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9정태인/ 새사연 원장

지난 주 연이틀 두 개의 토론회에서 발표를 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즈음해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양쪽 모두 족히 300~400명이 모였고, 질문이 쏟아지는 등 후끈한 분위기였다. 바야흐로 협동조합, 더 큰 범주로 사회적 경제(경제적 이익과 함께 구성원과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도 실현하는 경제)의 시대가 열리는 걸까.

나는 항상 “여기서 협동조합에 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이 접니다”라는 말로 토론을 시작한다.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다(내 생각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이 결정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자활공동체운동, 실업극복국민운동, 생협운동, 사회적기업 등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그동안 수많은 활동가와 이론가의 소중한 경험이 쌓여왔다.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토론회, 심지어 활동가 교육모임에 자주 불려다니는 것은 협동에 관한 최근의 이론으로 사회적 경제의 원리를 설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진화생물학자, 진화심리학자, 행동/실험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 협동하는가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합의점들을 찾았는데 하버드대의 생물학 및 수학과 교수인 노박은 이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피가 많이 섞일수록(혈연선택. 가족 내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직접상호성, 단골은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져 있을수록(간접상호성,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다면 협력자를 골라서 사귈 것이다), 그리고 협동하는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다면(네크워크 상호성과 집단선택, 협력자가 많은 집단의 성과가 더 좋을 것이다) 그 사회 전체에서 협동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조건을 잘 갖춘 사회에서는 이제 협동이 사회규범(social norm)이 되고 협동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집단 정체성(group identity)를 갖게 된다. 협동하는 사회에서는 상호적 행동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협동하는 사람에게는 협동하고 사회규범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스스로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하거나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상호성이다. 상호성이란 사실 황금율(“대접받고 싶은대로 상대를 대접하라”)이나 공자의 “네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와 동일하다.

상대방이 협동할 것이라고 믿는, 신뢰의 사회에서 협동은 애써 노력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이런 사회는 계약이 복잡하지 않고 법적 분쟁도 적을 수밖에 없어서 거래비용이 낮으며 따라서 경제성과도 좋다.

인간이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상호성이 인간 본성에 가깝다는 말이니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는 가장 보편적인 경제 형태라고 봐야 한다. 실로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야말로 예외적인 존재다. 활동가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확신이 이론적으로 증명된다는 데서 환호하는 것일 게다.

특히 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 사회적 경제가 늘어나는 것도 사회적 딜레마(이기적 행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협동뿐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경제가 선풍적 인기를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이제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는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서 사회적 서비스나 장애인 등 사회적 배제자의 고용에서 당장 위력을 발휘하지만,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거버넌스만 갖출 수 있다면 어느 분야에나 적용가능하다.

파업 중인 KBS나 MBC에 사회적 경제의 원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전 국민이 시청료를 내는 KBS는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시청자가 이사회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MBC 역시 시청자 몫의 주식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은 공공재인 동시에 시스템재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의 공공성이 요동을 치면 안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이사회 구성에, 충분히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할 만큼의 시청자 및 노동자 이사를 더해서 협동조합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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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7)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간 협력의 조건 3 : 평판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이다. A가 B를 도와주고, B가 C를 도와주면 D가 A를 도와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평판(reputation) 때문이다. 상대를 도와주면 나의 평판이 좋아져서 훗날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대를 배신하면 이기적 인간이라는 평판을 받게 되어 훗날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실제 이론과 실증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는 사람이 더 많은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직접 상호성은 협력을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제한적이다. 우선 똑같은 두 사람이 반복적으로 만나야 하며, 서로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얻게 되는 혜택이 커야 한다. 하지만 때로 사람들은 낯선 이를 돕기도 하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을 돕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은 반드시 쌍방 대칭적으로 일어나지만은 않는다.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간접 상호성이다. 직접 상호성에 의한 협력이 물물교환이라면, 간접 상호성은 돈이 발명된 후의 교환과 같다. 평판이 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잘,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평판은 결국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소위 말하는 뒷담화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퍼지는 사회일수록 협력이 잘 일어나는 셈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q는 다른 사람의 평판을 알 수 있는 확률이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q > b/c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나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보다 평판이 확산되는 확률이 클 경우, 즉 잘 확산될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 협력의 조건 4 :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

네 번째는 네트워크 상호성(Network Reciprocity)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협력하는 사람과 배반하는 사람이 골고루 섞여 있고, 모든 사람과 가리지 않고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공간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가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라도와 경상도의 분리, 그리고 정치적 지지 정당의 선명한 차이가 그렇다. 내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같은 동네에 살거나 같은 종교를 믿거나 같은 학교를 다녔거나 혹은 같은 정치적 견해를 보유한 사람들일 것이다. 무엇이든 나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협력과 배반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협력하는 사람들은 협력하는 사람과 어울리고 배반하는 사람들은 배반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협력하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협력의 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배반하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배반으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때문에 협력하는 사람 주변으로는 사람이 모이지만, 배반하는 사람 주변에서는 사람이 멀어진다. 유유상종이다.

만약 협력하는 사람과 배반하는 사람이 아주 골고루 섞여 있는 상황에서, 그 둘이 만난다면 협력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이것이 반복되면 협력하는 사람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하면 도태되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서로 이득을 주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배반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 이것이 네트워크 상호성이다. 국지적 상호성이라고도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k를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수라고 하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b/c > k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이 주변사람의 수보다 클 경우, 즉 내가 만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협력은 잘 일어난다. 주변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커지므로 유유상종의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간 협력의 조건 5 : 착한 애들이 뭉치면 세다

다섯 번째는 집단선택(Group Selection)이다. 집단선택이란 어떤 집단이 어떤 특성을 갖는가 혹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집단들의 생존 가능성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그 속성이 전체로 퍼져나가게 될 지 아니면 없어지게 될지가 결정되는 과정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을 중심으로 협력과 배반의 선택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협력자끼리 모여 있는 협력자 집단과 배반자끼리 모여 있는 배반자 집단이 있다. 협력자들은 서로를 돕지만, 배반자들은 돕지 않는다. 협력과 배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득만큼 자손을 남길 수 있으며, 자손들은 부모의 집단과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게임이론으로 살펴본 사회적 딜레마 상황에서 보았듯이, 서로 협력할 때가 서로 배반할 때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협력자 집단이 배반자 집단보다 더 많은 이득을 거두게 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반면 자손 수 증가에서 뒤처지는 배반자 집단은 소멸하게 된다. 만약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는 혼합집단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는 경우 배반자가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 집단은 배반자 집단으로 변하게 되고, 협력자 집단에 의해 밀려난다. 이 경우 두 가지 차원에서 선택이 일어난다. 집단 내에 있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배반자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 차원에서 보자면 협력자 집단이 유리하다. 때문에 집단 내에서는 협력자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해도, 협력자 집단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전체적으로는 협력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집단선택을 다층선택(Multilevel Selection)으로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많이 있는 집단, 집단 내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집단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국가 스파르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쟁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희생전신이 강한 투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스파르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n을 한 집단의 최대 크기, 다시 말해 한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 수라고 하고 m을 집단의 수라고 한다.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b/c > 1+(n/m) 이다. 따라서 한 집단 내의 사람 수가 적을수록, 그리고 집단의 수가 많을수록 협력이 잘 일어난다. 한 집단 내의 사람 수가 적다는 것은 유유상종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뜻으로 협력자끼리 모여 있을 경우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을 경우 협력자가 불리하기 때문에 협력자끼리 모여 있을수록 협력자의 수가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집단의 수가 많다는 것은 협력자 집단이 배반자 집단을 이기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집단의 차원에서는 협력자 집단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혈연선택,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이라는 인간 협력의 조건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다. 를 정리해보자면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질수록, 만나는 주변 사람이 적을수록, 집단의 구성원이 적고 집단의 수가 많을수록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활용하고 반영하여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 규범, 법률, 제도를 만들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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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전세계가 뒤흔들리고 있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에 학자들은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래도 불황(depression)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어감의 침체를 사용해서 빨리 이 수렁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희망도 담았을 것이다. 실제로 2009년에 세계 각국은 동시에 돈을 풀고 재정지출을 확대해, 출구전략의 시점을 가늠할 정도로 문제를 해결해 낸 듯했다.

시장만능 파국 맞아 ‘사회’ 가치 각광

그러나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가로막았고 유럽에서는 역내 불균형 때문에 남유럽을 중심으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미국과 동아시아 간의 글로벌 불균형 역시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또다시 파국을 맞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에 제로성장 언저리에 머무르는 일본형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갈 가능성이 높다. 위기 때는 뻔하게 보였던 미시적 금융제도 개혁이나 거시건전성 규제마저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완전히 파산한 주류경제학의 교수들은 오늘도 대학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똑같은 이론, 예컨대 효율시장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경제의 앞날은 말 그대로 ‘잔뜩 흐림’이다.

당연히 지난 30여년간 이 세계를 지배해 왔던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라는 말이 특별히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국가의 복지가 공격을 받으면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부상했는데, 이제는 시장경제마저 뒤흔들리고 있으니 더욱 각광을 받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이론대로, 기업의 단기 주주 이익 극대화로 사회 전체가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던져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책임 투자’를 새로운 글로벌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인기를 얻고, 행정학에서 신공공행정론이 물러간 자리를 ‘공공가치행정론’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가히 칼 폴라니의 말대로, 시장만능이 불러온 파국에 대응해 ‘사회’를 내세우는 대응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모두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몸부림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전히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가 “짜잔” 하고 나타날 수는 없는 상황이다(예컨대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한다면 지금 시점에는 이미 새로운 경제학이 나타났어야 하고 중국은 미국을 한참 제쳤어야 한다). 하지만 10년 내지 20년의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사회’로부터 분리됐던 경제가 다시 사회 속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즉 경제가 사회적 규제를 받는 쪽으로 나아갈 것은 틀림없다.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에 기초해(Homo Reciprocan)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경제부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성에 기초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시장경제와는 다른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에서 가장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협동조합의 7원칙은, 진화생물학과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인간 협동의 조건을 고스란히 반영한 인류의 오랜 지혜이다.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함께 협동조합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미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구성하는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신뢰와 협동으로, 다소 느리겠지만 아주 단단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에 뿌리박는다면 우리의 시장경제에도 인간과 사회의 따뜻함이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나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지배하여 가격의 움직임마저 부드럽게 규율하는 사회이다.

이기심 대신 협동으로 따뜻한 시장을

지금 국민들의 염원인 복지국가의 형성에도 사회적 경제는 기여한다. 복지의 마지막 전달경로에 공동체의 사회적 경제가 개입할 때 효율과 평등이 동시에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건강보험체계에서 의료생협이 1차 진료기관을 담당하게 되면 돈을 절약하면서도 훨씬 더 따뜻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에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경제 실험을 하고 있다. 복지와 사회적 경제, 이 둘이 손발을 맞출 수 있다면 한국은 어느덧 세계가 뒤따르고 싶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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