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5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몇 해 전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손석춘 선생에게서 들은 이야기. 손 선생이 연구소를 구상할 무렵 박원순 선생에게 함께하면 어떨지 의논했던 모양이다. 구상을 들어본 박원순 선생이 그러더란다. ‘손 선생이 하시려는 건 민중 기반의 운동이고 제가 하는 건 시민 기반의 운동이니 따로 하는 게 효율적이지 싶습니다.’ 민중 기반의 운동에 속한 나는 박원순 선생과 견해가 종종 달랐고 두어 번 직접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박 선생이 매우 양식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급좌파’를 자처함으로써 숱한 ‘윤똑똑이 좌파’들을 민망하게 한 김규항이 올해 초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의 들머리다. 사석에서 나눈 말이 활자화 된 신문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이들에게 사실을 확인해주고 싶어서다. 여기서 딱히 내 성향까지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 <100분토론>에서 말했듯이 나는 ‘친북좌파’가 아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바로 나 같은 사람과도 함께 일하는 데 ‘부담’을 느낄 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의 황당한 극우논리

지금 나는 박원순의 그 선택에 전혀 유감이 없다. 그 뒤 희망제작소와 새사연은 각각 고유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았다. 의심 많은 이들을 위해 밝혀두거니와 새사연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저명 목사’에 이어 언론인들까지 곰비임비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저격하는데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우리는 수도 서울을 이렇게 지켰다” 제하에 쓴 <조선일보> 선임기자의 칼럼이다. 그는 한국전쟁의 참극을 길게 늘어놓은 뒤 끝자락에서 자신이 해병대 전 사령관에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자유가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넘어갈지도 모를 서울을 왜 그렇게…”라는 질문을 던졌고 “노병은 침묵했다”고 썼다. 어떤가. 김대중과 류근일을 뺨치는 극우 논리다.

저들의 황당함은 ‘친북 좌파’타령에 그치지 않는다. ‘검증’ 명분 아래 한국 사회가 낳은 탁월한 시민운동가를 “병역 기피자”와 “학력 위조범” 더 나아가 “대기업을 겁박한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 심지어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며 강남에 사는 위선자로, 마음고생 컸을 박 후보의 아내는 부당한 이익을 추구해 온 사업가로 마구 써댔다. 그들의 주장은 박 후보의 재산이 ‘마이너스’로 나올 때까지, 아니 밝혀진 다음에도 여기저기 퍼져가 적잖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했다.

정치에 입문한지 7년 만에 18억 재산을 40억원으로 불렸으면서도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해왔노라고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언죽번죽 자부하는 국회의원 나경원과 대기업으로부터 수백 억 원의 기부금을 받아 서민들을 도우면서 자신은 월세로 빚진 채 살고 있는 변호사 박원순을 검증하는 저들의 잣대는 굽을 대로 굽어있다.

물론, 기자도 칼럼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주관을 드러낼 수 있다. 더구나 나경원은 ‘사학 재단’의 딸로서 재단만 비호한 게 아니라, 조선·동아·중앙일보에 결국 종합편성 채널을 하나씩 ‘선물’해 준 미디어법 ‘날치기’에도 오지랖 넓게 앞장섰다. 세 신문사로서는 ‘확실한 보답’의 신호를 정치권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날 수 있다.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그나마 언론

다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옳다. 그런데 조선·동아·중앙일보 기사를 톺아보면 ‘찌라시’라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서울대 사회계열과 법학과 사이에 무슨 ‘심연’이라도 있는 듯이 보도하는 행태는, 시위로 제적된 당사자가 얼마든지 법대로 복학할 수 있었지만 단국대 졸업에 만족할 만큼 학벌에 개의치 않은 보기 드문 미덕을 원천적으로 가리고 있다.

가만히 따져볼 일이다. 정치 활동 중에 부동산을 사고판 것만으로도 13억의 차익을 챙긴 후보에 견주어 박원순의 경제생활에 도덕성을 들이대는 ‘저격수’는 얼마나 해괴한가. 박원순이 대기업 모금에 나선 걸 비판하려면 마땅히 ‘아름다운 재단’의 설립 자체를 시비 걸어야 옳다.

만일 극좌가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이해할 수 있어도 재벌과 유착한 정권의 모리배들이 들먹이는 풍경은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다. 13살 소년에게 병역 기피 의혹을 날마다 내뱉는 ‘병역 기피정당’의 얼굴은 또 얼마나 느끼한가.

세 신문에 묻고 싶다. 참으로 박원순이 ‘병역기피자’라고 생각하는가? 학력을 부풀릴 의도로 위조했다고 판단하는가? 박원순은 대기업과 유착했는가? 아니라면 최소한 언론으로서 품격을 지켜가길 권한다. 대체 언제까지 ‘찌라시’로 대한민국을 망칠 셈인가?

말살에 쇠살임에도 왜 저들은 여론몰이에 몰두할까. 이른바 ‘보수 결집’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와 투표 불참이 목적이다. 유권자들의 슬기가 참 절실한 오늘이다.

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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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정태인/새사연 원장

뱅뱅 머릿 속을 맴돌 뿐,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그/그녀가 왜 나를 떠났을까”같은 종류다. 아무리 골몰해 봐야 답이 없을 것이라거나, 기껏 답이라고 내봐야 틀릴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야 분간하게 됐지만, 우석훈 박사가 영웅처럼 제기하고 돈키호테처럼 답(짱돌을 들으라니^^) 을 낸 ‘88만원 세대’가 그런 요령부득의 화두다.

요즘 내 결론은 ‘세대간 착취’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다음 세대 대부분을 착취하는 걸로 귀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난 자본가가 노동자를 괴롭히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이윤극대화 방정식을 풀다 보니 그게 결국 착취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기성 세대가 최선을 다한 결과가 결국 아이들 세대 전체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깨달음이다.

우리가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미로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혹시 내가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때, 자문해봐야 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이렇다. “남이 다 하면 나도 따라 할 수 밖에 없다”(공포), 그리고 “남이 다 안 하는 경우 나만 하면 ‘대박’이다”(탐욕).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바로 사교육이 그렇다. 그리고 부동산(주식)에 대한 우리 태도도 비슷하다. 남들이 다 과외시키는데 우리 애만 마냥 놔둘 수 없고, 남들이 다 빚내서 집사는데 나만 유유자적, 안빈낙도 하다간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일 거 같고, 반대로 남들이 다 안 하는 경우 어디 값싸고 좋은 과외 선생이나 잘 나갈 땅이 없나, 기웃거리는 우리는 바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죄수의 딜레마는 ‘김승옥의 염소’보다 더 힘이 세다.

두 게임의 결과로 사교육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아주 희귀한 예외를 빼곤 백이면 백 부자들이 이긴다. 때론 지배계급이 처음부터 그런 게임을 설계할 수 있고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이 된 경우 부자들은 그야말로 횡재한 것이다. 졸릭(Zollick)의 ‘경쟁적 자유화’는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고 김현종은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처럼 한미 FTA를 추진했다(앞에서 말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적용해 보라).

집값과 땅값이 하늘로 치솟고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 보릿고개가 사라진지 이미 오랜데, 우리 아이들이 더 절망적인 건 대부분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이만은 그런 함정을 신묘하게 비켜 나갈 것이고 그러면 ‘대박’이라는 황당무계한 낙관이, 아무리 밤을 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신의 직장’에만 목을 매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 분명히 ‘세대간 착취’다.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누려야 할 자연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만 미래를 착취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근시안적 경쟁 탓에 이미 올라버릴대로 오른 집값을 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단 1점에 목을 매게 하는 입시는 또 어떤가.

우리 모두 매일 한 삽씩 절망의 늪을 파면서 내 아이만은 늪 밖에, 아름다운 고층 빌딩에 살 수 있을거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이 우리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게임이론으로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게임’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현실로 말하자면 지금의 무한경쟁에서 다 같이 빠져 나오자고 합의하면 된다.  

‘사교육 금지’, ‘부동산 투기 금지’에 마음을 모을 때만 비로소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 홀로 그럴 수 없다는 이유로 지는 게임을 계속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말 그대로 ‘88만원 세대’일 수 밖에 없다. 투기의 미몽에서 얼마간 벗어난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우리에게 비춘 한줄기 빛이다.

이 글은 'PD저널'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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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2010년을 맞이해 지난 열흘 동안 발표한 2010 전망 시리즈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번 전망 보고서들을 좀 더 다듬고 보충하여 책으로 21일 발간될 예정입니다.

새사연 2010 전망은 아래의 목차를 누르면 해당 보고서로 이동합니다. 보고서를 읽으신 후에 비판적 견해, 지지, 보충 등의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의견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견을 작성하신 후 이 글로 트랙백을 보내주셔도 좋고, 메일(happyzero78@saesayon.org)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새사연 2010 전망>

두 전직 대통령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나고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 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2009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새사연은 2010년을 전망하는 연속 기획 [2010 전망]을 마련했다. 올해는 ‘불확실의 시대’로 규정된다. 2009년 하반기로 가면서 차츰 소강상태로 접어든 위기가 다시 파국적 결말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OECD 최고의 경제회복과 G20 국격 제고라는 장밋빛 치장에만 몰두하는 전망 역시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처럼 2010년을 보는 시선 속에는 잿빛 비관과 장밋빛 낙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사연은 이 실타래 속에서 ‘희망’이 라는 가늘지만 질긴 실을 찾아 풀어내보려 한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보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글 순서>

1. 총괄 : 2010년을 새로운 경제 화두의 원년으로
2. 미국 경제 : 불안한 2010년 미국경제 전망 
3. 한국 경제 : 출구전략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한 2010년 한국경제
4. 고용 전망 : ’신(新)고용전략’의 과제
5. 정치 분야 : 진보세력은 지방선거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6. 보건(사회) 분야 : 2010년 화두, 살만한 세상만들기 프로젝트
7. 남북관계 : 전환기의 한반도,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할 때
8. 가계 부채 : 2010년 경제의 복병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9. 2010년 가정 경제 운용을 위한 제언
10. 교육 분야 : ’수평적 다양화’를 통한 수월성 교육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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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대통령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나고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 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2009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새사연은 2010년을 전망하는 연속 기획 [2010 전망]을 마련했다. 올해는 ‘불확실의 시대’로 규정된다. 2009년 하반기로 가면서 차츰 소강상태로 접어든 위기가 다시 파국적 결말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OECD 최고의 경제회복과 G20 국격 제고라는 장밋빛 치장에만 몰두하는 전망 역시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처럼 2010년을 보는 시선 속에는 잿빛 비관과 장밋빛 낙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사연은 이 실타래 속에서 ‘희망’이 라는 가늘지만 질긴 실을 찾아 풀어내보려 한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보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총괄 : 2010년을 새로운 경제 화두의 원년으로
2. 미국 경제 : 불안한 2010년 미국경제 전망
3. 한국 경제 : 출구전략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한 2010년 한국경제
4. 고용 전망 : ’신(新)고용전략’의 과제
5. 정치 분야 : 진보세력은 지방선거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6. 보건(사회) 분야
7. 남북관계
8. 가계 부채
9. 2010년 가정 경제 운용을 위한 제언
10. 교육 분야


2009년은 용산참사에서 시작하여 다수당의 예산 날치기 통과로 끝을 맺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위기가 겹치면서 제반 민주주의의 위기로 점철된 한 해였다. 2008년과 비교할 때 2009년은 더욱 암담했다. 2008년에는 5~6월 촛불집회를 통한 대중들의 직접 참여 민주주의가 분출하면서 새로운 운동의 흐름이 제도정치의 파행을 막아줄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고, 이것이 정부여당의 정책에 일정한 변화를 가하기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대운하 포기, 악어의 눈물에 가깝지만 일정한 친서민 정책(대학생 학자금 대출, 미소금융, 보금자리 주택)의 추진 등은 2008년의 대중운동이 제도정치에 가한 충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지방권력을 장악한 보수 우위의 제도정치를 흔들 수 있는 이렇다 할 징후가 없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기는 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정책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9년 동안 벌어진 용산참사와 쌍용사태를 비롯한 억압적 계급정책, 미디어법 강행 처리와 언론사 장악 기도, 세종시 수정 추진, 4대강 사업 추진,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침해, 노무현과 김대중 전(前) 대통령 서거, 노동법 및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의 제반 사건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반 조건들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보세력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급속하게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0~50%까지 치솟고 있고 한나라당의 지지율 역시 나머지 야당 전체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게 나오는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당혹스러운 역설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조장한 세력이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리 국민들, 특히 부동층 유권자들에게는 별다른 대안적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이 민주적 의식이 불철저하다는 점은 알고 있으나, 민주당이나 여타 진보정당을 대안적 선택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지방선거의 해 2010년을 바라보는 두가지 입장

정치과정의 기본 요소는 정당, 유권자, 선거제도이다. 2010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의 선거제도가 변경되지 않고 현재 유권자의 지지도 추이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정치과정에 변화를 가져올 유인은 정당에 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는 것이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관행이므로, 한나라당으로서는 광역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각각 40% 정도만 승리해도 크게 선전하는 셈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범위한 대중저항과 같은 우발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정당, 유권자, 선거제도가 고정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충분히 40% 이상의 지역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는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통치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주권자의 명령을 하달한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민주주의 후퇴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2008년, 2009년의 우울한 정치는 2010년에는 더욱 암울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2010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신보수주의 우파 정치가 더욱 심화될 것인지, 아니면 일정하게 제동이 걸릴지가 결정될 것이다. 현재의 여러 가지 상황적 조건을 고려해 볼 때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주요 변수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각 정당의 선택이다.

지방선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거칠게 표현해서 크게 두 가지로 분기된다. 하나는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염두에 둔 민주대연합론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연합론이다. 전자는 정권교체와 집권가능성을 염두에 둔 최소강령의 최대연합 전략이라면, 후자는 진보세력의 독자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최대강령의 최소연합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재보궐 선거는 진보세력의 최소연합 전략이 부분적 성공(울산 북구)과 부분적 실패(안산 상록을)를 한 사례였다면, 다가오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세력이 어떠한 방식의 선거전략을 채택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 복잡한 손익계산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과 개혁과 진보의 기치를 내건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최대다수연합을 구성한다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패배시킴으로써 폭주하는 신보수주의 정치에 일정한 제동을 거는 것이 목적이라면 민주대연합론이 가장 확실한 처방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공의 대가가 중장기적으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으로 대변되는 진보세력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집권 10년 동안 그들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질을 드러내면서 개혁적 자유주의의 허구성을 내내 비판해온 진보세력이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극소수파 정당이 대정당과 선거연합을 하는 과정에서 역량이 오히려 축소될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민주대연합론은 선거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진보세력이 사실상 관망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크다.

반대로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민주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을 제외한 진보세력만의 독자적인 선거연합(민주노동당+진보신당)을 통해 최소연합을 구성할 경우,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진보세력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비민주성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를 여지없이 비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보세력의 반(反)신자유주의적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적인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명성에 기댄 단기적인 자기 만족은 한나라당 정권이 선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신보수주의 정권의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으로서는 선거에서 박빙의 승부를 통해 패배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진보세력에게 돌릴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진다. 진보대연합론은 진보세력이 선거에 가장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전략이지만, 그 결과에 따른 비판을 감당하기 매우 버거운 전략인 셈이다.

의제를 중심으로, 집안을 추스린 뒤, 민주당의 반성을 전제로

민주대연합론과 진보대연합론은 이러한 장단이 있으므로 어떠한 방식이 더욱 타당한 전략인지를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필자는 여기에서 진보세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선거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결론을 미리 내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대연합론이든 진보대연합론이든 특정한 선거 전략을 미리 정해 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현재의 상황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포함하느냐 포함하지 않느냐를 미리 정해 놓기 보다는 논의 대상으로 열어 놓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진보세력은 다음의 방식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정당 간 묻지마 선거연합이 아니라 의제 중심의 선거연합이 되어야 한다. 각 정당이 지방선거를 통해 정책적으로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의제가 상당부분 일치하거나 수렴하고 상호 타협의 가능성이 높다면 선거연합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선거연합을 염두에 둔 의제 설정은 특정한 세력의 입장이 배타적으로 고수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일정한 양보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진보신당은 지방선거의 원칙으로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한미FTA저지, 고교 및 대학 평준화, 무상의료 확대, 대선 결선투표제,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 등의 의제를 제시한 바 있다. 동일한 진보적 지평에서 본다면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의 이러한 의제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호전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의제 정도가 추가될 수 있다. 이들 의제들은 진보세력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한 이래 변함없이 지켜왔던 원칙적인 내용들이다. 문제는 이들 의제들을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능동적으로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노동시장이 지속적으로 유연화되었고, 한미FTA는 노무현 정권의 최대 성과(?)이다. 진보세력은 개혁적 자유주의 정권 내내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투쟁을 했고, 이들 세력과 날카롭게 대립해 왔다. 전직 대통령들의 연이은 서거를 계기로 민주당은 이들 대통령들의 유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민주당의 선거전략과 진보세력의 의제 중심의 선거전략은 많은 부분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과거 집권 시기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점과 오류를 적극 혹은 부분적으로 인정하거나, 진보세력이 과거부터 지켜왔던 원칙적인 의제들을 상당 부분 양보하지 않는다면 선거연합은 불가능하다.

둘째, 갈라진 진보세력의 내부적 통일성을 공고히 한 이후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 지방선거 공동대응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정당의 분당을 만들어 냈던 몇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진보양당은 정책적 거리는 크지 않은 반면 심리적 거리는 무한히 크다. 진보세력의 전체적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동의하면서 상대 정당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건설적인 논의 테이블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당의 지도부 간, 당원들 간에 형성된 적대에 가까울 정도의 심리적 거리감을 극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선거에서의 공동대응은 각종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대정당인 민주당이 진보정당의 분열상황을 적극 이용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 전 진보양당의 합당을 주문하는 논의들이 있으나, 현실적인 정치 역학상 합당은 불가능하다. 합당은 지방선거에서 공동대응의 성과가 성공적이라는 전제 하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누적된 심리적 거리감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지방선거를 통해서 양당 지도부와 일반 당원들에게까지 부여된다면, 합당 논의는 지방선거 이후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까지 포함한 최대다수 선거연합을 구성하기 위한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 민주당이 진보세력의 선거연합 논의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진보세력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민주당이 과거 집권 기간 동안 행했던 각종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정책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없이 국민들의 반한나라당 정서에 기대어 추상적인 민주주의 회복의 구호에만 매달려 지방선거를 돌파하고자 한다면 선거연합의 이유는 없다. 또한 선거연합의 기본전제는 대정당이 소수파 정당에게 일정한 양보를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하다. 민주당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진보세력이 독자적으로 선거정치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고, 진보세력의 일정한 지분까지 모두 다 챙기려 한다면 이 역시도 선거연합의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이다. 때문에 미리부터 민주당을 선거연합의 대상으로 가정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배제할 수는 없다. 진보양당 간 지방선거 공동대응의 원칙이 세워진 이후 민주당을 포함한 선거연합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진보세력의 몇몇 주요 의제를 받아들이고, 진보세력의 일정한 지분을 인정해 주는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있을 때, 최대다수 선거연합의 형성은 충분히 가능하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나가야

여러 가지로 진보세력은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무차별적인 신보수주의적 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동시에 민주당의 헤게모니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독자적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갈라진 진보양당의 통일성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갈라진 진보세력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딜레마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제 중심의 논의 테이블 구성, 진보세력 내부의 통일성 강화, 민주당의 전향적 태도가 순차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조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최적의 선거연합 전략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연합의 수준은 지금 이 시점에서 미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려 사항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 최종적으로 선택되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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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