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18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2013 세계의 시선(8) Helicopter Money: 선진국 양적완화정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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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 목 차 ]

1. 저자와 보고서에 대한 간단한 소개
2. 보고서의 주요 내용
3. 보고서의 시사점 
 

 

[ 본 문 ] 

1. 저자와 보고서에 대한 간단한 소개

 - 이 보고서 저자의 한 사람인  맥컬리(McCulley)는 세계적인 채권투자회사 핌코(PIMCO)에서 경영이사를 역임, 2007~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스키 시점(Minsky Moment)과 그림자금융체제(Shadow Banking System)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유명해진 경제학자.
콜롬비아 대학에서 MBA를 받은 후 25년 동안 UBS, 핌코 등 채권 분야에서 전문 펀드매니저를 경험함. 1999년 이후 핌코의 단기채권 부서를 이끌면서 경제포럼 개최, 주기적인 칼럼(글로벌 중앙은행 포커스) 등을 작성하여 명성을 떨침.
2010년 12월 핌코에서 은퇴한 후, 현재 비영리 싱크탱크인 Global Interdependence Center에서 Zoltan Poszar와 함께 공동 작업을 수행하고 있음.
맥컬리는 특히,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자로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하여 명성을 날린 민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음.

 

- Pozsar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시장 감독 부서에 근무하면서 그림자금융 시스템을 해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명해지기 시작함.
뉴욕연준의 스텝 보고서(Staff Report) 형태로 발표한 보고서(Shadow Banking System; http://www.ny.frb.org/research/staff_reports/sr458.pdf)를 통해, 최초로 그래픽 도해를 통해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 금융의 작동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함.[그림1]
2008 금융위기 이후 미 재무부, 백악관, FOMC, BIS 등에 글로벌 금융의 발전과 그림자금융 감독 등에 대하여 조언함. 현재 IMF 방문학자로 그림자금융 규제에 대한 정책 자문을 수행하면서, 폴 맥컬리와 함께 GIC를 통해 양적완화와 재정지출을 확대할 것을 주문하는 정책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음.
 

-  이 보고서를 통해 5년 전(2008년) ‘금융’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수정한 것처럼, 이제는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 또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함.  
즉 “장기적 부채 사이클이 존재하는 한 중앙은행 독립성은 정거장일 뿐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
최근 집권한 일본 아베 총리는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의 이중목표제, 무제한적 양적완화, 물가목표치 상향 조정(1%→2%) 등 중앙은행에 대한 적극적인 경기부양 역할을 강조함.
또한 3차례 양적완화의 실효성 여부에 대한 연준 내부의 이견, 긴축정책 지속에 대한 정치적·이론적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중앙은행 독립성’ 패러다임 또한 수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생산적인 논쟁 및 담론 형성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함.
최근 일본과 미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중앙은행 독립성과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의 정치담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대한 이해, 다양한 QE 정책 간 비교 분석, 1913년 연준 창설 이후 최근 QE에 이르기까지 미 연준과 재무부 간 권력투쟁의 역사 등을 통해 현대 거시금융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대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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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디플레이션의 늪을 헤매고 있는 일본경제의 물가가 2% 올라갈 때까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한 아베 신조가 가세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세계 자본주의 선진국 진영이 모두 강도 높은 통화 완화정책에 경제회생의 명줄을 걸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세 번째 양적완화를 시작했으며 최근 그 강도를 높인 바 있다. 양적완화에 미온적이던 유럽중앙은행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무제한 양적완화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양적완화는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8년부터 미국의 선도로 시작됐다. 선진국들은 급전직하 추락하는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다른 쪽에서는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재정적자 폭이 커지고 재정지출 여력에 한계를 보이게 되자, 점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의존도가 커지게 됐고 그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선진국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에 몰입하게 된 것은 세계경제가 비상적인 조치들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는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전혀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적완화는 과연 기대한 경기회복 효과를 만들어 내기는 하는 것일까. 최근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 내부에서조차 그 효과를 의문시하는 견해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가 회의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증권시장이 바닥이었던 1·2차 양적완화 시기와 달리 지금은 주식시장이 상당히 올라와 있기 때문에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통화정책이 실물로 전달되는 채널들인 채권시장·신용시장·통화시장, 그리고 주식시장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양적완화는 재정지출 정책과 함께 사용돼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재정긴축을 하면서 양적완화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양적완화 정책이 실물경제에 자금공급을 확대시켜 투자 활성화와 고용증대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해 자국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인 가운데 정작 신흥국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충격을 받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특히 미국의 달러공급 팽창은 달러 가치의 하락과 신흥국 통화가치의 팽창을 초래해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달러가치 하락은 석유와 원자재 등 국제상품의 가격상승을 동반한다. 양적완화가 부자들에게는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주지만, 상품가격 상승 부담으로 인해 빈곤층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결국 소득격차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정적으로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자국 실물경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그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자산가격 거품을 촉진시키게 된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통화절상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와 함께 외국자본 유입으로 인한 자본시장 변동성 증대, 추가적인 통화가치 절상압력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본시장 자유화를 옹호해 왔던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양적완화 정책이 의도하는 것은 각국의 수요촉진을 통한 국내수요 견인보다는 환율상승을 통한 국제시장에서의 상대적인 경쟁력 확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양적완화정책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2013.1)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 첫째는 자본 유출입 통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정책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본시장 개방의 전도사 역할을 한 국제통화기금(IMF)도 자본통제와 관련해 “분명한 대상에 대해, 투명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일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자본 이동 자유화가 항상 모든 국가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며 자본통제를 인정했다.

국내에서도 최종구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토빈세가 지향하는 단기 해외투기자본 규제 취지를 살려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한 외환거래과세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새 정부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의식이다.

둘째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가 환율전쟁과 수출경쟁으로 변질될 것이 명확한 만큼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개혁해 내수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수기반 확대의 핵심은 가계소득 성장에 의한 민간구매력 확장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기관들이 연이어 높은 기업소득 성장에 비해 정체된 가계소득 현황을 분석하면서 가계소득 성장정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취지와 맥락이 닿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경제민주화도 가계소득 성장을 통한 민간소비 활성화를 목표로 한 것이어야 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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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0 / 1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세계 3대 선진국 경제권인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지난 9월에 동시에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작했다. 재정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아래 중앙은행의 지원만으로 경기회복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경기상황이 가장 낫다고 하는 미국경제도 좀처럼 고용여건이 개선되지 않고 경기회복 수준이 미약하자 세 번째의 양적완화 정책 시행을 발표했다. “매달 400억 달러 MBS 채권을 무기한 매입하고, 0~0.25%의 초저금리 기조를 적어도 2015년 중반까지 연장하며, 국채교환 프로그램을 지속”한다는 강력한 조치다.

그런데 앞서 미국 경제부양을 목적으로 한 3차 양적완화의 결과로 풀린 달러가 신흥국에 유입되면서 신흥국 자산시장 거품을 일으킬 뿐 아니라 달러가치 하락을 초래하여 환율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세계의 시선 30:미국의 3차 양적완화는 두 번째 '환율전쟁'을 부르나? 참조) 최근 10월 13일 브라질 만테가 재무장관이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선진국들의 이기적인 통화 완화 정책으로 글로벌 통화전쟁이 촉발됐다”고 비판한 것이 그 사례다. 

그렇다면 3차 양적완화가 미국의 실물경제 회복에는 도움이 되는가? 이 점에 대해서 잘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꼼꼼한 논리를 펴면서 비판한다. 요지는 2008~2010년 1차 양적완화, 2010~2011년 2차 양적완화, 2011~2012년 국채교환프로그램(오퍼레이션 트위스트, Operation Twist)에 비해 그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3차 양적완화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중요 이유 중의 하나는 통화정책과 재정 부양정책이 함께 사용되지 않고 있고, 심지어 재정절벽과 같은 재정적 제약 상황 속에서 3차 양적완화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양적완화가 실물경제로 전달되어 실물경제 회복을 추동하게 해줄 경로들(채권시장 경로, 신용시장 경로, 통화 경로, 주식시장 경로, 그리고 신뢰의 경로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루비니는 “만약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전달되는 경로들이 모두 깨졌다면, 3차 양적완화가 경제성장에 의미 있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루비니의 글이 그런것처럼 꼼꼼하게 실증적인 비교 분석을 한 컬럼이다. 

 

회의적인 양적완화 효과

(Hard to be Easing)

2012년 10월 12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3차 양적완화에 착수하기로 한 미국 연준(Fed)의 결정은 세 가지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3차 양적완화는 빈사상태에 빠진 미국경제 성장을 촉진시킬 것인가? 미국과 전 세계의 주식시장 등 위험자산에 대한 지속적인 상승을 견인해줄 것인가? 마지막으로, 국민경제(GDP)성장과 주식시장에 비슷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1차, 2차 양적완화와 뒤 이은 연준의 국채매입 프로그램(Operation Twist)때와 마찬가지로, 주식시장에 대한 3차 양적완화 효과가 강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의 통화 완화정책들이 지속적인 주가상승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번 3차 양적완화의 규모와 기간은 더욱 대규모적인 것이다. 그러나 연준이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확고히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이전의 양적 완화 시기에 비해 훨씬 적거나 단기적일 것이다.

우선 이전시기 양적완화 정책은 주가와 수익률이 매우 낮은 시점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려해보라. 2009년 3월에 S&P500 지수는 660선 아래였고 기업과 은행들의 주당 순이익(EPS)은 금융위기 저점으로 추락했으며 주가 수익률(PER)도 한 자리 수였다. 지금은 S&P500 지수는 1430을 맴돌고 있을 정도로 100%이상 올랐고 평균 주당 순이익은 100달러에 접근했으며 주가 수익률은 14배를 넘어간다.

2차 양적완화 기간인 2010년 여름에조차 S&P500, 주당 순이익, 주가수익률 모두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만약 3차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 성장률이 취약한 수준에 머무르게 되면(그럴 가능성이 높다.),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더욱이 이번에는 재정적 뒷받침이 없다. 1,2차 양적 완화는 더 이상의 경제침체를 방어하고 더블 딥(double-dip)을 피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는데, 그것은 재정부양책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3차 양적완화는 재정적 긴축, 심지어 거대한 재정절벽(fiscal cliff)을 동반하고 있다.  

미국이 올해 말에 다가오는 GDP의 4.5%에 달하는 재정절벽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GDP의 1.5%에 달하는 재정긴축이 2013년 경제에 충격을 가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현재 미국경제 성장률이 연율 기준 1.6%에 머무르고 있는데, 여기서 GDP 1%정도의 재정긴축은 2013년 미국경제가 거의 정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3차 양적완화로 가계와 기업이 서서히 회복되어서 2013년에도 미국의 성장률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해준다고 할 때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 중인 그 이상의 회복 조짐은 없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경기가 상반기에 바닥을 찍고 통화완화 정책을 선언하기 직전에 이미 성장세로 반전했음을 경제 선행지표들이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이미 회복세로 들어선 경기를 더 자극하는 식으로 양적완화가 역할을 했고 이것이 주가상승 지속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데이터들은 미국경제가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유사하게 동력이 약하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노동시장의 취약함과 낮은 수준의 자본지출, 그리고 느린 소득상승은 올해 3분기 성장이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는 당초의 전망을 부정하고 있다.  

한편 통화 완화 정책을 실물경제로 전달하기 위한 주요 경로인 채권시장, 신용시장, 통화시장, 그리고 주식시장 등은 무너져버리지 않았다면 취약해져 있는 상태다. 이제 채권시장 경로는 성장을 촉진해주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장기국채 이자율은 이미 매우 낮은 상태이며 추가적 할인이 민간 차입자들에게 차입비용을 의미 있게 낮춰주지 못한다.  

신용채널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은행들이 추가적으로 대출을 풀어주기 보다는 초과 준비금으로 쌓아놓는 식으로 양적완화로 생긴 추가적 유동성을 대부분 비축해놓고 있다. 차입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충분한 현금을 가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반면 차입을 원하는 사람들은 가계부채가 높고, 차입을 원하는 (대부분 중소 규모의) 기업들은 신용 제한에 걸려 있는 상태다.

통화 경로도 비슷하게 악화되고 있다. 글로벌 성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양적 완화로 인해 -인용자) 달러 약세 환경이 만들어져도 순 수출이 좀처럼 탄탄하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많은 나라에서 중앙은행들이 미국 연준을 따라 다양한 방식의 양적완화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고 그 결과 약 달러를 유지하려는 연준이 조치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무역수지와 성장률에 대한 약 달러 효과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제한받고 있다. 첫째, 약 달러는 (석유, 원자재, 곡물 등) 상품가격이 높아지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상품 순 수입국인 미국으로서는 무역수지 개선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강력한 수출에 의해 유도되는 성장률 개선은 수입의 증가를 수반하게 된다.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무역 수지 개선을 위한 약 달러의 총 효과는 제로에 수렴한다.

양적완화를 실물경제로 전달해주는 다른 의미 있는 유일한 경로는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다. 그러나 3차 양적완화가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순환 논법적이다. 지속적인 자산 가격 상승을 위해서는 성장률이 회복되어야 하고, 성장률은 자산효과로 인해 회복될 수 있다는 동어반복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약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전달되는 경로들이 모두 깨졌다면, 3차 양적완화가 경제성장에 의미 있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는 최근 추가적인 경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신뢰의 경로(confidence channel)’인데, 오랜 동안 충분히 통화 완화정책을 유지시키겠다는 연준의 약속이 민간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연준은 2010년 2차 양적완화 당시 제로금리를 당초 2013년까지 유지하기로 약속했다가, 이번에 3차 양적완화를 발표하면서 2015년까지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 인용자) 문제는 어떻게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러한 효과를 유지시킬 것인가 하는데 있다. 부채 축소, 거시적 불확실성, 취약한 노동시장 회복, 그리고 재정적 제약이 계속되는 환경에서는 신뢰는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요약하면, 3차 양적완화가 전면적인 경기침체 위험을 감소시켜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런 축소과정을 견뎌야하는 경제에 대해 지속력 있는 회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3차 양적완화는 투자자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를 하게 해주고 약간의 자산 가격 상승을 자극해줄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실망스러워지고 기업 실적과 수익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게 되면 주가상승은 흐지부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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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논쟁을 위해서 새로운 장 '한국경제 성격 논쟁'을 마련한다. 앞으로 이 장을 통해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 86호, 87호를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과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논쟁의 물꼬를 텄다. 한차례의 공방에 이어서 정태인 원장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게 공개편지 형식의, 하지만 날선 글을 보냈다. <편집자>

☞관련 기사

정태인 : 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링크)
정승일 :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링크)

장하준 교수에게

알고 지낸 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네 살 위라서 계속 반말을 써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높임말을 쓰려니 참 어색하기 이를 데 없군요. 아마 장하준 교수도 그럴 거예요.

사실 경어 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생물학적 나이가 더 많더라도 학문적 나이로 친다면 장 교수가 훨씬 위니까요. 읽기의 양이나 사색의 시간, 학계에서의 성취를 고려하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여 이 말투에는 공개편지에 걸 맞는 형식일뿐만 아니라 존경과 부러움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내 서평에서 비롯되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사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전 한 대담에서 "우리는 이론, 정책, 거의 모든 면에서 다 같지만 '재벌 개혁' 문제와 '한국은행' 문제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그 두 가지가 산업, 금융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 상호 간에 일정한 공감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재벌 개혁의 필요 불가결성", 그리고 이 둘을 포함한 "진보적 경제 개혁의 방향과 경로"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하여

1996년 내가 영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은행 문제에 관한 이견이 있었고, 장하준 교수가 돌아가고 나서, 동석했던 김대환 교수에게 왜 저렇게 강한 반응을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그 때 김 교수는 유럽 논쟁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즉 한국 상황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지요.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던 장하준 교수의 그 반응을 이해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책임에 관한 스티글리츠의 논문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스티글리츠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자문회의(CEA) 의장을 맡았을 때의 경험을 털어 놓았죠.

조각조각 남아 있는 기억(우리와 너무나 달라서 강한 인상을 받았으니까요)을 거칠게 말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는 도대체 대통령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조직이라는 것, 대통령자문회의에서 불만이 많았지만 아예 내색도 하지 않았다는 것, 온통 통화주의자로 가득한 그 동네에서 논쟁을 벌이면 오히려 불리해졌을 거라는 애처로운 얘기였습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도 스티글리츠는 왜 선출되지도 않은 몇몇 은행가가 자기들 멋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느냐, 이들이 사회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은행 출신들이 아니라 금융을 잘 아는 경제학자가 들어가야 하고 실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연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장 교수의 주장이 떠올랐습니다. '아, (유럽도)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 장 교수가 그토록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글에서 또 하나 명확히 남아 있는 기억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독립성인가,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언급이었습니다. 만일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준처럼 자기만의 논리에 의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더구나 통화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라면 저도 장 교수처럼 한국은행 독립에 반대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행은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 많은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 탁월한 보고서도 생산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는 언제나 언론에 노출되고, 한국은행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한국은행은 GDP(국내 총생산)이나 경상수지 발표 때만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전 재정경제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에 가까울까요?

기획재정부에는 최중경과 같은 중상주의자가 간혹 섞여 있긴 하지만 이헌재류의 시장 만능론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은행은 힘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시장 만능론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법으로 규정돼 있는 물가 안정조차 줏대 있게 내세우지 못합니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인 조직, 자기 지키기 바쁜 조직입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고슴도치 같은 조직"이라고 했겠어요?

물론 앞으로 정말 힘이 생기면 한국은행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물가 안정"을 내세워 실업과 같은 시민의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비서관일 때 한국은행 직원을 꼭 상근으로 불렀고 '개혁'에 중요한 기초 자료는(때론 기본 방침도) 한국은행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재정경제부 관료나 KDI를 이용할 경우에는 내 의도가 드러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중앙은행에 대해서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의 생각도 그랬듯이 중앙은행은 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한 기관이 하나의 목표만 맡는 게 아니라, 다수의 목표를 놓고 다수의 기관이 서로 협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런 이상적 상황을 가로막는 집단은 어디일까요? 난 단호하게 기획재정부(이들은 삼성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잡종 신자유주의의 근원이자 재생산지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들은 과장이 되면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단기간에 받고 국장쯤 되면 (장 교수의 주적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 파견 나가 신자유주의 교조의 세례를 받습니다. 얼치기로 알기에 더 과격한 시장 만능론자가 되는 거죠. 장 교수가 1960~70년대의 역사 속에서 관찰한 그 관료들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가 아니라 자산 가격 안정을 포함한 경제 안정까지 추구해야 합니다(한국은행법 개정 사항이죠!). 물론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와 협의를 하는 채널을 둬야겠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독립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이 실업 등 중요한 정책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 변화입니다. 지금처럼 각 부처를 대변하는 "민간" 전문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시민 일반을 대표하는 금통위원이 들어가야겠지요.

(나보다 훨씬 잘 알겠지만 케인스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그래서 하이에크가 매번 당했지요). 그런 정책 변화를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게 바로 케인스의 천재 증명이었습니다. 예컨대 케인스도 인도라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필요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루피와 스털링의 안정적 환율 때문에) 그게 꼭 필요했으니까요.)

재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 이제 본론 격인 재벌 문제입니다.

1980년대 말 이래 재벌은 옛날의 재벌이 아닙니다. 내 기억으로는 1988년 금리 논쟁 때 처음으로 당시 재정경제부(조순 부총리)에 반기를 든 이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들이 재벌-재정경제부 연합을 결성했고 이제 한 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부턴 재벌이 우위에 섰습니다. 발전 국가론에서 상정하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과 힘의 우위는 이미 한국에서 현실이 아닌 지 오래 됐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재벌 문제에 관해 본격적인 논문을 쓴 건 본 적이 없지만(장기의 역사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게 장 교수 작업의 본령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짧은 평론이나 인터뷰에서 받은 느낌은 장 교수가 재벌을 주주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논리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식으로 주주 자본주의/시장 만능론을 한 시대의 '에테르'(헤겔식으로는 시대정신이겠죠)라고 표현한다면 그 안의 어떤 존재도 그 풍조에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존재는 환경에 적응하는 거니까요. 일제 강점기에는 동네의 똘똘하고 진취적인 농부가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 되었을 겁니다. 농민을 최대한 수탈하려고 최초로 "근대적 경영"(경영형 지주론)을 도입하기도 했을 겁니다.

당연히 재벌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려 합니다. 단기 시야의 수탈이 벌어지죠. 그런데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서 주주 자본주의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면(분명 역사는 이 방향으로 가겠죠) 정말 재벌은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비 투자와 새로운 산업 진출에 매진하게 될까요? 해방이 되어서 일본인 지주가 사라졌을 때 우리의 마름들은 착한 농업 경영인이 되었나요? 국가가 어떤 외적 충격이 와도 마름의 지위를 유지시켜 준다고 약속하면 이들이 소작인들의 삶의 질도 높이는 착한 존재가 될까요? (비유를 이렇게 했지만 현재의 재벌은 일제 강점기 마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나 한국경제연구원의 얘길 들어서 알겠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아무런 이론이나 차용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단물 빠진 껌처럼 언제든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강한 건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거래 비용 이론이나 대리인 이론으로 재벌 구조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시장 만능론으로 국가의 규제를 비판하지요. 자유주의자 같지만 기업 내의 전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사실 이 모순이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론의 핵심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얘기도 그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자본이지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재벌과 주주 자본주의(또는 외국인 주주)를 대립 관계로만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들은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해서 주주 집단 바깥의 이해 당사자들을 최대한 수탈하는 동맹군이지요.

주주 간의 관계(즉, 자본 간의 경쟁)라는 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장 교수는 소액 주주 운동과 실은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소액 주주 운동 역시 지배 주주와 소액 주주(이 중엔 대규모 외국인 주주도 있지요)의 대립에 주목하니까요. 즉, 장 교수나 소액 주주 운동가나 모두 자본 간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재벌을 보고 있는 겁니다. 장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외국인 자본에 시달리는 존재로 보고, 김상조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소액 주주를 수탈하는 존재로 본다는 차이만 있는 거지요.

나아가 재벌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두 주주 집단(지배 주주, 소액 주주(외국인 주주 포함))과 협동해서 비정규직과 하청 기업을 수탈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가 이해 당사자론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이런 중층의 수탈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번 서평에서 이 문제는 대부분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고, 동시에 "재벌 개혁"을 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중층적 수탈 관계를 이해 당사자론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거기서 도출되는 정책 방향에 관해서는 이미 밝혔습니다.

논란이 남은 사항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에 관한 겁니다. 장 교수도 정승일 박사처럼 재벌이 제약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재벌이 제약 산업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청와대 비서관일 때 제약 산업을 검토했는데 생물학계 제약 같은 것은 가능하지만 신약 개발과 같은 화학계 제약은 영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학자 출신 풋내기 비서관의 판단일 뿐, 재벌이나 박정희류의 관료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다 망한다 하더라도, 이미 지급 보증이 해소된 상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삼성제약'을 만들려면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 회사가 출자를 하고 그 '삼성제약'이 발행한 회사채를 계열사가 인수해서 초기 자본을 형성하겠죠. 그 이후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소액 투자자들을 모집할 겁니다. 만일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다면 단지 지급 보증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안 생길까요? 신약 개발과 같은 분야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고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10년, 20년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런 쪽은 눈덩이 효과(snow ball effect)도 많이 작용할 겁니다. 기존의 지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일수록 유리하겠죠.

만일, 그야말로 만에 하나 산업계와 정부가 이런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우선 교육 투자를 통해서 전문 인력을 충분히 길러야 하고(10년 이상 걸리겠죠?) 관련 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에도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서도 마치 미국의 국방부나 보건부가 하듯이 프로젝트를 발주해야겠지요.

제 아무리 삼성이나 현대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승일 박사의 가정대로 재벌이 나 홀로 한다면? 당연히 정부는 시스템 위기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장 교수와 내가 옹호하는 산업 정책이 바로 이런 거겠죠(내 경험에 비춰보면 정 박사가 청와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재벌들은 십중팔구 조·중·동을 동원해서 정부가 시장이 할 일에 개입한다고 비판할 겁니다).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기만 하면 그들이 이런 장기 모험 투자를 할 것이라는 건 실로 안이한 생각입니다. 제로 리스크로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는데 왜 하겠어요? 주식이나 땅 투기, 동네 빵집, 심지어 순대국집…. 재벌 규제, 자산 투기 규제와 산업 정책이 같이 갈 때만 실제로 필요한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겁니다.

또 따라잡기(catch up)를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 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나는 지역 클러스터와 공동체의 발전 전략을 결합하는 것이 이 단계의 유력한 산업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주제야말로 우리 같은 산업 정책 옹호론자들이 진지하게 붙들어야 할 주제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재벌의 은행 소유까지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장하준 교수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건 정확히 시스템 위기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예의 제약 회사가 망해가면 재벌계 은행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일반적인 계열 분리명령(또는 청구)의 도입은 더 철저한 논증이 필요하지만 금융 계열 분리 명령은 시스템 위기 가능성만으로도 도입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재벌 개혁 또 경제 민주화 운동이 복지 국가 운동을 가로막는다?

장하준 교수도 아시다시피 나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갈 때, 막연하지만 스웨덴 모델을 꿈꿨습니다(조금 더 유연한 이정우 교수는 네덜란드 모델을 상정했죠).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는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스웨덴에서 한 일 하나하나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고 해서 스웨덴 모델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삼성이 발렌베리처럼 행동한다거나, 민주노총이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처럼 커지고 또 '연대 임금' 같은 획기적인 상상력 넘치는 연대 사업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환상이겠지요. 또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소득세로 재원을 조달하니까 우리도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기계적 도입 중 하나일 겁니다(종합부동산세 등 자산세는 불평등 심화를 일단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절실합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없다고 해서 복지 국가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우선 다음 그림 두개를 한번 보시죠.

한국에서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1995년경입니다. 이건희가 정부를 "3류"라고 일갈하고 김영삼이 "세계화"를 선언했으며 관료들이 마음 깊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시점이죠. 그리고 외환 위기는 그런 시장 만능의 기조를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국민들도 이제 믿을 건 나 밖에 없다, 살고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불행히도 IMF의 지배 하에서, 더구나 관료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예를 들자면, 노동 시장 유연화)을 추구한 결과 사회의 양극화는 가파르게 진행됐습니다.

 

[그림1] 지니계수 변화 추이

[그림2]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그래도 복지에 돈을 투입한 결과(붉은 그래프와 푸른 그래프의 차이)가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지만 양극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핵심 원인은 두 번째 그림에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에 임금 몫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만일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이 모두 세계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 일어난 일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재벌-관료-조·중·동이라는 삼각 지배 동맹이 앞장서서 실천한 것 또한 명백합니다.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회적 합의, 또는 대타협 없는 보편 복지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각동맹이 왜 타협을 할까요? 물론 나는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동시에 장기 침체의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면 곧 파탄이 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기가 온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세력 관계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수탈을 더 강화해서 그야말로 파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스웨덴의 시장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더 나쁜데도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한국의 시장 지니계수가 과소 추계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소득 재분배에 의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분배를 달성했으니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금을 내도록 하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올까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국내외 주주 집단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기업의 수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정당도 흡수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운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삼각 지배 동맹과 힘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해질 겁니다.

내가 장하준 교수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내 짧은 청와대 경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단언합니다. 혹시 우리가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경영권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 국가 만드는 걸 도와 달라"는 장 교수의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겁니다. 삼각 지배 동맹이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나름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시장 만능의 사회가 되면 한국이 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요. 더구나 현재의 제도 하에서도 재벌들은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타인에 대한 일반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가 아닙니다. 재벌이 합리적 계산 하에 먼저 임금의 중앙 교섭을 제안하는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도, 나와 내 아이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헛된 꿈에서 이제 막 깨어난 일반 시민들이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와 재벌의 연관을 직시하게 할 때만 우리가 꿈꾸는 복지 국가도 가능해질 겁니다.

장 교수가 놀랄지 모르겠지만, 이해 당사자론자인 나와 주주 이론을 채택한 김상조 교수 사이에 현재의 운동 방향에 대한 이견은 조금도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이 같이 가야 한다는 데 한국 대부분의 시민 운동가, 경제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으로 이런 합의를 갈라놓으려 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마 기업 집단법의 목적에 대한 강조점이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요. 김상조 교수 외의 재벌 개혁론자는 기업 집단법에 대해 더 회의적입니다만 "절대로 안 된다"는 수준의 반대 또한 아닙니다.)

장 교수는 50만이 넘는 독자를 거느린 강력한 지식인입니다. 그러기에 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나라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장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 놨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나도 한국과 영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장 교수 뜻대로 경제 민주화 운동이 뜻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복지 국가 운동도 같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일개 지식인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요?

난 이 논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절대적 대립이라도 있는 양 비춰지고 있는 이 상황(막연하게 같은 편이리라 짐작하고 복지 국가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을 모두 지지하던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겁니다)은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엉성한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학계 심포지엄 같은 형식으로 치밀하게 따져 볼 수도 있겠죠.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럼, 조만간 직접 얼굴 맞대고 이런 얘기를 나눕시다.

2012년 5월 2일

정태인 드림.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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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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