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편집자 주> 새사연이 참여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시민연대(준)와 민주당 경제민주화추진의원모임이 공동으로 지난 9월 12일 토론회를 갖고 경제 민주화를 위한 10대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재벌내부구조개편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와는 달리, 중소상인, 중소기업, 소비자, 노동자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고 재벌을 규제하는 입법을 최우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백가쟁명으로 말만 무성한 경제 민주화 내용 가운데 시민 사회단체가 최우선으로 뽑은 10대 과제입니다. 앞으로 경제 민주화시민연대는 더 국민의 생활과 밀착된 경제 민주화, 진정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킬 경제 민주화에 주력해 나갈 것입니다.

 

1. 한국 사회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합니다. 자살율은 1위 수준, 출산율은 꼴지 수준 등의 지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최악의 민생고는 현재 우리 사회에 수없이 많은 비극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한국 사회와 우리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자, 한 시도 늦출 수 없는 ‘민생살리기’의 핵심 요체가 되었습니다. 여야 대선 후보들도 앞 다투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말뿐인 것이라면, 오락가락하는 것이라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 차기정부로 넘길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정기국회에서 각종 입법을 통해서 그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19대 첫 정기국회가 ‘참된 민생국회, 정말로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 국회’가 되어야 함을 선포하고, 3대 분야 10대 과제를 공동으로 도출하여 이의 시급한 입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또 경제민주화와재벌개혁을위한시민연대(준)가 제안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정치권·시민사회 연석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함께할 것을 선언합니다.

 

2.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해 현 시기 가장 시급한 입법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소기업·중소상인·소비자 보호>

-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원·하청 거래 개선을 위한 하도급법 개정

- 의무휴업제도 확대 등 중소상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상생법 개정

- 중소기업·중소상인도 함께사는 공정한 경제를 위한 중소기업·중소상인적합업종특별법 제정

- 재벌대기업의 담합 등 불법행위 근절·엄단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과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

 

<노동자와 청년들의 생존권 보장>

-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근절 및 최소화하기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와 산업재해 예방

- 재벌대기업과 공기업의 청년고용할당제 도입과 최저임금제도 전면 개선

 

<재벌대기업의 특혜 타파와 일감몰아주기 규제 및 법입세 인상 등>

- 재벌대기업의 특혜 타파와 일감몰아주기 규제 및 최저한세율·법인세 인상

- 재벌대기업의 은행 지배를 근절하기 위한 금산분리 강화와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 재벌대기업의 환상형 순환출자금지 등 지배구조 개선과 노동자 경영참가 확대

 

3.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시대적 과제, 민심의 절절한 요구가 된 이 때 합정동 홈플러스, 광명 코스트코-이께아 출점 강행, 대상·CJ그룹 등의 도매상권 침탈 등은 즉시 중단되어야 하며, 대형마트와 SSM의 의무휴업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 또,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일자리의 양과 질을 제고하고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SJM 폭력사태 등이 반드시 조기에 해결되어야 하며 국회는 향후 1)중소기업·중소상인·소비자 보호, 2)비정규직·정리해고 문제 해결, 청년실업 대책,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3) 재벌대기업의 온갖 특혜를 타파하고 법인세 인상과 지배구조 개선 등 3대 분야에서의 10대과제를 위해 즉시 입법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고 호소합니다.

 

4. 또 경제민주화추진의원모임과 경제민주화시민연대는 합정역 홈플러스 저지 농성장 등 전국 중소상인들의 투쟁 현장,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농성장,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서명운동 현장, 경제민주화2030연대 출범식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생존권 투쟁 및 경제민주화 운동 현장을 찾아 지지와 연대의 뜻을 표하고 각종 민생경제 현안 해결과 민생살리기에 전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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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정태인/새사연 원장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 미켈란젤로 이후 슈투크, 들라크르와와 모로, 고흐,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끝없이 변주한 피에타.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의 제목이 바로 피에타다. 조민수의 무릎 위에 축 늘어진 이정진이 뉘어 있는 사진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모티브가 된 것이리라.

냉혹함으로만 가득찬 현실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봐야 한다고 다그치던 감독, 때로는 그 또한 그저 무심한 자연의 법칙이 아니냐고 뭉뚱그리던(<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감독이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현실의 구원을 결국 모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는 ‘피에타’를 필요로 한다. 정부가 황급히 2조원 규모의 긴급 재정투입을 발표할 정도로 경제가 심각하다. 지난 3월까지 3% 중반대의 성장을 할 거라고 낙관할 정도로 정부, 한국은행 그리고 재계가 무능한 탓에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더라도 임기 초반 위기 수습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가장 다급한 사람들은 역시 저소득층이다. 하위 소득 1/10에 해당하는 계층의 빚은 이미 자기가 쓸 수 있는 소득(가처분소득)의 두배를 훌쩍 뛰어 넘었다. 이들은 고리채에 의존하고 있다. 영화에서 이정진이 노동자의 손목을 잘라 보험금을 타내는 일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그의 직업은 전혀 생소하지 않은데 SBS 드라마 <쩐의 전쟁>(2007)에서 박신양이 맡았던 역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다행히 이 계층이 진 빚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빚 대부분(고리채로 늘어난 부분)을 금융권이 떠안도록 하고, 이들의 삶은 정부가 복지 지출로 해결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이들의 생명은 안전해질 것이다.

다음은 2006년경의 집 값 급등에 밀려서, 또는 대박의 꿈을 안고 은행 빚으로 집을 산 중산층이다.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원리금 상환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너도 나도 집을 내 놓는다면 집값은 더 떨어지고 시급히 갚아야 할 돈은 더 늘어나게 된다. 지난 2년간 누누이 말한대로 이 문제는 공적 자금으로 집을 사 주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원하는 경우 그 집에 싼 값으로 세를 들 수 있게 한다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수 있다.

이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집단이 남았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영업을 시작한 경우이다. 지금도 동네 골목 곳곳의 음식점이나 구멍가게의 주인이 바뀌고 있는데 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지면 몇 집을 제외하곤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공식 실업률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은 것은 바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협하는 재벌들의 탐욕을 막고 자영업을 공기업이 돕는다거나(예컨대 자영업의 물류를 우체국이 도와준다) 협동조합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경우에는 구체적인 이행 프로그램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의 위기는 정부의 단발성 긴급대책으로 수습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수출과 낙수효과)의 정책기조를 완전히 바꿔서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내수와 차오름효과), 즉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에 의한 따뜻한 협동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냉혹한 경제에도 피에타가 가득차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국민을 무릎에 안을 자애로운 성모의 자리에 누가 어울릴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한번 상상해 보시면 분명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피에타>를 꼭 개봉관에서 봐야 할 이유 하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이중의 불균형을 안고 있다. 조각의 비레를 맞추기 위해 마리아에 비해 예수의 신체가 비현실적으로 작아졌고 어머니가 아들보다 더 젊어 보인다. 후자는 그렇다 쳐도 180cm가 넘는 이정진이 조민수의 작은 무릎 위에 어떻게 누웠을까. 확인해 봐야 한다.


이글은 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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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정태인/새사연 연구원

 

SEQ!!! 이번 호를 쓰면서 나는 ‘꿈꾸는 그대’로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의 활동가들, 그 중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떠올렸다. 8월 초 나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 다녀 왔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예컨대 1900년에 시작된 데자르댕 신협그룹은 현재 퀘벡지역뿐 아니라 캐나다 전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금융기관인데 설립의 역사나 현재의 사업방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협동조합 은행에 속한다.
 
이번 학습여행의 말미에 내 머리를 친 아이디어는 SEQ였다. 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을 연결하는 세 대륙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내 생각에 퀘벡은 불모지 한국의 사회적 경제 운동에 환하게 머리를 밝히는 영감을 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호의 얘기는 그저 즐거운 상상이라 해도 좋다.


 
우선 세 지역을 비교해보자. 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넓이와 인구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넓이에서 퀘벡주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7배가 넘고, 서울의 거의 300배(경기도에 비해서도 15배 정도)에 이르는 반면 인구는 서울이 제일 많다. 1인당 GDP는 에밀리아로마냐와 퀘벡이 엇비슷하고, 서울은 이 둘의 약 70% 수준이다. 소득수준을 제외하곤 이들 지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왜 퀘벡인가? 재작년 에밀리아로마냐를 둘러보고, 또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미 이 지면에서 몇 번 말했듯이 에밀리아로마냐는 영세 중소기업들과 협동조합으로 이뤄진 경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힘은 신뢰와 협동에서 나온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가능해졌는지 물을 때마다 내가 들은 답이었다.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야”. 한마디로 복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퀘벡에도 이런 문화의 뿌리가 상당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퀘벡에 분 사회연대경제의 열풍이다. 님탄(Nancy Neamtan)이라는 걸출한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시민운동 그룹은 퀘벡지역의 여성운동, 문화운동, 환경운동 등 각종 시민운동과 기존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을 연결해냈다. 주정부는 이들과 협정을 맺어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했는데, 그 수단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다. 즉 시민운동과의 결합이 이 지역 사회적 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실험에 드는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주정부가(그리고 2002년에서 2006년까지는 연방정부도) 이 실험에 적극 참여했기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었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은 각종 기금에서 나온다. 이 지역의 기금은 개발기금, 연대기금, 정부기금으로 나뉘는데 이 세 기금은 목적을 약간씩 달리하면서도 모두 사회적 경제를 지원한다. 스스로 돈을 모으고 스스로의 투자 결정에 의해서 사회적 경제에 돈을 대는 기금은 우리에게 그 얼마나 절실한가.
 
퀘벡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지역 노동운동의 역할이다. 님탄은 2010년 ‘인간중심 경제에 관한 캐나다 전국회의’에서 “노동조합과의 통합은 사회연대경제 성공의 열쇠”라고 단언했다. 노동조합은 1980년대 초에 노동자연대기금을 만들었는데 이 기금은 지금도 3대 개발기금 중 하나이다. 노동자 스스로의 노후 복지를 위해 연금을 만들어 이 기금의 60%를 일자리 창출과 보전에 쓰도록 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지도는 대충 이런 모습이 아닐까? 퀘벡을 거쳐 에밀리아로마냐로 가는 여정. 우리의 사회적 경제, 나아가서 민주적 경제를 이룰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서 맞추는 여행을 다 함께 떠나자. SEQ라는 지도를 따라….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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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8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미국 선거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롬니 의원이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모하메드 엘 에리언(Mohamed El Erian)은 아직 두 후보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하다고 본다. 실제로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 미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일자리를 만들고 금융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의 목표는 같더라도 그 방식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에리언은 경제 정책은 결국 사회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며, 특히 재분배를 고려한 사회적 판단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런 점에서 다음 대통령은 개별 경제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포괄적인 경제 정책 세트를 내놓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부합하는 사회 정책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두 후보 사이의 차이점이 될 것이라 보았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의 핵심은 결국 사회적 책임감에 관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노력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취약계층을 위한 보호를 강화하며, 부자들에게 공정함과 평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안하고 있지만 그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세계 최대 채권 투자회사 핌코(PIMCO)의 CEO이다. IMF에서도 일했으며 영국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2008년 선장한 최고의 책 <새로운 부의 탄생(When Markets Collide)>의 저자이다.

 

미국의 제한된 선택

(America's Constrained Choice)


 2012년 8월 1일

모하메드 엘 에리언(Mohamed El Erian)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일반적 통념은 부분적으로 옳다. 경제 문제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맞다. 하지만 그 다음은 매우 불확실하다. ‘못난이 대회’에서 승리한 사람은 상대방과 자신의 정책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 1월에 시작된다. 지금 큰소리를 치는 오바마(Obama)와 롬니(Romney) 후보의 모습과 달리 새 당선자는 자신이 경제정책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을 위한다고 주장하는 후보들의 차이점은 유권자들에게 아직 전달되지 않고 있다. 후보들은 매우 비슷한 경제 대책을 제시하면서 사회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이 점이 후보들 사이의 차이이다.

누가 이기든지 내년 경제 성장률은 2% 미만일 것이다. 실업은 여전히 높고, 그 중 절반 정도는 해결하기 힘든 장기 실업 상태에 처할 것이다

금융 역시 우려의 대상이다. 재정 적자는 GDP의 10% 수준으로 지속될 것이며, 중기적으로 부채가 주는 위험을 더해질 것이다. 은행 부문도 여전히 위험하다. 은행은 중소기업의 신용 대출을 제한하여, 고용과 투자에 방해가 되고 있다. 주택 부문은 오직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부채 조정)이 부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시행되는 정책은 모두 똑같이 불안정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언쟁에 매몰되어 있었던 탓에 미국 의회가 위기에 대한 행동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렵다. 반면 연방준비은행(Fed)이 제시하는 실험적인 대응책과 적극적 행동은 경제에 이롭지 않으며, 비용과 위험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 경제가 처한 세계 경제의 환경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향후 몇 달 동안 유럽의 부채 위기는 매우 나빠질 것이다. 신흥국 경제도 침체되면서 다자간 정책 조정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고, 정체된 파이를 위해 주요 무역 대국이 경쟁하면서 보호주의 압력은 증가할 것이다.

결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미트 롬니 중 누가 11월에 승리한다 해도, 다음 대통령은 시급한 경제적 안정과 장기적 개혁이라는 두 가지 상황에 가로막힐 것이다. 유럽의 침체, 그리고 그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 앞에서, 역동적인 일자리 창출과 금융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 외에 후보들이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없다.

즉각적인 경제 부양책과 중기적인 재정 안정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재정절벽(역주-재정절벽이란 지금까지 집행하던 예산이 갑자기 삭감되거나 중단되어 경제에 큰 충격이 오는 것으로 미국은 2013년 1월부터 Budget Control Act에 따라 1조 2천억 달러 재정 지출이 자동으로 삭감될 예정이어서 재정절벽을 맞게 된다.)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처럼 세금 감면 기한이 끝나가고 전반적으로 소비 감소하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만약 실패한다면 미국 경제의 침체가 매우 심화될 것이 명확하다.

중기적으로 예산 개혁이 필요하다. 의회에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세금의 올바른 책정과 지출 개혁에 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정치적 수사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더 협소하다다. 다음 대통령 역시 이를 곧 깨달을 것이다.

재정 개혁은 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따라서 오바마와 롬니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주택이나 노동시장, 신용중개, 사회기반시설과 같은 분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은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믿는 것보다 매우 적다.

그렇다고 해서 두 후보 사이에 차이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전체 경제의 방향은 다양한 수준과 속도를 가진 원동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술과 교육 수준에 따라 실업률이 달라지며, 소득 수준이 달라지고, 부의 불평등까지 이어진다. 즉, 경제적 결정은 재분배가 가져오는 영향을 고려하여 사회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최고조에 달했던 과도한 레버리지와 부채의 시대 이후, 미국은 여전히 투자, 일자리, 경쟁력이 성장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누적된 손실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하였다. 지금까지 의회는 과도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부채 조정을 강요해왔다.

이상적이지만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일자리 역동성을 회복하고 금융 안정성을 회복하는 두 단계를 신속하게 시작해야 한다. 우선, 그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경제 정책을 포괄적인 세트를 고안해야 한다. 이것이 두 후보 간의 중대한 차이점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경제 정책과 함께 사회 정책을 하나의 명확한 세트로 제시해야 한다. 그 사회 정책은 사회의 손실을 공평하게 공유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여기서 잠재적 차이점이 나타난다.

이번 선거는 아웃소싱, 증세, 사회복지개혁, 정부 통제냐 민간 활동 촉진이냐, 일자리 창출이냐 무임승차자냐와 같은 이슈들이 뜨거운 논쟁이 되는 선거는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사회적 공평성, 권리, 평등, 부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 시민사회에 관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사회적 책임감에 관해 이야기하는 선거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돕고, 그들이 일자리를 찾고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돕는 것은 사회적 의무이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문을 보호하기 위한 것다. 취약계층이 더 적절한 건강 보장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을 실패로 몰아가는 교육 제도의 개혁에 관한 것이다. 공정함과 평등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고 있지만, 자신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부를 가져다주는 체계로 회귀하고자 하는 부자들에 관한 것이다.

오바마와 롬니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이는 중요하다. 이에 대한 캠페인과 토론이 더 빨리 진행될수록, 미국 유권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으며, 국가적 불안을 탈출하기 위해서 집단적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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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03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5)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네트워크, 산업지구

학계에서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 요인으로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를 설명한다. 산업지구란 1809년 영국의 경제학자 마샬(Marshall)이 최초로 제시한 개념으로, 전문화된 작은 규모의 동일기업들의 다수가 특정한 지리공간 상의 지구에 모여 있는 것이다. 마샬은 분업이 심화되면 대기업에 의한 대량생산방식과 중소기업에 의한 산업지구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았다. 마샬은 산업지구의 특성으로 산업의 국지화를 통한 외부경제의 확보, 지구 내에서 전문화된 기업들 간의 분업 심화, 지구 내부의 건설적인 협력관계, 기업활동을 고취시키는 지역 사회의 분위기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이런 특성 덕분에 지구 내의 기업 간에는 물류비용과 거래비용이 감소하고, 전문 분야의 노동력을 공유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재고를 늘리지 않아도 되고, 기술의 학습과 전파를 용이하게 하여 잠재적인 혁신 역량을 강화해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후 세계 경제는 중소기업에 의한 산업지구보다는 초국적 대기업들의 대량생산체제가 지배하게 된다. 포드주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대규모 공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은데 비해 전문 중소기업들의 산업지구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탈리아계 산업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제3이탈리아 지방이 떠올랐다.

산업지구론을 연구한 대표적인 이탈리아 학자들이 산업지구에 관해 내린 정의를 몇 가지 살펴보자. 베카티니(Becatini)는 산업지구를 ‘제품생산과정을 여러 단계로 분리하여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영역적 체계’로, 스포르자이(Sforzi)는 ‘특정산업으로 전문화된 소기업들의 집적체’로 정의했다. 사벨(Sabel)은 산업지구를 ‘소규모 기업들로 구성된 마샬의 산업지구’와 ‘대기업들이 조직의 각 부분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재구성된 지역생산 네트워크’로 구분했다. 1990년 포터(Porter)는 관련 기업 간의 연계를 중심으로 대학, 연구개발, 지방정부 등이 복합된 산업클러스터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1991년 이탈리아 법은 ‘전문적 소기업이 고도로 집적되고 기업과 지역 주민 간에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곳’이라고 산업지구를 정의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산업지구는 전통적인 공예기술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 유연적 생산기술과 생산방식을 접합하여 소비자들의 기호변화와 기술혁신에 신속히 대응했다는 점을 추가적인 특징으로 갖고 있다. 또한 기업들의 공동체와 주민들의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공동체 내의 신뢰가 단순히 부수적인 요인이 아니라 필수적 요인이며 주민들의 동의,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동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와 산업지구는 우리가 흔히 아는 클러스터와는 조금 다르다.

산업지구가 발전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지역 주민의 삶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성장과 함께 그 지역의 가치와 문화 역시 고양되어야 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 사회와 경제의 분리라는 경제학적 이분법의 세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사회 안에 단단히 뿌리 박혀, 묻어 들어간 상태이다. 상호성의 원리가 경쟁의 원리를 제약하는 상태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에는 9개의 현이 있는데 각각에 특화된 산업지구가 존재한다. 카르피는 섬유 및 의류 산업지구, 모데나와 레지오 에밀리아는 세라믹 및 농기계 산업지구, 라베나는 신발 산업지구, 리미니는 목재생산기계 산업지구, 폴리 세세나는 실내장식과 가구 산업지구, 파르마는 식료품 산업지구, 페라라는 바이오메디칼 산업지구, 볼로냐는 포장기계 산업지구로 유명한다. 우리로 치면 도를 이루는 각 시와 군에 각각 서로 다른 산업이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2001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탈리아 전체에 156개의 산업지구가 존재한다.

산업지구 내의 중소기업들은 정보, 장비, 사람, 주문을 공유한다. 수많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장조사, 기술 훈련, 인력 관리, 연구개발 등과 같은 사업서비스 기업과 금융서비스 기업이 등장했다. 마케팅과 유통을 돕는 기업도 생겨났다. 기업연합회도 조직되어 정보, 훈련, 금융,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주 작은 전문화된 소기업들이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협력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한다. 다만 공동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가격경쟁보다는 제품차별화 경쟁을 택한다.

예컨대 세라믹 산업으로 유명한 사수올로의 산업지구에서는 에나멜, 페인트, 풀, 포장, 기술상담, 그래픽과 디자인, 보관과 수송, 법률과 보험 등 세라믹 산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공하는 소기업들로 우글거린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아름답고 내구성 좋은 고품질의 타일이 탄생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도 이런 기능을 가진 부서를 모두 갖추고 생산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위계질서로 인해 각 부서가 최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발휘하지는 못할 가능서이 크다. 사수올로의 여러 소기업들처럼 경쟁하면서 창조하는 관계가 되도록 대기업의 각 부서를 설계하고 운영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풍성한 사회적 자본과 기업가 정신

산업지구라는 네트워크가 발생시키는 외부효과를 좀 더 살펴보자. 각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는 산업지구 내에서 자유롭게 공유되면서 지역 공동의 지식과 제도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장기 반복 거래와 평판 효과로 쌓인 신뢰는 각종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공식적 계약이나 제도보다는 비공식적 관계가 저비용 고신뢰의 공유자산이 된다. 만일 공동체 내의 규범을 어긴다면 지역사회에 발붙이기는 어렵다. 지역의 고유문화와 역사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규범과 정체성은 다시 상호성을 강화하여 협력을 촉진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 자본이 된다.

그 중에서도 사업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이 눈에 띈다. 80년대 이후 에밀리아 로마냐의 고용 증가를 주도한 것은 서비스 산업이다. 이는 또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이 지역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협동조합들의 협동조합인 레가코프(Legacoop, 협동조합전국연합)와 중소기업중앙회인 CNA는 회계와 금융 등 일반적인 사업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협동조합과 중소기업들이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산업진흥공사인 ERVET(Emilia Romagna Valorizzazione Economica del Territorio)를 세웠다. ERVET에서는 각 지역마다 실질서비스센터(Real service center)를 세워 각 지역별로 전문화된 산업에 필요한 구체적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금융, 마케팅, 기술개발과 같은 사업서비스는 중소기업의 지속적 발전 앞에 놓인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이러한 사업서비스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자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 충만하다는 조건은 기업가 정신의 고양으로 이어진다. 지역의 공유자산을 이용하여 언제든지 기업을 창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기업가라는 계급적 차이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사장과 노동자가 공산당(현재 민주당)에 같이 가입해서 활동한다.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이 가장 강한 지역이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은 기업가 정신에도 익숙하여, 노동조합은 기술변화와 구조조정에 아주 유연하게 대응한다. 사실 노동자라고 해서 시장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창조성을 가지면 안 될 이유는 없다. 왜 노동자는 가치 자체를 새롭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가치 중에서 임금의 몫을 늘리는 데에만 온 몸을 받쳐야 하는가? 한국에서라면 반동적일 수 있는 이런 의문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의 노자간 역사적 대타협과 사회적 합의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그런 합의가 일상에서 아주 미시적 차원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역 정부의 지원과 법제화

공산당이나 지역정부와 같은 공공부문에서의 뒷받침도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이다. 50년대 국제공산당인 코민테른에서는 ‘반독점 테제’가 결정되어 각 국가와 지역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는 독점적인 대기업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이 지역 공산당과 지역 정부는 반독점을 중소기업 육성으로 해석하고 실천에 나섰다. 당시 기술은 있지만 돈이 없는 중소기업들에게 놀고 있는 땅을 개발해서 시장 가격 이하로 제공했다. 산업지구의 인프라 건설과 금융 지원에 나섰다. 이후 70년대에는 ERVET와 실질서비스센터 등을 설립하여 사업서비스 지원에 나섰다. 80년대에는 공동 브랜드를 개발하고, 수출 촉진 정책을 폈다. 90년대에는 혁신지구 프로젝트에 나섰다. 특히 주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하여 공동체 내에서 신뢰와 연대를 지키면서,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자 했다.

또한 협동조합과 관련된 법제화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미 1947년 제정된 이탈리아 헌법 제 45조에는 협동조합의 역할에 규정되어 있다. 같은 해 제정된 바세비법(Basevi law)에서는 혀동조합의 비분리자산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면제하도록 하였다. 1983년 비센티니법(Visentini law)은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나 유한회사를 서립하거나 지분을 인수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1992년에는 모든 조합이 이윤의 3%를 각출해서 협동조합 발전기금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기금은 새로운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운영이 어려운 협동조합에 자금을 빌려주는데 쓰였다.


네트워크 안팎에서 오는 위기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네트워크의 단점 중 하나는 폐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잠김효과라 불렀다. 잠김효과는 산업기술적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기존의 기술체계에 대한 과신이 외부의 커다란 변화를 제 때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알아차리게 되어도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기술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구성원 간의 친밀성이나 유대감은 외부 구성원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나타나거나 새로운 구성원을 유입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산업지구의 성공을 가져왔던 요인들이 역설적으로 위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네트워크 자체가 가진 문제 뿐 아니라 대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과연 에밀리아 모델이 건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통신 혁명 속에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는 속에서 에밀리아의 중소기업들도 몰락하지는 않을까? 보통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자산특수성과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중소기업들은 수직적으로 통합되거나, 하청기업으로 전락하거나, 해외 이전하는 등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제학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들은 아직까지는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먼저 에밀리아 로마냐가 가진 매우 강한 인문학의 휴머니즘 전통이 사회문화적 잠김효과를 방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 40만 명의 소도시 볼로냐에서 온갖 인종을 다 만날 수 있으며, 최대 노동조합인 CGIL은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증진에도 힘쓰고 있다.

그리고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기업들은 서로 연계된 기계제조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외부환경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앞서 사업서비스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이 우글대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비중으로 보았을 때 서비스업에만 치중되어 있지 않다. 특화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기계장비를 해당 지역에서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서 보았던 타일을 주로 생산하는 세라믹 산업지구에서는 역시 세계 1,2위를 자랑하는 세라믹 기계산업이 발전되어 있다. 세라믹을 생산하는 전 과정에서 필요한 기계들이 세라믹과 함께 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농업 산업지구에서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가 있다면, 그 주위에는 우유 팩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고, 우유 팩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기업이 함께 존재한다. 세계적인 스포츠카 페라니나 람보르기니, 세계적인 오토바이 두카티도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생산되는데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종적으로 부품을 조립하여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만드는 중소기업, 그에 필요한 수많은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또 그 부품을 생산하는 기계를 만드는 중소기업이 함께 존재한다.

또한 변화하는 경쟁 환경에 적응하고자 외부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내부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 R&D 등 전략부문에 집중하면서 산업지구 전체의 기술 및 조직 변화를 주도하는 선도기업과 지구그룹(district group)이 등장하고 있다. 선도기업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기술과 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하여 변화하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있으면 서로 긴밀하게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과 변화의 성과가 전파될 수 있다. 지구그룹은 몇 개의 중소기업들이 법적 독립성을 유지한 채 주식의 교차소유를 통해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여러 기업이 뭉쳐서 선도기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친밀함이나 연대감 등으로 이어진 비공식적 관계가 계약을 통해 공식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 이들은 소기업이 담당하기 어려운 마케팅, 금융, 신기술개발 등 전략 분야를 담당한다. 고용규모가 클수록,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는 기업일수록 그룹화의 경향은 강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한국의 재벌이나 일본의 게이레츠(系列) 같은 대기업의 폐쇄적 네트워크 로 볼 수는 없다. 제품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수평적 네트워크와 함께 품질 향상을 위해 수직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대기업에 흡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소기업 간의 네트워크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간의 인수 역시 합병을 하기 보다는 기존의 브랜드와 시설은 그대로 유지한 채 소유지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중소기업 간 네트워크와 유연성 있는 체계라는 산업지구의 특징을 지켜가고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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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