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올해 선거는 좀 독특하다. 우선 정당들의 정책이 서로 맞서는 대결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유럽처럼 긴축이냐 아니냐 하는 방식의 대결도 아니고 미국처럼 증세냐 감세냐 하는 모양도 아니다. 모두다 복지이고 모두 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 경제 민주화냐 가짜 경제 민주화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다소 맥없는 논쟁만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난감하다. 국민들에게 각 정당과 후보들의 차별성을 비교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차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여부를 글로 비교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언론은 국민에게 익숙하고 단답형 방식으로 단순화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뽑아 정책비교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 제한제도 부활을 새누리당은 반대, 민주통합당은 찬성한다는 식으로 차별화한다.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 민주통합당은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한다는 식으로 구분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마치 출자총액 제한제도 부활여부가 되고 순환출자 금지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정말 그런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출자총액 제한, 상호 출자와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금산 분리 등은 기업 집단형태로 존재하는 재벌들로 하여금 건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무분별한 계열사 확대로 부실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재벌개혁 영역이다. 당연히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큰 맥락에서 볼 때 필요한 조치들이다. 재벌들이 대거 부실화됐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특히 중요했던 개혁과제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 과제가 여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으며 어쩌면 2012년 버전의 경제 민주화에서 중심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왜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시대의 요구로 부상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단순히 정치권에서 선거용 구호로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깊어진 양극화와 불평등 때문이다. 5년 전 대선에서는 대기업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고, 이명박 정부는 실제로 친 기업 정책을 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 스스로가 2009년부터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을 정책과제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벌의 자발성에 기대는 동반성장은 처음부터 실패를 예정한 것이었고, 이는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 정운찬 전 총리가 위원장 자리를 1년 만에 사퇴한 데서 증명된다.

물론 양극화와 불평등을 복지정책 확대를 통해서 완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2010년 무상급식을 매개로 급격히 확산된 국민의 보편적 복지 요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개혁하지 않은 채,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복지정책을 확대한다고 불평등이 제대로 해소될 수는 없고, 조만간 재원의 한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복지에서 경제 민주화로 국민들의 관심이 확장됐던 것이고 시장의 개혁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경제에서 시장의 지배자이자 독식자인 재벌에 대한 개혁 요구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시장의 곳곳에서 재벌 대기업의 횡포와 독식, 힘의 논리가 작동하면서 경제적 약자들의 몫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제기된 것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으로는 이러한 횡포와 독식이 오히려 강화되고 고착되기 때문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재벌을 규제하고 노동자와 중소상인, 소비자와 중소기업의 권리를 지켜주는 경제개혁을 실시하자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다. 국민들이 경제 민주화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선거 공간에서 경제 민주화나 언론에서 보도되는 경제 민주화는 나의 생활과는 꽤 멀리 떨어진 문제처럼 느껴진다. 국민 생활 한 가운데로 경제 민주화 논의를 다시 보내야 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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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됐다. 오죽했으면 3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만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과도한 반기업 정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골목상권 보호와 사회적 공헌활동을 강화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을까. 이틀 전인 1일에는 유통상인들이 전경련회관 앞에서 ‘전경련 해체 및 유통재벌 규제’를 요구하는 규탄대회를 했다.

흔히 재계를 대표한다는 전경련은 61년에 만들어졌으니 거의 재벌의 역사와 비슷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노사관계에 초점을 맞춘 한국경영자총협회나 공식적인 성격을 지닌 100년 역사의 상공인 조직인 대한상공회의소와 달리 전경련은 재벌 대기업들의 임의적 이익단체다.

또한 다른 단체들과 달리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는 전경련의 목표부터가 상당히 이데올로기적인 색채를 띤다. 거기에다 공식적으로는 제조·무역·금융·건설 등 전국적인 업종별 단체 67개와 우리나라 대표적 대기업 436개사를 회원으로 한다고 하지만, 주로는 재벌 대기업 집단의 이익 창구로 인식되고 있다. 재벌개혁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전경련이라는 재벌의 정치적 대변 집단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히 자연스럽다.

최근 동반성장위원장을 사퇴하면서 정운찬씨가 재벌해체 화두를 꺼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연초부터 시작해 올해 3개월 동안에만 공식적인 전경련 해체 주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번 있었다. 깃발을 올린 것은 묘하게도 차명진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그는 올해 1월9일 회삿돈을 빼돌린 명백한 범죄행위를 한 최태원 SK회장에 대해 전경련이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낸 것을 두고 “전경련이 검찰한테 구속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단다. 자기 지분 1%도 안 되는 회사 돈 500억원을 호주머니 돈처럼 썼으면 도둑질한 것”이라며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어 재벌해체 바통을 받은 사람은 박영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1월30일 “정부가 지난 4년간 재벌이 잘돼야 서민이 잘 산다는 낙수이론을 펴면서 재벌들이 하자는 대로 (관련법안을) 날치기까지 하더니 이제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재벌 딸들이 빵집운영에서 철수한다고 한다”며 “정말 대단한 정경유착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재벌들을 위한 로비 창구역할을 해 왔던 전경련의 해체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정운찬 위원장의 사퇴발언이 이어진 것이다. 그는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거나 발전적 해체의 수순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대기업이 산업화 시기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은 경제정의와 법을 무시하고 기업철학마저 휴지통에 버리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전경련은 과거 정경유착 시대의 보호막 역할을 한 독재정권의 대체물”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그동안 재벌들의 정경유착 통로이자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짙었던 전경련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산으로 보이는 것이 지금의 형국인 모양이다. 확실히 재벌개혁을 위해서나 미래의 발전적 기업문화를 위해서나 전경련이 이제 역사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냉정하게 보면 올해 초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삼성을 포함한 4대 그룹 회장이 모두 불참하는 등 최근 핵심 재벌들조차 전경련에 무게를 실어 주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전경련을 해체한다고 재벌개혁에 무슨 큰 돌파구가 열릴 까닭도 없다. 단지 전경련 해체를 계기로 새로운 기업관계, 기업과 국민경제의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일 뿐이다. 솔직히 재계도 전경련에 특별히 애정도 없으면서 붙들고 있는 이유가 재벌개혁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덧붙여 둘 것은, 최근 역사로만 보면 사실 전경련 비판의 원조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전경련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전경련이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로 오인받을 수 있는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제는 새로운 혁신의 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친기업을 자처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전경련 해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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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의 [잇:북]2012.04.04 10:06

2012 / 04 / 03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테마북]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201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 칼럼 - 정운찬의 동반성장이 실패한 이유

 

◆ 출총제, 2002년으로 부활시키자.

1.주말만 쉬고 매일 하나씩 계열사 생긴다.

2.주력기업의 지분출자 -계열사 확대의 기본 수단

3.삼성그룹의 출자관계는 아직도 전자 회로기판

4.부활하려면 2002년 버전으로 부활시켜라

 

◆ 칼럼 - 동네빵집까지 장악한 재벌가문, 어찌할 것인가

 

◆ 재벌 빵집철수와 선거 없는 권력교체

1. 재벌 자녀들 취미생활 접으면 서민생활 살아나나?

2. 재벌 경제력 집중이 핵심 문제다.

3. 재벌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 승수 효과

4. 3세 분할 승계 앞둔 경제력 집중 우려

5. 자율 대신 포괄적 규제가 필요하다.

 

◆ 칼럼 - 범죄 저지르고 자수하면 면책받는 재벌게임

 

◆ 재벌개혁 최후수단,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자

1. 유실될 위기에 몰린 재벌개혁 의제

2. 재벌규제법과 재벌개혁 시민연대, 계열분리 명령제

3. 계열분리 명령제란 무엇인가.

4. 계열분리 명령제의 ‘잠재적 규율효과’가 중요하다.

5.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체급을 올려주자.

 

◆ 칼럼 - 국민연금의 자본시장 투자를 생각한다.

 

◆ 재벌개혁과 재벌 규제법

1. 한국경제구조 변화를 향한 재벌체제 개혁

2. 미국과 유럽의 경험이 모두 필요하다.

3. 재벌 규제법에 대한 기존 논의

4. 독일 콘체른법이 모델이 될 수 있나.

5. 재벌 규제법의 성격과 내용

 

◆ 칼럼 - 미국 정치인들은 애플이 아니라 GM이 기특하다

 

◆ 제언: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제안한다.

1. 위험수위에 도달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

2. 경제력 집중이 과도하면 사회 권력이 된다.

3. 과도한 권력이 견제세력조차 없다.

4.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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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9.09.08 10:24

정운찬 총리지명, 무엇이 혼란스럽게 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인사개편에 이어 단행한 개각인사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지명하자 그 파장이 적지 않다. 한때 그를 대통령 후보 물망에까지 올렸던 민주당의 혼선이 역력하고, 이명박 정부를 1987년 이전의 독재정부로 회귀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퇴진운동까지 밀어붙였던 진보 쪽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 싶다.

어찌된 것인가. 원래 민주개혁세력(?)에 가까웠던 정운찬 교수의 변심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정책기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이거나 둘 다가 아닌데 우리 국민이 두 주인공에 대해 착각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인가.

혹자는 정운찬 내정자에게 “절대 속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원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잘라버리기도 한다. 혼란의 핵심이 정운찬의 변심이라면 늦었지만 해당 인물에 대한 시각교정을 하면 그 뿐이다. 우리 국민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보수적이지만 케인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정운찬 내정자가 기존 신자유주의 정책에 일부 궤도수정을 할 것이라는 일부 기대도 있지만, 현재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여전히 경제 구조적 위기 반경 안에 있는 현재의 여건은 개인의 재량 폭을 늘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지극히 협소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국민의 39.2퍼센트만이 정 내정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것 같다’고 응답한 데서 국민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이명박 정부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정책결정자들도 이미 ‘작은 정부, 큰 시장’ 논리를 잠시 유보하고 국가를 끌어들여 경제위기를 탈출하려고 분주한 상황에서 정 내정자의 ‘목소리’가 실린다고 해도 큰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MB정책의 변화라고 판단한다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정도의 변화인가. 야당이 주장했던 ‘국정기조의 전환’ 수준인가, 아니면 ‘립 서비스’ 수준인가. 정책이 변했다면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인가 하는 이슈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의 보폭이 이전보다 넓어진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정작 필요한 것은 정 내정자에 대한 ‘인물탐구’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정책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 지형의 변화, 특히 경제위기의 향배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점검해 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눈으로 본 집권기간

그렇다면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라는 3대 위기 속에서 정권유지가 불가능할 정도의 20~30퍼센트 지지율까지 추락하며,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려 공권력에 의존하는 길 외에 다른 수가 없을 것 같던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극적인(?) 국면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인가.

간단히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지난 집권기간 1년 반을 돌아보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칭 ‘잃어버린 10년’ 동안 사회 곳곳에서 보수의 기반이 와해되었다고 판단하고 ‘권력기반을 보수적으로 재구축’하는 작업을 다방면에 걸쳐 나름대로 전개했다. 이는 핵심 권력기반뿐 아니라 노사관계, 언론, 교육, 남북관계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으며 하다못해 NGO 영역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권력의 성격이 일정하게 교체되는 상황에서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에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7월 미디어법 강행처리로 1단계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들이 전통적인 자기 지지기반을 소홀히 한 것과 달리,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통적 부유층과 기업 기반을 안정화시키는 작업에 우선순위를 둔다. 보수적 권력기반 재구축과 전통적 지지기반 안정화를 담보한 후에 추진하려했던 일부 서민층 끌어안기 시도를 본격화하려던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뜻하지 않는 두 가지 사건에 직면해야 했다.

하나는 집권하자마자 밀어닥친 시민들의 ‘촛불항쟁’이었다.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학습 교훈은 ‘강공’이었고, 그 결과 1258명 기소라는 엄청난 공권력을 동원했고 급기야 미네르바 구속을 강행하며 공권력 의존도를 높여가게 된다.

또 하나는 촛불시위의 고비를 넘기자마자 본격화된 ‘경제위기’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경제위기 폭풍은 서민층을 일부라도 끌어안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기초를 잃어버리게 되었음은 물론, 전통적 부유층 지지기반 마저 상실시키고 국정 수행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는 위기였다. ‘경제위기’를 넘어 ‘정권위기’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747 공약’, ‘주가 3000’ 등의 공약들을 도저히 입에 담지도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오직 공권력에 의존하는 길 밖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런 판국에 남북관계를 더욱 보수적으로 밀어붙여야 그나마 이념적으로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묶어둘 수 있었다. 민주주의 위기와 서민경제 위기, 그리고 남북관계 위기는 그렇게 이명박 정부 앞에 닥친 것이다.

경기 회복 조짐을 위기 탈출의 기회로 삼으려는 이명박 정부

그런데 위기가 극점에 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연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바로 그 시점에서, 외형적인 경제지표들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경기회복을 지렛대로 한 국면 탈출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속 내용이야 어떻든 경기회복이 OECD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주식 가격도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는 가운데, 삼성, 현대와 같은 초 대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날아드는 국면이 전개된다. 이명박 정부가 일부 전통 보수 이데올로기 세력의 반대를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를 내걸며 여유를 찾기 시작한 지난 6월 시점이었다.

     [그림1] 각국 분기별 실질GDP성장률        [그림2] 주요 OECD 국가 주가 상승률
                                                                     (2008.8 말~2009.8 말)


“정치위기와 남북관계의 위기가 급격히 위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올해 들어 한국경제가 경기부양책과 환율여건 개선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보다 경기추락 속도가 완화되고, 심지어 조기 경기회복의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지렛대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새사연이 주장한 시점도 그 무렵이다. (새사연, “힘의 논리로 국민을 이긴 정부는 없다”, 2009.6.22)

이명박 정부는 곧이어 민감한 국민적 의제들인 ‘사교육대책과 심야 학원교습 금지’, ‘취업 후 등록금 대출 상환제’에 이어, 실속은 없지만 ‘서민 감세와 고소득층/대(大)법인 세금감면 축소’를 발표하며 민심 수습책을 이어나갔고 종국에는 정운찬 총리를 지명하기까지 했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 와중에 위기 탈출을 명분으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 토목 건설업자들을 만족시켰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부동산 규제완화를 통해 강남 부유층의 자산 가치 실현의 기회를 주고 현존 가치도 지탱해주었다. 미디어법 강행으로 보수언론자본의 요구도 채워주고, 주가 반등으로 일부 금융 투자자들의 손실도 보존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떡고물 수준’의 서민 정책이 큰 무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경기가 회복된다는 배경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추정된다.

문제는 민주당이나 일부 진보가 오직 “노대통령 서거 → 미디어법 강행 → 김대통령 서거”로 이어지는 정치적 이슈에만 매달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 이탈과 정치적 위기 확대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이다. 즉, 지난 약 3개월 동안 민주당과 진보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위기 가속화’라는 측면에 집중했던 반면, 이명박 정부는 ’경제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정치, 사회적 국면 반전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운찬 카드’는 바로 경제회복을 지렛대로 한 국면 반전의 연장선이었는데, 야당과 일부 진보는 정치위기 가속화라는 틀 안에 갇혀 ‘오버’하고 있다가 그 틀로 해석되지 않는 정운찬 총리 지명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정운찬 총리 지명으로 인한 야권 혼란의 배경이 아닐까.

위기탈출을 하기에는 현재의 경기회복 통로가 너무 좁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대목은 ‘경기회복에 대한 이후 전망’이자 외형적 경기회복을 넘는 ‘국민생활의 사실상 회복’ 여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은 문자 그대로 일시적인 ‘정치적 제스쳐’로 단명할 것이고 정운찬 내각의 수명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경제구조의 양 끝단에 있는 당사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에 대해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국정 지지율과 선거 등을 고려한 보수정권의 외연 넓히기 성격으로 본다”는 의견을 보였다(<한겨레신문> 2009.9.7). 또한 “민심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행보이지, 친시장적 기조가 흔들리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는 발언은 비록 주관적 기대가 섞였지만 냉정한 현실 인식일 수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에 대해 기존 정책에 ’변화가 있다’는 국민의 응답은 26.0퍼센트에 그친 반면, ’별 변화가 없다’는 응답이 61.4퍼센트로 나온 최근의 여론조사 역시 국민들의 생각이 기업인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의 2009년 9월 7일자 여론조사 결과)

지금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거품의 시대다. 우선 이명박 정부 국면 전환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경제회복 지표들 속에 상당한 거품이 존재한다.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과 일부 초 대기업의 약진, 그리고 외국 금융자본의 주식 시장 유입이라고 하는 경기회복 견인차들 속에 모두 거품이 내재하고 있다.

정부도 정치적 국면전환을 위한 경제적 지탱점이 얼마나 허약한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2분기 경기지표의 약발을 유지시키기 위해 4분기 예산 가운데 10~12조 원을 3분기에 앞당겨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9월 말부터 총 3조 6000억 원을 쏟아 부어 4대강 사업 발주를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는 12개 공구 중 9개가 낙동강 공구였다. <국토해양부 발표>) 이미 140조 원 이상의 금융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들을 독려해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4대강 사업으로 복지 예산이 축소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자 수자원공사를 끌어들여 4대강 사업 분담을 시도하고 있다. 고용악화 회복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자 올해 연말까지로 되어 있는 희망근로를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보면 정부가 경기회복이라는 탄력지점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가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같은 ‘끌어당기기’식의 경기회복 정책이 이어질 수 있을까. 정부는 민간투자가 조만간 활성화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어 수출물량이 다시 늘어날 때까지 버틸 생각이지만 세계 경제여건을 돌아볼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리한 경기회복의 거품이 꺼지면 ‘중도실용, 친서민’ 이미지의 거품도 꺼질 것이며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와 정운찬 총리 내정자 안에 내재된 거품도 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게 되어 있다. 민주당과 일부 진보가 우리 사회상황을 부분적으로만 보고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주관적 틀에 갇혀 정운찬 총리 지명에 당황하는 모습을 반복하는 한 이명박 정부의 거품이 사라진다고 해서 민심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2개월을 순전히 정치세력간의 대결이라고 놓고 보면 야당과 진보에게 아쉬운 대목이 있다. 기업형 수퍼 입점 규제를 치고 나온 상인들의 움직임은 ‘중도실용, 친 서민’ 행보의 약점을 가장 적절히 활용한 사례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실패작인 비정규직 기간연장 실패 역시 고용정책에 대한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야당과 진보는 이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할 수 없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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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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