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8.21 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3) (5)
  2. 2012.04.25 진료실로 찾아온 강정마을 활동가들

2012.08.21고병수/ 새사연 이사

 

몽골의 넓은 국토는 대부분이 초원이고 40% 정도가 사막이다. 아시아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일 년 내내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어서 늘 맑은 하늘을 보게 된다. 1년 중 260일 가량 구름이 없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몽골의 하늘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늘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도 8월인 요즘은 낮에는 24도 안팎, 밤에는 18도 정도이니 한국의 가을 날씨 같다. 지금쯤 서울이나 제주는 푹푹 찌는 폭염 소식을 연일 뉴스가 전하고 있을 거다.

몽골의 초원과 끝없는 지평선으로부터 퍼져가는 구름들.

가운데 점점이 보이는 것은 이동하는 수 백 마리 말들이다.

 

돌 하나씩은 지니고 다니는 몽골 주민들

각자 흩어져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아침 진료가 시작되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몽골 주민들은 거의 자기의 진단명을 붙이고 얘기가 시작한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고 ‘쓸개에 돌이 있어요.’라고 하든지, 허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신장에 돌이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다가 돌 하나씩은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처음 몽골에 왔을 때는 너무 황당하고 놀라서 문진도 자세히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이동식 초음파로 검사도 해봤지만 간이나 신장, 쓸개에 돌이 있다고 얘기하더라도 실제는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더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물이 귀해서 잘 걸러지지 않은 물이나 지하수를 먹기 때문에 석회수가 섞여서 몸속에 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콩팥에 만들어지는 신장결석이든 쓸개에 생기는 담석이든 석회수에 많이 섞인 칼슘 침착이 이유가 되며, 그들의 섭식 습관 중 육류 섭취에 의한 콜레스테롤 증가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문제는 허리가 아프면 당연히 콩팥이 나쁜 거고, 그 원인은 주로 신장결석 때문이다 라든가 배가 아프면 담석이 있어서라는 생각을 쉽게 해버린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종합병원에 초음파 기계가 한 대뿐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초음파나 요로검사를 통해 결석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보니 의사들마저 ‘돌이 있어서 아픈 거예요’라고 여겨버리는 것 같다. 일종의 관성적 진료이다.

진료중인 필자

 

알러지가 많은 주민들

또 몽골 주민들에게는 특징적인 질환군이 있다. 바로 알러지로 인한 비염과 피부염들이다. 그것들은 검사보다도 증상과 간단한 진찰만으로도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금새 알 수가 있다.

“알러지 비염이 있어요.”, “피부가 늘 간지러워요.” 찾아오는 많은 주민들이 이런 호소를 한다. 알러지(Allergy)란 말 자체가 과민반응을 뜻하므로 코가 민감하게 반응해서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을 나타내면 알러지 비염인 것이고, 피부가 어떤 자극에 자주 가려움증을 나타내면 알러지 피부염인 것이다. 몽골은 공기가 맑고 오염되지 않아서 우리와 같은 도시의 오염 때문에 생기는 자극은 적어도 초원의 풀에서 만들어지는 꽃가루나 관련된 물질들이 알러지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알러지 비염의 경우 증상을 물어보지 않아도 주민들마다 코 안을 들여다보면 알러지 비염 환자 특유의 점막 부종 현상을 심심치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피부는 햇볕에 타서 거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피부 가려움증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예상을 하고 충분히 가지고 온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연고류는 진료가 끝나기 전에 동이 나 버릴 정도다.

내가 제주도로 이사 와서 진료를 하다가 놀랐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서울보다 제주에서 알러지 비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알러지 비염이 공기의 오염보다는 알러지 유발 물질(‘알러젠’이라고 한다)이 더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다. 풀과 나무가 많아 여러 종류의 식물성 알러지 유발 물질에 노출될 영향이 크고, 특히 제주 산간 도로를 운치 있게 에워싸거나 감귤나무를 보호하려고 둘러친 방풍림인 삼나무들이 문제였다. 지금부터라도 방풍림으로 삼나무 대신 편백나무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제주와는 달리 몽골의 그 많은 초원을 다 바꿀 수도 없고…

밤이 되어 간단한 평가가 끝나고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대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을 벌리고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어디가 아파요? 또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
“아니요. 원래 알러지가 있는데, 너무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참아보려고 버티다가 어젯밤에는 한숨도 못 잤어요.”

이런 녀석을 미련 곰탱이라고 했던가? 간단히 약을 먹어서 증상을 줄여주면 될 것을 며칠 동안이나 참다니… 서울에 있을 때는 그래도 여름이라서 괜찮았는데, 몽골에 오면서부터 눈이 가렵고 코가 막혀 힘들었다고 했다.

남들은 차타고 오면서 몽골 초원의 푸른 기운을 예찬할 때 이 친구는 남몰래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하고, 진작 챙기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급한 대로 주사를 주고, 며칠 먹을 약을 싸주었다.

그 친구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멀리 개 짖는 소리, 잠 안자고 두런대는 자원봉사자 학생들 목소리도 조금씩 줄어들고… 시간이 잠시 흘러 풀벌레 우는 소리가 짙어질 때쯤, 내일은 마지막 진료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을 밤하늘에 전하며 잠을 청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4.24고병수/새사연 이사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 무료진료를 하였다. 해군기지 반대라는 오랜 싸움에 지쳐가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연대 투쟁을 위해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힘이 될 일을 찾던 중 거기에 가서 진료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서의 무료진료 일정을 마친 이후에도 나는 가끔씩 진료실로 찾아오는 강정과 맞닥뜨리고 있다.

다쳐서 찾아오는 강정 활동가들

가끔씩 격렬한 싸움 끝에 다쳐서, 제주시에 있는 내 진료실까지 오는 분들이 있다. 주로 진단서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프랑스인 벤자민(Benjamain Monnet)도 몸싸움을 하다가 여기저기 멍이 들고 허리며 가슴팍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찾아왔었다. 나는 여기저기 자세히 살피고 물어보면서 합당한 진단서를 써줬다. 벤자민은 그 덕분에 강제출국을 모면했다고 한다. 우리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갔어도 같은 진단서가 나왔겠지만, 굳이 나를 찾아온 것은 강정마을에서 무료진료를 통해 쌓인 신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연락이 왔다. 벤자민이 또 다쳐서 치료하고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외상이 있거나 급히 치료해야 할 내용은 아닌 것 같아 근처 병원에 가서도 같은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고, 서귀포에서 먼 제주시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 후 뉴스를 보니 벤자민은 강제출국을 피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한참 고민에 빠졌다. 그 때 진단서를 제출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제출했는데 안 통했던 것인지..... 자책감이 들면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진단서 작성은 의사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거짓으로 작성할 수 없다. 벤자민이 다른 병원을 갔었어도 정당한 진료와 진단서를 얻을 것이지만, 나에게 연락 온 며칠 후 그렇게 되어 마음이 안 좋았다.

또 얼마 안지나 이번에는 경찰들과 함께 강정 마을 여성 활동가가 찾아왔다. 경찰서에 연행되었는데, 진료실에 여자 경찰관 입회 속에 진료를 하게 되었다. 나는 강정에서 그 분을 자주 봤는데, 그 분은 나를 못 알아봤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고, 객관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었다.

“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많이 힘들어요.”
“뼈는 이상이 없는데, 무릎관절이 크게 무리가 가서 당분간 아플 겁니다.”
“손목도 아프고, 여기저기 쑤시네요.”

전형적인 몸싸움 후유증으로 밟히거나 거센 힘에 밀쳐져서 나타나는 통증들이었다. 이번에도 필요한 진단서를 작성해 주고는 당분간 쉬면서 지내고, 약을 좀 드시라고 권했다. 진료실을 나갈 때는 여자 경찰관이 안 보이도록 하면서 열심히 싸워서 이기라고 손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 하는 동작을 보여줬다. 그 분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는 힘없이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갔다.

잠시 후 동행한 경찰관이 다시 들어와서는 상태가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본 그대로 말해주었다.

“이 사람들은 멀쩡한데도 괜히 아프다고 엄살을 떨어요. 옛날 같았으면 진짜 아픈 맛을 보여줬을 텐데, 요즘은 인권이다 뭐다 해서 바쁜데 병원까지 모셔 와야 하니, 원.....”
“실제로 근육통이나 인대 통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짜증나겠지만 잘 해 주세요.”

경찰관과 해경도 아프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뭐라고? 당신 같은 경찰관에게 밥 먹여주는 세금이 아깝다’ 하면서 싸웠으면 좋겠지만, 경찰관도 달래면서 화를 풀어주어야지 어쩌겠는가. 강정마을의 갈등이 진료실 안으로 옮겨온 참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찰관들이나 해경들도 부쩍 많이 찾아온다. 많은 수가 강정에 파견 갔다 오는 사람들인데, 이번 겨울에 심하게 돌았던 독감이나 감기에 걸려서 찾아온 경우들이었다. 의사로서 요즘 무리를 한 것이 있냐는 의례적 질문을 하게 되고, 그들은 한결같이 강정에서 추위에 떨다가 독감이나 감기에 걸렸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 니들도 고생이 많다. 그러게 왜 거기에 갔냐 말이다. 하긴 위에서 지시한 것이니까 가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어느 국가 공무원(경찰관인지 해경인지 해군인지 밝히지 않겠음)이 찾아와서 강정에 가서 오래 있어야 하는데, 며칠 쉬고 싶다고 진단서를 써달란다. 감기 몸살은 있었지만,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피해서 진단서를 써달라니까 속으로는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한 명이라도 그 쪽으로 못 가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안정가료를 위해 며칠 푹 쉬어야 한다면서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

계속 강정을 만나고 있다

이렇듯 한라산 너머 강정이 우리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계속 강정을 만나고 있다. 그 만남의 상대들이 강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건 그들을 막으려는 해경이나 경찰관이든 말이다.

평화로운 섬에 사람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피비린내를 진동시킨 것이 20세기 중반 4.3의 슬픔이라면, 21세기에도 제주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군기지나 해군기지와 같은 전쟁의 광기로 고통 받고 있다. 도대체 이 싸움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