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5 이상동/ 새사연 연구센터장 


4.11 총선이 많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야권연대의 사실상 패배로 끝났다.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언론은 경마식 보도와 단일이슈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정말 중요한 갖가지 정책 이슈들은 희미해져만 갔다. 선정성을 부추기는 기사들에 파묻혀 주요한 정책 이슈들이 실종된 선거가 된 것이다.

중요하지만 희미해진 정책이슈는 참으로 많다. 한미FTA, 재벌개혁, 사법개혁, 4대강, 언론개혁 등등. 그러나 여기에 '탈원전' 이슈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력대란 비상사태 등 지난 해는 나라 안팎에서 에너지 사고가 유독 많이 발생한 해이고 올해에는 고리원전의 정전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때문에 이번 총선은 전국적으로, 특히 원자력 발전소가 집중되어 있는 동해안에서 '탈원전'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측 혹은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한국의 원자력산업이 총선을 기점으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될 정도였다.

각 정당의 '원전'에 대한 입장

그러면 총선을 통해 드러났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주요 정당들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도록 하자. 먼저 기호 1번 새누리당은 중앙당 차원의 '탈원전' 정책 공약이 없다. 하지만 비례대표 1번을 원자력 전문가로 내세우면서 원자력 개발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드러내 보였다. 반대로 기호 2번 민주통합당은 33인 국회의원 명의로 원자력 확대정책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기호 4번 통합진보당은 노후 원전 폐기 등을 포함하는 '탈핵 에너지 공약'을 내세웠다. 이 밖에 탈원전을 정당의 정체성으로 삼은 녹색당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정당들이 수명 연장 중인 고리1호기와 월성 1호기의 폐로 절차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 이슈는 환경과 에너지 문제가 함께 섞여 있는 분야이다. 따라서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정책청사진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정당들이 보다 큰 그림에서 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 이슈, 총선을 넘어 대선으로 나아가야

굳이 되새기지 않아도 이미 짐작했던 바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책을 떠올려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의 훈련'이다. 정치는 단순한 투표 행위에 복잡다단한 정책 의사를 보다 많이 투영할 수 있을 때 올바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잊혀진 것 같은 중요 정책 이슈들은 대선을 앞두고 반드시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중요 정책 이슈들은 국회 권력이 아니라 대통령 권력의 행사와 보다 밀접하기 때문이다. 총선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8개월 후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다. 2012년 선거의 장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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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14 정태인/새사연 원장

4·11 총선 결과에 가장 활짝 웃었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국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재벌 개혁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이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 게 바람직할까?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이 두 책을 읽고 새로운 논쟁의 출발점이 될 만한 서평을 보내왔다. <편집자>

 

과연 합의가 가능할까?

인터넷 언론에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 광고가 뜨나 했더니 이어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의 이슈로 재벌 개혁을 꼽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입장에서는 이 두 진영 간의 논쟁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할 참이었다.

때마침 '프레시안 books'에서 이 두 책의 서평을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고 기꺼이 수락했다. 쾌도난마와 종횡무진이라….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겠지만 패기가 넘친다. 더구나 두 책은 같은 디자이너가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표지 분위기까지 비슷하다. (실제로 두 책은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 편집자)

김상조와 장하준은 내가 잘 알고 또 존경하는 후배들이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론적으로 장하준 쪽에 속하고 다른 경제 정책에 관해서도 거의 의견이 같다. 단, 재벌 개혁과 중앙은행 문제를 빼고…. 이해 당사자 자본주의라든가, 산업 정책의 중요성, 제조업 중시, 사업 서비스의 강조에서 그렇다.

동시에 나는 김상조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재벌 개혁 운동에 찬사를 보낸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김상조가 해 온 일은 가히 경이롭다. 아래와 같은 경제개혁연대의 창립 선언문은 그의 이런 정신을 잘 보여준다.

"거대 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종횡무진 한국 경제>, 18쪽)"

삼성과의 피를 말리는 싸움에서 정확한 수치와 법적 근거에 매진한 김상조가 보기에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나 청사진은 허망할 것이고, 또 그 때문에 진보 진영이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여 공공 토론 장소에서도 진보 쪽의 추상적인 주장에 그는 과도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 대상 중 하나이다.

 

▲ <종횡무진 한국 경제>(김상조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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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 경제>는 이런 김상조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지난 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한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에 이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196쪽)

나아가서 김상조는 제도의 상호 보완성이나 경로 의존성을 고려해서 새로운 운동 방향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아! 이렇다면 이른바 참여연대 대 대안연대(나도 회원이었던 이 단체는 2010년 2월 25일 해체했다) 간의 오랜 논쟁, 그러나 별로 생산적이지 못했던 논쟁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를 덮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첫 몇 쪽을 읽었을 때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생각이 비슷한 세 사람이 대담을 한 기록이라서 아마도 분위기의 증폭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은 이들이 말하는 "시장 경제론자" 또는 "경제 민주화론자"가 누군지 떠올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맨 마지막 쪽에 이르러서야 유종일, 김상조 등이 펴낸 <박정희의 맨얼굴>(시사IN북 펴냄)이 주된 표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원고 마감시간이 지났으니까….

세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약 100쪽까지는 장을 넘길 때마다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어떻게 김상조가 신자유주의자란 말인가? 토빈세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시장 만능론자가 있을까?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강만수는 앞부분에서는 환율 방어에 나선 산업 정책의 화신이 되었다가 뒤에 가면 시장 개혁론자로, 그리하여 김상조와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된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개혁론자(즉, 나도 포함된다)들도 관료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를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실은 한편이었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가?

구체적인 사실이 어긋나는 것도 꽤 많이 눈에 뜨인다. 예컨대 2008년 금리 논쟁에서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금리 인상에 반대하였지만 당시 인상론자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처럼 두 자릿수로 올리자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 기억으론 기껏해야 0.25퍼센트에서 0.5퍼센트 인상을 주장한 것이었다.

물론 장하준의 말대로 금리는 둔탁한 정책 수단이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대안이 자본 통제라면 누구나 고개를 내두를 것이다. 갑자기 도입할 수 있다거나 미세 조정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나올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의 새 책에서 소개했지만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 정책, 외환 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한다면 자본 통제도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도 꽤 많은데 예컨대 종합부동산세 비판이 그러하다. 자산세와 소득세가 꼭 대립적인 것도 아닐 것이고, 장하준의 주장대로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자산 투기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리하여 실물 투자가 감소하는 상황이라면 자산 가격의 규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헨리 조지가 부동산 빼곤 시장이 완벽하다고 보았으니 종합부동산세 역시 틀린 처방이라는 식인데 이렇게 이 세상 모두를 시장 만능론자로 만드는 방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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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법이라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경제 안정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신자유주의자이며 주주 자본주의론자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면 보수주의자인데 거기다 자산 가격까지 떠맡으라니…. 말하자면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놓고, 또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서 신나게 두드려 팬 것이다.

다행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중간부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어쩌면 타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심사숙고하면서 단어를 골라 쓴 책과 그야말로 격정적인 대담의 구체적인 논리와 통계를 하나하나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불공정하다. 하여 여기선 재벌 개혁과 관련해서 타협점이 있는지만 살펴본다.

특히 장하준의 이론으로 재벌 개혁론을 만들면 어떤 모습이 될까가 책을 읽으면서 주로 한 생각이다.

이해 당사자 이론과 주주 이론 그리고 재벌개혁

나는 금융 세계화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가 양극화의 근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곧 나올 책에도 자본 통제와 거시 건전성 규제에 한 장씩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만악의 근원인 주주 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은 과연 무엇일까?

허망하게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 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 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 올릴까? 만일 주주 자본주의 규제, 예컨대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여 장하준이 원하는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의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이제 "재벌 해체"를 해도 무방할까?

불행히도 한 나라에서 당장 이런 효과를 낼 뾰족한 정책은 별로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 규제의 강화의 진행에 맞춰서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장하성이 참여연대에서 시작하고 김상조가 경제개혁연대에서 이어받은 재벌 개혁 운동은 주주 이론(shareholder theory)에 근거한 소액 주주 운동이었다. 사실 소액 주주 운동은 집단 행동의 딜레마(비용은 어마어마한데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거의 없다)에 속하기 때문에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야말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증권 집단 소송제라든가, 사외 이사 제도의 도입, 주주 대표 소송제, 집중 투표제 등의 도입을 그 누가 폄하할 수 있으랴. (정작 김상조는 제도의 보완성 문제 때문에 별 효과가 없었다고 반성하지만!)

그러나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며 회사는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는 단일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주 이론의 한계도 이 운동에 반영되었다. 물론 그렇게 짜여 있는 법적 현실에서 주로 소송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이 이론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김상조는 케인스주의자이고 원래 이론이나 이번 책으로 봐서는 이해 당사자 이론에 더 가깝다) 더 큰 범위의 재벌 개혁을 꾀한다면 주주 자본주의라는 협소한 틀은 정책을 옥죄는 차꼬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하준 등(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장하준은 장하성의 사촌동생이다!)의 이해 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하준은 본격적인 이해 당사자 이론을 전개하기보다 외국 자본의 재벌 매수를 걱정하고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주의를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대안은 경영권과 복지의 교환이라는 사회적 대타협이다.

이미 모든 세력을 다 장악한 재벌이 왜 이런 타협안을 받아들일까?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재벌과 관료 그리고 보수 언론의 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백보 양보해서 장하준의 주장과 같은 사회적 타협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재벌 규제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야 재벌도 움찔해서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겠는가?

만일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하면 재벌 개혁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는 재벌을 '팀 생산(team production)'으로 본다. 재벌 시스템을 구성하는 이해 당사자 즉 총수 등 지배 주주, 경영자, 노동자, 하청 기업(supplier), 은행 등 채권자와 같은 1차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벌의 영향을 받는 소비자나 지역 공동체 등 2차 이해 당사자가 모두 참여해서 공동의 성과를 거두는 생산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팀 생산도 사회적 딜레마에 속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해 당사자 간의 협동을 자아내서 최선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가 핵심적 과제가 된다. 그동안 행동 경제학·실험 경제학, 진화 심리학, 진화 생물학 등이 밝혀낸 협동 진화의 규칙들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재벌 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다.

각 이해 당사자의 권한, 즉 탈출이나 목소리에 의한 견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협동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수탈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팀 생산 전체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소액 주주 운동이 그동안 이뤄낸 성과는 지배 주주에 의한 소액 주주의 수탈, 즉 터널링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수탈의 말단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하청 기업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익을 공유하게 하는 정책은 주주 자본주의 이론에서 도출될 수 없다.

팀 생산 이론과 협동의 규칙을 응용한다면 이해 당사자의 세력화(empowerment, 대니얼 퀸 밀즈)와 이윤 공유가 전체 효율성 제고의 전제라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협동이 이뤄지려면 무임 승차자(free rider, 여기서는 재벌 기업)에 대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응징(punishment)이 가능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 최저 임금 인상, 하청 기업의 집단 교섭권, 공정거래위원회의 강화, 소비자 권리 강화 등이 이해 당사자 세력화에 해당하는 제도들이다. 즉, 나는 현재의 재벌 체제를 그대로 놔두어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로 경제 민주화에 의해서 재벌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이익 공유다. 팀 생산의 결과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분배 정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팀의 효율성 제고도 결정한다. 조지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 그리고 실험 경제학의 임금 게임(투자 게임)에서 잘 드러났듯이 생산과 분배는 분리되지 않는다. 예컨대 준거 임금(reservation wage)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한다.

1980년대 이래 리처드 프리먼 등 미국의 '공유 자본주의론(shared capitalism)'자들은 종업원 지주제, 이윤 공유제 등이 이해 당사자의 경영 참가와 결합될 때 가장 성과가 좋다는 것을 장기간에 걸쳐 실증했다. 이 이론을 재벌 시스템의 하청 기업과 지역 공동체에까지 적용하는 것이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한 재벌 개혁의 핵심 중 하나이다. 노동자와 하청 기업이 모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경영에 참여한다면 장하준 등이 걱정하는 적대적 인수·합병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다. 이미 재벌의 규모는 너무나 커져서 대마불사의 경지에 이른 지 오래다. 즉, 재벌 계열사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과연 장하준의 생각대로 주주 자본주의의 압력만 없애주면 재벌들이 효율적으로 신산업에 진출해서 과거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만일 그 신산업 진출이 실패해서 조조의 선단처럼 화공 한 방에 무너져 버린다면? 새로운 산업의 진출이나 연구개발(R&D) 투자 증대, 기초과학이나 인력의 양성이야말로 국가의 산업 정책이 할 일이지 재벌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이런 인식은 세계 금융 위기 때 세계 주요 20개국(G20)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의 거시 건전성 규제를 논의한 배경과 동일하다. 이때는 국민 전체가 이해 당사자가 된다. 이 관점에서는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출자 총액 제한 제도나 순환 출자 금지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런 제도가 재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면밀히 검토해서 수량 규제의 폭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즉,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도 이해 당사자의 세력화, 이윤 공유제, 사전 규제로 구성되는 종합적인 재벌 개혁 이론을 만들 수 있다. 김상조는 이미 새로운 재벌 개혁 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일 장하준이 재벌의 효율성에 대한 선험적 가정을 완화한다면 다같이 재벌 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희망적인 것은 김상조와 장하준이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 집단 법이란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고 일부 규제는 약화시키되 총수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등도 재벌이 영리 병원을 주장하는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 진출하는 데 적극 반대하고 있으며 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동일하다.

우리는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한 재벌 개혁을 위해 '기업 집단 법', '이윤 공유에 관한 법' 등을 제정하고 상법,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향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 재벌도 그리고 한국 경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김상조, 장하준 두 경제학자가 이렇게 타협하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둘로부터 동시에 협공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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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3 / 30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4.11 총선, 뉴타운 공약이 침몰한 곳에 떠오를 것은?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부동산 문제가 반환점을 돌다.

2. 부동산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의 뚜렷한 변화

3. 투자 수익 아닌 주거비용을 접근하자

4. 주거비용과 주거 양극화 해소 방법은?

5. 주거 복지로 가는 길.

 

[본 문]

1. 부동산 문제가 반환점을 돌다

2012년 4.11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접전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이럴 때면 의례히 각 지역마다 무수한 개발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물론 영남권 공항건설 공약 등 일부에서는 여전히 개발 공약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2008년 서울에서 뉴타운 공약 광풍이 불었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분위는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 부동산 시장과 주택 문제에 대해 세상이 변하고 국민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 그리고 사교육 시장은 2000년대 내내 가장 위험하고 변동성이 심한 세 가지 시장이다. 원래 모두 공적인 사회 서비스 성격이 있는 영역이지만 신자유주의 시장화 논리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부동산과 금융, 사교육이 모두 만났던 공간이 바로 강남이었다. 강남의 사교육 신화와 부동산 불패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며 최근까지 강남은 사교육 경쟁 선도 지역, 부동산 투기 진원지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강남의 집값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교육열풍도 수그러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 또한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점이다.

개발독재의 시대의 고도성장 신화가 더 이상 통할 수 없듯이, 부동산 불패 신화도 영원할 수는 없다. 부동산이 발화점이 되어 터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세계의 부동산 시장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유지시킬 수 없는 새로운 환경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압박하는 요인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달라진 총선 분위기다. 그러면 어떤 변화 요인들이 생겨나고 있는가.

① 우선 세계적인 주택 거품 붕괴로 인한 교훈과 그 여파는 상당 기간 동안 세계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적인 붐을 만들기 어렵게 할 것이다. 거품을 주도했던 미국 주택시장은 2012년까지도 바닥을 지났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이며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을 필두로 한 유럽도 유사하다. 중국과 동아시아가 일정한 성장 동력을 배경으로 물가도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추세를 타고 있지만 이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당국의 긴장이 상당한 만큼 거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활황에 연료를 공급해왔던 금융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또 다시 첨단 금융기법과 부동산 대출을 엮어서 금융을 팽창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② 인구와 가구 구조의 대변화가 시작되었고 이것이 과거처럼 주택을 대규모로 장기공급해온 구조를 더 이상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간 상황에서 2010년부터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2015년부터는 주택 주요 수요층인 40~50대 인구 비중도 감소할 전망이어서 더 이상 구매능력을 가진 대량의 수요층이 매년 확대되기는 어렵다. 2010년부터 강력하게 확산된 부동산시장 대세 하락 전망의 배경이기도 하다. 더욱이 경제력이 취약한 30대 이하나 70대 이상의 1,2인 가구가 가구 수 증가를 주도하면서 과거 같이 중형 아파트와 같은 고가 아파트 수요가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양적인 주택수요 증가 추이도 질적인 주택수요 양상도 과거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③ 2008년부터 사실상 지속되고 있는 장기침체와 소득 불평구조가 주택 구매력을 장기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는 북미와 유럽이라고 하는 주요 선진 경제권이 장기침체와 저성장에서 쉽게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거의 유일하게 성장 동력이 다소 유지되는 중국과 동아시아도 과거의 고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가계의 소득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매우 희박한 상황에서 주택시장이 이전처럼 회복될 수는 없는 것이다.

④ 특히 우리나라는 천조 원에 이른 가계부채가 부동산 시장을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가계부채를 연료로 가열되었던 것을 상기하면 가계부채 억제는 곧 부동산 시장의 엔진이 식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동산 시장을 살리는 것보다 가계부채의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상당히 크게 퍼져 있는 상황이다. LTV나 DTI 같은 금융을 풀어서 부동산을 살리는 해법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게 된 것이다.

⑤ 2010년 무상급식과 무상 교육, 무상 보육 등에서 발화된 보편 복지 요구가 국민의 요구이자 시대의 요구가 되고 주거복지로까지 확산되면서, 주택 문제가 부동산 시장 살리기 문제가 아니라 주거 복지실현 문제로 전환된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주택이 팔리는 상품이나 가치가 불어나는 자산이기 이전에 살아가는 공간”이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공간”이라는 공감대가 국민들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로 획기적인 인식변화가 될 것이다. 주택이 상품과 자산 이전에 주거 공간이라고 국민들이 생각하면 할수록 ‘시장’을 살릴 것인가 아닌가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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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