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개혁해야 한국경제가 바뀐다.①

2011 / 06 / 14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대기업을 개혁해야 한국경제가 바뀐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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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극화의 핵심 진원지 대기업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커다란 암적 병리 현상이 양극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고용 양극화, 소득 양극화, 자산 양극화로부터 출발하여 교육의 대물림과 양극화를 포함하는 온갖 사회적 현상의 양극화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민 생활 향상이나 사회통합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복지 담론이 부상하고 공정사회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도 모두 양극화 치유가 얼마나 절박해졌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극화의 원인을 추적해가다 보면 그 정점에는 극소수의 재벌그룹(대기업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5이상인 230조 원의 자산규모로 비대해진 삼성을 필두로 하여 현대차, SK, LG, 롯데 등 주요 그룹사들은 매년 국민소득 증가율을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하면서 성장을 해왔고 규모를 키워왔다. 특히 해고와 임금삭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대기업들의 실적은 지난해의 경우 60%가 넘는 당기 순이익 증가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그러나 가계의 소득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대기업 영업 이익 증가율의 10%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대기업 집단들은 수출경쟁력과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순수하게 자체 기술력과 경쟁력만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반이 되는 국내시장에서 높은 경제력 집중도를 매개로 독과점적 시장지배를 확대해 왔던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들의 국내적 독과점 구조는 이들에게 글로벌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국내 사회 양극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 독과점이 도를 넘어서다.

구체적으로 사회 양극화 고리의 시작점의 하나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구조를 짚어보자. 지난 6월 9일 동반성장위원회 정운찬 위원장도 "대기업-중소기업간 양극화는 임계점에 다다랐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계층 간의 잠재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정과 통합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진다. 상호협력과 상생관계를 재정립해 동반성장의 기틀을 마련해야“한다고 역설할 정도로 대-중소기업 상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납품가격을 볼모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가 대기업의 절반에 불과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고 이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진입한 결과 중소기업 영업활동 위축으로 인한 후과가 더해진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 시간이 지나도 거의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없는 것이 한국 기업경영현실이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지난 5월 9일 “우리나라 중견 기업은 0.2%에 불과할 정도로 거의 전멸했다. 왜냐하면 대기업에서 약탈행위를 하는 것을 정부가 방조했기 때문”이라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던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는 곧바로 해당 기업 종사자들의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2009년 기준 전체 일자리의 87.7%가 중소기업에 몰려있는 우리 경제현실에서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2010년 기준 대기업에 비해 74.4%밖에 되지 않는다. 이 조차도 5인 이상 기업의 상용 근로자 기준이므로 실제로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소득 양극화가 왜 대기업에서 유래되는지를 잘 알려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 납품단가 인하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은 이들의 ‘수요 독점 현상’에서 발생한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특정 대기업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있고 이들 대기업이 아니면 달리 납품 처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납품단가 인하를 감내 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확대시키면서 사회 양극화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주요 산업에서의 엄청난 경제력 집중으로 이른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었고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이 구매하는 소비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에게는 납품 단가를 인하하여 수익률을 올리고 소비시장에서는 독과점 가격을 설정하여 이윤을 취하는 대기업 중심의 시장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가전, 휴대폰 등 주요 내구재 소비품 뿐 아니라 대형 마트와 정유, 이동통신 시장, 나아가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업(MRO)시장에 이르기까지 주요 대기업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산업, 업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대기업의 서민업종 싹쓸이‘ 논란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의 영업 이익률 고공행진과 갈수록 확장되어가고 있는 글로벌화의 배경에는 이처럼 압도적인 국내적 시장 독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독점이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대기업 집단, 또는 재벌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각 업종별로 전문화되고 특화된 다양한 대기업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진입을 규제하고 있는 은행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산업은 흔히들 말하는 5대, 10대 기업집단(재벌)의 계열사들이 전방위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그 영향력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3. 대기업이 지배하는 일상생활

그렇다면 이들 대기업 집단들이 실제로 우리 생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어느 정도의 독과점적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현행법으로도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하나의 준거 틀로 시장지배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공정거래법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1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100분의 50이상
2. 3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75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 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를 제외한다.

아침에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는 경우 자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를 포함하여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2/3이상은 현대 기아차이다. 2010년 기준으로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은 5.8%에 불과하고,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수 판매 대수 가운데 현대 기아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75%를 넘기 때문이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50%이상 점유율을 훨씬 넘어서 거의 완전한 독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 기아차는 신용카드 대란 이후인 2004년부터 경제위기로 휘청했던 2008년 잠시를 제외하면 시장 점유율이나 판매대수가 모두 증가하면서 최근 기록적인 수익률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현대 기아차가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노후차량 교체 시 취득세와 등록세를 70% 깎아줄 때인 2009년에도 자동차 판매 가격을 인상하는 등 주력 차종인 소나타와 아반떼, 산타페 가격을 최근 6년 동안 40~60%가량 인상했다는 점이다. 반면 최근 현대차 그룹이 하청기업의 납품가격을 부당하게 인하하려 했다고 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독점기업의 이윤이 어떻게 늘어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현대 기아차가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자동차 소비자 가격을 올려도 그대로 현대 기아차를 구매하는 것 외에 크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 반면 우리보다 더 막강한 자동차 왕국인 일본의 경우,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인 도요타는 일본 국내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48%로 현대 기아차 보다 훨씬 낮다. 혼다와 닛산이 합쳐서 3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등 우리보다 훨씬 자동차 시장구조가 분할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리 눈에 띄는 주유소와 해당 주유소에 석유를 공급하는 정유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어떨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유사가 독점적으로 석유를 공급하는 주유소 점유비율은 SK, GS, 현대오일뱅크, S-Oil을 합치면 95%를 넘고 있다. 주요 3사의 점유율도 가볍게 75%를 넘고 있으니 이른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

이들 정유사들은 모두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임은 물론이다. 정유시장은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국내 시장규모가 10조원 이상인 3대 업종이고 국민들의 매월 지출 부담이 가장 큰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더욱이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하고 있는 와중에, 정유사들이 석유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정부 압력 때문에 겨우 석유가격 100원을 한시적으로 인하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결국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효과가 사라져 버린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 가정에 거의 하나 이상씩 사용하는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주요 국내 가전제품 시장이 90%이상 LG와 삼성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오래된 이야기고, 이들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한창 확대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10가구 가운데 8가구가 보유하고 있고 삼성과 LG가 뒤늦게 뛰어들었던 김치냉장고 조차도, 처음으로 김치냉장고를 개발한 위니아 만도를 제치고 삼성이 시장 점유율 36%이상을 장악하면서 1위에 올라선 것이 이미 2008년이었다.

최근 스마트폰 수요증가로 시장이 급변동하고 있는 휴대폰 시장은 어떨까. 지난해 아이폰 열풍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8%정도 뺏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판매 대수 기준으로 70%를 넘고 있고 삼성 1개 기업이 50%를 넘고 있다. 휴대폰 제조사의 시장 점유율만이 문제가 아니다.

3개 독과점 기업에 의해 완전히 분할되어 있는 이동통신 시장 역시 4대 기업집단 안에 들어가는 SK텔레콤이 절반을 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석유가격과 함께 소비지출 부담이 상당히 큰 통신비에 담합과 독과점 가격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역시 정부 압력으로 매월 1000원의 통신비 인하 의향을 밝혔지만 국민들의 빈축을 샀던 것이 정유사의 그것을 완전히 재연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니면서도 몫 돈이 들어가는 내구성 소비재인 자동차나 가전, 휴대폰, 그리고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출해야만 하는 석유나 통신 등의 시장에는 예외 없이 삼성, 현대차, LG, SK 그룹과 같은 유력 대기업 집단들이 사실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서 독점가격을 설정하거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 국내 시장을 장악해버린 주요 제조업종과 일부 서비스 업종을 넘어서 지금도 새로운 영역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장 유력한 분야가 보건, 교육, 미디어와 같이 아직 공적 규제가 남아 있는 거대 서비스 분야일 것이다. 이미 삼성은 삼성 의료원을 기반으로 의료와 보건 규제완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며 대학 재단 인수를 한 바가 있고 중앙일보를 기반으로 미디어 업종의 시장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전형적인 중소업체들의 영역까지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진출하는 것이 한국의 대기업 집단이다. 기업형 수퍼(SSM)의 골목상권 잠식에 이어 최근 중소 영세 상인들의 영역이었던 ‘소모성자재구매 대행 사업(MRO)'에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면서 중소상공인들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MRO사업이란 제조업에서 공구나 베어링, 그리고 기업에서 각종 사무용품이나 복사지 같은 소모성 자재 구매를 대행해주는 영역으로 전통적으로 중소상인들이 맡았던 영역이었다. 전국 소상공인단체연합회에 따르면 LG서브원은 지난 2010년 매출액이 2조 5천억 원으로 1년 만에 29%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삼성 아이마켓 역시 지난해 매출이 1조 5천억 원이었고 한 해 동안 30% 규모가 커진 바 있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커피 전문점과 같은 중소형 도소매 음식업 시장까지 대기업이 장악할 것을 예견하는 것이 허황된 것만은 결코 아니다. 조만간에 우리 국민들의 일상은 주요 대기업집단의 제품 아니면 중국산으로 완전히 양분될 개연성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 집단은 글로벌하게 세계에 진출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4. 독과점 규제를 미룰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물론 딱 한군데 대기업을 벗어나서 살고 있는 생활현장이 있다. 바로 일터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을 모두 합쳐도 경제활동을 하는 2500만 우리 국민의 1/10이 훨씬 모자라는 일자리만이 있을 뿐이고 주요 대기업 집단으로 좁히면 다시 1/20 미만의 일자리만이 제공될 뿐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반대로 이들이 책임지고 있는 고용은 약 10%정도 줄어들었다는 것이 중소기업 중앙회의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일자리만큼은 대기업 집단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것이 오늘의 취업 현실이다.

대기업 집단은 고용 자체의 절대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용을 늘려도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투입되는 교육 훈련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력직 채용 비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 교수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중소기업에서 훈련 받은 인재를 스카우트하는데 몰두하고 있어 신입사원은 갈 곳이 없다”며 비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다시금 왜 양극화에 대기업이 책임이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이른바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 정책 등 대기업위주의 정책을 폈고 이들의 경제력 집중을 촉진시켰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와 국민생활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적하효과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뒤 늦게 다가올 선거를 의식해서 최근 부쩍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강조하고 부분적으로는 대기업에게 이를 압박하는 모양새까지 보이고 있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행위에 대해 정당한 ‘규제’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독과점이 만연된 우리의 현실은 이미 ‘자유로운 경쟁의 실패’ ‘시장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독점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은 30년 역사를 가진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은 1조 목적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방지, ▶과도한 경제력 집중 방지, ▶부당한 공동행동(담합행위) 규제를 통하여 1)창의적 기업 활동 보장, 2) 소비자의 보호, 3)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 도모를 실현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단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과거에 비해 더욱 비대해진 대기업 집단을 실효성 있게 규율할 새로운 규제의 틀과 제도 도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적하효과가 우리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근거와 기준을 찾아야 한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 4월 27일 “최근의 경쟁 양상은 개별 기업 간 경쟁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 경쟁으로 변화되고 있다”면서 “생태계 경쟁력 강화가 동반성장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에 대해 말의 성찬이라고 할 만한 언변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괴물로 등장한 대기업 집단을 반드시 규율해야 국내 산업 생태계가 다시 복원되고 그럴 때에만 글로벌하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주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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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4.04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이명박과 이건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력자다. 누가 더 권력이 센가를 묻기란 이미 철없는 짓이다. 아직도 이명박의 권력이 세다고 혹시 생각한다면, 2011년 현재 누가 권력을 한껏 누리고 있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보라.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권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를  취재하는 기자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서슴없이 ‘낙제’라는 말을 들먹였다. 물론, 이건희는 경제 정책을 낙제라고 명토박지는 않았다. 짐짓 노회하게 “흡족하다기 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어떤가. ‘낙제’라고 한 말보다 더 비위 상할 성싶다.

실제로 그의 말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원한 소리’는 없었다. ‘총대’를 멘 것은 청와대가 아니었다. 나흘 뒤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이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건희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건희  발언에 장관 “수정하겠다” 꼬리말

신문과 방송은 윤증현의 비판을 간단히 보도하거나 모르쇠 했다. 비교적 길게 보도한 한 신문은 윤 장관이 “강하게 비판했다”고 기사화 했다. 하지만 정작 보도 내용을 짚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윤 장관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극복에 정부 역할이 상당했다는 건 국내뿐 아니라 외국 석학과 언론, 국제기구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장관의 말에선 어딘가 ‘아랫사람’의 억울함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더 있다. 이건희에게 정부 정책 중 어떤 면이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인지 묻고 싶다는 발언까진 강경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곧이어 “지적하면 수정 하겠다”고 말했다. 얼핏 자신감 넘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장관이 굳이 ‘지적’이나 ‘수정’이라는 말까지 쓸 필요가 있었을까? 전형적인 아랫사람의 화법이다.

 

대한민국이 ‘이건희의 세상’임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어서일까. 정부의 경제정책에 낙제점만 거론한 게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정운찬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를 살천스레 비판했다.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나 경제학 공부를 해 왔으나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원색적 발언에 이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 어떤 국가에서 쓰는 말이지 모르겠다”며 빨간 색깔까치 칠하고 나섰다. 이건희가 삼성의 황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황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재계’에선 “시원하다”거나 “할 말을 제대로 했다”고 반겼다.

 

물론, 서울대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경제학 교수 정운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이익공유제를 제안하게 된 가장 직접적 계기가 바로 삼성이라고 말했다. 색깔론이나 이념 잣대로 매도하는 언행에 발끈한 심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공부한 책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의미를 평가절하 하시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며 사뭇 ‘예의범절’을 지켰다.

 

기실 정운찬의 제안은 스스로 설명했듯이 경영자, 노동자, 협력업체가 공동의 노력으로 달성한 초과이익이라면 협력업체에도 그 성과의 일부가 돌아가도록 하자는 성과공유제의 일종이다.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정운찬의 제안은 기업의 이익 잉여금이나 주주들 몫을 강제로 빼앗겠다거나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물론, 이 신문이 정운찬을 두남둔 것은 전혀 아니다.

 

양비론을 폈을 뿐이다. <중앙일보>는 더 나아갔다. “초과이익공유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건희의 발언을 아예 사설 제목으로 삼아 정운찬의 제안이 자본주의와 헌법 정신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란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부르댔다. <동아일보> 사설 또한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기업의 자율적 상생 실천에도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지금 <중앙일보> 고위 언론인들에게 이건희가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고 있거나 <동아일보>가 이건희 가문과 사돈을 맺은 사실을 몰라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다만,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거침없이 행세하고 있는 한 기업인 앞에 언론의 본령은 어디에 있는가를 함께 성찰하고 싶을 뿐이다.

 

시각차 아닌 사실의 문제… 언론 할 일은

만일, 정운찬이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가 참으로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면, 헌법정신을 뒤흔드는 사안이라면 저들이 벌이는 색깔론이나 양비론에 굳이 비평을 하고 나설 이유는 없을 터다. 하지만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다. 이정우 교수(경북대·경제학)도 지적했듯이 초과이익공유제는 엄연히 경제학 책에 나오는 개념이다. 그 제도의 효시 또한 미국이다. 제퍼슨 정부 시절에 이미 도입했다. 과거의 제도만이 아니다. 2011년 현재 삼성전자보다 더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애플사는 협력업체와 3:7로 이익을 나누고 있다.
 
사실관계가 그렇다면 언론이 할 일은 무엇인가? 마땅히 한 기업인의 오만한 언행, 사실과 다른 색깔 선동을 비판해야 옳다. 정치권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이건희에게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으로 삼성을 비롯한 수출대기업들이 얼마나 큰 이익을 챙겼는지를, 반면에 서민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일러주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1인 사면’으로 이건희가 얼마나 큰 혜택을 누렸는가도 새삼 깨우쳐주어야 옳다. 대통령 이명박의 ‘억울함’을 위해서가 아니다. 새삼 강조하지만 모든 권력의 감시가 저널리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11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자리에 있든 스스로에게 한번 쯤 진지하게 묻고 정직하게 답할 때다. 나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온전히 저들을 감시하고 있는가를, 이명박과 이건희를.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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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7.11.20 21:03
 

촛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다. 삼성 비자금과 떡값 검사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명동성당에서 일산에서 그리고 대전역 앞에서 연일 이어진다. 삼성의 추악한 로비와 뇌물 작업의 일단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서 직접 법조계 관리를 관장했던 담당자가 고발을 했는데도 검찰이 ‘떡값 검사 리스트를 주지 않으면 수사할 수 없다’고 나오는 마당에 시민들은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고발자만 기소당한 2005년 X파일 사건


이 시점에서 2005년 삼성의 검은 거래를 고발한 MBC 이상호 기자의 이른바 X파일 사건이 얼마나 황당하게 흘러갔었는지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수사 5개월여 동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한 차례의 소환 통보 없이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대한 혐의를 발견할 수 없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이 회장과 이학수, 김인주, 홍석현, 등 핵심 당사자들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오히려 불법 로비 내용이 담긴 도청 테이프를 입수해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삼성에게 떡값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혐의를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 7명의 명단을 공개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검찰로부터 기소당하는 희대의 코미디로 사건이 귀결되었다. 더하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사건의 본질은 (삼성 로비가 아니라) 안기부 불법도청문제’라고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사실상 검찰 수사 방향의 기준을 제시한 것도 잊을 수 없는 씁쓸한 소극이다.


한국에서 ‘마니 풀리테’는 가능한가


1,000여 개의 차명 계좌에 수천억 원의 비자금이 조성, 운용되고 있으며 검찰 떡값으로 매년 십억 원 이상이 사용되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는 일개 기업의 불법 로비와 타락한 권력층 일각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이미 도를 넘어선 총체적 부패상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와 같은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1992년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는 불법 로비를 일삼던 한 기업의 내부 고발로 시작되어 1,000여 명의 공직자와 정치인을 포함한 2,993명이 부패 혐의로 체포, 기소되고 이어진 총선에서 신인 정치인들로 구성된 신생 정당이 기성 정치권을 대거 물갈이하면서 정치 판도까지 완전히 바꾼 사건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X파일의 경험 그리고 유달리 삼성과 재벌 총수에 관대한 노무현 정권의 속성상 한국 사회의 마니 풀리테가 검찰에 의해 진행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재벌 세습과 은행 소유로 향하는 삼성 로비


또 하나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삼성의 전방위 로비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표다. 1999년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이나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재산을 증식시키고 재벌 삼성의 지배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으로 드러났다. 탈법과 허위, 배임, 증거인멸로 일관된 이들 작업의 결과 이재용 전무는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되어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구조를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재용 체제의 완성을 위해 삼성이 다음으로 넘어야 할 고비는 금산분리의 폐지다. 금산분리가 유지되는 한, 삼성은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로 분리되어야 한다. 현재 막대한 순익을 안겨다주는 삼성전자 등 비금융 분야나, 자산 규모로 이미 그룹 전체 자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금융 분야나 삼성으로서는 모두 포기할 수가 없다.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장이 이명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속내가 드러난다. 이명박 후보는 금산분리 폐지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결국 삼성은 10년 가까운 치밀한 준비를 통해 재벌 체제를 세습하고 이번 대선에서 보수 후보를 지원하여 금산분리 폐지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동시에 움켜쥔 ‘견제 받지 않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으로 부상하는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역사를 뒤로 돌리는 두 보수 정치인이 대선 지지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거대한 삼성공화국에서 우리는 2002년에 그랬듯이 다시 작은 촛불을 들고 모여들 수밖에 없다. 경제 민주화와 한국판 마니 풀리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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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TAG 삼성, 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