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2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기금운용 현황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에 대한 투자지분을 지난해 상당히 늘렸음을 공시했다. 지난해 유럽의 위기 여파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영향으로 인해 외국인의 주식시장 유입이 여의치 않자, 국민연금이 매물을 상당히 받아 줬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더욱이 지난해 말 기준 기금자산 규모가 344조원을 넘어갈 정도로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데다, 기금의 주식투자 비중도 20% 이상 늘리면서 국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국민연금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면 국민연금이 지분을 투자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은 얼마나 되고 어느 정도나 투자하고 있을까. 일단 5% 이상 투자하고 있는 기업이 자그마치 149곳에 이른다. 5% 이상 투자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에 대해 회계장부 열람 청구권, 사외이사 파견권, 이사해임 청구권, 임시주총 소집권 등 기업경영 참여와 관련한 중요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비중이 조금만 더 높으면 최대주주가 될 수 있을 정도다.

국민연금기금 340조원 중에서 20% 남짓한 74조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채권투자로 돌리는데,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74조원도 주식시장에서는 엄청난 것이다. 정확히 74조원 가운데 국내 우량기업에 직접 장기투자한 지분의 현재 시가총액은 32조원 정도다. 우리나라 유가증권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1천조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시가총액의 3% 이상을 보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필요하면 그 이상을 보유할 여력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노후 대비로 조금씩 모아 둔 기금이 단일 펀드로 세계 규모 5위, 국내 최대 기금이 된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1천조원 이상의 세계 최대 펀드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연금은 어느 회사에 얼마나 지분투자를 하고 있을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핵심 3대 민영은행인 KB금융과 신한금융·하나금융의 최대주주가 모두 국민연금이라는 사실이다. 정부지분이 다수인 우리은행도 4.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가계부채가 1천조원이 넘어갈 정도로 계속 불어나 위험요소로 등장하고 있지만 막상 은행은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낼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 은행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은행 수익을 배당으로 모두 털어 버리지 말고, 내부 자본여력을 확대하고 국민들에게 더 나은 금융서비스를 하라는 취지의 방향 제시를 올해 주주총회에서 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관심이 집중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최대주주는 7%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생명이다. 국민연금은 2대 주주로 6% 지분을 가지고 있다. 총수인 이건희 부부는 4% 정도를 가지고 있으니 어쨌거나 총수의 지분보다 많다. 현대차·엘지전자 모두 국민연금 지분이 5%를 넘는다. 지난해 4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이건희 회장보다 국민연금의 삼성 지분이 더 많다.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호언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드디어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재벌 대기업 개혁을 압박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진단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연금 사회주의’, ‘관치’라는 오래된 이슈가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서 주주총회 계절이 가까워지고 있다. 대부분의 12월 결산 법인들이 빠르면 2월부터 4월까지 주주총회를 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예고했던 대로 국민연금이 대기업 주주총회 장에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하게 될 것인가. 또는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하면 이것이 재벌개혁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연금공단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적극화할 것이라고 표명을 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만약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한다면, 기존에 시민·사회단체가 소액 주주들을 모아 주주총회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한 번도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주주권을 행사해 보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기대한다. 이는 연금 사회주의냐, 아니냐 하는 여부를 떠나 법적 권리이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므로 필요가 있으면 해야 한다. 일부에서 나오는 “주주권을 행사하면 관치에 대한 비판이 일고 외국 주주가 떠날 수 있다”는 비판은 허황된 것이다. 오히려 자금력과 안정성을 가진 국민연금이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주주로서 감시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어떤 주주라도 반길 일이지 경계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 소액주주운동이 비판받았던 것처럼 국민연금도 주요 주주로서 수익이나 주가·배당과 같이 주주이익 차원에 국한된 이슈를 넘어설 수 있는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라든지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라든지, 납품기업에 대한 과도한 가격 인하 등에 대해 주주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경영참여를 할 수 있는가. 국민연금이 국민의 돈이고 국민은 투자수익 몇 푼보다 재벌개혁으로 얻을 이익이 더 크다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정부가 이런 수준의 주주권 행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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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삼성, 참 소중한 기업이다. 진정이다. 삼성은 대한민국 경제가 자랑하는 ‘브랜드’ 아닌가. 굳이 삼성을 ‘소중한 기업’이라고 들머리에 못박아두는 이유는 순전히 윤똑똑이들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을 조금이라도 비판할라치면 대뜸 ‘콤플렉스’ 아니냐고 뱁새눈을 건넨다. 더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철없는 짓이라고 도끼눈 부라린다. 어김없이 ‘친북좌파’ 또는 ‘수구좌파’라며 살천스레 딱지를 붙이는 마녀사냥꾼도 활개 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전혀 아니다. 삼성을 비판하는 이유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삼성의 ‘황제’ 이건희를 비판하는 까닭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삼성이어서다. 실제로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기업’이라 할 만큼 높다. 삼성 때문에 대한민국이 먹고 산다는 말이 무람없이 나올 정도다. 지나친 과장이지만 삼성의 비중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의 천박성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드러내는 천박성이다. 물론, 젊은 세대가 삼성그룹에 들어가려고 줄 서 있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삼성 임직원의 평균 임금이 높다는 사실도, 세밑이 오면 보란 듯이 파격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사실도, 등기이사들이 받는 천문학적 연봉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결코 아니다. 삼성의 피라미드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최근 열흘 사이에 곰비임비 불거졌다. 저마다 한국 언론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신문들이 모르쇠 했지만 하나하나가 일과성으로 넘겨선 안 될 사건이다.  

먼저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투신자살 97일 만인 4월17일에 장례를 치른 사건이다. 설렘으로 입사한 스물 네 살의 ‘신입사원’은 1년도 안되어 화학물질로 인한 피부병에 걸리고 긴 시간 노동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우울증으로 병가 끝에 다시 현장에 복귀한 날, 기숙사에서 몸을 던졌다.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는데도 방치된 사실이 드러났다. 항의하는 유족에게 경비들은 폭력까지 휘둘렀다. 유족과 민주시민들이 끈기 있게 맞서자 삼성은 95일 만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그 과정에서 신문과 방송은 어떤 구실을 했는가. 자문해볼 일이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반올림’은 4월 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제보 받은 120명 가운데 백혈병을 비롯해 림프 조혈계 암 환자가 56명에 이른다. 25명은 이미 숨졌다. 뇌종양, 유방암, 피부암도 있다. 삼성전자가 가장 많다. 반올림은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 가스와 물질에 직접 노출된 탓이라고 분석했다. 기자회견에서 충격적 진실을 밝혔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외면했다. 

삼성에스디아이 직원들이 해고노동자를 미행하다 덜미 잡힌 사건까지 일어났다. 4월 13일 깊은 밤중에 일어난 일이다. 미행하다 되레 꼬리가 잡힌 ‘직원’은 항의하는 해고 노동자를 차에 매달고 도주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다행히 이를 목격한 택시노동자가 신고해 끔찍한 일은 막았다. 경찰에 연행된 직원은 ‘신조직문화사업국’ 소속이란다. 해고노동자 사이에서 노조설립을 감시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대체 저들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하는 걸까, 궁금할 정도다. 더 생게망게한 일이 있다. 그 명백한 불법 행위마저 자칭 ‘정론지’들은 눈감았다. 

그래서다. 묻고 싶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과연 그래도 좋은가. 언론인이라면 객관적으로 짚어보라. 대체 어떤 기업이 삼성처럼 사회적 문제를 곰비임비 일으키는가? 열흘 사이에 일어난 세 사건이 모두 시들방귀로 여길 사안인가? 신문과 방송이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했기에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언론은  제구실해야

삼성에서 불거지는 문제 앞에서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며 짐짓 초연할 일이 아니다. 생산 현장에 발암 물질이 나오거나 노동조합 결성을 가로막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 수준과 곧장 직결된다. 그 말은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의 시각에 따라 달리 볼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윤똑똑이들 선동처럼 수구좌파의 ‘삼성 죽이기’는 더욱 아니다. 정반대다. 더 늦기 전에 삼성을 살리자는 절박한 제안이다. 

무릇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마련이다. 긴 인류의 역사가 ‘재스민 혁명’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입증해주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 무장 커져가는 삼성의 권력, 삼성 내부에서 황제 이건희가 만끽하고 있는 권력은 절대적이다.

그래서다.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언론이 저 섬뜩한 천박성을 내내 모르쇠 한다면, 삼성과 황제 이건희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제나 삼성을 두남두는 언론에 진정으로 호소한다. 더 늦기 전에 삼성을 살려야 한다. 삼성, 참 소중한 기업 아닌가.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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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이 글을 이건희 회장에게 건넬 용기 있는 인재가 과연 삼성에 있을까? 칼럼을 쓰며 슬그머니 묻고 싶다. 삼성과 이건희를 시나브로 망치는 사람들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과 직접적 연관성을 맺고 있는 <중앙일보>를 보라. 초과이익공유제 소동 때와 똑같이 다시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사설 제목으로 삼았다.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사설 제목(2011년 4월23일자)이 그렇다. 이건희 회장이 보기엔 <중앙일보> 논설 책임자가 일을 참 잘한다며 흐뭇했을 성 싶다.

하지만 과연 저널리즘으로 보아도 그럴까. 아니다. 비단 <중앙일보>만이 아니다. 어떤 언론인은 애플의 소송제기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던진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발언을 두고 “짧으면서 핵심을 찌르는 이건희 식 화법은 마치 화두를 던지듯 빠르고 날카롭다”고 썼다. 민망하다.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 이건희 발언 찬양

어떤가.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발언이 정말 탁월한 화법일까? 심지어 <중앙일보>가 사설 제목으로 올릴 정도일까?
상식으로 짚어보자. 그 말은 날카로운 화법이긴커녕 대단히 잘못된 비유다. 스스로 삐죽 나온 못을 자임하고 있지 않은가. 굳이 냉철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못이 나오면 때려야 한다. 그래야 모두 안전하다. 나온 못은 잘못 아닌가.
물론, 나는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화법을 두고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희는 화법 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참모들과 들꾀는 언론인들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건희의 잘못된 비유를 사설 제목으로 삼아 짐짓 위엄을 떤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활약이 돋보이자 사방에서 때리기가 시작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며 ‘전 세계에서 우리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으로 한국 기업이 잘하면 잘할수록 시샘과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게 분명하다.”

사설 논리 전개로 보아도 ‘튀어나온 못’의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튀어나온 못을 때리는 것은 시샘이나 견제가 아니다. 응당 해야 할 옳은 일이다. 회장 이건희에게 아첨을 늘어놓다 보니 그 잘못된 비유가, 그 품격없는 화법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별히 할 일 없어서 집무실에 처음 나온 그룹 총수

더 큰 문제는 단순한 화법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 집무실에서 처음 나온 그에게 기자들이 출근한 이유를 묻자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왔다”고 답했단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할 일이 없어 집무실에 나왔다? 묻고 싶다. 그 말살에 쇠살을 비판하는 언론은 왜 없는가? 삼성전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품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애먼 젊은이들이 곰비임비 숨져 원혼이 되어가는 데도 그 ‘총수’는 “할 일이 없어” 집무실에 처음 나왔단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그의 화법을 찬양한다. 사설 제목으로 삼는다. 그들은 누구인가? 명토박아둔다. 삼성을, 이건희를 망치는 사람들이다.
새삼 궁금하지 않은가. 이 글을 이건희 회장에게 건넬 용기 있는 인재가 과연 삼성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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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이명박과 이건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력자다. 누가 더 권력이 센가를 묻기란 이미 철없는 짓이다. 아직도 이명박의 권력이 세다고 혹시 생각한다면, 2011년 현재 누가 권력을 한껏 누리고 있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보라.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권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를  취재하는 기자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서슴없이 ‘낙제’라는 말을 들먹였다. 물론, 이건희는 경제 정책을 낙제라고 명토박지는 않았다. 짐짓 노회하게 “흡족하다기 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어떤가. ‘낙제’라고 한 말보다 더 비위 상할 성싶다.

실제로 그의 말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원한 소리’는 없었다. ‘총대’를 멘 것은 청와대가 아니었다. 나흘 뒤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이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건희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건희  발언에 장관 “수정하겠다” 꼬리말

신문과 방송은 윤증현의 비판을 간단히 보도하거나 모르쇠 했다. 비교적 길게 보도한 한 신문은 윤 장관이 “강하게 비판했다”고 기사화 했다. 하지만 정작 보도 내용을 짚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윤 장관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극복에 정부 역할이 상당했다는 건 국내뿐 아니라 외국 석학과 언론, 국제기구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장관의 말에선 어딘가 ‘아랫사람’의 억울함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더 있다. 이건희에게 정부 정책 중 어떤 면이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인지 묻고 싶다는 발언까진 강경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곧이어 “지적하면 수정 하겠다”고 말했다. 얼핏 자신감 넘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장관이 굳이 ‘지적’이나 ‘수정’이라는 말까지 쓸 필요가 있었을까? 전형적인 아랫사람의 화법이다.

 

대한민국이 ‘이건희의 세상’임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어서일까. 정부의 경제정책에 낙제점만 거론한 게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정운찬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를 살천스레 비판했다.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나 경제학 공부를 해 왔으나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원색적 발언에 이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 어떤 국가에서 쓰는 말이지 모르겠다”며 빨간 색깔까치 칠하고 나섰다. 이건희가 삼성의 황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황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재계’에선 “시원하다”거나 “할 말을 제대로 했다”고 반겼다.

 

물론, 서울대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경제학 교수 정운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이익공유제를 제안하게 된 가장 직접적 계기가 바로 삼성이라고 말했다. 색깔론이나 이념 잣대로 매도하는 언행에 발끈한 심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공부한 책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의미를 평가절하 하시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며 사뭇 ‘예의범절’을 지켰다.

 

기실 정운찬의 제안은 스스로 설명했듯이 경영자, 노동자, 협력업체가 공동의 노력으로 달성한 초과이익이라면 협력업체에도 그 성과의 일부가 돌아가도록 하자는 성과공유제의 일종이다.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정운찬의 제안은 기업의 이익 잉여금이나 주주들 몫을 강제로 빼앗겠다거나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물론, 이 신문이 정운찬을 두남둔 것은 전혀 아니다.

 

양비론을 폈을 뿐이다. <중앙일보>는 더 나아갔다. “초과이익공유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건희의 발언을 아예 사설 제목으로 삼아 정운찬의 제안이 자본주의와 헌법 정신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란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부르댔다. <동아일보> 사설 또한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기업의 자율적 상생 실천에도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지금 <중앙일보> 고위 언론인들에게 이건희가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고 있거나 <동아일보>가 이건희 가문과 사돈을 맺은 사실을 몰라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다만,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거침없이 행세하고 있는 한 기업인 앞에 언론의 본령은 어디에 있는가를 함께 성찰하고 싶을 뿐이다.

 

시각차 아닌 사실의 문제… 언론 할 일은

만일, 정운찬이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가 참으로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면, 헌법정신을 뒤흔드는 사안이라면 저들이 벌이는 색깔론이나 양비론에 굳이 비평을 하고 나설 이유는 없을 터다. 하지만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다. 이정우 교수(경북대·경제학)도 지적했듯이 초과이익공유제는 엄연히 경제학 책에 나오는 개념이다. 그 제도의 효시 또한 미국이다. 제퍼슨 정부 시절에 이미 도입했다. 과거의 제도만이 아니다. 2011년 현재 삼성전자보다 더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애플사는 협력업체와 3:7로 이익을 나누고 있다.
 
사실관계가 그렇다면 언론이 할 일은 무엇인가? 마땅히 한 기업인의 오만한 언행, 사실과 다른 색깔 선동을 비판해야 옳다. 정치권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이건희에게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으로 삼성을 비롯한 수출대기업들이 얼마나 큰 이익을 챙겼는지를, 반면에 서민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일러주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1인 사면’으로 이건희가 얼마나 큰 혜택을 누렸는가도 새삼 깨우쳐주어야 옳다. 대통령 이명박의 ‘억울함’을 위해서가 아니다. 새삼 강조하지만 모든 권력의 감시가 저널리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11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자리에 있든 스스로에게 한번 쯤 진지하게 묻고 정직하게 답할 때다. 나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온전히 저들을 감시하고 있는가를, 이명박과 이건희를.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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