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18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2013 세계의 시선(8) Helicopter Money: 선진국 양적완화정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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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 목 차 ]

1. 저자와 보고서에 대한 간단한 소개
2. 보고서의 주요 내용
3. 보고서의 시사점 
 

 

[ 본 문 ] 

1. 저자와 보고서에 대한 간단한 소개

 - 이 보고서 저자의 한 사람인  맥컬리(McCulley)는 세계적인 채권투자회사 핌코(PIMCO)에서 경영이사를 역임, 2007~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스키 시점(Minsky Moment)과 그림자금융체제(Shadow Banking System)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유명해진 경제학자.
콜롬비아 대학에서 MBA를 받은 후 25년 동안 UBS, 핌코 등 채권 분야에서 전문 펀드매니저를 경험함. 1999년 이후 핌코의 단기채권 부서를 이끌면서 경제포럼 개최, 주기적인 칼럼(글로벌 중앙은행 포커스) 등을 작성하여 명성을 떨침.
2010년 12월 핌코에서 은퇴한 후, 현재 비영리 싱크탱크인 Global Interdependence Center에서 Zoltan Poszar와 함께 공동 작업을 수행하고 있음.
맥컬리는 특히,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자로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하여 명성을 날린 민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음.

 

- Pozsar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시장 감독 부서에 근무하면서 그림자금융 시스템을 해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명해지기 시작함.
뉴욕연준의 스텝 보고서(Staff Report) 형태로 발표한 보고서(Shadow Banking System; http://www.ny.frb.org/research/staff_reports/sr458.pdf)를 통해, 최초로 그래픽 도해를 통해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 금융의 작동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함.[그림1]
2008 금융위기 이후 미 재무부, 백악관, FOMC, BIS 등에 글로벌 금융의 발전과 그림자금융 감독 등에 대하여 조언함. 현재 IMF 방문학자로 그림자금융 규제에 대한 정책 자문을 수행하면서, 폴 맥컬리와 함께 GIC를 통해 양적완화와 재정지출을 확대할 것을 주문하는 정책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음.
 

-  이 보고서를 통해 5년 전(2008년) ‘금융’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수정한 것처럼, 이제는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 또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함.  
즉 “장기적 부채 사이클이 존재하는 한 중앙은행 독립성은 정거장일 뿐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
최근 집권한 일본 아베 총리는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의 이중목표제, 무제한적 양적완화, 물가목표치 상향 조정(1%→2%) 등 중앙은행에 대한 적극적인 경기부양 역할을 강조함.
또한 3차례 양적완화의 실효성 여부에 대한 연준 내부의 이견, 긴축정책 지속에 대한 정치적·이론적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중앙은행 독립성’ 패러다임 또한 수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생산적인 논쟁 및 담론 형성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함.
최근 일본과 미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중앙은행 독립성과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의 정치담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대한 이해, 다양한 QE 정책 간 비교 분석, 1913년 연준 창설 이후 최근 QE에 이르기까지 미 연준과 재무부 간 권력투쟁의 역사 등을 통해 현대 거시금융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대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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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9 / 16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 국면에 진입한 가계부채와 대처방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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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저축은행 다음의 부실후보는 누구일까.

2. 부채로 고생하는 저소득층, 복지차원 접근 필요

3. 고 연령대 영세 자영업자 부채의 심각성

4. 하우스푸어의 주택과 부채를 어찌할까.

5. 채권자의 의무와 채무자의 권리

 

[본 문]

1.저축은행의 다음의 부실후보는 누구일까.

총량적으로 볼 때 가계부채가 더욱 위험한 수준으로 커진 상황이다. 여기에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부동산 가격 하락도 속도를 더하면서 위험을 키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위험에 먼저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어디일지 짚어보도록 하자.

가계 부채의 취약지대와 위험성 검토는 크게 채권은행 부문과 채무가계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채권은행보다는 채무 가계의 취약부문에서 위험성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채권은행 전반으로 전이되기 보다는 제 2 금융권에서 위험성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채무를 진 가계 부분은 뒤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대출을 해 준 채권 금융회사를 먼저 진단해보자. 최근 수년 동안의 가계부채의 가장 큰 특징은 상환능력이 있는 중산층이 시중은행을 통해 비교적 낮은 금리의 대출을 받는 사례가 중심이 아니라는데 있다. 즉, 소득과 신용도가 취약한 서민들이 시중은행보다 2배 이상 이자가 높은 제 2 금융권에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년(2007.2~2012.2분기) 동안 시중은행의 대출은 350조원에서 458조 원으로 108조원이 증가했는데 비해, 제 2 금융권 서민금융회사 대출은 130조 원에서 226조원으로 시중은행과 거의 유사한 96조 원이 증가했다.(그림 1 참조) 그 결과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시중은행의 비중은 52.8%에 불과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2010년에서 2011년 상반기까지 은행 대출은 8.5% 증가한데 비해서, 제2금융권은 두 배가 넘는 17.9%나 늘어나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가계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기준금리가 3%라는 초 저금리가 무색하게도, 실제로는 저금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10% 미만의 금리를 적용받는 시중은행 대출은 전체 가계 대출의 절반을 조금 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2년 6월 기준 시중은행 대출 잔액이 대략 460조 원인데 평균 6% 금리를 적용해보면 27조원이 연간 이자 규모다.

그러나 시중은행이 아닌 대출 나머지 대출 410조 원 가운데 저축은행이나 신용카드사, 보험회사 등에서 풀린 100조 이상의 대출은 대체로 15% 이상의 고금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연간 15조 원 이상의 이자부담이 발생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2011년 9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당시 시중은행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가 9.8%였음에 비해서 저축은행과 캐피탈사의 신용대출 금리는 무려 2.5배가 높은 24.4%에 이른다는 조사를 한 바가 있을 정도로 금리 격차가 컸다.

결국 이런 고금리 고위험 대출을 확대하면서 영업을 영위해온 제 2금융권 가운데 저축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과 얽히면서 2011년부터 부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계속 자본잠식, 영업정지, 파산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부터 저축은행에 이어 신용카드사의 과도한 경쟁이 재연되면서 부실위험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신용카드사의 대출이 카드대란 직후인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던 것이다.(그림 2 참조) 최근 1년 동안 신용카드 영업 감독을 집중하여 위험성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카드사를 포함한 제 2 금융권의 부실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판단된다. 대출을 받은 가계의 상환능력이 취약하면서 동시에 대출금융회사의 자금 동원 능력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2. 부채로 고생하는 저소득층, 복지차원 접근 필요

그렇다면 대출을 받은 가계 가운데 위험에 취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우리 가계의 62.8%가 많든 적든 부채가 있으니 10가구 가운데 6가구는 가계 부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대략 세 개 그룹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저소득 취약 계층이고, 둘째는 고 연령대의 영세 자영업자의 부채이며, 셋째는 이른바 부채부담을 안고 집을 구입한 하우스 푸어다. 최근 정부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1) 자영업자의 금융부채 문제, 2) 주택경기와 가계 부채문제, 3)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문제를 주요하게 지목하고 있다.

그럼 우선 저소득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위험성을 살펴보자. 경제위기 기간 동안 평균 15%가 넘는 고율의 이자를 물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계층은 주로 저소득층이다. “저소득 계층의 경우 대출 잔액은 전체 가계 대출의 12%에 불과하지만 2010~2011년 상반기 중 총 대출 증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달하여 여타 소득 계층에 비해 증가폭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최근 1~2년 동안 하위 20%(소득 1분위) 저소득층의 대출이 급격히 팽창하다보니 이들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해에 무려 201.7%까지 올라갔으며 그 위의 20%(소득 2분위)도 123.8%까지 올라갔다.(그림 3 참조) 평균 2년 정도의 소득을 모두 쏟아 부어야 빚을 갚을 수 있는 정도이다. 이정도 수준에 이르면 소득으로 이자를 갚기도 어려워지게 되고, 민스키가 표현한 마지막 단계, 즉 빚을 얻어 이자를 갚는 지속 불가능한 단계로 들어가게 될 위험이 충분한 것이다.

최근 부채에 대한 가계의 현실적인 부담 정도를 알아보는 지표로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부담률(DSR; Debt Service Ratio)이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DSR은 2010년 11.4%에서 2011년 12.9%로, 그리고 올해는 14%가 넘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터졌던 2007년 미국 가계의 DSR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저소득층인 1분위의 경우 DSR이 23.3%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평가다. 소득의 1/4를 지금 현재 빚 갚는 데 쓴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분류 기준에 의하면 상환부담 비율이 20% 미만이면 적정부담가구, 20~40%면 다소 부담가구, 40%이상이면 과다부담가구로 구분한다. 이미 저소득 층은 평균적으로 부담이 있는 그룹으로 들어갔으며 전체 과다부담 가구 162만 가구 가운데 저소득 계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저소득, 저 신용자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다중 채무자일 개연성이 높다. 다중 채무자는 2003년 카드대란에서 입증되었듯이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그룹으로 위험도가 매우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에 616만 명이었던 것이 지난해인 2011년 말 기준으로 722만 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이처럼 부채가 있는 저 소득 계층은 대체로 저 신용이어서 제 2 금융권이나 대부업의 고금리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2개 이상의 금융권에서 차입을 한 경우가 많으며, 때문에 원리금 상환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들에 대해 프리 워크아웃(Pre -Workout; 사전채무조정)제를 확대하자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더 나아가 시민 사회단체에서는 ‘채무 대리인 제도’를 입법화하여 가계 채무자에게 최소한의 인권과 생활권을 보호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나 이들에 대해서는 과거처럼 서민금융이라는 이름아래 여전히 높은 대출을 지속시키기 보다는, 원천적으로 채무부담 경감과 함께 사회복지 차원에서 채무 없이 최소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초생활이나 보육과 교육, 의료 복지, 그리고 일자리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서민 채무자에 대한 복지정책을 세부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 고 연령대 영세 자영업자 부채의 심각성

한국은행이 2011년 가을에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최근 가계 대출은 주택 구입목적 보다 생활형 자금 성격이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택 담보대출 중 주택 구입 이외 목적 대출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2011년 상반기 중 48.4%를 기록했다.” 이전에 없는 우리 가계 대출자들의 또 다른 중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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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정태인/새사연 원장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약간의 경제학 지식과 현실 경제 흐름에 대한 ‘감’, 그리고 시계열 통계만 볼 줄 알아도 금년 성장률이 3% 미만에 머물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사연은 작년 말에 EU가 그럭저럭 위기를 헤쳐나갈 경우 한국 경제는 금년 2% 중반대 성장을 이룰 것이고, 더 나쁘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과 정부, 그리고 재벌 연구소들 모두 3% 후반대의 성장을 장담했다. 6개월이 지나자 EU 상황을 핑계로 3% 정도로 성장률을 끌어내리더니 최근엔 재벌 연구소들이 2%도 어렵다고 징징댄다. 문제는 이어지는 얘기다. 그러므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등 경제개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 후보도 숟가락을 내민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주장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고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김영삼의 ‘세계화’)으로 외환위기를 맞자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개방과 경제자유화를 주장했다. 당시에는 ‘왕초 각설이’ IMF의 요구사항이 그랬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치자.
 
참여정부 초기 경제성장률이 5%에 머무르자 재벌과 조중동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규제완화를 해야 투자를 늘릴 거라고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때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랬고 지금도 각설이 타령은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흥청망청이고 오바마는 고전 중이다.
 
굳이 김빠진 옛 드라마의 ‘다시 보기’를 누른 건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어날 일이 그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15년 넘게 양극화가 심해지자 ‘성공신화’에 취했던 국민들이 깨어나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는 끼어들기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이슈는 경제위기의 해법인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후보로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
 
아마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최근의 성과에,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선거가 아니고 지금은 60∼70년대가 아니다. 단언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위의 재벌 연구소의 주장을 따를 것이다. 위기 때문에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나아가 그런 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과 조중동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이며, 보수적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동맹세력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지금 코 앞에 닥친 위기는 구체제의 방식으론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현재 국민이 요구하는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협동조합(사회경제)이야말로 위기 탈출의 묘책이다. 지금 세 정책을 실현하려는 시민 세력이 뭉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의 미적거림에 탄식하고 안철수의 모호함에 불안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낙선운동, 투표 격려, 그리고 야당과의 야권 단일화를 해 왔다. 이제 사회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뚜렷한 요구가 있는 만큼 더 정확한 정책 목록, 정책을 실현한 내각의 구성 원칙, 그 내각과 시민의 통합 가버넌스를 내세워야 한다.
 
2008년에는 정권을 내주고 나서야 석 달 넘게 광장으로 나왔지만 지금 정권을 만들기 위해 나서면 훨씬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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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의미 있는 이슈페이퍼를 발표했다. ‘자본 자유화 이후 한국의 자본이동 행태’라는 제목 그대로 자본시장 개방 이후 국내외의 자본 유출입 특징을 진단한 글이다. 한국은행이 금융 관련 진단을 한 것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심하고, 특히 경제위기시에 증폭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정한 정책적 제어장치(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여타 신흥국에 비해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입자본의 구성상 우리나라는 수시유출입성 자본의 비중이 2000년대의 경우 83%에 달해 신흥국 평균인 49%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수시유출입성 자본 유입속도가 신흥국 평균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차입이나 채권투자의 경우 유입자본의 지속성이 짧은 점이, 그리고 주식투자의 경우에는 유출입 규모가 큰 것이 변동성을 높이는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자본시장은 실물경기 변동에 따라 변동을 증폭시키는 속성이 있다는 점도 덧붙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수시유출입성 자본의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유입속도도 신흥국 평균보다 빠르므로 이러한 변동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건전성 정책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정책수단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히 의미 있는 결론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본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자본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낙후한 발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유럽이 긴축일변도의 정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금 위기에 빠지려는 조짐이 확연하다. 중국을 포함해 브릭스(BRICs)의 실물경제 회복력이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환기시키고 정책적 방안의 필요성을 한국은행이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권인 듯싶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수 확보로 4·11 총선이 끝나고 대선을 불과 7개월 정도 남겨 두고 있다.

사실 이번 총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총선이었고 12월의 대선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아시아 금융허브’,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금융산업 육성’, ‘글로벌 메가뱅크 육성’ 등을 내걸었던 한국에서도 당연히 금융규제와 금융산업의 재구성에 대해 상당한 문제제기가 던져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이 선거공약에 수렴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원래 정책경쟁 자체가 부실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금융규제와 금융개혁’ 관련 내용은 더욱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불과 몇 년 전에 세계경제를 뒤흔들었고 지난해에는 유럽 채권시장이 흔들리면서 재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게다가 여당인 새누리당은 주요 10대 공약 안에 금융개혁에 관한 항목이 아예 없다. 다만 일자리 창출 관련 재원조달 항목에서 파생상품시장의 거래세 신설 등 일부 조항이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각 당들이 금융거래 과세, 가계부채 경감을 위한 이자율 제한이나 채무자 보호,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제한, 그리고 은행 공공성 회복까지를 포함한 주요 의제들을 다루고는 있다. 하지만 그 중요도나 구체성, 그리고 전략적 개혁방향 등은 매우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확인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파급력, 세계가 금융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현실 등이 국내적으로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7개월 뒤 대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이라도 금융부문에 대해 더욱 전진된 개혁방안이 검토되고 토론돼야 할 필요가 절박하다. 당면한 시점에서 금융개혁은 첫째,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한 금융 불안정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은행을 중심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사적 금융회사가 된 금융산업에 대한 재편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소비자와 서민의 입장에서 금융상품 피해를 막고 건전한 금융 접근성을 확보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가운데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한 대책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위 한국은행 보고서가 말해 주고 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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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논쟁을 위해서 새로운 장 '한국경제 성격 논쟁'을 마련한다. 앞으로 이 장을 통해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 86호, 87호를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과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논쟁의 물꼬를 텄다. 한차례의 공방에 이어서 정태인 원장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게 공개편지 형식의, 하지만 날선 글을 보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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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에게

알고 지낸 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네 살 위라서 계속 반말을 써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높임말을 쓰려니 참 어색하기 이를 데 없군요. 아마 장하준 교수도 그럴 거예요.

사실 경어 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생물학적 나이가 더 많더라도 학문적 나이로 친다면 장 교수가 훨씬 위니까요. 읽기의 양이나 사색의 시간, 학계에서의 성취를 고려하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여 이 말투에는 공개편지에 걸 맞는 형식일뿐만 아니라 존경과 부러움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내 서평에서 비롯되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사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전 한 대담에서 "우리는 이론, 정책, 거의 모든 면에서 다 같지만 '재벌 개혁' 문제와 '한국은행' 문제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그 두 가지가 산업, 금융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 상호 간에 일정한 공감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재벌 개혁의 필요 불가결성", 그리고 이 둘을 포함한 "진보적 경제 개혁의 방향과 경로"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하여

1996년 내가 영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은행 문제에 관한 이견이 있었고, 장하준 교수가 돌아가고 나서, 동석했던 김대환 교수에게 왜 저렇게 강한 반응을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그 때 김 교수는 유럽 논쟁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즉 한국 상황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지요.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던 장하준 교수의 그 반응을 이해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책임에 관한 스티글리츠의 논문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스티글리츠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자문회의(CEA) 의장을 맡았을 때의 경험을 털어 놓았죠.

조각조각 남아 있는 기억(우리와 너무나 달라서 강한 인상을 받았으니까요)을 거칠게 말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는 도대체 대통령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조직이라는 것, 대통령자문회의에서 불만이 많았지만 아예 내색도 하지 않았다는 것, 온통 통화주의자로 가득한 그 동네에서 논쟁을 벌이면 오히려 불리해졌을 거라는 애처로운 얘기였습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도 스티글리츠는 왜 선출되지도 않은 몇몇 은행가가 자기들 멋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느냐, 이들이 사회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은행 출신들이 아니라 금융을 잘 아는 경제학자가 들어가야 하고 실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연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장 교수의 주장이 떠올랐습니다. '아, (유럽도)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 장 교수가 그토록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글에서 또 하나 명확히 남아 있는 기억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독립성인가,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언급이었습니다. 만일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준처럼 자기만의 논리에 의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더구나 통화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라면 저도 장 교수처럼 한국은행 독립에 반대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행은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 많은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 탁월한 보고서도 생산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는 언제나 언론에 노출되고, 한국은행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한국은행은 GDP(국내 총생산)이나 경상수지 발표 때만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전 재정경제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에 가까울까요?

기획재정부에는 최중경과 같은 중상주의자가 간혹 섞여 있긴 하지만 이헌재류의 시장 만능론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은행은 힘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시장 만능론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법으로 규정돼 있는 물가 안정조차 줏대 있게 내세우지 못합니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인 조직, 자기 지키기 바쁜 조직입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고슴도치 같은 조직"이라고 했겠어요?

물론 앞으로 정말 힘이 생기면 한국은행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물가 안정"을 내세워 실업과 같은 시민의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비서관일 때 한국은행 직원을 꼭 상근으로 불렀고 '개혁'에 중요한 기초 자료는(때론 기본 방침도) 한국은행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재정경제부 관료나 KDI를 이용할 경우에는 내 의도가 드러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중앙은행에 대해서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의 생각도 그랬듯이 중앙은행은 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한 기관이 하나의 목표만 맡는 게 아니라, 다수의 목표를 놓고 다수의 기관이 서로 협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런 이상적 상황을 가로막는 집단은 어디일까요? 난 단호하게 기획재정부(이들은 삼성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잡종 신자유주의의 근원이자 재생산지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들은 과장이 되면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단기간에 받고 국장쯤 되면 (장 교수의 주적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 파견 나가 신자유주의 교조의 세례를 받습니다. 얼치기로 알기에 더 과격한 시장 만능론자가 되는 거죠. 장 교수가 1960~70년대의 역사 속에서 관찰한 그 관료들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가 아니라 자산 가격 안정을 포함한 경제 안정까지 추구해야 합니다(한국은행법 개정 사항이죠!). 물론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와 협의를 하는 채널을 둬야겠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독립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이 실업 등 중요한 정책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 변화입니다. 지금처럼 각 부처를 대변하는 "민간" 전문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시민 일반을 대표하는 금통위원이 들어가야겠지요.

(나보다 훨씬 잘 알겠지만 케인스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그래서 하이에크가 매번 당했지요). 그런 정책 변화를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게 바로 케인스의 천재 증명이었습니다. 예컨대 케인스도 인도라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필요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루피와 스털링의 안정적 환율 때문에) 그게 꼭 필요했으니까요.)

재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 이제 본론 격인 재벌 문제입니다.

1980년대 말 이래 재벌은 옛날의 재벌이 아닙니다. 내 기억으로는 1988년 금리 논쟁 때 처음으로 당시 재정경제부(조순 부총리)에 반기를 든 이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들이 재벌-재정경제부 연합을 결성했고 이제 한 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부턴 재벌이 우위에 섰습니다. 발전 국가론에서 상정하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과 힘의 우위는 이미 한국에서 현실이 아닌 지 오래 됐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재벌 문제에 관해 본격적인 논문을 쓴 건 본 적이 없지만(장기의 역사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게 장 교수 작업의 본령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짧은 평론이나 인터뷰에서 받은 느낌은 장 교수가 재벌을 주주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논리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식으로 주주 자본주의/시장 만능론을 한 시대의 '에테르'(헤겔식으로는 시대정신이겠죠)라고 표현한다면 그 안의 어떤 존재도 그 풍조에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존재는 환경에 적응하는 거니까요. 일제 강점기에는 동네의 똘똘하고 진취적인 농부가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 되었을 겁니다. 농민을 최대한 수탈하려고 최초로 "근대적 경영"(경영형 지주론)을 도입하기도 했을 겁니다.

당연히 재벌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려 합니다. 단기 시야의 수탈이 벌어지죠. 그런데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서 주주 자본주의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면(분명 역사는 이 방향으로 가겠죠) 정말 재벌은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비 투자와 새로운 산업 진출에 매진하게 될까요? 해방이 되어서 일본인 지주가 사라졌을 때 우리의 마름들은 착한 농업 경영인이 되었나요? 국가가 어떤 외적 충격이 와도 마름의 지위를 유지시켜 준다고 약속하면 이들이 소작인들의 삶의 질도 높이는 착한 존재가 될까요? (비유를 이렇게 했지만 현재의 재벌은 일제 강점기 마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나 한국경제연구원의 얘길 들어서 알겠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아무런 이론이나 차용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단물 빠진 껌처럼 언제든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강한 건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거래 비용 이론이나 대리인 이론으로 재벌 구조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시장 만능론으로 국가의 규제를 비판하지요. 자유주의자 같지만 기업 내의 전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사실 이 모순이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론의 핵심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얘기도 그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자본이지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재벌과 주주 자본주의(또는 외국인 주주)를 대립 관계로만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들은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해서 주주 집단 바깥의 이해 당사자들을 최대한 수탈하는 동맹군이지요.

주주 간의 관계(즉, 자본 간의 경쟁)라는 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장 교수는 소액 주주 운동과 실은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소액 주주 운동 역시 지배 주주와 소액 주주(이 중엔 대규모 외국인 주주도 있지요)의 대립에 주목하니까요. 즉, 장 교수나 소액 주주 운동가나 모두 자본 간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재벌을 보고 있는 겁니다. 장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외국인 자본에 시달리는 존재로 보고, 김상조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소액 주주를 수탈하는 존재로 본다는 차이만 있는 거지요.

나아가 재벌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두 주주 집단(지배 주주, 소액 주주(외국인 주주 포함))과 협동해서 비정규직과 하청 기업을 수탈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가 이해 당사자론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이런 중층의 수탈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번 서평에서 이 문제는 대부분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고, 동시에 "재벌 개혁"을 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중층적 수탈 관계를 이해 당사자론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거기서 도출되는 정책 방향에 관해서는 이미 밝혔습니다.

논란이 남은 사항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에 관한 겁니다. 장 교수도 정승일 박사처럼 재벌이 제약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재벌이 제약 산업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청와대 비서관일 때 제약 산업을 검토했는데 생물학계 제약 같은 것은 가능하지만 신약 개발과 같은 화학계 제약은 영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학자 출신 풋내기 비서관의 판단일 뿐, 재벌이나 박정희류의 관료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다 망한다 하더라도, 이미 지급 보증이 해소된 상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삼성제약'을 만들려면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 회사가 출자를 하고 그 '삼성제약'이 발행한 회사채를 계열사가 인수해서 초기 자본을 형성하겠죠. 그 이후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소액 투자자들을 모집할 겁니다. 만일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다면 단지 지급 보증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안 생길까요? 신약 개발과 같은 분야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고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10년, 20년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런 쪽은 눈덩이 효과(snow ball effect)도 많이 작용할 겁니다. 기존의 지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일수록 유리하겠죠.

만일, 그야말로 만에 하나 산업계와 정부가 이런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우선 교육 투자를 통해서 전문 인력을 충분히 길러야 하고(10년 이상 걸리겠죠?) 관련 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에도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서도 마치 미국의 국방부나 보건부가 하듯이 프로젝트를 발주해야겠지요.

제 아무리 삼성이나 현대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승일 박사의 가정대로 재벌이 나 홀로 한다면? 당연히 정부는 시스템 위기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장 교수와 내가 옹호하는 산업 정책이 바로 이런 거겠죠(내 경험에 비춰보면 정 박사가 청와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재벌들은 십중팔구 조·중·동을 동원해서 정부가 시장이 할 일에 개입한다고 비판할 겁니다).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기만 하면 그들이 이런 장기 모험 투자를 할 것이라는 건 실로 안이한 생각입니다. 제로 리스크로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는데 왜 하겠어요? 주식이나 땅 투기, 동네 빵집, 심지어 순대국집…. 재벌 규제, 자산 투기 규제와 산업 정책이 같이 갈 때만 실제로 필요한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겁니다.

또 따라잡기(catch up)를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 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나는 지역 클러스터와 공동체의 발전 전략을 결합하는 것이 이 단계의 유력한 산업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주제야말로 우리 같은 산업 정책 옹호론자들이 진지하게 붙들어야 할 주제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재벌의 은행 소유까지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장하준 교수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건 정확히 시스템 위기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예의 제약 회사가 망해가면 재벌계 은행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일반적인 계열 분리명령(또는 청구)의 도입은 더 철저한 논증이 필요하지만 금융 계열 분리 명령은 시스템 위기 가능성만으로도 도입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재벌 개혁 또 경제 민주화 운동이 복지 국가 운동을 가로막는다?

장하준 교수도 아시다시피 나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갈 때, 막연하지만 스웨덴 모델을 꿈꿨습니다(조금 더 유연한 이정우 교수는 네덜란드 모델을 상정했죠).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는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스웨덴에서 한 일 하나하나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고 해서 스웨덴 모델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삼성이 발렌베리처럼 행동한다거나, 민주노총이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처럼 커지고 또 '연대 임금' 같은 획기적인 상상력 넘치는 연대 사업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환상이겠지요. 또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소득세로 재원을 조달하니까 우리도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기계적 도입 중 하나일 겁니다(종합부동산세 등 자산세는 불평등 심화를 일단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절실합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없다고 해서 복지 국가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우선 다음 그림 두개를 한번 보시죠.

한국에서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1995년경입니다. 이건희가 정부를 "3류"라고 일갈하고 김영삼이 "세계화"를 선언했으며 관료들이 마음 깊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시점이죠. 그리고 외환 위기는 그런 시장 만능의 기조를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국민들도 이제 믿을 건 나 밖에 없다, 살고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불행히도 IMF의 지배 하에서, 더구나 관료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예를 들자면, 노동 시장 유연화)을 추구한 결과 사회의 양극화는 가파르게 진행됐습니다.

 

[그림1] 지니계수 변화 추이

[그림2]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그래도 복지에 돈을 투입한 결과(붉은 그래프와 푸른 그래프의 차이)가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지만 양극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핵심 원인은 두 번째 그림에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에 임금 몫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만일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이 모두 세계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 일어난 일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재벌-관료-조·중·동이라는 삼각 지배 동맹이 앞장서서 실천한 것 또한 명백합니다.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회적 합의, 또는 대타협 없는 보편 복지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각동맹이 왜 타협을 할까요? 물론 나는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동시에 장기 침체의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면 곧 파탄이 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기가 온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세력 관계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수탈을 더 강화해서 그야말로 파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스웨덴의 시장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더 나쁜데도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한국의 시장 지니계수가 과소 추계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소득 재분배에 의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분배를 달성했으니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금을 내도록 하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올까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국내외 주주 집단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기업의 수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정당도 흡수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운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삼각 지배 동맹과 힘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해질 겁니다.

내가 장하준 교수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내 짧은 청와대 경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단언합니다. 혹시 우리가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경영권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 국가 만드는 걸 도와 달라"는 장 교수의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겁니다. 삼각 지배 동맹이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나름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시장 만능의 사회가 되면 한국이 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요. 더구나 현재의 제도 하에서도 재벌들은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타인에 대한 일반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가 아닙니다. 재벌이 합리적 계산 하에 먼저 임금의 중앙 교섭을 제안하는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도, 나와 내 아이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헛된 꿈에서 이제 막 깨어난 일반 시민들이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와 재벌의 연관을 직시하게 할 때만 우리가 꿈꾸는 복지 국가도 가능해질 겁니다.

장 교수가 놀랄지 모르겠지만, 이해 당사자론자인 나와 주주 이론을 채택한 김상조 교수 사이에 현재의 운동 방향에 대한 이견은 조금도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이 같이 가야 한다는 데 한국 대부분의 시민 운동가, 경제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으로 이런 합의를 갈라놓으려 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마 기업 집단법의 목적에 대한 강조점이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요. 김상조 교수 외의 재벌 개혁론자는 기업 집단법에 대해 더 회의적입니다만 "절대로 안 된다"는 수준의 반대 또한 아닙니다.)

장 교수는 50만이 넘는 독자를 거느린 강력한 지식인입니다. 그러기에 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나라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장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 놨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나도 한국과 영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장 교수 뜻대로 경제 민주화 운동이 뜻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복지 국가 운동도 같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일개 지식인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요?

난 이 논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절대적 대립이라도 있는 양 비춰지고 있는 이 상황(막연하게 같은 편이리라 짐작하고 복지 국가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을 모두 지지하던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겁니다)은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엉성한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학계 심포지엄 같은 형식으로 치밀하게 따져 볼 수도 있겠죠.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럼, 조만간 직접 얼굴 맞대고 이런 얘기를 나눕시다.

2012년 5월 2일

정태인 드림.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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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