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신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8.01 [분노의숫자] 10명 중 3명만 신뢰하는 불신사회, 대한민국 (2)
  2. 2012.12.14 신뢰의 정치인




▶ 용어해설

  

세계가치조사의 일반신뢰지수

 

신뢰(trust)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공동체의 보편적 규범을 따라 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협동의 경제학』, 정태인 외, 2013) 신뢰는 일반신뢰(general trust)와 특수신뢰(particularized trust)로 나누어진다. 일반신뢰는 무작위 대중에 대한 신뢰를 말하며, 특수신뢰는 가족과 친구 등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세계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네트워크인 세계가치조사협회(World Value Survey Association)는 1981년부터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를 실시하고 있다. 세계가치조사는 세계의 50여 개 국가에서 240여 개의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세계인들의 가치와 믿음을 조사하는 학술 프로젝트이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1차 조사, 1989년부터 1993년까지 2차 조사, 1994년부터 1999년까지 3차 조사, 1999년부터 2004년까지 4차 조사, 2005년부터 2008년까지 5차 조사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해당되는 6차 조사가 진행 중이다.

 

세계가치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일반신뢰를 측정한다. 그 질문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며,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수 있다.”와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중에 대답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믿을 수 있다.”의 응답률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의 응답률을 뺀 후 100을 더한 수치를 일반신뢰지수로 사용한다. 즉, 세계가치조사의 일반신뢰지수=100+(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다. 따라서 일반신뢰지수가 100 이상인 국가는 “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것이고, 100 이하인 국가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것이다.

 


▶ 문제현상

  

세계가치조사에서 발표한 일반신뢰지수 중 5차 조사에 해당하는 2005년 이후 응답결과를 살펴보았다. 총 59개 국가가 포함되었으며 그 평균은 54.1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전체 응답자 1200명 중 “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8%,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71.1%로 일반신뢰지수 56.9을 기록하며 30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평균보다는 근소하게 높은 수치이나 상위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매우 낮은 수치이다.

 

상위 10개국은 1위 노르웨이(148.0), 2위 스웨덴(134.5), 3위 중국(120.9), 4위 핀란드(117.5), 5위 스위스(107.4), 6위 베트남(104.1), 7위 호주(92.4), 8위 네덜란드(90.6), 9위 캐나다(85.9), 10위 벨라루스(85.2)의 순서였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등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포함되었다. 1위를 차지한 노르웨이의 응답자 비율을 보면 “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3.7%,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25.7%로 우리나라와 거의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그 외 주요 국가의 일반신뢰지수는 일본이 79.6, 미국이 78.8, 독일이 75.8, 영국이 61.7, 이탈리아가 60.8로 나타났으며, 모두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반면 프랑스는 37.9라는 낮은 수치를 보였다.

  

한편 일반신뢰지수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믿을 수 있다.”의 비율이 1982년 36%에서 1990년 33.6%, 1996년 30.3%, 2001년 27.6%, 2005년 28%로 대체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였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영국은 “대부분 믿을 수 있다”의 비율이 1981년에는 42.5%였던 것에서 2006년에는 30%로, 프랑스는 1981년 22.3%에서 2006년 18.7%로, 일본은 1981년 37.4%에서 2005년 36.6%로, 미국은 1982년 39.2%에서 2006년 39.1%로 하락했다.

 

반면 상위권에 들어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반신뢰지수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르웨이는 “대부분 믿을 수 있다.”의 비율이 1982년 55.5%에서 2007년에는 73.7%로 증가했다. 같은 대답에 대해 스웨덴은 1982년 52.1%에서 2006년 65.2%로, 스위스는 1989년 39.4%에서 2007년 51.2%로 증가했다.

 


 

▶ 문제진단과 해법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 2005년 우리나라 국민의 28%만이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나머지 71.1%는 남을 신뢰하기 보다는 경계하는 쪽을 택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10명 중 3명만이 남을 신뢰하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수준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우리사회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하며, 미래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입시경쟁, 성인이 된 후에는 취업경쟁, 취업이 된 후에는 불안한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경쟁과 불안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남을 신뢰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무능한 정치세력에 대한 불만도 신뢰를 저해시키는 큰 요인 중 하나로 짐작해볼 수 있다.


함께 살펴본 북유럽 국가와 영미 선진국 사이에 나타나는 신뢰도의 차이를 통해서도 몇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북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일반신뢰가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는 북유럽의 특징과 연결될 수 있다. 국가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해주고, 때문에 경쟁에서 밀려난다 해도 완전히 낙오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에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회 구성원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영미, 일본 등 소위 경제선진국에서는 일반신뢰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 혹은 경제력 정도가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높이는 결정적 요인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즉,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구성원들의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불안에서 벗어나야 서로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길 것이다. 


더불어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전국적으로 1400개가 넘는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는 등 사회적경제의 확산이 우리사회에 신뢰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기존의 시장경제는 이기적 인간을 상정하고 경쟁을 통해 효율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는 상호적 인간을 상정하여 인간이 협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면서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모두가 기업의 주인이 되며 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며, 사회적 기업은 수익 뿐 아니라 기업 외부의 구성원들에게까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공유경제나 크라우드펀딩은 기본적으로 타인과 함께 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 분야가 확산될수록 우리사회의 신뢰 확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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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12.13정태인/새사연 원장

 

여태까지 ‘착한 경제학’을 읽은 독자라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낱말인지 잘 알 것이다. 한마디로 신뢰는 협동의 기초다. 신뢰는 양의 상호성(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을 촉발시킨다. 일반 신뢰(generalized trust)란 잘 아는 사람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믿는 것을 말한다. 일반 신뢰의 사회는 협동이 사회규범으로 뿌리 내린 사회다. 신뢰와 협동이 개인에게 내면화한 이런 사회는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그 모범 사례이며 그 반대쪽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퍼트넘의 저 유명한 ‘나 홀로 보울링(bowling alone)’은 미국의 경우이다.
 
하지만 남을 믿는다는 건 매우 위험한 행위다. 자신을 무장해제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사랑을 떠올려 보라. 사랑에 제대로 데었던 사람은 웬만해선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여 오직 가족과 몇몇 사람만 신뢰하게 될 텐데, 이를 특수 신뢰(particularized trust)라고 부른다. 특수 신뢰는 강력하지만 폐쇄적이기 십상이다.
 
박근혜 후보의 최근 캠페인은 ‘위기-신뢰-통합’이라는 세 낱말로 요약된다. 프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잘 구성된 조합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해 한국 경제가 어렵고, ‘신뢰의 정치인’을 따라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며, 그것이 곧 국민통합이라는 메시지다.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 가지만 경험 많고 유능한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박 후보 홍보영상)는 문구는 그의 결기를 잘 보여준다. 노년층은 아마도 아버지 박정희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과연 그는 ‘신뢰의 정치인’일까? 그가 신뢰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7일자 경향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 “(청와대를 나온 후) 뒤돌아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지켜본 박 후보는 약속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배신에는 질색한다”. 아뿔싸, 그가 말하는 신뢰란 배반에서 비롯된 신뢰, 즉 위에서 언급한 특수 신뢰다. 그것은 폐쇄 집단의 신뢰이다. 따라서 “일단 믿기로 한 사람은 여러 번 기회를 주지만 정말 한 번 안 되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아웃시키는 특징”(같은 신문)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특징은 선거에서 유별난 힘을 발휘했다. 그의 카리스마는 특정 집단 내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한 종합편성 TV가 개국 기념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으로 내보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TV 조선, 2011년 12월 1일). 그가 보수집단을 결집시켜서 한나라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착한 경제학’의 ‘일반 신뢰’는 대화와 소통에 의해 형성되고 쌓인다. 반대로 특수 신뢰는 내부의 암호와, 외부와의 불통에 의해 더욱 견고해진다. 그의 말투, 예컨대 박지만씨에 대한 의혹에 대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방식, “참 나쁜 대통령”과 같은 단말마 방식은 특수 신뢰의 특징이다.


문제는 그의 ‘특수 신뢰’가 대한민국 전체,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통할 것인가이다. 그의 경제정책 기조인 ‘줄푸세’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한국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했다(경제 논리는 경향신문의 7일자 정동칼럼을 보시라).
 
케인즈 경제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돈이 아래로 흘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착한 경제학’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는 노동조합 지도자를 만나 “당신의 말이 옳다. 거리로 나가서 외쳐라. 내가 그 주장을 실현시키겠다”고 말하고, 국민연금법(보편복지의 확대)과 와그너법(노조의 단결권 보장)을 통과시켰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루스벨트와 같은 일반 신뢰요, 개방적 참여민주주의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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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