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게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1953년 GM 최고경영자였던 찰리 윌슨이 국방장관 임명 청문회에서, 기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행정부에 입성하는 것을 두고 반대에 직면하자 말했던 너무도 유명한 얘기다.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당시에 미국경제에서 GM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할 법도 하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GM의 파산과 국유화를 겪은 후로는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60년 전의 GM처럼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삼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해 쟁쟁한 일본기업들을 연이어 따돌리고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면서 애플과 세계시장을 놓고 겨루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가 만년 중하위 그룹의 자동차기업 이미지를 벗고 세계 5위로 도약해 품질경쟁력 등을 개선하면서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삼성과 현대차에 좋으면 우리 국민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 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글로벌 생산체제의 구축이 가속화하면서 유력 대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국민경제와 국민이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 성장→고용 확대→소득 증대→구매력 증가→수요 확대→생산 확대'라는 사이클이 한 국민경제 안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2007~2011년 경제위기 기간에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선방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그랬다.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1억대 가까이 팔려 나간 삼성의 스마트폰 10대 중 1대 정도만 삼성 구미공장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만든 것일 뿐이다. 나머지 9대는 중국·베트남·브라질·인도에 있는 삼성공장에서 해당 나라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삼성을 포함해 엘지·팬택 등 휴대폰 산업이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전인 2007년만 하더라도 휴대폰의 해외생산이 35.9%밖에 안 됐는데, 2011년 기준으로는 거의 80%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스마트폰이 선전했다고 박수쳤지만 그 대부분은 해외에 공장을 지어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대박을 낸다 한들 삼성 구미공장 생산노동자는 1만명 내외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체 휴대폰 관련 일자리도 2000년대 중반 이후 4만명 선에서 거의 고정돼 있다.

현대차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2007년 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170만대였고, 2011년에는 190만대로 20만대가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해외생산은 90만대에서 220만대로 무려 130만대나 증가했다. 중국·미국·인도·터키·러시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0년에 이르러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의 국내생산과 해외생산 비중이 역전됐다.

삼성과 현대차 등 자본의 세계화는 국내 일자리 감소를 넘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 줬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생산기지를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자국으로의 생산기지 유치를 위해 임금을 낮추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또는 자국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임금상승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런데 글로벌경제 전체로 보면 글로벌 총수요를 줄여 고용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와 국가 사이의 경제적 협력(Thomas Palley(2011))


 

‘나’ 국가

임금 인상(협력)

임금 삭감(배반)

‘가’ 국가

임금 인상(협력)

5, 5

-10, 10

임금 삭감(배반)

10, -10

-5, -5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임금상승을 기대하면서 자국의 임금은 삭감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모두가 임금을 삭각하게 되고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려면 모든 국가들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 간 정책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점점 더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국내 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를 걱정하느라 임금인상을 압박할 수도 없다. 결국 각 국가의 내수구매력과 글로벌 총수요를 약화시킬 것이지만 지금 세계는 수출경쟁과 통화가치 하락경쟁에 몰두하는 중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협력과 해법은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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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협동조합은 노박의 <협동 진화의 5가지 규칙> 중 혈연선택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규칙인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을 모두 만족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 등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 특히 협동조합이 발달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혈연선택도 일정 정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다.

협동조합은 7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많은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사라지면서 운영 원칙들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다. 이를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100주년 총회에서 정리하여 선언한 것이 다음과 같다.

첫째, 조합원의 참여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이다.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이다.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적,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차별 없이 열려 있다. 개방성에 의해 시장실패에서 나타나는 정보비대칭성을 극복함으로써 간접 상호성이 보장될 수 있으며, 외부에 배타적이지 않은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둘째,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조합원들은 정책 수립과 의사 결정에 참여하면, 선출된 임원들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조합원은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내가 협동한다 해도 남이 배신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줄여준다. 협동하지 않는 이에 대한 응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공동 소유하고 공동 이용한다. 인류 최초의 협동조합은 식량을 공유하는 원시부족이었을 것이다. 위험을 공유하는 보험 역시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원 또는 자본의 소유와 이용에 있어서 개인이 아닌 집단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조합원은 협동조합에 필요한 자본을 조성하는데 공정하게 참여하며 조성된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금의 일부분은 조합의 공동재산이다. 출자 배당이 있는 경우에 조합원은 출자액에 따라 제한된 배당금을 받는다.

넷째,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협동조합이 정부나 시장 등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거나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때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은 협동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제도에 의존할 경우 오히려 구성원의 자발적 선의는 줄어드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교육과 훈련 및 정보를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된 임원, 경영자, 직원들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지도층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공유 가치를 확산하여 집단 정체성을 높이고 간접 상호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 교육을 통해 기술적 수준을 높여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또한 협동은 때때로 내적 생산성 향상 수단인 경쟁과 대립되는데, 이를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여섯째, 협동조합은 서로 협동한다. 협동조합은 지방, 전국, 지역 및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협동조합운동의 힘을 강화시키고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한다. 이는 네트워크를 확대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외부성을 증가시킨다.

일곱째,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정책을 통해 조합이 속한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간접 상호성과 네트워크 상호성을 촉진시키며, 사회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사회경제 생태계가 발전할수록 협동조합의 사회적 위치는 커지게 된다.

이렇듯 협동조합의 원칙이란 협동이라는 인류의 오랜 지혜가 체화된 것이며, 앞서 살펴보았던 협동 진화의 규칙들을 사회적 규범으로 만든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John Stuart Mill),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Kar Marx), 심지어 주류경제학의 핵심인 한계혁명의 창시자 왈라스(Leon Walras)까지 역사 속의 많은 지식인들이 협동조합을 예찬했다. 그만큼 협동조합은 민주적일 뿐 아니라 잘 운영될 경우 효율성마저 높을 수 있다. 특히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딜레마의 경우 사회경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이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

그런데 왜 현실에서 협동조합은 희귀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온통 시장경제이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사회경제의 섬인 셈이다. 이런 조건은 분명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재 협동조합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내부적 노력과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기업이 투자자관리기업(KMF, Kapital Managed Firm)이라면 협동조합은 노동자관리기업(LMF, Labor-Managed Firm)이다. 둘의 차이는 투자자가 기업을 소유하는가 아니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바꿔 표현하자면 투자자가 노동을 고용하느냐, 노동자가 투자를 고용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현실에서는 투자자관리기업이 월등히 많지만, 경제학적으로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다우(Dow)는 “경제학은 자본주의 기업의 우위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경제학자 사무엘슨(Samuelson) 역시 완전경쟁시장 모델에서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느냐 아니면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느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자본과 노동은 특성면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첫째 물리적 자산의 소유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쉽게 이전될 수 없다. 즉, 자본은 쉽게 이동하고 양도될 수 있지만 노동은 그렇지 못하다. 둘째 노동은 저마다 상당한 이질성을 보이지만 물리적 자산이나 금융 자산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자본은 화폐의 양으로 환원이 가능하지만 노동은 사람의 속성이어서 하나의 양으로 환원할 수 없다.

이런 근본적 차이점 때문에, 우선 협동조합은 자본조달에 있어서 불리하다. 자본주의 기업은 주식시장을 통해 유한책임의 소유권을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다.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비로만 자본을 동원할 수 있으며 자본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자산이 개인에게 반환되거나 상속되지 못하는 불가분의 자산(Indivisible reserve)이라는 한계를 가지며, 소유권의 이전은 조합원 구성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에 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힘들다. 매우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이유 때문인데, 금융기관이 협동조합의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서 적절한 신용평가를 내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은 통제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비민주적인 자본주의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을 발행한다면 어떨까? 협동조합의 경우 주식을 구입한다는 것은 조합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쉽게 매매가 일어날 수 없다. 한 편 조합원의 자격을 매매한다는 점에서 과도한 주식 발행은 협동조합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존 조합원을 상대로 신주를 발행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1인 1표의 민주적 결정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무의결권 우선주를 발행하게 된다. 이를 구매하는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프리미엄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운영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자본주의 기업에서의 1주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최대 주주에 의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협동조합의 1인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노동자의 구성이 이질적이고 규모가 클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수결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평균적 노동자들이 높은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려 할 것이므로 숙련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을 기피할 것이다.

이 외에도 조합원 1인당 순수입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공급대응에 비탄력적이어서 수익성이 좋을 때 고용을 줄이거나 비조합원을 고용하여 투자자관리기업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은퇴에 가까운 조합원일수록 미래의 투자수익을 누릴 수 없으므로 현재의 투자에 반대하면서 투자는 줄고, 새로운 조합원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단점을 장점으로

협동조합의 불리함을 주장한 위의 주장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현재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투자자관리기업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기업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제도가 이에 맞춰 구성되므로 협동조합이 점점 더 불리해지는 경로의존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자본 동원의 경우 협동조합은 신규 가입자가 상당한 액수의 입회비를 내고 불가분의 자산을 일정한 규모로 축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

둘째는 한편으로는 단점이었던 것이 다른 편으로는 장점으로 작용함으로써 주장이 기각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조합의 자금이 가진 불가분의 자산이라는 특징은 경기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어렵지만 안정적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경기 변동기에 일반 기업은 주로 임금을 조정함으로써 대응하지만, 협동조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학자 펜카벨(Pencabel)이 2004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에 비해 평균 임금은 14% 낮았지만,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서 경기가 악화되어도 조합원의 77.6%가 해고의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불가분의 자산이 경기변동에 대해서 일종의 자동안정장치의 역할을 해주면서 노동자에게는 보험을 제공해주는 셈이다.

또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로부터 비롯되는 동료 간의 상호감시가 주주 감시보다 더 효율적이며, 노동자 간에 상대적으로 높은 합의와 신뢰가 존재한다면 생산성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현실에서 협동조합은 적은 감시자와 이윤공유로 높은 생산성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다우는 이러한 노동자관리기업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이것이 성공할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대체로 자본의 규모가 적고, 자산의 특수성이 적으며, 동질적 노동자가 팀워크와 정보공유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의 양도 불가능성에 비롯되는 문제들은 남아 있다. 대규모 자본의 동원과 신속한 의사결정, 그리고 고급 노동력 유치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하나의 노동자관리기업, 하나의 협동조합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 살펴볼 협동조합의 네트워크화와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 출현이다.

 

발전하는 협동조합

최근 연구에 의하면 협동조합 성공의 필수 요건으로 네트워크의 존재가 제기된다. 그림에서와 같이 협동조합 생태계는 저밀도 균형(A)과 고밀도 균형(B)의 복수균형을 가질 수 있는데 네트워크는 외부성을 내부화함으로써 고밀도균형을 가져오는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즉, 초기에 협동조합이 생겨나면서 일정 수준에 이르면 저밀도 균형(A)에 이르게 되고 계속해서  밀도가 높아지면 수익성 곡선이 S자 형태가 되면서 체증한다. 이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각각의 협동조합을 연결하여 지원해주면 수익성 곡선 자체가 위로 이동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익성은 더욱 증가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에서도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트워크가 형성돼 지원기관, 특히 교육과 사업 서비스 분야의 지원기관이 생기면서 수익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설명은 모든 성공한 클러스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협동조합이 네트워크를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네트워크는 자본동원이나 대출의 어려움 등 협동조합의 취약점을 극복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개별 협동조합 능력의 한계를 넘는 돌파혁신(break-through innovation)도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협동조합 네트워크 내에 가치의 공유에 따른 신뢰가 쌓이고 조합원으로서의 만족도가 증가한다면 고급 노동력의 충원도 가능하다. 네트워크는 노동자관리기업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대부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앞서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 중 협동조합 간의 협조를 강조하고 교육과 훈련을 원칙으로 삼은 것도 네트워크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편 전통적 협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협동조합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신세대협동조합(NGC, New Generation Co-ops)조합원은 조합원이 출자지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본조달의 문제와 안정적인 경영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또한 출자 규모에 따라 조합원이 이용할 수 있는 조합의 권리에 차이를 두었다. 후원자투자협동조합(PIC, Patron Investment Co-ops)은 후원자와 투자자가 출자를 하되 그 외의 사람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출자로 이루어지며, 모든 조합원이 동등한 권리를 누렸던 것에서 조금씩 변형된 모습이다.

협동조합에 공동체와 공공부문이 더 많이 결합할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의 발전 전략의 하나로 만들어가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 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으로 협동조합 뿐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조직들이 연합하여 지역공동체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역의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비영리기구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생겨났다. 캐나다의 퀘벡 지역의 사회경제위원회에는 정부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국처럼 사회경제의 형성이 미흡한 곳에서는 공동체나 공공부문과의 결합이 중요하다. 특히 공공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사적 기관에 의해 운영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의료, 보육, 교육 등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사회경제와 공공경제의 보완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건강보험공단이 인두당 수가제를 도입하여 지역 의료 생협의 수입을 보조하는 식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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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5)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2 : 사슴사냥 게임

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이 게임은 확신게임(Assurance Game), 신뢰게임(Trust Dilemma)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A Discourse on Inequality)>에서 나온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은 이렇다.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사냥꾼이 힘을 합쳐 자신이 맡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냥꾼만으로도 충분하다. 토끼를 사냥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사슴을 사냥할 때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사냥꾼 A와 B가 함께 사슴을 사냥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맡은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 때 토끼를 잡으러 쫓아가야 할까? 아니면 사슴을 잡기 위해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사냥꾼 A와 B의 전략은 '사슴을 잡는다'와 '토끼를 잡는다' 두 가지가 된다. 사슴을 잡기로 했다면 서로 협력(cooperation)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C로 표시하고, 토끼를 잡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배반(defect)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D로 표시한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사슴을 잡았을 경우는 (4,4),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토끼를 잡았을 경우는 (2,2), A는 사슴을 기다렸으나 B가 토끼를 쫓아가버린 경우는 (1,3), A가 토끼를 쫓아가버리고 B는 사슴을 기다린 경우는 (3,1)이 된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4를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3을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도 협력한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는 협력하면 1을 얻는다. 반면 A도 배반하면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 A도 배반한다. 즉,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상대방이 사슴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킨다면 나도 그래야 하고,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나도 그래야 한다.

(4,4)와 (2,2) 둘 다 내쉬균형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인 경우의 게임을 조정게임(Coordinatioin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4,4)가 (2,2)보다 훨씬 이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슴을 기다릴 경우 얻을 이득은 4 또는 1이다. 상대방도 사슴을 기다린다면 4를 얻지만 만약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1밖에 못 얻는다. 반면 토끼를 쫓아갈 경우 얻을 이득 3 또는 2이다. 운이 나빠도 2는 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토끼를 쫓아가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슴사냥게임이 갖는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U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사슴사냥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U자를 그린다.

파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슴사냥게임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집단행동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다. 사장 한 명과 직원 두 명이 있는 직장이 있다. 사장은 권위주의적이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어느 날 두 명의 직원은 휴가를 제 때에 보장받기 위해서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파업이 성공하면 사장은 휴가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두 명의 직원 중 한 명이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 보장의 요구는 묵살되고, 이를 주장한 직원은 불이익을 받는다. 물론 두 직원 모두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두 직원을 A와 B라고 하자.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파업에 참여한다'와 '파업에 불참한다' 두 가지가 된다. 파업에 참여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고, 파업에 불참한다면 서로  배반하는 것이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파업에 성공하고 휴가를 보장받았을 경우는 (1,1),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파업에 불참하고 휴가를 보장받지 못했을 경우는 (0,0), A는 파업에 참여했으나 B는 불참하여 A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1,0), A는 파업에 불참했으나 B는 참여하여 B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0,-1)이 된다.

B가 파업에 참여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도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참여하는 게 이득이다. B가 파업에 불참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는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불참하는 게 이득이다. (1,1)과 (0,0) 둘 다 내쉬균형이 된다. 즉, 상대방이 파업에 참여하면 나도 참여해서 휴가를 따내는 것이 이득이고 상대방이 파업에 불참하면 나도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이득이다.

탐욕이 사라진 게임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을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협력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반하는 것과 상대방이 배반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도 배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전자가 탐욕(greed)이라면, 후자는 공포(fear)다. 사슴사냥게임에서는 적어도 탐욕으로 인한 배반은 사라진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사슴사냥게임이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을 배신하는 경우는 남이 나를 배신할까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바꿀 수만 있다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다. 적어도 탐욕에 의해서 나만 잘 살겠다는 선택과 그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는 결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했을 때는 남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일단 우리 아이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남들이 사교육 안 시킨다면 나도 안 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사교육 비용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고생하고 그런데 성적은 안 오르는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부모들이 많아진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교육은 이제 사슴사냥게임으로 변한다. 남이 사교육을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시키지만, 즉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지만 남이 사교육을 안 시키면 나도 안 시키겠다, 즉 남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2,2)라는 해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4,4)와 (2,2)이라는 두 가지 대안이 생겼다.

물론 이 두 가지 대안 중 서로 협력하는 (4,4)를 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나는 사교육을 안 시키고 싶은데 남들도 안 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키는 (2,2)의 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모두가 사교육을 안 시킬 것이라고, 모두가 협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방법을 들자면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된다. 적절한 제도와 규범을 도입한다면, 죄수의 딜레마는 사슴사냥게임으로 바뀔 수 있고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해를 택할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3 : 치킨게임

세 번째는 치킨게임이다. 치킨은 겁쟁이를 뜻하는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이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나오는 한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에서 두 건달이 여주인공을 놓고 게임을 한다. 절벽 위에서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다가 둘 중 먼저 차를 세운 사람이 지는 것이다. 누가 겁쟁이인지 보자는 무식한 게임이다.

또는 서로를 향해 차를 몰다가 누가 먼저 핸들을 돌리는가, 기찻길 위에 누워 있다가 누가 먼저 도망가는가를 겨루는 것들도 모두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은 매-비둘기 게임(Hawk-Dove Game)으로도 불린다. 매는 돌진하는 미친놈이고, 비둘기는 도망가는 겁쟁이다. 매와 비둘기가 만나면 언제나 매가 이긴다. 하지만 매와 매가 만나면 서로 멸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여기 치킨게임에 참가한 무식한 사람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선택한 게임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아 달려오는 것이다. 전략은 '핸들을 돌린다'와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가 있다.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협력(C)이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것이 배반(D)이다. 보수는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달리는 경우, 결국 둘 다 죽는 경우가 (1,1)이다.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는 경우는 둘 다 목숨은 건졌지만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3,3)이다. A가 핸들을 돌리고, B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2,4), B가 핸들을 돌리고 A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4,2)이다.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가 되었으니 2의 보수를 얻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게임에서 이겨 용감한 남자로 인정받았으니 4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보자. B가 협력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3을 얻고, 배반하면 4를 얻는다. 따라서 A는 배반하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B가 배반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2를 얻고, 배반하면 1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협력하고 핸들을 돌린다. 남이 협력하면 나는 배반하고, 남이 배반하면 나는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B가 핸들을 돌릴 것 같으면 A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해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B가 너무 무식한 놈이어서 절대 핸들을 돌릴 것 같지 않다면 A는 핸들을 돌려서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다.

이처럼 상대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이 되는 게임을 반조정게임(Anti-Coordination Game)이라고 한다. 앞서 본 사슴사냥게임과 정반대이다. 사슴사냥게임에 해당하는 경우는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과 내가 같은 것을 선택할수록 나눠 갖는 몫이 커진다. 혼자서 토끼를 잡는 것보다 둘이서 사슴을 잡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즉, 재화의 비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치킨게임은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하면 내 몫은 줄어든다. 서로 같은 것을 선택해서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재화의 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내쉬균형은 (4,2)와 (2,4)에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둘 중 어떤 놈이 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식한 인간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치킨게임에서는 미친놈이 이긴다고 말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로를 향해 차를 모는 경우라면 나는 핸들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핸들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자신의 손을 묶어서, 나는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치킨게임의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치킨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의 모양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핵무기 경쟁을 할 당시 미국의 닉슨(Ric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내 전략은 미친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핵무기가 가져올 엄청난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리는 것은 치킨게임과 같다. 그리고 닉슨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인식하면, 다시 말해 나를 언제라도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 바보와 미친놈의 게임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도 치킨게임이다. 여기서 미친놈은 북한이다. 남한 정부도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실제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남한이 이길 것이다. GDP의 차이가 20배 이상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쉽게 미친놈이 될 수 없다. 남한 정부는 미친놈보다는 바보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협력할 것이고, 이 때 너희도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을 주는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의 이득을 제시하여 협력할 때 북한이 얻는 이득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혹은 적어도 협력할 때 이득이 많아진다고 북한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상호주의 전략은 이를 다시 치킨게임으로 되돌려 놓았다. 상호주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협력과 응징이다. 문제는 협력보다는 응징에 방점이 찍혀서 북한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전략만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니 나도 응징을 하겠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방도 다시 나를 응징한다.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협력할 때보다 배반할 때 이득이 더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치킨게임이 되는 것이다.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게임을 이렇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보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나은 상황이 사슴사냥게임이다.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협력하는 경우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해결될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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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4)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게임이론을 이용한 사회적 딜레마 게임

사회적 딜레마의 구조를 이해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학자들이 게임이론을 빌려서 고안한 것이 사회적 딜레마 게임이다.

게임이론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 시켜 주로 두 사람 간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전략적 상호작용이란 어떤 상황의 결과가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음을 뜻한다. 여기서 행위자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로 가정한다.

게임 이론은 행위자 혹은 경기자, 전략, 보수로 구성이 된다. 행위자는 게임에 임하는 주체를 말한다. 전략은 행위자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행동을 말한다. 보수는 각 행위자들이 선택한 전략의 결과로 얻는 이득을 수치화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3가지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사슴사냥게임(Stag Hunt Game),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지만 사회적 딜레마의 상황을 담고 있는 게임은 이 세 가지뿐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게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이 사회적 딜레마인지를 판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1 : 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부터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두 명의 범인이 잡혀왔는데 물증이 없다. 범인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6개월 형을 산다. 검사는 자백을 받기 위해 두 범인을 분리시켜놓고 자백하는 사람은 풀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대신에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10년 형을 산다. 만약 두 범인이 모두 자백하면 각각 5년 형을 산다.

이를 게임이론의 요소인 행위자, 전략, 보수로 표현하면 이렇다. 행위자는 두 명의 범인 A와 B이다. 전략은 협력(cooperation)과 배판(defect) 두 가지가 있고 각각 C와 D로 표시한다. 여기서 협력은 자백하지 않는 것이고, 배반은 자백하는 것이다. 가로축이 A의 전략이며, 세로축이 B의 전략이다. A와 B가 각각 협력 또는 배반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택할 수 있으므로 총 네 가지 결과가 나온다. A와 B 모두 협력하는 경우는 (C,C), A와 B 모두 배반하는 경우는 (D,D), A는 협력하고 B는 배반하는 경우는 (C,D), A는 배반하고 B는 협력하는 경우는 (D,C) 이다.

보수는 석방될 경우를 4, 6개월 형을 살 경우를 3, 5년 형을 살 경우를 2, 10년 형을 살 경우를 1이라 하자. 숫자가 클수록 얻는 이익이 큰 것이다. 앞서 살펴본 네 가지 결과의 보수를 다음과 같이 표기한다. A와 B 모두 협력하는 경우는 (3,3), A와 B 모두 배반하는 경우는 (2,2), A는 협력하고 B는 배반하는 경우는 (1,4), A는 배반하고 B는 협력하는 경우는 (4,1) 이다. 먼저 쓴 것이 A의 몫이고, 나중 쓴 것이 B의 몫이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3,3)의 결과가 되어 A는 3을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4,1)의 결과가 되어 A는 4를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는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1,4)의 결과가 되어 A는 1을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2,2)의 결과가 되어 A는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에도 A는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A는 언제나 배반하는 것이 이익이다. 이러한 선택 과정은 B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B 역시 언제나 배반하는 것이 이익이다. 결국 A와 B는 서로 배반하고 (2,2)를 얻게 된다.

경제학 200년의 역사를 뒤집은 내쉬균형

서로를 배반하여 (2,2)를 얻는 상황은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이다. 내쉬균형이란 상대방의 전략에 대해서 자신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상태이다. 내쉬균형은 상대방이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다른 전략을 선택할 유인이 없는 상태이다. 지금의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상태로 매우 강력한 균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좋은 상태는 아니다. 위의 그림에서도 (2,2)의 내쉬균형보다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더 좋은 결과인 (3,3)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A와 B 모두 2보다 큰 3을 얻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4(=2+2)보다 큰 6(=3+3)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두 범인이 사전에 미리 만나서 자백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고, 서로를 굳게 신뢰한다면 (3,3)이라는 더 좋은 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쉬균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가 22살의 나이에 발표한 박사학위논문에서 나왔다. 영화를 보면 대학원생이던 내쉬가 박사학위논문을 가지고 교수를 찾아가자, 교수가 “자네는 경제학 200년의 역사를 뒤집었네.” 라고 말한다.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장면이겠지만 내쉬균형이 가져온 파장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시작된 주류경제학은 인간이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쉬균형은 개인이 이기적인 선택을 했을 때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2,2)의 결과는 우월전략균형(Dominant Strategy Equilibrium)이기도 하다. 우월전략이란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에 관계없이 자신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이다. 우월전략균형은 서로가 우월전략을 선택한 상황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이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배반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므로 이는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우월전략균형은 내쉬균형이 된다.

어떤 상황이 죄수의 딜레마인지 쉽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수의 크기 순서를 확인하면 된다. 가로축 행위자의 보수를 기준으로 해서, '내가 배반하고 상대방이 협력할 때(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아서 N의 형태가 되면 죄수의 딜레마이다. 이 크기 순서만 지켜진다면 어떤 숫자를 넣어도 상관없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 1'로 N자를 그린다.

광고 경쟁과 공유지의 비극

몇 가지 게임을 더 살펴보자. A와 B라는 커피 전문점 두 곳이 있다. 두 업체는 TV광고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A와 B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광고를 한다'와 '광고를 하지 않는다'이다.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이 두 업체 사이의 협력이고, 광고를 하는 것이 배반이 된다. 두 업체가 모두 광고를 하지 않을 경우 각각 5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한 업체는 광고를 하는데 다른 업체는 광고를 하지 않을 경우, 광고를 한 업체의 이익은 80억 원으로 늘어나지만 광고비로 10억 원을 지출하여 7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광고를 하지 않은 업체는 매출이 줄어서 2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두 업체 모두 광고를 할 경우 매출의 변화는 없지만 광고비가 지출되어 4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이를 게임이론의 전개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B업체가 광고를 하지 않을 때, A업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업체는 광고를 하지 않으면 50의 이익을 얻지만, 광고를 하면 80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광고를 하는 선택을 한다. B업체가 광고를 할 때, A업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업체는 광고를 하지 않으면 20의 이익을 얻지만, 광고를 하면 40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역시 광고를 하는 선택을 한다. 결국 B업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A업체는 광고를 하는 것이 이득이다. B업체도 A업체와 똑같이 생각할 것이고, 두 업체 모두 광고를 하는 것이 내쉬균형이자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결과는 어떠한가? 두 업체가 광고를 하지 않았다면 각각 50억 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광고를 하면서 광고비 10억 원만 낭비하고, 이익은 4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쟁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던 공유지의 비극 역시 죄수의 딜레마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한 어촌 마을이 있고, 인근 해역은 이 마을 모든 사람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공유지라고 하자.(최정규, 2010, <이타적 인간의 출현> 중)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물고기를 남획하면 인근 해역의 물고기는 곧 고갈된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협조해서 어획량을 규제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어획량 규제를 지킨다면 나는 마음껏 고기를 잡아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어획량 규제에 협조할 경우 각각 10의 이익을 얻는다. 어획량 규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등장할 경우, 그 사람은 15의 이익을 얻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를 입어서 3의 이익을 얻는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어획량 규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각각 5의 이익을 얻는다. 이를 마을 사람 A와 B의 관계로 단순화시켜 게임이론의 전개표로 그려보자.

B가 어획량 규제를 준수할 때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는 어획량 규제를 준수하면 10의 이익을 얻고, 물고기를 남획하면 15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잡는 것이 이득이다. B가 물고기를 남획할 때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는 어획량 규제를 준수하면 3의 이익을 얻고, 물고기를 남획하면 5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잡는 것이 이득이다. 결국 B가 약속을 지키든 안 지키든 상관없이 A는 어획량 규제를 지키지 않고 물고기를 남획하는 것이 이득이다. B 역시 똑같이 생각할 것이므로, 모두가 물고기를 마구잡이하는 (5,5)가 내쉬균형이자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환경과 미래세대, 공동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파괴적 결론이다.

우리 생활 속 죄수의 딜레마

이처럼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매우 많다. 좀 더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사례로 우버먼(Huberman)과 글랜스(Glance)가 제기한 저녁 값의 딜레마(Dinder's Dilemma)가 있다. 친구들 여럿이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키되 계산은 총액을 사람 머릿수로 나누어서 똑같이 내기로 했다고 하자. 단순화를 위해 메뉴로는 2000원짜리 김밥과 6000원짜리 스파게티가 있다고 하자. 친구들이 김밥을 시키면 나는 비싼 스파게티를 시켜서 친구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이익이다. 친구들이 스파게티를 시키면 내가 굳이 김밥을 먹으면서 스파게티 값까지 부담할 이유가 없다. 즉, 다른 사람이 어떤 메뉴를 시키든지 상관없이 나는 비싼 스파게티를 먹는 것이 이익이다.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여 비싼 스파게티를 시키게 된다. 이 역시 죄수의 딜레마이다.

한국의 부모와 아이들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사교육 역시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다. 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사교육을 시킨다'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이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시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만 사교육을 안 시키면 뒤처질 수 있으니 나도 사교육을 시킨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안 시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만 사교육을 시켜서 성적을 올리고 싶으니 나는 사교육을 시킨다. 결국 상대방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나는 사교육을 시킨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다 이렇게 생각한다.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걸려 있다.

한미 FTA도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하여 체결되었다.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했던 설명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첫째, "다른 국가가 미국과 FTA를 맺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맺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둘째, "다른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맺고 있는데 우리만 안할 수는 없다. 우리만 뒤처지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국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든 안하든 우리는 FTA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이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면 해결하기 어렵다. 강력한 균형상태인 내쉬균형이기 때문에 서로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다. 사교육도 한미 FTA도 그렇다. 만약 전국의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세계 각국이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물론 FTA 자체가 가져오는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겠지만, 여기서 게임이론의 구조만을 고려하여 해법을 찾자면 그렇다.) 서로 배반하지 않겠다는 약속, 서로 협력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3,3)이라는 더 좋은 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니 (2,2)라는 해밖에 선택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2,2)에서 (3,3)으로 갈 수 있을까? 이 답은 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인 사슴사냥게임을 통해서 찾아보자.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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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2 / 0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1)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시장에 모여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 바로 시장경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지금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전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생각해보자. 저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환경 파괴 따위는 모르는 척하는 게 합리적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지구가 망할 것 같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환경 파괴에 따른 비용을 책정하여 시장에서 환경 파괴권을 판매할 수도 있다. 그러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환경 파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 소득도 재산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대출을 권했던 모기지 업체, 파산 위험이 있는 대출을 담보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이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인 사교육과 부동산은 어떠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는 사교육 비용과 부동산 가격은 계속해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 놓는게 옳을까? 그렇다면 무상급식 이후 불었던 복지국가 건설의 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모두가 이기적이라서 제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누가 무상급식을 위한 세금을 내려고 할까? 시장에만 맡긴다면 사회복지 서비스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을까?

시장경제를 적용했을 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와 다른 원리로서 접근해야 한다.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 경제학에는 시장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다른 원리를 가진 경제들이 있다. 이 강연을 통해 우리는 다른 경제에 대해 배울 것이다.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 생태경제의 네박자

경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 국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경제, 그리고 그 외에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공동체에 의한 사회경제가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를 구성할 때 필요한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서 시대를 뛰어넘어 세대 간의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방식이 생태경제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이란 구체적인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판매와 구매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서의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가장 효율적인 점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공경제는 주로 시장 실패 부분을 국가가 어떻게 보완하느냐를 다룬다. 국가는 개인들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다. 세금을 거두고, 법을 만들어 강제하고, 때로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런 권한을 이용해서 국가는 시장에서 분배가 되지 않는 재화를 세금을 통해 재분배한다. 개인들이 조금 더 비슷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 사회분쟁을 줄이고자 한다. 공공경제의 원리는 재분배를 통해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영역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어왔다. 원시 부족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식량공유의 습관이 바로 사회경제이다. 현대에서는 수익성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대표적인 사회경제이다. 사회경제의 원리는 상호성을 통해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장, 국가, 공동체로 나누어 각각 효율, 평등, 연대를 추구하는 영역의 조합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 역시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 재분배, 선물이라는 세 가지 교환양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시장경제는 사회조직의 일부에 불과한데, 사회의 모든 영역을 시장경제의 원리로 일원화한 결과 대공황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의 가치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점도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의 구분과 닮아있다.

생태경제는 기존의 환경경제학과 다르다. 환경경제학은 시장실패로 일어나는 환경 문제를 시장원리에 따라 조정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생태경제는 인간이 아닌 자연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경제를 에너지와 물질이 흐르는 생태계의 하부 구조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생태경제의 원리는 생태계의 법칙과 세대 간 정의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앞의 세 경제를 포괄하는 범주이며,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사회는 이처럼 다양한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굴러간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우리는 이 다양한 경제 원리들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각 원리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시장경제의 기본전제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점이다. 시장경제에서의 인간은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로 불린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둔다. 또한 뛰어난 정보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말 그럴까?

만약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시장경제가 사회를 운영하는 유일한 원리가 되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상정한 인간의 정의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름하여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두 사람이 있다. 편의를 위해 A와 B로 칭하자. 이제 A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눠가지도록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주고 싶은 만큼 금액을 제시할 수 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은 각각의 금액을 나눠가지고, B가 A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못한다.

당신이 A라면 얼마를 제시하겠는가? 당신이 B라면 A가 얼마를 제시했을 때 제안을 수용하겠는가? 만약 시장경제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 A는 최소한의 금액 1원을 제시할 것이고, B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B의 입장에서는 1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안을 거부하여 1원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A는 1원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들이 동일한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대체적인 결과를 종합해보면 A는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한다. 물론 B는 이 제안을 수용한다. 그리고 A가 2000원 이하의 금액을 제시할 경우 B는 이를 거절하고 한 푼도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시장경제의 예측에서는 한참 벗어난 결과이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인간의 두 가지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남을 생각한다.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내 돈이 아닌 1만원이 생겼을 때, 옆의 사람에게 얼마를 주는 것이 좋을지 배려한다. 그래서 전체 금액의 40% 이상을 나눠주고 있다. 둘째, 인간은 불공평한 행위에 대해서 응징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너무 낮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상대방을 응징하는 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불공평한 행위를 응징하는 인간의 속성을 상호성이라고 한다. 상호성의 핵심은 남이 해주는 대로 나도 행동한다는 것이다. 남이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남이 나한테 잘못하면 나도 잘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상호적 인간, 호모 리시프로칸(Homo-reciprocan)이라 한다.

이런 결과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반박을 했다. 경제학자들은 A가 4000원이나 5000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까닭은 혹시 B가 그 제안을 거절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A의 결정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또 하나의 실험이 진행된다. 독재자게임(Dictator Game)이다. 앞서 진행한 최후통첩게임과 똑같이 진행하되 다만 B가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즉, A는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하고 B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A기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험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역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A는 2000원에서 3000원으로 B에게 나눠주었다. 앞의 최후통첩게임의 결과와 비교해보면 나눠주는 금액이 2000원 정도 줄어들었다. 줄어든 2000원은 경제학자들의 반박처럼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2000원에서 3000원의 금액을 결정권이 없는 사람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남을 생각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상호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이기적인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대체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의 300년 역사 동안 절대적 가치로 이어진 '인간은 이기적이다' 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명제를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시장경제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앞으로 우리가 배울 다른 경제학에서는 이기적 인간이 아닌 상호적 인간을 기본으로 할 것이다. 남이 하는 만큼 나도 베푼다는 가장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인간. 생각해보면 이미 인류의 오랜 고전인 성경과 논어에서도 이를 황금률이라 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만고의 진리를 묻어두고 어째서 이기적 인간이라는 오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마라." - 논어 12편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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