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8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를 두고 채무국가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주장했던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의 글을 소개한다. 그는 워릭대학교의 정치경제학부 명예교수이며 영국 아카데미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국내에서도 출판된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케인즈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0~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특히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예로 1970년대 미국 CEO들과 노동자들의 소득 격차가 30배였으나 오늘날에는 263배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이를 옹호하는 논리도 강화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쟁 시장의 완벽함이며, 임금은 개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류경제학의 논리이다. 즉, CEO의 한계생산성은 일반 노동자보다 263배나 많기 때문에 그 만큼의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키델스키는 개인의 한계생산성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현실에서 임금은 비슷한 직종의 임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우선 도덕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 때문에 문제이며, 현실적으로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문제라고 보았다.

 

나쁜 사회

(Bad Society)

 

2012년 7월 19일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불평등은 어느 정도나 용인될 수 있을까? 세계 경제위기가 일어나기 전에는 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용인되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랬다. 신노동당의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은 지난 30년 간 “더러운” 부를 모은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대해졌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신 경제”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전부였다. 새로운 부자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점점 늘려갔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도록 세금은 줄었으며, 파이를 더 공정하게 나누기 위한 노력은 사라졌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1970년대 미국 CEO의 세전수익은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익보다 30배 많았다. 오늘날은 263배 많다. 1970년대 영국 최고 CEO들의 수당을 제외한 기본금은 노동자들보다 47배 많았다. 2010년에는 81배 많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상위 20% 부자의 세후소득은 하위 20%보다 5배 빠르게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4배 빠르게 증가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평균 소득과 중위 소득 사이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평균 소득 이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난 30~40년 동안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80년 이후 한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은 물론이며 국가 간 불평등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불평등 정도가 횡보하다가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약화되었다. 개발도상국이 가속화되면서 선진국의 성장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흔들리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경쟁 시장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최고 CEO들은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보다 미국 경제에 263배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도 정부와 노동조합에 의해 인위적으로 경제적 격차가 줄어든 덕분에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더 빠르게 트리클 다운 하는 부를 갖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한계세율을 깎는 것뿐이다. 아니면 가난한 이들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켜서 그들의 고용주에게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득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계산 방법이다. 하지만 여럿이 협동하는 생산활동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의 한계 생산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최고 급여는 그저 유사한 직업의 다른 최고급여와 비교하여 결정될 뿐이다.

과거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바탕으로 임금 격차가 결정되었다. 일에 필요한 지식, 기술, 책임감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높은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와 최하 사이의 격차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유지된다. 상위 기업의 월급이 평균 임금보다 20~30배 이상 많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의사나 변호사의 소득은 제조업 노동자보다 5배 정도 많았을 뿐이다. 오늘 날처럼 10배 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 활동의 가치에 대해 계산하는 상식적이고 비경제적인 방식이 깨지면서, 오늘날과 같이 임금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식이 등장했다.

가격으로부터 가치를 구별하는데 실패하여 만들어진 이상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것이 타당할 수 있다. 나눌 만한 충분한 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전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소득을 1% 올려주려면 경제는 3%씩 증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일반 대중의 인적 자본이 막대한 부, 유리한 가족 환경과 인맥 등에 의해 더 많은 교육적 혜택을 얻는 소수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방법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더 광범위한 소비의 기반을 얻기 위한 안전한 길이 바로 재분배이다. 또한 재분배 자체가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다.

소득 재분배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부자, 더 부자, 슈퍼 부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부를 얻는 식으로 진행되는 끝없는 경제적 성장의 반증이다. 이는 도덕적으로도 잘못이며, 실질적으로도 좋지 않다. 도덕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은 삶이란 저멀리에 있어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결합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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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12 / 05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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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Euro Puzzle

-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본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Euro Puzzle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714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컬럼에서 유럽위기의 퍼즐은 자신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라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일본의 10년 국채금리는 1.09%인데 비해, 이탈리아는 5.76%에 달한다. 실제 나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풀어야 할 중요한 퍼즐이다.”

지금 남유럽 위기는 재정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표현되는 방식은 국채시장의 금리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뛰어오르면서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남유럽 이탈리아나 일본이나 고령화 문제와 높은 정부부채 문제 등 두 나라가 겪고 있는 상황은 유사하다. 더욱이 일본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가 넘지만 이탈리아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장의 압력에 총리가 사임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금융 상황은 심각하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스페인보다 훨씬 심각하다. 하지만 영국의 국채금리는 2% 미만이지만 스페인은 이미 6%를 넘어섰다. 그리고 스페인 또한 정권이 교체되었다.

왜 그런 것일까. 노벨경제학상의 권위가 무색하게 크루그먼은 4개월이 지난 11월이 되어서야 퍼즐을 풀어낸다.

유로화에 가입함으로써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실제로 다른 나라의 통화로 차입해야 하는 제3세계 국가와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유로지역 국가들은 금융시장에 위기상황이 발생해도 자신의 통화를 발행할 수 없기 때문에, 국채시장의 자금조달 경로가 붕괴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유로표시 국채를 발행하고 있지만, 국채금리를 조절하기 위한 통화정책에 개입할 수 없다.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채택함으로써 남유럽 국가들은 통화, 환율, 재정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국채시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떠안게 된다. 이는 유로시스템의 근본 문제를 연방국가인 미국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미국도 연방정부 재정적자 이상으로 주 정부 재정위기가 심각하다. 하지만 미국의 연방정부는 GDP20%에 달하는 예산을 통해 재정위기에 직면한 주 정부에 자금을 이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의회의 예산은 GDP1%에도 미치지도 못하고 재정 지원 메커니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이 국채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에서 주 정부의 재정위기는 연방정부와 공동으로 책임을 지지만 유럽에서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개별적으로 떠안는 것이다. 이것이 유럽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인 것이다.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또 하나는 유럽과 달리 미국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국채 매입을 함으로써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국채 이자비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본과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럽중앙은행은 구제금융 금지 조항’(리스본 조약 125)에 따라 회원 국가의 국채를 원칙적으로 매입할 수 없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독일이 매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유럽 국채시장에서 개별 국가는 회사채나 지방채를 발행하는 기업이나 주정부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시장 논리에 따라 이자를 물어야 한다. 더욱이 가능하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민간 경제주체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재정위기로 시장의 불신을 산 남유럽 국가의 국채 금리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도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 위기가 심화되기 시작한 20105월부터 유럽중앙은행은 채권매입 프로그램(Securities Market Programme)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위기가 확산되자 시장의 압박에 못 이겨 다시 국채를 매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매입한 총액이 2000억 유로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연준이 1, 2차 양적완화를 통해 2조 달러가 넘는 채권을 매입하였고 적어도 2013년 중반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그 결과 최근 그리스 포르투갈은 물론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4% 수준에서 2%p 이상 상승하여 7%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리가 1%만 상승해도 연간 80억 달러 상당의 이자비용이 증가한다. 금리상승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은 추가 증거금(margin call) 확대와 신용등급 강등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유럽과 미국, 일본의 기관투자가들은 남유럽 국채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앞 다퉈 인출하고 있다. 뱅크런(Bank run)과 비슷하게 이른바 국채런(Bond run)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 만난 고기처럼 신용부도스왑(CDS)의 투기적 거래는 국채시장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남유럽 위기의 현재인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등 중심국으로 위기가 확산되려는 조짐이 뚜렷하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경우 국채금리가 3.5%까지 상승하여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1.6%까지 확대된 것이다. ‘유로존 붕괴의 리스크가 국채시장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프랑스와 독일이 자국의 은행이나 유로화를 방어하기 위해 구제금융에 개입하면 신용평가기관은 프랑스와 독일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개입에 따라 국채금리가 하락하면 시장이 안정을 찾고, 다시 금리가 상승하면 시장이 불안에 떠는 것도 유로체제의 본질적 문제점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지금 유럽의 위기는 유로화에 갇혀있는 국채시장이 나라별로 차례로 붕괴되면서 유로 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그런데 유로 채권시장의 붕괴 뒤에는 이를 촉발시킨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유로체제 내부 국가 사이의 경상수지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로 17개국을 하나로 보면, 2010GDP대비 0.1% 수준의 흑자를 이룰 만큼 경상수지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경상수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로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유로 통화 통합이후 독일 등 산업경쟁력이 있는 국가와 남유럽 국가들 사이에 경쟁력 격차가 줄어들기 보다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남유럽 국가들은 국채 발행을 통해서 흑자 국가로부터 자본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통상 이러한 불균형은 적자국의 명목환율을 평가절하 하고, 흑자국은 평가절상 하여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단일통화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명목환율의 조정은 불가능하다. 명목환율의 조정 메커니즘이 사라진 후부터 적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이에 비해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의 흑자는 더욱 늘어났다. 독일의 경우 1990년 통일 이후 -1% 정도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유로화를 채택한 이후 200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하여 현재 GDP5%가 넘는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환율로 무역불균형을 조정할 수 없다면 유로지역 내부의 수출경쟁력은 물가의 상대적 수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단일통화가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함에 따라 금리와 환율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고, 상업은행은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에서 아주 저렴하게 유로화를 빌릴 수 있었다.

각국 정부는 저렴하게 국채를 발행하여 재정지출을 늘리고, 상업은행 또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버블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여 수익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적극 활용하였다. 지속적인 금리인하 또한 투자 및 소비 수요를 진작시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유로화 편입에 따른 일시적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이른바 저금리 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남유럽 국가들의 물가 또한 상승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독일은 금리 특수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전통적인 수출주도 성장정책에 따라 저임금 정책을 고수하여 독일의 수출경쟁력은 갈수록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침체되면서 이러한 순환은 끝나게 되고 감춰졌던 유로체제의 약점이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이미 일시적인 복지지출 축소나 일시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버렸다. 유로 단일 통화체제가 가지는 근원적인 제약성이 국채시장의 붕괴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상수지 불균형이 확대되는 한 남

유럽 국가들이 국채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 해결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위기는 눈앞에 있는데 재정통합이나 경상수지 조정과 같은 해법은 긴 시간을 요하는 과제다. 남은 길은 강력한 정치적 결단일 텐데 정권이 잇달아 바뀌고 있는 지금도 정치력은 복원되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주간지 시사인에 기고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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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11.1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남유럽 재정위기가 상황이 거의 막바지까지 온 이 시점에서, 도대체 유로 통화권을 왜 탄생시켰고 어떤 구상으로 발전시키려 했기에 지금의 심각한 유로 붕괴위기에 속수무책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1999년 1월 유로 통화권이 탄생했을 때만 해도 참가국들은 유로화라고 하는 안정적인 통화를 사용해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 역내 환전 거래비용도 절감하고 무엇보다 유로 역내에서의 장벽 없는 시장을 형성해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내에서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상품의 이동, 자본의 이동, 노동의 이동을 통해 북미 달러경제권에 맞서는 번영을 누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관세가 없어진 상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쟁력이 있었던 독일의 상품이 자유롭게 남유럽으로 수출됐지만 남유럽의 상품은 독일로 넘어가지 못했다. 상품 수출이 증가한 독일은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면 독일의 자본이 낮은 비용을 찾아 남유럽으로 이동하고, 남유럽의 노동은 일거리가 많은 독일로 이동하든지 해야겠지만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의 자본은 임금이 더 싼 동유럽으로 이동했고 남유럽의 노동자들은 짐을 싸서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지 못했다. 사람의 생활터전을 옮기는 노동의 이동이 자본의 이동만큼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어와 문화와 사회제도가 다른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결국 독일·네덜란드 등 경쟁력이 있는 국가의 수출은 계속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는 쌓였고, 반대로 남유럽 국가들은 적자가 쌓이고 경쟁력은 약화돼 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를 완화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가격 경쟁력을 올려야겠지만 유로 통화를 함께 쓰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경제성장률이 추락하고 실업이 늘고 소득이 줄기 시작했다. 국내 수요도 줄고 조세수입도 줄었지만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거나 부실은행을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조세수입이 줄었으니 국채를 발행해 재정여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유럽 국가들은 이미 국내 저축이 없어 국내에서 국채를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럴 경우 통상 그 나라의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국채 물량을 받아 주겠지만 남유럽의 중앙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 국채를 매입하지 않기로 약속해 버렸다. 남은 방법은 정부의 국채를 외국에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같은 유로를 쓰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은 별 제약 없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사들일 수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이 위험도가 높지만, 동시에 수익률도 좋은 남유럽 국가의 국채를 대거 사들여서 남유럽 국채를 소화해 줬다. 이런 식으로 남유럽 국가들은 대외 채무국이 됐고 북유럽 상업은행들은 채권자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재정적자가 늘고 비례해서 대외 국채 발행규모가 커지자, 위험을 느낀 은행들과 투자자들이 남유럽 국채시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이자율은 올라갔다. 끝내 유로 통화권 국채시장에서 추가적인 자금 동원이 어려워지면서 이른바 남유럽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로 통화권 17개 국가가 진정으로 하나의 연방국가라면 서울에서 세금을 많이 걷어 지방살림을 도와주는 것처럼,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이 나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지원에 들어가고 유로 통화권 전체적으로 소득과 부를 재분배해야 마땅하겠지만, 이들 국가들은 여전히 각기 다른 국가들이며 각기 국가적 이익과 실리를 챙기는 관성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 지금 남유럽 국가의 지원에 대해 독일·프랑스 등이 소극적인 현실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유로연방 건설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각국이 기꺼이 통화주권을 포기하고 단일 통화체제와 단일 중앙은행 체제를 만들었지만, 역내 국가들 사이의 경쟁력 격차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상품과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균형이 만들어지고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던 기대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통화 동맹이라는 강력한 환경 아래 국경을 넘는 무역과 자본, 노동이동의 자유화 기대는 이렇게 존립의 위기에 닥쳐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더욱 자유로운 무역과 이른바 ‘경제영토 확장’의 꿈을 가지고 한미FTA를 접지 않고 있다. 과연 한미FTA가 한국과 미국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고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해 줄까. 최근 유럽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국이 한국에 수출을 크게 늘리고 수입은 아예 줄여서 무역수지 적자를 작년 82억유로에서 올해 8월까지 28억유로로 줄였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유럽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EU FTA의 효과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대와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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