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정태인/새사연 원장

 

“그래도 아직 볼로냐는 ‘행복한 섬’이죠.” 마우리조 체베니니(Maurizio Cevenini)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州) 의원의 말이다. 2010년 여름, 볼로냐(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수도)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다. 협동조합 이론의 대가 스테파노 자마니(Stefano Zamagni·볼로냐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예 이탈리아의 위기를 부정했고, 설령 그렇다 해도 협동조합이 ‘완충경제’(buffer economy)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년여 뒤인 지난주에 볼로냐를 다시 방문했다. 그 사이 유럽의 재정위기가 본격화했고, 이탈리아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더구나 금년 5월에는 강도 5.8의 지진까지 이 지역을 덮쳤다. 설상가상의 볼로냐, 여전히 ‘행복한 섬’일까?
 
자마니 교수가 틀렸다. 최근 나온 통계를 확인해보면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에밀리아 로마냐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5%가량 감소했다. 롬바르디, 피데몬트 등 이탈리아의 내로라하는 부자 동네와 함께 가장 많은 타격을 입었다. 과거 유럽 전체에서 가장 낮은 3%대의 실업률도 2010년 5.78%로 높아졌다. 이 역시 증가율로 볼 때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당연한 현상이다. 전체 생산의 50%가량을 수출하며(‘수출만이 살 길’인 한국에 필적한다) 더구나 그 중 70% 이상이 유럽행이고,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상징되는 고가의 상품도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유럽 침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긴축정책(정말 바보 같은 정책이다)이 교육재정의 삭감을 노리자 볼로냐 시내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아이들부터 ‘CGIL(이탈리아 좌파계열 노동조합 총연맹)’의 어깨띠를 두른 노인까지 데모에 나섰다. 더구나 이 지역은 한 기업당 평균 5∼6명을 고용하는 중소기업 네트워크로 이뤄진 경제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붕괴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놀랄 만큼 평온했고 자마니 교수는 여전히 자신에 차 있었으며 데모는 축제 분위기였다. 자마니 교수에 따르면 예의 ‘완충경제’는 훌륭히 작동하고 있다. 이 지역에선 대기업에 속하는 협동조합들은 좀처럼 해고를 하지 않는다. 협동조합 대부분이 속해 있는 레가는 단위 협동조합이 파산하거나 어려워질 때 ‘조합기금’(coopfond·이탈리아에서는 단위 협동조합 순이익의 3%를 레가와 같은 연합조직에 적립한다)을 사용해서 실업자를 다른 협동조합에 취직시켜주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준다. 또한 협동조합들은 고용을 축소하기보다 전체 임금을 삭감해서 일자리를 나눈다. 이 지역에서는 협동조합과 일반 기업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중소기업 네트워크의 힘도 ‘지식과 위험의 공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어마어마한 외부 충격도 이 네트워크가 고르게 흡수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네트워크의 변형 가능성이다. 2000년대 들어서 각 산업지구마다 눈에 띄게 ‘중견기업’(200인에서 300인을 고용하는 기업) 또는 ‘핵심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공동 브랜드를 만들며, 해외 쇼윈도를 만드는 등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수평적 네트워크의 핵이 생긴 것이다. 특히 레치오 에밀리아의 메카트로닉스, 사수올로의 세라믹 타일 산업지구 등 국제 경쟁이 강한 곳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혹시 위기를 겪으면서 이 핵심 기업을 정점으로 수직통합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건 아닐까?
 
어쨌든 소득감소율이나 실업증가율이 이탈리아 내 최고 수준이라 해도 여전히 가장 높은 1인당 소득과 가장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힘은 신뢰와 협동의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경쟁력 확보의 비결이 동시에 위기 타개의 비결이기도 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일까? 우리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일방적 수직통합 네트워크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역전환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자마니 교수가 말한다. “한국은 시장경제에서 기적을 이뤘듯이 협동조합경제에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화답한다. “우리 시민들의 희망과 열정이 단기간에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낙관적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치밀하게 해야 할까? 나는 대선후보들이 쏟아낸 수많은 말들 속에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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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

오늘날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및 캐나다인데 이들 국가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조합원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였다. 최근 ICA는 전 세계 300대 협동조합을 선정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협동조합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 프랑스,독일,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였다.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탈리아는 1854년 토리노 노동자들이 만든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하여 150년의 협동조합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협동조합이 매우 활발한 곳 중 하나이다. 특히 에밀리아 로마냐에 가장 많은데, 이탈리아의 약 4만 3000여 개의 협동조합 중 1만 5000여 개가 에밀리아 로마냐에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 20개 주 중 하나로 이탈리아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곳이다. 면적이 약 22만Km2, 인구는 430만 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경기도와 비교하면 면적은 2배 정도이고 인구는 3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10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이 지역의 사회적 경제를 취재하는데 동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이곳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의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했다. 최근에는 유럽이 경제위기에 빠져 유로가 평가절하되면서 지금은 이보다 낮을 것이다. 2006년 캐나다의 레스타키스(Restakis)가 쓴 ‘에밀리안 모델(The Emilian Model)'에 따르면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이탈리아의 7%이지만 국내총생산의 9%를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하며, 각종 기술 등 관련 특허도 30%가 이 지방의 협동조합이나 기업들이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예전에 대학원 박사과정 때이다. 이 지역의 독특하고도 우월한 경제발전을 두고 1982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Brusco)가 처음으로 ‘에밀리아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후 많은 학자들 이 지역을 연구하며 ‘제3이탈리아(3rd Italy)’, ‘유연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등의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는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큰데 남부 이탈리아와 북부 이탈리아라는 두 가지 구분에서 벗어나 높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12개의 주를 가리키는 말이 제3이탈리아였다. 이 제3이탈리아 지역은 10인 이하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수요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유연전문화라 불렀다.

에밀리아 로마냐를 방문했을 때 주 정부의 무차렐리(Muzzareli) 경제장관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우리 주에는 40만 개의 기업이 있다” 고 했다. 그런데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약 400만 명, 따라서 하나의 기업 당 구성원의 수는 10명 정도인 셈이다. 여기에 노인과 어린아이를 제한다면 5~6명이 하나의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는 대기업도 없고, 대규모 공단도 없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내수와 수출을 담당하며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 중 800개 가량이 협동조합이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주도(州都)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이다. 에밀리아 로마냐 국내총생산의 30%를 볼로냐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업 50개 가운데 15개가 협동조합이다. 볼로냐 주민들에게 협동을 통한 생활 방식은 매우 익숙하다. 소비자협동조합부터 농업이나 건설 등 각종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었다.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의 경우는 등록된 조합원 수만 100만 명이 넘는다. 2008년 말 매출액만 20억 유로에 달할 정도이다. 조합원인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고, 이곳 마트에 진열된 제품의 70% 이상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들이 해당 조합마트에서 지출한 돈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지역에 투자된다.


 

볼로냐의 다양한 협동조합들

이곳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먼저 세계4대 와인협동조합인 ‘리유니트&치브(Riunite&Civ, 이하 리유니트)’를 들 수 있다. 1953년 9개의 양조장의 연합체로 출발한 리유니트에는 2010년 현재 25개 양조장연합과 2600명의 포도 재배 농민들이 가입되어 있었다. 리유니트에서 생산되는 와인 브랜드는 9개, 한 해 1억 1000만 병을 생산하며, 연간 매출 액은 1억 4000만 유로에 달했다. 생산된 와인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저렴한 가격과 높은 질을 인정받은 덕이다.

영세한 규모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와인을 유통시킬 힘이 없었던 농민들과 개별 양조장들은 이윤은 물론 손실까지 모두 나눠 갖는 공동운명체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이 된 농민들은 단순히 양조장에 포도를 납품하고 마는 생산자가 아니라 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가 되었다. 조합원들은 다른 와인 생산업체에 포도를 공급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값을 받으며, 와인 판매에 따른 수익금의 일부도 분배 받는다. 조합원에게 분배되지 않은 나머지 수익금은 조합 내에 재투자에 경쟁력 강화에 쓰인다. 물론 조합원으로서의 책임도 따르는데, 개인 매출액의 2.5%를 출자금으로 내야하고 만약 손실이 생길 경우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허나 아직까지는 경영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볼 곳은 주택건설협동조합 무리(Murri)이다. 무리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주택 수요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일반 건설회사들이 공급하는 주택을 수동적으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집을 직접 짓는 것을 모토로 지난 1963년에 설립됐다. 지금까지 건설한 주택이 1만 2000여 채, 현재 가입된 조합원만 2만 3000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주택건설협동조합 중 하나다. 무리에서 짓는 집은 가격에 비해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태양광 설비를 갖추는 등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된다. 그러면서도 집값은 최대 20%까지 싸다. 무리에서 지은 임대 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일반 임대 주택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집을 짓는 과정도 민주적이다. 건축 허가 과정부터 조합원들에게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고 주택의 설계와 시공에 조합원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의 집을 구입하고 싶은 조합원들은 1만 유로(약 1600만 원)를 조합에 내고 분양 신청을 한다. 경쟁률은 3:1 정도로 조합에 가입한 기간이 길수록 기회를 잡을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주택에 당첨되면 공사 진척에 따라 6번에 걸쳐 중도금을 납입하면 된다.

무리의 경우 은행 빚이 아니라 조합의 내부 적립금으로 주택을 짓기 때문에 당장 집이 팔리지 않아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경기가 침체되어도 타격이 적다. 2010년 기준 무리의 내부 적립금은 4700만 유로에 달한다.

세 번째는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La Rupe)이다. 이곳은 시로부터 노숙자 시설을 위탁 받아 운영하고 그 대가로 일종의 용역비를 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시설을 운영한다. 이런 식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을 사회적 협동조합이라 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부터 생겨났다. 1991년에는 사회적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법적 지위가 확립되었고, 2010년 기준 이탈리아 전체 사회서비스 지출의 13%에 해당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볼로냐에서는 민영화된 사회서비스의 60% 이상을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었다.

네 번째는 앞서 잠깐 언급되었던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 이하 코프)이다. 코프에서는 이페르 코프(Iper Coop) 등을 비롯한 대형 쇼핑몰 16개와 중소형 쇼핑몰 138개를 운영하고 있다. 코프의 조합원이 되려면 25유로의 가입비를 내야 한다. 2010년 현재 105만 명의 조합원이 존재하며, 이들이 낸 기금이 무려 19억 유로에 달한다. 2009년 매출액 역시 19억 4900만 유로에 달했다.

코프 조합원이 아니어도 코프 매장을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합원은 코프 매장에서의 할인 뿐 아니라 코프에서 운영하는 서점, 극장, 식당 등에서 최대 30%가지 할인을 받는다. 또한 조합원은 코프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여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발생한 매출이나 수익은 고스란히 해당 지역에 재투자된다는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요인은?

그렇다면 협동조합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훌륭한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는 이곳의 비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선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손꼽을 수 있다.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 지역으로 인문주의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시인 단테(Dante)를 배출해낸 볼로냐대학교가 이곳에 있다. 옛날 건물들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데, 유명한 것이 7개의 성당이다. 유럽 다른 지역의 건물에 비해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성당이지만 무려 1100년 동안 지어졌다는 점에 유명해진 성당이다. 동네가 워낙 가난하다보니 1100년 동안 조금씩 지어서 성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덕분에 온갖 시대별 건축 양식이 다 묻어 있다. 이 성당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중세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샛길도 많고 건물마다 처마처럼 나와 있는 회랑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인문주의가 발전했고,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이 싹트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독립을 쟁취한 빨치산의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80년대 인기 있었던 지오반니 꽈레스키(Giovanni Guareschi)의 시리즈 소설이자 테렌스 힐(Terence Hill)이 주연한 영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The Little World of Con Camilo)"에 잘 나타난다. 영화의 배경인 브레첼로(Brescello)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지오 에밀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신부인 돈 카밀로와 기계수리공인 뻬뽀네 시장은 사사건건, 때로는 치졸하게 다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파시스트와의 싸움에 있어서는 열렬한 빨친산이었으며,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공산당원 뻬뽀네는 공식적으로는 천주교를 부정하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세례를 받게 한다. 돈 카밀로는 동네 유지들로부터 ‘볼셰비키 사제’라는 별명을 얻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종교나 정파와 관계없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이다.

실제로 내가 만나 본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들은 자신의 인문주의와 빨친산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친일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조차도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겨우 가능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각 동네에 있는 민중의 집(우리나라로 치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빨치산 할아버지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명해주는 풍경이 일상이다. 주민들에게 어떻게 이런 독특한 경제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도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가 그래.” 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또는 실망스럽게 한다. 문화는 다른 누가 손쉽게 따라하거나 배울 수 있는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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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모든 지표가 아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경제 형편이 나빠지고 있는 징후가 이제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대외 여건이 예상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스페인까지 구제 금융 반경 안으로 들어오면서 경기침체가 가속화 되고 있는 유럽은 유로 존 시스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의외의 회복을 기대했던 미국경제도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기본은 할 줄 알았던 중국경제의 성장 동력마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외부 여건이 이런데 한국경제가 무사할 리 없다. 2000을 탈환했던 주가는 다시 1800 밑으로 떨어졌다.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을 포함해서 자본시장 전체가 다시 불안정하다. 실물 측면의 수출 둔화도 뚜렷하다. 연속 3개월 수출이 작년보다 줄었다. 사실 2월만 빼면 올해는 계속 마이너스인 셈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매년 적어도 두 자리 수 수출 신장이 되어야 경제가 어느 정도 활력을 가질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타격으로 2009년 수출이 크게 감소했던 다음으로 상황이 나쁘다.


 

2009년 이후 경제상황 가장 안 좋다.

내수로 들어가 보자. 국내 민간소비는 1% 수준의 낮은 성장률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부채 부담을 안고 추가로 주택구입을 할 리가 만무하다. 정부가 5.10 대책 등 각종 부동산 부양대책을 세워도 안 되는 이유다. 심지어 올해 1분기에는 가계 부채 규모가 약간 줄어들기도 했다. 이 역시 금융위기 정점이던 2009년 1분기 이래 처음이다. 부채가 줄어들어 반갑지만, 그 만큼 경기위축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안 좋은 경제 여건에 직면해 있음이 확실하다.

급격히 악화되는 경제상황 속에서 대선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쯤 이면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경제 개혁 플랜을 경쟁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당장 침체를 막을 대책과 함께, 향후 긴 안목에서 경제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개혁 방안과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긴축과 성장 논쟁, 감세와 증세 논쟁, 에너지 자원 대책 등 분야에서 치열하게 논쟁이 붙고 있는 해외와 달리 우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시장국가를 넘어서는 대안 모색을 해야

며칠 전 마이클 샌델이 방한하여 ‘시장 사회’를 비판했다. 우리 새사연은 시장국가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사회국가를 비전으로 국민들의 소득을 늘려 성장을 촉진하는 발전 모델을 제안했다. 자본통제, 재벌개혁, 자산거품 규제 등 3대 규제를 하면서 동시에 적극적 소득정책과 노동권 보호 정책, 사회적 경제의 지속적 확대, 그리고 새로운 중소기업 네트워크라고 하는 3대 정책을 통해 내적인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을 코 앞에 두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이런 유형의 의제들을 짚어내야 할 시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재차 찾아오는 위기 앞에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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