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2정태인/새사연 원장

 

이 칼럼이 마지막이라니, 문득 언제 연재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2011년 9월 20일,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글로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년 하고도 4개월여 동안 2주에 한 번 썼으니 35번쯤 연재했을까? 

이제는 많이 깎이고 무뎌졌지만, 술 마시면 어른들에게도 막말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에게 감히 반기를 들었던 모난 이미지가 ‘착한 경제학자’로 환골탈태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횡재에 가깝다.

내가 ‘착한 경제학’의 이름으로 현실을 들여다볼 때 내 현미경의 태반은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이었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주류경제학의 인간관에 반기를 들었다. 거슬러 올러가자면 197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요, 경제학자이자 인공지능 창시자, 한마디로 현대의 마지막 백과전서파라 할 수 있는 사이먼(Simon)의 ‘제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이를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가정과 달리 사람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모든 걸 계산한다기보다 주먹구구(heuristics)로 일을 처리한다는 주장이 제한합리성이다. 그러니 사이먼을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후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카네만을 거쳐 최근에는 가장 인기있는 분과로 떠올랐다. 카네만은 인간의 제한합리성이란 완전한 비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편향을 보인다는 점을 제시했다. 예컨대 그와 티버스키(Tversky)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이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과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피자를 시킬 때 토핑을 모두 올려놓은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빼는 방식과 자신이 원하는 토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주문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면 어느 쪽에 더 많은 토핑이 올라갈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추가하는 주문방식의 토핑이 2분의 1가량 적었다. 즉 어떤 상태를 사고의 출발점(준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있던 데서 줄어드는 것을 더 싫어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00원을 벌 때에 비해 잃었을 때 심리적 상실감이 더 크다. 이를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등으로 부른다. 

이렇게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결합하거나 인류학의 결과에 주목해서 사회 현실을 맨눈으로 설명하려 한다. 내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으로서의 협동이었고. ‘인간은 어떤 경우에 협동을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기서는 진화생물학과 활발한 교류가 벌어졌고 전에 소개한 노박의 ‘인간 진화의 5가지 규칙’은 그 중간 정리였다. 최근에 노박의 책, <초협력자>가 번역 출판되었는데 노박은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협동하는 종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해서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특히 나는 노박의 규칙 중에 집단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분석한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집단 경쟁에 의한 협동과 집단 정체성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유발하여 사회적 대립상태로 치닫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탐구는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노동자는 기업이라는 집단에 속해서 다른 기업과 경쟁하는 동시에 노동자 계급에 속해서 자본가와 경쟁(투쟁)하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보통 여러 집단에 동시에 속해 있으므로 한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여럿이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지도 흥미로운 주제이다.

또한 집단선택에서는 개인 수준의 선택과 집단 수준의 선택이라는 공진화(coevolution)가 일어나므로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집단에 변화가 올 수도 있고, 되먹임 효과를 통해 집단 전체의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해묵은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다. ‘착한 경제학’은 이런 흥미로운 얘기를 가득 품고 있다. 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안녕”이라는 인사를 드린다.

* <착한 경제학>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6.28정태인/새사연 원장

 

6월 마지막 주에 통합진보당은 당대표 선거를 치른다. 내 보기에 이번 선거는 이 정당의 ‘마지막 선택’이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뻔한 죽음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만 남았다. 지난 3주간 통합진보당 사태를 다룬 ‘착한경제학’의 고통스러운 일탈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유일한 활로가 현재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꿔서 협동을 택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곧 현재의 ‘퇴행적 정파주의’를 ‘협동의 정파주의’로 바꾸는 일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부체크(Boucek)는 퇴행적 정파주의 구도에서 각 집단은 당 전체의 가치보다 개별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골몰하므로 당의 공유자원(무엇보다도 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을 파괴하고 결국 당은 분열과 붕괴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각 정파가 서로 적대하면서 퇴행적 정파주의로 치달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만일 선거의 승리가 물질적 이익(지대)과 당직 등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점점 심해진 고질적 병폐인 패권주의, 크고 작은 선거부정이 발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그런 전리품으로 인해 특정 정파의 조직이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면 소수정파는 2008년 분당과 같은 초강수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승자 독식의 현행 제도 아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우선 두 후보 모두 당 권력의 분점과 투명한 회계제도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세금과 당비가 특정 정파에 귀속되는 것부터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둘째는 아예 강령을 개정해서 당의 거버넌스를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내각제 형태로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퇴행적 정파주의의 원인은 진보적 가치의 훼손이다. 예컨대 ‘혁명성’이나 ‘계급성’과 같은 선명한 낱말이 정파의 이익을 은폐하는 외피가 된 것은 비단 통합진보당이나 한국의 대중운동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현상은 각국 진보운동이 사멸하는 징후였다(발리바르). 두 후보는 2012년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자주성’이나 ‘노동중심성’, ‘당내 민주주의’와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는 당대표 선거가 단지 정파간의 숫자 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고 앞으로 협동의 정파주의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집단간의 퇴행적 경쟁은 협동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셰리던). 이것은 곧 협동의 보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파의 지도자와 이론가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정파간 경쟁이 퇴행적이지 않으려면 당원과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 억측을 집단 구성원에게 경쟁적으로 유포하는 퇴행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각 정파가 이런 초보적인 민주적 절차에 성실하게 응한다면 그 과정은 곧 정파간의 오해와 반목을 씻는 화해의 과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두 후보는 현재의 당 강령에 비춰 정파의 이념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며 소속원을 등록하는 ‘정파 및 정책 등록제’를 공약해야 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정파간 경쟁이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이고, 당원 전체의 합의와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높아지는 바로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칼날도 무뎌질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당 내외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국민들로부터 능력(competency)은 물론 성실성(integrity) 면에서도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당은 일반적인 신뢰 회복 절차인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프로그램 제시에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도 철저히 국민의 신뢰 회복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선거만은 정파라는 낡은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의 사활이 그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신고

'새사연 2014 > [칼럼] 정태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의 문’  (0) 2012.07.23
'줄푸세'는 경제민주화의 적  (0) 2012.07.13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선택  (0) 2012.07.02
부끄러운 세계 1위  (0) 2012.06.18
추락 이후  (0) 2012.06.14
통합진보당 사태, 착한 해법은  (0) 2012.06.14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

오늘날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및 캐나다인데 이들 국가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조합원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였다. 최근 ICA는 전 세계 300대 협동조합을 선정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협동조합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 프랑스,독일,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였다.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탈리아는 1854년 토리노 노동자들이 만든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하여 150년의 협동조합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협동조합이 매우 활발한 곳 중 하나이다. 특히 에밀리아 로마냐에 가장 많은데, 이탈리아의 약 4만 3000여 개의 협동조합 중 1만 5000여 개가 에밀리아 로마냐에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 20개 주 중 하나로 이탈리아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곳이다. 면적이 약 22만Km2, 인구는 430만 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경기도와 비교하면 면적은 2배 정도이고 인구는 3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10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이 지역의 사회적 경제를 취재하는데 동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이곳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의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했다. 최근에는 유럽이 경제위기에 빠져 유로가 평가절하되면서 지금은 이보다 낮을 것이다. 2006년 캐나다의 레스타키스(Restakis)가 쓴 ‘에밀리안 모델(The Emilian Model)'에 따르면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이탈리아의 7%이지만 국내총생산의 9%를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하며, 각종 기술 등 관련 특허도 30%가 이 지방의 협동조합이나 기업들이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예전에 대학원 박사과정 때이다. 이 지역의 독특하고도 우월한 경제발전을 두고 1982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Brusco)가 처음으로 ‘에밀리아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후 많은 학자들 이 지역을 연구하며 ‘제3이탈리아(3rd Italy)’, ‘유연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등의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는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큰데 남부 이탈리아와 북부 이탈리아라는 두 가지 구분에서 벗어나 높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12개의 주를 가리키는 말이 제3이탈리아였다. 이 제3이탈리아 지역은 10인 이하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수요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유연전문화라 불렀다.

에밀리아 로마냐를 방문했을 때 주 정부의 무차렐리(Muzzareli) 경제장관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우리 주에는 40만 개의 기업이 있다” 고 했다. 그런데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약 400만 명, 따라서 하나의 기업 당 구성원의 수는 10명 정도인 셈이다. 여기에 노인과 어린아이를 제한다면 5~6명이 하나의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는 대기업도 없고, 대규모 공단도 없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내수와 수출을 담당하며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 중 800개 가량이 협동조합이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주도(州都)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이다. 에밀리아 로마냐 국내총생산의 30%를 볼로냐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업 50개 가운데 15개가 협동조합이다. 볼로냐 주민들에게 협동을 통한 생활 방식은 매우 익숙하다. 소비자협동조합부터 농업이나 건설 등 각종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었다.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의 경우는 등록된 조합원 수만 100만 명이 넘는다. 2008년 말 매출액만 20억 유로에 달할 정도이다. 조합원인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고, 이곳 마트에 진열된 제품의 70% 이상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들이 해당 조합마트에서 지출한 돈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지역에 투자된다.


 

볼로냐의 다양한 협동조합들

이곳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먼저 세계4대 와인협동조합인 ‘리유니트&치브(Riunite&Civ, 이하 리유니트)’를 들 수 있다. 1953년 9개의 양조장의 연합체로 출발한 리유니트에는 2010년 현재 25개 양조장연합과 2600명의 포도 재배 농민들이 가입되어 있었다. 리유니트에서 생산되는 와인 브랜드는 9개, 한 해 1억 1000만 병을 생산하며, 연간 매출 액은 1억 4000만 유로에 달했다. 생산된 와인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저렴한 가격과 높은 질을 인정받은 덕이다.

영세한 규모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와인을 유통시킬 힘이 없었던 농민들과 개별 양조장들은 이윤은 물론 손실까지 모두 나눠 갖는 공동운명체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이 된 농민들은 단순히 양조장에 포도를 납품하고 마는 생산자가 아니라 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가 되었다. 조합원들은 다른 와인 생산업체에 포도를 공급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값을 받으며, 와인 판매에 따른 수익금의 일부도 분배 받는다. 조합원에게 분배되지 않은 나머지 수익금은 조합 내에 재투자에 경쟁력 강화에 쓰인다. 물론 조합원으로서의 책임도 따르는데, 개인 매출액의 2.5%를 출자금으로 내야하고 만약 손실이 생길 경우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허나 아직까지는 경영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볼 곳은 주택건설협동조합 무리(Murri)이다. 무리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주택 수요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일반 건설회사들이 공급하는 주택을 수동적으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집을 직접 짓는 것을 모토로 지난 1963년에 설립됐다. 지금까지 건설한 주택이 1만 2000여 채, 현재 가입된 조합원만 2만 3000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주택건설협동조합 중 하나다. 무리에서 짓는 집은 가격에 비해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태양광 설비를 갖추는 등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된다. 그러면서도 집값은 최대 20%까지 싸다. 무리에서 지은 임대 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일반 임대 주택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집을 짓는 과정도 민주적이다. 건축 허가 과정부터 조합원들에게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고 주택의 설계와 시공에 조합원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의 집을 구입하고 싶은 조합원들은 1만 유로(약 1600만 원)를 조합에 내고 분양 신청을 한다. 경쟁률은 3:1 정도로 조합에 가입한 기간이 길수록 기회를 잡을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주택에 당첨되면 공사 진척에 따라 6번에 걸쳐 중도금을 납입하면 된다.

무리의 경우 은행 빚이 아니라 조합의 내부 적립금으로 주택을 짓기 때문에 당장 집이 팔리지 않아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경기가 침체되어도 타격이 적다. 2010년 기준 무리의 내부 적립금은 4700만 유로에 달한다.

세 번째는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La Rupe)이다. 이곳은 시로부터 노숙자 시설을 위탁 받아 운영하고 그 대가로 일종의 용역비를 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시설을 운영한다. 이런 식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을 사회적 협동조합이라 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부터 생겨났다. 1991년에는 사회적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법적 지위가 확립되었고, 2010년 기준 이탈리아 전체 사회서비스 지출의 13%에 해당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볼로냐에서는 민영화된 사회서비스의 60% 이상을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었다.

네 번째는 앞서 잠깐 언급되었던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 이하 코프)이다. 코프에서는 이페르 코프(Iper Coop) 등을 비롯한 대형 쇼핑몰 16개와 중소형 쇼핑몰 138개를 운영하고 있다. 코프의 조합원이 되려면 25유로의 가입비를 내야 한다. 2010년 현재 105만 명의 조합원이 존재하며, 이들이 낸 기금이 무려 19억 유로에 달한다. 2009년 매출액 역시 19억 4900만 유로에 달했다.

코프 조합원이 아니어도 코프 매장을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합원은 코프 매장에서의 할인 뿐 아니라 코프에서 운영하는 서점, 극장, 식당 등에서 최대 30%가지 할인을 받는다. 또한 조합원은 코프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여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발생한 매출이나 수익은 고스란히 해당 지역에 재투자된다는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요인은?

그렇다면 협동조합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훌륭한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는 이곳의 비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선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손꼽을 수 있다.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 지역으로 인문주의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시인 단테(Dante)를 배출해낸 볼로냐대학교가 이곳에 있다. 옛날 건물들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데, 유명한 것이 7개의 성당이다. 유럽 다른 지역의 건물에 비해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성당이지만 무려 1100년 동안 지어졌다는 점에 유명해진 성당이다. 동네가 워낙 가난하다보니 1100년 동안 조금씩 지어서 성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덕분에 온갖 시대별 건축 양식이 다 묻어 있다. 이 성당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중세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샛길도 많고 건물마다 처마처럼 나와 있는 회랑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인문주의가 발전했고,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이 싹트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독립을 쟁취한 빨치산의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80년대 인기 있었던 지오반니 꽈레스키(Giovanni Guareschi)의 시리즈 소설이자 테렌스 힐(Terence Hill)이 주연한 영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The Little World of Con Camilo)"에 잘 나타난다. 영화의 배경인 브레첼로(Brescello)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지오 에밀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신부인 돈 카밀로와 기계수리공인 뻬뽀네 시장은 사사건건, 때로는 치졸하게 다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파시스트와의 싸움에 있어서는 열렬한 빨친산이었으며,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공산당원 뻬뽀네는 공식적으로는 천주교를 부정하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세례를 받게 한다. 돈 카밀로는 동네 유지들로부터 ‘볼셰비키 사제’라는 별명을 얻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종교나 정파와 관계없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이다.

실제로 내가 만나 본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들은 자신의 인문주의와 빨친산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친일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조차도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겨우 가능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각 동네에 있는 민중의 집(우리나라로 치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빨치산 할아버지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명해주는 풍경이 일상이다. 주민들에게 어떻게 이런 독특한 경제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도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가 그래.” 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또는 실망스럽게 한다. 문화는 다른 누가 손쉽게 따라하거나 배울 수 있는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4 / 04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8)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콜록(Peter Kollock)은 1998년 '사회적 딜레마 : 협동에 관한 분석(Social Dilemmas : The anatomy of cooperation)'에서 기존의 연구들을 정리해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동기에 의한 해결(Motivational Solution), 전략에 의한 해결(Strategic Solution),  구조에 의한 해결(Structural Solution)이다. 앞서 살펴본 노박의 논문과 함께 사람들이 왜, 어떻게 협력하게 되는지를 파악하는데 유용한 설명이기에 소개한다.

 

동기에 의한 해결 - 인간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많은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가정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 앞에서 살펴본 최후통첩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전부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을 고려했다. 동기에 의한 해결은 여기서 출발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인간은 자신의 몫뿐 아니라 상대방의 몫에 대해서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즉, 동기에 의한 해결은 인간이 반드시 이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가정한다. 때문에 이기심이 아닌 다른 동기를 부여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동기가 변화하면, 그에 따라 게임의 구조 자체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

 

1) 사회적 가치 지향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다양하다. 상대와 나 사이에 이득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기심이나 물질적 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특히 많은 실험의 결과 자신이 얻는 결과와 함께 상대방이 얻는 결과에 대한 관심이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았다.

몇 가지 대표적인 분류를 보면 자신의 몫과 상관없이 상대방의 몫이 커지는 것을 선호하는 이타적 가치, 나의 몫과 상대방의 몫을 합했을 때의 결과가 최대화되는 경우를 선호하는 협력 지향적 가치, 상대방의 몫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으며 내 몫에 대한 관심만 기울이는 개인주의적 가치, 상대방과의 격차가 커지는 것을 선호하는 경쟁 지향적 가치, 반대로 상대방과의 격차가 최소화되는 것을 지향하는 평등 지향적 가치도 있다. 이 외에도 독특하지만 순교적 가치, 가학적 가치 등도 있을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이처럼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같은 목적의 게임에서도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 연구자가 제시한 객관적 보수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실험 참가자에게는 그만큼의 가치보다 덜하거나 더하게 된다. 참가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객관적 보수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구자의 의도와는 달리 실험 참가자들이 주관적 판단 기준에 의해 게임의 구조를 바꿔버리게 된다. 그리고 개인이 갖고 있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협력을 추구하는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삶보다 남에게 도움을 베푸는 삶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매우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로 자리잡도록, 사람들의 머릿속을 바꾸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의 머릿속을 바꾸느냐이다. 아쉽게도 이쪽 분야의 연구에서 아직까지 개인의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확실히 밝혀져야만 사회적 딜레마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서 조금씩 그 베일이 벗겨지는 중이다.

협력지향적 성향과 경쟁지향적 성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나라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랜 기간 조사를 한 연구가 있다. 여기서 밝혀진 사실은 경쟁이 협력보다 확연하게 빨리 습득된다는 것과 경쟁의 정도는 나라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고등교육, 그 중에서도 대학에서의 전공이 가치 성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다. 여기서 나온 결과 중 재미있는 것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일수록 무임승차자가 되는 경향이 높았다는 것이다.

 

2) 대화를 통한 정보 교환과 설득

또 다른 접근법은 개인의 성향보다는 구조나 환경적 특징이 개인에게 주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 중 가장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대화가 협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실험자들에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자 협력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나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한 학자가 대화가 왜 협력을 증가시키는지에 대한 4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정보가 많이 제공될수록 협력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협력할 것이라면 나는 그냥 무임승차자가 되는 편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화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 명확한 약속과 협의를 할 수 있게 한다. 셋째, 대화는 도덕적 권고를 통해 옳은 것 또는 적절한 것을 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 특히 도덕은 협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연구 주제로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넷째, 대화는 집단 정체성을 창조하고 강요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대화를 통해서 서로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일치시켜가는 것이 협력을 증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3) 집단정체성

집단정체성이 협력에 주는 영향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동기에 의한 해결, 전략에 의한 해결, 구조에 의한 해결에 모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다. 대화가 부재한 곳에서도 집단정체성이 존재하는 경우 협력은 강화된다.

한 연구는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경우 개인적 욕심을 억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집단 사이에 경쟁이 있을 경우 집단정체성은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상대방이 같은 집단의 구성원일 때 죄수의 딜레마는 사슴사냥 게임으로 변했다. 상대방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일 때는 여전히 죄수의 딜레마 형태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집단 간의 경쟁을 부추겨서 집단 내의 협렵을 촉진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집단 사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 속에서 집단이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다양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퇴행할 수도 있다.

왜 사람들은 같은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느낄 때 더 협력할까? 개인보다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의 추구가 인간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전략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도 있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잘 되어야 나의 이익과 안전도 보장된다고 판단해서, 전략적으로 집단 내의 구성원들에게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전략에 의한 해결 - 협력이 이익극대화의 전략이 되도록 하라

전략적 해결책은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협력을 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방법이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상대방의 행동에 의존하고 있는데, 대체로 반복 죄수의 딜레마의 형태로 수렴한다.

 

1) 상호성

상호성에 기반하여 행동하면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는 앞서 소개했던 악셀로드의 토너먼트 실험이다. 그는 죄수의 게임을 반복할 경우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에 관핸 전 세계의 경제학자와 게임이론가, 컴퓨터과학자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여기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매우 단순한 전략인 TFT 전략이었다. 이는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다. TFT 전략은 반복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 게임으로 변화시켰다.

악셀로드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1984년 '협력의 진화(The Evolution of Cooperation)'라는 글을 썼다. 여기서 협력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서로의 관계가 지속적이어야 한다. 둘째, 서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과거에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번 만나고 헤어질 사이이거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이 알지 못하거나, 과거 내 행동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이기적이 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악셀로드는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첫째, 시기하지 말아라. 둘째, 먼저 배반하지 말아라. 셋째, 협력에는 협력으로, 배반에는 배반으로 대하라. 넷째, 너무 영리하게 굴지 말아라.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전략을 쓰고 있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협력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게임을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제로섬 게임이란 한 사람의 이익이 정확히 다른 사람의 손실이 되는 경우이다. 상대방을 빼앗으려고 하면 상호 간의 배반만 가져온다.

허나 이는 완전정보를 가정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과거에 협력했는지 아니면 배반했는지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때문에 실수와 오해가 난무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TFT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보다는 관대한 GTFT가 서로 배반하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이 역시 앞서 설명한 바 있다.

 

2) 상대방을 선택할 권리

이는 착한 사람하고만 거래하는 전략이다. 앞서 상호성이 상대방이 배반할 경우 나도 배반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포기해버리고 다른 상대방을 찾는 전략이다. 모든 사람들이 협력적인 사람하고만 거래하려고 하고 배반자는 왕따 시킨다면, 당연히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집단 내에서의 평판이 중요한 영향을 한다.

 

3)무자비한 보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두 명 사이에 발생할 때보다 여러 명 사이에 발생할 때 더욱 해결이 어렵다. 여러 가지 전략을 쓴다고 해도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 유용한 것인 무자비한 보복 전략이다. 즉, 전체 구성원이 모두 협력하는 조건에서는 나도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서 발생하는 무임승차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인류 역사 속에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 온 공동체들을 조사해온 연구에 따르면 이런 식의 강력하고 위험한 전략을 사용한 공동체는 없었다고 한다.

 

4) 사회적 학습

이 전략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개인들이 정밀한 이해타산에 의해 행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이기적 인간이기 때문에 보상을 해주는 것은 좋아하고, 손해를 입는 것은 싫어한다. 이를 이용해서 협력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배반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학습시키면 사회적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5) 집단상호성

다시 집단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전략적 해결에서도 집단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협력을 증진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단순하게 집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집단 내부에서의 이타성을 높이는데는 효과적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타성은 집단의 구분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의 구성원들은 상호의존적이라는 믿음과 상호적이라는 기대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상호의존적이라는 믿음과 상호성에 대한 기대를 배제시키면 같은 집단으로 묶여 있어도 서로 간에 호의가 발생하지 않았다. 미래에 이 사람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배반하려는 욕심을 억누르고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9)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7)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간 협력의 조건 3 : 평판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이다. A가 B를 도와주고, B가 C를 도와주면 D가 A를 도와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평판(reputation) 때문이다. 상대를 도와주면 나의 평판이 좋아져서 훗날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대를 배신하면 이기적 인간이라는 평판을 받게 되어 훗날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실제 이론과 실증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는 사람이 더 많은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직접 상호성은 협력을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제한적이다. 우선 똑같은 두 사람이 반복적으로 만나야 하며, 서로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얻게 되는 혜택이 커야 한다. 하지만 때로 사람들은 낯선 이를 돕기도 하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을 돕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은 반드시 쌍방 대칭적으로 일어나지만은 않는다.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간접 상호성이다. 직접 상호성에 의한 협력이 물물교환이라면, 간접 상호성은 돈이 발명된 후의 교환과 같다. 평판이 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잘,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평판은 결국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소위 말하는 뒷담화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퍼지는 사회일수록 협력이 잘 일어나는 셈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q는 다른 사람의 평판을 알 수 있는 확률이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q > b/c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나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보다 평판이 확산되는 확률이 클 경우, 즉 잘 확산될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 협력의 조건 4 :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

네 번째는 네트워크 상호성(Network Reciprocity)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협력하는 사람과 배반하는 사람이 골고루 섞여 있고, 모든 사람과 가리지 않고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공간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가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라도와 경상도의 분리, 그리고 정치적 지지 정당의 선명한 차이가 그렇다. 내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같은 동네에 살거나 같은 종교를 믿거나 같은 학교를 다녔거나 혹은 같은 정치적 견해를 보유한 사람들일 것이다. 무엇이든 나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협력과 배반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협력하는 사람들은 협력하는 사람과 어울리고 배반하는 사람들은 배반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협력하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협력의 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배반하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배반으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때문에 협력하는 사람 주변으로는 사람이 모이지만, 배반하는 사람 주변에서는 사람이 멀어진다. 유유상종이다.

만약 협력하는 사람과 배반하는 사람이 아주 골고루 섞여 있는 상황에서, 그 둘이 만난다면 협력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이것이 반복되면 협력하는 사람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하면 도태되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서로 이득을 주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배반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 이것이 네트워크 상호성이다. 국지적 상호성이라고도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k를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수라고 하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b/c > k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이 주변사람의 수보다 클 경우, 즉 내가 만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협력은 잘 일어난다. 주변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커지므로 유유상종의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간 협력의 조건 5 : 착한 애들이 뭉치면 세다

다섯 번째는 집단선택(Group Selection)이다. 집단선택이란 어떤 집단이 어떤 특성을 갖는가 혹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집단들의 생존 가능성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그 속성이 전체로 퍼져나가게 될 지 아니면 없어지게 될지가 결정되는 과정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을 중심으로 협력과 배반의 선택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협력자끼리 모여 있는 협력자 집단과 배반자끼리 모여 있는 배반자 집단이 있다. 협력자들은 서로를 돕지만, 배반자들은 돕지 않는다. 협력과 배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득만큼 자손을 남길 수 있으며, 자손들은 부모의 집단과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게임이론으로 살펴본 사회적 딜레마 상황에서 보았듯이, 서로 협력할 때가 서로 배반할 때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협력자 집단이 배반자 집단보다 더 많은 이득을 거두게 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반면 자손 수 증가에서 뒤처지는 배반자 집단은 소멸하게 된다. 만약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는 혼합집단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는 경우 배반자가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 집단은 배반자 집단으로 변하게 되고, 협력자 집단에 의해 밀려난다. 이 경우 두 가지 차원에서 선택이 일어난다. 집단 내에 있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배반자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 차원에서 보자면 협력자 집단이 유리하다. 때문에 집단 내에서는 협력자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해도, 협력자 집단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전체적으로는 협력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집단선택을 다층선택(Multilevel Selection)으로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많이 있는 집단, 집단 내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집단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국가 스파르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쟁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희생전신이 강한 투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스파르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n을 한 집단의 최대 크기, 다시 말해 한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 수라고 하고 m을 집단의 수라고 한다.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b/c > 1+(n/m) 이다. 따라서 한 집단 내의 사람 수가 적을수록, 그리고 집단의 수가 많을수록 협력이 잘 일어난다. 한 집단 내의 사람 수가 적다는 것은 유유상종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뜻으로 협력자끼리 모여 있을 경우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을 경우 협력자가 불리하기 때문에 협력자끼리 모여 있을수록 협력자의 수가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집단의 수가 많다는 것은 협력자 집단이 배반자 집단을 이기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집단의 차원에서는 협력자 집단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혈연선택,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이라는 인간 협력의 조건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다. 를 정리해보자면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질수록, 만나는 주변 사람이 적을수록, 집단의 구성원이 적고 집단의 수가 많을수록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활용하고 반영하여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 규범, 법률, 제도를 만들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8)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