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8김병권/새사연 원장

새 정부 임기 초반인데도 도대체 ‘비전’이 안 보인다. 취임 두 달이 가깝도록 장관 인선이 제대로 안 된 탓도 있을 것이다. 당 강령을 개정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던 경제민주화가 오리무중에 빠진 원인도 보태졌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제시된 ‘창조경제’의 실체가 더 불투명하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비전 실종’을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으로 가는 길이 미로가 돼 버린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IT와 과학기술을 지렛대로 한 ‘기술혁신’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자연 자원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 더 긴요하다는 사실은 수십 년 동안 반복됐던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난제를 기술혁신으로만 풀 수는 없다. 특히 지금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수요가 제약돼 있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창조경제’라고 명명하면서 비전을 제시했지만 국민에게 공감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혁신 이외에 지금까지 당연시 됐던 제도와 규칙을 바꾸려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당연시 됐던 관행들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였다. 발전이 지체되면 시장에 맡겨 경쟁을 촉진하자고 한다. 부실이 생기면 시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자고 한다. 고용이 문제가 되면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하자고 했다. 그것을 ‘구조개혁’이라고 하고 ‘경영혁신’이라고 했으며 선진화라고 불렀다.


그런데 십수 년 동안 의심 없이 추진됐던 일련의 ‘시장개혁’의 최종 도달점이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고 지금의 장기침체다. 이제는 시장에 모든 문제를 맡기는 개혁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의 실패를 통제하는 방향의 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시장이 초래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부채를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을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바로 시장을 향한 맹목적 개혁에서 벗어나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개혁이다.

 

과거에 이 과정은 오직 중앙권력을 지렛대로 해 국가적 수준의 사회구조와 제도를 전면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방식으로만 추진됐다. 진보세력이 사회변혁을 선호했던 것도 중앙권력에 의한 제도적 변화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지향이나 생활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은,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루기 어렵게 되었다.

 

21세기는 사람들의 일상 곁에서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이를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것이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과 결합되어야 한다. “생활 저변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고 사회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며 과거와 다른 해법으로 풀어내려는 실험과 시도”를 바로 ‘사회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기술 창안으로 이끄는 기술혁신이나, 경영과 관리 방법을 바꿔 기업의 능률과 생산성을 비약시켜내는 기업혁신과 비견된다. 다만 동기와 목표 추진 주체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영국의 유명한 사회혁신가 제프 멀건(Jeoff Mulgan)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동기로 유발되고, 1차 목표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런 조직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혁신적인 행동과 서비스”를 사회혁신으로 정의하고 있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실험됐던 참여예산제, 서민에 대한 소액 금융의 모델을 성공시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그라민은행 등이 대표적인 사회혁신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공정무역운동이나 오픈소스 운동 등도 사회혁신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혁신학교’ 확대 정책이 단연 사회혁신의 최고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공유 도시’ 개념도 사회혁신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모든 혁신이 그런 것처럼 혁신 양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혁신은 특히 ‘시장의 경쟁’을 대신해 ‘공동체’에 밀착되고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혁신이다. 특히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혁신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정점을 향해 달리던 지난해 10월에 박원순 시장이 던졌던 화두다. 기술혁신이나 경영혁신 등이 아니라 사회혁신을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혁신정책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하며 다산선생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민생을 돌보며 대안적 사회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 지금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만이 미래의 전망을 열어줄 시점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떤 혁신인가 하는 점이다. 기술혁신인가 사회혁신인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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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01 새사연

승자독식의 시장원리를 넘어 '신뢰와 협동'의 가치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승자 독식의 시장원리를 넘어서

2. 현재 위기 극복의 필수 가치 “신뢰와 협동”

3. 정의와 연대

4. 창조와 혁신

5.생태와 평화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승자독식의 시장원리를 넘어서

시장경제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한다. 시장경제에서의 인간은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로 불린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둔다. 뛰어난 정보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때문에 각자의 이기심을 따라 경쟁하면 사회 전체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시장경제가 사회를 운영하는 유일한 원리가 되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상정한 인간의 정의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해서 모든 사회원리를 조직하려 한 시장 지상주의는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 이기심을 근간으로 한 적자생존의 경쟁 대신 신뢰와 협동을 새로운 사회구성의 원리로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이와 동시에 정의와 연대, 창조와 혁신, 생태와 평화를 사회구성원이 공유해야 할 공통 가치이자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원리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 최후통첩게임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으로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두 사람이 있다. 편의를 위해 A와 B로 칭하자. 이제 A에게 10000원을 주고, B와 나눠가지도록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주고 싶은 만큼 금액을 제시할 수 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은 각각의 금액을 나눠가지고, B가 A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못한다.

만약 시장경제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 A는 최소한의 금액인 1원을 제시할 것이고, B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B의 입장에서는 제안을 거부하여 1원도 받지 못하는 경우보다 1원의 제안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A는 1원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들이 동일한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대체적인 결과를 종합해보면 A는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한다. 물론 B는 이 제안을 수용한다. 그리고 A가 2000원 이하의 금액을 제시할 경우 B는 이를 거절하고 한 푼도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시장경제의 예측에서는 한참 벗어난 결과이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인간의 두 가지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남을 배려한다.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내 돈이 아닌 10000원이 생겼을 때, 옆의 사람에게 얼마를 주는 것이 좋을지 고려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전체 금액의 40% 이상을 나눠주고 있다. 둘째, 인간은 불공평한 행위에 대해서 응징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너무 낮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상대방을 응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남을 생각하고, 불공평한 행위를 응징하는 인간의 속성을 상호성이라고 한다. 상호성의 핵심은 남이 해주는 대로 나도 행동한다는 것이다. 남이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남이 나한테 잘못하면 나도 잘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상호적 인간, 호모 리시프로칸(Homo-reciprocan)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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