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4정태인/새사연 원장

 

경제위기의 해법과 대선 후보들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그럭저럭 암초를 피해가던 한국경제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수출증가율이 서너달 연이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건 이미 10년 이상 거짓으로 판명난 낙수효과(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아래로 돈이 흐를 것이다)에 이어 수출 신화도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의 경제를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경제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시민들은 구체적 해법까지 내 놓았다. 2010년 지자체 선거로부터 서울시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새누리당을 굴복시킨 보편복지, 지난 총선부터 이슈가 되어 박근혜후보가 김종인씨를 영입하게 만든 경제민주화, 그리고 전국을 몰아치고 있는 협동조합의 열기가 바로 그 답이다.  

문제는 누가 이런 시대적 요구를 수행할 것인가이다. 한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1974년 이미 “사법살인”으로 국제적 지탄을 받았지만 2007년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박근혜후보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는가? 어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경제민주화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김종인씨와 이한구 원내대표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어록에 나오는대로 ”내가 말했으니 끝“이니 토달지 말라는 투다. 결국 역사도 현실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진위가 결정되고 국민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자기 확신을 넘어 과대망상에 이른 것이다.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수용한다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 해석해서 실행할지는 박근혜후보만 알고 있다. 과연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이라는 한국의 지배계급의 뜻에 반하는 ‘최종 해석’을 할까?

문제는 나머지 유력 후보, 두 사람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안철수교수는 우유부단한 듯 하고  문재인후보는 참여정부의 실정을 되풀이할 것 같다. 안교수가, 모피아의 대부로 유명한 이헌재씨를 영입했다는 보도, 그리고 문재인후보가 “노무현과 이명박의 한미 FTA는 다르다”고 주장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바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시민들이 나서면 된다. 특히 “경제는 전문가가 알아서 하는 것”이란 생각이 문제다. 가령 아동수당을 얼마나 어떻게 주는 게 최선일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지는 분명 전문적인 지식과 정치적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답을 전문가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건 명백한 오류이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공통의 해법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진보개혁진영에 속하는 학자들마저 설왕설래 중이다. 최근에 장하준교수는, ‘재벌개혁론자들’의 주장이 “1주 1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주주자본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상조교수는 현재의 “1주 다표”(총수일가가 전체 주식의 1%에 불과한 의결권으로 계열 전체를 지배하는 것)를 “1주 1표”로 바꾸는 것도 개혁이라고 맞섰다.

분명 재벌개혁론자들의 당면 목표인 “1주 1표”가 글로벌 스탠다드는 아니다. 적어도 숫자로만 보면 세계적으로 가족기업이나 “1주 다표”가 더 일반적이다. 또한 외부 시장에 의한 통제(예컨대 주식시장에 의한 인수합병 위협)가 모든 나라에서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하준교수가 주장하는 “1주 다표”(재벌들에게 주당 더 많은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부여하자는 주장)가 민주주의에서 더 먼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재벌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면 그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가족기업집단이 더 효율적인지, 아니면 주식시장에 의해 통제되는 회사가 더 효율적인지 확실하지 않다.

세계 학계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이런 복잡한 논쟁에 보수적인 경제학자까지 가세하면 어느 한 쪽이 깨끗하게 ‘승리’하는 사건은 벌어질 수 없다. 즉 지극히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문제, 그러나 나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문제에도 시민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우리가 명백히 아는 사실들이 있다. 예들 들어 한국의 재벌은 너무 커서 “대마불사”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더욱이 관료는 물론, 정치와 사법부까지 장악했으니 큰 문제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재벌은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영원한 권력이 됐다. 자신의 경제권력을 이용해서 하청기업을 수탈하고 기업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보루인 노조마저 인정하지 않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매우 위험하며 장기적으로 경제적 효율성도 저해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시민연합정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시민 대다수가 합의하는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즉 경제문제에도 시민참여가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푸는 길이다. 내 청와대 근무 경험을 되새겨보면 시민들의 요구가 뒷받침 됐을 때만 정부는 지배동맹과 대결할 수 있다. 

2008년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는 무려 6개월을 넘게 매일 광장에 모였다. 여중생의 “살고 싶어요”라는 절규로 시작된 촛불은 “한반도 대운하”(4대강 사업), 공기업 민영화, 한미 FTA 반대 등 공공성 이슈로 진화했다. 하지만 당시 취임한 지 6개월도 안된 대통령에게 “물러가라”는 요구는 누가 봐도 무리였다.

글머리에 말했듯이 이번 대선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치르고 있으며 앞으로 수년간 우리 경제는 2% 내외의 성장률에 묶일 것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시민들의 경제해법은 무시되고 수출증대-낙수효과라는 구시대의 주문, 박근혜 후보가 5년 전에 정식화한 “줄푸세”를 다시 실행할 것이다. 바로 그 “줄푸세”가 현재의 위기를 만들었는데도 그는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다르지 않다”고, 자신 만의 ‘최종 해석’을 내놓았다. 2013년 5월, 촛불을 들고 일어나 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일 것이다.

왜 후회할 일을 지금 하면 안되는가? 이미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관철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고 협동조합 설립의 열기도 뜨겁다. “우리가 지지할테니, 국가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정책 목표가 확실해지면 그 임무를 수행할 내각 역시 윤곽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이헌재씨처럼 시장만능주의를 앞장서 실천해온 경제관료, 통상관료가 내각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삼성 장학생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사법부와 입법부를 장악해서도 안 된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는 정부가 곧 “시민연합정부”다.

낙선운동과 투표참여운동, 그리고 야권 단일화 협상을 넘어서 “시민정부 만들기”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하고 따뜻한 삶을 우리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2008년 촛불의 정신을 되살려 서울 광장에 모여야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고 우리 모두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밝힐 수 있다.

<안철수의 생각>은 훌륭하다. 평생 정책만 다룬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 물론 적잖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여러 사람의 의견 짜깁기한 것과 <안철수의 생각>은 다르다. 일관된 생각의 다발이 굵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놀랍게도 학계에서도 채 소화되지 않은 ‘이해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 재벌 문제를 진단하고 법조계에서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지만 방향이 뚜렷한 ‘기업집단법’을 대안으로 내세웠으며 그 생각의 틀은 ‘산업생태계’이다.

더구나 그는 종업원지주제나 이윤공유, 경영참가라는 미시적 실천 방안을 이미 실행해서 성공해본 사람이다. 그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 또한 정확히 지적한다. 당장 표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책<안철수의 생각>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높은 지지율도, 확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 국민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팬덤 현상으로 간주했다. 하여 간간히 보도되는 그의 ‘공자 말씀’도 곧 사라지려니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폭발적 매력이란 면에선 뒤처질지 몰라도, 정책에 관한 한 2001년 내가 처음 만난 노무현을 훨씬 능가한다. <안철수의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국민 안에 퍼질 것이고 현재까지의 대통령 후보 그 어느 누구도 마땅한 백신을 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가장 뛰어난 백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론은 안철수 교수를 중도로 분류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중간쯤이라는 뜻일테고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뒤에는 민주통합당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굳이 자리를 따지자면 이 책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쯤, 아니 진보파의 일부 그룹보다 더 왼쪽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연구원 6년의 연구와 내 뼈저린 실패의 경험이 결합되어 금년 초에 나온 <리셋 코리아>와 ‘싱크로율’ 거의 100%라는 게 그 증거다.

안 교수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의 생각이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색깔공세’에 시달릴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야 세가 불리하면 어떻게든 붉은 색을 덧칠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삶 어느 편린에도, 책 속의 어떤 낱말 하나에도 그럴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억지춘향은 역풍을 맞을 뿐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세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안 교수의 취약점이다. 갑자기 정당을 만들고 현재의 팬덤을 조직적인 정책지지 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실로 난감한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을 알고 싶은 분들에겐 오연호와 김헌태가 쓴 <안철수>를 권한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을 통해 ‘시민정부’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 정당도 환골탈태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내각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 그리고 안철수가 정책의 위치를 놓고 겨루는 것은 말다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같은 정책 목록 안에서 누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 놓는가, 어떻게 반대편 국민을 끌어들일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의 힘>에서 역설한대로 이제 증오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반대 쪽 후보에 표를 던진 국민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 놓고 소통과 타협으로 실천해야 한다. 물론 안철수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협동은 세계와 한국의 장기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날 길인 동시에 대선 승리의 유일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글은 작은책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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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정태인/새사연 원장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약간의 경제학 지식과 현실 경제 흐름에 대한 ‘감’, 그리고 시계열 통계만 볼 줄 알아도 금년 성장률이 3% 미만에 머물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사연은 작년 말에 EU가 그럭저럭 위기를 헤쳐나갈 경우 한국 경제는 금년 2% 중반대 성장을 이룰 것이고, 더 나쁘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과 정부, 그리고 재벌 연구소들 모두 3% 후반대의 성장을 장담했다. 6개월이 지나자 EU 상황을 핑계로 3% 정도로 성장률을 끌어내리더니 최근엔 재벌 연구소들이 2%도 어렵다고 징징댄다. 문제는 이어지는 얘기다. 그러므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등 경제개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 후보도 숟가락을 내민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주장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고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김영삼의 ‘세계화’)으로 외환위기를 맞자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개방과 경제자유화를 주장했다. 당시에는 ‘왕초 각설이’ IMF의 요구사항이 그랬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치자.
 
참여정부 초기 경제성장률이 5%에 머무르자 재벌과 조중동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규제완화를 해야 투자를 늘릴 거라고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때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랬고 지금도 각설이 타령은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흥청망청이고 오바마는 고전 중이다.
 
굳이 김빠진 옛 드라마의 ‘다시 보기’를 누른 건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어날 일이 그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15년 넘게 양극화가 심해지자 ‘성공신화’에 취했던 국민들이 깨어나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는 끼어들기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이슈는 경제위기의 해법인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후보로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
 
아마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최근의 성과에,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선거가 아니고 지금은 60∼70년대가 아니다. 단언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위의 재벌 연구소의 주장을 따를 것이다. 위기 때문에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나아가 그런 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과 조중동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이며, 보수적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동맹세력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지금 코 앞에 닥친 위기는 구체제의 방식으론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현재 국민이 요구하는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협동조합(사회경제)이야말로 위기 탈출의 묘책이다. 지금 세 정책을 실현하려는 시민 세력이 뭉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의 미적거림에 탄식하고 안철수의 모호함에 불안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낙선운동, 투표 격려, 그리고 야당과의 야권 단일화를 해 왔다. 이제 사회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뚜렷한 요구가 있는 만큼 더 정확한 정책 목록, 정책을 실현한 내각의 구성 원칙, 그 내각과 시민의 통합 가버넌스를 내세워야 한다.
 
2008년에는 정권을 내주고 나서야 석 달 넘게 광장으로 나왔지만 지금 정권을 만들기 위해 나서면 훨씬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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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정태인/새사연 원장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간다.” 4년 전 이맘때 쓴 글의 첫머리다. 2008년 5월2일, “나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여중생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이 아이들도 이번 총선에서 한 표를 던졌을 테지만 우리는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또 한 번 그들을 실망시켰다.

극적으로 변한 건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이었다. 촛불에 놀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을 하고 결국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던 대통령은 2010년 5월, “촛불시위 2년이 지났는데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다그쳤다. 조·중·동은 시민들에게 “좌파의 선동에 놀아났다”는 반성을 강요했고 검찰과 법원은 1000명이 넘는 촛불시민에게 벌금형 이상을 때렸다. 심지어 정부의 광우병 대책을 비판한 지식인들을 쫓아다니며 허위의 폭로 기사를 쓰는 것도 그들의 일이었고, 사소한 흠결을 문제삼아 MBC 팀을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혔다.

확률로 볼 때 썩 괜찮은 전략이었다. 실제로 고전적 광우병(CJD)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고 도축 소의 0.05%에서 0.1%만 검사하는 미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광우병 소가 발견될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말이다.

광우병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루시너 교수가 미 하원에서 “은폐는 좋은 방책이 아니”라며 전수검사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캔자스주립대학의 폭스와 피터슨 교수가 미국에서도 유럽 수준으로 ‘고위험 소’를 검사한다면 99.999%의 확률로 광우병 양성 소를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한 사실도 무시됐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광우병을 막기 위해 차례로 취한 3단계 사료 조치 중 1단계만 시행하고 있을 뿐이며 등뼈에 붙은 살을 기계로 뜯어내는 AMR도 허용하고 있다. 결국 광우병 소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오로지 미국 축산대기업의 이익 때문이다. 미국에선 버려야 하는 창자, 혀, 목둘레살 등 소의 부산물을 한국에 수출하면 이윤율을 10% 가까이 올릴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소가 비정형광우병(atypical BSE, BASE)에 걸린 것이며 인간의 식품체계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코모이 등 유럽과 미국의 수의학자, 의학자 16명의 공동연구는 원숭이 실험에서 비정형광우병이 CJD보다 더 병원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이들은 CJD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해서 기존의 규제조치를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권고한다.

미국에서는 늙거나 죽은 소를 닭과 돼지와 같은 다른 가축의 사료로 만든다. 이들 가축이 죽으면 또다시 소의 사료가 되니 언제든 광우병의 교차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직접 먹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 수준으로 개방하지 않으면 위생검역조건을 재개정하겠다는 거짓말, 언제든지 수입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던 뻔한 거짓말, 그리고 지금 별 위험이 없으므로 검역만 강화하면 된다는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 장차 인간 광우병까지 발견되면 또 어떤 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총선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오늘 나는 이제 훌쩍 컸을 촛불소녀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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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3 / 09 이경태/새사연 연구원

공중파와 종편 드라마 시청률 비교

자료 : AGB닐슨 미디어 리서치, 전국기준 (오마이 뉴스 재인용)

▶용어해설

시청률 조사란?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TNS미디어코리아'와 '닐슨미디어리서치'의 양대 시청률 조사기관에서 공중파TV 시청률을 발표하고 있다. 시청률 조사방법은 '피플미터' 조사법으로, 표본으로 선정된 가구의 TV수상기에 피플미터라는 전자감응장치를 달아 이 장치가 중앙의 컴퓨터로 보내는 자료를 자동 집계하는 것이다. 조사기관에 선정된 패널수는 약 2,000 ~ 2,500여명이다.

▶현상설명

종편 시청률, 바닥을 쓸고 다니다.

한 시청률 조사기관에 따르면 최근 종편 4사(TV조선, JTBC, 채널A, MBN)의 시청률이 평균 0.38%대의 참담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3개월 평균 일일시청률은 0.426%이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TV조선의 야심작 ‘한반도’(제작비 100억)는 첫회를 1.649%로 시작해서 10회가 가깝도록 시청률이 1%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수준이다.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드라마 제작을 그만두어야할 형편이며, ‘글로벌 플레이어’의 탄생은 커녕 방송사고가 나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조차 희미한 것이 종편 4사의 상태다.

1년 예상 적자가 1000억?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개국 이전 1개 사당 연간 1000억 ~ 2000억의 광고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현재 추세로는 4개사를 합쳐 1200억원에 그치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에 따른 프로그램 조기종영과 편성교체로 인해 외주제작사들의 피해 또한 심각하다. 초기투자비용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으며 울며 겨자먹기로 방송을 이어가거나 존폐위기에 몰려있다.

▶원인과 전망

애초부터 잘못된 시작

막대한 제작비, 호화 캐스팅 좋은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종편이 공중파에 내민 도전의 결과는 안쓰럽기까지하다. 거대신문사가 방송을 겸영하면 지상파를 위협할 수 있으리란 계산은 빗나가고 방송시장에 문란만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원인은 종편의 시작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종편의 도입 자체 언론 공공성 훼손과 상업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의 결과물인데다가 무리스러운 시도를 면밀한 검토도 없이 감행하였다. 또한 예상대로 시사프로와 뉴스의 내용이 극편향적으로 치우치면서 시청자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드라마와 같은 다른 방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종편 3개월 현재, 종편 개국을 통해 의도 했던 언론 플레이는 기대도 할 수 뿐더러, 보수층조차 종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종편은 시청률 저조로 인해 광고비도 줄어가고 재방송만 내보내면서 모두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애물단지가 되고 기성언론의 재정마저 흔들면서, 함께 망할 것인지 빨리 방송에서 발을 빼야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종편의 시청률 침체는 공공성이 요구되는 방송을 장악하는 일이 정권의 비호와 막대한 자본으로도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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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몇 해 전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손석춘 선생에게서 들은 이야기. 손 선생이 연구소를 구상할 무렵 박원순 선생에게 함께하면 어떨지 의논했던 모양이다. 구상을 들어본 박원순 선생이 그러더란다. ‘손 선생이 하시려는 건 민중 기반의 운동이고 제가 하는 건 시민 기반의 운동이니 따로 하는 게 효율적이지 싶습니다.’ 민중 기반의 운동에 속한 나는 박원순 선생과 견해가 종종 달랐고 두어 번 직접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박 선생이 매우 양식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급좌파’를 자처함으로써 숱한 ‘윤똑똑이 좌파’들을 민망하게 한 김규항이 올해 초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의 들머리다. 사석에서 나눈 말이 활자화 된 신문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이들에게 사실을 확인해주고 싶어서다. 여기서 딱히 내 성향까지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 <100분토론>에서 말했듯이 나는 ‘친북좌파’가 아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바로 나 같은 사람과도 함께 일하는 데 ‘부담’을 느낄 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의 황당한 극우논리

지금 나는 박원순의 그 선택에 전혀 유감이 없다. 그 뒤 희망제작소와 새사연은 각각 고유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았다. 의심 많은 이들을 위해 밝혀두거니와 새사연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저명 목사’에 이어 언론인들까지 곰비임비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저격하는데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우리는 수도 서울을 이렇게 지켰다” 제하에 쓴 <조선일보> 선임기자의 칼럼이다. 그는 한국전쟁의 참극을 길게 늘어놓은 뒤 끝자락에서 자신이 해병대 전 사령관에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자유가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넘어갈지도 모를 서울을 왜 그렇게…”라는 질문을 던졌고 “노병은 침묵했다”고 썼다. 어떤가. 김대중과 류근일을 뺨치는 극우 논리다.

저들의 황당함은 ‘친북 좌파’타령에 그치지 않는다. ‘검증’ 명분 아래 한국 사회가 낳은 탁월한 시민운동가를 “병역 기피자”와 “학력 위조범” 더 나아가 “대기업을 겁박한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 심지어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며 강남에 사는 위선자로, 마음고생 컸을 박 후보의 아내는 부당한 이익을 추구해 온 사업가로 마구 써댔다. 그들의 주장은 박 후보의 재산이 ‘마이너스’로 나올 때까지, 아니 밝혀진 다음에도 여기저기 퍼져가 적잖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했다.

정치에 입문한지 7년 만에 18억 재산을 40억원으로 불렸으면서도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해왔노라고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언죽번죽 자부하는 국회의원 나경원과 대기업으로부터 수백 억 원의 기부금을 받아 서민들을 도우면서 자신은 월세로 빚진 채 살고 있는 변호사 박원순을 검증하는 저들의 잣대는 굽을 대로 굽어있다.

물론, 기자도 칼럼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주관을 드러낼 수 있다. 더구나 나경원은 ‘사학 재단’의 딸로서 재단만 비호한 게 아니라, 조선·동아·중앙일보에 결국 종합편성 채널을 하나씩 ‘선물’해 준 미디어법 ‘날치기’에도 오지랖 넓게 앞장섰다. 세 신문사로서는 ‘확실한 보답’의 신호를 정치권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날 수 있다.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그나마 언론

다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옳다. 그런데 조선·동아·중앙일보 기사를 톺아보면 ‘찌라시’라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서울대 사회계열과 법학과 사이에 무슨 ‘심연’이라도 있는 듯이 보도하는 행태는, 시위로 제적된 당사자가 얼마든지 법대로 복학할 수 있었지만 단국대 졸업에 만족할 만큼 학벌에 개의치 않은 보기 드문 미덕을 원천적으로 가리고 있다.

가만히 따져볼 일이다. 정치 활동 중에 부동산을 사고판 것만으로도 13억의 차익을 챙긴 후보에 견주어 박원순의 경제생활에 도덕성을 들이대는 ‘저격수’는 얼마나 해괴한가. 박원순이 대기업 모금에 나선 걸 비판하려면 마땅히 ‘아름다운 재단’의 설립 자체를 시비 걸어야 옳다.

만일 극좌가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이해할 수 있어도 재벌과 유착한 정권의 모리배들이 들먹이는 풍경은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다. 13살 소년에게 병역 기피 의혹을 날마다 내뱉는 ‘병역 기피정당’의 얼굴은 또 얼마나 느끼한가.

세 신문에 묻고 싶다. 참으로 박원순이 ‘병역기피자’라고 생각하는가? 학력을 부풀릴 의도로 위조했다고 판단하는가? 박원순은 대기업과 유착했는가? 아니라면 최소한 언론으로서 품격을 지켜가길 권한다. 대체 언제까지 ‘찌라시’로 대한민국을 망칠 셈인가?

말살에 쇠살임에도 왜 저들은 여론몰이에 몰두할까. 이른바 ‘보수 결집’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와 투표 불참이 목적이다. 유권자들의 슬기가 참 절실한 오늘이다.

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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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