한 후 해외 금융?자산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이윤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과 산업은행 민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배층의 이러한 공감대는 이미 구체화된 로드맵에 따라 실행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세계적 역량을 갖춘 ‘선수’를 준비하지 못해 정책당국이 고민하는 것이다.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UAE정부로부터 수주 받은 186억 달러 규모의 원전 사업을 계기로 정부와 재계에 메가 뱅크를 서둘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선수’로 뛰려면 신용등급 AA이상이고, 세계 50대 이내에 드는 은행이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다. 대규모 해외 사업 계약은 공사 이행을 위한 은행 보증서를 요구하는데, 이 때 위의 기준을 만족하는 국내 은행이 존재하지 않아 엄청난 수수료를 내고 외국계 은행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위상이 높아진 국내 대기업들과 쌍을 이룰 수 있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는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부의 정책 초점은 핵심 대기업 집단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국내에서 산업개발의 여지가 아직 많았던 과거에는 떡고물trickle-down effect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한국의 국가-자본 연합체가 꿈꾸고 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없으면서 자신들의 초국적 지배영역만 확대하려는 계획이다. 메가 뱅크 계획은 독립적 거대 금융자본의 탄생 그 자체보다는 기존 재벌체제의 새로운 확대 전략 속에서 그 본질적 성격이 이해되어야 한다. 초대형 은행의 탄생은 국내에서 은행 본연의 업무인 자금중개기능은 악화시키면서, 해외에서의 위험성 높은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국민경제를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결국 대다수 국민들은 혜택은 없고 책임만 늘게 되는 것이다.

박형준 hjpark@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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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 인사이트 7월호에 기고해 실렸던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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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10.07.12 15:01
다시 부활한 Treasury View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보고서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요약문]

지난 달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계획을 공언"한다고 발표하였다. 금융위기를 예견하지도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며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Sovereign-debt crisis(국가재정위기)'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한 나라의 경제적 활동과 실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은 통상 Treasury view에서 그 이론적 뿌리를 찾는다. 1920년대 영국 재무성 관료들은 정부지출을 늘리면 그 만큼 민간 지출이나 투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적 활동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되었다. 정부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시장과 개인의 책임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주류경제학은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재정정책의 유효성은 대공황 이후 케인즈의 유효수요 원리로 잘 설명되고 있는데, 개념적으로는 미국의 경제학자 러너(Lerner)의 '기능적 재정(functional finance)'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능적 재정'에서는 재정정책은 총수요가 부족한 현실 경제에 수요 창출이나 실업 극복 등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기능이나 효과를 지니고, 이와 관련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게 된다.

개별 국가에서 재정정책이 올바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국제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현 시기 G20에 진정으로 필요한 국제적 공조다. 장기적으로는 달러체제를 극복해야 하며, 단기적으로는 특별인출권(SDR) 확대와 지역별 통화기금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국제적 투기자본의 이동을 규제해야 한다.

다음으로, 기업의 막대한 이윤이 투자로 전환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금융위기를 전후로 기업은 막대한 현금을 축적하고 있음에도 기업의 투자는 GDP의 10% 이하로 줄어들고 있다.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줄여 비용을 삭감하면서 이윤이 늘어나고 있지만 투자는 오히려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업의 자본소득(capital gain)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규제와 안정,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등의 조치가 실시되어야 한다.

또한 재정정책에서 '신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적자는 결국 국민이 져야 할 부담이다. 침체기에 재정적자를 늘리더라도 회복기에 재정흑자를 통해 건전한 재정을 달성하는 것은 정치적 '신뢰'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오늘의 '빚'이 내일의 '수익'으로서 비전을 제시해야 그 빚을 사회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여경훈 khyeo@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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