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3정태인/새사연 원장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 중 누가 승리할까. 양 캠프는 전략을 짜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원래 이런 용도로 개발된 게임이론을 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설프게 게임이론을 적용해서 바로 답을 이끌어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전략에 따라 나에게 어떤 이익(payoff)이 있을 것인가부터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임 중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치킨게임(또는 매-비둘기게임)이다. 6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는 미친 놀이가 유행했다. 차를 마주 달려 누가 피하는가를 가리는 게임이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그랬듯이 흔히 여성을 두고 용기를 뽐낼 때 이런 황당한 짓을 했다. 죽음이 두려워 핸들을 돌린다면 그는 겁쟁이, 즉 치킨이 된다. 그렇다고 둘 다 질끈 눈감고 액셀레이터를 밟는다면 그건 대략 사망이다. 치킨이 되느냐, 죽느냐의 선택. 그러므로 치킨게임은 딜레마에 속한다. 만일 두 젊은이가 제 정신이라면 적어도 둘 중 하나가 마지막 순간에 핸들을 틀 것이다. 하여 이 게임의 ‘내시 균형’은 둘 중 하나가 치킨이 되는 것이다(표에서 [B]와 [C]가 균형이다).

만일 두 후보가 완주를 한다면 박근혜 후보는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결과는 두 젊은이의 사망에 비견할만한 재앙이다. 문-안 두 캠프 둘 중 하나는 모두를 위해서, 동시에 스스로를 위해서도 양보해야 한다. 

결국 누가 양보하느냐가 문제다. 그러므로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는 길은 상대가 나를 ‘미친 놈’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브레이크를 망가뜨리고 그 사실을 상대에게 보여주면 된다. 실제로 미국과 소련이 핵무장 경쟁을 벌일 때 서방언론이 닉슨대통령에게 “미친 놈”이라고 비판하자 그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 내 목적”이라고 했다거나, 신립의 ‘배수진’, 가다피의 ‘인간방패’, 큐브릭의 ‘최후의 날 기계’가 모두 그런 ‘신호 보내기’이다.

현재의 대선도 다르지 않다. 최근에 양쪽이 모두 완주를 다짐하면서 상대가 양보해야 하는 이유를 거듭 천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캠의 ‘선 정치개혁론’이나 문캠의 ‘무소속대통령 불가론’이 바로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 지도부의 이런 태도는 캠프의 지지자들을 감정적으로 대립하게 만든다. 

인간은 게임이론에서 상정하는 것처럼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을 주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종종 비극이 벌어진다([D]의 선택). 모두 완주해도 이길 수 있다거나(87년의 ‘3자필승론’, [D]의 자기 몫만 5쯤으로 뻥튀기하는 것), “차라리 박근혜가 낫다”는 주장이 나온다든가, 적어도 훨씬 많은 비난을 뒤집어쓸 3등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마취시키는 경우가 그렇다. 미래는 불확실하니 얼마든지 그럴듯한 근거는 만들 수 있다. 

과연 이 딜레마에서 빠져 나와 모두 승리하는 비법은 없을까? 있다. [A]의 양쪽 보수를 동시에 늘리면 된다. 즉 현재의 (3,3)을 (5,5)로 만들면 [A]가 유일한 내시균형이 된다. 시민(연합)정부가 바로 그것이다. 둘 사이의 협상이 어렵다면 양쪽 지지자를 넘어 정권교체를 바라는 모든 시민들이 [A]의 보수를 정하도록 하면 된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 특징적인 ‘선거 전 연합’은 승리한 정부 정책 뿐 아니라 내각도 미리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정책이 절실한가에 합의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 인물들의 풀을 제시할 수 있다. 이렇게 시민들이 흔쾌히 합의하는 정부가 들어서야만 집권 후 개혁을 저지하려는 지배동맹으로부터 ‘우리 정부’를 지킬 수 있다. 선거에서 승리할 뿐 아니라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까지 되려면 치킨게임의 딜레마를 이렇게 풀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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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8정태인/새사연 원장

 

6월 마지막 주에 통합진보당은 당대표 선거를 치른다. 내 보기에 이번 선거는 이 정당의 ‘마지막 선택’이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뻔한 죽음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만 남았다. 지난 3주간 통합진보당 사태를 다룬 ‘착한경제학’의 고통스러운 일탈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유일한 활로가 현재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꿔서 협동을 택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곧 현재의 ‘퇴행적 정파주의’를 ‘협동의 정파주의’로 바꾸는 일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부체크(Boucek)는 퇴행적 정파주의 구도에서 각 집단은 당 전체의 가치보다 개별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골몰하므로 당의 공유자원(무엇보다도 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을 파괴하고 결국 당은 분열과 붕괴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각 정파가 서로 적대하면서 퇴행적 정파주의로 치달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만일 선거의 승리가 물질적 이익(지대)과 당직 등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점점 심해진 고질적 병폐인 패권주의, 크고 작은 선거부정이 발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그런 전리품으로 인해 특정 정파의 조직이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면 소수정파는 2008년 분당과 같은 초강수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승자 독식의 현행 제도 아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우선 두 후보 모두 당 권력의 분점과 투명한 회계제도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세금과 당비가 특정 정파에 귀속되는 것부터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둘째는 아예 강령을 개정해서 당의 거버넌스를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내각제 형태로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퇴행적 정파주의의 원인은 진보적 가치의 훼손이다. 예컨대 ‘혁명성’이나 ‘계급성’과 같은 선명한 낱말이 정파의 이익을 은폐하는 외피가 된 것은 비단 통합진보당이나 한국의 대중운동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현상은 각국 진보운동이 사멸하는 징후였다(발리바르). 두 후보는 2012년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자주성’이나 ‘노동중심성’, ‘당내 민주주의’와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는 당대표 선거가 단지 정파간의 숫자 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고 앞으로 협동의 정파주의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집단간의 퇴행적 경쟁은 협동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셰리던). 이것은 곧 협동의 보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파의 지도자와 이론가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정파간 경쟁이 퇴행적이지 않으려면 당원과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 억측을 집단 구성원에게 경쟁적으로 유포하는 퇴행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각 정파가 이런 초보적인 민주적 절차에 성실하게 응한다면 그 과정은 곧 정파간의 오해와 반목을 씻는 화해의 과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두 후보는 현재의 당 강령에 비춰 정파의 이념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며 소속원을 등록하는 ‘정파 및 정책 등록제’를 공약해야 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정파간 경쟁이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이고, 당원 전체의 합의와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높아지는 바로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칼날도 무뎌질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당 내외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국민들로부터 능력(competency)은 물론 성실성(integrity) 면에서도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당은 일반적인 신뢰 회복 절차인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프로그램 제시에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도 철저히 국민의 신뢰 회복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선거만은 정파라는 낡은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의 사활이 그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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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4정태인/새사연 원장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지난 5월 1일 <PD저널>에 ‘패배 이후’라는 칼럼을 쓴 이후, 통합진보당 상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이 있을까.

통합진보당 정파들은 정확히 ‘치킨게임’을 치르고 있다. 어느 쪽이든 탈당하면 망할 거라는 예측 때문에 당이 깨지진 않겠지만, 비극은 이 게임이 ‘미친 놈’이 이긴다는 사실(<PD저널> 2011년 11월 30일자 ‘미친놈과 바보의 게임’을 참조하시라)에 있다.

만일 두 집단이 냉정하다면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는 것이 치킨게임의 균형인데 양 쪽은 6월말로 예정된 당대표 선거로 양보 집단을 결정할 요량이다. 다수결은 어떻게든 결론을 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선택지라고 할 수 있지만 또한 민주주의의 여러 해법 중 가장 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수결에 의한 양보가 진정한 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냐에 있고 더 큰 문제는 이런 해결이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어쩌면 통합진보당은, 발목을 매단 탄력 좋고 튼튼한 밧줄도 없이 100m쯤 더 떨어져야 하는 번지점프 중인지도 모른다.

영국의 정치학자 부체크(Boucek)는 최근 한 논문 ‘정파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에서 정파주의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협력적 정파주의’, ‘경쟁적 정파주의’, 그리고 ‘퇴행적 정파주의’가 그것이다. 내 보기에 통합진보당의 각 집단은 ‘퇴행적 정파주의’에 빠져 있다. 이 정파주의 구도에서 각 집단은 당 전체의 가치보다 개별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골몰해서 당의 공유자원을 파괴하며 당은 분열과 잠재적 붕괴 상태에 빠진다. 부체크는 1994년에 붕괴한 이탈리아 기독민주당의 70년대 행태를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정파주의는 거의 모든 정당에서 언제나 나타나는 현상이며 집단 간 경쟁은 각 집단 내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더 큰 가치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선을 향해 경쟁할 수 있다면 퇴행적인 정파주의도 어느 덧 협력적 정파주의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집단 간 경쟁은 ‘집단 의견의 양극화’(선스타인), ‘집단 환상’(베너부)으로 이어지기 일쑤여서 선스타인은 자신의 관찰 결과에 ‘법칙’이라는 낙인마저 찍었다. 실제로 현재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모두 추구한다고 공언한 전체 가치를 가차 없이 붕괴시키고 있는 중이다. 흔히 집단 간 경쟁은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집단 내에 퍼뜨리고 상대의 의도에 관한 추측을 양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각 집단의 지도자나 지식인이 이런 왜곡을 방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할 때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게시판이나 SNS에 난무하는 추측과 동조 댓글들을 보라).

협력적 정파주의는 흔히 정당 창립기에 나타난다. 새로 추구할 가치에 합의하고 희망에 부풀어서 구체적 실천 방안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통합진보당 내외에서 ‘제 2의 창당’, ‘새로 나기’, 그리고 ‘진보 시즌 2’라는 구호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과연 새로 합의할 수 있는 가치, 전략은 무엇일까. 나는 현재 각 정파의 가치 자체부터 철저한 성찰을 통해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주성’, ‘노동중심성’같은 가치가 바로 그러하다. 현실은 과거의 ‘자주 노선’으론 남북통일이나 동아시아의 평화체제를 이룰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과거의 ‘노동 중심성 노선’으론 평등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다. 세계의 대전환기에, 즉 진보가 대도약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이 무슨 시대착오란 말인가.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나아가서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바꿀 용의가 없다면 집단 간 경쟁이 협동으로 승화할 가능성 또한 사라진다.

현재야말로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각 집단의 리더가 아니라 당의 리더로서, 진보진영 전체의 리더로서 집단 간에 만연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모두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파괴된 국민의 신뢰야 말로 빨리 채워야 할 진보진영 모두의 공유자원이다. 과거 가치의 재해석, 새로운 가치에 대한 합의, 그리고 당내 (숙의) 민주주의야말로 추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오솔길이다.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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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정태인/새사연 원장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에 합의하고 보수를 확정해서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번에 현재 통합진보당은 치킨게임이라는 사회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물론 복잡다단한 현실을 이렇게 간단한 게임으로 파악할 때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두 당사자(정파)가 마음 속에 서로 다른 보수(報酬)표를 품고 있기 일쑤다. 하지만 양쪽 당사자 모두 ‘지금 밀리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자기 뜻을 고집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처럼 나가면 진보 전체가 망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치킨게임 상황임에 틀림없다.

<착한 경제학>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이번 사태에서 ‘공유지의 비극’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각 정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진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수십년 동안 진보가 목숨을 걸고 쌓아온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런 신뢰야말로 우리 모두의 공유자원이다. 그렇다면 노박의 ‘인간 협동의 다섯 가지 규칙’이나 오스트롬의 공유지 비극 해결의 7가지 원칙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배운 걸 당장 써먹어보자!

노박의 ‘규칙’, 그리고 오스트롬의 ‘공동체적 해법’도 단순화하면 결국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 게임(stag hunt game, 또는 assurance game)’으로 바꾸는 방안들이다. 옛날 사람들이나 심지어 동물들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협동했던 사례들을 잘 관찰해보면 나 홀로 살려고 해서는 풀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 가능한 문제로 바꿔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스트롬의 공유자원에 관한 방대한 연구도 결국 사람들이 공유 저수지나 삼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지혜를 정리한 것인데, 이 역시 게임으로 정리하면 사슴사냥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슴사냥 게임의 보수표는 위와 같다. 이 게임의 균형은 (협동, 협동)=(4, 4), 그리고 (배신, 배신)=(2, 2) 두 개다. 즉 상대가 협동한다면 나도 협동하는 게 낫고 상대가 배신한다면 나도 배신하는 게 답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가 협동할 때 그걸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는 게 이익이지만(모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애만 사교육시키면 등수가 왕창 올라갈 것이다), 사슴사냥 게임 상황이라면 나도 협동을 하는 게 더 낫다(우리 모두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돈도 굳고 애들도 행복해지며 그래도 공정한 게임이 가까워질 것이다).

기실 노박의 ‘규칙’은 혈연관계일 때, 반복해서 만날 때, 서로를 잘 알 때, 그리고 친한 사람끼리 모일 때 서로 협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되는 상황, 즉 보수가 바뀌어서 이제 사슴사냥 게임이 된다는 얘기다. 드디어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상대가 협동하리라 믿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슴사냥 게임 상황에서도 (배신, 배신)을 택하게 된다.

통합진보당같이 서로를 극도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자신의 이익마저 저버리는 (그러므로 균형이 아닌) 비극을 택하게 된다.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에 합의하고 보수를 확정해서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쪽이 상당한 손해를 보는 합의에 이르더라도 둘 다 망하는 (배신, 배신)보다는 낫다. 합의안을 확정하고, 그 합의를 어길 경우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에서 합의안을 만들면 대중이 응징하게 될 것이므로 가장 강력하다. 그럼 난마 같은 현재 상황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퇴행적 정파주의에서 협동의 정파주의로’가 내 나름의 답이다. 독자들도 이 글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묘책을 찾아내기 바란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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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정태인/새사연 원장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통합진보당 사태’다. 아마도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그래서 누가 되든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면 나는 새사연의 새 책, <리셋 코리아>의 실행계획을 만드느라 연구원들을 다그치고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 난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할 때가 되었다고 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바야흐로 ‘진보의 시대’를 열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도 외치는 건 그 증거이다. 이 위기에서 벗어날 진보적 정책기조를 제시하고 국민으로부터 현실적 정책능력도 인정받을 차례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진보세력’이 자멸하고 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착한 경제학’으로 본 ‘통합진보당 사태’를 연재할 생각이다. 현 사태를 한 방에 시원하게 해결할 방법, 예컨대 분열된 집단을 치유하기 위한 ‘진실과 화해’의 구체적 프로그램, 당내 정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보라는 더 큰 가치의 실현방식에 동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이 믿게 하는 ‘재발방지’ 프로그램, 당내 집단간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프로그램들, ‘숙의 민주주의’에 충실한 정당 개혁부터 턱하니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거니와, 설령 외국 논문을 뒤져 몇 가지 방안을 내놓고(이런 갈등은 인류 역사에 비일비재했기에 의외로 많은 대안이 존재한다) 이 ‘정답’을 따르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야말로 ‘진보시즌2’에 당원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하나 하나 합의안을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여 우선 추상적인 차원에서 크게 문제를 들여다봐서 어느 쪽에 해결방향이 있는지부터 짚어보자. 몇몇 언론이나 지식인은 현 사태를 ‘치킨게임’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치킨 게임’은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이라면 익숙할 사회적 딜레마 게임의 하나이다.(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 게임’, ‘치킨 게임’ 세 가지가 있다)

치킨게임은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딘이 열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 그대로 나타난다.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은 주로 여성에게 자신이 마초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동차를 마주 달리는 ‘미친 게임’을 했는데, 죽음이 두려워서 핸들을 트는 쪽이 겁쟁이(치킨)가 된다. 치킨의 치욕이 싫어 눈 감고 둘 다 가속기를 밟는다면 여차하면 사망에 이르는 게임이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상대가 나를 ‘미친 놈’이라고 보게 만드는 것이다. 즉 ‘미친 놈’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보수표는 위와 같은데(관심 있는 독자들은 주간경향 955호에 제시한 ‘죄수의 딜레마’와 비교해 보시라), 합리적인 집단이라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배신, 협동) = (4, 2), 또는 (협동, 배신) = (2, 4)를 택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통합진보당 내 두 정파는 상대에게 항복만을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배신, 배신)의 보수가 (1, 1)이 아니라 (-10, -10), (-100, -100)…으로 마이너스의 기하급수로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시선은 급속도로 싸늘해지고 있으며 다음 선거에서 이들은 모두 버림받을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왜 두 집단은 진보 전체로 볼 때 최악의 결과를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어느 한 집단, 또는 둘 다 ‘여기서 밀리면 우린 죽는다’는 집단생존의 문제로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의 핵개발 경쟁, 그리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대표적 예다(실제 남북관계를 치킨게임의 관점에서 본 분석으로 PD저널 2010년 11월 30일자, ‘미친놈과 바보의 게임’을 보시라). 상황을 이렇게 보는 집단에게 먼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이 순간 살아남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찌 해야 이 바보 같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다음번의 주제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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