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10 / 3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기업 역사 56년, 재계 순위(총수 있는 기업 집단) 30위의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위기에 빠지면서 한국 재벌의 문제점이 다시 한 번 백일하에 드러났다. 중견 재벌 기업 집단이던 동양그룹은 이미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인 2009년부터 지금까지 그룹 전체 차원에서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였다.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데 따르면 부채 비율도 999.81%로서 이미 자구 능력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계열사들의 연쇄적인 부도 위기와 법정관리 신청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동양 재벌이 부실에 빠지고 그 부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 재벌 체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재연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핵심 계열사인 ㈜동양이 2010년 말부터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서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총수 일가는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동원하여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게 된다. 부실에 빠진 계열사들에 대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새사연, "동양 사태, 막을 수 있었다", 2013.10).


더욱 심각한 것은 동양그룹이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과 대부업체를 동원하여 재무 건전성을 의심받는 주요 계열사의 회사채와 CP(기업 어음)를 무모하게 시장에 과잉 유통시킨 것이다. 계열사의 위험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회사채와 CP를 유통시킨 결과, 이들에 투자해서 피해를 본 규모가 5만여 명, 2조 원에 육박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을 정도다. 결국 순환출자를 통한 돌려막기, 금융 계열사를 동원한 자금 조달 등 재벌 체제에 내재한 온갖 편법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부도를 막지 못하고 그 피해를 사회 전체에 전가해 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시민사회가 그동안 주장했던 재벌 개혁의 정당성을 재차 확인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번 사태는 동양그룹에 국한된 문제인가. 다른 재벌 그룹들은 자산 구조와 수익성이 탄탄하여 문제가 없는가?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앞으로 우리경제 회복은 재벌 대기업 집단이 이끌 수밖에 없는 것인가. 또는 한국 경제 회복을 주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재벌 체제가 여전히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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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10 / 24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 것이 엊그제인데최근 재벌 계열사 부도와CP 관련 투자자 피해 사태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2011년 LIG, 2012년 웅진그리고2013년 동양 사태에 이르기까지따라서 왜 최근 대기업 CP 관련 금융사건이 자주 발생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CP시장은 카드 사태로 위축된 후 2005년부터 빠른 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하였다특히 최근 5년 여 동안 CP 잔액은 29조에서 73조로 2.5배 증가하였다그리고 ABCP는 27조에서 79조로 2.9배 증가하였다이는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관련이 있다.

 

어음법은 기본적으로 상거래와 관계된 어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신속하고 원활한 영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간편한 발행절차를 추구하고 있다따라서 어음 요건만 충족하면 이사회 의결발행기업 등록 및 증권신고서 제출 등의 복잡한 절차 없이 발행이 가능하며 발행금액에도 법적 한도가 없다반면 어음법상 배서의무분할양도 금지 등 유통과정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이에 비해 자본시장법에서는 불특정 다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표준적이고 정형화된 투자 상품을 증권으로 규정하고중개매매 등 유통은 자유롭게 보장하는 대신투자자 보호를 위해 엄격한 발행 및 공시의무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CP는 어음법상 약속어음이면서 자본시장법상 유가증권이라는 이중적인 법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즉 CP는 투자자보호를 위해 필요한 발행 및 공시의무 절차가 어음법상 면제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특히 2009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발행자 요건신용평가등급만기최저액면금액 등의 발행 규제가 대거 폐지되었다예를 들어 통상 CP는 기업의 단기자금조달 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만기 제한(1)이 폐지되면서 만기 1년 이상 장기 CP와 ABCP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09년 5%에 불과하던 만기 1년 이상 CP는 현재 44조로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다회사채 발행에 요구되는 이사회 의결증권신고서 제출 등의 복잡한 발행 절차 및 공시의무가 면제되는 이득에 더불어각종 발행 규제 폐지는 CP 시장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었다따라서 일부 부실 대기업들은 회사채 대신 CP를 점차 장기 자금조달 수단으로까지 활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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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8 / 23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새사연은 지난 해 '한국사회 분노의 숫자'라는 타이틀로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획 연재를 진행했습니다. 1년이 지난 현재 우리사회의 불평등은 더욱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최근에는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갑과 을'이라 문구를 통해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사연은 2013년 7월부터 "분노의 숫자 시즌2"라는 제목으로 우리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 용어 해설


법인세 실효세율 = 총부담세 / 과세 표준

감세 규모 추정 = 2008년 실효세율 적용 시 총부담세 - 총부담세

과세표준은 과세물건의 세액을 계산하기 위해 가격, 수량, 중량, 용적 등으로 수치화한 것으로 각 세목의 세액 계산의 기준



▶ 문제 현상

재벌대기업 법인세 실효세율, 08년 21.1%에서 17%로 4.1%p 하락

기업의 당기순이익은 2008년 171조에서 2011년 229조로 34% 늘어났다. 또한 법인세 부과 대상이 되는 과세표준은 같은 기간 181조에서 228조로 26% 증가하였다. 그러나 기업이 실제 부담한 세금은 불과 0.65조 늘어나는데 그쳤다. 따라서 과표 대비 총부담세로 계산한 실효세율은 2008년 20%에서 2011년 16.7%로 평균 3.3%p 떨어졌다. 특히 5000억 초과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17%로 4%p 하락하였다.   
     
▶ 문제 진단과 해법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났는데도 세금이 늘지 않은 것은 세율 인하와 재벌대기업에 유리한 세액 공제 및 감면 정책 때문이다. MB정부의 감세정책에 따라 재벌대기업이 적용 받는 최고세율은 2009년 25%에서 22%로 3%p 인하되었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24.2%, 지방세 포함)은 OECD 34개국 평균(25.6%)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일본이나 미국은 40%에 달하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28~3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와 대기업에 유리한 각종 비과세 및 세액 공제 특혜에 따라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감세 혜택을 받았다. MB감세가 실시되기 전인 2008년 실효세율을 적용할 경우, 2010년 총 감세 규모는 7.1조로 이 중 32%인 2.3조를 42개 대기업이 차지하였다. 2011년에는 감세 규모가 9.1조로 더 늘어났고, 이 중 39%인 3.6조를 53개 대기업이 독차지하였다. 과표 5000억 초과 재벌대기업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평균 540억 원, 670억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셈이다. 

산출세와 부담세의 차이는 각종 세액 공제와 감면으로 구성된다. 2008년 전체 감면액 규모는 6.7조로, 이 중 40%인 2.7조를 47개 재벌대기업이 차지하였다. 기업수로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47개 기업은 평균 570억씩 감면을 받았다. 2011년 전체 감면액 규모는 9.3조로 39% 증가하였다. 전체 감면액의 47%인 4.4조는 53개 재벌대기업에 돌아갔다. 기업 당 평균 830억 원씩 감면 받은 것이다. MB감세 정책에 따라, 최고세율 인하의 수혜를 논외로 하더라도, 각종 세액 공제 및 감면 혜택 확대만으로도 평균 260억 원씩 세제 혜택을 받은 것이다. 즉 최고세율 인하로 50여 개 재벌대기업은 대략 2.6조원의 감세혜택을 누렸으며, 세액 공제 및 감면 확대로 1조원의 추가 혜택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재벌체제인 한국경제의 특성상 재벌대기업에 기업 이윤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기순이익 2억을 초과하는 중소기업과 순이익이 40조에 달하는 삼성전자에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과세 형평에 분명 문제가 있다. 

경제민주화, 재정건전성, 그리고 복지 확충을 위해 최소한 과표 500억 초과 대기업에 적용하는 최고세율을 MB감세 이전인 25%로 되돌려야 한다. 또한 투자유인 명목으로 재벌대기업에 유리한 각종 세액 공제 및 감면 확대도 환원해야 한다. 500억 초과 400여 대기업에만 MB감세 이전으로 환원하면 재정수입을 약 5.4조원 늘릴 수 있다. 이를 과표 5000억 초과 재벌대기업 54개로만 한정해도 약 3.6조원의 재정수입을 늘릴 수 있다. 500억 초과 대기업은 전체 기업의 0.1%에 해당하며, 5000억 초과 재벌대기업은 전체 0.01%에 불과하다. 

최근 소득공제의 일부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소득세 개편안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소득공제는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기 때문에 12~15%의 비례세가 적용되는 세액공제로 전환할수록 소득공제의 역진성 문제는 해결된다. 따라서 소득세 개편안의 기본 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소득세 개편보다 더욱 시급한 과제는 법인세율 인상 및 각종 세액 및 감면 제도 개편이다. 왜냐하면 최근 부자기업, 가난한 가계로 대변되는 기업과 가계 소득 양극화 해결이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이며, MB감세의 최대 수혜자가 재벌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50여 재벌대기업에 매년 수백억 씩 안겨준 감세혜택의 선물은 그대로 놔둔 채, 중산층의 호주머니를 털려고 하니 조세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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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친기업 정부를 내걸고 등장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국경제가 가르쳐 준 교훈은 바로 “기업에 대한 자율규제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2012년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던 배경이기도 하다. 금융시장과 독과점 시장이 특히 그렇다. 규제 풀린 금융시장은 대개 투기와 거품으로 치달으면서 경제 전체를 거대한 시스템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생생하게 보여 줬다. 광범한 금융규제 논의가 다시 촉발된 이유다.

마찬가지로 규제체제가 사라진 독과점 시장은 대기업의 전횡과 이익의 편취,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뿐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없다. 재벌체제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정부가 기업규제와 시장규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경제민주화 여론이 형성된 배경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연말이 가까워오고 대선이 임박하면서 경제민주화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거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가 횡행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벌 대기업 규제의 칼날은 이미 무뎌졌으며, 그만큼 노동자와 상인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확대 법안들은 벌써 가로막히고 있다. (대)기업을 규제하고 기업의 핵심 구성원인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인가. ‘노동자와 사람이 먼저’이고 ‘기업은 사람들이 창조하고 통제하는 인위적 공동체’라는 기본적인 상식의 실현은 다시 먼 미래로 연기될 것인가.

지난달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 롬니 후보가 선거 기간 중에 “기업도 사람이다(Incorporations are people)”는 주장을 해 논쟁이 됐던 사례를 상기하게 된다. 로스쿨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교수는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면서 롬니의 주장에 이렇게 반박했다. “사람은 심장이 있고 아이가 있고 일을 하며, 아파하고 슬퍼하며 춤을 춘다. 사람은 살고 사랑하며 죽는다. 이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기업을 위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들이 왜 새삼 논쟁이 됐을까. 기업이 사람이라는 롬니의 주장은 단순히 기업이 영리 '법인(法人)'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본래 기업은 인간이 국가의 승인 아래 경제활동의 필요로 창조한 공동체다. 당연히 사람에 의해 조직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치 독립된 실존을 가진 자연인처럼 기업을 대해야 한다면서, 기업의 자유활동을 규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에 대해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을 부여하게 된다. 이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 ‘자유 시장’, ‘자유 무역’ 등이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신성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기업도 사람이다’라는 개념이 굳어지면 기업에 대한 규제나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통한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기업이 먼저’라는 완고한 주장이 버티고 있다. ‘노동자가 살기 위해 기업도 있다’는 논리가 아니라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있다’는 논리가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와 상인을 살리기 위한 기업규제는 수그러들고, 경제 살리기는 곧 기업 풀어주기로 통하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 아닌가. 나아가 기업이 사람이라는 논리는 곧 기업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강변되는 주주, 특히 대주주의 재산권과 자유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부자의 권리와 자유이고 여기에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10년 전에 출판된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 of Capital)’라는 책에서 마저리 켈리(Marjorie Kelly)는 기업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라고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므로 기업을 아우르는 더 큰 공동체가 그렇듯이 기업 또한 최선의 민주적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그는 또한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당연한 ‘민주적 상식’이 아닐까.

나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25년 전인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쟁취한 후 6번째 선거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공간을 넘어 경제공동체인 기업 내에서는 약간의 주식을 매입해 소액주주가 되는 것 말고는 어떤 민주적 권리도 가져 본 적이 없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대선의 구호조차 되지 못한다. 하물며 “기업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라는 주장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라는 지렛대가 있어야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조금이라도 더 경제민주화의 의지가 있는 후보를 뽑아야 경제민주화를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기업보다 사람이 먼저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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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진보운동의 노선이나 전략은 다양하게 바뀌어 왔다. 하지만 변치 않은 것도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압도적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열망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로 힘을 모을 때 비로소 현실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된 힘을 계급이라 부르기도 하고 인민이나 민중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중이라고 불러도 좋다. 엘리트들이 그들을 각성시키거나 지도하거나, 또는 순전히 자연발생적이어도 좋다. 어쨌든 그들이 열망하고 분노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사회운동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된 이후로 민중의 중심에는 늘 노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농민이 있었다. 특히 후발 자본주의나 제3세계에서의 광범한 농민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어려움은 일찍이 노동자와 함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의 동력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들은 언제나 ‘노동자·농민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도시의 자영업자, 즉 ‘중소상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자 다음으로 많은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이 된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농민과 서민이라고 부르면서 대략 서민 안에 묻어가는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 처지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할까. 물론 실제론 노동자인데 자영업자로 위장돼 있는 잘못을 바로잡자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3권이나 사회보험 혜택을  자영업자로 취급받으면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소상인들이 우리경제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함에도 사회적·법적으로 인정된 권리나 사회운동적 위치 등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약간의 고려를 해 주는 정도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사회진보운동은 중소상인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현재 사회운동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재벌’이라고 하는 대자본에 맞서 경제민주화와 노동권을 확보해 내는 것임은 명확하다.

그런데 재벌 대자본과 맞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가장 집요하고 성실하게 싸우는 민중은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도 있지만,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하려는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수년째 대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확보한 것은 많지 않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의무휴업 확대 등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는 작업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와 민주통합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상인들에 대한 실업보험 지원도 거의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부담이다.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헌신적인 싸움에 대해 국민의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자 정부와 대형마트 대표들은 상인들을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을 내세워 이른바 ‘대형마트의 자발적 출점 자제와 자율휴무’ 협약이라는 것을 맺기도 했다.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앞세워 노사타협을 하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럼에도 이런 행태를 막을 마땅한 방법과 수단이 상인들에게 없다. 노동자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엄격한 법적 보호아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해 자주적인 노조를 만들고 사용자와 단체협상을 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자와 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상인들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적인 조직을 만들 법적 틀도 없다. 대형 유통재벌이나 정부를 상대로 단체협상을 하도록 보장받은 것도 없다. 점포 매출이 시원치 않아 문을 닫아도 실업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아도, 상가 임대료가 폭등을 해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 노동자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중이 큰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인 중소상인들에게 노동3권과 자영을 할 기본권, 대기업의 부당한 상행위를 제재할 대책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가. 중소상인을 위한 노동3권·자영 기본권·대기업의 부당상행위를 처벌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은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중소상인 기본권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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