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1 / 2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박근혜 정부와 경제민주화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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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경제 민주화는 진보가 처음으로 확립한 대안의제

2. ‘박근혜 경제 민주화 법안’을 제안하라.

3. 박근혜정부 ‘성장전략’이 경제민주화 대체할까.

4. 경제 민주화의 발전방향과 시민사회


 

[본 문]


1. ‘경제 민주화’는 진보가 처음으로 확립한 대안의제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사회의 진보는 주요 의제에서 철저히 수동적인 ‘안티테제(Anti-These)’ 중심이었다. 신자유주의 비판,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축소, 노동 유연화 반대, 한미 FTA 반대 등으로 점철되었던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노동유연화, 세계화, 개방화 등의 의제구도에 편입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는 처음으로 안티테제, 저항의제에서 벗어나 국민적 공감을 얻는 대안의제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노동권 강화’ 3대 의제가 그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부유세나 무상의료 무상교육처럼 부분적 영역에서 대안의제 확립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국지적인 경우로 제한되었다. 개혁 진보가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의제 지형 구도를 바꾸는 대단히 중요한 진보를 이룩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 복지나 경제 민주화 자체는 보수적 의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지만 이런 경우 역사적 맥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외환위기 이후의 우리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적어도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개혁과 진보의 성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3대 의제는 앞으로 수년 동안 한국의 진보 시민사회운동이 견지해야 할 의제이자 달성해야 할 목표이며, 오랜만에 한국의 진보가 확립하고 국민 앞에 공인 받은 대안 의제이다. 한국 진보 시민사회운동의 전략적 목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전략적 목표로 나가는 출발점은 될 것이다. 앞으로 이 내용을 계속 진보적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 특히 시장 자율과 규제완화, 감세와 민영화, 효율과 노동유연화 같은 신자유주의 의제들에 대칭되는 의제들로서 굳혀나가고, 저변 논리를 더 확장시켜 나가면서 진보의 전략적 미래 정책 목표를 재구성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노동권 회복 과제에서, 진보적 시민사회는 노동권 회복에 더 무게 중심을 두면서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추구하려는 전략적 지향을 강화해야 한다. 1700만 노동자의 권리회복과 협상력 강화, 힘의 재 균형이야말로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을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 의제의 경우, 재벌 개혁을 넘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경제 대개혁의 상징적인 이름’으로서 더욱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더 나은 국민들의 물질적 삶과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해줄 비전과 방향이 경제 민주화라는 보통명사 안에 담겨야 한다. ‘안으로는’ 작업장 민주주의와 경영권 참여라는 내적 깊이를 더해가고, ‘밖으로는’ 사적 시장경제를 넘어 사회적 경제를 포함하는 다양한 소유형태를 포용하는 대안 시스템의 추구로까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현재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재벌개혁은 “차입경영, 과잉 중복 투자, 불투명한 경영관행, 총수경영 등 한국재벌의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모습을 영미식의 선진적이고 서구적인 기업으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후진적인 재벌을 미국식의 선진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아예 재벌체제 자체가 선진국 기업 모델과 다르니 해체하자는 얘기도 존재했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재벌개혁은 철저하게 ‘한국적 특수성’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버전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버전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징을 갖는다. 한국적 특수성으로부터 제기되고 있기 보다는, 신자유주의가 누적시키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발시킨 불평등의 세계사적 문제제기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글로벌 금융자본과 함께 신자유주의 한국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한국재벌이 신자유주의가 구조적으로 양산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현재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과거처럼 한국적 특수성으로부터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불안정성을 노정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 민주화 의제의 생명력은 ‘지금부터’이다.

2. ‘박근혜 경제 민주화 법안’을 제안하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곧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어디서부터 경제 민주화를 시작할 것인가? 당연히 박근혜 당선자의 경제 민주화 공약을 재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이 제안한 내용의 핵심을 빼버린 후 2012년 11월 중순 최종 발표한 박근혜 표 경제 민주화 공약이 바로 ‘경제 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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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 / 01 / 17 이은경/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현 시점에 꼭 필요한 고민이 담긴 책들을 함께 읽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 ③>『초협력자』

-협력, 경쟁보다 오래된 인간의 역사-

 

초협력자

(마틴 노왁, 로저 하이필드,

2012,사이언스북스)

대선 이후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시원한 대답을 내려 주는 이는 없어 보인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사람에 대한 탐구가 가장 기본이 아닐까. 인간의 이기와 무한 경쟁이 우리를 병들게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타와 협력은 그저 동화 속 이야기만 같이 느껴지기만 한다. 이 책의 작가는 감정에의 호소나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닌, 수학과 경제학, 진화 생물학 등을 통한 오랜 연구와 실험으로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와 경쟁보다 신뢰와 협력이 더욱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본성이 가장 잘 발현 될 수 있는 조건을 조목조목 나열해 준다. 지금 우리에게 이 보다 필요한 책이 또 있을까.

 

힐링이 아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대선 이후 읽을  만한 글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멘붕, 힐링, 부정선거 등이 주된 키워드일 뿐이고 대선에 대한 평가나 향후 전망에 대한 글들은 별로 나오지 않는 듯하다. 감정적 평가에 그에 기초한 전망은 이런 상황에서 독이 될 수 있다. 우클릭, 좌클릭, 후보 경쟁력, 민주당, 진보당 등에 대한 섣부른 평가는 자기 위안이거나 또 다른 현실 도피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섣부른 답이 아니라 짧게는 30년의 민주화 이후, 길게는 근대한국 사회의 사회운동을 전면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선거이후 드물게나마 나오는 글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운동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다. 맑스주의나 사회주의운동 등 전통적 진보적 가치로 돌아가 원칙적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 여성, 복지, 경제민주화 등 진보가 주장해왔던 정책들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 대중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글들이다. 보수여당에서 제목만 베껴가도 의제를 선점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만들어내고 국민적 의제화 하는 과정에서 진보적 가치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새로운 틀에서 진보적 가치를 새로 정립하자는 의견도 소수지만 나오고 있다. 기존 운동이 기초하고 있는 이념, 가치,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어디에서 출발할까

근래에 서구에서 주로 나오는 연구들은 주로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사회에 대한 고민이다. 진화이론에 근거한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게임이론 등. 인간이 만들어야 할 미래는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사회이어야 하며, 그를 위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이 “초협력자”이다.

인간 행동과 윤리의 유전적 기초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와 E. O. 윌슨이 창시한 "사회 생물학" 이래로 진화이론은 인간을 냉혹한 유전자의 매개체로 보아왔다. 한국사회 역시 진화이론은 과학적 영역이거나 우생학의 잔재 정도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는 이성적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사회적 존재로 도약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매우 근원적 본성이며 그 안에는 협력과 갈등, 권력과 연대, 평화와 폭력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은 주류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이성적, 합리적, 이기적 인간이다. 여기서 이기심을 제외하더라도 보수/진보를 모두 아우르는 사고구조는 인간의 이성적 측면에 대한 강조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진화심리학에서 밝히고 있는 여러 사례들은 인간의 시각/청각과 같은 지각, 식욕/수면욕과 같은 욕망, 행복/모성애/질투심 같은 감정, 도덕/헌신/충성심 같은 윤리 모두가 인간의 본성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사회생물학에서 밝힌 바대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현생 인류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는 사회적 본성이 내재되어 있고 그 안에는 이윤추구적 속성뿐만 아니라 협력, 헌신, 모성애, 우정, 신뢰와 같은 다양한 윤리적 기초를 갖고 있다.

 어떤 조건이냐가 중요하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 사고구조의 핵심은 “if~ then” 이라고 본다. 또한 후성유전학에서 유전적 발현의 기초는 “switch유전자” 이다. 어떤 조건에서 어떠한 반응이 유발되는데 그 반응은 진화적으로 형성된 생물학적, 인간 본성적 틀 안에 존재하지만 그 변이는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전자의 진화과정에서 나온 인간 존재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살아갈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조건에 처해져 있느냐에 따라 인간은 다르게 행동하며 살아가게 되고 그 범주는 사이코패스에서 성인(聖人)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진다.

하지만 첫 출발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변이의 다양성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계승, 발전하는데 기여하는 속성이 더욱 강하다. 개체의 성공을 위해 사기꾼은 항상 존재하지만 인간은 사기꾼을 찾아내고 응징하는, 더 나아가 ‘응징=복수’에 대한 쾌감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협력하고 신뢰하는, 속성과 그러한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편안해하는 본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변 조건과 상관없이 일관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태아시기, 3세까지의 양육시기, 12세 정도까지의 청소년 시기를 개별 인간의 본성이 정해지는 근본적 시기로 보는 이유는 각각의 시기가 유전자의 발현, 기본적 뇌와 신경계의 발현, 기본 신체구조와 심리구조가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한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것은 인간의 중요한 본성이다. 쓰레기를 투기하는 곳에 거울이나 사람 눈을 부착해두면 일탈행위가 급감하는 사례나 이 책에서 설명하는 틱포탯(Tit for tat)* 전략 등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양한 사고실험과 컴퓨터를 이용한 수학적 계량화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협력의 법칙을 저자가 최초로 창조해 낸 것은 아니다. 해밀턴과 윌슨 등의 사회생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토대를 구축한 위에 엑셀 로드같은 게임이론가 들의 작업, 스티븐 핑커 등 진화심리학자들의 뛰어난 작업에 의해 유전자와 개체의 적응도를 위해 살아가는 개체가 어떻게 협력과 사회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왔다. 이 책의 장점은 수학자와 프로그래머로서의 장점을 살려 광범위한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을 수행하면서 여러 영역의 진전을 하나의 실로 꿰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협력의 법칙 

이 책에서 밝힌 협력의 법칙은 첫째 직접 상호성, 둘째 간접 상호성, 셋째 공간 선택, 넷째 집단 선택, 다섯째 혈연 선택이다. 직접 상호성은 내가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주는 것이다. 폴라니가 이야기한 선물의 문화나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존재에 대한 기억을 길게 유지하는 속성, 가족, 혈족, 부족 등으로 이루어진 인간 기본 공동체 역사 등이 직접 상호성을 설명하는 증거들이며 가장 강력한 협동의 조건이기도 하다. 직접 상호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 범위는 150-200명 수준으로 조사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인류 역사에서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가장 기본 공동체 규모이다.  

간접 상호성은 사회 전체의 신뢰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 협력이 증가하는 등의 사례가 이것이다. 간접 상호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저자는 평판과 수다의 힘을 들고 있는데 인간이 주고받는 대화의 80% 이상이 남에 대한 가쉽이라고 한다. 이를 확대하면 “사회적 자본”, 동양의 “도”, “인의”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전반에 신뢰가 형성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차이는 그 사회의 운영원칙이 개인의 합리성(이윤)이 아닌 신뢰, 협동 등이다. 이러한 간접 상호성은 4번째 집단선택으로 이어진다. 집단선택은 사회생물학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며 저자가 단언한 것처럼 논리적으로 완결되지는 않았다. 핵심은 자연선택의 단위가 개체인지 집단인지, 다시 말해 개체수준의 이타적 행동이 집단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선택의 단위가 개체이면 집단선택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기의 단순한 집단선택(집단을 위해 자살하는 개체) 이론은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자살하는 병든 세포, 개체수준에서는 이기적 존재가 적응하지만 이타적 존재가 많은 집단이 항상 유리했다는 사실은 집단선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이유이다.

이 외에도 많은 협력의 조건들이 다양한 사례와 풍부한 수학적, 컴퓨터 공학적 근거들로 설명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볼 부분은 인간은 “어떤 조건일 때 협력 하는가” 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인간은 많은 협력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나 항상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수의 인류가 가장 거대한 파워를 가지고 자연을 개척하고 문명을 건설해가고 있다. 고도로 조직된 협력시스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꾸려가고 있음에도 인간 사회의 운영원리는 신뢰와 협력에 있지 않다. 인간사회의 초협력적 구조와 실제 사회운영에서의 개체 중심적 삶의 형식사이의 모순, 이것이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 책은 그를 위한 협력의 조건들을 설명해준다.

상식적 가치를 복원하자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제도를 변화시키고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등 많은 중요한 일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행복한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와 본성에 기초한 상호 협력 조건의 발견, 그래서 그것을 사회적 룰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변화시킬 사회의 시스템 운영원칙 자체가 “신뢰와 협동”, “도(道”), “인의(仁義)”가 되어야 한다. 이는 추상적 이론이나 고도로 조직화된 이념이 아니라 상식이며 보편이다.

맹자는 양나라 혜왕을 만나 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왜 이익을 말하느냐 인의가 전부이다(何必曰利 有仁義而已).”라고 일갈한다. 이는 사회의 운영원리가 이윤이나 합리성이 아닌 보다 보편적 가치, 보다 이상적이고, 상식적 가치에 기반 해야 나라가 위태롭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하는 홉스식의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모든 행동의 배경에 이기적, 계산적 이유가 존재한다는 차가운 이성의 세계가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그러한 마음, 그 마음을 보다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사회 운영원리, 이것들에서 새로운 사회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승리하기 위한 유력한 전략 중 하나. 배반하기 전까지 경기자는 항상 협력한다. 만약 배반했다면, 경기자는 복수할 것이다. 경기자는 빠르게 관용을 베푼다. 경기자는 반드시 상대와 한번 이상 경쟁할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자 소개

-로저 하이필드 (Roger Highfield)-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물리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그르노블에 있는 ILL(INSTITUT LAUELANGEVIN)에서 중성자의 정반사를 연구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뉴사이언티스트에서 20여 년간 과학 기자로 근무하며 과학계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과 새로운 소식들을 깊이 있게 전하여 영국 언론인 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2012년 현재는 영국 국립 과학 박물관과 철도 박물관 등을 포함한 과학 박물관 그룹에서 대외 언론과 홍보 등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있는 동시에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서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세계적인 발생학자 이언 윌머트(Ian Wilmut)와 함께 쓴 복제양 돌리 그 후를 포함해 해리 포터의 과학, 예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과학등 여러 권의 대중 과학 책을 썼다.

-마틴 노왁 (Martin A. Nowak)-

수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이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생화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분자 진화 생물학자인 페테르 슈스터(Peter Schuster)와 준종 이론(quasi-species theory), 진화 게임 이론의 개척자인 카를 지그문트(Karl Sigmund)와 인간에서의 협력의 진화를 연구하여 198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임 이론을 진화 생물학에 적용함으로써 진화 생물학 분야에 탄탄한 수학적 이론의 기초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HIV를 비롯하여 바이러스성 질병과 암, 인간 언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로 생물학 전반과 진화 경제학의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옥스퍼드 대학교 수리 생물학 교수를 지냈으며 그 후 프린스턴으로 옮겨 고등 과학원 최초로 이론 생물학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 및 수학과 교수인 동시에 진화 동학 프로그램(Program For Evolutionary Dynamics) 책임자를 맡고 있다. 3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중 40편이 네이처, 15편이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 특히 2010년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과 함께 쓴, 진화론의 꽃인 혈연 선택 이론에 반기를 든 논문이 네이처표제 기사로 실리면서 진화 생물학계에 크나큰 논쟁을 불러왔다. 전 세계 생물학 분야와 수학 분야의 천재들이 일명 노왁 랜드(Nowakia)’로 불리는 그의 연구실로 모여들어 수학을 도구로 생명의 기원과 진화, 협력과 이타성의 비밀을 푸는 모험에 동참하고 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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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정치2013.01.09 15:32

2013.01.0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 결과 보수 세력의 10년 집권이 굳어지자, 역사의 퇴행이 심화되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노동권 회복이라고 하는 선거 공약 틀이 신자유주의적인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 금융화를 대체했다는 것 또한 중대한 역사적 변화다. 진보는 다수 국민과 호흡하면서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도 이 의제들을 진보적 내용으로 확장시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상식은 바뀌고 있다.

특히 보편 복지와 경제민주화, 노동권 회복의 구체적 내용들을 국민과 공유하면서 ‘과거의 당연한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상식들 대신에 진보적 전망과 정책을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당연한 상식’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은 이제 보편 복지의 상징으로서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무상급식이 상식이 되면서 중등교육까지 무상 의무교육 실시, 대학 등록금 절반으로 인하 등 다양한 교육복지가 전파되고 있는 중이고 이를 박근혜 정부도 회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이 ‘투자자산’이며 ‘매매차익’을 기대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살아왔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 문제가 ‘주거 가치’, ‘주거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고, 점점 더 주거복지가 주택 문제를 대하는 새로운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 소유나 매매시장보다는 공공 임대주택의 중요성이 함께 커져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과거의 상식을 유지하기 위해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취득세 감면 연장 등 얼마 남지 않은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세력도 존재하지만.

전 세계의 경제가 적자와 부채문제로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특히 가계부채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인식하고 있는 가계의 신용위험 정도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서 카드 대란 시절의 위험도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10대 공약 중 첫 번째가 가계부채 대책이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상식의 전복’은 일어나고 있다. ‘빚진 죄인’이라고 부채의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 덮어씌우고, 온갖 고금리 연체이자에 채권추심과 압류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관행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사연의 과제는 진보 정책을 국민의 상식으로 바꾸는 것

채무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권과 생존권과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약탈적 대출과 터무니 없는 고금리 수익을 추구한 금융회사도 일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새로운 상식’이 확립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부채의 노예로 삶이 속박된 최근의 신자유주의 금융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빚을 진다는 것은 오늘날 사회적 삶의 일반적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빚을 지지 않고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학자금 대출, 주택 구입을 위한 담보대출, 자동차 신용대출, 의료비를 위한 대출 등등. 대출이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주요한 수단이 됨에 따라, 사회적 안전망은 복지 체계에서 채무체계로 나아갔다.”(안토니오 네그리,2012,『선언(Declaration)』50쪽)

대안은 다수 국민들의 생활과 생각 안에 진보의 ‘새로운 상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반대로 길어야 2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 규제완화와 시장 자율, 금융혁신과 신용거품, 자산투기 등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 동안 진보에서 만들어진 참신하고 진취적인 정책들을 ‘새로운 상식’의 이름으로 국민 곁에 다가서도록 하는 집요한 노력이 쌓이고 또 쌓이면 시대는 결국 바뀐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새사연은 진보 정책들이 국민 생활의 저변에서 새로운 상식으로 확립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비록 정권은 일시적으로 역사를 역행하더라도 국민의 생각은 의연히 미래를 바라보며 진보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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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2 / 2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세대 간 대결이 아닌 세대 간 협력으로 다시 시작하자.

2012년 총선과 대선이 20년 만에 겹치는 시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세계사적으로도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전환기였다. 대선 주자들도 ‘시대교체’를 말했다. 그래서 여느 선거 때의 ‘정권교체’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객관적 선거결과는 양대 선거 모두에서 신자유주의와 분단을 고수하려는, 과거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국회와 행정부가 또 다시 보수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한국의 미래 5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에 의해 초래된 세계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 극심한 불평등이 한계점에 왔고, 이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진보적 정책이었다. 그래서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도 줄.푸.세가 아니라 경제 민주화, 복지, 일자리 창출을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야 했다. 양대 선거는 진보적인 의제를 매개로 치러졌던 것이다.

50대가 20~30대를 압도한 선거였다?

그런데 어째서 결과는 다시 신자유주의 분단 세력의 재집권으로 귀결되었는가? 이제 막 종료된 선거 결과를 두고 백가쟁명의 분석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중이라 차분한 평가를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대체로 일치하는 분석 중의 하나가 20~30대에 비해 50~60대가 더 압도적인 투표 참여, 더 압도적인 박근혜 후보 지지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 ] 16대, 17대 대선과 18대 대선의 연령대별 투표율 변동

한 마디로 진보와 보수가 세대 사이의 응집력과 세대 사이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냈는데 거기서 50대 이상의 응집력이 압도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50대의 투표율이 90%에 근접한 놀라운 수치가 그 증거가 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76%의 투표율에 가까울 정도로 지난 대선에 비해 13%정도 올라간 경이적인 투표율을 기록한다. 당연히 20~30대의 투표율도 크게 올라서 20대 18.6%, 30대 17.4%이상 투표율이 증가했다. 한마디로 20~30대는 이번 선거에서 할 만큼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과거 선거에서도 이미 투표율이 충분히 높아서(80대의 투표율), 더 이상 올라갈 여지가 적다고 간주된 50대의 투표율이 그 이상 올라가면서 더 압도적인 투표참여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변동이 적었던 40대의 투표율 증가와도 확연히 비교되는데 훨씬 큰 증가 폭이었다. 투표참여 운동을 독려하면 20~30만 투표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잠정적 가정은 무너졌다.

애초에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1%대 99%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번 선거가 마치 세대 사이의 투표 참여와 표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었을까? 최근 들어오면서 한국의 선거가 ‘(영호남) 지역 선거’에서 ‘세대 선거’로 전환되었다는 분석들이 확산되어왔고 실제로도 그런 양상이 확인된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나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등이 대표적이다. 세대선거 분위기 아래에서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급격히 부상한 배경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원래 2012년 양대 선거의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이자 경제 문제였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일자리 등 선거의 주요 3대 이슈가 모두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던가? 또한 이 의제는 2011년부터 월가 점령운동이 상징적으로 제시한 99%운동에서 영감을 얻어 ‘극소수의 양극화 수혜자와 압도적 다수의 양극화 피해자’사이의 대결로 구체화되었다. 이를 두고 미국 선거에서는 ‘계급 전쟁(class warfare)'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경제 민주화 이슈가 부각될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우리나라 선거도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1%대 99%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외국 금융자본과 재벌에 대항한 노동자, 서민,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50대,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진정 보수화 되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50대는 누구인가? 최근 매년 20만 명 이상이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 은퇴하기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는 바로 베이비 붐 세대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 은퇴시작(2010년부터) -> 경기불황 -> 은퇴 가속화 -> 사회 안전망 미비 -> 노동시장 재진입 시도 -> 경기불황으로 노동수요 약화 ->도소매, 음식 숙박 등 생계형 자영업 창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면서 고통을 받고 있는 세대다. 부채가 많은 자영업도 이들이다. 아직 국민연급을 수급하려면 시간이 한참 많아 스스로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세대도 이들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복지의 필요성이 큰 세대이고, 일자리가 필요한 세대이며 대기업 골목 상권 침해 등으로 피해를 받는 세대이며, 가계부채로 고통 받는 세대다. 사회 경제적 처지와 조건으로 보면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동조할 이유가 없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기존 경제체제를 고수해야 이익이 될 것도 없다. 재벌체제에 이익을 보는 것도 없다. 더욱이 경제위기가 5년째 계속되면서 이제 더 이상 이들도 부동산 경기가 급등하거나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따위의 선전에 솔깃하지 않는다. 선거운동 막판에 박근혜 후보가 주가 3000을 만들어주겠다고 허황된 소리를 했지만 이에 귀 기울인 50대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도 1%가 아니라 99%에 속한 서민들이 아니겠는가?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이 진보의 정책이다.

물론 과거 20여년의 한국경제와 사회를 돌아보면, 일종의 ‘세대 간 착취’라는 용어를 사용할 만큼 세대 사이의 자원의 잘못된 분배가 있었던 점은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로 5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과거 부동산 거품의 수혜자가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20~30대가 주택이나 주거공간을 구매하기에는 너무 높은 주거비용이 형성되었다. 또한 부모 세대의 과열된 사교육 경쟁이 지금 젊은 세대에게 학교 교육과 과도한 등록금, 사교육비로 고통 받게 하고 있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 기성세대의 일부가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더 알바 등 나쁜 일자리에 전전하는 것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점들만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세대 일반의 대결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 부가된다. 10년 전에 비해 20~30대 유권자 비중은 48.3%에서 38.3%로 줄었다. 반대로 50대 이상의 유권자는 29.3%에서 40%로 10%이상 늘었던 것이다. 당분가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20~30대는 개혁적 후보에 70% 투표하고 50대 이상은 보수적 후보에 70% 이상 투표하는 구조가 확립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암묵적으로 이번 선거를 세대 간 대결로 보거나, 20~30대와 40대까지만 흡수하려는 노력을 하고 50대 이상에 대해서는 외면했던 점이 없지 않다. 더욱이 선거결과에 실망하여 50대 이상에게 비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매우 경계해야 한다.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정책 모델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세대 간 협력을 기반으로 다시 1%, 99%의 싸움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실 2012년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개혁과 진보의 조직적 틀은 상당히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다시 세대 사이의 협력을 전제로, 하나씩 새롭게 진보의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는 5년도 긴 시간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싹을 만들어 나가려는 깨어있는 시민들을 위한 진보적 정책 연구와 소통에 더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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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언론매체와 서점가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년 예측과 전망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 비관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유럽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가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경제의 회복력도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BRICs의 고성장 동력도 이제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도 2% 초반 대에 불과한 올해의 경기 둔화 양상이 내년에도 유사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꺾여 나가자 대기업과 보수진영에서는 다시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성장 담론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얼마 전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이슈별 오해와 진실' 이라는 자료를 발표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번째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인데, 전경련이 제시하는 해법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라면서 1% 성장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6만개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를 성장론으로 대치해버리는 한국 재벌의 전형적 논리다. 지금까지 잘못된 성장론을 고집한 결과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고 바로 그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는데 여전히 전도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재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처음에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더니, 지난 달 부터는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함께 가야 한다”면서 성장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장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경제 민주화의 내용은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지금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 침체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내년은 올해와 유사한 침체가 거의 확실시 됨은 물론, 차기 정부 집권 5년 기간 동안에도 침체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 세력,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성장 동력, 성장 경로,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보수의 성장론은 양적인 GDP 숫자에 초점을 두는 양적 성장이다. 신자유주의 보수의 성장론은 노동의 소득 증대 보다는 자본의 투자 수익률에 집착하는 자본 친화적 성장이다. 보수의 성장론은 국가의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무력화시킨 불평등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세계적으로 한쪽에서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 주도형 성장 방식에 의해, 다른 한쪽에서는 소득이 아닌 부채를 동원한 소비로 성장하는 방식에 의해 구현되어 왔다. 바로 이런 성장 방식의 종말을 보여준 것이 2008년 금융위기이고 지금의 장기 침체다. 한마디로 보수적 성장론의 붕괴가 바로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어떻게 성장을 시켜주겠다고 ‘공약(空約)’하는 것인가?

침체에 빠진 경제의 회복과 성장 해법은 더 이상의 보수의 수중에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성장은 보수의 담론이라는 관념이 지금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진보가 성장 담론을 책임져야 한다. 보수의 양적 성장, 자본 친화적 성장, 불평등 성장과 달리 진보가 주장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이다. 노동 친화적 성장이며 소득 주도형 성장이다. 기업 현금창고가 아니라 가계의 살림을 튼튼히 하는 성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진보적 성장은 경제 민주화의 기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처럼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진보의 성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주주를 위한 단기적 수익률 제고 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고려한다. 금융적 투기 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적 투자를 중시한다. 인건비용 줄이기에 집착하지 않고 안정된 노동시장 유지에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탄탄한 공공지출을 통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고 공공교육을 확대하는데 정책적 비중을 둔다. 

또한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발”로 정의된다.(1983년 유엔에 의해 지명된 브룬트란트위원회의 선언에서 제시) 다음 세대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토대로서 지금의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에너지 고갈 위험과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등의 최근 상황을 감안해볼 때 더 이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 성장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성장론에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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