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06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⑦>『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착한 경제학은 가능한가?-

 

추천도서 7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이정전, 2012, 토네이도)

대한민국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수요와 공급의 X 모양의 그래프. 우리가 공부하는 경제 교과서의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그래프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나타내지 못한다. 이제 우리가 따져야 할 좌표는 수요와 공급을 넘어 선 관계와 미래, 그리고 환경과 행복이다.

이런 사실을 경제학의 변방에서 홀로 개혁의 깃발을 흔드는 독립투사가 아닌, 서울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가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제 대한민국 경제학의 큰 방향이 바뀌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대 해 보며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를 추천한다.

 

곧 출간될 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신간 <협동의 경제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경제학이 싫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학자들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이와는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요즘은 사위나 며느리를 고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을 한다. 단 전공 학점이 나쁜 경우는 괜찮을 수도 있으므로 성적증명서를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경제학자들은 어쩌다가 저런 평을 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수능 선택과목으로 경제학을 선택했던 인연으로 어찌어찌 지금까지 경제학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다.  

고등학교 때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 한 점을 이루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그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칠판에 그려진 X자 모양의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가격이 오를 때도, 생산량이 줄어들 때도 결국은 한 점으로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몰랐던 진짜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그리고 사실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래프를 따르자면 실업이 발생하는 건 순전히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 때문이며,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킬 뿐이었다. 또한 이기적 인간과 효율적 시장을 가정하는 탓에, 현실에서는 불법인 성 매매, 장기 매매, 마약 거래 등을 허용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적절하다는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학문이란 것이 결국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때, 현실의 많은 부분은 생략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진짜 답답한 것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와 그것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관한 논의가 경제학 수업 시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주류경제학의 논리들이 무너지는 한편, 경제학에 철학과 윤리학을 접목시키려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대학 밖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소모임에서야 접할 수 있다. 강단에서 그래프와 수식을 넘어서, 경제학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경제학이 발전해온 역사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해주는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가 반가웠던 첫 번째 이유는 경제학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 교수님이 직접 ‘실은 경제학에 이런 문제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니 뭔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저자 이정전 교수는 이전에도『시장은 정의로운가』, 『경제학을 리콜하라』 등의 저서를 통해 꾸준히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저자는 서문에서 “경제학 교수들이 현실에 대해 강의실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내용들을” 담았다고 밝히며, 우선 경제학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시장과 현실의 시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다. 경제학에서 시장은 어떤 재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도구이다. 이 때 그 사람이 재화를 필요로 하는 정도는 그가 지불하는 금액, 즉 가격으로 표현된다. 결국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만 이야기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의 수요는 시장에서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은 시장의 근원적 한계이며, 모든 것을 시장의 방식으로 굴러가게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자는 경제학에 대한 이런 비판적 관점을 정부, 부동산, 환경 등으로 확대시키며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과 경제학 이론을 접목해서 설명한다. 특히 경제학이 비용편익분석을 통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실은 이 분석 방식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사업의 효과를 계산할 때, 간척사업 후 생산되는 쌀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쌀을 국제가격으로 계산하느냐, 국내가격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3배 정도 차이가 나며 쌀을 단순 재화가 아니라 안보재로 상정할 경우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식의 경제학적 손익 계산이 아닌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저자는 정치는 “사람들이 공익을 생각하면서 공적인 마음으로 행동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며, “평등의 원칙”을 으뜸으로 삼는 영역으로 시장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으로 ‘행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행복에 관한 경제학 연구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연구들에 의하면 행복의 가장 높은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인은 “가정의 화목, 좋은 인간관계,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소득 수준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인데, 평균적으로 소득 수준이 연간 1만 5000달러를 넘어가고 나면 소득증가가 행복지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행복의 역설’이라 한다. 우리나라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으니 이런 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또한 소득이 주는 만족감은 소득의 절대액수보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우리사회가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바는 더 높은 성장률, 더 많은 소득 수준이 아니다. 가정, 인간관계, 일을 통해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각종 자생적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타인과의 소득 수준 비교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구성원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는 <국부론>외에 또 다른 저서가 있다. <도덕감정론>이다. 이 책은 인간의 도덕심, 인간의 심리를 주제로 하는 책이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였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이 철저하게 인간의 일상행태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미래의 경제학의 아담 스미스의 정신을 온전히 살린 경제학이요, 철학이 앞에서 이끌고 심리학이 뒤에서 밀어주는 경제학이다.”고 말한다.  

이기심, 효율성, 경쟁,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경제학이 이제는 좀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행동경제학에서 진행된 여러 실험들에 의하면 경제학 전공자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이기적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었던 지난 30여 년 동안은 일반인들도 경제학 전공자만큼이나 경제학적 가치관들을 주입받았다. 이기심, 효율, 경쟁, 성장은 현실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기에는 좋은 도구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뢰를 좁히고, 공동체와 미래세대까지 포괄하는 경제학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그런 문제제기들이 국내에서도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저자 이정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 환경 경제 학회이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프레시안등에 행복경제학 및 세계 경제 위기, 부동산 정책, 환경정책 등을 망라한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활발한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 정진기 언론문화상 경제경영 도서 대상을 수상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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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4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에서 정치는 매우 중요하다. 다소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시장실패’라는 추상적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1950년대 초에 저 유명한 케네스 애로는 ‘일반균형의 존재’를 증명했다. 즉 이 세상 모든 시장을 동시에 균형상태로 만드는 가격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으로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균형이론은 동시에 시장실패론의 출발점이었다. 이 균형의 존재조건인 완전경쟁, 완전정보 등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아름다운 세계도 그저 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뮤얼슨이나 애로 같은 학자들은 시장에서 아예 공급될 수 없는 공공재 이론이나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할 수는 있지만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의료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 국가 개입의 미시경제학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그 반대 쪽에서는 시카고학파 중심의 경제학자들이 이런 국가 개입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데 몰두했다. 부캐넌의 ‘정부실패론’은 관료나 정치가 역시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부에 모든 걸 맡기면 안 된다는 주장이며, ‘코즈 정리’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도 시장실패(외부성)를 민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용되었다(코즈 본인은 떨떠름해 했지만). 나아가서 이런 주장은 현실에서 실천됐는데 1980년대 이래의 민영화, 규제완화, 개방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착한 경제학은 이런 시장만능론을 근본부터 부정한다. 인간은 경제학이 가정하는 대로 이기적이지 않을 뿐더러 즉각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계산해낼 계산능력도 없으며, 시장 또한 대단히 느리고 곧잘 고장이 나는 기계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시장실패론조차도 인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로 시작하고, 경제학에는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가 제일 먼저 나온다. 시장실패론은 우선 시장이 우리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되 그게 실패로 판명나는 경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대단히 강력해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 틀에서 얘기를 시작해야 했다. 예컨대 왜 의료는 시장에서 실패하는지, 농업을 시장에 맡기면 안 되는지부터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논의는 정교해 보이지만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경제논리와 실증 싸움에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시장이 인간관계를 대변한 건 지난 300년뿐이다.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는 수많은 방법 중 시장이 제일 먼저 나와야 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왜 사랑이 먼저 나오면 안 되는가? 물론 시장은 가격이라는 변수만으로 인간관계를 빈약하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원거리의 익명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진화한 신판 교류방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른 관계를 무시해도 좋다는 경제학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경제학이 자랑하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나 우애와 같은 다른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근거도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건 모두 합의하는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예컨대 이제 우리는 최소 수준의 의료나 교육, 심지어 식량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시장의 균형가격을 치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치료나 교육을 못받거나 굶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어떤 가치를 우리는 흔히 ‘공공의 가치’(public value), 또는 ‘공공성’(publicity)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공공성의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롤즈가 ‘기본재’라고 부른 것, 그리고 센의 ‘능력’이 그런 기준의 예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정하자면 꽤나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즉 공공성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공이성(public reason)을 사용해서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 또는 그런 걸 원하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무엇인지에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바로 정치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합의 이후에 그걸 공급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즉 태초에 있어야 할 것은 시장이 아니라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가 최우선’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그런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 즉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다뤄야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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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1 / 24 김수현/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 >『시민의 불복종』

-법 보다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구애-

추천도서 -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강승영 옮김), 이레, 1999

국민이 되기 전에 인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국민과 괴리된 국가, 정부에 시민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사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더 나은 민주국가를 바라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법안을 만들거나, 다수가 뽑은 정부라는 미명 하에 국민의 이익과 상관없는 옳지 않은 정책을 추진하는 행태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넷 매체의 발전 때문인지 아니면 정부나 국회의 문제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요 몇 년 사이 이런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럴 때면 결국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인데 정부인데 왜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혹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처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이런 고민에 대해 150년전 죽은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란 글을 통해 시민불복종이란 답을 내놓았다. 원제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인 비교적 짧은 이 글은 소로우가 죽은 다음 “시민의 불복종”이란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는 제국주의자들과 대농장 소유주들이 요구하는 영토확장을 위한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고, 흑인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미국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했는데, 결국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다행히 하루 만에 친척의 대납으로 풀려나지만,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이와 같은 경험 그리고 국가권력에 대한 성찰은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하는 “시민의 불복종”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수의 불의에 저항하라

본문에서 소로우는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할 때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수를 설득해 법을 개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결론은 저항하며 그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는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고 말하며, 비난받을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그는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며, 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부당한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는 비록 인두세 납부 거부가 당시의 법을 어길지라도 양심을 따르는 자유로운 시민을 인정하는 미국의 헌법, 혹은 그 이상의 양심, 정의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실 단순하다. 짧은 글 속에서 그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양심, 정의에 대한 존경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귀한 인간으로서 이런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정부, 국가를 위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라

이와 함께 소로우는 자신이 택한 불복종의 실천에 대해 정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달리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자신이 순응할 수 있는, 그래서 인두세도 기꺼이 낼 수 있는 정의로운 정부가 되길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개인에 대한 존중을 위해 국가가 진보한 것처럼 국가의 권력과 권위가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주는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 정부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시민들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나은 국가,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처방책을 찾기만을 기다리지말고, 자신이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 반대를 외치며 인두세 거부를 택한 것처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존경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가 아닌 소수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라고 하며,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소수일지라도 다수가 될 때까지 잠자코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거스르는 정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그릇된 행위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다수인가가 아닌 누가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한민국, 시민 불복종은 유효한가?

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 우리나라의 함석헌 등 많은 사상가들이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찬사를 보낸 것은 그의 사상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국가나 정부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불의에 저항하고 양심과 정의를 따라 행동하는 개인이 있어야 한다는 소로우의 생각은 그의 사후 150년 동안 민주주의의 진보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떨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 내리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정부는, 법은 양심적이고 정의로운가?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는가?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이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잘 따르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우리들은 2013년 대한민국에 “시민의 불복종”이 가지는 의미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소로우의 글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150년 전에 죽은 소로우의 생각이 현실에 완전히 부합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았던 그의 생각이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을, 내가 해야 하는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저자 소개

1817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신비주의자, 초절주의자, 자연철학자’로 묘사한 소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에 대한 선호, 사회와 정부에 대한 개인의 저항 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 강연에 이르기까지 시간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 데 할애하며 보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월든』(1854)은 친구이자 멘토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소유한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지은 오두막집에서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홀로 생활하며 보낸 경험을 토대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고 자급자족적인 삶에 대한 내면 성찰을 담은 에세이이다. ‘자발적 고립’이라는 형식을 통해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과의 투쟁을 담은 『월든』은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20여 권이 넘는 다른 저서, 논문, 에세이 등과 함께 생태학과 환경사의 방법론을 제시한 저작으로서, 20세기 환경운동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부당한 시민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한 에세이 『시민 불복종』(1849)은 1846년 7월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투옥을 당한 경험을 생생히 그리면서 노예 해방과 전쟁 반대의 신념을 밝힌 역작이다. 20세기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다 1862년 콩코드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소풍』(1863), 『메인 숲』(1864)이 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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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9.06정태인/새사연 원장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약간의 경제학 지식과 현실 경제 흐름에 대한 ‘감’, 그리고 시계열 통계만 볼 줄 알아도 금년 성장률이 3% 미만에 머물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사연은 작년 말에 EU가 그럭저럭 위기를 헤쳐나갈 경우 한국 경제는 금년 2% 중반대 성장을 이룰 것이고, 더 나쁘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과 정부, 그리고 재벌 연구소들 모두 3% 후반대의 성장을 장담했다. 6개월이 지나자 EU 상황을 핑계로 3% 정도로 성장률을 끌어내리더니 최근엔 재벌 연구소들이 2%도 어렵다고 징징댄다. 문제는 이어지는 얘기다. 그러므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등 경제개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 후보도 숟가락을 내민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주장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고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김영삼의 ‘세계화’)으로 외환위기를 맞자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개방과 경제자유화를 주장했다. 당시에는 ‘왕초 각설이’ IMF의 요구사항이 그랬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치자.
 
참여정부 초기 경제성장률이 5%에 머무르자 재벌과 조중동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규제완화를 해야 투자를 늘릴 거라고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때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랬고 지금도 각설이 타령은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흥청망청이고 오바마는 고전 중이다.
 
굳이 김빠진 옛 드라마의 ‘다시 보기’를 누른 건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어날 일이 그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15년 넘게 양극화가 심해지자 ‘성공신화’에 취했던 국민들이 깨어나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는 끼어들기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이슈는 경제위기의 해법인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후보로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
 
아마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최근의 성과에,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선거가 아니고 지금은 60∼70년대가 아니다. 단언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위의 재벌 연구소의 주장을 따를 것이다. 위기 때문에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나아가 그런 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과 조중동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이며, 보수적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동맹세력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지금 코 앞에 닥친 위기는 구체제의 방식으론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현재 국민이 요구하는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협동조합(사회경제)이야말로 위기 탈출의 묘책이다. 지금 세 정책을 실현하려는 시민 세력이 뭉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의 미적거림에 탄식하고 안철수의 모호함에 불안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낙선운동, 투표 격려, 그리고 야당과의 야권 단일화를 해 왔다. 이제 사회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뚜렷한 요구가 있는 만큼 더 정확한 정책 목록, 정책을 실현한 내각의 구성 원칙, 그 내각과 시민의 통합 가버넌스를 내세워야 한다.
 
2008년에는 정권을 내주고 나서야 석 달 넘게 광장으로 나왔지만 지금 정권을 만들기 위해 나서면 훨씬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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