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4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최근 일본 민주당은 상속세(50%)와 소득세(40%) 최고세율을 각각 5%p 인상하겠다는 부자증세 계획안을 발표하였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프랑스 대선에서 올랑드는 100만 유로 초과소득에 대해서는 75% 세율을 부과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지난 주 끝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20 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세율을 인상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따라서 소득세 최고세율은 35%에서 39.6%로 1993년 클린턴 정부 수준으로 복귀하게 된다. 1993년 클린턴 정부에서 최고세율을 31%에서 39.6%로 인상했을 때 재정적자는 줄어들고 투자와 고용, 성장률 등 모든 지표가 개선되었던 경험도 부자증세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소득세와 법인세가 줄어들고 있다. 1980년 62%에 달하는 최고세율은 1989년 50%, 그리고 외환위기 전인 1996년에는 40%까지 떨어졌다. 두 번의 개혁 정부 시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40%에서 35%, 법인세 최고세율은 28%에서 25%까지 떨어졌다. 부자감세를 추진한 MB 정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의 상위 1% 소득 비중은 11~12%에 달한다. 20세 이상 인구가 4천만이라고 할 때, 상위 1%인 40만 명은 전체 소득세의 40%인 12조를 부담하고 있다. 25%를 더 부담시키면 3조원의 재정수입을 얻거나, 나머지 99%의 소득세를 평균적으로 15%만큼 줄일 수 있는 금액이다.

부자증세는 그 자체로 최상위 계층의 세후소득을 줄여 격차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복지지출 확대로 2차적인 양극화 해소 기능을 수행한다.

부자증세는 또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만약 3 조원의 재정수입으로 교육과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경제성장률은 개선될 것이다.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이 각각 50%, 37.5%에 달하던 1980년대 후반 분배율과 성장률 개선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시기가 이에 해당한다. 19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대 미국의 최고세율은 91%에 달했으며, 90년대 미국의 신경제도 부자증세가 배경이 되던 시기였다.

물론 부자증세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확충하고, 소득과 재산에 연계된 권력 집중 해소를 통해 경제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자증세만큼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금융거래세다. 금융거래세는 거래비용 증가로 과도한 투기를 억제하고 생산적 투자활동으로 자원을 이전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자산가격 및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고, 경제적 불확실성 해소로 금융 및 재정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한다. 마지막으로 부자증세와 마찬가지로 아주 낮은 세율에도 연간 수천억에 달하는 재정수입을 올려 복지지출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대선 정국에서 부자증세와 금융거래세 등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경제정책들이 거의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대선 후보들은 얼마나 훌륭한 경제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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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9 / 26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2 대선 주요 후보별 시대인식 비교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편집자 주 > 새사연은 이번 대선이 수개월 전인 4.11 총선처럼 상호 비난과 폭로전을 반복하지 않고 보다 생산적인 정책대결이 되길 기대한다. 특히 나라의 운명과 방향을 결정할 대선 국면인 만큼 폭넓은 시야와 방향에서 우리 국민이 살아갈 비전이 다양한 관점과 각도에서 제시되길 바란다. 아직은 정책과 공약이 추상적이고 다듬어지지 못한 단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의 저서와 발언을 중심으로 정책 맥락을 짚어보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정책선거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요 약]

결국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그렇다. 국민들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며 가장 정확히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요구는 무엇인가? 전세계 인류를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를 종식시키고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이를 얼마나 인식하고 반영하고 있을까?

박근혜 후보는 99% 저항의 시대에 100% 국민행복론을 들고 나오면서 신자유주의 속에서 부를 독차지한 1%를 숨기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시대교체를 외치는 가장 적극적 후보이지만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그 방향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낡은체제를 청산하고 미래가치를 대변하는 후보이지만 역시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차별화되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인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본 문 ]

새사연의 제안, ‘정권 교체’에서 ‘시대교체’로!

“시민들이 2012년 양대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두 민주정부 때처럼 대통령과 청와대 일부 바뀌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재벌 - 관료 - 보수언론의 3각 동맹에 휘말려 새로운 체제의 화두인 최소한의 보편적 복지국가도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3중, 4중의 위기가 중첩되는 거대한 전환을 맞고 있으며, 양대 선거는 새로운 사회 경제체제를 선택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권 교체는 물론이며 이를 통해 시대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2011년 아랍에서 시작해서 월가 점령시위로 터져 나온 민주들의 숨 가쁜 목소리도 시대교체, 즉 신자유주의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선택하고 수립해 나가는 일은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를 동반할 때 가능하다. 단순히 새누리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아닌, 시장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여의도 정치에서 시민정치로 넘어가는 시대교체가 되어야 한다.”

위의 인용문은 올해 5월 출간된 새사연의 정책대안 종합판 『리셋 코리아』의 내용 중 일부이다. 새사연은 최초로 대선에서 ‘시대교체’의 화두를 던졌었다. 시대교체로서의 대선이란 5년 전의 민주정부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 10년에 더해 이명박 정부 5년 전체에 걸쳐 한국경제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투기와 양극화를 양산하는 신자유주의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으로 남았다. 민주정부는 사회복지를 늘려서 양극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적극 수용한 신자유주의 그 자체가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위험한 경제 질서라는 인식은 하지 못했다.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이끌지 못한 민주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자’가 되어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와 친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근본적 위기를 알린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불가피하게 재정을 확대하여 경기부양을 하고 얼마간의 외환 거시건전성 규제 방안을 내놓는 등 국가를 동원해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신자유주의 정부가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 정부들은 철저하게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역진해서 정책과 공약을 제시했고 결국은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2012년 18대 대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을까? 시대의 변화를 국민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주요 후보들의 글과 발언에 기반하여 짚어보도록 하자.


박근혜 후보의 시대인식, 국가발전에서 국민행복으로

지금 70억 지구 인류 전체에게 4년 이상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파국과 자본주의의 위기 현장을 외면하기란 아무리 보수 우익이라도 해도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신자유주의와 시장 지상주의의 비판자라는 얼굴로 행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경기는 침체되고, 분열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과 소득격차 심화라는 거대한 폭풍이 덮치고 있습니다. (중략)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꿔야 합니다. (중략)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출마 선언문 중 일부이다. 그 내용을 보면 ‘자본주의 위기 → 소득격차 심화 → 국민 생활과 삶의 위기에 대처 → 경제 민주화, 일자리 창출, 복지’라는 논리 전개이다. 완벽히 진보개혁 진영의 언어와 논리구조를 차용해 왔다.

정작 자신이 그 동안 주장해왔던 줄푸세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당연히 반성도 없다. 오히려 줄푸세가 경제민주화와 같은 맥락이라 오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후보의 시대인식은 몰역사적이다.

이 뿐 아니다. 그의 대표적 선거공약인 ‘100%국민 행복론’은 더욱 몰역사적인 주장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부를 독식하는 1%에 저항하는 99%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100% 국민이라니, 왜일까? 정말 더 완벽한 국민행복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100% 속에 1%를 슬쩍 합쳐버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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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

스웨덴 복지정책의 초석인 ‘렌 마이드너 플랜’으로 잘 알려진 마이드너가 비통한 마음으로 위 제목으로 글을 쓴 때는 1993년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내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노정하던 스웨덴은 1991년 통화위기를 맞았다. 1984년에서 94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0% 증가한 반면 스웨덴은 1.4% 증가에 머물렀다. ‘스웨덴 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미국과 스웨덴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앞다퉈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이 일할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에 물들게 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웨덴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1% 성장해서 미국의 2.8%보다 높은 성장률을 거둠으로써 부활하게 된다. 임금격차 등 각종 평등 지표에서 스웨덴은 여전히 수위를 달리는 반면 미국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웨덴의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특히 85년의 대출상한규제 철폐), 그리고 조세개혁(특히 91년 이자에 대한 조세감면)은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넘어 폭발적인 거품경제를 불러일으켰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평가절하 정책에 따라 수출·내수부문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수출분야의 남아도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더 쏠리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외국 자본(외자)이 빠져 나가면 바로 외환위기이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자를 붙잡기 위해 이자율을 무려 500%까지 올렸어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스웨덴이 다시 살아난 것은 1997년 분권화된 중앙임금교섭이 부활되고, 여전히 GDP의 25%를 차지하는 전통의 보편적 사회서비스(교육, 보육, 의료)가 복지와 고용을 동시에 지지했기 때문이다. 협력과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 성 평등정책에 의한 높은 고용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또 한 번의 산업구조조정을 성공시켰다.

요컨대 위기의 원인은 거시정책이었고 동시에 노동자 연대의 붕괴였다.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는 거시 정책을 쓰면서 복지를 유지하거나 확대한다는 것은 스웨덴에서조차 불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이유(자본자유화와 금융규제 완화)로 경제위기를 맞았던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부활 역시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아메리카 복지국가 캐나다의 비극

이 땅에서 정말 살기 힘들어 이민을 택하고자 할 때 우리 국민의 머리에 떠오르는 제 1순위 나라 중 하나가 캐나다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캐나다는 1989년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고 1994년에는 이 협정을 확대해서 멕시코까지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발효시켰다.

과연 당시 세 나라 정부의 주장대로 성장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 복지도 확대되었을까. 지난 20여년간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소득 양극화 현상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 그리고 3~4위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아예 검토 대상도 아니다. 아메리카의 유럽, 캐나다는 15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다행히도 캐나다는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의 전통에 따라 일반적인 예금 및 대출 업무에 종사했고 파생상품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바젤II보다도 더 강한 자본규제와 유동성 규제에 따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택가격의 버블도 존재하지 않았다. 개방과 민영화, 규제완화에 적극적이었던 멕시코가 2009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본 및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캐나다 사례는 다시 한번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경제성장, 고용, 그리고 실질임금은 NAFTA의 약속과 달리 지난 15년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2.25%(1인당 GDP는 1.2%) 정도로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전인 80년대의 3%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실질임금은 96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고작 4%가량 증가했으며, 캐나다 정부가 NAFTA를 맺으면 따라잡을 거라고 장담했던 미국과의 생산성 격차는 오히려 증가했다. 전 산업 부문의 생산성이 1% 이상 증가해서 매년 5% 이상의 추가 성장이 일어날 거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그 결과 2000년대 10년간의 중간 지점에서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나쁜 쪽에서 13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은 물론, 놀랍게도 14위를 차지한 한국보다도 캐나다의 불평등지수가 더 높았다. 1990년대 초반 이래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캐나다의 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지출의 비율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NAFTA 이후 캐나다 정부는 ‘노동복지’(workfare), ‘의무국가’(duty state), ‘사회투자국가’ 등의 구호를 내세워 노동의 의무를 강조하며 복지를 축소했다. 특히 실업급여 제도에서 수급자격의 강화, 급여의 축소, 수급기간의 단축을 통해 현격한 후퇴가 일어났다. 앞에서 본 스웨덴 비판의 핵심인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한 정책을 실제로 수행한 것이다.

클락슨 등 캐나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NAFTA는 외부헌법, 또는 초헌법의 역할을 했다. 일반적인 복지정책, 특히 공공성 강화정책은 나프타의 여러 독소조항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특히 투자자-국가 제소권(ISD)은 캐나다의 공공정책을 가로막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94년에서 2010년 7월까지 캐나다는 알려진 것만 해도 28건의 제소를 당했다.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예외조항이 NAFTA에도 유사하게 존재하지만 자연자원 관련 10건, 환경보호 7건, 심지어 우편서비스 2건 등 핵심적인 공공정책이 그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소송이 진행된 사건보다 돈을 주고 타협한 사건이 더 많을 것이고 소송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지레 포기한 정책 또한 숱하게 많을 것이다.

한국이나 멕시코처럼 복지제도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양극화 세력, 즉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FTA의 위력은 배가된다. 멕시코의 전화나 철도 민영화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위기의 엄청난 폐해를 보면서도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야 한다”(박병원 전 경제수석)며 여전히 메가뱅크-투자은행을 추진하는 대통령 측근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위기 때문에 주춤하고 있지만 물 민영화, 가스 및 철도 민영화, 특히 의료민영화를 여전히 호시탐탐 노리는 곳에서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복지 확대는커녕 복지 축소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협상에서 미래유보로 빠졌다고 하더라도 자발적 민영화와 FTA가 결합하면 ISD의 대상이 됨으로써 어떤 비극이 발생해도 되돌아갈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복지국가 되려면

스웨덴이나 캐나다에 비한다면 복지에 관해서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에 불과하다. 연부역강한 청장년의 경우에도 금융규제 완화와 투기, 그리고 시장주의 정책기조를 따랐을 경우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양극화 시대에 우리 국민의 의식을 사로 잡은 구호는 “부자 되세요”라든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따위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심각한 양극화 속에서 “나와 내 아이만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 비로소 다 함께 사는 길, 즉 복지를 요구하게 되었다. 지난 2008년의 총선과 지난해의 6·2 지방선거를 비교해 보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 복지국가는 험난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식 FTA를 맺고, 자발적인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함으로써 양극화를 촉진하면서 복지로 그 구멍을 메운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홍수방지책을 만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만 늘리면 필경 재정이 악화되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적반하장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부동산투기와 사교육 등 투기를 근절해야 하고 금융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학력과 성에 따른 양극화를 시정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금융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경제정책기조를 확 바꿔야만 복지동맹이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 아이들 대에 이르면 아시아의 모범적인 복지국가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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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11.06.08 11:29

2011.06.07진남영/새사연 연구원

이명박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부동산 규제 완화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개발이익 환수, 투기 수요 억제, 서민주택 공급 확대 등을 목표로 설정한 이전 정권의 규제를 하나씩 해체해 나갔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완화시켰음은 물론이고, 미분양 주택에 대해서는 비과세 제도를 시행하고, 민간에 의한 택지개발 및 공급 확대, 용적률 완화, 분양권 전매 허용 등의 규제도 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해온 4대강 공사 주변 친수구역 개발 후보지에 대한 투기 조짐도 일고 있다. 정부는 친수구역에 주거, 상업, 산업, 문화, 관광, 레저 기능을 갖춘 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인데, 친수구역 개발이 또다시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친수구역법은 4대강 개발을 위해 막대한 사업비를 떠안은 수자원공사에 사실상의 개발독점권을 허용하고 있다. 8조 원의 4대강 사업비와 매년 4,800억 원에 이르는 금융비용 부담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80조 원 규모의 주변 개발사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때문에 수자원공사가 막대한 사업비의 회수를 위해 난개발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진남영 연구원은 정부가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아온 측면이 있지만, 이를‘투기를 조장하는’방식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커다란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법이 틀린 정부의 부동산 시장 관리 정책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땅부자 1%를 위한 정책’이라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는 지금까지 공급 활성화 측면에서 부동산 가격을 유지시키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으로 땅부자들을 위한 정책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시장을 관리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열된 시장을 경착륙 시키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연착륙이 옳은가라는 문제에서, 경착륙을 말하는 이들은 부동산 가격을 하루 빨리 실제 가치와 일치시켜 거품을 빼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후과가 상당히 크고, 대부분의 피해를 서민들이 받게 된다. 때문에 진보진영에서도 연착륙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 위기 이후 가격 하락 요인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정부가 규제를 대부분 풀면서 나름대로 그것을 관리해왔다. 아울러 보금자리 주택도 가격 안정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다만 문제는 정부가 그런 정책을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했고, 소유자 중심의 정책을 폈다는 점이다. 즉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 아닌 분양주택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현재 임대주택의 재고율이 6% 정도인데, 최소한 10~15% 수준으로는 올려놓아야 일정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주택 자가 보유율을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기조인 것이다.”

▶참여정부는 임기 중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남 땅값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전국적인 혼란을 낳았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비교한다면 어떤 평가가 가능할까.

“참여정부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미숙했던 것이지, 큰 틀에 있어서의 방향이 문제가 있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비난받을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은 보유세 인상, 정보공개 등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선진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것들이 보수 세력이라든지, 거대 부동산 세력들과 싸워 가면서 적절히 침투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거대 부동산 세력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참여정부 때에는 많은 소득을 얻었지만 현 정부 들어와선 거의 이득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구조조정 등을 통해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참여정부 때 부동산 시장이 너무 비대화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격이 올라가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거래 활성화도 이뤄지지 않았고, 가격도 오르지 않았다. 결국 부동산에 종사하는 모든 세력들이 이익을 얻지 못한 것이다.”

MB정권‘투기 부활’의 모든 조건 만들어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간단하다. 이미 그 이전에 가격이 너무 상승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오르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을 제외한 참여정부가 만든 거의 모든 규제를 풀고 경기부양책을 썼음에도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정도인데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조금 호전된다면 가격이 갑자기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가 투기가 조장될 수 있는, 투기가 살아날 수 있는 모든 여건들을 다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그럼 왜 지금 투기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가. 우선 지금까지 가격이 너무 상승했다는 점과 실질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또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도 작용한다. ‘하우스 푸어’로 상징될 수 있는데, 중산층이 부동산 투자 가치를 믿고 대거 시장에 진입해 지금과 같은 거품이 형성됐다.

그런데 투자 가치는커녕,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 않은가. 참여정부 때 많은 중산층이 과도하게 시장으로 진입했던 후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거의 모든 규제를 다 풀었음에도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만약 규제 완화를 하지 않았다면 가격이 상당히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자면 현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았다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막는 방식이 건전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 지금처럼 투기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큰 문제다. 당장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이것이 장기적으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세문제 역시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대출조건 완화로 풀려고 하지 않나. 나중에 어떻게 되든 가격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믿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폭탄 돌리기’에 비유한 바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인데, 만약 폭탄이 터지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인가.

“참여정부 하반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가격 폭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거품이 일정 부분 제거된 것이다. 2006년 말과 비교해 물가도 상승했고, 국가 전체 소득도 어느 정도 상승했지만, 가격은 실질적으로 강남 은마아파트 같은 경우 최고가에 비해 약 20% 떨어졌다. 실제 생각했던 거품이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다면 가격이 더 내려갔을 것이고, 시장이 경착륙할 가능성도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부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산층 아래로 보면 소득에 비해 체감하는 가격 수준이 예전보다 더 높다. 그래서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게 큰문제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의지 필요

▶정치권의 복지 논쟁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문제 역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에서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는가.

“일단 임대주택을 늘리며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주거권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주거복지 차원에서 임대주택에 대한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결국 임대주택을 많이 늘리는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제도적·법적 측면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지 않도록, 또한 세입자가 불평등한 계약관계를 맺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것에 대해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설사 한나라당이라도 취지상으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는 주택공급 방식을 지금과 같이 분양주택이라든지 자가 보유를 늘리는 방법으로 갈 것인지, 공공에서 제공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진보진영은 토지임대부 등을 조금 더 가미하거나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세금 문제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거꾸로 간 방향들을 다시 돌려야 한다. 투기 관리 차원의 문제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는 정책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다주택자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논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이 다주택자에 대한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는데, 그 부분도 합리적인 부분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요한 것은 결국 실천의 문제다.

새로운 진보정권이 들어선다면 공공 분양이라든지 택지 분양을 했을 때 공공에서 분양하는 정책을 편다면 어찌됐든 거기에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확고한 철학과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결국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실천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 문제다. 현 정부가 펴고 정책들은 모두 건설회사들을 위한 것들이다. 하다못해 보금자리주택도 민간에서 건설해 공급한다. 보금자리주택의 취지상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거기에 민간건설이 들어가 이익을 챙기라고 한다. 토건 세력들이 여전히 강고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참여정부도 이들에게 패배한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남은 임기동안에도 규제를 계속 풀려고 할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재건축 추가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를 풀려 할 것이고, 그것도 안 되면 DTI(총부채상환비율)를 더욱 완화할 것이다. 세 가지 모두를 건드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승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만약 오른다면 비정상적인 형태로 상승할 것이다. 상당히 불안하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상황을 그대로 차기 정부가 받게 된다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관리하고 싶어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투기를 강하게 조장하고 있다. 규제를 풀고 재건축 용적률을 늘리고 있다. 지금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 관리 정책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금 당장 경착륙을 막는데 만족하지 말고 부동산 시장의 장기적 안정화를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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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2.24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아프리카, 중동의 민중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면서 정치권력이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이들 지역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이나 정보 전달을 받지 못한 탓에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서방의 언론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무래도 유가의 움직임이 되고 있다. 깊은 이해(理解)에 앞서 당장의 이해(利害)를 따지는 것을 당연한 인간의 속성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유가의 변동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까닭에 이를 잘 따져보는 것이야 나무랄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은근히 민중들이 시위를 자제해야만 유가가 떨어질텐데라는 식은 곤란하다. 이기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자칫 모든 책임을 민중들에게 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국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민중들이 아니다. 유가상승의 책임은 원유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가격 결정시스템을 다 들여다 볼 수는 없겠으나 몇 가지만 확인해 보자.

 

유가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투기 수요’

 

산유국 민중들의 시위가 없었을 때에도 국제 원유 가격이 급변하는 경험은 숱하게 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에 미국서부텍사스산 중질유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기록한 바도 있으며 2010년 하반기부터 유가 상승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급변동은 원유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석유시장이 ‘금융화’되었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이른바 수요-공급의 토대에서 벗어나 자산보유, 달러대체, 그리고 투기 등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아직 명백하게 정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은 석유시장의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1986년 OPEC에 의해 정책적으로 가격이 결정되던 시대가 끝나자, 원유 가격 결정은 이른바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1950년대까지 초국적 석유메이저 기업들이 완전히 전세계 원유가격을 통제했었고 1970~80년대에는 OPEC이 가격을 통제한 바 있다. 이들과 구분짓기 위해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을 ‘시장 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실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은 지극히 복잡하며, 따라서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TV에 나오는 원유가격 지표만을 보게 되면 이해관계자가 누군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원유는 ‘경매’로 판매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이제 110달러가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그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이런 인식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원유는 ‘아는 사람’끼리 일대일로 거래되며 장기 계약이 기본이다. 원유는 청과물 도매시장의 경매처럼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구매자가 매일매일 가격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 시기는 일반적으로 최소 한달, 보통은 2년 이전에 이루어지며, 이 때 지표 유가를 참고로 하여 판매자(보통 산유국 국영기업)와 구매자(보통 소비국 사적기업)가 일대일로 가격 협상을 하게 된다. 지표 유가는 참고로 삼는 것이며 진짜 계약가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계약 가격은 보통 원유의 질, 인도 방식, 구매량, 불량 발생 때의 처리 방법 등을 모두 고려하여 기준 가격에 프리미엄이나 디스카운트를 얹는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여기서 기준 가격은 원유의 품질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방식에서는 매일매일 유가가 급변한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수입가격 부담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정유회사들이 지표 유가가 올랐다고 바로바로 휘발유 가격을 올리는 것을 보고 필자는 독점기업의 횡포를 의심한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유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기초 재화로써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정부와 독점기업에 도입단가 공개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과점 기업에 의한 국제 원유 가격 평가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앞서 언급한 원유의 기준 가격은 소수의 기업(oil pricing reporting agencies)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압도적인 전문성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기준 가격 평가를 독과점한다. 원유 거래시장이 워낙 불투명하고 참여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제3의 가격 평가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기업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고 소수 기업이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는 것은 비판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원유의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기준 가격을 절대적으로 참고하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의 신용평가회사들이 최근 금융위기의 버블을 증폭시킨 것처럼 이들 석유 가격평가회사들도 유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유가는 이상의 실물 거래 가격이 아니다. 3대 지표 유종인 미국텍사스산중질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두바이유의 가격은 실제로는 선물, 옵션, 스왑 등으로 거래되는 (파생)금융상품의 가격을 지수화해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금융참가자들의 복잡한 이익구조가 개입되어 실물가격을 왜곡시키거나 혹은 교정하고 있다.

 

원유는 전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재화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에너지 가격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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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