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우리가 설명하는 금융시스템은 서로의 영역이 구분되고 살균처리까지 된, 그래서 재미없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은행은 엄밀한 의미의 진정한 은행이 돼야 한다. 예금으로 받은 돈을 안전하게 단기로 투자하는 데 있어 더 재미없고 지루한 곳이 돼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명해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경제위기 이후 은행시스템 개혁방향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고수익 추구라는 목적 아래 예금자의 돈으로 위험한 투자를 일삼았던 금융시스템을 엄격히 규제하고, 은행 본연의 자금 중개기능을 복원했을 때의 은행 모습이 혁신적(?)인 방법으로 투자를 감행하던 때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예시를 주고 있다.

그런데 어쩌랴. 은행시스템을 미처 개혁하기도 전에 문제는 계속 터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4개 주요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부동산과 엮인 저축은행의 부실한 대출, 그리고 부실한 경영자들이 위험을 보지 않고 오로지 높은 수익성만을 추구하면서 발생한 숱한 사례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 예금자들과 후순위채권 매입자들은 대량 예금인출 사태를 포함해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최근 정부가 사금융의 과도한 이자요구나 무리한 채권추심을 규제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저축은행 사태가 재발하면서 초점이 사금융과 제2 금융권으로 모아져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금융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은행이고, 은행을 축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다.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규정에 따라 재벌과 같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9%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전에는 4%였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완화한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 영토에서 재벌이 진입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성역이 바로 은행산업이다.

그러면 재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으므로 건전하게 발전했는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재벌 대신 외국 금융자본이 밀고 들어와 터를 잡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시중은행은 민영화 과정이 지연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하면 외국인 지분율이 100%인 씨티은행과 SC은행은 물론이고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지주 등이 모두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고 있어 우리나라 은행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은행의 지분을 쥐고 있는 글로벌 금융자본이 누구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고, ‘시장의 요구’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남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금융자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선진 경영기법도 아니고 건전한 자금중개기능 정착도 아니다. 오직 높은 수익이다. 국내 은행을 접수한 외국 금융자본 역시 철저히 수익논리에 따라 영업활동을 하고 은행을 경영해 나갔다.

그 결과 우리나라 7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외환은행·씨티은행·SC은행)은 2000년대 이후 각 은행별로 조 단위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면서 승승장구했다. 이 정도 규모의 이익은 제조업 기준으로 상위 10대 대기업 규모가 돼야 거둘 수 있는 성적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10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그 수익은 상당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벌어들인 것임이 2008년 금융위기에서 밝혀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은행이 다시 한국경제 위기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을 대거 동원해 대출을 늘린 결과 예대율(대출/예금)이 한때 140%를 상회할 정도로 위험해졌고, 단기외화 차입 규모도 급격히 팽창함에 따라 외환 조달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정부의 달러 지원과 자본확충펀드 조성 등 사실상 구제금융으로 다행히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자, 은행은 다시 수익추구에 집중한다. 그 결과 지난해 또 한 번 수익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게 됐던 것이다. 같은 시점에 가계대출도 개인부문 금융부채를 기준으로 보면 1천조원이 넘는다. 금융의 역할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주식회사 은행의 사적이익 극대화와 공적기능은 제대로 조화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공적 역할을 위해 사적이익에 대한 상당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한 기능 규제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때문에 일정하게 소유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 시점에서 글로벌 메가뱅크 시나리오와 같은 위기 이전의 금융 패러다임은 더 이상 통용되기가 쉽지 않게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은행의 공적기능 회복과 산업 밀착형 서비스에 대한 재정립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산업 재구성에 대해 전진적인 개혁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재벌개혁과 함께 은행개혁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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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09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 용어 해설

가계 순저축률이란?

저축은 소비에서 지출을 제한 부분이고, 순저축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에서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말한다. 가계 순저축률은 가계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소득 가운데 소비하고 남은 금액의 비율로 계산한다.

 

▶ 문제 현상

최고의 저축률에서 최저의 저축률로

저축을 제일 잘하던 우리 국민이 저축을 제일 안 하는 국민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국민의 저축률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높았고, 이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으로 사용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저축은 대폭 줄어들었다.

신용카드 대란이 시작되던 2002년 이미 저축률은 0.4%로 사실상 저축 없는 국민이 되었던 경험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금융위기로 위험을 느낀 전 세계 국민들이 저축을 늘리는 가운데 우리 국민들도 잠시 저축을 늘렸지만, 소득이 늘지 않자 다시 저축률이 떨어져서 2011년 결국 기준 2.7%로 주저 앉았다. 이 수치는 OECD 주요 국가 가운데에서도 두드러지게 낮고 모기지 대출 부실로 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보다도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의 저축률 급감은 OECD국가들 가운데에서 유래가 없는 폭락 수준이다.

 

▶ 문제 진단 및 해법

소득을 늘이기 위해 임금을 체계적으로 상승시켜야 한다.

우리 국민들 저축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소득정체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확대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 소득이 정체했고 저축여력은 줄었다. 저축은 고사하고 부채를 늘리면서 소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저축이 급감하는 것과 반비례해서 부채가 급증했던 것이다.

결국 해법은 가계의 소득을 늘려서 저축 여력을 확보하는 한편, 부채도 줄여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소득을 늘려나갈 것인가. 지금까지 국민들의 소득이 늘지 않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국민경제가 생산한 부가 주로 기업 쪽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에서 기업으로, 99%에서 1%로 부의 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올려야 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을 대폭 줄이고 없애야 하며, 최저임금을 평균 임금의 50%수준으로 끌어올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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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높이는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을 띄우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 대기업 계열의 미소금융 창구를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바 있고, 지난달 26일에는 법적 근거가 불확실한데도 ‘햇살론’이라는 이른바 서민금융 대출상품을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신용등급 7등급 이하를 대상으로 한 금리 10% 중후반 대의 ‘희망홀씨’도 출범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러한 각종 ‘서민금융’ 정책들에 대해 정부는 초기의 혼선을 딛고 정상화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예컨대, 한정된 재원과 까다로운 심사조건 때문에 수혜자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비판(7월까지 누적 인원 약 4천명에 불과)이 불거졌던 미소금융의 경우 최근 대출자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저신용자를 위한 금융상품을 발표하고, 경기회복의 혜택을 아래로까지 전달하겠다는 데 대해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 물론 진보 진영에서는 정부의 이런 정책들이 ‘서민 중심’ 이미지 창출을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보고, 시장근본주의자들은 반대로 ‘우익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 대출 일색인가?

자,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왜 서민금융 정책들은 하나같이 대출상품 일색인가? 정부는 위에서 언급한 정책들이 이른바 한국판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대명사들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이는 ‘소액금융=대출’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국내에 소액대출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라민 은행은 1976년 설립되어 지역공동체의 자활에 큰 성과를 보인 바 있었는데, 이 은행의 핵심적 사업방식이 바로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우리말로 ‘무담보 소액대출’이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으로 소액대출 제도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으나, 다른 나라의 경우 수십 년의 경험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자활을 돕기 위한 각종 장치가 동시에 구상되지 않는 한, 그리고 시혜적 차원의 기부금 재원에만 의존하는 한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소액대출은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에 연대 보증인을 내세우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 그라민 은행은 공동체의 연대노력을 요구 - 이로 인해 대출자가 소득 증대에 성공하지 못해 주변사람들까지 연체자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무담보 소액대출의 본 고장, 방글라데시에서도 연체자로 몰린 연대보증인의 보복 살인 행위와 같은 라는 경악스런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대출’이 아니라 ‘저축’이다.

빈자들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 온 많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이제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딧’이 아니라 ‘소액저축, 마이크로세이빙(micro-savings)’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액저축은 저소득자에게 제공되는 소액의 저축계좌를 말한다. 저소득자가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면 그만큼의 액수를 정부가 적립시켜 준다. (서울시의 ‘희망플러스 통장’ 사업이 바로 이것이다.)
‘대출’이 아니라 ‘저축’이 저소득자 금융정책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데에는 무엇보다 그 수혜자들의 소비행태 변화와 관련이 깊다. 소액저축 정책을 시행한 많은 국가에서 수혜자들의 소비가 매우 안정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똑같은 소비라 하더라도 대출자들의 소비와 저축자들의 그것은 질적으로 다른 작동방식을 갖고 있다. 대출자들은 ‘미래의 소득’을 미리 당겨쓰는 것이지만 저축자들은 ‘과거의 소득’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축자들은 미래에 행할 소비를 위해 현재의 저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소액저축 제도가 계층 간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원리가 부채에 의존해 소비 거품을 확장시켜 온 신자유주의 금융과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갖는다는 데 있다. 대출을 해 주면서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이 무슨 혜택을 주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상은 그 이상의 이익을 회수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산거품을 키워 왔던 것이다. 현재 저신용자로 분류되는 신용등급 하위의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소비자 신용’이라는 거대한 거짓말

금융계는 ‘신용’의 개념은 시장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자산/부채와 소득을 숫자로 지수화시켜 놓은 ‘소비자 금융기법’, 즉 신용점수에 근거해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업이 그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고 때때로 어떤 이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장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 소비자의 경우에는 이들이 줄곧 가정하는 ‘완전한 시장’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결과는 바로 착취로 나타난다. 시장의 선택은 종종 환상이며 때때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많은 가계, 특히 저소득자의 부채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며 부채에 대한 비용도 더욱 증가하고 있다. 부채가 증가하는 만큼 ‘신용점수’를 사용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증가한다.
정 부가 발표한 갖가지 서민금융 대출상품들 역시 ‘신용점수’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구조 속에 있을 뿐이다. 저소득자들은 신용점수가 평가한, 딱 그만큼의 아주 미미한 대출금을 받아 당장의 부족한 소비여력을 충당할 뿐이다. 무담보 소액대출은 저소득자들에게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어떤 밑천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일부 성공한 빈국의 사례가 없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많은 연구들은 대출금은 새로운 경제활동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소비 평탄화에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증명한다. 즉, 대출, 또는 신용은 자신을 돕는 길이 아니라 금융기관들이 파놓은 ‘부채의 늪’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필자주>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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