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5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은 기후변화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걸린,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집단행동의 논리’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나 홀로 아무리 애써봐도 아무 소용 없고 우리나라만 이산화탄소를 줄여봐야 중국이 지금처럼 석탄과 석유를 땐다면 비극을 막을 수 없다. 하여 최근 작고한 오스트롬은 자신의 지론인 다중심접근(polycentric approach)이 기후변화 문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개인, 지역공동체, 국가, 국제적 협력이라는 각 차원의 중심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개혁은 시스템 전체를 대상으로 대규모로 일어나야 하며, 1·2차 네트워크혁신(철도와 IT 네트워크)에 버금가는 에너지 네트워크의 혁신이 필요하니 개혁의 심도 역시 깊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1차 에너지원의 이산화탄소 함유량에 따라 탄소세를 부과한다. 세율을 매기는 원칙은 우선 배기구혁신(부가혁신)이 아니라 엔진혁신(돌파혁신)이 일어날 정도로 높아야 하고, 동시에 제본스역설(기술혁신에 의해 가격이 낮아져서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녹색역설’(green paradox·미래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여 현재의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점진적 증가가 아니라 단번에 인상해야 한다.

정밀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평균 석유 1ℓ당 70∼80원의 세금만 추가해도 8조원 정도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탄소세 외에도 교통혼잡세, 매립세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든 요인에 매기는 세금을 생태세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핵과 화석연료에너지 공급을 줄인다. 현재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는 폐쇄하고 추가 원전 건설은 중지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의 확대에 비례해서 핵발전의 비중도 줄이는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핵에너지가 청정에너지로 둔갑한 것은 지난 호에 얘기한 것처럼 미래의 위험을 가볍게 여긴 결과로, 다시 말해서 현재의 비용을 미래세대에게 넘긴 결과일 뿐이다.
 
이런 변화는 중앙집중식 에너지체제에서 분산형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발전차액지원제(FIT·재생가능에너지 생산비용이 현재의 전기요금을 상회할 경우 그 차액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와 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결합하여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분산된 에너지원을 스마트그리드(똘똘한 전력망)로 연결해야 한다. 스마트그리드는 네트워크이므로 공공투자가 집중되어야 하며, 각 기업은 네트워크와의 접속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현재 대기업 중심의 혁신 보조금을 중소기업으로 돌린다. 앞으로 예상되는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간투자의 확대가 필수적인데, 이미 충분히 현금을 지니고 있는 대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이런 투자가 상쇄되는 결과를 낳는다. 탄소세 등에 의한 비용 상승과 혁신에 의한 수요 증가는 그 자체로 충분한 투자유인이 된다. 녹색혁신은 그 자체로 불황타개책이다.
 
넷째, 중국이 대대적인 ‘에너지혁신’을 내건 것도 한국이 더 이상 녹색혁신을 미룰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그리고 아세안)에 에너지/환경 협력을 제안해야 한다. 탄소배출 목표와 방법에 관한 합의, 사막화와 황사와 같은 현안 해결, 스마트그리드 표준에 관한 협력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정부와 개인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한편 탄소함유량이 낮은 제품(국가는 모든 상품에 탄소함유량을 표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을 선택함으로써 기업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지역공동체는 예컨대 태양광협동조합에 의해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다양한 에너지원을 개발할 수 있다.
 
생태문제는 거대한 사회적 딜레마이고 착한 경제학은 신뢰와 협동을 그 해법으로 내놓았다. 적절한 정책은 이런 협동을 촉진할 것이다. 대처의 용어를 원용하자면 ‘다른 길은 없다’. 이번 대선은 생태문제를 신뢰와 협동으로 풀 지도자가 누구인지 선택하는 일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10.10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예술가들이 부럽다. 그들은 미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문학은 문학대로, 미술은 미술대로, 또 음악은 음악대로 각각 표현해낸다. 그들은 타고난 예언자다.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학자들은 미래를 과거와 현재로부터 추론해야 한다. 불행히도 이 또한 쉽지 않은데,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면 과거와 전혀 다른 이론체계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팍팍한 경제학을 한다 하더라도 대가들은 상당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들처럼 미세한 떨림까지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의 큰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새로운 이론으로 설명하고 답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그렇고 케인스가 그렇다.
 
느낌까지 갈 것도 없는 뻔한 미래에 대해서도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평범한 학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생태문제가 그렇고, 또한 교육이 그렇다. 되풀이하고 또 되뇌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대한민국’ 전체를 잡아먹을 것이다. 생태문제 역시 이젠 발등의 불이며, 한 나라를 넘어 전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왜 현재의 대선에서 현재의 삶을 위협하고 미래의 삶을 압살할 것이 틀림없는 이 두 문제는 쟁점조차 되지 않는 것일까? 박근혜 후보는 물론이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서도 생태와 교육은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
 
내 여태까지의 공부로 볼 때 현재의 경제학 수준으론 생태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 애로와 다스굽타와 같은 당대의 최고 주류경제학자들의 최근 논문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태문제의 핵심 개념인 ‘지속가능성’을 브룬트란트 리포트(1987)에 따라 “미래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한다. 이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미래 소비의 현재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년 후에도 우리 아이들이 지금 우리처럼 소비할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제 경제학자들에게 생태문제는 미래 세대의 행복의 가치를 얼마나 할인하느냐의 문제와 자연자원과 물적자원의 대체 가능성, 즉 기술적 발전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느냐의 질문으로 좁혀진다. 예컨대 극단적으로 하루살이에게 미래 할인율은 1이 되어 생태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기술의 무한한 발전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자동적으로 에너지 절약 기술을 출현시킬 것이기에 생태문제란 기우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결국 합리적 미래 할인율과 합리적 대체 가능성의 추정이라는 끝없는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무의미하다는 얘긴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도 믿음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만일 민주주의를 다수결로 단순화한다면 생태문제에 관한 투표 결과는 번번이 실망스러울 것이다. 예컨대 할인율을 낮게 잡는다면, 그리고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 100년 뒤의 아이가 우리와 똑같이 에너지를 쓰게 하려면 우린 당장 우리의 에너지 소비를 제로로 줄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래의 아이들은 물론 이렇게 현재의 소비를 대폭 줄이는 데 투표할 것이다. 반면 보통의 어른들은 경제학자들의 의견 대립을 이유로 결단을 유보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미래를 살아야 할 현재의 아이들은 물론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얼치기 경제학자의 결론은 생태정치가 시민들의 예술가적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의 대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으며 앞으로 닥칠 에너지 위기는 70년대의 오일쇼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라는 것을 절감하도록 해야 한다. 핵발전 문제는 아주 좋은 소재다. 그 위협을 실감한 경험이 그리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중지시키려면 에너지 소비를 3분의 1 가량 줄여야 한다는 결론도 바로 나온다.

소비절약에 합의하지 않는 한 에너지 절약 기술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제본스 패러독스). 지금 내 책상 옆에 쌓여 있는 논문 더미가 바로 그 증거다. 핵발전의 중지와 에너지 소비를 3분의 1로 줄이기, 그리고 이를 위한 생태세(echo tax)의 부과는 우리의 예술적 감성에 기댄 최소한의 대선 공약일 것이다. 누가 이런 공약을 제시할 것인가? 이번 대선의 내 선택 기준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5 / 18 새사연

이제는 에너지 분권화 정책이 필요하다.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목 차]

1.에너지 안보 패러다임을 넘어.

2. 탄소감축, 다양화, 탈 집중화를 위해

3. 권력 불평등을 해소하는 에너지 정책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 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리셋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 원래 원고들을 가지고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을 넘어

2011년은 에너지 위기가 어떻게 도래할 수 있을지를 마치 영화 예고편처럼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2월에는 리비아 사태, 3월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그리고 9월 한국에서는 대규모 정전이 있었다. 이 사건들은 각각 지정학적 위험, 핵발전의 위험 그리고 허약한 전력체제의 위험을 상징한다. 과학사회학과 재난관리이론 등에서 사용하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s)라는 용어로 설명하기에도 딱 맞다. 정상사고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인 기술체계가 사고의 위험을 줄일 것이라는 일반의 믿음과는 달리 오히려 필연적으로 사고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뜻한다. 시작은 조그만 사건이었지만, 통합되고 집중된 기술체계를 타고 가속화되면서 거대한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 위기의 발생가능성이 상존할 뿐만 아니라 발생가능한 피해가 재난의 수준이라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라 부를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정책은 값싼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핵심 목표로 하는 에너지안보의 패러다임 속에서 추진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전력 민영화라는 패러다임이 더해졌다. 에너지안보와 전력 민영화 패러다임은 에너지 자원에 대한 금융시장, 특히 파생상품시장의 개입이 높아지고 있는 국제 환경과도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자원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 하고 있다. 유가의 상승은 지나치게 팽창한 원유 금융시장의 불안과 석유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안보의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이후 국가 에너지 정책의 토대는 바로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에 기초해 왔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자원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해외 자원의 안정적 확보란 1970년대 발생했던 석유파동과 같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두는 것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산업 생산 및 소비를 극대화시키는 것과 동일시되고 환경과 자원에 대한 가치는 배제되거나 부차화된다. 이 과정에서 중앙집중화된 대규모 전력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대규모 전력 체제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체제와 잘 조응할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급격한 변동에 대처하는 잉여 전력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십 수 년 동안에는 자주 개발률제고 정책과 원자력발전소건설 정책이 한국의 중요 에너지 정책으로 부상하였다. 혹자는 이 정책들이 수입 원유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경제 성장주의, 에너지 공급주의에 종속되어 있다. 또한 해외 자원 확보와 원자력 발전, 신 에너지 기술개발 등 최근 정부가 핵심 전략으로 채택한 사업들은 모두 대규모 자본이 주도하는 대형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에 종속된 에너지 정책을 지속하는 한 인류와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수 십 년간 이룩한 경제적, 기술적 성취는 동시에 다수의 새로운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특히 회복할 수 없는 환경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마저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기후 온난화와 탄소 배출 감소로 상징되는 환경적 가치가 주변화되거나 파괴될 뿐만 아니라 에너지 빈곤, 에너지 수익과 분배의 불평등 같은 사회경제적 소외가 심화되고 있다.

 

2. 탄소 감축, 다양화, 탈집중화를 위해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에너지 정책의 과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속가능한 환경 및 자연자본 유지를 위한 탄소 감축이 요구된다. 둘째, 1차 에너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 지속불가능한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부터 탈피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중앙집중식 전력 중심 체제에서 탈피한 탈집중화된 에너지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중앙집중식 전력 중심 체제란 에너지 생산과 분배에 있어 전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발전과 소비가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각각 집중되는 구조를 말한다. 이 체제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에너지 손실도 매우 높다. 또한 고도로 집중화된 시스템은 의사 결정의 집중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흔히 위계 구조의 강화로 이어진다.

 

...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