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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07 [착한 경제학] 단일화’를 넘어 ‘따로 또 같이’
  2. 2012.05.03 진보개혁 진영, 패배 이후 (1)

2012.11.07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에 어울리는 정치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차분하게 쓸 기회가 있겠지만 답부터 말하자면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이다. 착한 경제학의 핵심은 ‘신뢰와 협동’인데 최근 대부분의 연구들은 신뢰와 시민참여, 사회적 자본의 상관관계를 강조한다. 스웨덴의 로스슈타인은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성패를 결정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춰서 최근 초미의 관심사인 단일화부터 들여다보자.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쪽은 현재의 단일화 움직임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비정상이요, 야합이며 설령 단일후보가 선거에 이긴다 해도 과거의 DJP연합처럼 배반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단일화, 더 일반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정치연합’은 비정상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상이다. 다만 내각제에서처럼 선거 후에 득표 결과에 따라 몇몇 정당이 연합해서 내각을 구성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는 ‘선거 전 연합’(pre-electoral coalition), 즉 후보 단일화라는 특징을 가질 뿐이다. 이들은 선진국 중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 한국, 프랑스, 러시아인데 그 중 한국만 단일화를 하니 이런 비정상이 어디 있냐고 주장한다.
 
한 사람이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하는 러시아를 정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일단 제외하고, 프랑스는 이원집정제 하의 결선투표제를 택한 나라다. 우리나라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굳이 선거 전에 단일화라는 정치연합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제 남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 두 나라뿐인데, 미국은 정상이고 한국은 비정상이라는 건 사대주의가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2010년 포츠담대학의 프로이덴라이히는 대통령제 하에서도 절반 정도 이상이 정치연합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대통령제 하에서 연합은 예외가 아니라 규범이다”.
 
선거 전 단일화의 장점도 있다. 내각제 하의 연합은 선거 결과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지지만 선거 전 연합은 그 대상이 뚜렷하기에 정책기조와 내각을 미리 제시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서 선거 때의 공약을 뒤집어 정반대로 나라를 끌고 갈 수도 있는 나라라면 이런 정치연합은 국민들에게 조금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한다.
 
현재 논의되는 단일화는 DJP연합과 확연히 구별된다. 1997년 DJP연합은 정치학 개념으로 말한다면 ‘최소규모연합’(윌리엄 라이커)이다. 즉 승리를 따내기 위해 최소한의 자리를 보장하는 단일화였다. 하여 임동원 장관 해임 사건이라는 정책기조 상의 문제로 쉽게 깨질 수밖에 없었다. 승리에 연연해서 이념과 정책을 저버린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했던 것이다. 반면 이번의 정치연합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최소연결승리연합’(로버트 악셀로드)을 노리고 있다. 즉 자리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연합을 하는 것이다. 즉 승리를 위한 정책연합, 우리 용어로 ‘가치연합’인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위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수렴하는 경향을 갖는데(‘뒤베르제의 법칙’) 그것이 다양한 정책과 이념(예컨대 직접민주주의나 녹색정치)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면, 심지어 거대 양당의 나태와 오만을 조장한다면 다당제 하에서 정치연합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 문재인 후보가 약속한 것처럼 비례대표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나아가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면 훨씬 순조롭게 정치연합이 이뤄질 것이고, 안철수 후보가 바라 마지않는 ‘타협의 정치’도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단일화가 아니라, 진보진영까지 참여하는 ‘따로 또 같이’이다. 각 정당과 정파가 새로운 시대에 절실한 정책과 실천방안을 제시하여 합의 목록을 만들고, 그 정책을 수행할 내각 풀을 제시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민정부’를 세울 수 있고 한국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도 가능해진다. 앞으로 다가올 장기침체기에 제대로 된 개혁이라면 지배 삼각동맹의 목숨을 건 저항에 직면할 텐데, 시민들이 ‘우리의 정부’를 지켜줄 때만 그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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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5.03정태인/새사연 원장

누가 뭐래도 진보개혁진영은 패배했다. 4월 11일을 벼르고 별렀던 많은 시민들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0년 지자체 선거 승리, 박원순 서울 시장의 승리와 참신한 시정으로 가파르게 치솟던 희망의 불길에 찬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날 이후 20일이 지난 지금, 정치권이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는 없다. 아니 내 보기엔 각 당이 아전인수의 해석을 거쳐 더 큰 패배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에선 참여정부의 이해찬 총리와 국민의 정부의 박지원 비서실장이 손을 잡았다. 선거 과정 중에 일어난 사사건건의 불협화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과연 문제는 해결될까?

1954년 미국의 심리학자 셰리프 부부는 저 유명한 ‘로버 동굴의 실험(Robber cape experiment)’을 했다. 평범한 중산층 대학생들을 아무렇게나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정된 자원(물)을 놓고 경쟁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은 자기 집단에 이름을 붙이고 지도자를 뽑은 뒤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급기야 살인을 우려할 정도에 이르러 실험을 중단시켜야 했다.

7년 뒤 셰리프 부부는 ‘집단간 갈등과 협동’이라는 책에서 이런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 집단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과거의 적대적 집단에 대한 호의적 정보가 제시되어 혐오스러웠던 행동도 재해석될 것이고 지도자들은 협동을 향한 단호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대통령선거의 승리는 ‘친노’나 ‘비노’ 어느 한 집단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은다면 민주당 내의 협동이 이뤄질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협동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의 고달팠던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불행하게도 국민의 눈에는 박근혜 씨가 팍팍한 현실을 타개할 개혁의 지도자로 보였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무상급식에서 비롯된 보편복지의 청사진조차 보여주지 못한 채, 돌아가신 두 대통령만 전면에 내세우는 게 고작인 집단을 누가 믿겠는가? 즉 ‘협동 민주당’의 목표와 능력이 국민의 눈에 그저 그런 과거로의 회귀로 비친다면 그런 협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중도’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가 바로 그렇다.

불행하게도 진보진영은 더 문제다. 진보진영 내부의 집단간 경쟁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더 강한 조직력을 가진 집단이 투표를 통해 언제나 승리했다.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선 부정이 관행이 됐다. 나는 책과 강의에서 “집단 선택에 의한 협동”의 위험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집단의 개방성, 집단 가치의 보편성, 집단 구성원의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협동이라는 묘약은 죽음에 이르는 극약이 된다.

감베타라는 사회학자는 마피아와 같은 갱 집단을 예로 들어 ‘사회적 자본’의 그늘을 지적한 바 있다. 통합진보당 후보경선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의혹은 이런 그늘이 이미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집단 내 규범은 어느 덧 보편으로부터 훌쩍 멀어졌고 초등학생도 알만한 부정행위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감마저 사라졌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쉬쉬 하던 문제가 국회의원 선거라는, 숨을 곳 없는 더 큰 공간에서 확대재생산된 것이 관악을 사태이다.

“더 큰 적 앞에서 단결하자, 내부의 흠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자.” 이런 ‘조직 보위’의 억지 주장이야말로 진보의 장송곡이다. 진실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부정에 연루됐다면 당선자라 해도 읍참마속의 칼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보의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 아닌가.

진실을 밝혔을 때 올 극심한 내부 혼란과 분열을 두려워하지 말라. 집단 간의 갈등과 화해와 관한 수십 년 간의 연구는 집단 내부의 분열을 치유할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건강한 진보만이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어렵지만 유일한 묘방, ‘숙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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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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