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7정태인/새사연 원장

태어난 지 1년 남짓한 그야말로 갓난쟁이와 어른 원숭이 중 어느 쪽이 더 남을 잘 도울까? 어쩌면 둘 다 ‘유인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두 개체 앞에서 한 어른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이 더미를 스테이플러로 묶는 단조로운 작업이다. 방에서 나갔던 어른이 종이 뭉치를 들고 다시 돌아와서 스테이플러를 찾으려 두리번거린다. 두 ‘유인원’은 스테이플러가 탁자 밑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누가 어른에게 스테이플러 위치를 더 잘 알려줄까? 놀랍게도 우리 아가들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토마셀로 등이 2006년에 한 이 실험에서 한살 아가 24명 중 22명이 손가락으로 어른들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원숭이도 그런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만(자기에게 이익이 되거나 당위적인 이유가 있을 때) 그랬다. 돕기, 알려주기, 공유 등 이타적 행위에 관한 각종 실험에서 우리의 아가들은 침팬지나 원숭이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런 행위에 보상을 한다고 해서 아가들이 더 열심히 남을 돕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역효과를 낳았다.

 

교육과 같은 사회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아가들도 협동할 줄 안다. 말하자면 인간은 협동의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생존경쟁의 운명을 인간이라고 해서 어찌 벗어날 것인가?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봐서 어디 하나 잘난 것이 없는 인간은 무려 100만년 동안의 수렵채취 시대에 맹수들의 습격, 혹독한 기후변화, 굶주림을 이겨냈다. 오로지 인간만이 수십명에서 수백명 단위의 집단을 이뤄 성공적으로 협동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위대한 성공이었는지 이제 인간 스스로 기후변화를 만들어내 지구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다. 이런 진화의 역사가 인간 유전자에 알알이 박혀 있다고 추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뇌경제학(neuroeconomics) 실험은 인간이 서로 돕거나 불공정한 인간을 응징할 때 쾌락(비물질적 효용)을 느낀다는 것을 밝혔다. 인간은 생물학자 노바크(Nowak)의 표현대로 가히 ‘초협력자’이다.

 

낮에는 보육원 아이를 돌보고 밤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털모자를 짜는 우리 아내 ‘차 여사’가 느끼는 행복은 어쩌면 인간의 이런 본성을 되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렇다면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망은 그 본성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죽하면 자살률 세계 1위일까? 만일 경쟁의 장으로 느껴지는 직장에서 거꾸로 협동의 기쁨을 매 순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사회적 경제가 바로 그곳이다.

 

사회적 경제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 집단 생존의 터전이었다. 농경시대에는 두레나 품앗이, 계가 있었고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 형태가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구성원들이 협동의 규범, 상호성의 규범을 잘 지킬 때만, 즉 진정한 협동을 이룰 때만 효율성(경제적 목표)과 연대(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협동의 규범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걸 지키고 북돋울 수 있을까? 4주 뒤의 다음 칼럼을 기대하시라.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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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정태인/새사연 원장

 

이 칼럼이 마지막이라니, 문득 언제 연재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2011년 9월 20일,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글로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년 하고도 4개월여 동안 2주에 한 번 썼으니 35번쯤 연재했을까? 

이제는 많이 깎이고 무뎌졌지만, 술 마시면 어른들에게도 막말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에게 감히 반기를 들었던 모난 이미지가 ‘착한 경제학자’로 환골탈태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횡재에 가깝다.

내가 ‘착한 경제학’의 이름으로 현실을 들여다볼 때 내 현미경의 태반은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이었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주류경제학의 인간관에 반기를 들었다. 거슬러 올러가자면 197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요, 경제학자이자 인공지능 창시자, 한마디로 현대의 마지막 백과전서파라 할 수 있는 사이먼(Simon)의 ‘제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이를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가정과 달리 사람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모든 걸 계산한다기보다 주먹구구(heuristics)로 일을 처리한다는 주장이 제한합리성이다. 그러니 사이먼을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후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카네만을 거쳐 최근에는 가장 인기있는 분과로 떠올랐다. 카네만은 인간의 제한합리성이란 완전한 비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편향을 보인다는 점을 제시했다. 예컨대 그와 티버스키(Tversky)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이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과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피자를 시킬 때 토핑을 모두 올려놓은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빼는 방식과 자신이 원하는 토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주문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면 어느 쪽에 더 많은 토핑이 올라갈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추가하는 주문방식의 토핑이 2분의 1가량 적었다. 즉 어떤 상태를 사고의 출발점(준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있던 데서 줄어드는 것을 더 싫어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00원을 벌 때에 비해 잃었을 때 심리적 상실감이 더 크다. 이를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등으로 부른다. 

이렇게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결합하거나 인류학의 결과에 주목해서 사회 현실을 맨눈으로 설명하려 한다. 내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으로서의 협동이었고. ‘인간은 어떤 경우에 협동을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기서는 진화생물학과 활발한 교류가 벌어졌고 전에 소개한 노박의 ‘인간 진화의 5가지 규칙’은 그 중간 정리였다. 최근에 노박의 책, <초협력자>가 번역 출판되었는데 노박은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협동하는 종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해서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특히 나는 노박의 규칙 중에 집단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분석한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집단 경쟁에 의한 협동과 집단 정체성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유발하여 사회적 대립상태로 치닫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탐구는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노동자는 기업이라는 집단에 속해서 다른 기업과 경쟁하는 동시에 노동자 계급에 속해서 자본가와 경쟁(투쟁)하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보통 여러 집단에 동시에 속해 있으므로 한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여럿이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지도 흥미로운 주제이다.

또한 집단선택에서는 개인 수준의 선택과 집단 수준의 선택이라는 공진화(coevolution)가 일어나므로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집단에 변화가 올 수도 있고, 되먹임 효과를 통해 집단 전체의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해묵은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다. ‘착한 경제학’은 이런 흥미로운 얘기를 가득 품고 있다. 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안녕”이라는 인사를 드린다.

* <착한 경제학>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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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1 / 17 이은경/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현 시점에 꼭 필요한 고민이 담긴 책들을 함께 읽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 ③>『초협력자』

-협력, 경쟁보다 오래된 인간의 역사-

 

초협력자

(마틴 노왁, 로저 하이필드,

2012,사이언스북스)

대선 이후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시원한 대답을 내려 주는 이는 없어 보인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사람에 대한 탐구가 가장 기본이 아닐까. 인간의 이기와 무한 경쟁이 우리를 병들게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타와 협력은 그저 동화 속 이야기만 같이 느껴지기만 한다. 이 책의 작가는 감정에의 호소나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닌, 수학과 경제학, 진화 생물학 등을 통한 오랜 연구와 실험으로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와 경쟁보다 신뢰와 협력이 더욱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본성이 가장 잘 발현 될 수 있는 조건을 조목조목 나열해 준다. 지금 우리에게 이 보다 필요한 책이 또 있을까.

 

힐링이 아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대선 이후 읽을  만한 글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멘붕, 힐링, 부정선거 등이 주된 키워드일 뿐이고 대선에 대한 평가나 향후 전망에 대한 글들은 별로 나오지 않는 듯하다. 감정적 평가에 그에 기초한 전망은 이런 상황에서 독이 될 수 있다. 우클릭, 좌클릭, 후보 경쟁력, 민주당, 진보당 등에 대한 섣부른 평가는 자기 위안이거나 또 다른 현실 도피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섣부른 답이 아니라 짧게는 30년의 민주화 이후, 길게는 근대한국 사회의 사회운동을 전면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선거이후 드물게나마 나오는 글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운동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다. 맑스주의나 사회주의운동 등 전통적 진보적 가치로 돌아가 원칙적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 여성, 복지, 경제민주화 등 진보가 주장해왔던 정책들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 대중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글들이다. 보수여당에서 제목만 베껴가도 의제를 선점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만들어내고 국민적 의제화 하는 과정에서 진보적 가치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새로운 틀에서 진보적 가치를 새로 정립하자는 의견도 소수지만 나오고 있다. 기존 운동이 기초하고 있는 이념, 가치,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어디에서 출발할까

근래에 서구에서 주로 나오는 연구들은 주로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사회에 대한 고민이다. 진화이론에 근거한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게임이론 등. 인간이 만들어야 할 미래는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사회이어야 하며, 그를 위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이 “초협력자”이다.

인간 행동과 윤리의 유전적 기초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와 E. O. 윌슨이 창시한 "사회 생물학" 이래로 진화이론은 인간을 냉혹한 유전자의 매개체로 보아왔다. 한국사회 역시 진화이론은 과학적 영역이거나 우생학의 잔재 정도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는 이성적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사회적 존재로 도약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매우 근원적 본성이며 그 안에는 협력과 갈등, 권력과 연대, 평화와 폭력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은 주류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이성적, 합리적, 이기적 인간이다. 여기서 이기심을 제외하더라도 보수/진보를 모두 아우르는 사고구조는 인간의 이성적 측면에 대한 강조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진화심리학에서 밝히고 있는 여러 사례들은 인간의 시각/청각과 같은 지각, 식욕/수면욕과 같은 욕망, 행복/모성애/질투심 같은 감정, 도덕/헌신/충성심 같은 윤리 모두가 인간의 본성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사회생물학에서 밝힌 바대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현생 인류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는 사회적 본성이 내재되어 있고 그 안에는 이윤추구적 속성뿐만 아니라 협력, 헌신, 모성애, 우정, 신뢰와 같은 다양한 윤리적 기초를 갖고 있다.

 어떤 조건이냐가 중요하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 사고구조의 핵심은 “if~ then” 이라고 본다. 또한 후성유전학에서 유전적 발현의 기초는 “switch유전자” 이다. 어떤 조건에서 어떠한 반응이 유발되는데 그 반응은 진화적으로 형성된 생물학적, 인간 본성적 틀 안에 존재하지만 그 변이는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전자의 진화과정에서 나온 인간 존재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살아갈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조건에 처해져 있느냐에 따라 인간은 다르게 행동하며 살아가게 되고 그 범주는 사이코패스에서 성인(聖人)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진다.

하지만 첫 출발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변이의 다양성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계승, 발전하는데 기여하는 속성이 더욱 강하다. 개체의 성공을 위해 사기꾼은 항상 존재하지만 인간은 사기꾼을 찾아내고 응징하는, 더 나아가 ‘응징=복수’에 대한 쾌감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협력하고 신뢰하는, 속성과 그러한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편안해하는 본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변 조건과 상관없이 일관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태아시기, 3세까지의 양육시기, 12세 정도까지의 청소년 시기를 개별 인간의 본성이 정해지는 근본적 시기로 보는 이유는 각각의 시기가 유전자의 발현, 기본적 뇌와 신경계의 발현, 기본 신체구조와 심리구조가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한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것은 인간의 중요한 본성이다. 쓰레기를 투기하는 곳에 거울이나 사람 눈을 부착해두면 일탈행위가 급감하는 사례나 이 책에서 설명하는 틱포탯(Tit for tat)* 전략 등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양한 사고실험과 컴퓨터를 이용한 수학적 계량화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협력의 법칙을 저자가 최초로 창조해 낸 것은 아니다. 해밀턴과 윌슨 등의 사회생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토대를 구축한 위에 엑셀 로드같은 게임이론가 들의 작업, 스티븐 핑커 등 진화심리학자들의 뛰어난 작업에 의해 유전자와 개체의 적응도를 위해 살아가는 개체가 어떻게 협력과 사회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왔다. 이 책의 장점은 수학자와 프로그래머로서의 장점을 살려 광범위한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을 수행하면서 여러 영역의 진전을 하나의 실로 꿰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협력의 법칙 

이 책에서 밝힌 협력의 법칙은 첫째 직접 상호성, 둘째 간접 상호성, 셋째 공간 선택, 넷째 집단 선택, 다섯째 혈연 선택이다. 직접 상호성은 내가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주는 것이다. 폴라니가 이야기한 선물의 문화나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존재에 대한 기억을 길게 유지하는 속성, 가족, 혈족, 부족 등으로 이루어진 인간 기본 공동체 역사 등이 직접 상호성을 설명하는 증거들이며 가장 강력한 협동의 조건이기도 하다. 직접 상호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 범위는 150-200명 수준으로 조사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인류 역사에서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가장 기본 공동체 규모이다.  

간접 상호성은 사회 전체의 신뢰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 협력이 증가하는 등의 사례가 이것이다. 간접 상호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저자는 평판과 수다의 힘을 들고 있는데 인간이 주고받는 대화의 80% 이상이 남에 대한 가쉽이라고 한다. 이를 확대하면 “사회적 자본”, 동양의 “도”, “인의”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전반에 신뢰가 형성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차이는 그 사회의 운영원칙이 개인의 합리성(이윤)이 아닌 신뢰, 협동 등이다. 이러한 간접 상호성은 4번째 집단선택으로 이어진다. 집단선택은 사회생물학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며 저자가 단언한 것처럼 논리적으로 완결되지는 않았다. 핵심은 자연선택의 단위가 개체인지 집단인지, 다시 말해 개체수준의 이타적 행동이 집단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선택의 단위가 개체이면 집단선택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기의 단순한 집단선택(집단을 위해 자살하는 개체) 이론은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자살하는 병든 세포, 개체수준에서는 이기적 존재가 적응하지만 이타적 존재가 많은 집단이 항상 유리했다는 사실은 집단선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이유이다.

이 외에도 많은 협력의 조건들이 다양한 사례와 풍부한 수학적, 컴퓨터 공학적 근거들로 설명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볼 부분은 인간은 “어떤 조건일 때 협력 하는가” 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인간은 많은 협력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나 항상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수의 인류가 가장 거대한 파워를 가지고 자연을 개척하고 문명을 건설해가고 있다. 고도로 조직된 협력시스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꾸려가고 있음에도 인간 사회의 운영원리는 신뢰와 협력에 있지 않다. 인간사회의 초협력적 구조와 실제 사회운영에서의 개체 중심적 삶의 형식사이의 모순, 이것이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 책은 그를 위한 협력의 조건들을 설명해준다.

상식적 가치를 복원하자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제도를 변화시키고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등 많은 중요한 일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행복한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와 본성에 기초한 상호 협력 조건의 발견, 그래서 그것을 사회적 룰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변화시킬 사회의 시스템 운영원칙 자체가 “신뢰와 협동”, “도(道”), “인의(仁義)”가 되어야 한다. 이는 추상적 이론이나 고도로 조직화된 이념이 아니라 상식이며 보편이다.

맹자는 양나라 혜왕을 만나 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왜 이익을 말하느냐 인의가 전부이다(何必曰利 有仁義而已).”라고 일갈한다. 이는 사회의 운영원리가 이윤이나 합리성이 아닌 보다 보편적 가치, 보다 이상적이고, 상식적 가치에 기반 해야 나라가 위태롭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하는 홉스식의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모든 행동의 배경에 이기적, 계산적 이유가 존재한다는 차가운 이성의 세계가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그러한 마음, 그 마음을 보다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사회 운영원리, 이것들에서 새로운 사회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승리하기 위한 유력한 전략 중 하나. 배반하기 전까지 경기자는 항상 협력한다. 만약 배반했다면, 경기자는 복수할 것이다. 경기자는 빠르게 관용을 베푼다. 경기자는 반드시 상대와 한번 이상 경쟁할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자 소개

-로저 하이필드 (Roger Highfield)-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물리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그르노블에 있는 ILL(INSTITUT LAUELANGEVIN)에서 중성자의 정반사를 연구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뉴사이언티스트에서 20여 년간 과학 기자로 근무하며 과학계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새로운 소식들을 깊이 있게 전하여 영국 언론인 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2012년 현재는 영국 국립 과학 박물관과 철도 박물관 등을 포함한 과학 박물관 그룹에서 대외 언론과 홍보 등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있는 동시에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서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세계적인 발생학자 이언 윌머트(Ian Wilmut)와 함께 쓴 복제양 돌리 그 후를 포함해 해리 포터의 과학, 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등 여러 권의 대중 과학 책을 썼다.

-마틴 노왁 (Martin A. Nowak)-

수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이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생화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분자 진화 생물학자인 페테르 슈스터(Peter Schuster)와 준종 이론(quasi-species theory), 진화 게임 이론의 개척자인 카를 지그문트(Karl Sigmund)와 인간에서의 협력의 진화를 연구하여 198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임 이론을 진화 생물학에 적용함으로써 진화 생물학 분야에 탄탄한 수학적 이론의 기초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HIV를 비롯하여 바이러스성 질병과 암, 인간 언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로 생물학 전반과 진화 경제학의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옥스퍼드 대학교 수리 생물학 교수를 지냈으며 그 후 프린스턴으로 옮겨 고등 과학원 최초로 이론 생물학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 및 수학과 교수인 동시에 진화 동학 프로그램(Program For Evolutionary Dynamics) 책임자를 맡고 있다. 3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중 40편이 네이처, 15편이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 특히 2010년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과 함께 쓴, 진화론의 꽃인 혈연 선택 이론에 반기를 든 논문이 네이처표제 기사로 실리면서 진화 생물학계에 크나큰 논쟁을 불러왔다. 전 세계 생물학 분야와 수학 분야의 천재들이 일명 노왁 랜드(Nowakia)’로 불리는 그의 연구실로 모여들어 수학을 도구로 생명의 기원과 진화, 협력과 이타성의 비밀을 푸는 모험에 동참하고 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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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2정태인/새사연 원장

나이가 들다 보니 해가 바뀔 때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툭툭 끊는 것도 마뜩찮은데 그 단절에 의미까지 부여해야 하다니. 요 몇 해동안의 곤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건 지난 열흘, 8개월간 굶은 술을 한꺼번에 마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이하랴. 세월이 먹여 준 나이를 거부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패배했다. 새사연이 지난 2년간 줄기차게 쓴 것처럼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앙시앵레짐의 종말을 고했지만 새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긴 구체제란 그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후,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고 인정하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나 출간되었고 역사적 흐름을 추적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944년에나 세상에 나왔다. 현실에서도 루즈벨트가 '뉴딜'을 내 건 시점은 1933년이었으니 이제 4년이 막 지난 시점의 한국에서 극적인 전기가 열릴 것을 기대한 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현실이 더딜지라도 시간은 흐르고 새 시대는 열린다. 그 방향 역시 분명하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개별 이익이 맞부딪히는 사회적 딜레마를 시장이 아름답게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붕괴했다. 그런 세상은 수학의 가정 속에나 존재하며 인간은 서로 협동할 때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최근 번역된 노박의 "초협력자"는 인간이라는 미미한 생물체를 강력한 종으로 만든 것은 바로 협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난 30년은 진화의 법칙을 무시한 시대였다. 하이예크의 '치명적 오류'는 오히려 시장만능론에 적용되어야 한다. 아니 백보 양보하더라도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가, 어느 나라가 더 빨리 새 시대를 여느냐에 운명이 갈린다. 아니 '기후온난화'라는 전 인류가 겪고 있는 '공유지의 비극'은 전 세계가 협동할 때만 해결할 수 있다. 내 옆의 '모르는 남'을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새 시대는 열린다. 물론 신뢰는 목숨을 건 도박일지도 모른다. 배반당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남을 불신하고 오로지 경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더 확실하게 세상은 붕괴한다.

어떻게 해야 서로를 믿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새사연이 앞으로 연구할 주제 중 하나에 틀림없다. 추상적인 방향을 정책과 제도로 만들고 어느 덧 사회규범이 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방향이 확실하다면 새로운 사회도 열릴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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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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