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7 / 20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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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생태문제는 전형적인 공유자원의 비극을 안고 있다. 또한 집단행동의 딜레마가 작용한다. 이는 집단 공통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인은 나서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보통 나 혼자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 보호에 나서보았자 변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생태문제를 포용하지 못하는 경제학

우선 기존의 경제학이 생태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고 하는 사적유물론의 기본이다. 생산력이라는 것은 요새 경제학에서 얘기하듯이 함수로 정확하게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 측면과 물적 측면이 강하다. 생산관계는 사회적 관계이다. 물적 관계인 생산력과 사회적 관계인 생산관계는 언젠가는 충돌한다. 일본 사람들이 마르크스경제학을 도입하면서 흔히 했던 비유가 사람의 몸과 옷이었다. 몸이 커버리면 옷이 안 맞게 되어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생산력이 커지면 생산관계가 바뀌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생산이 재생산되면, 그것을 생산할 때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인 생산관계도 재생산되고 그 둘이 부딪히면 혁명이 도래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생산관계가 제약조건이 된다.

그러나 생태문제, 환경문제는 단순히 생산관계의 한계를 넘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생산력의 과도한 발달로 자연자체가 붕괴하는 것이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사고 속에서는 생태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도 생태문제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속류적인 해석을 많이 하기도 하고, 마르크스 자본론의 구절을 이용한 생태마르크스주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마르크스 자체로는 생태문제를 다룰 수 있는 틀은 없다. 사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자연 자체가 문제가 되던 시대는 아니었다.

마르크스 이전에 자연문제를 다룬 사람으로는 인구론을 이야기한 맬서스(Malthus)가 있다. 맬서스는 토지는 한계가 있지만 인구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위기가 온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거나 위생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열악한 채로 두어서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지식인들은 이에 환호했다. 하지만 맬서스의 우울한 예언은 붕괴했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돌파한 것은 기술, 결국 자본이었다. 자본이 맬서스의 우울한 예언을 극복했다는 사실은 경제학자들의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한계를 믿지 않는다. 계속해서 기술적 발전이 진행되면 한계를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두 번째는 케인즈 경제학이다. 케인즈는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소책자를 낸 적이 있는데, 우리 손자 세대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살 수 있을 것이므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케인즈가 1946년에 죽었으니, 이미 케인즈의 손자 시대는 도래했지만 지금 우리의 삶과는 매우 다른 상상이었다. 어쨌든 케인즈는 미래에는 생산력이 발전해서 노동시간을 줄어들 것이가고 보았다. 단 하나 총수요 감소가 가장 큰 문제로 남을 것인데 이는 국가가 나서서 거시경제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케인즈가 우려했던 총수요의 문제는 지금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환경이라는 새로운 문제도 등장했다.


 

생태문제도 외부성의 하나로 취급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의 해결책은 간단하면서도 최악이다.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애로우의 일반균형이다. 자연자원이 희소해지면, 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 소비는 줄고 생산은 늘어나서 다시 균형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맞을 때도 있다. 실제 70년대 석유파동이 생겼을 때 유가가 상승하자 에너지 절약 기술이 많이 등장했고, 경차가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통해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시장을 통한 해결이다. 더 극단적인 방법은 아예 자연자원을 거래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물과 공기는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재(free good)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물도 다 판매하고 있다. 공기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아니, 공기도 판매상품으로 만들어 환경문제를 해결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자연조차 제공되지 않는 심각한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주류경제학에서 환경문제는 외부성의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것, 시장 밖에 있는 것이 외부성이다. 외부성을 해결하는 대표적 해법은 피구세이다. 공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확한 공해의 양,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공해의 양, 공해로 인한 피해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환경문제가 가져올 피해와 비용은 측정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가져올지 아무도 측정할 수 없다.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적절한 실행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은 인천공항철도이다. 비용은 건설비가 대부분이니 측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편익은 예상 승객수이므로 측정이 어렵다. 초기에 승객을 100명이라고 예상하고 건설했다면, 실제로는 9명 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4대강 건설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은 어떠할까? 이는 인천공항철도보다 더 어렵다. 측정하기 어려운 환경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장실패론, 정의론, 엔트로피 이론의 결합

앞서 공공경제는 시장실패론에 정의론이 결합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생태경제는 역시 시장실패론에 정의론이 결합되는데, 특히 세대간 정의가 추가된다. 환경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세대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동시대를 살고 있는 노인과 아동 세대간의 정의라면 민주주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민주주의 중에서도 단순히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해결한다면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아동 세대가 불리하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공동체 내에서 충분한 토론을 진행하는 숙의민주주의를 통한다면 아동세대까지 고려한 적절한 자원의 배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래세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도 없다. 따라서 투표든 토론이든 진행할 수가 없다. 부모가 제 자식을 사랑하고, 제 손주를 사랑한다 해도 아주 먼 미래의 후손들까지 완벽히 고려할 수는 없다. 어떻게 세대간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생태경제를 논할 때 등장하는 큰 문제 중 하나이다.

생태문제를 다룰 때는 세대간 정의를 포함한 정의론에 이어 또 한 가지가 추가되는데 바로 엔트로피 이론이다. 생태문제란 자연의 한계에 봉착하여 발생하는 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열역학을 통해 물질의 흐름을 다루는 엔트로피 이론이 추가된다.

이를 경제학의 생산함수에 반영한 이가 제오르제스쿠 로에겐(Georgeseu Rogen)이며 저서로는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 과정>이 있다. 경제학의 생산함수는 간단한다. 노동(L)과 자본(K)을 투입해서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Y=f(K, L)

제오르제스쿠는 여기에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열역학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추가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열은 한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즉, 뜨거운 것은 차가워지지만 차가운 것이 뜨거워지지는 않는다. 투입물로 노동(L), 자본(K)과 함께 자연자원(R)을 집어 넣는다. 산출물로는 생산물(Y)과 함께 쓰레기(W)도 나온다고 보았다. 그래야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열역학 법칙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Y+W=f(K, L, R)


 

기술과 자본이 자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시스템은 중요한 두 가지 흐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생산과 소비를 통해 가격이 재생산되는 화폐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활동자체의 기반으로 생태계에서 경제계로 투입되어 물질이 재생산되는 엔트로피의 흐름이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은 전자만 주목하고 후자는 무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생태학자 댈리는(Daly)는 주류경제학이 생물체의 신진대사과정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혈액순환과 같은 순환기관만 연구하고 외부환경과 연결되는 투입과 배설에 해당하는 소화기관에 대한 연구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맬서스의 우려를 극복한 기술, 자본으로 돌아간다. 생산요소 간에는 대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자원을 자본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지는 비옥하지 못해도 농기구나 농약을 통해서 생산력을 높이는 경우이다. 이는 솔로우(Solow)와 스티글리츠(Stiglitz)가 제시한 것으로, 주류경제학의 환경문제 해결방법이다. 생산함수를 Y=f(L, K, R)로 하되 결국에는 최적화된 노동(L), 자본(K), 자연자원(R)의 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L)과 자본(K) 같은 다른 투입요소가 충분히 커지면 자연자원(R)의 최적량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금까지의 기술진보는 이러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에 대해서 댈리(Daly)는 다시 비판한다. 첫째, 자연자원은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 기술이나 자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자연자원이 존재한다. 공기와 같은 것이 그렇다. 이렇듯 자원 간의 대체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y)의 특징이다. 이를  강한지속가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주류경제학의 한 분야인 환경경제학(biological economy)은 대체가능성, 약한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환경경제학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을 주장한다면, 생태경제학에서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도 실은 재생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재생가능한 에너지인 풍력 발전을 하기 위해 풍력발전소를 짓는 과정에서 또 많은 재생불가능한 자본과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그 어떤 것도 완벽히 재생가능하지 않다.


 

미래세대를 얼마나 아끼는가? 할인율 논쟁

대체가능성 여부와 함께 주류경제학에서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할인율이다. 생태경제의 중요 개념 중 하나로 지속가능성이 있다. 이는 UN의 환경과 발전에 관한 세계위원회(WECD: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에서 1987년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위원장이었던 노르에이의 여성 수상 브룬트란트(Brundtland)의 이름을 따서 브룬트란트 보고서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애로우는 이 보고서에 서술된 지속가능성을 구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든다. t 시점에서 현재세대의 효용과 할인율을 적용한 미래세대의 효용을 구하여 그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총효용을 구하는 수식이다. 효용은 소비함수를 통해서 구했다. 할인율이란 쉽게 말해 미래세대의 효용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이다. 할인율이 작을수록 현재세대의 효용만큼 미래세대의 효용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할인율이 클수록 미래세대의 효용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의 할인율은 100%이다. 따라서 이 수식을 계산함에 있어서 과연 미래세대를 얼마나 고려해야 할 것인가라는 할인율의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브룬트란트 보고서와 함께 생태경제학에서 또 하나 중요한 보고서로 꼽히는 것이 2007년에 나온 스턴보고서(Stern Review)이다. 2006년 영국 정부는 수석 경제학자 스턴에게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고서를 부탁했다. 보고서에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함께, 지금 당장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1%에 불과하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그 비용은 5~20%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보고서에서도 위의 수식을 계산하는데, 할인율을 1.5%로 잡았다. 이는 매우 낮은 수치로 미래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 줄여야 할 소비의 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할인율을 놓고 논쟁하고 있다. 학자마다 그 수치가 매우 달라서 1.5%에서 90%까지 이른다.

경제학자들이 논하는 효용함수는 너무 매끄럽다. 그 매끄럽게 잘 닦인 세계 속에서 경제학자들은 할인율 구하기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거의 자연의 한계에 직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식의 계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방우선의 원칙과 다중심적 접근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예방우선의 원칙이다. 어차피 우리는 환경문제가 가져올 정확한 피해와 비용을 측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선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다. 환경문제, 건강문제와 같이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일수록 이런 원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예방우선의 원칙과 반대되는 것이 사전증명의 원칙이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문제가 발생할 것임을 증명해야만 그것이 결정과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FTA에 적용되고 있는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인지를 증명해야만 그것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다중심적 접근이다. 이는 공유자원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하여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이 제시한 방법이다. 기후변화 같은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 세계가 힘을 모으는 것이다. 도쿄협약과 같은 것을 체결하고 모든 나라가 이를 준수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한 토론과 협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전 세계적 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두 손 놓고 앉아서 기다린다면 인류는 진짜 망한다. 개인, 가족, 학교, 마을, 도시, 국가, 세계로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층에서 저마다의 실천이 진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작은 단위일수록 실천이 쉽다. 그 실천에 의해서 상위단위가 기존의 정책을 바꿔나갈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를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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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0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6)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공공경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시장경제, 사회경제, 공공경제의 의미를 한 번 정리해보자. 이제까지 우리의 머리속에서 가장 일반적이었던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달성하며, 이기적 인간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를 전제로 한다. 사회경제는 협동을 통해 연대를 달성하며, 상호적 인간인 호모 리시프로컨(Homo-reciprocan)을 전제로 한다. 공공경제는 국가라는 권력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평등을 달성한다. 여기서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호모 퍼블리쿠스(Homo-publicus)를 전제로 한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공공성은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많이 쓰이지만 학계에서 제대로 정의된 바는 없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서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굵직한 의제로는 국민연금개악 저지, 의료 민영화 저지, 신자유주의 교육 반대, 한미FTA 반대 등이다. 각 의제에서 공공성은 모두 시민의 삶의 질이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시장에 맡기면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는 영역, 따라서 시장에 맡기면 안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가 맡아야 하는 영역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전히 애매하다.

영어로도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굳이 번역하자면 publicness나 publicity가 되겠지만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이기도 하며, 무엇인가 부족하다. 서구 문헌에서 우리의 공공성에 해당하는 용어들을 찾아보면 일반이익서비스(services of general interest), 공공의 가치(public value), 공공의 목적(public objectivity), 공익(public interests), 공공규범(public norm), 집단이익(collective interest) 등이 있다. 위의 용어들은 모두 사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 사적인 것을 넘어서 하나의 총체로 집계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면 공(公)과 사(私)의 구분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맹자나 공자 시대의 '공'은 국가, '사'는 주로 개인이나 가족을 의미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은 국가를, '사'는 시장을 의미한다. 나아가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사'는 시장에서의 자유, 결국 재산권이 된다. 그리고 '공'인 국가는 ‘사’인 재산권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공공성과 관련된 용어들은 매우 폭넓게 선함(goodness)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르겐센(Jorgensen)과 보즈만(Bozeman)이 230개 논문을 조사한 결과 공공성과 관련된 가치들은 크게 인간의 존엄성, 지속가능성, 시민참여, 개방성, 안전성, 타협, 진실, 견고함이 있었다. 이 가치들마다 또 세부적인 가치들이 매우 다양하게 포괄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공성이 추구하는 이런 가치들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다. 예컨대 중세시대에는 주요 도로변의 여인숙은 손님을 거부할 수 없었다. 사적 소유물이지만 공공성을 가졌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사적인 것과 대립되는 공공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는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공적인 영역이란 개방과 소통의 광장이라 표현했던 하버마스(Habermas)의 개념과 시민으로서 개인이 공동의 관심사를 다루는 곳이라 표현했던 아렌트(Arendt)의 개념이 적절하다. 최근에는 롤스(Rawls)와 센(Sen)의 정의론이 더해져서 공공이성(public reason)에 기초한 숙의민주주의에 의해 합의되는 것이 공공성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공공성이란 공동의 가치 혹은 공익이라는 목표가 있고, 공공이성이 공론의 장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결국 공공성은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규범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는 훌륭한 이론이 정의론이다. 한 사회가 어떤 정의론을 택하느냐에 따라 공공성의 내용은 달라진다. 공공경제는 시장실패의 상황에 정의론을 결합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정의론은 크게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자유주의(Liberalism), 공동체적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자유지상주의는 자연권적 자유지상주의(Natural-rights libertarianism)와 경험적 자유지상주의(Empirical libertarianism)으로 구분된다. 노직(Nozick)과 같은 자연권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사적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강탈하지 않았다면 부를 상속받거나 보유하거나 거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정의이다. 단, 부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부는 재분배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개입은 매우 제한된 상황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국가는 거래질서 및 재산권을 보호하고, 기본적인 공공재 공급에만 개입해야 한다.

하이예크(Hayek)나 프리드먼(Friedman)과 같은 경험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기구라 생각한다. 따라서 시장이 존재하는 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전체주의를 초래해서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생존권 보장 차원의 공공재 공급과 빈곤구제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진보주의로 번역되기도 한다. 자유주의는 공리주의와 롤스의 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자본주의가 효율적인 제도이지만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정부가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세부적으로 마샬(Marshall)과 에지워드(Edgeworth)가 발전시킨 평등주의적 공리주의와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평등적 공리주의는 사람들 간 소득의 한계효용이 균등하지 않다면 정부가 재분배에 나설 수 있다고 보았다. 모두의 한계효용이 균등할 때 전체의 효용도 최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 간에는 효용의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서수적 효용이론에 의해 폐기되었다.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정의를 찾아내는 일반원칙을 만들어 냈다. 첫 번째는 자유의 원칙으로 각각의 개인들이 타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적극적 기회의 평등 원칙이다. 같은 능력,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롤스는 이 원칙을 생산수단 소유의 평등으로까지 적용하였다. 세 번째는 차등의 원칙이다.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이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롤스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본재, 필수재는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롤스의 이런 주장은 사실 사회주의보다 급진적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잘 만나서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다면 이는 롤스의 관점에서는 정의롭지 못하다. 그럼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차등의 원칙에 따라 무조건 약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롤스는 차등의 원칙을 공평하게 적용하기 위해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태어나질 모르는 상태에서 정의 원칙을 합의하자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통해 개인적 이해를 떠난 정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동체적 자유주의자는 대표적으로 센(Sen)을 꼽을 수 있다. 센은 정의라는 개념은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서 논의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어느 사회에도 논리적인 상황만을 따져서 정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무지의 장막을 동원한 롤스의 정의를 비판했다. 정의란 공동체와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롤스의 생각처럼 모두에게 다 똑같은 기본재가 지급되는 것이 평등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능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과 장애인에게 필요한 기본재가 동일한가 혹은 장애인에게 기본재만 지급되면 그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분배를 결정하는 기본이다. 따라서 평등하기를 원한다면 생산수단을 공유하면 된다.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공황의 필연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정부는 항상 지배계급을 우대한다고 본다. 복지국가 역시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에 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정 정도 혜택을 분배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본다.

 

경제학의 가치는 오로지 효율

그런데 공공성이나 정의는 둘 다 경제학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치이다. 사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수없이 많지만, 경제학에서는 가치를 다루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효율성이다. 우리사회에서 경제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무가치는 굉장히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가치가 없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자연과학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효율성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특히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제학의 효율성은 파레토 효율을 뜻한다. 파레토 효율은 파레토 개선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파레토 개선은 누구 한 사람의 효용도 떨어지지 않은 채로 다른 한 사람의 효용이라도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아무도 현 상태에서 나빠지지 않으면서 누군가는 더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다면 파레토 개선이다. 그리고 더 이상 파레토 개선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이 파레토 효율이다.

이는 누구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파레토는 분배 상태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사회에 독재자가 1명 있고, 현재 독재자와 일반 국민 사이의 자원의 분배 상태가 9:1이라고 하자. 독재자 한사람이 9를 갖고 나머지 국민이 1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독재자의 몫만 증가해서 10이 되었다고 하자. 나머지 국민들의 몫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1을 유지했다. 이는 분명 파레토 개선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태인가?

파레토 효율은 상대성이 없다. 이는 경제학의 특징인데,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효용은 비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1을 얻었을 때의 효용과 일반국민에게 1을 돌려주었을 때의 효용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엄격하고 과학적인 정의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인간적인 정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는 파레토 효율만을 인정하며, 이는 완전경쟁시장에서 달성된다고 본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이다. 후생경제학의 제1명제는 시장경쟁균형은 파레토 효율적이라는 것이며, 제2명제는 어떠한 배분적 효율성도 시장경쟁균형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시장에 맡기면 파레토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파레토 효율은 정당한가?

이를 그림으로 살펴보자. 경제학에서 파레토 효율은 주어진 투입 요소로부터 최대의 생산물을 획득하는 생산의 효율성, 주어진 생산기술과 소비자의 기호를 감안하여 가장 최적의 생산물 조합을 선택하는 생산물 조합의 효율성, 소비자들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소비의 효율성을 모두 만족한다. 이렇게 세 가지 효율성이 모두 만족되는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에지워드 상자(Edgeworth Box)이다.

위 그림의 에지워드 상자는 승연과 다연 사이에 배분되는 옷과 음식을 나타낸다. 옷의 총생산량은 100이고, 음식의 총생산량은 200이다. 이 상자 안에서 결정되는 모든 점은 생산가능곡선과 무차별곡선이 만나는 점으로서 생산의 효율성과 생산물 조합의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한다. 그리고 상자를 가로지르는 굵은 선분 GH에서는 승연과 다연의 옷과 음식에 대한 한계대체율이 같아서 소비의 효율성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즉, 선분 GH 위의 점들은 모두 파레토 효율이다.

A점은 균등 분배점으로 승연과 다연이 각각 옷과 음식을 절반씩 나눠 갖는 경우이다. 하지만 선분 GH 위에 있지 않으므로 A점은 파레토 효율이 아니다. 승연에게 D점은 A점과 동일한 효용 R2를 준다. 하지만 다연에게는 D점의 효용 M4가 A점의 효용 M2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A점에서 D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파레토 개선이다. 다연에게 B점은 A점과 동일한 효용 M2를 준다. 하지만 승연에게 B점의 효용 R4는 A점의 효용 R2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A점에서 B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파레토 개선이다. 종합하면 회색의 볼록렌즈 모양의 안쪽에 있는 선분 BD위의 점은 A점보다 파레토 우월한 점들의 집합이다.

에지워드 박스를 통해서 정해진 점은 모두 파레토 효율을 만족하므로 경제학에서는 정의로운 점이다. 이렇듯 시장은 언제나 파레토 효율을 만족시킨다. 이것이 앞서 본 후생경제학 제1명제이다. 또한 재분배 정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 여기서의 함정은 초기 분배 상태가 공평한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레토 효율과 정의론

앞서 살펴본 네 가지 정의론을 에지워드 상자를 이용해서 비교해보자. 먼저 자유지상주의 중 노직이 주장한 자연권적 자유주의는 초기 분배점이 어떤 점이든지 상관없이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다른 점을 이동했다면 정의롭다. 예를 들어 초기 분배점이 C점이라면 선분 BD 중 어느 점으로 이동하더라도 최적의 분배상태가 된다. 정의로운 상태로 재분배는 필요하지 않다. 하이예크와 프리드먼이 주장한 경험적 자유주의의 경우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재분배를 인정하므로, 다연과 승연의 최적 생계수준이 각각 E점과 F점이라면 선분 EF 위의 점은 모두 최적 분배상태이다.

자유주의의 경우 기수적 효용이론을 선택해서 두 사람의 효용이 동일할 때 사회 전체의 효용이 최대가 된다고 판단한다면 A점이 바로 최대가 되는 점이다. 선분 BD 중 어느 점으로 이동하더라도 파레토 개선이 일어난다. 서수적 효용이론을 채택하는 경우 사람들 간의 ?은 비교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선분 GH 위의 모든 점이 파레토 효율을 만족한다. 롤스의 정의는 최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배분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초기 분배점이 다연이 불리한 상황일 때 다연의 효용이 증가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정의롭다. 승연의 효용이 줄어들더라도 정의롭다.

사회주의는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기 때문에 A점이 최적 분배상태가 될 것이다. 시장이 존재하는 시장 사회주의라면 A점에서 C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효용을 증가시키므로 이는 사회주의에서도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의 재분배는 롤스의 재분배보다 더 급진적일 것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7)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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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3.2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10년 동안 5대 재벌의 자산규모는 230조 원에서 620조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고 순이익은 4배 증가했다. 기업 일반으로 보아도 2000년에서 2010년까지 기업소득은 연평균 25.5%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5.7%에 불과했고, 수많은 집이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재벌을 필두로 기업은 나날이 살찌는데 왜 국민은 가난해질까?

분배 악화의 정점에 재벌이 있다. 일부 재벌은 관료와 검찰 및 사법부마저 장악해서 국민경제 전체를 '약탈적 공생관계'로 몰아넣었다. 이미 오래 전에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경지에 오른 재벌의 위기는 곧 시스템 위기를 불러오므로 약탈을 당하면서도 재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와 같이 재벌이 지배주주의 이익만 극대화한다면 사회의 양극화가 격심해지고 국가 전체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 경제개혁연대 등은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다)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tunnelling)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제, 이중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것은 분명 혁혁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이제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주주보다 훨씬 더 고통을 받는 노동자, 하청기업(공급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이해관계자이다.

주류경제학과 기업가들은 이익 극대화의 방정식이 복잡해지므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종업원지주제와 이윤공유가 경영참여와 결합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증거는 주주자본주의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프리먼의 공유자본주의론). 또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을 잇는 행동경제학은 이해관계자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롤즈의 정의론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현재 가장 손해를 보고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 해서 사회적으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주주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모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empowerment). 10%라는 미미한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건설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하며, 하청기업은 납품단가의 공동교섭권을 가져야 한다. 지역주민 역시 위원회의 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경영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도 강화해야 하는데, 특히 금융부문에서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가 절실하다.

둘째로는 이익공유의 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와 하청기업, 그리고 지역주민이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며 재벌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이윤공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주민과 기업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 기금은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서비스와 같은 친밀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지역특화산업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재벌의 비대화는 시스템 위기를 불러일으키므로 사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산분리, 2002년 수준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제한 등은 미숙한 3세 총수의 판단 오류로 빚어질 수 있는 시스템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범주의 정책을 모두 포괄하는 가칭 ‘기업집단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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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