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                                                                                                                    최정은 / 새사연 연구원


정부나 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지역 안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주민들이 스스로의 고민거리를 하나씩 들고 이야기하는 판이 벌어져 눈길을 끈다. 최근에 마포 지역의 활동과 지역 현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2015년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가 열렸다.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마포구에서 활동하는 54개 단체와 단체 안팎에서 활동하는 95명이 마음과 돈과 시간과 장소를 내어 전체 27개의 주제로, 진지한 동네잔치가 여기저기에서 벌어졌다. 이야깃거리도 생활기술, 문화예술지원, 지역공유지, 민관협력, 경의선숲길, 망원시장, 마을교육플랫폼, 석유비축기지, 마을공화국, 소통과 갈등, 공동체경제, 돌봄, 베이비부머 세대, 빈곤, 동 주민센터, 에너지자립마을 등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시대 화두들이다.

마포 지역의 활동과 이에 대한 평가도 주민들의 경험에 의존하다 보니 한계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마을 안에서는 개인들의 ‘주관적’인 평가나 역사도 소중한 자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국정화 교과서의 논리가 좌파들이 쓴 ‘주관적’ 역사라고 꼬집는 문제와 겹쳐지면서, 마을의 지혜가 눈에 띄었다.


지역 자원들과 어떻게 연대할까?

“지역사회와 로컬리티-우리는 마포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심포지움으로 마포 컨퍼런스의 첫 포문을 열었다. 마포지역 활동에 대해서 스스로가 주는 점수는 다소 박했다. 마포구에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활동하지만 정작 이들을 엮는 네트워크나 사업이 지지부진한데 따른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면, 마포구는 성미산마을을 위시한 마을공동체의 으뜸 사례로 손 꼽히는 곳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부터 성미산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육아가 시작되고,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자발적인 정치참여의 통로로 마포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진보정당이 분열된 직후에도 마포구에 공동선거운동본부를 꾸려 당파를 떠나 공동후보를 내는 정치 실험도 이어갔다. 그리고 마포연대가 해산된 후 그 공백을 민중의집이 채워가면서, 이전과 다른 방식의 문화연대와 지역 현안에도 공동대응하며, 생협 등 거점 공간을 활용한 생활형 커뮤니티도 확대되었다(“2015년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 자료집, 2015). 그야말로 주민 주도형 자치가 15년의 역사 안에서 실험되고 만들어진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결코 짧지 않은 풀뿌리 역사 안에서 마포 지역은 큰 현안들로 여러 차례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1년 성미산 지키기운동-2009년 홍대 두리반 철거 반대 문화예술인 결집-2010년 마포지역 선거 공동대응-2013년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공동대응 등의 지역 현안에 머리를 맞대며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과정에서 마포구 풀뿌리 활동의 저력은 켜켜이 쌓이고 있다.


로컬리티(locality)’의 힘

지역 활동으로 관계 맺은 사람들을 아우를 말이 없을까 고심하다 ‘로컬리스트’란 용어를 차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기존의 풀뿌리운동이나 공동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역 활동과 사람들이 생겨나 고민하던 중 미국의 ‘Be a localist!(로컬리스트가 되자)’ 캠페인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컨퍼런스에 내건 로컬리티, 로컬리스트 등의 외래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로컬리티를 주제로 인문학 연구를 10여년 지속한 차철욱 교수도 ‘로컬리티’ 개념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고 한다. 연구자의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다양했다고 하니, 어쩌면 지역의 대표 개념으로 합의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차 교수는 ‘로컬리티’의 유용성을 거든다. 그는 중앙과 지방 혹은 지역이라는 수직적 위계 구도와 다르게 ‘로컬리티’는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삶터로써 지역과 그 안의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 가치를 찾아주는 데 유용하다고 밝혔다.

마포 지역 내 활동가들의 이러저러한 고민도 ‘지역’에 천착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역은 각자의 활동무대이자, 발 딛고 사는 삶터이자, 관계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스스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재주는 있는지, 먹고 살 수는 있을지를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의 크고 작은 실험들을 펼쳐야 한다는 무게감마저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높은 임대료와 치솟는 전세가로 떠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크지도 않은 구 단위 지역에서 주민들이 주도한 이번 공론장은 나와 우리의 요구를 말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장’으로서, 지역의 필요성에 다시금 눈뜨게 하는 중요한 시도였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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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배지영 / 새사연 회원


[새사연_이슈진단]독일 하노버시 마더센터 탐방_배지영(20151030).pdf




* 본 연구는 <2015 마을살이 작은연구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한국형 ‘마더센터’의 성장 가능성 탐색”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필자 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회원이자 독일 오스나브뤼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배지영 연구자의 도움으로 현지 마더센터 탐방 및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원래 오스나브뤼크(Osnabrueck) 마더센터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일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센터를 물색했다. 마침 독일의 대도시 중 하나인 하노버(Hannover)시에 30년 역사를 지닌 마더센터와 연락이 닿아 센터 대표와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독일 마더센터의 모습을 보고 듣게 된 점은 본 연구와 마더센터를 만들려는 지역 주민들에게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30년 역사, 하노버시 마더센터 방문

인터뷰를 위해 마더센터를 방문한 날은 독일 날씨가 으레 그렇듯 비가 내리는 싸늘한 날씨였다. 초행길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고, 생각보다 30분 일찍 마더센터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걸 중시하는 독일 문화라, 잠시 밖에서 원고에 필요한 사진을 찍으며 기다릴 생각이었다. 주거지에 자리한 마더센터는 건물 입구로 들어가면 사각형 모양의 집들이 모여 있고, 건물들이 마주한 내부에 작은 정원이 있다.

약속시간보다 좀 이른 시간이라 추운 날씨에도 정원이 있는 건물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한 여성이 손을 흔들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너무 기쁜 마음에 마더센터 사무실 입구로 걸어갔더니, 그녀는 ‘이런 추운날 밖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가 바로 마더센터 대표인 하이케 아이켈베르그-보테(Heike Eickelberg-Bothe)였다. 마더센터에서 27년간 활동한 하이케 대표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온 당사자로, 마음도 따뜻하고 열정도 가득했다.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은 마치 공동 거실 같았다. 넓은 공간에 넓은 책상(식탁 용도로도 사용),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늦은 아침식사를 나누는 두 명의 여성과 함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반 동안 하노버시 마더센터의 지난 30여 년의 역사를 여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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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발

하노버시 마더센터는 1985년에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추운 겨울 아이들과 함께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 만날 공간을 찾을 요량이었다. 그때 마침 마더센터 설립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타 도시에 세워진 센터의 설립 과정을 조사하게 되었다. 하노버시에도 마더센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신념으로 우선은 사비를 모아 센터로 사용할 집을 임대했다. 설립자들은 어디에서 운영 지원을 받을지도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각자 출연금을 내고, 참여자들이 낸 돈과 후원금으로 운영했다. 다행히 이후에 하노버시 및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에서도 운영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집세와 전기세 및 각종 세금만 충당할 수 있는 지원금 정도였다.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주된 활동은 요리다. 아침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오후에는 커피시간도 가졌다. 설립 초기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정에서 육아만 하고 있던 터라 센터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고, 각자 준비한 음식을 가져오기도 했다. 센터에서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강좌도 열었다. 여성들이 뭔가를 하기 위해 남편이 집에 오기만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잦은 모임을 계기로 서로의 삶을 나누면서, 많은 남성들이 여성이 집밖에서 활동하는 걸 원치 않고, 이를 방해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공유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마더센터에 모이면서 많은 변화가 일었다. 여성들 스스로가 남편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존재임을 알리는 등 기존 통념도 바꿔놓았다. 1980년대 독일에서는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활동으로 마더센터는 여성들의 관심사에 맞춰 강좌를 열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재정 자립까지 발로 뛴 4년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설립자들은 정치인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먼저 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무작정 정치인을 찾아가 마더센터의 설립 목적과 활동 등을 소개하면서 한명씩 설득해갔다. 그렇게 발로 뛰며 노력해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 결과 하노버시가 센터에 매해 정기적으로 재정지원을 시작했고,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센터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높여갔다.

 

물론 처음에 개인들이 낸 돈으로 운영하던 것보다는 큰 발전이었죠. 1990년 당시 시로부터 받은 1년 예산은 5000~6000마르크(유로화 이전의 독일 화폐)였어요차츰 예산 지원이 확대되어 7000마르크까지 되긴 했죠그럼에도 이 지원은 공간 운영을 위한 비용 정도밖에 되지 못했어요여전히 다른 활동을 위한 운영비는 자체적으로 모아야 했죠.”

 

그러다가 마더센터는 정부와 EU의 협력으로 진행하는 ‘여러 세대의 집 (Mehrgenerationshaus)’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EU의 협력은 2013년까지 이루어졌고, 이후에는 독일 가족부의 프로젝트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 사업 지원을 통해서 1년에 약 4만유로(한화 약5천만 원) 정도의 운영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운영비의 절반은 인건비로, 마더센터 대표자가 시간제로 일하면서 받는 급여다. 나머지 절반은 운영비로 사용한다. 이렇게 마더센터의 재정은 차츰 해결되어 가고, 동시에 사회적 위상도 확대되었다.

 

마더센터가 여러 세대의 집’ 사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재정적 자립을 위해서였어요그렇다고 이 사업이 완전히 새로운 활동은 아니었죠. 1989년 센터 차원에서 해오던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활동이 정부가 주체하는 사업으로 확장되면서 더불어 센터의 재정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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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센터를 운영하는데 정부 지원 운영비 이외의 모든 것들은 자발적인 참여로 해결한다.

 

대표자인 저만 시간제로 일하며 임금을 받아요앞서 말한 대로 4만유로의 절반인 2만유로가 운영비로 확보되어 있어요정부 지원금으로 해결하는 집세 및 각종 세금을 제외하고는 활동가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고그 외 비용은 자급자족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마더센터를 이용하고 있지만, 회비는 받지 않는다. 센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득이 낮은 취약 계층인데다 센터의 존립 목적이 그들을 돕는데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센터를 방문한다. 성별이나 연령, 자녀의 유무와 상관없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온다. 예를 들면, 이력서를 쓰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센터를 방문해 자원 활동가의 도움으로 이력서를 쓰기도 한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도 오면 돕는다. 부부 문제가 있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센터를 들른다. 마더센터에서는 각자의 어려움을 꺼낼 수 있고, 같이 고민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엔 타인, 점심엔 친구, 저녁엔 가족’이 되는 활동

하노버시 마더센터는 ‘아침엔 타인, 점심엔 친구 그리고 저녁엔 가족’이 되는 센터(Morgens Fremde, mittags Freunde, abends ein Zweck der Familie)라는 기치로 시작되었다. 주요 활동은 2007년부터 독일정부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산하의 ‘여러 세대의 집(Mehrgenerationenhaus)’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서, 하노버시의 많은 사람들(나이가 다른 여러 세대 및 다양한 사회 계층)을 지원하게 되었다. 주로 세대의 통합(아동, 청소년, 성인 그리고 노년층, 특히 젊은 노년층과 도움이 필요한 노년층), 세대를 통합하는 프로그램, 아동돌봄 서비스, 자원봉사 활동을 통한 사회적 유대 형성, 지역사회에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 지역사회 경제와 연대 활동, 카페나 간이식당을 통한 만남의 장소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센터가 지속하는 일 중의 하나가 아침식사 서비스다. 또 매 해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서 사업 신청서를 가족부에 제출하는 일도 한다. 만일 센터가 정부 사업 지원을 받지 않으면 운영을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주된 사업은 ‘여러 세대의 집’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 밖의 활동은 현재 어려운 상황이에요어떤 활동과 사업을 계획하면 많은 일들을 다른 활동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해야 되거든요저는 이미 여러 세대의 집’ 사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다른 활동에 집중할 여유가 없긴 해요.”

 

시기마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참여와 조직화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현재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난민이다. 센터도 난민들이 지역사회에 안정된 생활을 찾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살피고 준비하고 있다. 다른 단체와 연대한 지원 체계도 고민하고 있다. 그 첫 걸음으로 난민들이 머물 집이나 공간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공간이 마련된다면 난민들을 위한 독일어 수업, 아이들의 놀 공간, 지역사회와의 교류 등을 마련해 도우려고 한다. 센터가 할 수 없는 일들은 타 단체와 협력해 연결해준다.

아동돌봄서비스는 여전히 제공하고 있으나, 지금은 많이 줄었다. 예전에 센터에서 15명의 아이들을 돌보려고 했으나, 센터 공간이 법적으로 10명의 아이들만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역 유치원과 연대해서 15명의 아이들을 그곳에 보냈고, 지금도 아이들이 이용한다. 현재 센터가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는 없지만, 많은 여성들이 아동돌봄서비스를 필요로 하면 다시 제공하고 싶다. 그러나 요즘 들어 아동돌봄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 표와 그림을 포함한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연구보고서 다운 받기’ 배너를 클릭해주세요.hwbanner_610x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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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2 / 19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주민들의 건물 공동소유로 높은 임대료 극복하기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파일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동네에서 작은 되살림 가게를 하는 청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되살림 가게란 기증받은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우리 동네의 가게는 중고물품 외에도 친환경 제품이나 동네 주민이 직접 만든 제품들을 판매한다. 가게에서 다양한 강좌나 강연도 주최하고, 도움이 필요한 지역 청소년을 후원하기도 한다. 동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며 시작했지만 몇 달째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

가장 큰 부담은 건물 임대료라고 했다. 인건비야 본인이 좀 덜 받으면서라도 줄일 수 있지만 임대료는 그럴 수도 없어서, 한 달 살림을 꾸릴 때 가장 먼저 마련해두어야 할 비용이라고 했다. 이런 사정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소수 정당 등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높은 집값, 땅값, 전세 값이 젊은 세대들의 결혼과 독립만 늦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씨앗들이 자라나는데도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좋은 해결책이 없을까? 되살림 가게의 청년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게나 단체들이 함께 돈을 모아 건물을 사버리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 같다고 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에서는 지방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공간을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구매하여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리즈시의 마을 헤딩리에서는 시의회 소유의 낡은 학교 건물을 지역 주민들이 사들였다. 그리고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지역의 예술가와 기업을 위해 공간을 제공하는 센터로 만들었다. 1000명의 주민들이 각각 5파운드(약 8400원)씩 출자금을 내어 헤딩리개발신탁을 설립한 후,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였다.  

영국에서는 이를 자산관리 혹은 자산이전이라 부른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이 소유한 토지나 건물을 개발신탁에서 싼 가격에 매입하거나 대여해서 수익사업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토지나 건물을 활용하고 여기서 창출되는 수익을 지역 주민의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인 노동당 정부가 ‘자산을 일하게 만들기’라는 차원에서 강력하게 지지했던 정책이며. 현 정권인 보수당 정부도 2011년 ‘지역주권법(Localism Act)’을 제정하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역주권법은 공공소유의 토지나 건물을 매각할 때 지역공동체가 먼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영국 사회적 투자사업 펀드 등은 토지나 건물의 공동구매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헤딩리개발신탁의 대표는 주민들의 출자금을 통해 자본 마련을 수월히 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이 과정을 통해 헤딩리개발신탁은 명실상부한 주민들의 대표조직이 될 수 있었고, 주민들 또한 이렇게 마련된 건물에 더 많은 소속감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주의할 점도 있는데, 실제로는 주민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조직이 이런 제도를 악용하여 건물을 구매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주민들이 스스로를 건물의 주인이라고 느끼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운영과정에서 주민들 모두에게 책임과 권리가 동등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건물의 공동체 소유
(Community ownership of public buildings)

 

2013년 1월 17일
가디언(Guardian)
앤드류 비비(Andrew Bibby)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공공건물의 관리를 협동조합에 위탁하고, 지방 정부는 운영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돕는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지역 의회에서 공동체로의 ‘자산 이전(asset transfer)’은 지난 노동당 정부가 2007년 ‘자산을 일하게 만들기(Making Assets Work)’라는 보고서를 통해 강조했던 정책이며, 현재의 (보수당) 정부로부터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공동체를 통해 단지 돈을 모으는 것뿐 아니라, 공동체의 의지와 창조력을 통해 공공건물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  

리즈(Leeds)시의 마을 헤딩리(Headingley)에서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리즈 시 의회에서도 방치해두었던 오래된 학교가 변화했다. 허트(Heart)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위한 편의시설과 카페를 갖춘 현대적이고 산뜻한 예술 및 기업 센터로 거듭난 것이다. 최근 로칼리티(Locality, 토지와 건물의 공공소유를 주장하는 런던의 시민단체)가 주최한 공동체 소유의 시민 건물에 관한 토론회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헵덴 브릿지(Hebden Bridge)의 작은 마을 페닌(Pennine)과 리버풀(Liverpool)의 마을 톡스테스(Toxteth)에서도 공동체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두 마을에서는 버려져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마을회관을 이제 마을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한다.  

허트의 모기업인 헤딩리개발신탁(Headingley Development Trust)의 회장 레슬리 제프리(Lesley Jeffries)는 낡은 학교의 소유권을 시의회로부터 가져오기까지 힘겨운 5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헤딩리개발신탁은 로칼리티와 코오퍼러티브스 유케이(Cooperatives UK, 영국 최대의 생활협동조합)에 모두 속해 있으며, 활발한 활동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다양한 분야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는 1000명의 회원이 있으며 각각 5파운드의 회비를 낸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허트의 존재를 (더 강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제프리는 말한다. “회원 조직이 된다는 것은 강력한 소속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지방 정부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또한 그녀는 헤딩리개발신탁이 헤딩리 주민들에게 공동체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운다고 말한다. 한 때 헤딩리에서는 다양한 (외부) 사람들이 토지와 건물을 소유했다. 이는 반사회적 행태의 증가로 이어졌다. “헤딩리는 고비를 넘어섰다. 아직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을에 기쁨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있다.” 라고 그녀는 말한다.  

재산세에 부담을 느끼는 일부 지방 의회들에서는 이런 흐름에 우호적이기도 했지만, 대체로성공적인 자산 이전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공동체 바닥에서부터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자원이 부족하지만 신뢰는 돈독한 공동체의 사람들 스스로가 문제가 되는 건물의 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또 있다. 19세기 후반에 발달한 지방 정부는 공공건물의 소유권에 대해 민주주의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했다. 헤딩리에서 만들어진 공동체 협동조합을 통한 공동체 소유제도가 (건물에 대한) 민주주의적 책임을 구성원 모두에게 똑같이 적절하게 나눠줄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자산 이전과 관련하여 로칼리티의 수석 관리자인 안네마리 네일러(Annemarie Naylor)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녀는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일부 세력에 의해 공공 건물이 관리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알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의회가 시의 자산을 하나의 이익단체나 종교집단과 같은 조직, 다시 말해 개방성이 떨어지는 단체에 넘겨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이 같은 정책적 조건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미 자산 이전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영국 의회의 소수 의원들을 칭찬했다. 그녀는 성공적인 자산 이전이란 결국 공공 이익을 위해 자산을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컨설턴트이자 코오퍼러티브스 유케이의 공동체공유사업단(Community Shares Unit)의 고문인 짐 브라운(Jim Brown)은 자산 이전에 참여하고 싶은 조직이라면 자신들이 공동체를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권위의 문제이다. 지방 정부가 당신에게 자산을 이전하도록 설득하려면, 당신은 (주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회원조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는 또한 지방 선거에서 투표로 의사를 표명할 수 있을만큼 많은 주민들이 회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이다. 더불어 지방 의원과 관료들은 하루 빨리 이러한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다.  

브라운은 또한 모두에게 열려 있는 회원가입의 개방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협동조합의 일곱 번째 원칙 중 첫 번째이기도 하다. 물론 자산 이전과 관련된 모든 공동체들이 협동조합 운동의 일환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는 못하겠지만, 코오퍼러티브스 유케이의 보고서에 의하면 자산 이전을 맡은 공동체로 인해 늘어나는 협동조합 조합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공동체를 통한 자산 관리가 가지는 또 하나 장점은 회원들로부터 자본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헤딩리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 낡은 학교를 수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총 100만 파운드였는데, 개발신탁에 참여한 회원들로부터 걷은 자본금이 10만 파운드를 넘었다. 같은 방법으로 리즈 서부의 마을에서는 지역의 수영장 운영을 맡은 브라믈리 배스(Bramley Bath)라는 단체가 시의회로부터 자산 이전을 받았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서 지지자들로부터 돈을 모으는 과정은 조직을 진정한 주민의 대표체로 만들어 줌으로써 신뢰를 높인다. 하지만 앞서 제프리가 명확히 지적한 것처럼, 자산 이전이 공공 건물을 장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협동조합을 잘 만드는 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관리구조와 책임감이 담보되도록 도입 초기부터 노력해야 한다. 그녀는 허트를 이용하는 사람 중에도 이곳이 공동체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보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제 “우리는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고 (다음 목표를) 밝혔다. 

 
▶ 원문 사이트:
http://83.138.163.233/en/articles/social-enterprise-network/2013/jan/17/community-ownership-public-buildings?C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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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01.09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사회적 경제는 어느날 갑자기 ‘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쾌한 협동에 필수적인 신뢰란 오랫동안 서서히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운동’처럼, 또 참여정부의 ‘국가균형사업’처럼 중앙에서 하향식으로 만들려다가는 그나마 남아 있는 지역의 역량만 허공에 날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없는 걸까? 문재인 전 후보는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 경제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48%의 문 전 후보 지지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자신의 공약과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공약은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8월 말 주간경향 990호에 나는 ‘SEQ’(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에는 서울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이제 중앙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04년 캐나다의 폴 마틴 총리는 “사회경제를 캐나다의 사회정책 수단의 핵심 부분으로 삼겠다. 기업가가 강한 경제에 필수적이듯 사회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퀘벡의 경험이야말로 연방정부의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자산이었다.
 
따라서 지금 박근혜 당선인에게 가장 긴요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1년여 ‘마을 만들기’라든가, ‘중간조직 만들기’를 하면서 부딪힌 여러 장애, 특히 중앙정부 차원의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을 몸으로 느꼈을테니 말이다. 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을 만난다면 서울시는 그동안의 경험을 요약해서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대통령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부담된다면 주무부처를 명확히 지정해야 한다. 현재 협동조합법은 기획재정부, 사회적기업법은 노동부, 생협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무부처이고, 마을 만들기와 관련해선 거의 전 부처가 고유의 사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제대로 간파했듯이 사회적 경제는 시ㆍ군ㆍ구 단위의 지역공동체가 주도해야 한다. 서울과 같은 광역정부, 나아가서 중앙정부는 이런 실천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자금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협동조합은 돈과 사람의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주식회사처럼 돈을 모을 수 없고 조합 내 임금 격차가 보통 6배 이하로 억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히 협동조합을 신설하거나 확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사회적 경제가 막 움튼 우리나라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적으로 협동조합은 출자금과 비분리자산(협동조합의 내부유보로 회사를 청산할 때도 출자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연합조직이 조성한 협동조합 기금(레가의 경우 ‘coopfond’, 모든 단위 조합은 수익의 3%를 연합조직에 낸다), 그리고 협동조합 자체의 금융기관(예컨대 레가가 소유한 보험회사 ‘unipol’)에서 필요한 돈을 조달한다. 하지만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조성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공동체 기금’이다. 각 지역에서 먼저 돈을 모으고 중앙정부가 이에 맞춰 출자해서 상당한 규모의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정부가 ‘상호성’이라는 사회적 경제의 원리에 따라 엄격하게 운용하면서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쌓아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모든 정책에 사회적 경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정부 조달의 일정 비율을 사회적 경제에 배정하거나 가점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형 주택개량사업이나 지역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과 같은 국가 차원의 사업을 지역의 주택협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울스와 긴티스 말대로 “제도설계를 잘 하면 공동체, 시장, 그리고 국가는 서로 대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자마니 교수의 말대로 사회적 경제는 우리나라에서 ‘제2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부디 박근혜 당선인이 이 정책을 받아들여서 자마니 교수의 예언이 실현되기 바란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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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10.25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은 기후변화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걸린,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집단행동의 논리’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나 홀로 아무리 애써봐도 아무 소용 없고 우리나라만 이산화탄소를 줄여봐야 중국이 지금처럼 석탄과 석유를 땐다면 비극을 막을 수 없다. 하여 최근 작고한 오스트롬은 자신의 지론인 다중심접근(polycentric approach)이 기후변화 문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개인, 지역공동체, 국가, 국제적 협력이라는 각 차원의 중심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개혁은 시스템 전체를 대상으로 대규모로 일어나야 하며, 1·2차 네트워크혁신(철도와 IT 네트워크)에 버금가는 에너지 네트워크의 혁신이 필요하니 개혁의 심도 역시 깊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1차 에너지원의 이산화탄소 함유량에 따라 탄소세를 부과한다. 세율을 매기는 원칙은 우선 배기구혁신(부가혁신)이 아니라 엔진혁신(돌파혁신)이 일어날 정도로 높아야 하고, 동시에 제본스역설(기술혁신에 의해 가격이 낮아져서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녹색역설’(green paradox·미래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여 현재의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점진적 증가가 아니라 단번에 인상해야 한다.

정밀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평균 석유 1ℓ당 70∼80원의 세금만 추가해도 8조원 정도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탄소세 외에도 교통혼잡세, 매립세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든 요인에 매기는 세금을 생태세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핵과 화석연료에너지 공급을 줄인다. 현재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는 폐쇄하고 추가 원전 건설은 중지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의 확대에 비례해서 핵발전의 비중도 줄이는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핵에너지가 청정에너지로 둔갑한 것은 지난 호에 얘기한 것처럼 미래의 위험을 가볍게 여긴 결과로, 다시 말해서 현재의 비용을 미래세대에게 넘긴 결과일 뿐이다.
 
이런 변화는 중앙집중식 에너지체제에서 분산형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발전차액지원제(FIT·재생가능에너지 생산비용이 현재의 전기요금을 상회할 경우 그 차액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와 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결합하여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분산된 에너지원을 스마트그리드(똘똘한 전력망)로 연결해야 한다. 스마트그리드는 네트워크이므로 공공투자가 집중되어야 하며, 각 기업은 네트워크와의 접속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현재 대기업 중심의 혁신 보조금을 중소기업으로 돌린다. 앞으로 예상되는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간투자의 확대가 필수적인데, 이미 충분히 현금을 지니고 있는 대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이런 투자가 상쇄되는 결과를 낳는다. 탄소세 등에 의한 비용 상승과 혁신에 의한 수요 증가는 그 자체로 충분한 투자유인이 된다. 녹색혁신은 그 자체로 불황타개책이다.
 
넷째, 중국이 대대적인 ‘에너지혁신’을 내건 것도 한국이 더 이상 녹색혁신을 미룰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그리고 아세안)에 에너지/환경 협력을 제안해야 한다. 탄소배출 목표와 방법에 관한 합의, 사막화와 황사와 같은 현안 해결, 스마트그리드 표준에 관한 협력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정부와 개인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한편 탄소함유량이 낮은 제품(국가는 모든 상품에 탄소함유량을 표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을 선택함으로써 기업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지역공동체는 예컨대 태양광협동조합에 의해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다양한 에너지원을 개발할 수 있다.
 
생태문제는 거대한 사회적 딜레마이고 착한 경제학은 신뢰와 협동을 그 해법으로 내놓았다. 적절한 정책은 이런 협동을 촉진할 것이다. 대처의 용어를 원용하자면 ‘다른 길은 없다’. 이번 대선은 생태문제를 신뢰와 협동으로 풀 지도자가 누구인지 선택하는 일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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