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2                                                                               박형준/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새사연_전망보고서]약엔강위안슈퍼달러의시대도래_박형준20150112.pdf




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제, 주거, 노동,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화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015년 전망 보고서 역시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들어가며

2008년 하반기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과 AIG의 파산 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를 엄습했던 글로벌 패닉이 발생한지 만 6년이 지났다. 공황의 상태는 벗어났지만, 세계경제는 여전히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방향성을 찾지도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2008년 위기를 계기로 ‘사망선고’가 내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세계경제체제의 주요 골간을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는 한마디로 이도저도 못하는 림보(limbo) 상황에 빠졌다. 과거처럼 ‘모두가 투자자가 되면, 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짓말이 통하경지는 않기에 투자와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으며, 그렇다고 새로운 담론을 가지고 경제를 재구성하지도 못하고 있다. 2015년에도 이런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찾기 힘든 가운데, 결과의 예측이 쉽지 않은 몇 가지 주요 변수들이 부각되고 있다. 첫 번째는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왔던 미국의 통화정책과 금리정책의 방향전환이다. 위기 직후부터 실시되어 왔던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이 이미 지난 10월 말로 종결되었으며, 제로금리 정책도 2015년 어떤 시점부터는 점진적 인상 쪽으로 바뀔 것이라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의 금융통화정책 기조 변화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2015년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이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변수는 환율의 변화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에 맞춰 발표된 일본의 양적완화 강화정책은 국제외환시장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게다가, 세 번째 변수인 석유 값의 폭락과 원자재 가격의 전반적 하락이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을 심화시키고 있고,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그 동안 고유가로 많은 수혜를 보았던 국가들을 디폴트의 위기로 몰고 있다.

환율의 급격한 변화는 국제시장의 가격변화와 연동되며, 무역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한국을 포함해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에서는 외환시장의 큰 변동성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산업전반에 파급효과를 낳는다. 2015년에는 국제외환시장의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달러 최대 보유국이며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가 네 번째 주요 변수이다. 중국은 수출주도 고도성장 추구에서 탈피해, 최근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해 왔다. 전반적인 대외여건의 악화와 이러한 정책변화로 인해, 2012년부터 중국의 GDP 성장률이 8퍼센트를 밑돌기 시작했으며, 2015년에는 더 하락할 수도 있다고 예측되고 있다. 글로벌 성장 엔진 역할을 했던 중국의 감속이 세계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 볼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EU가 재정위기의 재발을 막으며, ‘제로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2015년 세계경제의 주요 변수로 들 수 있다. 2008년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었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EU였다. EU는 2012년 불거진 국가부채, 긴축재정, 금융권 자본 확충 등의 문제들을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네 가지 변수들이 EU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아니면 기존의 문제들을 더 악화시킬지가 2015년의 경제흐름에 주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미국 경제 전망

IMF, OECD를 비롯해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들은 2015년 미국경기를 대체로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현 세계경제 침체의 진원지는 미국이었지만, 그동안 미국은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회복을 보였고, 내년에도 유럽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IMF는 2015년 미국의 GDP 성장률이 3.1퍼센트로, 올해 전망치 2.2퍼센트보다 1퍼센트 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그림1 참조). 하지만 국제금융기구들이 2013년 말에 발표했던 2014년 미국의 성장률 전망이 애초에 2.8퍼센트에서 2014년 6월 2.1퍼센트로 큰 폭의 수정이 있었던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 이유가 지난겨울에 미국을 덮친 폭설과 한파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성장률 전망의 정확한 수치에는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전반적인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미국경기가 예측대로 좋아진다고 해도,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GDP갭을 메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경제학자 드롱(J. B. DeLong)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GDP 갭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현 미국 GDP의 80퍼센트 수준인 13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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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3 / 04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불붙고 있는 혁명의 기운이 전 세계에 ‘3차오일 쇼크’의 공포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실각하자마자 또 한명의 세계 최장기 권력자인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원수도 위태위태하다.

 

이집트가 서방 세계의 아프리카 통로로 기능해 온 것과는 달리 리비아는 오랜 반미, 반이스라엘 노선을 걸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미국이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의 카다피는 축출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기반이 강화되어 왔다. 냉전 시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카다피를 축출하는 데 실패했던 것은 리비아 민중의 지지와 함께 세계 8위의 원유생산 국가라는 지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카다피는 어느새 민중의 영웅에서 민중의 적이 되어 있고, 그의 앞날은 또다시 민중혁명의 기운과 ‘석유’에 맡겨질 전망이다.

 

리비아에서 민중 학살이 일어나면서 서방국가들은 하나 둘 ‘카다피의 석유’를 포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주판알이 튕겨진다.

 

세계적인 시장전망기관으로 성장한 노무라 연구소는 발빠르게 유가가 배럴당 220달러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배럴당 220달러는 전 세계에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몰고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게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원유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는 감당하기 불가능한 수준의 가격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최근 금융시장 플레이어들의 ‘유가 급등 시나리오’를 검토해 보고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1. 유가 200달러 시나리오

 

유가 급등 시나리오는 중동·북아프리카 산유국의 생산 감소 또는 중단으로부터 시작된다. 리비아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1.58 백만 bbl로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1.8%를 차지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원유 수급 상황은 일일 백만 배럴 안팎에서 거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과잉 공급과 과소 공급으로 인한 가격 급락 혹은 수요 급락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가 원유 생산을 중단했을 경우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올라갈 것인가? 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220달러까지 유가가 급등할 것으로 보는 일부 금융시장의 시나리오는 이번 위기가 지난 1990-91년 걸프 전쟁 경험을 대입한 것이다.

 

당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연이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유가는 전쟁 전에 비해 최고 130% 상승하였고 잉여 생산능력은 전 세계 수요의 2.3% 수준까지로 급락하였다.

 

현 시기에 유가가 200달러를 돌파하려면 여기에 더해 몇 가지 부가적인 조건들이 시나리오에 추가되어야 한다. 부가조건이라 이라 함은 첫째, 정정불안이 리비아에서 인접 산유국인 알제리까지로 확대된다는 것과 둘째, 혼란스러운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고 최소 수 개월 이상 지속된다는 것 등을 말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세계 경제의 동반침체가 유가급등을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전반기에 150달러 수준 가까이 치솟았던 유가는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에 돌입한 하반기에 40달러 수준까지 하락한 바 있다.

 

2. 국제 원유 수급 불균형 전망

 

앞서 언급한 바대로 리비아는 일일 원유 생산량이 1.58 백만 bbl이며, 서방에 의해 그 다음으로 지목되고 있는 산유국인 알제리는 1.30 백만 bbl이다. 이들 국가가 원유 생산을 중단한다면 일차적으로 약 2.88백만 bbl의 원유 생산이 감소함으로써 시장의 불안감을 높이고, 이차적으로 OPEC의 잉여 생산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수급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향후 유가의 움직임은 1) 중동,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이 얼마나 확대될 것인지 2) 이로 인해 실질적인 생산 감소는 얼마나 일어날 것인지 3) 생산 감소에 다른 국가들이 얼마나 이를 보충할 것인지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고 할 것이다.

 

공식적인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잉여생산능력은 리비아와 알제리의 생산량을 합한 것을 능가한다. 사우디는 2011년 1월 현재 약 3.5 백만 bbl의 잉여 생산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사우디를 비롯한 다른 OPEC 국가들이 생산량을 늘린다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유가의 급등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산시설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우디의 잉여 생산능력은 한 달 안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지난 주 OECD 국가들은 비축유를 방출하는데 동의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수급상황의 악화가 유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늘리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하겠다.

 

현재 OECD 국가들의 석유재고량은 약 50~60일 분으로 집계되고 있다. 현재 재고 수준은 최근 5년 이내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소비국들이 동조하여 재고 수준을 다소 줄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유가 상승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3. 시장 시스템이 오일 쇼크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국제 원유시장은 걸프 전쟁 당시와는 크게 달라져 있다. 1990-91년 당시는 1986년 경 OPEC의 가격통제 시스템이 붕괴되고 이른바 ‘시장결정 시스템’으로 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2011년 현재 ‘시장결정 시스템’에는 금융시장의 투기적 수요가 매우 강력한 가격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2008년 유가급등 (이른바 ‘슈퍼 스파이크’)도 그 원인이 ‘원유시장의 금융 전염’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금융위기의 혼란스런 시기를 제외하면 2003년 이후 현재까지 유가의 상승과 비상업적 포지션(non-commercial position)의 매수량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비상업적 포지션이란 실물 거래가 아닌 주로 선물시장에서의 거래를 의미한다. 이 거래에는 실제 소비자, 판매자들이 헤지를 위해 참여하기도 하지만, 투자은행들이 자신들의 파생상품 판매를 위해 참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각종 펀드들이 기축통화에 대한 대체자산 보유를 위해 참여하기도 한다. 비상업적 포지션은 실제 원유 인도분의 최소 수십 배에 달하며 현물 가의 변동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원유에 대한 금융투기는 이른바 장외거래(OTC)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거래 행위가 당국에 보고되지 않기 때문에 그 양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2006년에 미국 상원 조사위원회는 석유시장의 거래의 60%를 ‘순수한 투기’로 보고한 바 있다.

 

4. 한국 정부는 환율을 어찌할 것인가?

 

한국은 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부 말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일까? 국민들에게 캠페인을 펼치기에 앞서 환율정책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과 2010년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지역 불안 이전에 유가가 상승국면에 들어서 있었던 셈이다. 이 두 해 동안 WTI 가격은 각각 배럴당 34.76 달러, 12.02 달러 상승했다. 2008년 최고점과는 아직 격차가 있으나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가 유가급등의 위기감이 반감된 것은 이 기간에 원화가 강세를 띠면서 유가급등의 효과를 다소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정부는 더 이상의 원화 강세를 용인하기 어려워 1100원대 수준에서 환율을 묶어두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를 더 피하고 싶은 것이다.

 

자, 이제 리비아발 태풍이 몰아닥치면 어찌할 것인가? 거칠게 말해서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해 보면 원화 절상의 여지는 앞으로도 약 20% 정도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유가 급등의 영향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어쨌든 환율정책은 언제나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동반하게 되므로 고도의 정책적 판단과 세밀한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완전 개방화, 자유화된 한국 외환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가 급등에 대처하기 위해서 환율정책을 펼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환율정책과 외환통제, 그 중요성은 금융위기가 잦아든 지금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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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4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아프리카, 중동의 민중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면서 정치권력이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이들 지역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이나 정보 전달을 받지 못한 탓에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서방의 언론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무래도 유가의 움직임이 되고 있다. 깊은 이해(理解)에 앞서 당장의 이해(利害)를 따지는 것을 당연한 인간의 속성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유가의 변동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까닭에 이를 잘 따져보는 것이야 나무랄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은근히 민중들이 시위를 자제해야만 유가가 떨어질텐데라는 식은 곤란하다. 이기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자칫 모든 책임을 민중들에게 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국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민중들이 아니다. 유가상승의 책임은 원유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가격 결정시스템을 다 들여다 볼 수는 없겠으나 몇 가지만 확인해 보자.

 

유가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투기 수요’

 

산유국 민중들의 시위가 없었을 때에도 국제 원유 가격이 급변하는 경험은 숱하게 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에 미국서부텍사스산 중질유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기록한 바도 있으며 2010년 하반기부터 유가 상승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급변동은 원유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석유시장이 ‘금융화’되었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이른바 수요-공급의 토대에서 벗어나 자산보유, 달러대체, 그리고 투기 등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아직 명백하게 정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은 석유시장의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1986년 OPEC에 의해 정책적으로 가격이 결정되던 시대가 끝나자, 원유 가격 결정은 이른바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1950년대까지 초국적 석유메이저 기업들이 완전히 전세계 원유가격을 통제했었고 1970~80년대에는 OPEC이 가격을 통제한 바 있다. 이들과 구분짓기 위해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을 ‘시장 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실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은 지극히 복잡하며, 따라서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TV에 나오는 원유가격 지표만을 보게 되면 이해관계자가 누군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원유는 ‘경매’로 판매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이제 110달러가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그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이런 인식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원유는 ‘아는 사람’끼리 일대일로 거래되며 장기 계약이 기본이다. 원유는 청과물 도매시장의 경매처럼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구매자가 매일매일 가격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 시기는 일반적으로 최소 한달, 보통은 2년 이전에 이루어지며, 이 때 지표 유가를 참고로 하여 판매자(보통 산유국 국영기업)와 구매자(보통 소비국 사적기업)가 일대일로 가격 협상을 하게 된다. 지표 유가는 참고로 삼는 것이며 진짜 계약가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계약 가격은 보통 원유의 질, 인도 방식, 구매량, 불량 발생 때의 처리 방법 등을 모두 고려하여 기준 가격에 프리미엄이나 디스카운트를 얹는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여기서 기준 가격은 원유의 품질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방식에서는 매일매일 유가가 급변한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수입가격 부담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정유회사들이 지표 유가가 올랐다고 바로바로 휘발유 가격을 올리는 것을 보고 필자는 독점기업의 횡포를 의심한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유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기초 재화로써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정부와 독점기업에 도입단가 공개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과점 기업에 의한 국제 원유 가격 평가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앞서 언급한 원유의 기준 가격은 소수의 기업(oil pricing reporting agencies)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압도적인 전문성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기준 가격 평가를 독과점한다. 원유 거래시장이 워낙 불투명하고 참여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제3의 가격 평가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기업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고 소수 기업이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는 것은 비판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원유의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기준 가격을 절대적으로 참고하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의 신용평가회사들이 최근 금융위기의 버블을 증폭시킨 것처럼 이들 석유 가격평가회사들도 유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유가는 이상의 실물 거래 가격이 아니다. 3대 지표 유종인 미국텍사스산중질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두바이유의 가격은 실제로는 선물, 옵션, 스왑 등으로 거래되는 (파생)금융상품의 가격을 지수화해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금융참가자들의 복잡한 이익구조가 개입되어 실물가격을 왜곡시키거나 혹은 교정하고 있다.

 

원유는 전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재화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에너지 가격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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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역할과 외환시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발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수입 물가에만 그치지 않고 수출 성과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경로가 변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플레이션 해외요인이 원화가치 상승으로 완화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 분위기 속에서 국제 에너지가격에 초점을 맞춰 역사적 경험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생활물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시각을 조금 더 넓혀 보자는 취지에서다. 석유 기반의 경제체제가 성립된 이래 금융시장에서의 거품과 붕괴 사이클은 언제나 기축통화 표시 유가 사이클과 동행했다. 어떤 논자는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석유달러’(petrodollar)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유가와 기축통화 가치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체화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잠시 최근의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국제 금융위기가 ‘빵’ 하고 터지기 직전인 연초에 당시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이 가격은 1980년 전후 석유 파동 때의 가격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2008년 바로 그때 석유시장으로 달러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실수요자와는 관계없는 비상업적 거래량의 증가 추세와 유가의 상승 추세가 정확히 일치했다. 상품시장이 금융에 감염된 것이다. 비상업적 거래는 투기성이 매우 깊이 개입돼 있을 것이라고 의심된다. 즉, 투기자금의 유입 정도와 에너지 가격이 비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가에 비례하는 또 하나의 수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달러 환율이다. 최근 10여년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달러 환율이 높아질수록 에너지가격은 상승한다.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하락할수록 에너지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를 그래프로 나타내 보면 거의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나타낸다. 결국 유가와 투기수요(금융), 그리고 달러 가치가 한 몸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미국은 사실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벌써 무너졌어야 할 정도의 국가채무 수준에 다다른 지 오래다. 그렇다고 당장 무슨 큰 문제가 벌어지도록 국제적으로 그냥 놔두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해진 현재의 국제경제 체제는 질서 있고 부드러운 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란 바로 달러, 부채 그리고 석유기반 에너지 패러다임이 그 핵심이라 할 것이다.

 

달러가 주도하는 국제금융시스템은 주로 저금리 정책으로 나타나는 고위험의 인플레이션 통화정책과 침체를 회피하거나 연기시키기 위한 재정정책의 유혹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제3차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3) 체제'를 만드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제3차 브레튼 우즈체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 주는 사람은 없으나 어쨌든 현재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각국의 사정이 녹록지 않다. 미국경제의 경우 무역적자와 국가부채를 일정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저축률이 획기적으로 상승해야만 한다. 이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며, 화석연료 소비의 획기적 감소를 동반해야만 한다.

 

한편 아시아나 석유수출 국가들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내수 비중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그렇다면 수출산업을 뜯어고쳐야 하고 보유 달러자산의 일정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중동의 석유수출 국가들은 아마도 여기에 더해 국민들의 정치개혁 요구의 분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난 1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는 세계화의 확대를 경험해 왔다. 무역 증가와 세계화는 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가시켰고 결과적으로 석유가격을 밀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혁신과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생산증대가 일어났고, 이는 유가 상승을 어느 정도 막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간중간 에너지가격의 단기적인 급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켰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떨어뜨림으로써 다시 석유 수요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났던 것이다. 인플레이션 사이클은 우리가 최근 2008년에 경험했듯이 통화 시스템의 위기를 동반하는 침체를 겪고 나서야 끝이 난다. 침체는 물론 수요를 감소시키고 에너지가격을 떨어뜨리게 되지만, 낮은 에너지가격은 이른바 새로운 거품-파괴(boom-and-bust) 동학의 씨앗이 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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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8.27 11:49

최근 유가의 무서운 상승세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큰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유가는 ‘석유경제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되고 경기침체의 근원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가는 얼마나 오른 것일까? 본론에 앞서 그 추세를 짚어보기로 하자.

1, 2차 석유파동이 끝나고 세계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1980년대 중반 이후 2003년까지 유가는 안정적으로 관리되어 왔다. 20여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감안해서 현재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배럴당 25달러 미만이었다. 최근 14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던 점을 상기해 본다면 불과 5년 전까지 유가가 현재 가격의 1/5이 채 되지 못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최근 5년 동안 5배로 뛴 유가

2003년 9월이 넘어서면서 유가는 서서히 치솟기 시작한다. 2004년에 곧바로 배럴당 40달러와 50달러를 갈아 치웠고, 2005년 8월 11일 60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 중반에는 75달러를 넘어섰다가 2007년 초에는 60달러 수준으로 다시 내려앉은 바 있으나 10월에 이르러 92달러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언론에서는 처음에 ‘심리적 마지노선’이 50달러니, 60달러니 호들갑을 떨곤했으나 그 때마다 마지노선은 무너졌고 몇 개월이 채 되지않아 새로운 마지노선이 생기곤 했다. 그래도 ‘설마’ 100달러야 되겠냐던 사람들도 2007년 11월이 되자 자신의 믿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의 전망을 나타낸다고 하는 선물가격이 99.29달러(12월 인도분)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숨가쁘게 달리고 맞이하게 된 2008년. 상반기에 주기적으로 최고가를 갱신하던 유가는 1월 29일 드디어 100달러를 넘어서 배럴당 103.05달러에 도달했고 3월 12일까지 110.20달러로 오른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도 동반 상승해서 3월 14일에 100달러를 돌파했다. 6월 27일, 8월 인도분이 141.71달러를 쳤던 유가는 리비아의 감산 위협과 OPEC 의장의 170달러 예상 발표에 따라 이틀 후인 6월 29일 143.67달러에까지 도달했다.

이쯤 되면 ‘제3차 석유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비교해 보자. 2008년 이전까지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유가의 최고치는 2차 석유위기가 닥쳤던 1980 ~ 81년에 있었고 2007년 달러화 기준으로 95 ~ 105달러 수준(당시 시장가격으로는 약 배럴당 41달러)이다. 그렇다면 2008년의 유가는 1분기에 이미 역사상 최고수준을 경신한 셈이다. 단순히 유가만 비교했을 경우 3차 석유위기가 도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1980년대에 동반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198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투기’를 둘러싼 현재와 미래 권력의 대립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가가 오른 것일까? 그 이유를 최근 미국 의회와 월가에서의 논쟁에서 엿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선물시장에서의 투기거래를 제한하는 법안에 대해 논의가 한참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의견을 달리하는 크게 두 세력이 맞부딪히고 있는데, 투기적 요인이 제한적이라는 입장, 곧 투기거래 제한법에 미온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세력과 그 반대편에 투기거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는 세력으로 나뉜다. 두 입장을 자세히 따져보기에 앞서 일단 최근 석유가격의 상승요인으로 투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줄곧 있어왔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양 세력을 대표하는 집단은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다. 부시 행정부는 투자은행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과 함께 과도한 규제는 효율적인 가격설정 기능을 저해하고 자본이 역외로 이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세력은 현재 유가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충분하지 못한 원유공급 때문이고, 이는 ‘Oil Hippo(석유 하마)’로 불리는 중국을 비롯해 신흥시장들의 폭발적인 수요증가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한편, 자국민들,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오바마와 매케인 두 대선 후보들은 연일 석유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투기거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에너지 및 식품류 가격의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두 대선 후보들 이외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이런 인식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30일 에너지 및 곡물 상품시장에서 투기적 거래를 제한하기 위한 법률을 하원에서 부결시켰다. 일단 ‘수급 불안’을 주장해 온 측에서 1승을 한 셈이다. 법안 통과에 필요한 2/3 득표에 실패한 데에는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가 있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미국 연안에서의 추가적인 원유 탐사를 허용함으로써 공급능력을 확대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직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7월 8일 기준으로 상원에만 무려 15개의 법안이 올라 와 있고 적어도 대선까지는 투기거래를 제한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유가의 상승에는 수급불안의 요소가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다소의 과장이 섞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세계 최대 정유회사 가운데 하나인 BP(구, British Petroleum)에 따르면, 2006년도의 원유 공급부족량은 하루 100만 배럴에 달하고 있다. 생산능력의 증가 속도가 수요의 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지리아, 이란 등 주요 생산국들에 대한 군사적 불안정도 완전히 제거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던 날 발발한 러시아-그루지아 전쟁도 불안요소 대열에 새롭게 동참했다.

하지만, 최근의 유가 상승은 생산능력이나 이른바 ‘지정학적 불안’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가파르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수급불안과 투기거래가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라 수급불안을 기화로 투기거래가 가격상승을 가속화시킨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 CFTC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현재 가격상승의 약 70%가 투기와 관련있다고 조사되었다. 이 수치는 가(假)수요의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선물시장의 비상업적 매수 포지션이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규모를 주요 데이터로 해 계산되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 압둘라 알 바드리는 2008년 6월, 투기거래가 얼마나 과격하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를 하나 제시하였다.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량은 8,700만 배럴인데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은 무려 13억 6,000만 배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 수요의 15배가 넘는 양이 거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수요와 거래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세계 최대의 석유시장인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의 원유거래가 현물(spot)보다는 선물(future)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NYMEX에서는 선물, 옵션을 비롯한 수없이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수가 지난 5년 동안 급증해왔다. 파생상품의 거래에서는 실제 계약금액의 일부분을 예치해두는 것만으로도 원유를 구매할 수가 있고, 헤지를 위해 다양한 파생상품을 동시에 구매하기 때문에 거래량은 실제 인도되는 양보다 훨씬 많게 된다. 거래금액은 보통 예치금의 7~8배 규모로 알려져있으며, 헤지펀드 등은 레버리지와 증권화를 거치면서 투자금액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한다.

선물거래는 말 그대로 미래에 인도할 것으로 약정하고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 파는 거래를 말한다. 석유선물시장은 미국에서 최초로 열린 공식 선물시장으로서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1980년대 이후 20년 동안 가격이 안정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의 회피, 유동성 확대, 미래의 가격정보 제공 등의 기능이 가격 안정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생상품의 거래를 활성화시키면서도 석유에 대한 투기거래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를 안보상의 전략물자로 정해두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거래되는 것 자체를 금지해왔다. 석유 선물거래는 1982년 이후 NYMEX 등의 제한된 장소에서 CFTC의 규제 하에서 선물과 옵션의 거래량이 엄격히 허용되어 왔던 것이다. 거래에 참여하는 자는 누가, 언제, 얼마나 많은 양을 사는지를 반드시 보고하도록 하고 만약 제한량을 넘는 거래를 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그 사유를 CFTC 등에 제출하도록 해왔다.

“경찰도 없고 속도제한도 없는 ‘투기’ 고속도로”

그러나 지난 2000년 이른바 ‘상품선물현대화법(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이 통과되면서 투기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크나 큰 구멍이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 이 법은 부시와 고어 두 후보가 대통령선거인단 투표의 재검표를 놓고 일대 혼란에 빠져있을 때 통과되었다. 당시 세계 7위의 거대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사는 CFTC와 의회에 은밀한 로비를 벌여 당연히 법적으로 치뤄야 하는 공청회마저 변변히 개최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구멍은 어떤 것인가? 미국 의회가 스스로 밝힌 세 가지 구멍을 들여다 보자.

첫 번째 구멍은 이른바 “엔론 루프홀(Enron loophole)”이라 불리는 것이다. 엔론 루프홀은 장외거래(OTC, Over-the-counter)에서의 선물거래에 대한 계약의 범위에 관계된 것이다. 상품선물현대화법은 ‘신뢰할 만한(!)’ 대규모 투자자들이 비농업, 비금융 부문의 파생상품에 대해 전자거래와 상호 쌍무거래를 할 때에는 규제를 면제해주는 조항을 신설했다. 상당히 모호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비농업, 비금융이라는 기준을 들이대기만 한다면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들은 규제의 눈을 피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 조항이 생기게 된 이후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들은 에너지 가격연계 파생상품에 대한 장외거래에서의 투자 규모를 급격히 확대해왔다. 올해에만 벌써 40 차례 가까이 개최된 상원 청문회의 증언에 따르면, 대규모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이 엔론 루프홀을 이용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엔론 루프홀을 “경찰도 없고 속도제한도 없는 고속도로”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구멍은 “런던 루프홀(London loophole)”이라 불린다. 뉴욕의 NYMEX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선물시장인 런던의 ICE는 당연하게도 미국의 정부기관에 의해 규제를 받지 않고 영국의 정부기관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문제는 두 시장 사이의 규제정책의 차이, 정보 전달의 불충분 때문에 나타난다. 투기자들이 이런 허점을 노려 해외에서 규제를 회피하는 통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경우를 상정해 보자. 영국 거래소는 자국의 에너지 가격 안정화 등을 위해 미국에서 WTI를 구매해왔다. 미국은 정부기관인 영국거래소가 구매를 요청할 때는 규제를 면제한다(No-action letter 규정). 영국거래소는 구매 포지션을 정할 때 보통 자국의 기준 원유인 브렌트유의 가격과 거래량을 참고하게 될 것이다. 투기자들은 이 점을 노린다. 영국 ICE의 파생상품 포지션에 변동을 야기함으로써 규제를 받지 않고 미국 NYMEX의 원유 가격을 상승시키는 통로를 확보한 셈이다.

세 번째 구멍은 “스왑 루프홀(Swaps loophole)”이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후반 이른바 ‘닷컴 버블’의 붕괴를 경험한 바 있다. IT 기업의 주식 가격이 실제 가치를 월등히 뛰어 넘어 비이성적(!)일 정도로 폭등한 뒤 찾아 온 뼈아픈 경험이었다. 약 10년 후인 2000년대 초반에 벌어진 상황은 오히려 그와 반대다. 주식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현물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의 재정지출이 확대되어 가던 2003년 이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는 ‘약달러 현상’이 점점 가시화되자 자금은 자본시장에서 현물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달러표시 채권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를 낳게되므로 미국 주식시장의 매력은 한층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펀드 매니저가 보기에 보다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투자처는 상품시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유거래에 적극 나서는 투자자들은 주로 거대한 유동자금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다. 연금, 보험, 각종 헤지펀드들은 필요한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주식보다는 현물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이들 기관투자자들은 원유에 대한 실수요를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투자의 수단으로써 가수요를 갖고 있을 뿐이다.

석유 대신 현금을 채굴하는 정유회사들

세계 3대 석유시장인 NYMEX와 ICE 그리고 DME(두바이상품거래소)에서 원유 가격이 연일 치솟자, 지금까지 파생상품 거래에서 중요한 플레이어의 역할을 해온 자들이 가장 먼저 수혜집단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언급해 왔던 투자은행, 헤지펀드, 연금, 보험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그들이며 여기에 최근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산유국의 국부펀드들도 동참의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불투명한 거래에 자금을 집중하거나 생소한 이름의 자회사를 앞세워 유가상승에 기름을 부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수혜자로써 대규모 정유회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대의 정유회사인 엑슨모빌(ExxonMobile)은 지난 2분기 수익 - 매출이 아니다 - 이 117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에 달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세계 2위 석유회사인 쉘(Shell)도 2분기에 78~116억 달러(회계 기준에 따라 다름)의 수익을 올렸다. 엑슨모빌과 쉘은 최근 자본수익률을 각각 32%와 24.5%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것도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준금리의 약 12~1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수익률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이들 정유회사들이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는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거대 석유다국적 회사들은 추가투자를 사실상 동결했으며, 실제로 올해 2분기 엑슨모빌의 석유제품 생산량은 실적호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감소하였다. 부족한 수급상황이 유가를 상승시키는 데 기여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엑슨모빌과 쉘 등 거대 정유회사들이 생산시설에 투자를 하지않는 이유는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불확실한 장기투자보다는 더 확실하고 단기에 수익이 보장되는 투자 쪽으로 중심을 서서히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탐사, 채굴, 정제 그리고 배급하는 데는 엄청난 자금과 정보,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석유공급의 전 과정을 장악해왔던 이른바 ‘일곱 자매’들은 이런 어렵고도 힘든 일을 ‘새로운(新) 일곱자매’에 맡겨 두고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일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막대한 이익을 자사주 매입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엑슨모빌의 예를 들자면, 2006년에 290억 달러, 2007년에 280억 달러 어치의 자기 주식을 사들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160억 달러를 사용했다.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상승시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검은 황금(석유)을 둘러 싼 갖가지 어두움의 카르텔로 비난받아 오면서도, 저가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세계에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표출하곤 했다. 아마도 이제는 이런 자부심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류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주주와 임원들의 주가를 높이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 소비자단체인 Oil Watchdog의 J. Morgan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가볍게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높이는 데에만 돈을 쓰고 있는 엑슨모빌을 가리켜 “석유가 아니라 현금을 끌어 올리고 있다(pumping)”며 비난하기도 했다.

유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간략하게 유가 상승의 추이와 원인 등을 살펴보고, 투기적 거래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발생하며 투기거래로 인한 수혜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정확히 얘기를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투자’와 가치를 새롭게 창출하지 못하는 ‘투기’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통념에 따르면, 투기란 단기간에 대폭적인 가격변동을 예견해서 우월한 자금동원력이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물건을 매점매석(買占賣惜)하는 행위이지만, 어디까지가 단기이며, 의도된 행위인지, 독점력은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그리고 매점매석이라는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등등이 모두 불분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투기행위는 법률적 규제를 위반하거나 회피하였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의 고유가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거래의 활성화와 거대 자본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갈 곳 없던 막대한 유동자금들이 현물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일어난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자 예전에는 ‘투기 행위’였던 장외거래와 무기명 거래가 지금은 ‘투자 행위’로 둔갑해 버렸다. 미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금융자본을 자유롭게 해주자, 금융자본이라는 꼬리가 미국이라는 몸통을 흔들어버리는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발생한 위기가 한국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1/4을 소비하고 있고 영국의 브렌트유, 중동의 두바이유 등의 가격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래소를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실물경제 - 수출, 환율 등 - 는 미국경제와 지나치게 동조화되어 있어 위험을 바로 흡수하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들어 한국이 세계의 주요국가들 가운데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특출난 취약성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 일곱 자매(Seven sisters)는 세계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해 왔던 미국 출신의 걸프(Gulf)와 스탠다드오일의 후신 회사들인 엑슨(Exxon), 모빌(Mobile), 텍사코(Texaco), 쉐브론(Chevron), 영국 출신의 BP(British Petroleum), 네덜란드 출신의 쉘(Shell) 등 거대 다국적 정유회사를 지칭한다.

** 새로운 일곱자매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급성장하고 있는 자원보유국의 국영 석유회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아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이란, 말레이시아, 남미의 브라질, 베네수엘라 그리고 러시아 등 이상 7개 국가의 국영 석유회사들은 전 세계 석유, 가스 매장량의 1/3 이상을 보유, 지배하면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이상동/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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