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8정태인/새사연 원장

 

2005년 2월 새벽 나는 대통령을 만났다. 비서관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일주일간 무단(?) 휴가를 낸 다음날이었다. ‘동북아 비서관’을 그만두고 ‘국민경제 비서관’으로 옮기라는 지시에 약간의 항명을 한 뒤, 결국 항복한 날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세 가지를 지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한·일 FTA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정 비서관이 답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2004년 겨울, 5년 넘게 진행돼온 한·일 FTA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일본이 김(해태) 수입에 소극적이라는 게 직접적 이유였다. 또다시 밝히는 진실이지만 이때만 해도 대통령의 머릿속에 한·미 FTA는 없었다. 김현종 본부장은 5년이 지나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자서전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놀라운 주장을 했다. 한·일 FTA를 맺으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될 것이 뻔해서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한·미 FTA를 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한·일 FTA를 하면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에 나라 전체가 끌려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의견을 말했다. “모든 FTA는 안으로 산업 구조조정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산업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지, 또 어떻게 가는 게 좋을지 굵은 그림을 그린 뒤 거기에 맞춰서 어느 나라와 FTA를 할지, 어떤 정도의 수준으로 맺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한·미 FTA는 이 주장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현종은 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3월, 한·미 FTA 협상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다시 청와대에 갔을 때 대통령 역시 “제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니 금융 등 서비스 산업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재경부와 삼성의 ‘샌드위치론’을 거론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어마어마한 결정은 과연 누가 해야 하는 것일까? 한·미, 한·EU, 한·중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가 판단해야 하는 걸까? 한·미 FTA 때는 우리 경제나 사회에 대해 일반인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김현종이 단독으로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김현종이 정통 관료가 아니라 그렇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미 FTA 토론회, 청문회에서 수없이 만난 정통 외교부 관료인 김종훈 본부장도 김현종 못지않게 무지하고 미국 시스템을 맹신했다. 내 경험으로 보면 외교부는 대통령과 미국, 이 둘의 뜻대로 움직이는 부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외교부의 비밀주의는 매우 유명하다. 도대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책을 왜 무지한 관료가 비밀로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외교부가 학자들을 동원한 모양이다. 이 언론, 저 언론에서 외교부가 통상교섭본부를 계속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제조업 위주의 사고는 낡았다든가, 현대의 FTA는 국제정치를 고려해야 하므로 외교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에 관련되지 않은 부처는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다. 예컨대 최대 쟁점인 ‘투자자 국가 제소권’은 한 나라의 헌법 자체를 위협하고 의약품 분야는 건강보험제도를 뒤흔든다. 외교를 다뤄야 하므로 외교부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G2 체제에서 우리가 어떤 FTA를 맺어야 하는지, 동아시아 공동체처럼 완전히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하는지, 외교부가 그럴듯한 얘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할 주체는 국민이요, 그 방식은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만 명백하다. 모든 부처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의 위원회여야 할 테고 아예 감사원처럼 독립적인 기구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국회의 철저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G2 체제하에서의 외교, 그리고 우리 경제의 미래 모습에 대한 토론과 합의이다. 이런 사안이야말로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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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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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6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한미FTA 발효, 관료들의 자기 검열이 시작되다.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가 3월 15일 0시를 기해 발효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공언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 야당이 천명하고 있는 집권 후 전면 재협상이 남아 있어 아직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벌써 일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에 우정사업본부가 보험 분야의 ‘보편적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려던 시도를 중단한 사건은 관료들의 ‘자기 검열’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관료들의 자기 검열이야말로 한미FTA가 노리는 가장 중요한 효과 중의 하나이다.

해당 사건은 우체국보험의 가입한도 4,000만원을 50% 인상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현행 가입한도는 1997년부터 16년째 묶여 있고 민간금융기관의 지급보증 한도 5,000만원보다 낮다. 우정사업본부는 오랜 숙원의 해소를 위해 법률 개정안을 지난 해 11월에 국회에 올리려고 한 바 있었는데, 12월에는 한미FTA 비준 동안의 국회 통과 이후 1월 초에 돌연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반발한 사실이 알려지자 주관 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자체적인 판단이었을 뿐 외부 반발과는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식경제부의 발표는 ‘자기 검열’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므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법률개정안은 한미FTA 협정에 전혀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비준 동의안이 통과될 때, 우체국보험에 관한 법률안도 동시에 날치기 통과된 바 있다. 개정 법률안은 우체국보험의 신규 상품 출시를 금지하지만 한도액을 올리는 것은 금지하지 않는다.

우체국금융의 공공성, '보편적 서비스'

우체국보험은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질병과 재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제공하는 ‘보편적 금융서비스’의 하나로 인정된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민영보험과는 달리 ‘무진단보험’이며 저렴한 가격에 제공된다. 1929년부터 시작된 우체국보험은 은행이 없는 농촌 벽지에까지 우체국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보험의 보편화에 기여해 왔다.

우정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마지막 남아 있는 ‘네트워크 공공재’이다. 정부가 운영해 왔던 철도와 자원, 도로, 통신 등 거의 모든 네트워크 공공재는 이미 민영화되었다. 기업에 팔리거나 공사 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국민들이 자기 삶을 향상시키는 기회 자체를 얻는데 필요한 기본 공공재는 무상 또는 저가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는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인 네트워크 산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빈은 이러한 원칙을 ‘특수 평등주의’라 명명한 바 있다.

우체국금융의 새로운 임무, '금융소외' 해소

저신용자가 700만을 넘어서고 저소득자들이 긴급자금 대출을 위해 고이율의 대부업체로 내몰리는 현 시점에서 우체국금융은 ‘금융소외 해소, 금융통합’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적자산이다. 그 힘은 전국적 네트워크, 국가 공인의 신뢰성 그리고 금융업무에 대한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다. 우체국보험의 한도액을 높이지 못한 것이 무에 그리 큰 일일까 싶지만, 한미FTA는 새로운 보편적서비스 확대의 과제를 폐기시키고 있음을 눈치챌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만들어 놓은 ‘금융의 사회적 통합’, 즉 금융부문의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중차대한 과제이다.

이 글은 여성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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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와 한미 FTA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계속되는 의료민영화
2. 의료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한미 FTA
3. 의료민영화 극복 없이 무상의료는 불가능하다
4. 진정한 무상의료, 민영화 반대에서 출발한다

[본 문]

보건의료분야는 많은 개혁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무상의료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반면, 한미FTA를 비롯한 의료민영화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권 실현을 위해서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현 의료시스템을 극복하여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 4.11총선에서 부각되고 있는 보건의료분야의 핵심 쟁점을 ① 민영화 및 한미 FTA 극복 ②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대안 이라는 두 주제로 나누어서 다루고자 한다. 

1. 계속되는 의료민영화

2005년 노무현정부에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이라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작된 의료민영화는 공공사회서비스 영역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하게 시도 되었다. 의료산업화란 의료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를 시장에 맡기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신의료기술개발, 효과적인 신약개발, 고용창출, 의료의 질 개선 등이 의료산업화의 본질이라면 한국사회에서는 자본이 의료기관에 투자하고 수익을 강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는 현재도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고령화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어 성장잠재력은 크다.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는 자본에게 의료서비스 시장은 매우 매력적인 블루오션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삼성을 비롯한 자본쪽에서 정치권에게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지역개발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의료민영화를 핵심정책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처음 의료민영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치권은 중심을 잡지 못했다. 보건의료의 근본 목표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형평성과 효율성에 기초한 질 개선 등의 과제는 의료서비스산업의 공공성과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만 달성 가능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산업의 민영화가 진행되어도 보건의료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산업선진화로 인식되도록 한 의료자본과 경제관료들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성공한 것으로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서 아젠다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민주정부에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게 되었던 배경이며 이러한 편협한 인식은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한국사회 서비스영역의 민영화가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면서 의료산업선진화라는 아젠다는 빛이 바래고 있다. 의료민영화는 국민들의 지속적 반대로 저지되어왔으며 무상의료로 표현되는 의료공공성이 부각되고 있다. 의료민영화가 고용창출이나 지역개발과 같은 성과보다는 의료비상승, 의료불평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경제성장과 의료서비스 공공성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2. 의료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한미 FTA

2011년 말에 통과된 한미 FTA는 의료부분에서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강도의 개방조건을 포함하고 있다. 한미 FTA를 이행할 법안과 관련 제도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실제 작동할 경우 무상의료 등의 의료개혁은 실현 불가능하다.

먼저 의약품 영역을 일반 상품이 아닌 독립적 챕터로 특화시킨 유일한 FTA로 의료자본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가격과 급여에 관한 사항 등 핵심 정책결정 기능을 기존 위원회가 아닌 독립적 결정기구에서 다룰 것을 명시한 점이다. 미국측에서는 여기에 의료행위, 질병군, 신의료기술 등마저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건강과 국민의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들은 공정한 절차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정부가 참여할 수 없는 민간기구를 통해 진행하는 것은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미칠 것이며 그 자체가 심각한 의료 민영화이다.

허가-특허 연계조항은 특허소송 중인 의약품의 국내 시판허가를 가로막아 국내 의약품 가격을 크게 폭등시킬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세계 최초로 지적재산권 분야에 의료기기 분야를 포함시켜 의료기기 가격이 매우 비싸질 전망이다.

한미 FTA가 본격화되면 보건의료는 정부, 공공의 지분을 배제하고 시장원리로 작동하게 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약가 및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가격 적정화, 의료불평등 해소 같은 핵심 정책을 추진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약가인하방안이다. 약제비를 적정하게 조절하려는 정부 정책이 한미 FTA에 전면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ISD등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크다. 벌써 미국측에서는 발효되자마자 독립적 검토 위원회를 빨리 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보건의료는 미래유보 영역에 포함되어 있고 공공보건 영역은 간접수용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한미 FTA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국 6개에 달하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영리병원은 예외조항으로 되어있어 이 지역 영리병원은 래칫(되돌림 방지)조항의 대상이 된다. 제주도 등의 영리병원을 추진하면서 시범적으로 추진해보고 문제가 발생하면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던 기존의 약속에 위배된다. 또한 간접수용과 최소기준대우 조항에서 기존 보험회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의료보험과 산재보험은 적용대상에 포함됨으로써 향후 ISD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건강보험이 전체적으로 당장 투자자중재절차(ISD)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의약품 및 의료기기 가격 폭등,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영리병원 활성화, 민간보험회사의 의료관련 보험상품 활성화는 현 협약에서 합의된 내용만으로도 추진된다. 이 자체로 의료시스템에 미칠 영향은 막대하며 이후로는 건강보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미FTA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애매하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의료는 전혀 문제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적극적 반대를 하는 듯 했으나 결국 전면 재검토라는 입장으로 돌아섰으며 411 총선에서 이슈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315 발효된 상황에서 구체적 대응방안이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시급하게 예상가능한 파급력을 분석하고 실질적 대응책을 내 놓아야 한다. 현재도 공단이나 심평원 등은 건정심등 각 단체가 망라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가격 및 제도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를 배제하고 독립적 검토기구를 따로 만드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며 의약품 가격 결정 및 보험등재 과정에서의 합리적 절차를 마련해서 법제화 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의료공공성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이다. 한미FTA는 구체화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리며 그 전까지 최대한 공공영역을 확대하고 보장성을 강화해놓아야 한다.

3. 의료민영화 극복없이 무상의료는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던 의료민영화는 삼성의 의료산업 진출에 발맞춰 중앙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여론의 집중 지지속에 계속 추진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도입과 건강관리서비스 등이다. 제주도와 송도의 영리병원은 삼성과 외구자본의 투자유치로 한 단계 진전되었고 대형병원의 장악력은 더욱 높아졌다 법적 절차로는 의료법, 경제자유구역의 의료기관 설립 운영에 관한 특별법,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며 건강관리서비스 법안 역시 제출되어있다. U-Health제도와 더불어 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건강관리서비스는 예방 및 건강증진-치료-재활 및 요양서비스로 이어지는 보건의료서비스 중 미발달되어있는 예방 및 건강증진 영역을 민간에 맡겨 상업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문제는 민주당마저도 일부 지역의 영리병원도입과 건강관리서비스 법안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경제개발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면서 효과는 의심되고 오히려 지역 의료시스템을 악화시킬 것이 우려되는 의료민영화에 미온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보장성 강화 등 별다른 갈등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 공약을 내놓고 있으나 자본과 의료공급자의 이해에 반하는 민영화반대, 의료공급체계 개혁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4. 진정한 무상의료, 민영화 반대가 답이다.

작년이후 활발해지고 있는 복지논의는 선거의 핵심이 되고 있으며 무상급식과 더불어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정책이 무상의료이다. 국민들이 복지재정을 늘리기를 바라는 일순위는 교육과 의료분야이며 이러한 열망은 민주통합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무상의료 운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와 야권연대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획기적 사건의 배경에는 무상급식논란이 있었듯이 12년 총, 대선 역시 복지정책에 대한 입장차이가 쟁점사안이 될 것임은 명확하다. 하지만 선거철에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선심성 공약에 묻혀 자본 및 사적 영역과의 명확한 선긋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통합당에는 의료민영화를 찬성하거나 추진했던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공약에서도 민영화반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한미FTA는 재검토하자고 하는 수준이며 체결이후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상의료 실현은 공급영역의 공공성, 자본 및 의료공급자에 대한 합리적 규제방안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적극적 반대 입장, 제출된 법안의 폐지, 한미FTA 진행상황에 대한 대응 및 빠른 시일 내 공공영역의 확장 등에 대한 정치권의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 또한 이상의 과제를 정치권이 받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국민들의 요구가 보다 명확해지는 것이다. 선거가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한국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개혁이 논의되는 자리가 되어야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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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4 정태인/새사연 원장 

"민주 새누리 복지공약, 알고 보니 민노당 것 베꼈네" (조선일보, 2012.2.13)

조선일보가 비아냥인지 우국의 한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 만큼 각 당의 다를 바 없는 복지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사실 각 당의 정책이 같은 방향이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불과 4년 전, 17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약 역시 똑같았다. ‘특목고 유치’, ‘뉴타운 유치’를 똑같이 써 넣은, 색깔만 다른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오죽했으면 내가 당시에 “저 빌어먹을 공약”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겠는가.

하지만 상전이 벽해가 된다고 이번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나만은, 내 아이만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유권자들은 어느 새 우리 아이가 혹여 ‘루저’가 된다 하더라도 인간답게 살만한 복지사회를 원하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제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려 겉으론 복지를 내세우면서 실제 속마음에 들어있는 정책기조는 복지와 양립할 수 없는 경우만 잡아내면 된다. 

예컨대 “(여당 때는) 국익을 위한 FTA를 추진한다고 해 놓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그리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그렇다. 한미 FTA와 복지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새누리당이 발표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SSM의 지방 중소도시 신규 진출 5년간 금지’ 정책은, 이들 기업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우 한미 FTA 제12장 4조에 걸릴 소지가 다분하다. 내국민 대우 위반만 아니면 된다는 이주영 정책위 의장이나 김종인 비대위원의 말은 그저 무지를 드러낸 것뿐이다. 새누리당이 지금 영입하려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는 한EU FTA 위반이라고 이미 유통법?상생법 통과 때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역시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미 FTA는 이처럼 사실상 초헌법(캐나다 정치학자 클락슨의 표현)의 위치에서 국가의 정책을 제한함으로써 각 당의 복지공약을 무산시킬 수 있다. 캐나다가 1994년 미국과 나프타를 맺은 후, 지니계수로 나타낸 소득불평등 정도가 우리보다도 나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실업수당 등 복지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꾼 결과이다.

복지와 상극인 정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거시경제정책이다. 복지국가의 모범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도 1990년 초에 외환위기를 당했고 이들 국가는 당시 “스웨덴 병”, “북유럽 모델의 사망” 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위기는 ‘공짜 점심’과 같은 미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80년대 내내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정책, 뒤이은 자본시장 개방, 금리자유화와 같은 거시경제정책 때문이었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자산 버블이 일어났고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버블이 꺼지면서 외환위기까지 당한 것이다.

즉 복지를 원한다면 주식이나 부동산 버블을 키워서는 안된다. 따라서 자본의 유입을 제한하는 토빈세나 외환가변유치제 도입, 자산의 버블을 억제하는 주식 양도차익세 부과, 종부세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만일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정책을 고집하거나 자산 버블을 막기 위한 세제나 제도에 반대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 당의 복지공약은 가짜이다. 5년 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줄푸세” 정책기조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한미 FTA는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됐고 당시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이 설득 해왔”으므로 “정권이 바뀌면 없던 일로 한다는 데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정책을 바꾼 이유를 정확히 말해야 하며 그래야 국민들도 납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맞춤형 복지’와 “줄푸세”가 양립할 수 있는지 밝히고 만일 “줄푸세”를 없던 일로 하겠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박대표는 한미 FTA와 복지가 양립가능하다는 것도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이 글은 PD저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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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주에 나는 꽤 많은 정치인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논문 들여다보는 게 일인 사람에겐 흔치 않은 일인데, 바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양자간 협정인 FTA는 말 그대로 아주 다양하다. 참여정부 이래 우리가 취한 전략은 “거대 선진경제권과의 동시다발적 FTA”이다. 고강도의 충격을 이리 저리 줘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약한 부분도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며 혹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 FTA와 한·EU FTA는 기실 농업과 중소제조업을 버리고, 수출대기업과 서비스산업으로 경제를 꾸리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한국의 삼성 등 재벌,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한 마음으로 네트워크 서비스산업, 그리고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 산업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노리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를 개방하고 민영화하겠다는 미국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중 FTA는 사뭇 다르다. 중국은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의 협상을 기피할 것이 확실하다. 최근 중국·뉴질랜드 FTA 이래 이런 신이슈를 포함한 것들이 있지만 한국에 이들 분야를 강하게 요구해서 제조업의 개방 수준을 높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상품무역 분야의 이익도 미국과 EU에 비해서 훨씬 클 것이다. 2010년 대중국 수출은 1168억 달러였고(금년에는 전체 수출의 4분의 1에 이를 것이다) 흑자는 452억 달러로 전체 흑자의 80%에 달했다. 중국의 단순 평균 관세율은 9.7%이지만 관세환급을 고려하면 약 2.7%에 해당한다. 따라서 관세를 0으로 낮추기만 해도 당장 약 55억 달러 정도의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농업과 중소기업이다. 한·중 FTA는 한·미 FTA와 한·EU FTA 이후 유일하게 남은 신선채소나 과일마저 궤멸시킬 것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은 아주 밀접한 분업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산업내 무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전기나 비철금속, 정밀화학, 건설기계산업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다행히 중국은 자국 기업 하나 하나의 이익을 위해 집요하게 개방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또한 자국의 완성차나 전자산업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양보해야 한다. 박태호 신임대표가 “농산물을 대폭 개방하는 높은 수준의 협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는 국익 최대화를 내거는 제로섬 게임 방식의 FTA 전략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 방식으로 전개된 WTO 룰마저도 바뀌어야 하는데(예컨대 신이슈 규정과 농업분야는 모두 개정해야 한다) 구식 FTA를 또 맺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이제 새로운 교류 형식을 창안해야 하고, 이는 차기 정부가 장기적인 세계 경제 전망과 산업구조, 복지사회에 대한 전략 속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을 고려할 때 한국과 중국 모두 외교·안보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 그럴 거라면 장차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역내 국가 간에 합의를 하고 그에 걸맞은 교류방식을 택해야 한다. 한 마디로 ‘경쟁해’가 아니라 ‘협동해’를 찾아야 한다.
 
누가 봐도 상호이익이 크기 때문에 쉽게 협동해를 선택할 수 있는 사업은 얼마든지 있다. 외환보유액 여유분의 북한과 중국 내륙 투자, 황사 방지를 위한 환경협력,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 중국 쪽 대륙간 철도 연결, IT산업 표준 사업 등 무궁무진하다. 중국과의 국제협정은 FTA가 아니라 공동체적 협력을 목표로 한 새로운 유형의 세계 표준을 동아시아에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중국이 홍콩과 맺은 ‘성과확대형 CEPA’는 이런 구상의 맹아적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구상 없이 실행하는 한·중 FTA는 또다른 의미에서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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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