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개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6.01 통합 진보당 사태와 치킨게임
  2. 2012.05.03 진보개혁 진영, 패배 이후 (1)

2012.06.01정태인/새사연 원장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통합진보당 사태’다. 아마도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그래서 누가 되든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면 나는 새사연의 새 책, <리셋 코리아>의 실행계획을 만드느라 연구원들을 다그치고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 난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할 때가 되었다고 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바야흐로 ‘진보의 시대’를 열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도 외치는 건 그 증거이다. 이 위기에서 벗어날 진보적 정책기조를 제시하고 국민으로부터 현실적 정책능력도 인정받을 차례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진보세력’이 자멸하고 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착한 경제학’으로 본 ‘통합진보당 사태’를 연재할 생각이다. 현 사태를 한 방에 시원하게 해결할 방법, 예컨대 분열된 집단을 치유하기 위한 ‘진실과 화해’의 구체적 프로그램, 당내 정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보라는 더 큰 가치의 실현방식에 동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이 믿게 하는 ‘재발방지’ 프로그램, 당내 집단간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프로그램들, ‘숙의 민주주의’에 충실한 정당 개혁부터 턱하니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거니와, 설령 외국 논문을 뒤져 몇 가지 방안을 내놓고(이런 갈등은 인류 역사에 비일비재했기에 의외로 많은 대안이 존재한다) 이 ‘정답’을 따르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야말로 ‘진보시즌2’에 당원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하나 하나 합의안을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여 우선 추상적인 차원에서 크게 문제를 들여다봐서 어느 쪽에 해결방향이 있는지부터 짚어보자. 몇몇 언론이나 지식인은 현 사태를 ‘치킨게임’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치킨 게임’은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이라면 익숙할 사회적 딜레마 게임의 하나이다.(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 게임’, ‘치킨 게임’ 세 가지가 있다)

치킨게임은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딘이 열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 그대로 나타난다.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은 주로 여성에게 자신이 마초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동차를 마주 달리는 ‘미친 게임’을 했는데, 죽음이 두려워서 핸들을 트는 쪽이 겁쟁이(치킨)가 된다. 치킨의 치욕이 싫어 눈 감고 둘 다 가속기를 밟는다면 여차하면 사망에 이르는 게임이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상대가 나를 ‘미친 놈’이라고 보게 만드는 것이다. 즉 ‘미친 놈’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보수표는 위와 같은데(관심 있는 독자들은 주간경향 955호에 제시한 ‘죄수의 딜레마’와 비교해 보시라), 합리적인 집단이라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배신, 협동) = (4, 2), 또는 (협동, 배신) = (2, 4)를 택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통합진보당 내 두 정파는 상대에게 항복만을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배신, 배신)의 보수가 (1, 1)이 아니라 (-10, -10), (-100, -100)…으로 마이너스의 기하급수로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시선은 급속도로 싸늘해지고 있으며 다음 선거에서 이들은 모두 버림받을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왜 두 집단은 진보 전체로 볼 때 최악의 결과를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어느 한 집단, 또는 둘 다 ‘여기서 밀리면 우린 죽는다’는 집단생존의 문제로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의 핵개발 경쟁, 그리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대표적 예다(실제 남북관계를 치킨게임의 관점에서 본 분석으로 PD저널 2010년 11월 30일자, ‘미친놈과 바보의 게임’을 보시라). 상황을 이렇게 보는 집단에게 먼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이 순간 살아남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찌 해야 이 바보 같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다음번의 주제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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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5.03정태인/새사연 원장

누가 뭐래도 진보개혁진영은 패배했다. 4월 11일을 벼르고 별렀던 많은 시민들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0년 지자체 선거 승리, 박원순 서울 시장의 승리와 참신한 시정으로 가파르게 치솟던 희망의 불길에 찬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날 이후 20일이 지난 지금, 정치권이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는 없다. 아니 내 보기엔 각 당이 아전인수의 해석을 거쳐 더 큰 패배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에선 참여정부의 이해찬 총리와 국민의 정부의 박지원 비서실장이 손을 잡았다. 선거 과정 중에 일어난 사사건건의 불협화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과연 문제는 해결될까?

1954년 미국의 심리학자 셰리프 부부는 저 유명한 ‘로버 동굴의 실험(Robber cape experiment)’을 했다. 평범한 중산층 대학생들을 아무렇게나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정된 자원(물)을 놓고 경쟁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은 자기 집단에 이름을 붙이고 지도자를 뽑은 뒤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급기야 살인을 우려할 정도에 이르러 실험을 중단시켜야 했다.

7년 뒤 셰리프 부부는 ‘집단간 갈등과 협동’이라는 책에서 이런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 집단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과거의 적대적 집단에 대한 호의적 정보가 제시되어 혐오스러웠던 행동도 재해석될 것이고 지도자들은 협동을 향한 단호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대통령선거의 승리는 ‘친노’나 ‘비노’ 어느 한 집단의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은다면 민주당 내의 협동이 이뤄질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협동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의 고달팠던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불행하게도 국민의 눈에는 박근혜 씨가 팍팍한 현실을 타개할 개혁의 지도자로 보였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무상급식에서 비롯된 보편복지의 청사진조차 보여주지 못한 채, 돌아가신 두 대통령만 전면에 내세우는 게 고작인 집단을 누가 믿겠는가? 즉 ‘협동 민주당’의 목표와 능력이 국민의 눈에 그저 그런 과거로의 회귀로 비친다면 그런 협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중도’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가 바로 그렇다.

불행하게도 진보진영은 더 문제다. 진보진영 내부의 집단간 경쟁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더 강한 조직력을 가진 집단이 투표를 통해 언제나 승리했다.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선 부정이 관행이 됐다. 나는 책과 강의에서 “집단 선택에 의한 협동”의 위험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집단의 개방성, 집단 가치의 보편성, 집단 구성원의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협동이라는 묘약은 죽음에 이르는 극약이 된다.

감베타라는 사회학자는 마피아와 같은 갱 집단을 예로 들어 ‘사회적 자본’의 그늘을 지적한 바 있다. 통합진보당 후보경선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의혹은 이런 그늘이 이미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집단 내 규범은 어느 덧 보편으로부터 훌쩍 멀어졌고 초등학생도 알만한 부정행위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감마저 사라졌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쉬쉬 하던 문제가 국회의원 선거라는, 숨을 곳 없는 더 큰 공간에서 확대재생산된 것이 관악을 사태이다.

“더 큰 적 앞에서 단결하자, 내부의 흠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자.” 이런 ‘조직 보위’의 억지 주장이야말로 진보의 장송곡이다. 진실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부정에 연루됐다면 당선자라 해도 읍참마속의 칼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보의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 아닌가.

진실을 밝혔을 때 올 극심한 내부 혼란과 분열을 두려워하지 말라. 집단 간의 갈등과 화해와 관한 수십 년 간의 연구는 집단 내부의 분열을 치유할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건강한 진보만이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어렵지만 유일한 묘방, ‘숙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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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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