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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4 안철수의 생각’을 어떻게 할 것인가
  2. 2012.05.03 진보개혁 진영, 패배 이후 (1)
2012.07.24정태인/새사연 원장

 

<안철수의 생각>은 훌륭하다. 평생 정책만 다룬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 물론 적잖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여러 사람의 의견 짜깁기한 것과 <안철수의 생각>은 다르다. 일관된 생각의 다발이 굵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놀랍게도 학계에서도 채 소화되지 않은 ‘이해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 재벌 문제를 진단하고 법조계에서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지만 방향이 뚜렷한 ‘기업집단법’을 대안으로 내세웠으며 그 생각의 틀은 ‘산업생태계’이다.

더구나 그는 종업원지주제나 이윤공유, 경영참가라는 미시적 실천 방안을 이미 실행해서 성공해본 사람이다. 그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 또한 정확히 지적한다. 당장 표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책<안철수의 생각>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높은 지지율도, 확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 국민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팬덤 현상으로 간주했다. 하여 간간히 보도되는 그의 ‘공자 말씀’도 곧 사라지려니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폭발적 매력이란 면에선 뒤처질지 몰라도, 정책에 관한 한 2001년 내가 처음 만난 노무현을 훨씬 능가한다. <안철수의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국민 안에 퍼질 것이고 현재까지의 대통령 후보 그 어느 누구도 마땅한 백신을 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가장 뛰어난 백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론은 안철수 교수를 중도로 분류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중간쯤이라는 뜻일테고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뒤에는 민주통합당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굳이 자리를 따지자면 이 책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쯤, 아니 진보파의 일부 그룹보다 더 왼쪽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연구원 6년의 연구와 내 뼈저린 실패의 경험이 결합되어 금년 초에 나온 <리셋 코리아>와 ‘싱크로율’ 거의 100%라는 게 그 증거다.

안 교수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의 생각이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색깔공세’에 시달릴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야 세가 불리하면 어떻게든 붉은 색을 덧칠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삶 어느 편린에도, 책 속의 어떤 낱말 하나에도 그럴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억지춘향은 역풍을 맞을 뿐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세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안 교수의 취약점이다. 갑자기 정당을 만들고 현재의 팬덤을 조직적인 정책지지 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실로 난감한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을 알고 싶은 분들에겐 오연호와 김헌태가 쓴 <안철수>를 권한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을 통해 ‘시민정부’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 정당도 환골탈태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내각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 그리고 안철수가 정책의 위치를 놓고 겨루는 것은 말다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같은 정책 목록 안에서 누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 놓는가, 어떻게 반대편 국민을 끌어들일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의 힘>에서 역설한대로 이제 증오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반대 쪽 후보에 표를 던진 국민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 놓고 소통과 타협으로 실천해야 한다. 물론 안철수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협동은 세계와 한국의 장기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날 길인 동시에 대선 승리의 유일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글은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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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5.03정태인/새사연 원장

누가 뭐래도 진보개혁진영은 패배했다. 4월 11일을 벼르고 별렀던 많은 시민들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0년 지자체 선거 승리, 박원순 서울 시장의 승리와 참신한 시정으로 가파르게 치솟던 희망의 불길에 찬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날 이후 20일이 지난 지금, 정치권이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는 없다. 아니 내 보기엔 각 당이 아전인수의 해석을 거쳐 더 큰 패배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에선 참여정부의 이해찬 총리와 국민의 정부의 박지원 비서실장이 손을 잡았다. 선거 과정 중에 일어난 사사건건의 불협화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과연 문제는 해결될까?

1954년 미국의 심리학자 셰리프 부부는 저 유명한 ‘로버 동굴의 실험(Robber cape experiment)’을 했다. 평범한 중산층 대학생들을 아무렇게나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정된 자원(물)을 놓고 경쟁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은 자기 집단에 이름을 붙이고 지도자를 뽑은 뒤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급기야 살인을 우려할 정도에 이르러 실험을 중단시켜야 했다.

7년 뒤 셰리프 부부는 ‘집단간 갈등과 협동’이라는 책에서 이런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 집단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과거의 적대적 집단에 대한 호의적 정보가 제시되어 혐오스러웠던 행동도 재해석될 것이고 지도자들은 협동을 향한 단호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대통령선거의 승리는 ‘친노’나 ‘비노’ 어느 한 집단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은다면 민주당 내의 협동이 이뤄질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협동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의 고달팠던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불행하게도 국민의 눈에는 박근혜 씨가 팍팍한 현실을 타개할 개혁의 지도자로 보였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무상급식에서 비롯된 보편복지의 청사진조차 보여주지 못한 채, 돌아가신 두 대통령만 전면에 내세우는 게 고작인 집단을 누가 믿겠는가? 즉 ‘협동 민주당’의 목표와 능력이 국민의 눈에 그저 그런 과거로의 회귀로 비친다면 그런 협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중도’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가 바로 그렇다.

불행하게도 진보진영은 더 문제다. 진보진영 내부의 집단간 경쟁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더 강한 조직력을 가진 집단이 투표를 통해 언제나 승리했다.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선 부정이 관행이 됐다. 나는 책과 강의에서 “집단 선택에 의한 협동”의 위험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집단의 개방성, 집단 가치의 보편성, 집단 구성원의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협동이라는 묘약은 죽음에 이르는 극약이 된다.

감베타라는 사회학자는 마피아와 같은 갱 집단을 예로 들어 ‘사회적 자본’의 그늘을 지적한 바 있다. 통합진보당 후보경선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의혹은 이런 그늘이 이미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집단 내 규범은 어느 덧 보편으로부터 훌쩍 멀어졌고 초등학생도 알만한 부정행위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감마저 사라졌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쉬쉬 하던 문제가 국회의원 선거라는, 숨을 곳 없는 더 큰 공간에서 확대재생산된 것이 관악을 사태이다.

“더 큰 적 앞에서 단결하자, 내부의 흠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자.” 이런 ‘조직 보위’의 억지 주장이야말로 진보의 장송곡이다. 진실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부정에 연루됐다면 당선자라 해도 읍참마속의 칼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보의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 아닌가.

진실을 밝혔을 때 올 극심한 내부 혼란과 분열을 두려워하지 말라. 집단 간의 갈등과 화해와 관한 수십 년 간의 연구는 집단 내부의 분열을 치유할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건강한 진보만이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어렵지만 유일한 묘방, ‘숙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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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