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정태인/새사연 원장

역시 ‘다이내믹 한국’인가, 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의료민영화나 4대강 등 공공성 의제의 들불로 번져나갔던 것, 2010년 무상급식이 순식간에 보편복지 의제로 자리잡은 것처럼 이번엔 ‘경제민주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패배했고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김종인 박사 말마따나 새누리당 당선자 중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야권연대 쪽을 통틀어 당장 정책과 법안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당선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에서는 예의 ‘중도론’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대선에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김종인 조항)이 그 근거다. 즉 헌법은 소득재분배(복지), 그리고 독점규제(재벌개혁)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권’이 있었으니 우리 헌법은 유구한 ‘경제민주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간다는 뜻일텐데 경제민주주의라는 목표는 어떤 모습일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는 프리드만(Freedman, M)의 강변 이래 별 관심이 없었고 정치학자들만 띄엄띄엄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경제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학자는 정치학자 달(Dahl, R)이다. 그는 적어도 선진 사회의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규범인데, 경제에서는 왜 ‘기업 괴물(corporate leviathan)’의 전제주의가 규범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대칭적이기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0년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보울스(Bowls, S) 등의 ‘민주적 기업’이 그것이고 지난번에 소개한 프리먼(Feeman, R)은 30년 넘게 이 문제에 천착해서 ‘공유자본주의론’을 완성했다.
 
기업 내 민주주의를 넘어 롤스(Rawls, J)는 경제에도 자신의 정의론을 적용한 결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를 이상적 사회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또 하나의 대안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놀랍게도 롤스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복지국가가 자산 소유(‘생산 자산’, production assets)의 양극화를 용인해서 정의의 원칙인 ‘기회 평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유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롤스는 자산 및 자본재분배까지 주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실상 독점의 시정(즉 산업구조 상의 문제)을 중심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국가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과 프리먼은 기업의 민주화를, 그리고 롤스는 재산소유의 민주화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일반화한다면 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경제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착한 경제학’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볼까?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책 처방이 경제민주주의론자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 번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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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0 정태인/새사연 원장 

내 금년 목표는, 조폭들 이두박근에 새겨져 있는 ‘차카게 살자’다. 이런 신조를 지키는 걸 제일 방해하는 집단은 청와대다. 예컨대 ‘공정사회’를 내걸면 그 공정(아마도 fairness)이 뭔가를 알려 드리고, 그런 목표를 세웠을 때, 가능한 정책도 제시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공생’이다. 제발 말을 만들 땐 좀 보편적인 언어를 선택하기를…. 생물학의 ‘공생(symbiosis)’에는 기생(parasitism)도 포함된다. 하여 어찌보면 이번의 ‘공생발전’은 옛날의 자기 동업자들에게 “작작 해 먹으라”는 고언, 또는 명령 같다. 기생은 기생이되 ‘착한 기생’이라고 할까?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라서 별로 충격받을 것도 없는데 영어 표현인 ecosystemic development를 먼저 만들고 대통령이 정리한 번역어가 ‘공생발전’이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바다 건너 와서 고생하고 있는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정말, 또 정말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전 인류 공멸의 위기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70억 인구가 모두 글로벌 기후변화로 생사를 넘나들게 될 테니 우리는 앞으로 economics라는 낱말 대신에 ecology라는 낱말을 배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지금 대한민국이 ‘생태계’라는 말을 동원해서 할 일이 무엇일까? 그 말을 정말 고민한다면 청와대는 2011년 5월 발간된 영국 하원(POST, 하원 과학위원회)의 4쪽자리 보고서, ‘생태계 접근’(원문과 번역본은 새사연 홈페이지에 있다)부터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보고서의 주장을 한국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쉬운방법 있어요~생태계를 의식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내 아이(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까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생태계 서비스’라는 개념이 나왔다. 생태계 서비스란 생태계라는 스톡에서 나오는 유·무형의 서비스로 생태계와 인간의 복지를 연결하는 개념이다.

즉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려 할 때마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생태계 서비스가 어떻게 변할까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생태계 접근’이다. 당장 내가 얻는 것과 그 때문에 없어지는 서비스는 무엇인지, 지금 하는 일의 불확실성과 위험이 미래에 어떤 일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측정해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생태계 접근이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동적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환경영향 평가를 훨씬 넘어선다. 즉 특정 생물종이나 문화에 대한 위협을 넘어 광범위한 변화를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생태계 접근은 4대강에서 바로 얻을 이익(건설경기 부양, 땅값 상승, 규제 철폐)과 무시한 것들이 초래할 편익의 상실도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낙동강 풍경의 경제적 가치, 습지의 홍수 예방 효과, 그리고 계획이 무산됐을 때 생태계가 입을 사회경제적 피해(예컨대 4대강 주변에 모두 골프장과 카지노가 생기면 일본처럼 동시에 망할 수 있다)는 물론 생물다양성의 파괴도 모두 계량화해야 한다. 만일 4대강 사업으로 상실되는 규제 서비스(홍수 조절 등), 문화 서비스(관광이나 휴양 등), 지원 서비스(생태계의 유지)의 가치를 계산한다면 4대강 사업의 수익성이 천문학적 마이너스일 것이다. 영국 하원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세울 때 생태계 접근에 의한 계량 결과를 첨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판단하자는 게 ‘생태계 접근’이다. 생태계의 변화는 수많은 사람의 상반되고 다양한 이익과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계 접근은 숙의 민주주의(소통)를 전제로 하고 있다.

‘생태계’라는 말은 그저 비유로 쓰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왕 ‘생태계’를 내걸었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우선 적어도 영국 기준에 맞춰서 ‘4대강 사업’을 평가하기. 이건 이미 저지른 일이라 객관적으로 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발간된 보고서인 ‘영국 국가생태계 추정’에 맞춰서 생태지도 만들기(생태계 서비스를 추정하는 데는 모든 학문이 다 동원되어야 하니 현재 한국에선 대통령밖에 지시할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생각이라는 걸 조금 하기. 그후에 국민과 소통하기.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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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8 / 19 정태인/새사연 원장

생태계 접근(The Ecosystem Approach)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짧은 팸플릿은 금년 봄에 영국 하원의회의 POST(The Parliamentary Office of Technology)가 “생태계 접근”의 개요를 밝힌 글(POSTnote no 377, 2011년 5월) 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이 제대로 되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하는지, 또 4대강 사업이나 녹색성장이 진정한 생태계 접근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편집자 주>

생태계 접근은 현재 자연자원 시스템의 상태와, 인간의 웰빙을 가져오는 생태계 서비스 간의 연계를 밝힌다. 그것은 생태계 전체의 통합(integrity)과 기능을 유지함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생태계 변화를 피한다. 또한 그것은 인간 행위의 영향은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며, 생태계가 인간 행위에 필수적인 만큼 인간 행위 또한 생태계 상호작용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배경

생물다양성협약(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은 생태계 접근을 “토지, 물 그리고 생물자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서 공정한(equitable) 방식으로 그것들을 보전하고 유지하도록 촉진하는 전략”이라고 기술했다. CBD가 2000년에 받아들인 생태계 접근은 생태계 자체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와 완전히 상호의존적인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상자1).


CBD의 수정된 전략 계획에 발맞춰 영국 생물다양성 연합(Biodiversity Partnership)은 지금 자연자원 시스템의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광범위 접근(?, 옮긴이, landscape-scale approach)을 더 강조한다. 반면 특정지역 접근(site-based approach)이나 특정 종(spicies)의 복원은 덜 강조한다. 

사회경제적 목표, 예컨대 주택, 교통, 산업생산, 농업과 다른 토지 이용에 비해서 생물다양성의 보전은 역사적으로 부차적인 정부 정책 목표로 그동안 인식되었다. 나아가서 현재의 영국, 그리고 유럽의 자연 보전과 토지이용 계획의 법률적 틀은 생태계 서비스 흐름(상자2)의 관리와 유지에 맞춰서 설계되지 않았다. 또한 실제의 자연 자원 관리 프로그램에 관련 된 실천들을 짜넣는 일은 거의 진전이 없었다.

이전까지 보전 정책은, 높은 종 다양성을 가진 지역의 보호에 초점을 맞췄으며, 종 다양성이 높은 수준의 생태계 서비스와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이해가 부족했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생태계 접근은, 어떤(alternative) 안정적 생태계 상태와 그것이 제공하는 편익 수준 사이에서 공개적이고 명시적인 선택을 하라고 요구한다. 어떤 토지 영역에 대해서도 수많은 상이한 안정적 생태계 상태가 가능하다. 그 각각은 서비스들의 상이한 조합을 제공하며 그것은 서비스 제공의 변화에 따라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상이한 요구를 반영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고지대에는 삼림과 무어지역(moorland, 작은 초목만 있는 영국의 황야지역, 옮긴이) 생태계 양자가 모두 존재하는데, 수질과 탄소 감축 등 희망하는 서비스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농업-환경 계획(agro-environmental schemes)을 세워 이 두 상태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생태계가 하나의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관리된다면 이 생태계가 다른 생태계 서비스들을 제공할 능력이 감소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전적으로 목재 생산을 위해 관리되는 삼림은 더 적은 휴양 가치(recreational value)를 가질 것이고 더 적은 탄소를 저장하고 영양소를 보존하는 데 덜 효율적일 것이다. 과학적 조언의 핵심 기능은 , 서비스들 간의 관계와 그러한 상호작용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대강은 어떤 생태계 서비스를 노렸고, 그 때문에 희생된 생태계 서비스는? 이 목록을 정교하게 작성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옮긴이)

무시된 편익을 의사결정에 포함시키기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규제와 지원에서 나오는 장기에 걸친 이익, 예컨대 기후 규제나 홍수 조절은 종종 무시되었다. 그런 정책들이 토지 관리자의 금전적 보상의 명시적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정을 할 때 사적 편익으로 나타나는 더 단기적인 이득이 더 많이 고려되었다. 습지에 배수시설을 갖춰서 얻는 농업생산성의 증가가 그런 사례다. 이 때문에 공적 편익이 희생되었는데 이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홍수 위험의 증가나 수질의 저하와 같은 손실이 장기에 걸쳐 축적되었다. 생태계 서비스에 의해 생기는 편익은 사적 재화인 동시에 공공재이며 다양한 범위의 시간 및 공간 스케일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이런 편익은 다양한 소유권과 여타 제도적 배열(arrangement)과 연관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 간 갈등의 해결 

제공되는 생태계 서비스의 유형과 규모,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상태(mix), 경제적 성격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 어떤 환경 변화에 의해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가 갈린다. 편익의 소비자는 지역적, 사회적, 경제적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나의 집단이 하나의 서비를 점점 많이 소비하면 상이한 집단에 대한 다른 서비스는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생태계 서비스 제공의 수혜자, 특히 목재, 팜오일이나 콩 같은 상품 서비스의 수혜자는 생태계 변화가 일어난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현재 편익의 변화, 예컨대 생물다양성의 변화는 생태계 서비스 편익의 미래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치평가의 역할

공급 서비스(provisioning service, 상자2 참조, 옮긴이)는 농작물과 같은 시장재(marketable goods)를 만들어내지만 대부분의 생태계 서비스는 시장에서 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에서 나오는 편익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데 경제적 가치 평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생태계 서비스의 변화로부터 초래되는 편익 상실의 가치는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특히 그런 편익이 경제적 이익과 상쇄되는 경우에 그러하다(만일 4대강 사업으로 상실되는 규제서비스, 문화서비스, 지원 서비스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면 4대강 사업의 수익성이 천문학적 마이너스라는 것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생태계 서비스에 대해 지금 형식적(formal, 수학적인, 옮긴이)인 경제적 가치평가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서비스들은 지금도 거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태계 서비스 공급과 관리 간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 사용자들에게 “현물 보상”(compensation in kind)을 제공할 수 있다. 대토(代土, land swaps), 또는 현재의 농업-환경 계획에 편익을 제공한 사람들에 대한 직접보조금 등이 그 예이다. 그렇다 해도 생태계 관리 방식의 변화는 논쟁을 유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변화가 유리한 결과나 불리한 결과 모두를 변경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금전적이든, 아니면 현물에 대한 것이든. 사적 이익과 더 넓은 공적 편익간의 갈등 뿐 아니라 누가 편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에 관해서도 갈등이 발생한다. 이런 이슈들은 어떤 단일 접근, 예컨대 생태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평가 또는 대중의 참여에 의해서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며 다양한 범위의 기술을 요구할 것이다.

생태계 관리에 대한 통합적 접근

환경의 한계 안에서 자연자원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자본(natural capital)과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 뿐만 아니라 확인된 환경 위험의 증가로부터 초래되는 미래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부 정책과 프로젝트의 평가는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현재 새로운 정책이 환경영향평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사용하는 방법들은 생태계가 관리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비용과 편익을, 생태계 서비스의 상이한 공급 수준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계산하지 않고 있다(한국에서는 그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지만.. 옮긴이).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영향의 계량(Quantitifying)

최근 몇몇 연구는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영향의 비용을 평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o 환경의 기준선(baseline)을 설정한다(현재의 서식 상태와 그들이 지탱하는 생태 과정. 예컨대 이미 밝혀진 습지 기준)
o 정책 선택이 생태계 서비스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한 질적 추정의 확인과 제공. 이 때 생태계 서비스 가치평가 추정을 사용(ESVA)
o 정책 선택이 특정 생태계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의 계량화와 인간 웰빙에 대한 효과의 추정.
o 생태계 서비스 가치평가(ESV)에 의한 생태계 서비스 변화의 가치 추정

이러한 단계들은 생태계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의 프레임워크를 만들기 위해 고안되었다(상자 3, 영국 사례 연구로 여기선 생략, 옮긴이). 하지만 정책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최초의 추정일지라도 잠재적으로 중요한 영향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불확실성과 증거의 갭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연자원시스템의 가치는 편익 흐름의 가치에서 생산 비용을 뺀 것이다(POST 노트 375). 이들 가치 일부는, 곡물처럼 직접적인 시장가치를 갖고 있는 반면 습지의 물 흐름 통제와 같은 여타 가치는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관련 자연자본 스톡은 다른 위치로 이동될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생태계 서비스는 위치 특수적(location specific)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규제, 지원, 그리고 문화적 생태계 서비스가 그러하다.

생태계 서비스 매핑

생태계 및 그 안의 자연자본스톡의 공간적 배치는, 편익과 생태계 서비스를 낳는 상호작용에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강물 집수(river catchment) 지역 내에 있는 지하수, 지표수 그리고 빗물 간의 연계는 이들 중 어느 하나에 대한 충격도 집수 지역 내의 수문학적(hydrological) 과정, 그리고 이런 과정에 연관된 생태계 서비스, 예컨대 깨끗한 물의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생태계 서비스의 사회적 가치는 그 서비스가 어디서 소비되는지에 공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공간적으로 명확한 생태계 서비스 지표(적절한 스케일의 지표)의 개발은 변화의 영향을 추정하는데 결정적이다.

곧 발간될 “영국 국가 생태계 추정”(UK National Econsystem Assessment, NEA)은 국가 스케일 생태계서비스 공급의 척도(measure)를 제공할 것이다. 생태계 서비스 매핑에 적절한 스케일은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생태계 관리 결정은 국가, 지역(regional) 또는 지방(local) 스케일에서 각각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 스케일 영역은, 예를 들어 백악기 고평원(chalk downland)와 같은 유사한 지질 지역이나 강물 집수 지역과 같은 자연적 지리 범위에 더 많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영역의 크기는 생태학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의미를 갖고 있다. 예컨대 국립 공원 지역이라고 할 때 처럼... 그러나 생태학적 스케일이 일반적으로 의사결정 스케일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추정과 가치평가에 어려움을 야기한다. 최근의 토지 사용에 관한 예측 리포트는 장기에 걸쳐 더욱 “탄력있고”(resilient) “유지가능한(sustainable) 스케일의 지도(landscape, ? 옮긴이)를 만들어낼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각 지점에 대한 생태계 서비스의 완전한 공간적 분류와 계량화, 그리고 매핑은 생태계서비스 편익의 지방, 지역, 그리고 글로벌 소비자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상이한 지역간에 생태계 서비스가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있도록 할 것이고 편익을 얻는 영역이나 이해관계자를 확인하도록 할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지는 문제의 정책과 잠재 충격의 규모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정책틀(policy framework)로의 통합

“글로브 인터내셔널의 자연자본 행동계획”(Globe Internaitonal's Natural Capital Action Plan)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책과 프로젝트 제안이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평가를 포함하는 경제성 평가(economic appraisal)를 거치라고 권유했다. 또한 정부 부처는 그들의 정책이 자연 자본을 얼마나 증가시킬지, 아니면 감소시킬지 또는 다른 형태의 자본으로 변형시킬지(POST note 376)에 관해 비용이 포함된 설명(costed explanation)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라고 권유했다. 자연자원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되는 편익의 잠재 결과를 추정하는 효과적 생태계 접근 정책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o 관련 생태계와 결합되어 있는 생물다양성의 조건과 경향에 대한 명확한 측정
o 생물물리학적 방식(biophysical terms)에 의해 생태계 편익 공급을 결정(양과 질 모두)하고 이를 기초로 경제적 가치평가 또는 측정을 행한다. 이 결정은, 상이한 생태계 유형의 사용에 따라 편익 공급이 얼마나 변화할지에 대한 측정을 포함해야 한다.
o 미래에 관해 상반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 시나리오들은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와 이들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비용을 포함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안적 결정이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이 추정되어야 한다.
o 위험과 불확실성 분석의 통합. 여기에는 인간 행위가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에 관한 지식의 한계도 포함된다.
o 서비스 변화에 적용되는 경제적 가치평가. 이것은 서비스 흐름과 수요의 결정요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o 생태계 편익의 사용에서 소유권과 자격(entitlement)의 역할

“유럽 학계 과학 자문위원회”(European Academies Science Advisory Council, EASAC)는 생태계 서비스 공급을 유지하는 수단 중 하나로 “EU 생태계 서비스 지도”(EU Ecosystem Services Directive)를 권유했다. 이는 유럽의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전략과 목표를 제시한 “EU 서식 지도”(EU Habitats Directive)에서 유추한 것이다. EASAC는 지도가 생태계 서비스 기능의 보전과 유지를 위한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전략은 유럽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생태계 서비스 편익의 공급 수준을 보호할 것이다.

의사결정자들, 예컨대 국회의원들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결정이 가져올 잠재적 결과의 범위를 알고 나서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프로포절의 용량을 판단하고 싶을 것이다. 2060년까지의 생태계 서비스 시나리오는 UK NEA의 핵심 성과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정책수립자나 이해관계자가 다음 일을 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o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장기적 결과를 고려할 때
o 다양한 관리 방식의 선택에 따라 야기되는 미래 불확실성의 영향을 검토할 때
o 갈등 여론과 상이한 세계관을 대변함으로써 이해관계자 참여를 부추기려고 할 때 

이해관계자와 대중의 참여

생태계 접근의 핵심 교리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포함해야 하고 국지적 이해와 더 넓은 공적 이해의 균형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생태계의 관리에 이해관계를 가지거나 그런 관리를 이해하는, 또는 그런 관리에 잠재적 영향력을 가진 광범위한 기관, 조직, 집단 및 개인의 참여를 요구한다. 의사결정과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이슈가 무엇인지, 이해관계자의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그리고 제약 요소를 확인하기 위해 최초의 단계부터 참여는 이뤄져야 한다. 자연자원관리에 대한 이해관계자 참여와 관련된 요령과 문제점(uses and challenges)에 관해서는 상당한 학술 연구가 있다. 데프라(Defra)는 최근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참여와 생태계 접근”에 관한 안내서를 발표했다. 안내서는, 정책 평가와 심의 과정(evaluation process)에 “참여와 숙의 기술”(participatory and deliberative techniques, PDT)을 적용하라고 제안했다. 이는 HM Treaury 'Green Book'에 따른 것이다.

의사결정에 대한 공동체의 영향

생태계에 대한 관리가 치밀할수록 의무, 소유, 책임, 참여, 그리고 지방 지식의 사용은 더 커진다. 오직 지방 수준에서만 총체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총체적 의사결정은 복수의 편익에 대한 고려, 그리고 생태계 서비스 편익 및 환경의 한계와 적절한 이해관계자 참여 수준 간의 상쇄관계를 조합할 수 있다. 공동체가 결정의 귀결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참여 접근이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이고 참여적인 접근은 기존 의사결정과정의 대안이라기 보다 보완적이다. 그런 방법은 의사결정과정에 새로운 투입을 제공하여 토론을 활성화하고 추론 및 배후 가정에 관해 정밀하게 검토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연자원의 관리에 내재한 근본적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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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정태인/새사연 원장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일주일 남은 재·보선은 내년의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일 테니 각 당이 사활을 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들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천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다. 초기의 노무현 탓을 넘어서 이제 모든 문제는 바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할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몇몇 유럽국가는 재정위기를 맞았다. 이웃 일본은 지진에 방사능 위기까지 맞았다. 전 세계가 맞고 있는 초유의 위기를 홀로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는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대통령도 현재의 물가문제에 관해선 불가항력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가 불안의 밑바탕에는 2008년 이후 전 세계가 돈을 푼 결과,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국내 농산물 가격 역시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구제역 바이러스 때문이니 모두 대통령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한번 불가항력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다.

 금리·물가 정책 등 거품막기 급급

그의 ‘성공’ 비결은 “내가 해봐서 아는” 수출과 건설이다. 미국이 지난해 6000억달러 규모의 제2차 양적완화(통화증발)를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향해 직접 통화절상 압력을 넣어도 원화는 꿋꿋하게 고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올라간 가운데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는 2007년 말 대비 여전히 20% 정도(실질로는 17%가량) 낮은 상태이다. 세계의 돈이 아시아 주식과 채권을 향해 몰려들었는데도 그렇다는 것은 한국은행이 달러당 1100원 선에서 무제한 달러를 사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 액수만큼 시중에 원화가 풀린다.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그 돈을 거의 다 거둬들였다(불태화 정책). 국채를 사들인 은행들은 자산이 증가했으므로 대출을 늘릴 여력이 생겼다. 그런데 대기업들에는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흘러넘친다. 결국 가계 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의 휴대전화에 수시로 들어오는 ‘값싼 대출’ 메시지는 이런 거시정책의 결과이다.

홈페이지 대문에 떡 하니 “물가안정-한국은행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라고 내건 한은이 그 물가 상승률이 4%를 넘나드는데도 금리를 사실상 동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 빼고 거의 모든 일을 “내가 해봐서 아는” 대통령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건설이다. 해서 단군 이래 최대의 자연파괴를 조기에 달성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20조원 규모로 강변에 대규모 리조트와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작금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를 막기 위해서도 건설사에 일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도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미분양이 널렸는데 또 공급을 늘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많은 돈을 가계에 빌려줘 수요를 늘리면 된다. 따라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모든 부동산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의 균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려면 한은의 금리가 거품이 터지지 않도록 충분히 낮아야 하는 것이다.

고환율 정책의 핵심은 내수부문에서 세금을 거둬 수출부문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달러매입과 흑자로 넘쳐나는 돈은 다시 부동산 부문에 빌려줘서 고리를 뜯는다. MB노믹스의 귀결은 수출부문과 내수부문의 양극화, 자산거품과 가계부채라는 양대 폭탄이다. 이 정부의 임기와 함께 시작된 ‘세계적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조건이 아니었다면 MB노믹스는 엄청난 투기거품을 일으켰을 것이고 이미 그 폭탄은 터졌을 것이다.

차기 정권서 ‘펑’ 하며 터질 수도

참여정부는 처음 1년 동안 국민의 정부가 떠넘긴 신용카드 위기를 막는 데 급급했다. 내년 대선의 승리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핵폭탄을 인수하는 일이다. 정권이 문제가 아니다. 여야의 지도자들 모두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그리고 차기 정권의 성공을 원한다면 당장 4대강 사업 등 모든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임기 내에 자산거품 문제를 해소하라고 한목소리로 대통령에게 외쳐야 한다. 복지고 뭐고 그 다음 일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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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어느새 잊혀가고 있다. 그래서다. 7월8일 조계사에서 4000여 명의 조계종 스님들이 문수 스님을 추모하고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수행 중인 한 스님이 스스로 몸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려 했음에도 대다수 사람에게 시나브로 잊힌 이유는 분명하다. 공론장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0년 5월31일, 문수 스님이 정치권력을 질타하며 소신공양을 결행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들은 소신공양을 아예 모르쇠 했다. 가령 <조선일보>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소신공양 사실을 보도할 때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하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신공양은 보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소신’ 탓일까.

스님의 소신공양 잊혀가는 이유

기실 문수 스님이 낙동강 방죽에서 소신공양을 하기까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 스님이 수행에 정진해온 정갈한 방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문뭉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스님이 세속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문이었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4대강 삽질’의 문제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을 터다. 어쩌다 있더라도 ‘구색 갖추기’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가 아닐까. 스님이 소신공양으로 세인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결심한 까닭은.

하지만 스님이 구독했던 바로 그 신문들은 정작 스님의 소신공양조차 외면했다. 그 뿐이 아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은 수경 스님이 조계종 승적까지 반납한 사실도 무람없이 비틀어 보도했다. 예컨대 <중앙일보>는 수경 스님의 결단을 다룬 기사를 “환경·NGO 운동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었다/ 초심 돌아가 진솔하게 살 것”이라는 3줄 제목으로 돋보이게 편집했다. 사전 정보가 없는 독자들에겐 마치 수경 스님이 그동안 자신이 적극 참여해온 환경운동을 후회하며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조선-동아-중앙일보 노골적 왜곡

하지만 수경 스님의 진실은 우리가 두루 알다시피 명확하다.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 추모제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강의 숨통을 자르고 4대강 전체를 인공 댐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승적을 반납한 이유도 조계종단이 문수 스님 추모사업과 ‘4대강 죽이기’ 저지에 더 적극 나서기를 압박하려는 의미가 크다. 결국 <중앙일보> 보도는 수경 스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편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모습은 문수 스님의 뜻을 4대강으로만 국한하려는 우리 안에서도 묻어난다. 물론, 당면과제가 4대강 살리기이고 하나부터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운동과 더불어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는 절실한 과제가 있다.

소신공양을 앞 둔 스님은 “4대강 사업 즉각 중지·폐기”만 강조한 게 아니다. “부정부패 척결”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호소했다. 유서 맨 마지막에 쓴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요구는 양극화가 무장 커져가는 이 땅에 4대강 못지않게 절박하고 절실한 민생 과제다.

4대강 살리기와 병행해야 할 민생 과제

그럼에도 왜 대다수 사람이 소신공양의 의미를 4대강으로만 좁히는 걸까? 혹 유서의 진실을 마주하기 불편해서는 아닐까.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문수 스님의 호소를 이명박 정권이 모르쇠 할 때,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옳은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과 유서에 명토박은 간절한 염원을 우리가 잊어간다면, 그것은 진실을 직시하는 불편함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우리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나는 지금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무엇보다 먼저 나부터 고백하련다. 명색이 진보 싱크탱크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 물음 앞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앞에 더없이 불편하다. 아니, 부끄럽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편집자/ 봉은사가 발행하는 월간<판전> 기고문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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