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1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마침내 2012년이 밝아옵니다. 새해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입니다. 고백하거니와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사연과 저는 무력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부익부빈익빈이 구조화하면서 정권을 교체하자는 여론은 거셌지만, 진보세력은 대안으로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독재와 언론권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뿌려놓은 경제 성장의 환상은 기어이 이명박을 대통령 자리에 앉혔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은 결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며 수십여 편의 글을 이곳에도 올렸습니다만,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새사연 이사회에서 저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중운동이 오히려 살아날 가능성을 강조하고 5년 뒤 진보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데 무기가 될 대안을 치밀하게 벼려가자고 당부했었습니다. 지난 5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노동중심경제와 통일민족경제’의 학습을, 새로운 사회의 꿈과 그 나눔을, ‘주권혁명’을 호소해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새사연 회원 여러분.

1년 전 저는 신년사에서 두 가지 확고한 전망을 보고 드렸습니다.

첫째, 진보적 경제학자로서 눈부신 활동을 벌여온 정태인씨를 원장으로 초빙한 사실을 알려드리며 정태인-김병권 체제가 기존의 상근 연구진과 더불어 새사연의 내일을 괄목상대할 만큼 키워 나가리라 확신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새사연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가 선정하는 국내 싱크탱크 순위에서 5위로 올라섰습니다. 저희가 그에 값하는 연구 성과를 내놓고 또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가를 겸손하게 짚어보아야 마땅하겠지만, 새사연의 책무가 더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둘째, 시민운동-노동운동을 이끌어 오신 분들과 함께 <진보대통합시민회의>에서 제가 상임 공동대표를 맡은 사실을 보고 드렸습니다. 회원님들께서 보시다시피 통합진보당은 2011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와 달리 진보신당과 진보적 시민운동 세력이 조직적으로 합류하지 못해 미완의 통합이 되었고, 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보대통합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 자리에서 곧바로 물러났습니다. 진보신당은 독자적 길을 걷고 진보적 시민운동은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면서 대통합은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지형이 변화하는 흐름은 또렷합니다.

물론, 저는 오늘의 상황을 낙관하진 않습니다. 더구나 2011년에 우리는 많은 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선생이 운명할 때까지 진보대통합을 촉구했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 학습에 앞장서 온 서울노동광장의 이춘자 대표도 갑작스레 떠났습니다. 이 대표는 새사연 창립에 함께 한 박세길 부원장의 평생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향을 피워 그 분들의 명복을 빌며 저는 살아남은 자의 책무는 고통 받는 민중이 희망으로 반길 대안을 마련하고 그 대안을 실현할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다짐했습니다.

새사연은 정태인 원장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진보의 대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완의 진보대통합 또한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이뤄질 터입니다. 더디어도 이 땅의 민중은 아래로부터 다시 힘차게 단결의 깃발을 들어 올리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쉬움은 크지만 절망은 금물입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데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로 뭉쳐 뜨거운 열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현해갈 그 길은 적어도 5년 전에 견주면 훨씬 나아갔습니다. 미완의 그 길을 열어갈 임무가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사연은 새해 3월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체제로 새 출발 할 예정입니다. 늘 자랑스러운 새사연 회원님들께 성심으로 절 올립니다. 새해 회원님과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깨끗한 뜻 이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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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30손석춘/새사연 이사장

권영길의 눈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그가 기자간담회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권영길이 회견문을 읽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한 순간은 앞으로 건설될 통합 진보정당에서 어떤 당직과 공직도 맡지 않겠다며 사실상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대목이 아니었다. 서울 “삼선교 쪽방의 국민승리21 시절부터, 2004년 총선승리의 영광, 분당의 상처까지 모든 고난과 영광의 세월동안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은 권영길의 영혼”이었다고 회고할 때였다.

왜 권영길은 그 대목에서 눈시울 적셨을까. 민주노동당과 더불어 걸어온 그 길이 가시밭이었고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기실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기자 출신의 정치인 권영길은 물론, 진보정당의 정치 활동이나 정책을 보도하는 데 내내 인색했다. 흔히 진보언론으로 꼽히는 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복지’ 쟁점화, 진보정당 없었다면…

단적인 보기가 최근 퍼져가고 있는 ‘복지’ 의제다. 권영길은 진보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백의종군을 밝힌 간담회에서 현재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은 한국사회 최대 쟁점”이라고 지적한 뒤 그 쟁점들은 “진보정당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랬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이후 줄기차게 ‘무상 의료’와 ‘무상 등록금’의 단계적 실현을 주창해왔다. 생활 현장에서 무상급식 운동을 애면글면 벌여온 사람들도 대체로 진보정당의 당원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신문도 방송도 진보정당의 정책이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진보정당의 복지정책 공약을 구색맞추기식으로 보도했을 때도 “비현실적”이라는 꼬리표를 살천스레 달았다. 가장 오랫동안 복지정책을 지며리 제기해온 원내 진보정당에 언제나 소홀했던 언론이 2010년 들어 ‘복지’를 의제로 설정하는 모습을 탓하자는 게 전혀 아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고 의미 있는 편집으로 마땅히 평가할 일이다. 다만 뒤늦게 복지를 의제로 부각하면서도 시민사회 중심으로 보도하는 반면, 진보정당의 정책을 보도하는 데 여전히 인색한 풍경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전혀 내키진 않지만 명토박아둔다. 미디어오늘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에도 정파적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윤똑똑이들을 위해서다. 심지어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사설과 칼럼을 쓸 때도 당시 논설주간은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 아니냐고 물었다. 사실 여부를 답하고 싶지 않아 웃어넘겨서일까. 그는 확신을 한 듯이 다른 사설을 썼을 때도 그 말을 불쑥 꺼냈다. 참으로 씁쓸했지만 그가 해직 기자로 걸어온 길에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고 싶어 사실이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미묘한 웃음을 보내며 “그럼 비밀당원이겠지”라고 혼잣말처럼 단정했다.

흘러간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럴 뜻은 전혀 없다. 다만 대한민국 언론계에서 진보적 생각을 표현하는 일조차 쉽지 않고 바로 그만큼 진보정당이 커나가기는 더 어렵다는 진실을 동시대의 언론인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권영길의 눈물은 민주·민중의 슬픔

물론, 이제 나는 더 이상 직업적 기자가 아니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기자직을 그만둔 뒤 제법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언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언론 보도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은 실현 불가능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짚고 싶다. 아울러 자신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편향의 칼럼을 노상 써가는 현직 언론인들이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편에 서서 시민정치운동이나 주권운동에 참여한 지식인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현실에 조금이라도 성찰을 권할 따름이다.

권영길은 간담회를 정리하는 발언에서 취재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은 진보진영만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읍소했다.

가만히 묻고 싶다. 진보대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한국 정치에 절실하다고 판단하는 언론이 대한민국에 있는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칭 보수든 진보든 한국 언론은 진보정당이 내부 갈등으로 쪼개질 때 비로소 돋보이게 편집했다. 권영길이 아픔을 들먹이며 울먹인 바로 그 시점이다. 진보언론의 지면조차 분당을 부추기는 칼럼들을 곰비임비 편집하지 않았던가.

두루 알다시피 40대 후반 나이에 언론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권영길은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에 이어 민주노동당 창당에 나섰다. 오랜 냉전으로 얼어붙은 박토에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렸다. 그 자신 지역구 당선을 비롯해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새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로 키워왔다. 그의 노고에, 어느새 일흔이 넘은 그의 서러움에 경의와 위로를 보내는 까닭이다.

아울러 현직 언론인들, 특히 진보언론의 현역들에게 쓴다. 권영길의 눈물은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눈물이다. 동시에 진보대통합의 눈물이다. 그 슬픔은 맞닿아 있다, 더 깊은 민주주의의 눈물, 지금 이 순간도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눈물과.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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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마침내 진보대통합연석회의가 긴 산고 끝에 합의를 낳았습니다. 2011년6월1일 새벽 4시를 넘어 합의를 이루기까지 연석회의에 혼신의 힘을 다한 모든 진보 정파에 경의를 표합니다.
개인적으로 진보대통합을 촉구하는 글을 곰비임비 써오면서 <복지국가와진보대통합시민회의>에 상임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동참했던 작은 보람도 느낍니다.
아직 새로운 진보대통합정당이 출범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슬기롭게 이겨가리라 믿습니다. 바라건대 새로운 진보정당이 2012년 4월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일궈내고 고통받는 민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한국 정치를 벅벅이 바꿔가길 기원합니다.

<오마이뉴스> 창간때부터 10년 넘게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좋아하는 분들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만 서툴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실 그동안 너무 많은 칼럼과 책을 써왔습니다. 마침 출간한 <박근혜의 거울>로 박근혜가 왜 대통령에 적격이 아닌가도 알기쉽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영남지역의 서민들이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분간 블로그를 쉬면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상근 연구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의 대안 연구에 몰입하겠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고개숙여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자우편 주소를 남깁니다(2020gil@hanmail.net).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2011년5월24일자)을 올립니다. 연석회의가 합의를 이루기 전에 쓴 글입니다만, 앞으로 진보대통합정당을 국민 대다수인 민중 앞에 선보이기까지 3항18자의 실사구시 철학은 유효한 원칙이 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시론 / ‘진보대통합’이 섬길 대상은 민중이다

간단하다. 평생을 진보운동에 바친 진보연대 정광훈 대표가 즐겨 쓴 말이다. 권력이 전교조를 ‘빨갱이’로 살천스레 몰아세울 때다. 전교조가 빨간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참교육’이 열린다고 응수했다. 민중의 삶이 어려운 까닭도 간단했다. 전기가 양에서 음으로 흐르듯이, 권력이 민중에서 나와 정치로 흘러야 하는 데 그게 고장이 났다고 풀이했다.

아스팔트 농사에 열정을 쏟은 ‘우리 시대의 농민’ 정광훈은 진보정당 선거운동 자리에서 삶을 마쳤다. 투사다운 최후다. 정광훈은 해남 동향인 ‘전사 시인’ 김남주와 오월의 투사들이 묻힌 빛고을 땅에 몸을 섞었다. 여느 윤똑똑이 먹물보다 간명하게 현실을 꿰뚫었던 ‘늙은 투사’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감히 진보대통합이라고 판단한다. 미더운 농민들 앞에서 진보대통합에 방점을 찍고 연단에서 내려오던 내게 건넨 당신의 다사로운 눈길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다. 다시 향을 피우고 애잔하게 타오르는 향연 아래 이 글을 쓴다. 마침 진보대통합이 익어가고 있어서다. 다만 마지막 고비가 강파르다. 왜 지금 진보대통합인가부터 새삼 짚고 싶은 까닭이다.

고통 커가고 희망 보이질 않아

진보대통합은 특정 정파의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다. 특정 정파의 패권을 위해서도 아니다. 진보세력 개개인의 ‘자리’를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진보대통합이 절실하고 절박한 이유는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고통이 무장 커져가는 데도 도통 희망이 없어서다.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가 15년째 민중의 삶을 꼭뒤 누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부자 감세에 더해 남북 갈등의 증폭으로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의 폐해는 더 전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데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 그 최소강령으로 뭉쳐야 옳다. 문제는 그것을 넘어 특정 정파의 논리를 고집하는 데 있다. 더러는 자본주의 폐절을 선언하지 않는다고 진보대통합 논의를 폄훼하지만, 통합의 참뜻을 놓친 무책임한 선동이다. 더러는 신자유주의를 엘리트적 개념이라며 부르대지만,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은 나라에서 국민이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예단이야말로 엘리트적 발상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또렷하게 선을 긋지 못할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비정규직 확산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정당화한다.

더 큰 갈등은 대북문제에서 불거지고 있다.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최소강령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종북논쟁’으로 당이 쪼개진 경험을 진보세력은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의 자리에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이 ‘종북’으로 시험받고 있다거나, 딴 살림 차릴 명분만 찾는 ‘종파’로 경멸받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통합은 어렵다. 남과 북의 신자유주의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어 선 새로운 사회를 당면목표로 삼고 두 체제의 잘잘못을 따져가자는 데까지 합의한 상황에서 대북문제로 진보대통합이 파국을 맞는다면, 우스개가 될 수 있다.

최소 강령으로 대통합 이뤄내야

더구나 남쪽 진보세력에게 선결과제는 민중의 고통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자는 데 합의한 ‘동지’들이 대북문제로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분단체제의 굴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최소강령, 아니 최적강령으로 진보대통합을 이룬 뒤 어떤 경제정책, 어떤 통일정책을 펼 것인가를 실사구시의 자세로 섬세하게 만들고 국민 앞에 내놓는 게 집권을 꿈꾸는 대안 정당이 걸어갈 길이다.

눈 돌려 브라질 노동당을 보라. 3기째 집권하며 빈부차를 줄여가고 있다. 그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한국 진보세력은 고통 받는 민중 앞에 석고대죄해야 옳지 않을까. 진보대통합이 최우선으로 섬길 대상은 민중이다. 민중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면 통합은 어렵지 않다. 반신자유주의, 분단체제 극복, 국정대안 제시, 3항18자다. 진보대통합의 실사구시 철학, 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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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