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유럽위기가 또 다시 위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하루에 50포인트 이상씩 연속적으로 주가가 추락하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도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중심에 그리스의 채무위기가 있다. 2010년 5월에 1차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만 2년이 지났지만 그리스 채무위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2차 구제금융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5월 6일 총선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제2당이 된 후 연립정부 구성이 실패하고, 6월 17일로 재총선 실시가 확정되면서 위기는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스 국민들이 총선을 통해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긴축을 거부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가 긴축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로 4개의 그리스 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전격적으로 차단했다. 그러자 5월 14~15일 동안 그리스 은행에서 12억 유로의 예금이 인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위기는 이제 마지막 임계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월 16일자 기사에서 향후 그리스의 상황은 4가지 시나리오가 있다고 전했다. 첫째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로서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다. 둘째는 유로 존에 남아있되 유럽이 요구하는 긴축안을 거부하는 것이다. 6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좌파연합도 이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는 지난 3월에 유럽과 그리스가 합의한 긴축안을 재협상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 금융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유럽 전체가 침체에 돌입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마지막은 그리스가 기존 합의대로 긴축을 수행하는 것인데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현재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과 유로 존 탈퇴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뉴욕대학교의 루비니(Nouriel Roubini) 교수는 그리스가 유로 존을 탈퇴하고, 유로 국가들은 이 과정이 질서있게 진행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루비니 교수는 지난해부터 계속 그리스의 유로 존 탈퇴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탈퇴하는 것이 그리스와 유로 존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주장을 해왔다..("Greece should default and abandon the Euro", 파이낸셜 타임즈 2011.9.19) 긴급한 유럽의 상황과 그리스의 운명을 진단해보는데 루비니 교수의 주장은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

(Greece Must Exit)

 

2012년 5월 1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그리스의 비극이 막바지 상황까지 이르렀다. 올해 또는 내년 중에 그리스가 채무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 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6월 17일 2차 총선을 통해 들어선 새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유보한다고 해도 지금까지처럼 긴축과 구조개혁이라는 실패한 정책을 답습한다면, 그리스 경제는 회복되기 어렵다. 그리스는 채무부담의 악순환, 경쟁력 상실, 대외 부채, 그리고 계속 악화되어 가는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다. 이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질서 있는 디폴트와 유로 존 탈퇴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위원회(EC),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라고 하는 '트로이카(Troika)'가 이 과정을 조정하고 그리스와 나머지 유로 국가에 닥칠 붕괴 충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트로이카의 감독아래 이뤄진 최근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규모였다. 그러나 설사 더 많은 공공부채가 경감되어도, 조속한 경쟁력 회복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리스 경제는 성장 국면으로 되돌아오기 어렵다. 성장 국면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리스는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실질 통화가치 절하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가능한 선택은 유로화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인데, 이는 독일이 워낙 완강하고 ECB도 확장적 통화정책을 공격적으로 시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두 번째는 임금을 초과하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 구조적 개혁을 통해 단위 노동비용을 급격히 줄이는 것인데 역시 가능성이 없다. 독일이 이런 방법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10년이 걸렸다. 그리스가 앞으로 10년 동안이나 침체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세 번째 선택지는 내부적 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상품가격과 임금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향후 5년 동안 더욱 심각한 경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이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다. 자국통화 드라크마화로 복귀하여 급격한 통화절하를 통해 조속히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제를 성장세로 돌려놓는 것이다.

물론 유로존 탈퇴 과정은 상당한 외상을 남길 것이며, 이는 그리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로존의 핵심 금융기관들이 겪게 될 자본 손실이다. 그리스 정부와 은행,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유로표시 대외채무도 갑작스럽게 폭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은 모두 극복 가능하다. 2001년 아르헨티나도 달러 부채를 페소화(pesofied)시키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미국도 1933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당시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달러를 69%나 절하시켰다. 그리스도 유로 부채의 드라크마화(drachmatization)가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만약 은행들이 적절하고도 적극적으로 재자본화(recapitalization, 역주 - 화폐 가치나 물가가 변동할 때 그 수준에 맞도록 자본의 화폐표시액을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표시된 가격은 변할지라도 자본의 가치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를 수행한다면, 유로존의 은행들이 겪게 될 자본 손실로 인한 고통은 관리할 수 있다. 그리스 은행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은행 일시 휴업이나 자본 통제와 같은 임시적인 비상수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무질서한 예금 인출사태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안정기금(EFSF/ESM)은 직접적인 자본공급을 통해 그리스 은행의 재자본화를 수행해야 한다. 유럽 납세자들에게 그리스 은행을 인수인계해주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의 드라크마화로 인해 채권자가 부담하는 손실을 부분적으로 보상해줄 수 있다.

또한 그리스의 공공부채를 구조적으로 조정하여 감축시켜야 한다.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요구할 것은 부채의 액면가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만기를 10년 정도 연장시켜주고 이자를 줄이는 것이다. 이자 지불 유예 선언과 함께 민간 채권자에 대한 추가적인 헤어컷(채무탕감)도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지금보다 실질 GDP가 더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금의 경기침체 상태에서는 실질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부채의 실질 가치는 증가한다. (이를 부채 디플레이션이라 한다.) 하지만 유로존 탈퇴는 장기침체를 겪지 않고도 통화 가치 하락을 통한 즉각적인 경제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 드라크마화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무역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유로존 GDP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로화에서 드라크마화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 이상의 환율 하락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고 대외 부채가 드라크마화 되면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트로이카는 그리스의 환율이 오버슈팅(일시적 급등)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본통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다른 국가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적절하지 않다. 다른 주변 국가들은 이미 그리스와 같은 심각한 부채를 문제를 갖고 있으며,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그러한 예로 포르투갈을 들 수 있는데, 마침내는 부채를 구조조정하고 유로존을 탈퇴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같은 경우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여부와 관계없이 유럽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IMF와 ESM, ECB의 유동성은 유로존내의 문제가 되는 모든 국가와 은행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가 어떻게 되는지와 상관없이 유로존의 은행들은 조속한 재자본화를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의 직접적인 자본 개입을 통한 광범위한 해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이슬란드의 경험과 지난 20년 동안 많은 신흥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명목 통화가치 절하와 대외 부채에 대한 질서있는 구조조정과 감축은 경제의 지속성, 경쟁력, 성장을 가져왔다. 이런 경우들처럼 그리스 역시 유로존 탈퇴가 가져오는 부수적 피해를 감수하며 회복되어야 한다.

지금은 이혼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결혼과 같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이별이 되도록 규칙을 잘 세워야 한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질서있게 진행된다 해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무질서하게 그리스 경제와 사회가 붕괴되는 것이 훨씬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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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북]2012년 경제, 유럽을 알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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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는글

◆ 유럽 국채시장은 왜 붕괴하고 있는가(여경훈)
1.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유로 퍼즐
2.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3.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 유럽위기: 긴축은 위기해법이 될 수 없다(여경훈)
1. 긴축, 그 위대한(?) 반전
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꿈의 좌절(김병권)
1. 그리스 디폴트를 넘어 유로 존 존립이 의문
2.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에 대한 꿈
3. 유럽 연방과 유로 지역 해체 사이에서

◆ 유럽위기와 동아시아, 한국. (정태인)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분열의 벼랑 끝에 몰린 유럽, 세계경제를 흔들다.>>

 “그리스는 지난해 최대 공기업 그리스 전력과 피레우스 항구, 엠포리키 은행 등 팔릴만한 정부 재산은 모조리 매물로 내놨다. 국유자산을 매각해 2015년까지 500억 유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1월 이동통신 주파수를 3억 800만 유로에 매각한 것을 제외하곤 투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유서 깊은 고대국가 그리스가 팔리고 있다면서 국가 채무의 늪에 빠진 그리스가 중요 국유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을 소개한 언론의 보도 일부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국가들의 생활현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세계가 2008~2012년까지 중앙은행 자금을 풀고 정부 빚까지 내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반짝 회복 효과에 그쳤을 뿐,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좀처럼 성장활력을 찾지 못하고 장기 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누적시켰던 구조적 문제, 즉,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난제 때문이다.

1%를 위한 경제가 한계에 이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단기 수익추구, 노동 유연화는 다수 노동자와 국민들의 소득을 억제하면서 기업과 금융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의 1%는 소득이 비약적으로 팽창했고 99%의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었다. 각 국가 국민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구조화된 것이다. 그러나 99%의 국민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고서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팔수도 없고 경제가 발전할 수 도 없다. 그것이 경제다. 빼앗기는 자가 죽어 나가면 빼앗는 자도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2007년까지 경제가 발전한 것은 빚을 얻어서 소비를 늘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를 주도했던 미국 시민은 매년 자신이 번 소득의 110%를 소비했다.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고 소득을 모두 써버렸을 뿐 아니라, 추가로 빚을 얻어 소비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적자 호황’국면이 그렇게 1990~2000년대를 풍미하면서 미국인들이 ‘대 안정기’라고 부르는 호시절을 누렸던 것이다. 특히 구입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과 자동차 등을 빚을 얻어서 구매했고 그 결과가 2008년 금융위기다. 이제 금융위기로 부채를 더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늘어난 빚을 줄이는 국면으로 반전되었다. 번 소득의 최소한을 빚 갚는 곳에 쓰고 나머지를 모조리 소비해도 이제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근본적이 이유다.

그러면 적자호황 뒤에 이어진 부채 축소의 긴 침체기를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간단하다. 이제부터라도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로 되돌리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다. 돈을 쓰고 먹고살 수 있는 여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1%가 과거처럼 탐욕스럽게 이익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1%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99%에게 재분배 해주어야 한다. 사적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이 일을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에 전 세계 청년들과 시민들이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2011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물인 바로 ‘시위자(Protesters)'이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자, 스페인의 분노하는자. 미국의 월가시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는 99%(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걸고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2012년 세계경제의 희망은 99%운동이 얼마나 더 사회지형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역내 불균형이 유로 통화권의 진짜 위기

국내적인 소득 불평등에 이어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국제적인 불균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이다. 미국은 미국 시민을 고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했고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 산업만 비대화시켰다. 그 결과 돈은 중국과 월가로 집중되었다. 중국으로 흘러간 돈은 다시 미국 국채와 교환되면서 미국으로 되돌아 왔고 미국 시민들은 그것을 빚으로 얻어서 또 소비를 했다. 그럴수록 중국에는 미국 국채로 표시된 외환 보유고가 쌓여갔고, 반대로 미국은 국가부채와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국제적인 요인이 이것이다.

한편,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형에 비견되는 국제적 불균형이 바로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유럽의 위기 속에도 있었다. 유럽의 위기는 흔히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다. 정부의 방만한 살림운영과 ‘놀고 먹은’ 남유럽 시민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평가는 사태를 전혀 잘못 파악한 것이다. 복지지출이라면 남유럽 국가 보다는 북유럽 국가가 더 많다. 재정적자 수자만 놓고 보면 일본이 국내총생산 대비 220%로 세계 최고다. 미국도 100%에 근접했다.

유럽 국가채무위기는 유로 통화권 내부의 경상수지 흑자 국가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와 적자국가인 남유럽 국가 사이의 무역 불균형에 있는 것이다. 유로 통화와 단일시장으로 이들 사이의 경쟁력과 무역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가 커졌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 등에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빌려왔다. 그럴수록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채무는 점점 늘어갔다. 그러나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정책, 금리정책, 환율정책을 사용하여 경상수지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다. 이것이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위기로, 그리고 북유럽 은행들의 채권부실 위기로 표현된 것이다. 유로 통화권의 불균형이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고 유로 존을 붕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중국만이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인가?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세계경제는 동력을 잃고 또 다시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2012년은 유럽의 붕괴위기가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파급되면서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세 개의 주요 축에 의해 움직여왔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유럽의 유로 통화동맹과 그리고 세계의 생산기자 중국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금융은 이제 미래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고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2010년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로 통화동맹도 점점 더 근원적인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 유로 존의 해체냐 유럽 합중국을 향한 재정통합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유럽 시민의식(European citizen)이라는 연대의식도 갖춰지지 않은 채 자유 시장 논리에 의해 유럽의 통합을 기대했던 희망은 무너졌다. 현재로서는 유럽 주변국을 향한 거대한 마샬플랜 정도가 아니라면 재정통합은 불가능하다. 유로 존의 해체가 임박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세계경제 지탱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규모 10%를 차지하면서 2위 경제권으로 부상한 중국이 세계경제의 마지막 지탱축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수출을 매개로 글로벌 무역불균형에 편승하여 10%대의 안정적인 고성장을 구가해왔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호황의 덕을 보면서 그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대외적 요인에 의지해 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 위기가 현재화되자 2011년 말부터 중국 수출은 10%대로 줄었고 2012년은 한자리 수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표현대로 ‘중국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연 중국은 2012년에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2012년 세계경제 향방은 일단 유럽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세계경제를 알려면 유럽을 먼저 파악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긴박해지는 유럽위기 국면을 해부하고자 시사 주간지 <시사 IN>에 4차례에 걸쳐 유럽위기를 연재하고 유럽은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비관적임을 예시한 바가 있다. 올해 유럽의 향방을 판단하는 준거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테마북으로 엮어 보았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2년 1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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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12 / 28 정태인/새사연 원장

유럽의 위기와 한국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와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본문]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1915년 레닌은 “유럽합중국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 결론은 제국주의국가들끼리 지분을 평화롭게 분할하는 합중국은 불가능하니 헛소리 집어 치우라는 것이다. 굳이 흘러간 옛 얘기를 꺼낸 것은 당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도 혹할 만큼 ‘유럽합중국’ 또는 유럽공동체는 유럽의 ‘오래 된 미래’였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92년 마스트리트 조약을 맺고 99년 유로를 창설하면서 이 오랜 꿈은 실현되는 듯 했다.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지난 세 번의 연재로 현재 유럽 위기의 원인은 명확히 드러났다. 유럽의 문제는 내부 문제이다. 통화는 통합됐으나 재정은 통합되지 않았고 경쟁력이 약한 남부유럽의 곤경에 대해 독일 등 북유럽은 보조금을 주려 하지 않는다. 부르마교수(바드대)가 한탄한대로 “유럽 시민”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재정적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적자”(democracy deficiency)가 문제라는 것이다. 독일은 90년 동서독 통일 후 10년간 막대한 돈을 투입한 경험을 재현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남유럽 국가들의 방탕을 비난함으로써 공동체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12월 9일의 유럽 정상회의는 엉뚱하게도 재정긴축을 강화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오루크교수(옥스퍼드대)의 말대로 필요한 것은 “재정동맹”(fiscal union)인데 독일은 “재정안정동맹(fiscal stability union)”을 요구했고 이 회의는 기사회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정상회의(summit to the death)”로 끝났다. 이제 재정적자는 “투자적자”(investment deficiency, 스펜스)로 이어진다. 케인즈의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팸플릿에서 케인즈는 제1차 대전 이후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도록 한 베르사이유 협약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마디로 영국과 프랑스는 총수요를 외면한 인기영합적 결정을 내렸고 결국 자기 발등을 찍으리란 것이었다. 이제 그 주역만 독일로 바뀌었다.

유로가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유로존이 축소되면 강한 나라들의 “수퍼유로” 가치는 치솟을 것이고 북유럽 흑자의 대부분을 감당했던 “최종소비자” 남유럽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이제 유로로 표시된 채무를, 형편없이 평가절하된 드라크마(그리스)와 리라(이탈리아)로 갚아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임금과 디플레이션이라는 “내부 평가절하”도 만만치 않다. 루비니에 따르면 “앞으로 몇 년간 가격과 임금이 30% 정도 떨어져도 부채의 실질 가치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정부와 민간 채무자의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흑자국인 북부유럽(독일, 네델란드,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마저도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다.

오루크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관료의 민주주의에 대한 우위, 반 유럽 감정의 고조, 대중영합주의 정당의 득세가 나타날 것이고 폭력의 난무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음울한 예측을 한 뒤,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는 데 필요한 제도 변화를 이루지 못할 거라면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선언했다. 과연 유럽의 꿈은 사라진 것일까?

유럽공동체의 실패는 재정의 문제를 신자유주의적 금융(타국 은행에 의한 국채 매입)으로 해결하려 한 데 있다. 길은 아직 남아 있다. 재정통합같은 중장기 계획(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을 실행하기 이전에 긴급조치부터 취해야 한다. 일단 유럽 중앙은행이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이후에는 통화증발을 해서 유로의 가치를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교육과 의료, 그리고 약한 나라의 인프라 건설에 돈을 써야 한다. 그 이후에야 유럽중앙은행의 강화나 재정통합, 그리고 구조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 떠올릴 수 있는 정책은 케인즈의 청산동맹 구상이다. 케인즈는 브레튼우즈 회담에서 무역적자국에 돈을 빌려주는 청산기금(나중에 IMF가 되었다)을 구상하면서 흑자국도 그 규모에 따라 일종의 벌금을 물도록 하는 청산동맹을 제안했다.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부에서 실행할만한 제안일 것이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효한 제안이라면 유로존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와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동북아 대통령이 되시라”는 단 한마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 노무현 대통령은 나를 “동북아 비서관”에 임명했다. 미국과 EU, 그리고 동북아 공동체로 천하를 삼분해야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내 주장은 당연히 EU를 모델로 했다. 해서 동북아 위원회는 EU형 길을 집중 검토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의 경우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공동체를 용인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미국의 주적인 중국이 동아시아 내부에 있고 더구나 세계금융위기 이후 일취월장 해서 G2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미국의 견제가 훨씬 심해질 것이다. 또한 유럽에 비해서 인종, 문화, 종교가 제각각이고 영토분쟁, 역사분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유럽의 위기는 설상가상의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 나는 최근까지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특히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통화통합이 먼저 이뤄질 수도 있다는 ‘망상’까지 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현실화했고 최근의 위기로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에 AMF(아시아 통화기금)로 발전할 전망이 훨씬 밝아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금융위기는 달러의 위상을 여지없이 흔들었고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화체제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중 지역통화를 거쳐 새로운 기축통화로 넘어가는 아이켄그린의 경로가 가장 현실적으로 보였으니 아시아 통화(예컨대 ACU)의 창설마저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나 유럽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서 더 엄격한 필요조건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공동체가 원활하게 흘러가기 위해서 역내 경제 격차는 현재의 유럽 수준보다도 더 좁혀지지 않으면 안된다. 재정통합 없는 통화통합은 역내 격차를 위기로 몰고 갈 것임에 틀림없다. 이를 위해서 현재 4조 달러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공동관리하면서 여유자금(약 2조 달러)을 북한이나 몽골, 중국 내부 등 후진 지역에 투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재정통합을 위해서는 역내 후진 지역에 대한 보조금이 가능할만큼 “동아시아 시민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현재 곳곳에서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 분쟁, 영토분쟁을 고려하면 전혀 낙관적이지 않은 대목이다.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기술, 청소년 문화교류부터 시작해서 동아시아 시민이라는 귀속감을 높여 나가는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환경-에너지 협력도 시급한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은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공동의 프로젝트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의 앞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중국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였지만 유럽과 미국, 일본이 동시에 침체에 빠진다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독야청청하리란 전망은 ‘희망사항’에 가까울 것이다.

한은과 정부는 내년 우리가 경제가 3.7%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는 세계경제가 3.6% 성장할 것이라는 IMF와 OECD의 11월 초 전망을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OECD는 유럽 재정위기의 전개를 시나리오 별로 기본(baseline), 낙관, 비관으로 나눠 이에 따라 세계경제성장율을 각각 3.4%, 4.0%, 2.1%로 예측했다.

그러나 유럽 일부 국가가 무질서한 국가부도에 빠지고 이들 나라의 국채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의 은행들이 파산하는데 세계경제성장율이 2.1%를 유지한다는 게 합리적인 전망일까? 내 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UN의 최근 전망(“World Economic Situation & Prospect", 2011.11) 이다. 똑같이 유럽의 상황을 기준으로 세 시나리오 별로 UN은 각각 2.6%, 3.9%, 0.5%로 예측했다. 낙관 시나리오의 경우 OECD와 유사하지만 기본인 경우 0.8%p, 그리고 비관은 1.6%p나 차이가 난다.

현실 경제에서 통용되는 주먹구구 계산법에 따르면 세계경제성장율이 1% 줄어들 때 우리 수출 증가율은 약 4% 감소한다. EU가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사태를 수습하는 기본 시나리오라 해도 UN의 예측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정부 가정보다 1% 덜 성장한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1.6% 정도(4%*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40%) 추가로 감소한다.

한국에서 투자는 수출증가율에 강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증가율도 줄어들 것이다 또 정부는 내년에 소비가 금년의 증가율보다 0,5%p 높아져서 3.2%나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백화점 매출도 줄어드는 지금 이 예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그야말로 “야성적 충동”에 의존하는 투자를 빼더라도 내년 경제성장율은 정부의 예측에 비해 2% 가까이 낮아질 것이다. 내년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둡다. 특히 부동산 거품, 그리고 이와 연계된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내년 총대선은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안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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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11.1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남유럽 재정위기가 상황이 거의 막바지까지 온 이 시점에서, 도대체 유로 통화권을 왜 탄생시켰고 어떤 구상으로 발전시키려 했기에 지금의 심각한 유로 붕괴위기에 속수무책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1999년 1월 유로 통화권이 탄생했을 때만 해도 참가국들은 유로화라고 하는 안정적인 통화를 사용해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 역내 환전 거래비용도 절감하고 무엇보다 유로 역내에서의 장벽 없는 시장을 형성해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내에서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상품의 이동, 자본의 이동, 노동의 이동을 통해 북미 달러경제권에 맞서는 번영을 누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관세가 없어진 상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쟁력이 있었던 독일의 상품이 자유롭게 남유럽으로 수출됐지만 남유럽의 상품은 독일로 넘어가지 못했다. 상품 수출이 증가한 독일은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면 독일의 자본이 낮은 비용을 찾아 남유럽으로 이동하고, 남유럽의 노동은 일거리가 많은 독일로 이동하든지 해야겠지만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의 자본은 임금이 더 싼 동유럽으로 이동했고 남유럽의 노동자들은 짐을 싸서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지 못했다. 사람의 생활터전을 옮기는 노동의 이동이 자본의 이동만큼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어와 문화와 사회제도가 다른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결국 독일·네덜란드 등 경쟁력이 있는 국가의 수출은 계속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는 쌓였고, 반대로 남유럽 국가들은 적자가 쌓이고 경쟁력은 약화돼 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를 완화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가격 경쟁력을 올려야겠지만 유로 통화를 함께 쓰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경제성장률이 추락하고 실업이 늘고 소득이 줄기 시작했다. 국내 수요도 줄고 조세수입도 줄었지만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거나 부실은행을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조세수입이 줄었으니 국채를 발행해 재정여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유럽 국가들은 이미 국내 저축이 없어 국내에서 국채를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럴 경우 통상 그 나라의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국채 물량을 받아 주겠지만 남유럽의 중앙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 국채를 매입하지 않기로 약속해 버렸다. 남은 방법은 정부의 국채를 외국에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같은 유로를 쓰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은 별 제약 없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사들일 수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이 위험도가 높지만, 동시에 수익률도 좋은 남유럽 국가의 국채를 대거 사들여서 남유럽 국채를 소화해 줬다. 이런 식으로 남유럽 국가들은 대외 채무국이 됐고 북유럽 상업은행들은 채권자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재정적자가 늘고 비례해서 대외 국채 발행규모가 커지자, 위험을 느낀 은행들과 투자자들이 남유럽 국채시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이자율은 올라갔다. 끝내 유로 통화권 국채시장에서 추가적인 자금 동원이 어려워지면서 이른바 남유럽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로 통화권 17개 국가가 진정으로 하나의 연방국가라면 서울에서 세금을 많이 걷어 지방살림을 도와주는 것처럼,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이 나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지원에 들어가고 유로 통화권 전체적으로 소득과 부를 재분배해야 마땅하겠지만, 이들 국가들은 여전히 각기 다른 국가들이며 각기 국가적 이익과 실리를 챙기는 관성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 지금 남유럽 국가의 지원에 대해 독일·프랑스 등이 소극적인 현실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유로연방 건설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각국이 기꺼이 통화주권을 포기하고 단일 통화체제와 단일 중앙은행 체제를 만들었지만, 역내 국가들 사이의 경쟁력 격차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상품과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균형이 만들어지고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던 기대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통화 동맹이라는 강력한 환경 아래 국경을 넘는 무역과 자본, 노동이동의 자유화 기대는 이렇게 존립의 위기에 닥쳐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더욱 자유로운 무역과 이른바 ‘경제영토 확장’의 꿈을 가지고 한미FTA를 접지 않고 있다. 과연 한미FTA가 한국과 미국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고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해 줄까. 최근 유럽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국이 한국에 수출을 크게 늘리고 수입은 아예 줄여서 무역수지 적자를 작년 82억유로에서 올해 8월까지 28억유로로 줄였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유럽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EU FTA의 효과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대와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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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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