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0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금 어떤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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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라는 난제

2. 신자유주의 두 가지 성장모델

3.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성장모델

4. 소득주도 성장모델이 내수기반 경제다.

 

[본 문]

1.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라는 난제

지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앞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난제가 가로막혀 있다.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심화된 소득 불평등을 어떻게 완화시키면서 지금의 경제 위기 국면을 탈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 경제를 다시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에 맞서는 99%저항운동에 나섰던 월가 점령운동에 대한 전 세계적 호응을 보건데,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소득 불평등은 이미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성장체제가 명확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2007년 경기침체 이후 5년이 지나도록 경제가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와 확실한 회복을 도모할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성장 동력이 효력을 다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한계에 도달한 자본주의가 기존의 성장체제를 폐기하고 신자유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성장모델, 성장전략을 찾아야 함을 말해준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악화된 소득 불평등과 파국에 몰린 신자유주의 성장체제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는 규제 풀린 금융과 위험한 파생상품 거래가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성장체제 자체가 악화시킨 소득 불평등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직도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채 번번이 위기가 재발하는 것도 실업 개선이 극히 부진한데서 알 수 있듯이 소득 불평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준의 소득불평등 개혁 없이 자본주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90년대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다. 라이시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었을 때 발생했으며, 반대로 자본주의의 안정적 발전과 성장은 소득 격차가 낮아졌을 때 실현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총 소득 중 상위 1%에게 돌아간 몫이 1928년과 2007년 둘 다에서 23퍼센트를 넘으면서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이다.(그림 1참조) 이 점에서 보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필연적이었던 셈이다. 소득 불평등은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북미와 유럽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성장세가 나은 아시아에서도 매우 중대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과 기존 성장체제의 한계라는 당면한 한국경제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한국경제의 개혁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기존에 한국경제를 추동해왔던 성장체제를 세계 경제적 범주에서 다시 조망해보고 그 한계를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동시에 기존 성장모델을 뛰어넘기 위해서 가장 유력한 대안체제로 제기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을 제안해볼 것이다.

 

2. 신자유주의 두 가지 성장모델

우리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전면적으로 수용되었지만 이미 1980년부터 미국과 영국에서 확립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자본 활동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책면에서 규제완화와 감세를 함으로써 자본으로 하여금 투자를 촉진하자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투자가 촉진되면 고용도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론적인 신자유주의 논리였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확신했던 투자 촉진은 대체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신자유주의가 추진했던 금융 규제완화로 자본시장이 팽창하면서 투자자의 단기 수익추구 요구에 의해 기업 이윤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배당 몫이 팽창하거나 주가관리 비용으로, 또는 실물이 아닌 금융 자산투자로 이윤의 상당부분이 돌려졌다. 결국 낙수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이처럼 자본의 이윤주도 성장(profit-led growth)을 추구했기 때문에, 설비 투자를 위한 이윤 몫 확대가 우선이었고 이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은 줄여야 할 비용으로 간주되었다. 당연히 신자유주의는 임금 상승 억제를 추구했고 이를 위한 포괄적 정책이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따라서 임금인상 -> 소득증대 -> 총수요 확대 -> 설비투자 확대라고 하는 연쇄 효과는 처음부터 작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규제완화, 감세, 임금인상 억제를 통해 최대한 자본의 이윤 몫을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실제 신자유주의가 작동시킨 경제 발전모델, 성장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현실에서는 두 개의 불균형 성장과정이 있었다. 하나는 신용주도 성장(credit-led growth), 금융주도 성장(finance-led growth), 또는 부채주도 성장(debt-let growth)이다. 이것은 임금상승 억제 ->소득 불평등 -> 국내적 수요 부족 ->외국자본 유입과 신용팽창 -> 부채에 의한 소비의 경로를 밟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이고 유럽을 위기에 몰아넣은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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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4.18정태인/새사연 원장

고용없는 성장, 불안한 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이동통제, 자산가격규제, 재벌규제를 먼저 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안으로부터의 성장을 하기 위해선 임금 상승, 에밀리아형 중소기업 클러스터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여기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있다. 바로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사회경제(social economy·사회적 경제로도 번역한다)’다.
 
경제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정 아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꾀한다. 반면 사회경제는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근거로 공정성(fairness)의 기준에 의해 연대를 도모한다. ‘착한 경제학’이 누누이 강조한 신뢰와 협동은 사회경제가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기실 사회경제의 역사는 시장경제보다 오래 되었다. 수렵채취시대에는 어느 종족이나 식량 공유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 동물을 잡거나 열매를 딸 때도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경시대의 관습으로 아직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두레나 계 역시 사회경제에 속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협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생존경쟁은 동시에 협동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경제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착취를 막았지만 소비과정에서 또 다시 수탈을 당했던(예컨대 가짜 밀가루를 팔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최초의 협동조합이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 추구하지만 동시에 지역공동체 등의 사회적 목표도 달성하려고 한다.
 
1980년대 이래 서구의 복지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사회경제는 다시 각광을 받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회경제는 대안으로 떠올랐고 부피를 늘려 왔다. 하여 최근에는 국가가 담당했던 복지서비스 중 사회서비스를 사회경제가 떠맡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연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바로 새롭게 생겨난 사회경제의 범주들이다. 이탈리이아 볼로냐의 카디아이(CADIAI)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과거 시정부가 하던 복지의 70%를 떠맡았는데 공급가격은 떨어지고 서비스 질은 훨씬 좋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도 자활공동체운동, 실업극복 국민운동 등으로 이어지던 사회경제의 흐름이 2007년 사회적 기업법, 그리고 최근의 협동조합 기본법의 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지사회를 여는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사회경제에 연계한 복지를 설계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의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마지막 의료서비스 전달(1차 진료)을 의료생협이 맡는다면 우리는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누리는 주치의제도를 확보하게 된다. 의료생협은 자체로 주치의 역할을 하지만 만일 건강보험에서 일정한 보조금을 준다면 말 그대로 영국식의 주치의가 생겨날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안성 의료생협의 경우 조합원 1인당 연간 1만원에서 2만원 정도의 보조금만 줘도 명실상부한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3차 의료기관에 직접 갈 필요도 줄어들 뿐 아니라, 값비싼 검사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따뜻한 경제가 동시에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지역공동체 속에 뿌리박아야 한다. 캐나다의 경우처럼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정책을 사회경제부문이 담당할 수도 있다. 로컬푸드운동이나 재생에너지 사업, 제주 올레길이 불을 붙인 트레킹코스 사업, 숲 가꾸기 등이 모두 사회경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수많은 사회경제가 네트워크를 이뤄서 신뢰와 협동이 번져나가면 그것이 곧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이다. 이미 증명된 것처럼 사회적 자본은 사회혁신을 낳아 따뜻하면서도 효율적인 경제를 이루게 한다.

현재 2~3%에 불과한 사회경제를 최소한 10% 수준으로 늘린다면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만들기 등의 사업도 1000만명 대상의 거대한 사회경제 프로젝트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회경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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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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