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언론매체와 서점가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년 예측과 전망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 비관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유럽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가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경제의 회복력도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BRICs의 고성장 동력도 이제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도 2% 초반 대에 불과한 올해의 경기 둔화 양상이 내년에도 유사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꺾여 나가자 대기업과 보수진영에서는 다시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성장 담론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얼마 전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이슈별 오해와 진실' 이라는 자료를 발표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번째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인데, 전경련이 제시하는 해법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라면서 1% 성장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6만개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를 성장론으로 대치해버리는 한국 재벌의 전형적 논리다. 지금까지 잘못된 성장론을 고집한 결과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고 바로 그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는데 여전히 전도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재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처음에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더니, 지난 달 부터는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함께 가야 한다”면서 성장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장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경제 민주화의 내용은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지금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 침체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내년은 올해와 유사한 침체가 거의 확실시 됨은 물론, 차기 정부 집권 5년 기간 동안에도 침체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 세력,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성장 동력, 성장 경로,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보수의 성장론은 양적인 GDP 숫자에 초점을 두는 양적 성장이다. 신자유주의 보수의 성장론은 노동의 소득 증대 보다는 자본의 투자 수익률에 집착하는 자본 친화적 성장이다. 보수의 성장론은 국가의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무력화시킨 불평등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세계적으로 한쪽에서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 주도형 성장 방식에 의해, 다른 한쪽에서는 소득이 아닌 부채를 동원한 소비로 성장하는 방식에 의해 구현되어 왔다. 바로 이런 성장 방식의 종말을 보여준 것이 2008년 금융위기이고 지금의 장기 침체다. 한마디로 보수적 성장론의 붕괴가 바로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어떻게 성장을 시켜주겠다고 ‘공약(空約)’하는 것인가?

침체에 빠진 경제의 회복과 성장 해법은 더 이상의 보수의 수중에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성장은 보수의 담론이라는 관념이 지금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진보가 성장 담론을 책임져야 한다. 보수의 양적 성장, 자본 친화적 성장, 불평등 성장과 달리 진보가 주장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이다. 노동 친화적 성장이며 소득 주도형 성장이다. 기업 현금창고가 아니라 가계의 살림을 튼튼히 하는 성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진보적 성장은 경제 민주화의 기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처럼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진보의 성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주주를 위한 단기적 수익률 제고 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고려한다. 금융적 투기 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적 투자를 중시한다. 인건비용 줄이기에 집착하지 않고 안정된 노동시장 유지에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탄탄한 공공지출을 통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고 공공교육을 확대하는데 정책적 비중을 둔다. 

또한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발”로 정의된다.(1983년 유엔에 의해 지명된 브룬트란트위원회의 선언에서 제시) 다음 세대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토대로서 지금의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에너지 고갈 위험과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등의 최근 상황을 감안해볼 때 더 이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 성장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성장론에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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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1 / 19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미국 대선은 오바마의 재선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오바마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미국 경제 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여전히 침체 상태이고, 뾰족한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1월 1일로 다가온 재정절벽(세금 인상과 예산 삭감으로 인하 큰 폭의 재정지출 감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 터키 재무장관이자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총장,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케말 데르비스는 오바마의 당선 요인은 광범위한 중산층의 지지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정책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재분배라고 말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살아나야 수요가 회복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소득재분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득재분배를 위한 방안으로 양질의 교육과 기술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럴 때에 실업을 막을 수 있고, 안정적 고용을 통해서 소득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케말 데르비스의 제안처럼 소득재분배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필요한 조치이다. 미국 국민들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부자증세와 재정지출을 강조한 오바마를 선택한 것이다. 반면 감세와 재정긴축을 주장했던 롬니는 이 문제를 실현하기에 부적절한 후보로 평가받은 것이다. 몇 달전 있었던 프랑스 대선에서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높이겠다고 주장했던 올랑드가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민주당이 부자증세 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 국의 국민들이 선택을 내리고 있는 가운데,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다. 부자증세와 복지강화는 물론이며 근본적으로는 중산층 이하의 임금과 소득을 높여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득재분배를 이룰 수 있는 후보는 누구일지 잘 판단해보자.

 

 

버락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

(The Second Coming of Barack Obama)

 


2012년 11월 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케말 데르비스(Kemal Dervis)

힘든 선거였지만, 버락 오바마는 재선에 승리했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바마는 새로운 4년의 임기 동안 미국과 세계를 위해서무엇을 할 것인가?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8%에 달하는 실업률을 껴안은 채 재선에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프랑스 전 대통령), 고든 브라운(영국 전 총리), 호세 사파테로(스페인 전 총리)와 같은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최근의 경제적 문제로 인해 자리에서 밀려났다. 공화당 대통령 조지 부시의 8년 임기 동안 폭발한 금융 악재로 인해, 오바마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회복을 위해 뛰어야만 했다.


오바마는 단지 그의 비범한 개인적 쾌활함 뿐 아니라 중산층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오바마의 경제 회복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중산층 유권자들은 부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인식된 공화당 후보 롬니보다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미국의 계속되는 인구 변화는 라틴계를 비롯한 소수민족에게 강력하게 피력하지 못하는 후보의 승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특히 롬니가 실패한 부분이다.

이번 선거는 과도한 비용 지출과 네거티브적 공격이 많았다는 점에서, 많은 유권자들을 불쾌하게 만들만 했다. 하지만 대안은 항상 존재하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싸워야만 한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경쟁력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기로에 서있는 세계 경제와 함께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엄청난 확장적 통화정책과 거대한 재정적자를 유지함으로써 그나마 불안정하고 약한 수준의 경제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금고에는 현금이 쌓여있지만, 민간 투자는 정체되고 있다. 일본은 총리가 계속해서 깜짝놀랄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확실한 경제 회복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유럽 역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의 기민한 임기응변과 국채시장에 무제한 개입하겠다는 약속 덕분에 겨우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최근 십년동안 가장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으며, 성장은 본질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남유럽의 문제는 심지어 독일마저 경기 침체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는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유그리스 자체는 작은 국가에 불과하지만, 그리스가 보여주는 총체적인 붕괴는 금융과 사람들의 심리에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세계 신흥시장의 경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신흥국들의 잠재생산성 증가추세는 선진국보다 높다. 하지만 경기순환적 디커플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선진국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 - 역자주). 세계 경제는 전체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어떤 중요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는 전세계로 전파된다. 협소한 거시경제의 시야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자체만으로 세계경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어떤 경로를 밟느냐는 세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이며,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G20 등에서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각은 전세계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경제정책은 무엇일까? 세계 경제가 처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국, 독일 등에는 거대한 투자 자원이 있다. 기후와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높은 생산력과 거대한 번영을 가져다주며 노동과 고용을 증진시키 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기술혁명의 시작에 서 있다.


하지만 이런 자원들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회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선진국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회복은 투자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수요의 회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본은 많은 수익을 거두었지만 거기에 부과되는 실질 세율은 높지 않으며, 현재의 저금리는 기업에게 유용하다. 또한 미국이 2011년에 이룬 경제성장의 90% 이상이 상위 1%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은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수익 배분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회복을 제한하고, 거시경제 정책은 지속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과 커져가는 공공부채의 위험, 저금리로 인한 자산거품 사이에서 길을 잃게 만든다.

균형잡힌 소득재분배는 단지 사회적,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거시경제에서 필수적이며,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 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에게 꼭 필요한 해법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물론이며 전세계적으로 교육과 적절한 기술 훈련이 제공되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훈련받지 못한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은 실업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소득재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효과적인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 북유럽이 5조 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다. 반면 남유럽의 수요는 붕괴되고 미국의 적자는 5조 달러에 이른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나 이상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계적 협력이 요구되며, 선거 이후 미국에 대해서는 청정에너지혁명, 고용창출 투자의 확대, 새로운 성장 방식 만들기와 같은 약속을 지킬 것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미국의 길고 어려웠던 선거는 끝이 났고, 이제 포괄적인 개혁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이를 잘 깨닫고, 미국과 전세계의 수 억 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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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04 새사연

지속가능한 사회국가를 제안한다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지속 가능하다는 것의 의미

2. 시장국가에서 사회국가로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이 실패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며, 2011년 월가점령시위는 99%의 부를 체계적으로 1%로 재분배시켜온 시장의 불평등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30여 년 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되었고,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에도 급속하게 이식되었던 신자유주의는 '지속 불가능한 시장국가'로 정리할 수 있다. 이의 대안으로 우리가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국가(Sustainable Social State)'이다.

 

1. 지속가능하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어떤 사회가 지속가능한가? 여러 학자들에 의하면 지속가능성은 '생태계가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첫째, 경제개발과 생태계가 양립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삶의 질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개선하고 향상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이 공론화된 것은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Brundtland Report)에 의해서다. 이 보고서는 새로운 경제발전 형태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을 제시하면서, "현재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미래 세대들이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방식의 개발"이라 정의하였다. 이를 경제학을 빌어 표현하자면 미래 소비의 현재가치가 줄어들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현재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개발이 전통적인 경제학의 경제개발에 대한 사회적인 목표라면, 미래 세대의 욕구에 충족되는 개발은 환경 문제를 고려하는 장기적인 관점과 관련된다.

 브룬트란트 보고서

1983년 UN은 환경과 발전에 관한 세계위원회(WECD,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를 설립하고 '변화를 위한 지구적 의제'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 위원회에서 1987년에 2000년대를 향한 지구환경보전전략보고서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는 인구, 식량, 생물, 종 보전, 에너지 산업 도시화, 평화 등의 사안들을 논의하면서 자원 기반을 지속시킬 새로운 경제 발전 형태를 요구하였다. 여기서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이 나왔다. 당시 노르웨이 환경부 장관을 거쳐 수상의 자리에 오른 브룬트란트가 이 위원회의 위원장이었으며, 그녀의 이름을 따서 브룬트란트 보고서라 불린다.

 

2005년 UN은 세계정상회의 결과문(World Summit Outcome Document)에서 지속가능성은 환경, 사회, 경제의 세 기둥으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현재와 미래에 건강하고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제공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서 세 가지 영역이 아래 그림과 같이 하나의 동심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가지 영역이 연결되어 있으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는 상품의 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계의 하나이다. 경제는 사회에 둘러싸여 있다. 사회에는 상품의 교환에 기반하지 않는 수많은 관계와 가치가 있다. 친구, 가족, 종교, 예술 등이 그렇다. 사회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사회 구성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공기, 음식, 물. 에너지, 원자재가 환경이다. 때로는 사회가 환경을 바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환경보다 커질 수는 없다. 또한 세 영역은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경제 발전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그것이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일 수도 있다. 하나의 해결책이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세 영역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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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원전 이슈, 안전성에서 발전 체제로

 

이제 원자력 발전의 전환을 이슈화하자. 일본 동북부의 참사가 방사능 공포로 이어지면서 원전의 ‘안전신화’가 산산이 깨지고 있으나 우리의 관심은 ‘안전 그 이상’에 있어야 함을 감히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가, 경제적으로 원전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평가와 경제적 평가의 내용이 틀렸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 자체가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본질은 거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위험사회’에 있으며, 경제 이해의 관성에 따라 가속화되는 ‘불평등 사회’에 있다. 위험사회, 불평등사회의 질적인 수준은 아무리 정교한 것일 지라도 수치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다.

보다 적절한 평가 방식은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는 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을 달성한 국가라 할 만하다. 발전규모가 세계 6위의 선진국이며 추가 건설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인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갈등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전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은 왜일까? 그것은 현재의 에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이해당사자들이 있고 이러한 체제에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적응해 있기 때문이다. 원전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원전에 얽힌 이해(利害)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달리 갈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평가 방식은 문화적 가치, 제도적 조직 그리고 권력적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사회 과학’과 관련되어야 한다.

 

경성(hard) 에너지 체제의 황태자, 원자력 발전

 

모리슨과 라드윅(Morrison and Lodwick, 1981)은 사회과학의 (진정한) 과제는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들에게 크게 영감을 준 라빈스(Lovins, 1976)는 일찍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의 세계 에너지체제는 ‘경성 에너지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경성 에너지 경로(hard energy path)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바탕으로 거대자본과 거대기술로 구성되는 공급위주의 대규모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이용방식’을 말한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경제성장의 관건이라는 믿음 하에 에너지원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채택되고 통제권은 권위주의적 관료에 주어지며 운영 및 관리는 기술엘리트와 사적기업에 의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의해 황당하게도 녹색성장의 에너지원으로 지목된 원자력은 이상의 경성 에너지 경로의 결정판이다.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은 환경친화성, 공급지속가능성, 형평성과 민주성 등에 커다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예컨대 환경친화성의 문제점은 최근 일본 원전 사고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고 공급지속가능성은 자원의 고갈가능성에 의해 의심받고 있다. 에너지 과잉소비는 다음 세대의 선택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세대간 형평성을 훼손시키고 가격 부담의 차이는 동시대 저소득층에게도 생계비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에너지 빈곤층은 전력공급 인프라의 사각지대에서 구조화되고 값싼 공공전력 대신에 값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데로 내몰린다.

원자력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보다 훨씬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 의사결정의 중앙집중, 생산 및 소비 공간집중 수준-우리나라는 이 수치에서 세계 1위이다-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제한되는 것이다. 발전시설, 폐기물처리 시설은 지방의 일부 지역에 밀집되지만 전력소비는 대도시지역에 밀집된다. 이는 위험부담이 불평등하게 분배됨을 의미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투표권의 격차에 의해 무위로 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필자는 전력체제의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산은 산업부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규모에 있어 그러하다. 최종 소비부문에 있어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약 60%로 가정용의 약 3배에 이른다. 둘째로, 산업부문이 현재 에너지경제체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원의 변화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산업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변화가 동반해야만 새로운 소비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전과 산업부문의 관련성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산업부문은 그 특성상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기초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데(전체 발전량의 약 40%) 이는 한번 가동하면 멈추지 않고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원자력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자력을 기초 전력으로써 대규모 산업전력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원전 확대에 현실적 정당성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원자력이 기초 전력이 됨에 따라 전력소비가 적은 시각이나 계절에 막대한 잉여전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성 경로를 벗어나 연성 경로로 진입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이른바 ‘자원 안보’의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문제는 한층 국내외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수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생활 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원자력의 공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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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얻은 논문 윤순진(2009), “한국의 에너지체제와 지속가능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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