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정태인/새사연 원장

 

“그래도 아직 볼로냐는 ‘행복한 섬’이죠.” 마우리조 체베니니(Maurizio Cevenini)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州) 의원의 말이다. 2010년 여름, 볼로냐(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수도)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다. 협동조합 이론의 대가 스테파노 자마니(Stefano Zamagni·볼로냐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예 이탈리아의 위기를 부정했고, 설령 그렇다 해도 협동조합이 ‘완충경제’(buffer economy)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년여 뒤인 지난주에 볼로냐를 다시 방문했다. 그 사이 유럽의 재정위기가 본격화했고, 이탈리아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더구나 금년 5월에는 강도 5.8의 지진까지 이 지역을 덮쳤다. 설상가상의 볼로냐, 여전히 ‘행복한 섬’일까?
 
자마니 교수가 틀렸다. 최근 나온 통계를 확인해보면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에밀리아 로마냐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5%가량 감소했다. 롬바르디, 피데몬트 등 이탈리아의 내로라하는 부자 동네와 함께 가장 많은 타격을 입었다. 과거 유럽 전체에서 가장 낮은 3%대의 실업률도 2010년 5.78%로 높아졌다. 이 역시 증가율로 볼 때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당연한 현상이다. 전체 생산의 50%가량을 수출하며(‘수출만이 살 길’인 한국에 필적한다) 더구나 그 중 70% 이상이 유럽행이고,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상징되는 고가의 상품도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유럽 침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긴축정책(정말 바보 같은 정책이다)이 교육재정의 삭감을 노리자 볼로냐 시내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아이들부터 ‘CGIL(이탈리아 좌파계열 노동조합 총연맹)’의 어깨띠를 두른 노인까지 데모에 나섰다. 더구나 이 지역은 한 기업당 평균 5∼6명을 고용하는 중소기업 네트워크로 이뤄진 경제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붕괴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놀랄 만큼 평온했고 자마니 교수는 여전히 자신에 차 있었으며 데모는 축제 분위기였다. 자마니 교수에 따르면 예의 ‘완충경제’는 훌륭히 작동하고 있다. 이 지역에선 대기업에 속하는 협동조합들은 좀처럼 해고를 하지 않는다. 협동조합 대부분이 속해 있는 레가는 단위 협동조합이 파산하거나 어려워질 때 ‘조합기금’(coopfond·이탈리아에서는 단위 협동조합 순이익의 3%를 레가와 같은 연합조직에 적립한다)을 사용해서 실업자를 다른 협동조합에 취직시켜주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준다. 또한 협동조합들은 고용을 축소하기보다 전체 임금을 삭감해서 일자리를 나눈다. 이 지역에서는 협동조합과 일반 기업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중소기업 네트워크의 힘도 ‘지식과 위험의 공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어마어마한 외부 충격도 이 네트워크가 고르게 흡수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네트워크의 변형 가능성이다. 2000년대 들어서 각 산업지구마다 눈에 띄게 ‘중견기업’(200인에서 300인을 고용하는 기업) 또는 ‘핵심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공동 브랜드를 만들며, 해외 쇼윈도를 만드는 등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수평적 네트워크의 핵이 생긴 것이다. 특히 레치오 에밀리아의 메카트로닉스, 사수올로의 세라믹 타일 산업지구 등 국제 경쟁이 강한 곳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혹시 위기를 겪으면서 이 핵심 기업을 정점으로 수직통합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건 아닐까?
 
어쨌든 소득감소율이나 실업증가율이 이탈리아 내 최고 수준이라 해도 여전히 가장 높은 1인당 소득과 가장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힘은 신뢰와 협동의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경쟁력 확보의 비결이 동시에 위기 타개의 비결이기도 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일까? 우리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일방적 수직통합 네트워크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역전환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자마니 교수가 말한다. “한국은 시장경제에서 기적을 이뤘듯이 협동조합경제에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화답한다. “우리 시민들의 희망과 열정이 단기간에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낙관적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치밀하게 해야 할까? 나는 대선후보들이 쏟아낸 수많은 말들 속에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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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1 / 19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세계 석학들의 기고 전문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린 “긴축이 경제 성장을 촉진시킬까?(Does Austerity Promote Economic Growth?)” 라는 제목의 글을 요약 소개한다. 로버트 쉴러(Robert J. Shiller)는 예일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이며,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와 함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을 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정부의 재정위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재정을 펴야 한다는 주장과 경기침체기의 긴축재정은 소비와 투자를 줄여서 오히려 독이 될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아래 글은 이러한 논쟁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그 시작은 '꿀벌의 우화'이다. 이 이야기는 사치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찼지만 일자리가 넘쳐나고 풍요로웠던 가상의 꿀벌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간의 행동을 반성한 꿀벌들이 절약하고 검소하며 도덕적인 생활을 하게 되자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어 결국 망했다는 내용이다. 유효수요의 창출이 중요하다는 케인즈의 주장과도 유사하다.

최근에는 IMF의 구하르도(Guajardo) 등의 학자들이 지난 30년 간 17개 국가를 관찰한 결과 정부의 긴축정책이 소비를 줄이고 경제를 침체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긴축정쟁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주장도 소개된다. 하버드대학교의 알레시나(Alesina) 교수는 정부 적자가 감축된 후에 경제가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라메이(Ramey) 교수 역시 긴축정책이 경기침체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잘못된 인과관계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긴축정책과 경기침체가 시기적으로 상관성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경기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이지 긴축정책을 해서 경기침체가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일까? 긴축정책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을까? 쉴러 교수는 과학처럼 실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완벽한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의 긴축정책이 가져온 결과는 실망스러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긴축이 경제 성장을 촉진시킬까?(Does Austerity Promote Economic Growth?)

2012년 1월 18일
로버트 쉴러(Robert J. Shiller)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네덜란드 출생의 영국 철학자이자 풍자 작가인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꿀벌의 우화(Fable of the Bees)’ 라고도 불리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Private Vices, Publick Benefits)’이라는 책에서, 번영하던 꿀벌 사회가 갑자기 모든 과잉 지출과 과잉 소비를 멈추고 절약의 미덕을 실천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있다.

땅값과 집값이 떨어지고

눈부신 저택들은 그 담을
테베에서처럼 놀면서 쌓은 것인데
이제는 셋집으로 내놓게 생겼다.
...
집 짓는 일거리가 다 사라지고
기술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
남아있는 놈들은 검소해져서
어떻게 쓰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와 씨름한다.

이런 상황은 금융위기 이후 긴축정책을 도입한 많은 선진국들의 상황과 매우 비슷해보인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정부의 긴축정책과 개인의 소비 감소는 세계 경제의 침체를 심화시키는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긴축정책에 관해서 맨더빌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그의 글 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 하버드대학교의 경제학자 알베르토 알레시나(lberto Alesina)는 정부의 적자 감축 노력(지출 축소와 세금 인상)이 항상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정리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 말했다. 정부의 적자가 급격히 감소한 후에 경제가 크게 성장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으며, 아마도 긴축정책은 경기 회복의 도화선이 되어 경제의 확실성을 높여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맨더빌이 제기했던 주장이 실제로 통계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정부 적자 감축으로 인한 결과는 절대로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긴축정책이 경제 성장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인과관계가 뒤바뀌는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의 경제 전망에서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가 상승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세금 인상과 정부 지출 축소는 과열된 수요를 식히는 방안이 된다. 만약 정부가 부분적으로 경기 과열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면, 긴축정책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적자는 긴축정책이 아니라 경제 성장에 대한 주식 시장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자본소득세 수입이 늘어나서 해결될 수도 있다. 정부 적자를 바라보는 방식이나 긴축정책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 봐야 한다. 

최근 IMF의 자이메 구하르도(Jaime Guajardo), 다니엘 리(Daniel Leigh), 안드레아 페스카토리(Andrea Pescatori)는 지난 30년 간 17개 정부의 긴축정책을 연구했다. 그들의 접근법은 이전의 연구자들과 다른데, 공공부채에 주목하기보다는 정부의 의도나 관료들의 실제 발언에 주목했다. 그들은 예산 결정 연설문을 읽어보고, 경기 안정화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심지어 정부 당국자의 뉴스 인터뷰도 보았다. 그들은 정부가 세금 인상과 지출 감축을 시도한 경우만을 긴축정책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경기과열과 같이 단기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긴축정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긴축정책이 소비를 줄이고 경제를 약화시킨다는 확실한 경향을 찾아냈다. 이 결과가 맞다면 오늘날의 정치가들에게는 확실한 경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발레리 라메이(Valerie Ramey)는 이를 비판한다. 라메이의 주장에 의하면 구하르도 등의 주장은 인과관계가 뒤바뀐 것일 수 있다. 즉, 경제가 이미 부채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긴축정책을 썼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 정부가 긴축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라메이의 비판에 대해 구하르도 등은 긴축정책을 시행할 당시에 시장이 인식하고 있는 정부 부채의 심각성을 고려하려고 시도했고,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라메이가 옳을 수도 있다. 정부의 지출 감축이나 세금 인상은 경제 상황이 악화된 후에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긴축정책을 판단하는 문제에 있어서 경제학자들은 완벽히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없다. 우울증 환자의 항우울제 복용에 관한 실험의 경우 비교대상이 되는 통제그룹과 실험그룹으로 나누어 여러차례 실험을 반복한다. 하지만 국가부채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도 없지는 않다. 사람들이 긴축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니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구하르도 등의 분석 결과에 의하면 정부가 긴축정책을 선택하는 경우는 대체로 이미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제학자들이 완벽하게 해명할 수 있는 답을 얻으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이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의 긴축정책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 글 앞부분에 삽입된 시 '투덜대는 꿀벌'의 번역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꿀벌의 우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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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1 / 04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전망기획(2) 2012년 세계 경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성장 동력을 상실한 선진국 경제
2.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
3. 유럽에 찾아온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4. 2012년의 주요 경제 리스크
5. 미국과 유럽발 경제 위기의 국내 전염에 대비해야

[본문]
1. 성장 동력을 상실한 선진국 경제

올해 세계경제 전망이 우울하다. [그림1]은 주요 국가 및 지역의 2008년 이후 경기선행지수를 나타낸 것이다. OECD 국가들은 2010년 2월 102.98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100.1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선행지수는 실물경제에 비해 6개월 정도 선행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2010년 3사분기부터 OECD 국가들의 실물경제는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전망 또한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경기선행지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하며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지수가 1분기 정도 선행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사분기부터는 유럽 재정위기가 더욱 확산되면서 경기선행지수 뿐만 아니라 수출, 소매, 생산 등 실물지표와 소비자와 기업의 체감지표 등이 유럽을 중심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림2]에서 보이듯이 수출과 수입을 포함한 세계 무역량도 2010년 5월을 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지표를 보면 수출과 수입은 전년동월대비 각각 5.1%, 3.2% 증가에 그쳤다. 따라서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어 지난 해 유럽재정위기의 여파로 가속화 된 긴축적 정책기조가 계속된다면, 올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표1]은 IMF와 UN이 제시한 2012년 주요 국가 및 지역별 세계경제 전망이다. IMF는 9월 전망에서 6월보다 0.5%p 하락한 4%를, UN은 11월 전망에서 6월보다 1%p 하락한 2.6%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통제되고, 주요 은행의 파산과 새로운 신용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유동성위기를 방지하도록 적절한 정책수단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기본(baseline)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림3]에서 보이듯이 유럽

차원의 정책 대응이 실패하고, 유로존에서 무질서한 파산과 디폴트가 이어질 것이라 가정하는 부정적(pessimistic)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0.5%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미국은 -0.8%, 유로지역은 -2%의 경제성장을 보여 2009년에 비견되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OECD가 지난 11월 발표한 경제 전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표2]에서 보이듯이 OECD는 2012년 세계경제가 3.4%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전망치에 비해 1.2%p 하향 조정된 수치이다. OECD 국가들의 성장률은 올해 1.9%에서 내년에는 1.6%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였다. 특히 유로지역 성장률은 올해 1.6%에서 내년에는 0.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더군다나 이 전망치 또한 유로지역의 “무질서한 디폴트, 급격한 신용붕괴, 체계적 은행파산, 그리고 과도한 재정긴축을 피하기 위해 정책당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스페인(0.3%)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경제에 빠진 PIGS 국가들은 금융위기와 긴축정책 등으로 내년까지 5년 연속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 확실하다.

2.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진국경제는 경기침체 또는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채’가 만들어 낸 자산시장 버블이 전 세계적으로 붕괴되면서 일반적인 경기침체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국적인 부채주도형 자산시장의 버블이 붕괴되어 발생하는 경기침체를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시장 버블 붕괴에 따른 장기 경기침체다.

부채 주도의 자산시장 버블이 터질 때, 가계와 기업, 그리고 금융회사의 대차대조표 또한 망가지기 마련이다. 경제주체들은 금융건전성과 신용등급을 회복하기 위해  저축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한다. 이 과정에서 거시경제의 총수요는 줄어든다. 경기침체에 따른 지출 축소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이에 대응한다. 그러나 유럽처럼 가계 및 금융회사의 위기가 정부의 재정위기로 전환될 경우 긴축정책은 총수요 부족을 더욱 악화시킨다. 긴축정책은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부채상환 여력을 뜻하는 GDP 대비 정부부채의 비율을 악화시켜 더욱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림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부동산가격은 2006년까지 대략 2.3~2.4배 상승하였다. 비단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IGS 국가들 또한 미국과 거의 유사한 부동산가격 패턴을 보였다. 다만 유럽은 2008년 9월 리먼 사태까지 버블의 붕괴 시점이 지연되었을 뿐이다. 유럽에서 미국처럼 부동산 버블이 심각했던 국가는 스페인과 아일랜드, 그리고 이탈리아다.

버블 붕괴의 근원지는 미국이었지만 경기침체는 미국보다 유럽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유럽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재정위기, 그리고 유로화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점이 동시에 표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전 미국경제가 버블로 호황을 유지했던 것처럼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 편입에 따른 저금리와 부동산 버블을 경험하였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했고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였다. 유로존에 편입된 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함에 따라 금리와 환율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주권을 포기하게 된다. 기준금리의 통제권은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의 전통을 따르는 유럽 중앙은행(ECB)이 쥐게 되었다. 각국 정부는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고, 각국의 상업은행은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에서 아주 저렴하게 유로화를 빌릴 수 있었다. 유로화와 유럽 중앙은행의 상징적 안정성은 오히려 부채를 통한 자산시장 버블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미국과 똑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림5]에서 보는 것처럼, 유럽통합과 유로화 출범 과정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던 국가들의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한 덕분에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독일의 국채를 기준으로 국채수익률이 점차 수렴하기 때문이다. 1993년에 스프레드가 18%가 넘었던 그리스의 국채수익률은 유로존에 편입된 2001년에는 1% 아래로 떨어졌다. 외환리스크가 사라지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PIIGS 국채를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 높은 수익률을 좇아 대량으로 매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4년에만 해도 그리스 정부 부채의 85%를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했지만, 2007년에는 이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75% 이상을 해외 금융기관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환리스크는 해소되었지만 채권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리스크는 증가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구제금융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증가시켰고, 이는 잠재된 신용리스크를 일시에 표출시켰다.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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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1 / 03 정태인/새사연 원장

전망기획① 2012년 양대 선거와 한국사회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 침체"로.
2. "87년 체제"의 위기와 "거대한 전환"
3. "정권교체"에서 "시대교체"로.

[본문]
1.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침체로”

2012년 우리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하기 전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역사의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위지는 이런 역사의식을 “역사로서의 현재”라는 말에 담았다.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이다. 1990년대 말 미국정부는 IT 버블이 붕괴하자 재빨리 부동산 버블로 바꿔치기 했다. 그 수단은 금융규제완화와 금리 인하였고 그 결과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초래된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이다. 2009년 전 세계적 금융완화정책과 재정확대정책으로 각국의 성장률이 회복기미를 보이자 G20의 세계적 차원의 개혁도, 또 오바마의 내부 금융개혁도 흐지부지 끝났다.

2010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로 제2차 위기가 촉발되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같은 통화를 쓰면서도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에 대한 보조금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사태이다. 비유하자면 우리 정부가 강원도에 대한 지역교부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서울이 강원도로부터 막대한 교역 이익(경상흑자)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현재의 유럽 위기는 내부의 위기이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재정통합을 하는 대신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유로화 표시 국채를 발행해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역내 강대국의 은행들이 인수하도록 했다. 재정이 해야 할 일을 금융으로 해결한 것이다. 미국이 소비와 재정을 재무성 증권으로 조달하고, 유럽이 재정을 역내 금융으로 바꿔치기 한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을 만능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대규모 적자로 인해 재정확대정책도 쓸 수 없고 이미 0%에 이른 금리 때문에 금융완화정책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바야흐로 선진국 전체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바야흐로 “대침체”(Great Recession, 대공황과 비교하기 위해 학자들이 2008년 위기에 붙인 말)는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의 위기도 동시에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새로운 국제통화와 국제청산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데, 달러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하고, G20는 IMF 기금을 조금 늘리는 정도의 밖에 합의하지 못했다. 위기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야 할지에 관한 새로운 정책체계도 나오지 않았다. 1945년 이후의 복지국가를 뒷받침한 케인즈이론이 1930년대에 출간됐고, 1980년대를 풍미한 통화주의이론이 1960년대에 정립된 것에 비하면 위기 이후의 사회의 이론은 오리무중이다. 학문의 제국주의를 일삼으며 오만을 떨던 경제학은 이미 붕괴했다. 중장기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환율법”(환율을 조작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나라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게 한 보호무역법안)과 제3차 양적 완화(달러의 증발)로 또 한편의 환율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주기를 갖는 패권 주기도 최저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구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점에 올랐던 미국의 단일 패권은 쇠퇴 기미가 역력한데 이를 대체할 패권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헤게모니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세계는 중미간의 위태로운 힘겨루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한 복판에 있다. 이렇게 10년 주기, 60년 주기, 그리고 패권 주기가 모두 최저점에 이른 상태를 나는 “3중의 위기”라고 불렀다(경향신문, 2009. 1.12).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석유의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오일피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으며(전문가들은 2015년경으로 예측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역시 다음 세대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에너지/석유 위기가 겹칠 가능성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이 이런 문제를 곧 해결하리라고 믿기에 너무나 큰 위기들이 첩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기가 다른 위기, 즉 시간대(time span)가 다른 위기가 중첩되고 있다는 것은 해결의 주체와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로서의 현재”는 2012년 총-대선이라는 구체적인 한국 상황(알뛰세 표현으로 말하자면 conjuncture)에서 중첩적인 과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위기의 각 영역에 고유한 해결 방향을 찾아내고, 2012년 한국이라는 정세 안에서 그 방향을 당장 실현할 하나의 가치와 비전으로 제시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위기 해결 방향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작업은 고도의 추상성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2. “87년 체제”의 위기와 “거대한 전환”

세계경제 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도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과 이에 긴밀히 묶여 있는 가계부채가 바로 그것이다. 2009년 세계적 경기자극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의 수출대기업이었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버블 붕괴의 초침을 잠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는 90%를 넘나드는 대외의존도의 한국경제를 바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자동차의 내수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수출 증가율 역시 반토막 날 지경에 이르렀다. 1100원대에서 방어해 온 환율마저 무너진다면(현재는 유럽위기의 여파로 달러가 강해지고 있지만) 실물침체가 금융경색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마저 있다. 내부에서 파들거리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도 1980년대 후반 미국의 S&L 위기처럼, 제2금융권으로부터 시작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진행되어 온 양극화는 사회 전체에 절망, 즉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융자유화와 가계신용의 확대,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부동산/증권 투기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지표들을 가파른 비율로 상승시켰다. 주거, 교육/보육, 일자리, 노후, 건강 걱정이라는 이른바 ‘5대 불안’은 그 직접적 결과이다.

한국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와 외환위기, 뒤이어 IMF의 강요와 내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진행된 김대중 정부의 노동유연화,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과 이명박 정부의 비준으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6월 항쟁”으로 시작된 “87년 체제”는 군부독재를 종식시켰을 뿐,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모델이 자리를 잡지 못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부”는 자기 고유의 사회경제모델을 실행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모델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클린튼-블레어정부가 그랬듯이 적나라한 신자유주의에 약간의 훈기를 불어 넣었을 뿐 시장만능으로 치닫는 시대를 역전시키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탄했듯이 민주정부는 새로운 시대의 장자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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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테마북]2012년 경제, 유럽을 알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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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는글

◆ 유럽 국채시장은 왜 붕괴하고 있는가(여경훈)
1.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유로 퍼즐
2.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3.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 유럽위기: 긴축은 위기해법이 될 수 없다(여경훈)
1. 긴축, 그 위대한(?) 반전
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꿈의 좌절(김병권)
1. 그리스 디폴트를 넘어 유로 존 존립이 의문
2.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에 대한 꿈
3. 유럽 연방과 유로 지역 해체 사이에서

◆ 유럽위기와 동아시아, 한국. (정태인)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분열의 벼랑 끝에 몰린 유럽, 세계경제를 흔들다.>>

 “그리스는 지난해 최대 공기업 그리스 전력과 피레우스 항구, 엠포리키 은행 등 팔릴만한 정부 재산은 모조리 매물로 내놨다. 국유자산을 매각해 2015년까지 500억 유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1월 이동통신 주파수를 3억 800만 유로에 매각한 것을 제외하곤 투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유서 깊은 고대국가 그리스가 팔리고 있다면서 국가 채무의 늪에 빠진 그리스가 중요 국유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을 소개한 언론의 보도 일부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국가들의 생활현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세계가 2008~2012년까지 중앙은행 자금을 풀고 정부 빚까지 내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반짝 회복 효과에 그쳤을 뿐,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좀처럼 성장활력을 찾지 못하고 장기 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누적시켰던 구조적 문제, 즉,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난제 때문이다.

1%를 위한 경제가 한계에 이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단기 수익추구, 노동 유연화는 다수 노동자와 국민들의 소득을 억제하면서 기업과 금융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의 1%는 소득이 비약적으로 팽창했고 99%의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었다. 각 국가 국민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구조화된 것이다. 그러나 99%의 국민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고서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팔수도 없고 경제가 발전할 수 도 없다. 그것이 경제다. 빼앗기는 자가 죽어 나가면 빼앗는 자도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2007년까지 경제가 발전한 것은 빚을 얻어서 소비를 늘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를 주도했던 미국 시민은 매년 자신이 번 소득의 110%를 소비했다.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고 소득을 모두 써버렸을 뿐 아니라, 추가로 빚을 얻어 소비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적자 호황’국면이 그렇게 1990~2000년대를 풍미하면서 미국인들이 ‘대 안정기’라고 부르는 호시절을 누렸던 것이다. 특히 구입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과 자동차 등을 빚을 얻어서 구매했고 그 결과가 2008년 금융위기다. 이제 금융위기로 부채를 더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늘어난 빚을 줄이는 국면으로 반전되었다. 번 소득의 최소한을 빚 갚는 곳에 쓰고 나머지를 모조리 소비해도 이제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근본적이 이유다.

그러면 적자호황 뒤에 이어진 부채 축소의 긴 침체기를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간단하다. 이제부터라도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로 되돌리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다. 돈을 쓰고 먹고살 수 있는 여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1%가 과거처럼 탐욕스럽게 이익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1%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99%에게 재분배 해주어야 한다. 사적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이 일을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에 전 세계 청년들과 시민들이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2011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물인 바로 ‘시위자(Protesters)'이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자, 스페인의 분노하는자. 미국의 월가시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는 99%(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걸고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2012년 세계경제의 희망은 99%운동이 얼마나 더 사회지형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역내 불균형이 유로 통화권의 진짜 위기

국내적인 소득 불평등에 이어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국제적인 불균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이다. 미국은 미국 시민을 고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했고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 산업만 비대화시켰다. 그 결과 돈은 중국과 월가로 집중되었다. 중국으로 흘러간 돈은 다시 미국 국채와 교환되면서 미국으로 되돌아 왔고 미국 시민들은 그것을 빚으로 얻어서 또 소비를 했다. 그럴수록 중국에는 미국 국채로 표시된 외환 보유고가 쌓여갔고, 반대로 미국은 국가부채와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국제적인 요인이 이것이다.

한편,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형에 비견되는 국제적 불균형이 바로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유럽의 위기 속에도 있었다. 유럽의 위기는 흔히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다. 정부의 방만한 살림운영과 ‘놀고 먹은’ 남유럽 시민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평가는 사태를 전혀 잘못 파악한 것이다. 복지지출이라면 남유럽 국가 보다는 북유럽 국가가 더 많다. 재정적자 수자만 놓고 보면 일본이 국내총생산 대비 220%로 세계 최고다. 미국도 100%에 근접했다.

유럽 국가채무위기는 유로 통화권 내부의 경상수지 흑자 국가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와 적자국가인 남유럽 국가 사이의 무역 불균형에 있는 것이다. 유로 통화와 단일시장으로 이들 사이의 경쟁력과 무역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가 커졌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 등에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빌려왔다. 그럴수록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채무는 점점 늘어갔다. 그러나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정책, 금리정책, 환율정책을 사용하여 경상수지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다. 이것이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위기로, 그리고 북유럽 은행들의 채권부실 위기로 표현된 것이다. 유로 통화권의 불균형이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고 유로 존을 붕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중국만이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인가?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세계경제는 동력을 잃고 또 다시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2012년은 유럽의 붕괴위기가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파급되면서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세 개의 주요 축에 의해 움직여왔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유럽의 유로 통화동맹과 그리고 세계의 생산기자 중국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금융은 이제 미래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고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2010년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로 통화동맹도 점점 더 근원적인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 유로 존의 해체냐 유럽 합중국을 향한 재정통합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유럽 시민의식(European citizen)이라는 연대의식도 갖춰지지 않은 채 자유 시장 논리에 의해 유럽의 통합을 기대했던 희망은 무너졌다. 현재로서는 유럽 주변국을 향한 거대한 마샬플랜 정도가 아니라면 재정통합은 불가능하다. 유로 존의 해체가 임박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세계경제 지탱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규모 10%를 차지하면서 2위 경제권으로 부상한 중국이 세계경제의 마지막 지탱축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수출을 매개로 글로벌 무역불균형에 편승하여 10%대의 안정적인 고성장을 구가해왔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호황의 덕을 보면서 그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대외적 요인에 의지해 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 위기가 현재화되자 2011년 말부터 중국 수출은 10%대로 줄었고 2012년은 한자리 수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표현대로 ‘중국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연 중국은 2012년에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2012년 세계경제 향방은 일단 유럽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세계경제를 알려면 유럽을 먼저 파악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긴박해지는 유럽위기 국면을 해부하고자 시사 주간지 <시사 IN>에 4차례에 걸쳐 유럽위기를 연재하고 유럽은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비관적임을 예시한 바가 있다. 올해 유럽의 향방을 판단하는 준거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테마북으로 엮어 보았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2년 1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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