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논쟁을 위해서 새로운 장 '한국경제 성격 논쟁'을 마련한다. 앞으로 이 장을 통해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 86호, 87호를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과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논쟁의 물꼬를 텄다. 한차례의 공방에 이어서 정태인 원장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게 공개편지 형식의, 하지만 날선 글을 보냈다. <편집자>

☞관련 기사

정태인 : 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링크)
정승일 :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링크)

장하준 교수에게

알고 지낸 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네 살 위라서 계속 반말을 써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높임말을 쓰려니 참 어색하기 이를 데 없군요. 아마 장하준 교수도 그럴 거예요.

사실 경어 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생물학적 나이가 더 많더라도 학문적 나이로 친다면 장 교수가 훨씬 위니까요. 읽기의 양이나 사색의 시간, 학계에서의 성취를 고려하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여 이 말투에는 공개편지에 걸 맞는 형식일뿐만 아니라 존경과 부러움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내 서평에서 비롯되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사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전 한 대담에서 "우리는 이론, 정책, 거의 모든 면에서 다 같지만 '재벌 개혁' 문제와 '한국은행' 문제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그 두 가지가 산업, 금융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 상호 간에 일정한 공감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재벌 개혁의 필요 불가결성", 그리고 이 둘을 포함한 "진보적 경제 개혁의 방향과 경로"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하여

1996년 내가 영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은행 문제에 관한 이견이 있었고, 장하준 교수가 돌아가고 나서, 동석했던 김대환 교수에게 왜 저렇게 강한 반응을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그 때 김 교수는 유럽 논쟁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즉 한국 상황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지요.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던 장하준 교수의 그 반응을 이해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책임에 관한 스티글리츠의 논문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스티글리츠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자문회의(CEA) 의장을 맡았을 때의 경험을 털어 놓았죠.

조각조각 남아 있는 기억(우리와 너무나 달라서 강한 인상을 받았으니까요)을 거칠게 말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는 도대체 대통령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조직이라는 것, 대통령자문회의에서 불만이 많았지만 아예 내색도 하지 않았다는 것, 온통 통화주의자로 가득한 그 동네에서 논쟁을 벌이면 오히려 불리해졌을 거라는 애처로운 얘기였습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도 스티글리츠는 왜 선출되지도 않은 몇몇 은행가가 자기들 멋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느냐, 이들이 사회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은행 출신들이 아니라 금융을 잘 아는 경제학자가 들어가야 하고 실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연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장 교수의 주장이 떠올랐습니다. '아, (유럽도)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 장 교수가 그토록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글에서 또 하나 명확히 남아 있는 기억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독립성인가,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언급이었습니다. 만일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준처럼 자기만의 논리에 의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더구나 통화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라면 저도 장 교수처럼 한국은행 독립에 반대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행은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 많은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 탁월한 보고서도 생산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는 언제나 언론에 노출되고, 한국은행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한국은행은 GDP(국내 총생산)이나 경상수지 발표 때만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전 재정경제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에 가까울까요?

기획재정부에는 최중경과 같은 중상주의자가 간혹 섞여 있긴 하지만 이헌재류의 시장 만능론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은행은 힘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시장 만능론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법으로 규정돼 있는 물가 안정조차 줏대 있게 내세우지 못합니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인 조직, 자기 지키기 바쁜 조직입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고슴도치 같은 조직"이라고 했겠어요?

물론 앞으로 정말 힘이 생기면 한국은행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물가 안정"을 내세워 실업과 같은 시민의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비서관일 때 한국은행 직원을 꼭 상근으로 불렀고 '개혁'에 중요한 기초 자료는(때론 기본 방침도) 한국은행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재정경제부 관료나 KDI를 이용할 경우에는 내 의도가 드러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중앙은행에 대해서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의 생각도 그랬듯이 중앙은행은 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한 기관이 하나의 목표만 맡는 게 아니라, 다수의 목표를 놓고 다수의 기관이 서로 협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런 이상적 상황을 가로막는 집단은 어디일까요? 난 단호하게 기획재정부(이들은 삼성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잡종 신자유주의의 근원이자 재생산지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들은 과장이 되면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단기간에 받고 국장쯤 되면 (장 교수의 주적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 파견 나가 신자유주의 교조의 세례를 받습니다. 얼치기로 알기에 더 과격한 시장 만능론자가 되는 거죠. 장 교수가 1960~70년대의 역사 속에서 관찰한 그 관료들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가 아니라 자산 가격 안정을 포함한 경제 안정까지 추구해야 합니다(한국은행법 개정 사항이죠!). 물론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와 협의를 하는 채널을 둬야겠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독립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이 실업 등 중요한 정책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 변화입니다. 지금처럼 각 부처를 대변하는 "민간" 전문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시민 일반을 대표하는 금통위원이 들어가야겠지요.

(나보다 훨씬 잘 알겠지만 케인스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그래서 하이에크가 매번 당했지요). 그런 정책 변화를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게 바로 케인스의 천재 증명이었습니다. 예컨대 케인스도 인도라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필요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루피와 스털링의 안정적 환율 때문에) 그게 꼭 필요했으니까요.)

재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 이제 본론 격인 재벌 문제입니다.

1980년대 말 이래 재벌은 옛날의 재벌이 아닙니다. 내 기억으로는 1988년 금리 논쟁 때 처음으로 당시 재정경제부(조순 부총리)에 반기를 든 이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들이 재벌-재정경제부 연합을 결성했고 이제 한 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부턴 재벌이 우위에 섰습니다. 발전 국가론에서 상정하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과 힘의 우위는 이미 한국에서 현실이 아닌 지 오래 됐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재벌 문제에 관해 본격적인 논문을 쓴 건 본 적이 없지만(장기의 역사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게 장 교수 작업의 본령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짧은 평론이나 인터뷰에서 받은 느낌은 장 교수가 재벌을 주주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논리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식으로 주주 자본주의/시장 만능론을 한 시대의 '에테르'(헤겔식으로는 시대정신이겠죠)라고 표현한다면 그 안의 어떤 존재도 그 풍조에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존재는 환경에 적응하는 거니까요. 일제 강점기에는 동네의 똘똘하고 진취적인 농부가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 되었을 겁니다. 농민을 최대한 수탈하려고 최초로 "근대적 경영"(경영형 지주론)을 도입하기도 했을 겁니다.

당연히 재벌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려 합니다. 단기 시야의 수탈이 벌어지죠. 그런데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서 주주 자본주의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면(분명 역사는 이 방향으로 가겠죠) 정말 재벌은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비 투자와 새로운 산업 진출에 매진하게 될까요? 해방이 되어서 일본인 지주가 사라졌을 때 우리의 마름들은 착한 농업 경영인이 되었나요? 국가가 어떤 외적 충격이 와도 마름의 지위를 유지시켜 준다고 약속하면 이들이 소작인들의 삶의 질도 높이는 착한 존재가 될까요? (비유를 이렇게 했지만 현재의 재벌은 일제 강점기 마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나 한국경제연구원의 얘길 들어서 알겠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아무런 이론이나 차용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단물 빠진 껌처럼 언제든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강한 건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거래 비용 이론이나 대리인 이론으로 재벌 구조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시장 만능론으로 국가의 규제를 비판하지요. 자유주의자 같지만 기업 내의 전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사실 이 모순이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론의 핵심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얘기도 그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자본이지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재벌과 주주 자본주의(또는 외국인 주주)를 대립 관계로만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들은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해서 주주 집단 바깥의 이해 당사자들을 최대한 수탈하는 동맹군이지요.

주주 간의 관계(즉, 자본 간의 경쟁)라는 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장 교수는 소액 주주 운동과 실은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소액 주주 운동 역시 지배 주주와 소액 주주(이 중엔 대규모 외국인 주주도 있지요)의 대립에 주목하니까요. 즉, 장 교수나 소액 주주 운동가나 모두 자본 간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재벌을 보고 있는 겁니다. 장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외국인 자본에 시달리는 존재로 보고, 김상조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소액 주주를 수탈하는 존재로 본다는 차이만 있는 거지요.

나아가 재벌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두 주주 집단(지배 주주, 소액 주주(외국인 주주 포함))과 협동해서 비정규직과 하청 기업을 수탈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가 이해 당사자론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이런 중층의 수탈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번 서평에서 이 문제는 대부분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고, 동시에 "재벌 개혁"을 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중층적 수탈 관계를 이해 당사자론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거기서 도출되는 정책 방향에 관해서는 이미 밝혔습니다.

논란이 남은 사항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에 관한 겁니다. 장 교수도 정승일 박사처럼 재벌이 제약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재벌이 제약 산업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청와대 비서관일 때 제약 산업을 검토했는데 생물학계 제약 같은 것은 가능하지만 신약 개발과 같은 화학계 제약은 영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학자 출신 풋내기 비서관의 판단일 뿐, 재벌이나 박정희류의 관료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다 망한다 하더라도, 이미 지급 보증이 해소된 상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삼성제약'을 만들려면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 회사가 출자를 하고 그 '삼성제약'이 발행한 회사채를 계열사가 인수해서 초기 자본을 형성하겠죠. 그 이후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소액 투자자들을 모집할 겁니다. 만일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다면 단지 지급 보증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안 생길까요? 신약 개발과 같은 분야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고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10년, 20년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런 쪽은 눈덩이 효과(snow ball effect)도 많이 작용할 겁니다. 기존의 지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일수록 유리하겠죠.

만일, 그야말로 만에 하나 산업계와 정부가 이런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우선 교육 투자를 통해서 전문 인력을 충분히 길러야 하고(10년 이상 걸리겠죠?) 관련 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에도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서도 마치 미국의 국방부나 보건부가 하듯이 프로젝트를 발주해야겠지요.

제 아무리 삼성이나 현대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승일 박사의 가정대로 재벌이 나 홀로 한다면? 당연히 정부는 시스템 위기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장 교수와 내가 옹호하는 산업 정책이 바로 이런 거겠죠(내 경험에 비춰보면 정 박사가 청와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재벌들은 십중팔구 조·중·동을 동원해서 정부가 시장이 할 일에 개입한다고 비판할 겁니다).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기만 하면 그들이 이런 장기 모험 투자를 할 것이라는 건 실로 안이한 생각입니다. 제로 리스크로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는데 왜 하겠어요? 주식이나 땅 투기, 동네 빵집, 심지어 순대국집…. 재벌 규제, 자산 투기 규제와 산업 정책이 같이 갈 때만 실제로 필요한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겁니다.

또 따라잡기(catch up)를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 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나는 지역 클러스터와 공동체의 발전 전략을 결합하는 것이 이 단계의 유력한 산업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주제야말로 우리 같은 산업 정책 옹호론자들이 진지하게 붙들어야 할 주제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재벌의 은행 소유까지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장하준 교수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건 정확히 시스템 위기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예의 제약 회사가 망해가면 재벌계 은행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일반적인 계열 분리명령(또는 청구)의 도입은 더 철저한 논증이 필요하지만 금융 계열 분리 명령은 시스템 위기 가능성만으로도 도입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재벌 개혁 또 경제 민주화 운동이 복지 국가 운동을 가로막는다?

장하준 교수도 아시다시피 나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갈 때, 막연하지만 스웨덴 모델을 꿈꿨습니다(조금 더 유연한 이정우 교수는 네덜란드 모델을 상정했죠).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는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스웨덴에서 한 일 하나하나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고 해서 스웨덴 모델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삼성이 발렌베리처럼 행동한다거나, 민주노총이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처럼 커지고 또 '연대 임금' 같은 획기적인 상상력 넘치는 연대 사업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환상이겠지요. 또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소득세로 재원을 조달하니까 우리도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기계적 도입 중 하나일 겁니다(종합부동산세 등 자산세는 불평등 심화를 일단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절실합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없다고 해서 복지 국가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우선 다음 그림 두개를 한번 보시죠.

한국에서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1995년경입니다. 이건희가 정부를 "3류"라고 일갈하고 김영삼이 "세계화"를 선언했으며 관료들이 마음 깊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시점이죠. 그리고 외환 위기는 그런 시장 만능의 기조를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국민들도 이제 믿을 건 나 밖에 없다, 살고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불행히도 IMF의 지배 하에서, 더구나 관료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예를 들자면, 노동 시장 유연화)을 추구한 결과 사회의 양극화는 가파르게 진행됐습니다.

 

[그림1] 지니계수 변화 추이

[그림2]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그래도 복지에 돈을 투입한 결과(붉은 그래프와 푸른 그래프의 차이)가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지만 양극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핵심 원인은 두 번째 그림에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에 임금 몫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만일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이 모두 세계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 일어난 일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재벌-관료-조·중·동이라는 삼각 지배 동맹이 앞장서서 실천한 것 또한 명백합니다.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회적 합의, 또는 대타협 없는 보편 복지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각동맹이 왜 타협을 할까요? 물론 나는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동시에 장기 침체의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면 곧 파탄이 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기가 온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세력 관계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수탈을 더 강화해서 그야말로 파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스웨덴의 시장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더 나쁜데도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한국의 시장 지니계수가 과소 추계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소득 재분배에 의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분배를 달성했으니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금을 내도록 하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올까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국내외 주주 집단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기업의 수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정당도 흡수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운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삼각 지배 동맹과 힘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해질 겁니다.

내가 장하준 교수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내 짧은 청와대 경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단언합니다. 혹시 우리가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경영권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 국가 만드는 걸 도와 달라"는 장 교수의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겁니다. 삼각 지배 동맹이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나름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시장 만능의 사회가 되면 한국이 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요. 더구나 현재의 제도 하에서도 재벌들은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타인에 대한 일반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가 아닙니다. 재벌이 합리적 계산 하에 먼저 임금의 중앙 교섭을 제안하는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도, 나와 내 아이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헛된 꿈에서 이제 막 깨어난 일반 시민들이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와 재벌의 연관을 직시하게 할 때만 우리가 꿈꾸는 복지 국가도 가능해질 겁니다.

장 교수가 놀랄지 모르겠지만, 이해 당사자론자인 나와 주주 이론을 채택한 김상조 교수 사이에 현재의 운동 방향에 대한 이견은 조금도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이 같이 가야 한다는 데 한국 대부분의 시민 운동가, 경제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으로 이런 합의를 갈라놓으려 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마 기업 집단법의 목적에 대한 강조점이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요. 김상조 교수 외의 재벌 개혁론자는 기업 집단법에 대해 더 회의적입니다만 "절대로 안 된다"는 수준의 반대 또한 아닙니다.)

장 교수는 50만이 넘는 독자를 거느린 강력한 지식인입니다. 그러기에 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나라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장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 놨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나도 한국과 영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장 교수 뜻대로 경제 민주화 운동이 뜻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복지 국가 운동도 같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일개 지식인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요?

난 이 논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절대적 대립이라도 있는 양 비춰지고 있는 이 상황(막연하게 같은 편이리라 짐작하고 복지 국가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을 모두 지지하던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겁니다)은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엉성한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학계 심포지엄 같은 형식으로 치밀하게 따져 볼 수도 있겠죠.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럼, 조만간 직접 얼굴 맞대고 이런 얘기를 나눕시다.

2012년 5월 2일

정태인 드림.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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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4 / 14 정태인/새사연 원장

4·11 총선 결과에 가장 활짝 웃었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국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재벌 개혁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이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 게 바람직할까?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이 두 책을 읽고 새로운 논쟁의 출발점이 될 만한 서평을 보내왔다. <편집자>

 

과연 합의가 가능할까?

인터넷 언론에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 광고가 뜨나 했더니 이어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의 이슈로 재벌 개혁을 꼽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입장에서는 이 두 진영 간의 논쟁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할 참이었다.

때마침 '프레시안 books'에서 이 두 책의 서평을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고 기꺼이 수락했다. 쾌도난마와 종횡무진이라….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겠지만 패기가 넘친다. 더구나 두 책은 같은 디자이너가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표지 분위기까지 비슷하다. (실제로 두 책은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 편집자)

김상조와 장하준은 내가 잘 알고 또 존경하는 후배들이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론적으로 장하준 쪽에 속하고 다른 경제 정책에 관해서도 거의 의견이 같다. 단, 재벌 개혁과 중앙은행 문제를 빼고…. 이해 당사자 자본주의라든가, 산업 정책의 중요성, 제조업 중시, 사업 서비스의 강조에서 그렇다.

동시에 나는 김상조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재벌 개혁 운동에 찬사를 보낸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김상조가 해 온 일은 가히 경이롭다. 아래와 같은 경제개혁연대의 창립 선언문은 그의 이런 정신을 잘 보여준다.

"거대 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종횡무진 한국 경제>, 18쪽)"

삼성과의 피를 말리는 싸움에서 정확한 수치와 법적 근거에 매진한 김상조가 보기에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나 청사진은 허망할 것이고, 또 그 때문에 진보 진영이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여 공공 토론 장소에서도 진보 쪽의 추상적인 주장에 그는 과도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 대상 중 하나이다.

 

▲ <종횡무진 한국 경제>(김상조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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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 경제>는 이런 김상조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지난 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한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에 이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196쪽)

나아가서 김상조는 제도의 상호 보완성이나 경로 의존성을 고려해서 새로운 운동 방향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아! 이렇다면 이른바 참여연대 대 대안연대(나도 회원이었던 이 단체는 2010년 2월 25일 해체했다) 간의 오랜 논쟁, 그러나 별로 생산적이지 못했던 논쟁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를 덮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첫 몇 쪽을 읽었을 때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생각이 비슷한 세 사람이 대담을 한 기록이라서 아마도 분위기의 증폭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은 이들이 말하는 "시장 경제론자" 또는 "경제 민주화론자"가 누군지 떠올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맨 마지막 쪽에 이르러서야 유종일, 김상조 등이 펴낸 <박정희의 맨얼굴>(시사IN북 펴냄)이 주된 표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원고 마감시간이 지났으니까….

세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약 100쪽까지는 장을 넘길 때마다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어떻게 김상조가 신자유주의자란 말인가? 토빈세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시장 만능론자가 있을까?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강만수는 앞부분에서는 환율 방어에 나선 산업 정책의 화신이 되었다가 뒤에 가면 시장 개혁론자로, 그리하여 김상조와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된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개혁론자(즉, 나도 포함된다)들도 관료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를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실은 한편이었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가?

구체적인 사실이 어긋나는 것도 꽤 많이 눈에 뜨인다. 예컨대 2008년 금리 논쟁에서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금리 인상에 반대하였지만 당시 인상론자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처럼 두 자릿수로 올리자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 기억으론 기껏해야 0.25퍼센트에서 0.5퍼센트 인상을 주장한 것이었다.

물론 장하준의 말대로 금리는 둔탁한 정책 수단이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대안이 자본 통제라면 누구나 고개를 내두를 것이다. 갑자기 도입할 수 있다거나 미세 조정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나올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의 새 책에서 소개했지만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 정책, 외환 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한다면 자본 통제도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도 꽤 많은데 예컨대 종합부동산세 비판이 그러하다. 자산세와 소득세가 꼭 대립적인 것도 아닐 것이고, 장하준의 주장대로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자산 투기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리하여 실물 투자가 감소하는 상황이라면 자산 가격의 규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헨리 조지가 부동산 빼곤 시장이 완벽하다고 보았으니 종합부동산세 역시 틀린 처방이라는 식인데 이렇게 이 세상 모두를 시장 만능론자로 만드는 방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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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법이라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경제 안정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신자유주의자이며 주주 자본주의론자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면 보수주의자인데 거기다 자산 가격까지 떠맡으라니…. 말하자면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놓고, 또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서 신나게 두드려 팬 것이다.

다행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중간부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어쩌면 타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심사숙고하면서 단어를 골라 쓴 책과 그야말로 격정적인 대담의 구체적인 논리와 통계를 하나하나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불공정하다. 하여 여기선 재벌 개혁과 관련해서 타협점이 있는지만 살펴본다.

특히 장하준의 이론으로 재벌 개혁론을 만들면 어떤 모습이 될까가 책을 읽으면서 주로 한 생각이다.

이해 당사자 이론과 주주 이론 그리고 재벌개혁

나는 금융 세계화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가 양극화의 근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곧 나올 책에도 자본 통제와 거시 건전성 규제에 한 장씩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만악의 근원인 주주 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은 과연 무엇일까?

허망하게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 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 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 올릴까? 만일 주주 자본주의 규제, 예컨대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여 장하준이 원하는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의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이제 "재벌 해체"를 해도 무방할까?

불행히도 한 나라에서 당장 이런 효과를 낼 뾰족한 정책은 별로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 규제의 강화의 진행에 맞춰서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장하성이 참여연대에서 시작하고 김상조가 경제개혁연대에서 이어받은 재벌 개혁 운동은 주주 이론(shareholder theory)에 근거한 소액 주주 운동이었다. 사실 소액 주주 운동은 집단 행동의 딜레마(비용은 어마어마한데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거의 없다)에 속하기 때문에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야말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증권 집단 소송제라든가, 사외 이사 제도의 도입, 주주 대표 소송제, 집중 투표제 등의 도입을 그 누가 폄하할 수 있으랴. (정작 김상조는 제도의 보완성 문제 때문에 별 효과가 없었다고 반성하지만!)

그러나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며 회사는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는 단일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주 이론의 한계도 이 운동에 반영되었다. 물론 그렇게 짜여 있는 법적 현실에서 주로 소송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이 이론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김상조는 케인스주의자이고 원래 이론이나 이번 책으로 봐서는 이해 당사자 이론에 더 가깝다) 더 큰 범위의 재벌 개혁을 꾀한다면 주주 자본주의라는 협소한 틀은 정책을 옥죄는 차꼬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하준 등(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장하준은 장하성의 사촌동생이다!)의 이해 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하준은 본격적인 이해 당사자 이론을 전개하기보다 외국 자본의 재벌 매수를 걱정하고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주의를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대안은 경영권과 복지의 교환이라는 사회적 대타협이다.

이미 모든 세력을 다 장악한 재벌이 왜 이런 타협안을 받아들일까?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재벌과 관료 그리고 보수 언론의 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백보 양보해서 장하준의 주장과 같은 사회적 타협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재벌 규제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야 재벌도 움찔해서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겠는가?

만일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하면 재벌 개혁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는 재벌을 '팀 생산(team production)'으로 본다. 재벌 시스템을 구성하는 이해 당사자 즉 총수 등 지배 주주, 경영자, 노동자, 하청 기업(supplier), 은행 등 채권자와 같은 1차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벌의 영향을 받는 소비자나 지역 공동체 등 2차 이해 당사자가 모두 참여해서 공동의 성과를 거두는 생산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팀 생산도 사회적 딜레마에 속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해 당사자 간의 협동을 자아내서 최선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가 핵심적 과제가 된다. 그동안 행동 경제학·실험 경제학, 진화 심리학, 진화 생물학 등이 밝혀낸 협동 진화의 규칙들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재벌 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다.

각 이해 당사자의 권한, 즉 탈출이나 목소리에 의한 견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협동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수탈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팀 생산 전체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소액 주주 운동이 그동안 이뤄낸 성과는 지배 주주에 의한 소액 주주의 수탈, 즉 터널링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수탈의 말단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하청 기업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익을 공유하게 하는 정책은 주주 자본주의 이론에서 도출될 수 없다.

팀 생산 이론과 협동의 규칙을 응용한다면 이해 당사자의 세력화(empowerment, 대니얼 퀸 밀즈)와 이윤 공유가 전체 효율성 제고의 전제라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협동이 이뤄지려면 무임 승차자(free rider, 여기서는 재벌 기업)에 대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응징(punishment)이 가능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 최저 임금 인상, 하청 기업의 집단 교섭권, 공정거래위원회의 강화, 소비자 권리 강화 등이 이해 당사자 세력화에 해당하는 제도들이다. 즉, 나는 현재의 재벌 체제를 그대로 놔두어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로 경제 민주화에 의해서 재벌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이익 공유다. 팀 생산의 결과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분배 정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팀의 효율성 제고도 결정한다. 조지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 그리고 실험 경제학의 임금 게임(투자 게임)에서 잘 드러났듯이 생산과 분배는 분리되지 않는다. 예컨대 준거 임금(reservation wage)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한다.

1980년대 이래 리처드 프리먼 등 미국의 '공유 자본주의론(shared capitalism)'자들은 종업원 지주제, 이윤 공유제 등이 이해 당사자의 경영 참가와 결합될 때 가장 성과가 좋다는 것을 장기간에 걸쳐 실증했다. 이 이론을 재벌 시스템의 하청 기업과 지역 공동체에까지 적용하는 것이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한 재벌 개혁의 핵심 중 하나이다. 노동자와 하청 기업이 모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경영에 참여한다면 장하준 등이 걱정하는 적대적 인수·합병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다. 이미 재벌의 규모는 너무나 커져서 대마불사의 경지에 이른 지 오래다. 즉, 재벌 계열사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과연 장하준의 생각대로 주주 자본주의의 압력만 없애주면 재벌들이 효율적으로 신산업에 진출해서 과거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만일 그 신산업 진출이 실패해서 조조의 선단처럼 화공 한 방에 무너져 버린다면? 새로운 산업의 진출이나 연구개발(R&D) 투자 증대, 기초과학이나 인력의 양성이야말로 국가의 산업 정책이 할 일이지 재벌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이런 인식은 세계 금융 위기 때 세계 주요 20개국(G20)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의 거시 건전성 규제를 논의한 배경과 동일하다. 이때는 국민 전체가 이해 당사자가 된다. 이 관점에서는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출자 총액 제한 제도나 순환 출자 금지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런 제도가 재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면밀히 검토해서 수량 규제의 폭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즉,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도 이해 당사자의 세력화, 이윤 공유제, 사전 규제로 구성되는 종합적인 재벌 개혁 이론을 만들 수 있다. 김상조는 이미 새로운 재벌 개혁 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일 장하준이 재벌의 효율성에 대한 선험적 가정을 완화한다면 다같이 재벌 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희망적인 것은 김상조와 장하준이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 집단 법이란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고 일부 규제는 약화시키되 총수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등도 재벌이 영리 병원을 주장하는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 진출하는 데 적극 반대하고 있으며 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동일하다.

우리는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한 재벌 개혁을 위해 '기업 집단 법', '이윤 공유에 관한 법' 등을 제정하고 상법,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향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 재벌도 그리고 한국 경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김상조, 장하준 두 경제학자가 이렇게 타협하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둘로부터 동시에 협공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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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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