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3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드라마광이다. 특히 토요일, 일요일엔 어지러운 술자리 때문에 놓친 드라마 재방송을 보느라 어린 딸과 신경전을 벌이다 참다못한 딸이 “아빠가 아줌마야?”, 소리를 지를 정도다. 그래선지 드라마 1~2회를 보면 그 성패를 알아맞히는 경지에 이르렀다.

SBS <청담동 앨리스>. 요즘 내가 연구원에서 공부하다 말고 밤 9시경부터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때 맞춰 짐 챙기도록 하는 드라마다. 두 회를 남겨 놓고 스토리는 지지부진하고 ‘청담동’의 벽을 절감하도록 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도 이젠 식상해졌지만 마지막 회는 시청률 20% 언저리까지는 올라가지 않을까.

청담동은 말하자면, 새로운 귀족사회이다. 인화(김유리)의 말대로 디자인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해도 그들의 ‘안목’은 흉내 낼 수 없다. 인종이 다르다. 하지만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사회였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완전히 몰락했고 교육은 신분상승의 통로였다. 이런 역동성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지배계급이 생겨났고 이제 교육은 신분상승을 가로막는 벽이 됐다.

이때부터 세경(문근영)의 아버지 세대에게 부동산이나 주식 거품은 새로운 사회이동의 통로로 여겨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평생 흘린 땀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로 남았을 뿐이다. 이제 가난한 연인은 헤어지고 ‘청담동 앨리스’가 유일한 신분 상승의 길이 됐다.

▲ SBS <청담동 앨리스>

더구나 공부를 잘 못 했던 윤주가 보란 듯이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 있으니 세경에겐 결코 못 올라갈 나무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겨우 두 세대에 걸쳐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다 보니 아직 체념에 이르지 못한 절망은 더욱 더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이 상황은 한국에만 특유한 건 아니다. 지난 30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나라나 수출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그럼 수출이 잘 되지 않으면(모든 나라가 모두 무역흑자를 볼 방법은 없다) 국내수요가 줄어들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다.

그 탈출구는 당시 모든 규제를 풀어버린 금융이 제공했다. 돈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은행이 대출을 해 주고 신용카드를 뿌리면 된다. 저금리 상황, 그리고 저임금으로 남아도는 부자들의 돈은 집과 주식으로 향했다.

집값과 주가는 부풀어 오르고 이제 당장 빚을 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이 대열에 참여한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괜히 부자가 된 것 같으니 소비가 늘어난다(‘자산효과’). 소비를 무한정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지위재’(position goods)가 개발됐다.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고가의 상품이 그것이며 바로 아르테미스 장띠엘 샤 회장의 전략이기도 하다. 무슨 무슨 ‘캐슬’이 등장하고 명품 열풍이 불었으며 커피자판기는 전문점으로 대체됐다.

이런 소비의 유토피아가 지속 가능할까.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빚이 영원히 늘 수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게 비극이고 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만은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다는 허망한 자기 기만극은 2008년 금융위기로 막을 내렸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데도 청년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고, 청담동 바깥에 사는 노인들은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한다. 우울한 장기침체는 10년 이상 갈지도 모른다.

<청담동 앨리스>는 과장되었을지언정 현실이다. “줄푸세”의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으니 정책이 이런 현실을 바꾸지도 못할 것이다. 청담동과 그 바깥은 점점 더 벌어지고 언론이 이런 개인주의/소비주의를 계속 부추기는 한(이 드라마의 간접광고를 보라), 이미 붕괴된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아마 <청담동 앨리스>는 순수한 사랑의 승리를 답으로 제시할 것이다. 절망적인 벽을 뛰어 넘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드라마 속 대리만족으로 허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청담동이 아닌 곳에서도 앨리스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웅다웅 싸움도 하면서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다.

*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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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11.14 10:58

1. 금융위기의 세계화와 거품경제의 한계

1)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와 오류의 세계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 업체인 뉴센트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후,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복잡한 파생상품(derivatives),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2 등의 부실로 이어졌다. 자기 자본의 30~40배에 이르는 차입(Leverage)을 동원하여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는 모기지 증권 부실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은행 역시 손실을 입으면서 금융위기는 월가 전체로 번졌다. 2007년 8월 프랑스 BNP파리바(Paribas) 은행이 미국 모기지 증권의 환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월가의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7년 9월 영국의 노던록(Northern Rock) 은행의 파산을 거쳐 2008년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 금융부실이 실체를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10월 미국의 금융부실 규모를 1조 4,000억 달러로 추산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전 세계 금융부실 규모를 2조 8000억 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이 월가를 탈출해 상품시장으로 이동하도록 만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최근에는 장기적인 실물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단지 미국의 주택시장과 모기지 대출시장의 붕괴에 머물지 않고,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파생상품과 레버리지의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80년대 말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나 90년대 일본 부동산 부실과도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최근의 금융위기를 교통사고에 빗대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보다는 운전과실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 단속에 소홀한 교통경찰의 책임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체의 문제이기 보다는 경영자의 모럴헤저드나 감독기관/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단순히 금융기업 경영자의 과잉 탐욕이나 감독기관의 감독 소홀, 감독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이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① 우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30여 년 동안 영미권을 중심으로 금융 비중의 팽창과 제조업 위축, 그리로 이를 가능케 한 금융기법의 혁신(?)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위기의 토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흔히 이를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세계화’라고 부른다. 1980년 세계 명목 GDP는 10.1조 달러, 세계 금융자산은 12조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6년 말 기준으로 GDP는 48.3조 달러, 금융자산은 167조 달러로 급격하게 격차가 벌어졌다. 전 세계 금융자산의 급격한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 가운데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80년대 10퍼센트 수준에서 2000년대에는 30퍼센트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부문이 담당하는 고용비중은 5퍼센트 내외에 불과했다. 즉, 제조업에 비해 금융부문이 비대하게 팽창하고 금융 자체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변한 것이 현재 금융위기를 유발시킨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② 1980년대 이후 금융 부흥을 이끌었던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각종 파생상품은 한때 금융혁신의 상징이자 금융에 내재한 위험도를 제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을 분산(Hedge)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와 위험을 확산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워렌 버핏 마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이 현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며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이처럼 기초자산으로부터 끝없이 분화되어가는 파생상품은 위험도 측정과 관리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시장 내부에서도 위험에 대한 인식과 그 분산기능, 위험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현대 금융자본주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존재하고 이것이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③ 미국 금융팽창을 선도했던 주요 플레이어들 가운데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사실상 법인체로 규정받지 않는 사조직으로서 금융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투자은행 역시 금융규제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이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로부터 강제적인 감독이나 규제를 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투자은행지주회사와의 상호합의에 근거한 자발적인 감독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조차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구조화 투자기관(SIV,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 등을 별도의 자회사로 두고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외거래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 파생상품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여기에 더해 실제로는 사적 기업에 불과한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 모기지를 기초로 발행된 각종 파생상품에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해 대량유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신용평가기관들은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금융회사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의 중심에 서 있던 헤지펀드는 한때 1조 9,000억 달러 규모, 펀드 수로는 1만 개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했지만 모기지 증권 부실의 타격으로 2007년 7월 파산하기 시작했다. 파산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중앙은행을 손들게 하고 보름 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챙겨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헤지펀드는 사실 1990년에는 전체 규모가 3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0년 뒤인 2000년에는 4,900억 달러로 커졌고 2006년 말이 되자 1조 5,000억 달러로 성장한다. 엄청난 고속성장을 한 것이다. 물론 이들 헤지펀드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2008년 1/4분기 헤지펀드 규모는 1조 8,800억 달러 까지 늘어났지만 예년에 비해 성장률은 현저히 둔화되었고 헤지펀드로의 자금유입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1/4분기 평균수익률도 마이너스 3퍼센트로 20여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금융위기가 심각한 금융경색과 자금순환의 단절로까지 번졌던 2008년 9월과 10월에는 약 700여 개의 헤지펀드가 청산되면서 주가 폭락과 펀드 환매사태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급팽창한 금융부문에 규제 없이 치명적인 위험이 누적되도록 방조한 것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여기에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규제, 주요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 그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은 앞으로 이어질 미국 청문회 등을 통해 가시화될 것이다.
④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도 미국 정부는 1년 가까이 모든 걸 시장에 맡긴 채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만 열중했다. 지난 3월 14일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이어 메릴린치와 AIG보험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뒤에야 비로소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서둘러 내놓았지만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통과에 이어 은행지분 인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의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따라서 위기가 표면화 된 뒤에도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정부가 적극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 역시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 저고용, 저소득에 기초한 신용팽창(부채) 소비 경제의 한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 월가 금융위기 → 글로벌 금융위기 → 글로벌 인플레이션 → 글로벌 외환위기 → 글로벌 경기침체’의 연쇄파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미국식 금융시스템 자체의 결함과 규제 및 감독의 소홀, 그리고 금융시장의 자기 조정능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나친 믿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짚어볼 수도 있다.

바로 고용과 소득개선에 기초하기 보다는 이른바 신용창출(부채)에 기초한 소비로 지탱했던 미국경제의 구조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중은 갈수록 커졌고,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에 집중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은 멈춰버렸다. ‘소득 향상 → 저축 증가 → 대출 증가 → 투자 확대’의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대신에 ‘소득 정체 → 부채(신용)에 의한 소비 → 가수요와 거품 확대’로 이어지는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뒤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소득수준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정체상태라 할 수 있는 1퍼센트 성장에 그친 반면, 상위 1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111퍼센트나 성장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되었고, 1970년 전 국민의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 비중은 2000년에 접어들면 거의 1/3이 줄어든 41퍼센트로 하락한다.

미국 경제가 잘나가던 90년대조차 미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었고, 서민들의 생활형편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가수요 덕에 마치 소비여력과 자산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양극화로 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약탈적인 대출행위를 자행하면서 월가의 금융가를 키워온 것이다.

그 약탈적인 대출이 바로 한때 전체 모기지 대출의 20퍼센트까지 팽창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이며, 국민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70퍼센트를 담당하는 미국경제에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질소득이 전혀 늘지 않은 하위 20퍼센트의 저소득층이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동안, 금융회사들은 미국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독차지할 만큼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 소득순위 상위 25명의 평균 보수는 5억 7,000만 달러로,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연봉 6만 달러 이하를 받을 때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넘어서는 연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문제를 일으킨 초고액 연봉의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은 채, 부채를 통해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으며, 거품이 꺼지는 순간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덧붙여 둘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매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 제조업 기반 위축 → 수입에 의한 소비 → 경상수지 적자 → 달러 유출 → 미국 국채발행 → 주요 수출국(경상수지 흑자국)으로부터의 달러 회수’라는 메커니즘으로 세계경제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었고, 이는 곧바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이나 아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 역시 자유롭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화두로 등장했으며, 2008년 11월 15일 개최될 G20 정상회담을 필두로 본격적인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08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미 4,500억 달러의 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은 2009 회계연도를 시작한 첫 달인 2008년 10월에 이미 그 절반에 해당하는 2,3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자국의 거대 금융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는 금융기업들의 자산상태로 볼 때 이들의 부실과 금융불안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지어 8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진정될 것 같던 AIG보험의 부실은 갈수록 커져서 2008년 11월 기준 그 두 배에 해당하는 1,500억 달러를 투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투입한 국민의 세금이 과연 금융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금융기업들의 몸집 불리기를 위한 인수합병의 실탄으로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GM(제너럴모터스)을 비롯한 제조업체들도 금융기업들처럼 구제금융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거대 가전유통업체인 서킷 시티가 2008년 11월 11일자로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GM 역시 구제금융을 받는다고 해도 파산상태나 다름없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차압당하고 파산상태에 몰린 수많은 미국 국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대책이 2008년 11월 현재까지도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부시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의 오바마 당선인이 문제 해결사로 나서게 된 지금도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는 미국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가 지도자 한 사람의 교체로 해결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기 때문이다.

2.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무너지는 한국 금융시장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다양한 전달경로로 한국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운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 등 한국 금융시장에 준 충격은 특히 위기가 고점에 달했던 9, 10월에 심각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고 여파는 계속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단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탓에 금융시장에서 외부의 금융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2007년 한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이 미국경제와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해야 대미 수출입 의존도가 줄어든 상품무역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특히 금융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오히려 재동조화(recoupling) 주장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9, 10월 위기 국면에서는 하루 전의 미국증시 동향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증시에 반영되는가 하면, 반대로 아시아 증시가 곧바로 미국 증시에 반영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1)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변동을 보인 외환시장
미국 금융위기가 준 충격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금융시장은 바로 외환시장이었고 이는 곧바로 큰 폭의 환율변동과 외환위기설로 나타났다. 2008년 원화의 달러대비 환율 변동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컸는데, 원-달러 환율은 달러가치와는 상관없이 폭등세를 이어갔고 미국 금융위기가 증폭될 때 마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수입원자재 가격 등을 급등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초약세가 시작된 2007년 11월부터 이미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달러화 표시 수입물가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147달러까지 치솟은 원유가격이 8월 이후 폭락하기 시작했음에도 환율상승폭이 컸던 9월에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8월과 같은 42.6퍼센트를 그대로 유지했다.

최근 한국은행 자료를 보더라도 환율이 10퍼센트 상승하면 물가는 2.62퍼센트(공산품의 경우 3.95퍼센트)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원유 가격이 10퍼센트 하락할 때 물가의 하락효과는 0.49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결국 원유가격 하락보다 환율상승이 물가에 5배 이상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만 폭등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원-엔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는 일본으로부터 부품과 소재를 들여와야 하는 수입구조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대일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2008년 1~8월 대일 무역역조 규모는 약 230억 달러(누적)에 이른다. 특히 고려할 것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과 소재의 수입단가가 올라가면 이들을 2차 부품으로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가는 높아지지만 대기업 납품가는 이를 따라가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과 달러 부족 현상은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① 기본적으로는 2008년 접어들며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뒤 9월까지 지속되었고 ② 2007년 6월부터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달러화 환전 송금이 이어졌으며 ③ 이 밖에도 조선업 수출액 선물환 매도 물량이나 해외펀드 헤지 물량도 적지 않았고 ④ 일부 역외 환투기 세력의 개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008년 9, 10월에 접어들면서 국제적인 신용경색으로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간, 국내 은행 간, 또 은행과 수출기업들 간의 달러 유통이 막히면서 달러 거래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하게 되었고 급기야 외환위기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10월 초까지 외환시장에 외환보유고를 푸는 방식을 취하다가 하루 이상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외환스왑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다시 은행권에 달러 지급보증과 직접 공급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환율이 요동치고 일부 NDF시장에서의 환투기까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국내 금융시장은 이를 적절히 제어할 어떤 정책적 기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2) 과잉 수익추구로 위험도에 노출된 한국의 금융기관들
미국 금융위기에서 씨티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상업은행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주요 진원지는 투자은행들이었다. 때문에 2008년 9월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상업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과 연체가 높은 저축은행들이 먼저 위험수위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극단적인 신용경색을 몰고 왔던 2008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은행권이 위기의 진원지로 돌변했고, 외신 발 외환위기도 대부분 은행권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2008년 10월에 정부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금융 안정화 대책은 증권시장이 아니라 은행권에 맞추어져 있는데, 1,000억 달러 지급보증, 300억 달러 자금 직접지원, 은행채 직접 매입, 유동성 비율 완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자본 건전성을 강화해왔다고 자부해왔고, 최근에는 글로벌 메가뱅크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 신한, 하나은행에 이어 국민은행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렀던 은행권이 어떤 연유로 미국 금융위기 충격에 그토록 쉽게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변동을 겪었던 은행들은 이후 ‘금융기관’으로서 자금 중개기능 보다는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회사’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규모화 겸업화를 모토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 2조 7,000억 원을 필두로 조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며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나 통신회사에 견줄만한 수익창출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 배당으로 돌려왔다. 국내 거의 모든 은행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은 상황에서 이 배당의 대부분은 당연히 외국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익성 위주 경영과 규모화에 대한 압박은 2003년 신용카드 대란과 2006년 과잉 주택담보대출을 낳은 무리한 대출영업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보험과 펀드 판매 수수료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대출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2006년 이후 증시 호황과 펀드상품 판매 호조로 시중 자금이 은행저축에서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저축성 수신이 줄어들게 된다. 저축성 은행수신이 전체 금융기관 유동성(Lf)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말 42.4퍼센트에서 2008년 상반기 33.5퍼센트로 줄어들은 반면, 같은 기간 펀드 잔액은 14.7퍼센트에서 19.9퍼센트로 증가했다.

이 결과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예금수신 금액을 뛰어넘는 대출의 증가, 즉 예대율의 증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금은행의 총예금(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 대비 대출비율은 2008년 8월말 현재 말잔 기준으로 149.2퍼센트(총 예금잔액은 635조 원, 대출잔액은 891조 원)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예금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6월 말 기준 예대율은 103퍼센트로 적정선인 80퍼센트를 훨씬 뛰어넘기는 마찬가지다.
예대율이 높아지던 조건에서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와 같은 시장성 수신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즉, 대출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모화 경쟁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저축성 수신이 아닌 시장성 수신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이 총 자본 조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잔 기준으로 21.4퍼센트나 되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조달해 대출을 감행한 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은행은 만기가 도래한 CD와 은행채를 갚지 못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조달금리가 높아진 은행채의 경우 2008년 상반기 현재 추가로 25조 4,000억 원이 늘어나 발행잔액이 290조 4,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2008년 9, 10월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자금경색도 극심해졌고 결국 잠재돼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기업과 가계대출의 부실 정도가 높아지면서 추가 대출은 고사하고 대출회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발행된 CD나 은행채가 소화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그럴수록 이들의 수신금리도 올라갔다.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올라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금리가 7.5퍼센트를 넘어섰고 고정금리부 주택담보 대출금리는 10퍼센트를 돌파했다. 2008년 10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퍼센트 내린 데 이어 다시 0.75퍼센트 내려 4.25퍼센트까지 인하했만 시중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원화 유동성만이 아니었다. 은행들은 국내은행이나 외국은행 지점을 막론하고 2005년 이후에 단기 대외차입을 급격히 늘려갔고, 그 결과 정부발표로도 2008년 10월 현재 80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역시 2008년 9, 10월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 경색이 심화되자 기존 대외채무의 만기연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추가 해외차입도 단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기존 수출대기업들 조차 수출대금을 시중에 풀어놓지 않으면서 은행들은 극심한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은행 발 외환위기설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왑을 체결하면서 일시적인 안정세가 오기는 했지만, 그 동안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2008년 1월 기준으로 6,618억 달러이던 것이 10월 말 기준으로 2,12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경상수지 적자로 감소한 금액을 감안하더라도 줄잡아 300억 달러 이상을 환율 방어에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둘 것은 2008년 11월 접어들면서 원화 유동성 경색은 은행을 넘어 캐피탈, 카드사 등 제2금융권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객 수신 기반을 갖춘 은행과 달리 카드, 캐피탈 등 여신 전문 금융기관들은 은행채보다도 신용이 낮은 카드채와 같은 여전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발행이 여의치 않으면서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 것이다.

증권사나 보험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빌린 자금이 이미 대폭 늘어난 상태이고, 보험사도 채권과 주식 등의 보유자산 가치가 하락하여 지급여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위기가 카드사의 위기, 캐피탈사의 위기, 증권사와 보험사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3)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온 후과, 폭락하는 주식시장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4조 9,000억 원 순매도, 채권시장에서 역시 4조 1,000억 원 순매도. 이것이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의 충격이 가장 심했던 2008년 10월 외국인투자자들이 취했던 포지션이었다. 이로서 2008년 10월까지 한국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빠져나간 자금이 총 41조 8,000억 원이었고 외국인 비중은 2000년 이후 8년 만에 30퍼센트 밑으로 주저앉게 된다. 주식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높은 금리를 노리면서 꾸준히 매수세를 유지했던 채권마저 주식 매도에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매도세로 전환되었다.

그 사이 한때 코스피지수는 1,000선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종합주가 기준으로 정확히 1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80퍼센트나 떨어져 1/5로 폭락한 종목도 무려 20여 개에 달했다.

사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개방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1992년 1월 3일 국민주를 제외한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해 외국인 1인당 3퍼센트, 종목당 10퍼센트 한도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으로써 우리 주식시장은 본격적인 개방 시대를 맞았다. 그 후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종목 당 26퍼센트 미만이던 외국인투자 허용한도가 1997년 12월을 기해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이듬해인 1998년 5월 25일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모든 제한은 사라졌다. 2008년은 그로부터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외환위기를 맞아 정책 당국자들이 외자 유치를 가장 중요한 정책구호로 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보다는 주식, 채권과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한때 지수 300선을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은 시장개방과 함께 포트폴리오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 최악의 상황이 외국 금융자본에게는 헐값에 주식을 매수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20퍼센트를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 들어30퍼센트를 넘어섰고, 그 후 2004년까지 외국자본은 가파른 속도로 국내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4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간 1999년~2004년 주가는 대체로 지수 500~800 수준에서 움직였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지분율은 18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무려 24퍼센트포인트나 증가했는데 이때 외국인이 순수하게 투입한 금액은 대략 41조 7,000억 원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주식 매도세가 시작되었다. 외국인이 매도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한 2005년 1월의 주가는 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이러한 가파른 상승세 속에서 외국인은 막대한 차익실현에 성공한다. 외국인이 2005년~2007년에 주식매도로 회수한 돈은 39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은 1999년~2004년 지분율을 24퍼센트 늘리기 위해 42조 원의 자금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고, 2005~2007년에 그 가운데 단지 10퍼센트의 지분만을 팔아 투자원금에 가까운 40조 원을 회수한 셈이며,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지분은 고스란히 순평가 이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내 자본시장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지난 10년의 대차대조표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2007년 6월부터는 단순한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를 넘어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금융위기로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게 된 외국 금융자본이 과거에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외국인은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신흥시장의 주식을 처분하여 달러로 환전한 뒤 송금하는 행위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은 특히 한국이 두드러졌는데,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 2007년부터 외국인이 대규모 주식매도에 나선 국가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며, 2008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식매도가 이어졌지만 역시 한국은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금리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 이익을 위해 채권투자가 잠깐 늘어났지만 2008년 10월 들어서는 이마저도 매도세로 바뀌었다.

이 국면에서 주가는 가파른 폭락을 거듭했으며 그나마 낙폭을 줄인 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덕분이었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고 금융불안이 시작되던 2007년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80만 명이 늘어나서 2007년 말 기준 444만 명으로 늘어났다. 직접적인 주식투자 인구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10월 들어 투신권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마저 펀드 환매사태에 대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한때 주가가 지수 1,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29퍼센트 전후를 유지하고 있어 일반적인 선진국 수준인 25퍼센트보다는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어도 외국인 매도 행진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한 결과 금융위기 국면에서 위기는 오히려 증폭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결국 440만 직접 투자자와 2,000만이 넘는 펀드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종합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은행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수익추구형 금융회사로 탈바꿈하고,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금융시장이 구조전환 된 결과, 국내 금융시장의 내성과 안정성이 강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었음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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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의 [잇:북]2008.10.28 13:12
[테마북⑥] 자본시장 개방 10년이 초래한 한국 주식시장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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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북 6권 발간에 부쳐]
누가 우리 국민의 월급과 퇴직금, 저축을 주식과 펀드로 날리게 했는가


유난히도 더디게 온 가을만큼이나 길고 긴 겨울이 예고되고 있음을 우리 국민들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루하루 번 푼돈을 아끼고 아껴 일반예금보다 수익이 좀 더 나을 거라는 권고에 이끌려 투자한 2,000만 펀드 투자자들이었고, 대통령마저도 우리 주가를 3,000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호언을 하는 마당에 투자를 안 할 이유가 없어 저축으로 모은 돈과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한 440만 주식 투자자들이었다.

주식이 반 토막에 또 반 토막이 나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 투자 권유를 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증권사 직원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한숨짓는 수많은 우리 국민들, 이들이 저지른 죄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 이들이 분수에 넘는 무모한 탐욕을 부린 탓일까, 아니면 첨단 금융기법도 모르면서 섣불리 투자를 한 무지의 대가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엄청난 범죄행위는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수백만 선량한 사람들이 푼푼이 모아 투자한 자녀교육비, 노후생활비, 주택마련 자금이 한순간에 공중에 사라져버렸는데도 누구도 그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오직 무모한 투자와 금융시스템에 생긴 약간의 착오 탓이었다는 핑계, 그리고 불가피한 외부여건 탓이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만 넘쳐난다.

과거의 땀과 미래의 희망을 모조리 밟아버린 주식시장 붕괴에 원인이 없을 수 없다. 아니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새사연은 그 이유가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자유화 되고 개방화된 자본시장에 있다고 단언한다.

외국인 주식소유비중 제한이 완전히 철폐되고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진 98년 이후, 외국 금융자본이 저평가된 주식시장에 물밀듯이 밀고 들어와 2004년에 시가총액의 40퍼센트가 넘는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주식 거래자로 등장했을 때, 그 때부터 이미 지금의 불행은 예고되고 있었다.

2005년부터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주식을 팔기 시작했을 때, 외국 금융자본이 처음부터 장기적인 기업 발전과 전망을 보며 투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지난 2007년 6월부터 월가의 자금 유동성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들이 투매행위를 시작했을 때, 한국 주식시장의 최대 플레이어인 이들이 한국 주식시장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오히려 지수연계펀드에서부터 해외펀드에 이르기까지 거의 1만여 개의 펀드상품을 쏟아내며, 성인 인구의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주식시장에 명줄을 매도록 영업과 마케팅을 하는 데 골몰했고, 여기서 얻는 수수료 수익에 즐거워했다.

외국 금융자본은 올해 10월까지 약 40조 원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월가의 금융 위기 해결에 골몰하면서 한국 주식시장을 망가뜨렸고, 이 와중에 외국계 헤지펀드는 공매도기법 등을 동원해 주가폭락 속에서도 투기이익을 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9월 금융 위기가 확산일로를 걷게 되면서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는 더욱 거세졌고, 이제는 투신권마저 펀드 환매에 대비해 주식 투매로 돌아서 주가 폭락을 지탱할 기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번 테마북에 실린 글들은 2008년 상반기에 작성된 글들이다.(http://saesayon.org) 비록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2008년 10월의 자본시장을 분석대상에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지금과 같은 주가 폭락의 구조적인 원인이 외환위기 이후 완전히 자유화되고 개방된 자본시장에 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이미 그때부터 준비되고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외국 금융자본이 자국의 금융시장을 위해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인 한국의 자본시장을 어떻게 활용했고, 또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새사연은 이번 테마북을 통해 수많은 우리 국민의 과거와 미래를 앗아가 버린 주가 폭락 사태가 우리 국민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외국 금융자본의 이동에 극히 무력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했다.

금융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외국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농락당한 한국 자본시장을 구조전환하지 않고서는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여전히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은 29퍼센트나 되질 않는가.

2008년 10월 27일 새사연 연구센터장 김병권


<목차>

◆ 자본시장 개방 10년, 주식시장 붕괴를 예고하다
1. 서론-자본시장 개방 10년과 세계 금융 경색 위기
2. 최근 금융위기와 외국인 주식 매도 공세 분석
3. 원화 초약세의 배경에는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있다
4. 우려할 경상수지 적자, 외국인 배당이 가속화시킨다
5. 결론 - 다변화되고 성숙한 외자 유입정책 구상이 필요하다
보론> 최근 다시 일고 있는 외자유치 주장의 문제점

◆ 440만 주식투자자와 2000만 펀드투자자 시대의 의미
1. 2007년 한 해 주식투자인구 82만 명 증가
2. ‘노동자 국민’은 ‘투자자 국민’으로 변했을까?
3. 가계소득에서 근로소득 비중 87%, 계속 증가
4. 금융자산은 20%에 불과, 그중 40%는 은행 예금
5. 주식투자인구의 0.4%가 전체 주식의 52.9% 차지
6. 주식투자는 불안한 국민들의 생존을 위한 안간힘뿐

◆ 한국 주식시장, 어떤 주주가 돈을 벌었나
1. 1000조 주식시장 규모로 성장한 한국 자본시장
2. 한국증권시장 세계 10대 증시로 도약?
3. 한국주식시장의 실세 외국자본
4. 돌아온 배당잔치의 계절- 절반은 외국인 차지
5. 배당 잔치에 초대된 국내 재벌 대주주들
6. 예약되어 있는 3,4월 경상수지 적자

◆ 여전히 외국 금융자본의 초대에 분주한 이명박정권
1. 월가 투자 호소는 번지수 잘못 짚은 것
2. 기업이 돈을 벌면 주식시장에 바친다?
3. 2008년 실질적 역류는 더욱 커질 것
4. 월가의 자본이 한국기업에게 들어갈 것인가

◆ 한국경제 ’능동적 디커플링 전략’이 살 길
1. 새로운 경제 이슈의 부상
2. 탈동조화(decoupling) 이슈가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3. 단명으로 끝난 탈동조화, 다시 재동조화로 이동하다
4. 월가의 금융지배력이 살아있는 한 탈동조화는 불가능하다
5. 미국 실물경제 침체는 세계경제 침체로 동조화 될 것인가
6. 세계경제의 엔진, 미국경제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조짐들
7. 한국경제의 활로는 ‘능동적 탈동조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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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주가, 주식
주제별 이슈 2008.07.16 09:17

1. 공매도 개념과 거래 현황

■ 공매도(Short Selling)?!
고용과 미래에 대한 불안, 실질임금 상승률 정체, 부동산 등 자산 투기 열풍 등에 편승하여 많은 국민들이 직접 주식을 구입하거나 ‘펀드’ 형태로 간접 투자하고 있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 차익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 주식 투자다. 미래에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 기대하여 주식을 구매할 때 통상 롱(long) 포지션을 취한다고 한다. 이와 정확히 반대로, 숏(short) 포지션을 취하여 주식을 파는 것을 공매도라 한다. 즉 공매도(short selling)란 자신이 소유하지 않는 주식을 통상 차입을 통하여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1만원인 A 주식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여 중개인을 통해 B에게 100주를 차입하여 즉시 매도했다고 가정해보자. 한 달 후 주가가 20% 하락하여 8,000원에 거래될 때 다시 A주식 100주를 구입하여 B에게 상환하면, 20% 수익 20만 원을 벌게 된다. 따라서 공매도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질수록 수익률은 높아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가가 상승하기만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여 수익을 올린다. 한 푼 두 푼 벌어 적립식 펀드에 붓고 주가가 오르기만을, 아니 본전이라도 찾기만을 고대하는데, 한쪽에서는 내가 알지도 못한 기법으로 주가가 더 떨어지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확히 말해 공매도는 대차거래가 활용되는 하나의 투자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는 외환이나 채권처럼 대차거래 제도가 존재한다. 대차거래란 주식의 대량 보유자(통상 은행, 보험회사, 연기금)가 주식을 필요로 하는 차입자(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에게 일정한 수수료(연 2~4%)를 대가로 주식을 빌려주는 제도다. 차입자는 빌린 주식을 통해 매매거래의 결제, 차입 후 매도, 차익거래, 재대여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입 후 즉시 매도하는 것을 공매도라고 한다.

통상 1년인 대차기간의 계약이 종료될 때, 동종동량의 주식을 상환하고 수수료(연 2~4%)를 지불해야 하므로, 공매도 투자자가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주가가 최소한 차입과 거래 수수료 이상으로 하락해야 한다.

최근 주식시장이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매도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금융감독원은 이번 주부터 관련규정 준수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공매도는 ‘위험’을 줄이고 ‘유동성’을 확대한다는 그럴싸한 명목 하에 도입되었지만, FTSE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기 위해 규제를 점차 완화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현실은 공매도가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고 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확대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FTSE 선진국 지수란 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로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 런던증권거래소가 1995년 공동으로 설립한 FTSE인터내셔널에서 발표하는 지수를 뜻함. 지수 편입 여부에 따라 해당 종목과 해당 국가의 주가가 큰 영향을 받는다)

■ 상반기 주식 대차 및 공매도 현황
상반기

주식 대차거래와 공매도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 대차거래 규모는 작년에 비해 92%, 공매도는 무려 157% 증가하였다.
월평균 시장전체 매도금액(101.9조) 중 대차거래(10.07조) 비중은 10%에 해당하며, 공매도(3.2조) 비중은 3.1%로 전년(월평균 1.7%) 대비 83% 상승하였다. 특히 주식 대차 및 공매도 거래는 외국인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증권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반기 주식대차 시장에서 외국인 차입거래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28조1,923억)보다 27조원 이상 증가한 약 56조원에 달했다. 전체 거래금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93.3%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차거래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공매도 규모 또한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공매도 규모는 2004년 월평균 0.32조원에 불과했던 것이 2008년 상반기에는 3.2조원으로 증가하였다. 연평균 78% 증가하여 4년 사이 무려 10배가 증가한 것이다. 주식시장이 급격히 하락한 6월, 시장 전체 매도금액 중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3.8%까지 치솟았다.

2. 공매도 규제 완화

■ 금융당국의 공매도 규제 완화
지난해 6월 미국에서 공매도 규제가 완화되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더욱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1934년 증권거래소법에 따라 1938년에 Up-tick 규칙을 제정하였다. 70년 이상 유지되어온 Up-tick 규칙을 특별한 이유 없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폐지하였다. Up-tick 규칙이란, 공매도를 통한 가격하락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공매도로 표시된 매도주문의 호가는 직전 체결가격보다 낮은 경우에는 거래를 금지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가 : ①10,000 → ②9,980 → ③9,980 → ④9,990 → ⑤9,990


주가가 상승중인 경우에만 직전가로 공매도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예에서는 ④의 경우만, 9,900원에 호가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규제가 지난 해 7월, ‘유가증권시장업무규정’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완화되었다. 즉 현재 가격(⑤)이 바로 직전에 형성된 가격(④)과 동일한 경우에도, 가장 최근에 형성된 가격(③)보다 높으면 현재가로 매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Zero-plus tick 규칙의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Up-tick(혹은 Zero-plus tick) 규칙을 적용할 수 없는 예외규정이 최근 너무 많아져 가격규제는 점점 무력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차익거래라고 하면, 현물가격과 선물가격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때 상대적으로 싼 시장에서 매수하고 비싼 시장에서 매도하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위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차익거래에서는 Up-tick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시가(시작 가격)가 결정되지 않았거나, 시가가 종가와 같을 때, 장중대량매매인 경우에도 가격규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결국 명목상 Up-tick 규칙을 적용받고 있을 뿐,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은 거의 마음대로 공매도를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기초자산인 주식거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파생상품이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파생상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초자산인 주가를 하락시킬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현대 금융시장에서 ‘투기’와 ‘헤지’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공매도에 따른 ‘투기’의 대표적인 예가 1992년 조지소로스가 운영하는 헤지펀드의 영국 파운드화 공격이다. 독일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소로스는 헤지펀드를 통하여 파운드화를 공격하였다. 검은 수요일이라 불리는 9월 16일까지 파운드화 가치는 2주 동안 20% 이상 하락하였다. 당시 소로스는 100억 달러를 투자하여 10억 달러 이상의 투기수익을 올렸다.
굳이 현물 구입의 위험을 줄이거나 분산하기 위해서라면 선물이나 옵션 같은 다른 파생상품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난해 저금리, 주식시장 활황, 그리고 펀드시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유동성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 규제를 완화한 것은 실은 다른 이유에 있었다. 외환이나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기법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의 전형적인 수법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국내에서 비약적인 공매도 규모 확대는 주식시장의 하락세를 이용한 외국인의 시세차익 기법에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금융당국이 조장했거나 최소한 방치한 측면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FTSE(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나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기 위한 목적으로 금융시장 및 외환시장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FTSE,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누구를 위한 ‘실적’인가
FTSE인터내셔날은 전 세계 50여개 국가를 산업과 지역별로 구분하여 각종 지수들을 발표한다. 그 중 선진국 시장은 22개, 선진신흥시장은 한국을 포함해 6개, 신흥시장은 18개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은 2004년부터 승격 관찰 대상국에 포함된 이후, 선진국 시장에 편입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금융 및 외환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90년대 초중반 OECD에 가입하기 위해 금융자유화 조치를 실시했던 것처럼, 최근 FTSE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기 위해 각종 금융 및 외환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매도 규제는 FTSE 측에서 지속적으로 완화를 요구했던 핵심 사항 중 하나이고, 위에서 본 것처럼 사실상 거의 유명무실화 되었다. 공매도와 함께 FTSE가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한 사항이 바로 외환거래 자유화다. 지난해 개정되어 올 초부터 시행되고 있는 외국환거래규정상 대차거래 제도 관련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올해부터 외국인투자자끼리 증권예탁원 등의 중개를 통하여 담보를 제공하고 주식을 차입 또는 대여하는 대차거래의 경우는 신고가 면제된다.(제7-48조 6항) 또한 외국인투자자가 국내 금융기관의 주식을 차입하는 경우에도, 동일인당 100억원 이하이던 신고 면제 조항이 500억원 이하로 상향 조정되었다.(제7-45조 16항) 즉 외국인끼리 차입, 대여하는 경우 신고할 필요가 없으며, 국내 금융기관에서 주식을 차입하는 경우도 500억원 이하이면 신고할 의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올해 들어 대차거래와 공매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제도 변화 때문이다.

■ 시장의 투기화를 막는 것은 금융당국 본연의 임무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공매도 가격규제가 완화된 직후 서브프라임 문제로 주가가 하락하고 변동성이 확대되어 공매도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주가가 연이어 폭락하자 공매도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대차거래와 공매도 규정 준수여부를 점검하기로 결정한 것은 시장의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가 하락은 사실 이미 예상된 일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하반기 본격적인 미국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나라 또한 저성장-고물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매도 규제완화는 주가하락을 더욱 가속화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즉 공매도는 자동차에 비유하면 급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의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주가가 갑자기 상승할 때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대차거래의 일시적 상환압력(Short Squeeze)을 발생시켜 주가가 급격히 치솟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 본연의 임무 중 하나가 금융안정이라고 했을 때 ‘공매도’ 제도는 본질적으로 금융 불안정을 양산하므로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금융규제 완화는 한번 실시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비가역적인 특성이 있다는 점이다. 외국 투기자본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외국인만이 알고 있는 ‘선진’ 파생상품이나 금융기법을 통하여 규제/정보 차익으로 투기적 수익을 올린다면, 다른 시장참여자들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모두에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달 6월,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경우도 “대차거래 등을 통해 수익기반을 확대하고 대차거래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명목 하에 주식 차입거래의 제한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신용거래 또는 대주거래 제한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 심히 염려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시장을 완전 망쳐놓는 꼴이 되는 셈이다. 공매도로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해서 허위 정보나 소문 등이 유포되면 시장은 더욱 교란될 수 있다.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은 우선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기본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헤지펀드 조기 도입, 자산유동화시장 활성화, 부동산 재개발 완화 등은 금융당국이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연초 수많은 기관투자가와 정부 관료들이 하반기부터 미국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최근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모기지 대출, 유동화 업체들(GSE)에 긴급 구제금융 실시를 결정한 것처럼, 서브프라임 사태는 아직 반환점도 돌지 못한 상태다. 세금환급 조치가 끝나는 4사분기부터는 실물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수도 있다. 또한 동남아 외환위기 등 위기 전염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저성장-고물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금융시장 안정’에 우선적인 관심과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우선은 대차거래와 공매도 제도의 운영 현황을 철저히 감독하여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공개해야 한다. 또한 모든 대차거래와 공매도 관련 정보를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투자주체별로 상세히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최선의 방안은 주변국(중국, 인도, 대만 등)처럼 공매도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제하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과 저금리로 시장 유동성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굳이 공매도를 하지 않고서도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파생상품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따라서 ‘투기’를 더욱 부추기고 시장 ‘변동성’을 더 확대할 이유는 없다. 시장이 투기적으로 변할수록 정보와 기술이 부족한 직간접적인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만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여경훈 khyeo@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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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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