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12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2013 세계의 시선(6) 소득 불평등에 대한 미국 보수의 반격?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그래프가 포함 된 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지난해 치른 두 차례의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핵심 의제로 오른 데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 또는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 사회 또한 1970년대 이후 중산층의 실질소득 정체와 1% 상위소득 집중 등 불평등 문제가 지난 몇 년간 주요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었다. 그런데, 최근 우파 대변지인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소득이 아닌 소비 데이터를 활용하여, 불평등 이슈가 좌파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제기된 ‘신화’라고 반격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가계가 가처분소득에서 필수 소비재에 지출하는 비중이 1950년 53%에서 1970년 44%, 그리고 오늘날 32%로 감소했다. 또한 과거에 비해서 기대수명이 증가했고, 인종 간 기대수명의 차이 또한 감소했다. 즉 불평등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거나, 설령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중산층의 소비능력 또는 삶의 질은 개선되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을 비롯한 미국의 리버럴 경제학자들은 필수재와 불평등의 개념, 데이터 집계 등 방법론적인 오류 등을 통해 반박하면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주 새사연 ‘세계의 시선’에서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좌우 경제학자들의 불평등에 관한 논쟁을 소개한다. 뉴욕 타임즈 오피니언에(“The Hidden Prosperity of the Poor”, 2013.01.30) 매주 칼럼을 기고하는 객원 칼럼니스트 토머스 에드솔(Thomas Edsall)이 논쟁의 주요 논지들을 잘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활용하여 우파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알기 쉽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옮긴이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우파 경제학들의 요지는 “조선시대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여행도 다니고 핸드폰도 사고 살기 좋아졌으니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해라.”

 

  

푸어의 숨겨진 번영
(The Hidden Prosperity of the Poor)

 2013년 1월 31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토마스 에드솔(Thomas Edsall)
 

‘푸어(the Poor)의 숨겨진 번영’이라고 하는 최근 우파가 유포하고 있는 개념은 불평등 확대에 관한 논쟁에서 보수적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적 우파는 소득불평등 확대가 사회구조와 미국경제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는 좌파들의 주장을 약화시키기 위해 최근 이 개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2월 6일 캔자스 주 오사와토미(Osawatomie) 고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좌파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현재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은 미국 사회의 핵심인 다음과 같은 희망(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이 거짓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도, 열심히만 일하면 중산층에 들 수 있다. 우리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여러 곳의 이민자들이 우리 국경을 넘어오는 이유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하류층과 중산층의 삶은 생각보다 낫다는 우파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비록 소득이 정체되거나 미미하게 늘어났다 하더라도, 소득에서 필수 소비재에 지출해야 하는 비중이 안정적이거나 감소하고 있으며, 재량적 소비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과거보다 그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었다 하더라도, 소비불평등(상·하위 계층이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하는 금액의 격차)은 상대적으로 거의 변함이 없다. 우파 경제학자 마크 페리(Mark Perry)는 타임지에 아래와 같이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소비자 상품, 재화, 서비스는 주로 경쟁시장에서 민간이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식음료, 외식, 주거, 의복, 가전, 가구, 생활용품, 카메라, GPS, 컴퓨터, 자동차, 오토바이, 스포츠용품, 핸드폰, 통신, 라식수술, 성형수술, 악기, 보석, 여행가방, 장난감, 책, 정보, 케이블 TV, 인터넷, 세차, 엔진 오일 등. 현재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일반물가수준과 평균소득수준에 비해서 점점 좋아지고 다양해지고 저렴해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평균 가계는 과거보다 소비재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평균적인 소비자가 시장이 공급하는 상품에 가장 많은 이득을 얻고 만족하고 있다.  

올해 1월23일, 페리(Perry)와 Boudreaux, 두 우파 경제학자들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정체된 중산층이라는 신화”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두 경제학자는 중·저소득 계층의 소득정체라는 “유명한 진보적 수사”는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한다.  

(상무부 산하) 경제 분석국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적 삶에 필요한 기본재(식료품, 자동차, 의복, 가구,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에 가계가 지출하는 비중이 1950년 53%에서 1970년 44%, 오늘날 32%까지 하락했다.

미국기업연구소 경제정책 연구 책임자인 하셋(Hassett)과 동료 매튜(Mathur)는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을 통해 민주당 정치인들을 다음과 같이 공격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확대에 관한 그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좌파의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성장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 돌아가지 않는다. 19세기 중반, 다양한 조류의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점점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점점 가난해진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성장의 열매는 초고소득 계층에 집중되고, 중·하위 계층의 생계수준은 정체되고, 부자와 그들 간의 격차는 점점 확대고 있다는 주장을 또 다시 듣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그와 같은 묘사는 잘못되었다. 

대신에, 그들은 좌파들이 틀린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통계국 소비지출 조사 데이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세전소득에 따라 가계를 분류하면, 2010년에 하위20%는 총 소비의 8.7%, 중위20%는 17.1%, 상위20%는 38.6%를 차지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감세와 세계화의 지속적 확대가 일어나기 전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치는 거의 변함이 없다. 각각 8.9%, 17.3%, 37.3%를 차지했다.  

소비이론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우파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이는 소득불평등 확대를 완화하기 위한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임시 현금보조, 의료급여, 식품 보조금 등)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적 분석은 열띤 반론을 끌어내고 있다. 내 동료인 크루그먼은 두 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 완전히 그릇된 결론”이라 비판하고, ‘Dow 36,000'의 저자인 하셋(Hassett)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망가질 명성조차 없다”며 혹평을 가했다. 실제,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우파의 소비이론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1년 2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소비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명의 경제학자들은 “소비불평등은 1980~2007년 기간 소득불평등을 밀접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말로 하면, 계층 간 지출 격차 확대는 소득 격차 확대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1980~2010년, 미국에서 소득, 소비, 그리고 여가 불평등”이라는 논문에서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소득불평등 증가는 상당한 정도로 소비불평등 증가를 따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불평등의 측정에 관한 극단적 이견은 거의 1세기 동안 지속되고 있는 공공정책 논쟁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Boudreaux는 다음과 같이 열정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과거 수십 년 동안 소득과 소비 불평등이 확대되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중·저소득 계층의 절대적인 경제후생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소비불평등이 실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지적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부유한 미국인들의 후생과 어떻게 비교하던지 상관없이, 3~40년 전보다 중산층 미국인의 경제적 삶은 더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반대로, MIT 경제학자인 오토(Autor)는 타임지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게재했다.

나는 특정 시점의 불평등 자체에 관해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부유한 가계와 그렇지 못한 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삶의 기회에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이 미국사회가 선진국 기준으로 경제적으로 유동적인 사회가 아닌, 점점 더 봉건왕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리사회의 실질적인 위험이다. 이미 196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와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 간 가계소득과 대학입학 간 간극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교육성과가 생애소득의 주요 예측치 이므로, 이는 출생 당시 환경과 생애소득 간 연계가 이전 세대보다 현 세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Autor)는 불평등이 긍정적 인센티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불평등이 과도하면 파괴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 민간 종교가 있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노동에 기초하여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능력중시 사회라는 신념일 것이다. 가계 자원의 불평등이 더욱 왜곡되면, 하류층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상류층에 올라갈 가능성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물론, 어떠한 환경에서도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위 명문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그들 대다수는 상류층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미국식 이상을, 불평등이 결국에는 가로막을 것이라는 도덕적 스탠스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불평등이 적당한 범위 내에 머물러 있으면 좋은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평등이 공정경쟁을 왜곡하고 상·하위 계층 간 아이들의 기회를 차별하여 기회의 평등을 감소시킨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코 원치 않는 거래가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오바마의 대통령이 재선함으로써 오토(Autor)의 주장이 Boudreaux에 승리했다.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였던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 확대가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불평등 확대는 경제침체의 원인이면서,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환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다수 시민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경제, 정치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기존 제도와 양식에 대한 정당성 또한 의문시 될 것이다.  

그러면 ‘푸어의 숨겨진 번영’ 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우파의 주장을 들었다면, 이제 좌파의 주장을 들어보자. 여기 좌파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가 제시하는 차트 세 개가 있다. 다른 선진국과 미국의 빈곤률을 비교하면 예쁘지가 않다. 아동 빈곤율에 포커스를 맞추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면 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빈곤을 줄이기 위한 미국정부의 투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수석경제학자이자 1기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바이든의 경제자문을 역임했던, 베른슈타인(Bernstein)은 소비불평등에 관한 우파의 주장에 정면으로 공격하며 아래와 같은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냈다. 2010년 노동부 통계국이 작성한 “연구목적”의 보고서를 그가 재가공하여 만들어낸 차트들을 보자. 그는 주요 소비자 비용이 소득증가율을 훨씬 앞서고 있음을 발견해 냈다.


실제, 소득이 줄고 물가가 상승하여, 하위 계층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12년 9월,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간한 소득과 빈곤에 관한 보고서는 좌파의 주장에 한층 신뢰를 더하고 있다. 2011년에 가계소득은 16년 만에 최저치인 50,054달러로 떨어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상·하위 계층 간 소득격차의 확대가 과거 40년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분배 충돌은 정치의 본질이며, 궁극적으로는 실제 누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 가에 관한 데이터 논쟁이다. 이는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세제와 지출 정책의 방향과 형태가 결정될 앞으로 몇 년 동안, 치열한 좌우 전투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오직 공유성장(shared growth)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루한 싸움이다. 오바마는 1기 행정부 때 이 논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지금 재선이 된 다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방어적이고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2009~10년 반민주당, 반 오바마 정서가 갑자기 두드러진 것처럼, 양당 권력 투쟁의 균형은 매우 유동적이다.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한편, 미국에서 현재 4260만 명이 공식적으로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화약고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그래프가 포함 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문 사이트:
http://opinionator.blogs.nytimes.com/2013/01/30/the-hidden-prosperity-of-the-poor/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9.06정태인/새사연 원장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약간의 경제학 지식과 현실 경제 흐름에 대한 ‘감’, 그리고 시계열 통계만 볼 줄 알아도 금년 성장률이 3% 미만에 머물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사연은 작년 말에 EU가 그럭저럭 위기를 헤쳐나갈 경우 한국 경제는 금년 2% 중반대 성장을 이룰 것이고, 더 나쁘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과 정부, 그리고 재벌 연구소들 모두 3% 후반대의 성장을 장담했다. 6개월이 지나자 EU 상황을 핑계로 3% 정도로 성장률을 끌어내리더니 최근엔 재벌 연구소들이 2%도 어렵다고 징징댄다. 문제는 이어지는 얘기다. 그러므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등 경제개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 후보도 숟가락을 내민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주장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고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김영삼의 ‘세계화’)으로 외환위기를 맞자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개방과 경제자유화를 주장했다. 당시에는 ‘왕초 각설이’ IMF의 요구사항이 그랬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치자.
 
참여정부 초기 경제성장률이 5%에 머무르자 재벌과 조중동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규제완화를 해야 투자를 늘릴 거라고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때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랬고 지금도 각설이 타령은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흥청망청이고 오바마는 고전 중이다.
 
굳이 김빠진 옛 드라마의 ‘다시 보기’를 누른 건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어날 일이 그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15년 넘게 양극화가 심해지자 ‘성공신화’에 취했던 국민들이 깨어나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는 끼어들기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이슈는 경제위기의 해법인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후보로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
 
아마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최근의 성과에,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선거가 아니고 지금은 60∼70년대가 아니다. 단언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위의 재벌 연구소의 주장을 따를 것이다. 위기 때문에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나아가 그런 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과 조중동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이며, 보수적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동맹세력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지금 코 앞에 닥친 위기는 구체제의 방식으론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현재 국민이 요구하는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협동조합(사회경제)이야말로 위기 탈출의 묘책이다. 지금 세 정책을 실현하려는 시민 세력이 뭉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의 미적거림에 탄식하고 안철수의 모호함에 불안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낙선운동, 투표 격려, 그리고 야당과의 야권 단일화를 해 왔다. 이제 사회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뚜렷한 요구가 있는 만큼 더 정확한 정책 목록, 정책을 실현한 내각의 구성 원칙, 그 내각과 시민의 통합 가버넌스를 내세워야 한다.
 
2008년에는 정권을 내주고 나서야 석 달 넘게 광장으로 나왔지만 지금 정권을 만들기 위해 나서면 훨씬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1% 경제 분노한 월가시위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목차]
1. 월가시위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2. 1%가 소득과 재산을 지배하는 사회
3. 고용없는, 그리고 임금없는 회복
4.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상승
5. 1%경제는 지속가능한가?

[본문]
1. 월가시위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최근 월가점령 시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내일은 서울을 비롯한 세계 400여개 주요 도시에서 ‘99%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될 계획이다. 미국의 월가시위대는 왜 분노하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아주 간명하다.

“1%의 탐욕과 부패를 우리들 99%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99%, 전쟁종식, 부자과세(We are the 99%, End the War, Tax the Rich!)”라는 대중적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아주 쉽고 명료하게 정의하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 할 수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여 국민을 위해서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치를 하는 시스템을 바로 민주주의라 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가 명쾌한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회다. 1%와 99%로 구분된 사회를 시티그룹은 2005년 한 투자보고서를 통해 “부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플루토노미(Plutonomy)라는 신조어로 정의하기도 하였다.

2. 1%가 소득과 재산을 지배하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통제는 소득이나 재산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통상 재산이라고 하면 개인(또는 가계)이 소유한 모든 자산의 가치에서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을 말한다. 그러나 소득분포 연구에서 부동산, 주식, 채권과 같이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으로 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득은 임금, 배당금, 이자, 임대수익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론적으로는 소득은 재산의 수익률에 의존하기 때문에 재산이 많다고 해서 꼭 소득이 높은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재산분포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부자들의 소득이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상위1% 소득의 상당수는 노동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8년 미국 국세청(IRS)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00만 달러 이상을 번 13,480 슈퍼리치의 총소득 4000억 달러 중 노동에서 발생한 소득은 19%에 불과하였다.

미국의 상위1% 가계는 대략 전체 소득의 21%, 재산의 35.6%, 금융자산의 42.4%를 차지하고 있다. 극소수 상위1%(100만 가구)가 직접적인 금융수익을 제공하는 금융자산의 거의 절반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하위90%는 소득 53%, 재산 25%, 금융자산 17.3%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하위90%의 재산을 전부 합해도 상위1%보다 적으며, 금융자산은 상위1%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극심한 양극화다.

역사적 추세로 소득 및 재산 분포의 악화 정도를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982년에 상위1%는 전체 소득의 12.8%, 하위 90%는 63.6%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1980년대 이후, 전체 소득의 8% 이상이 하위90% 가계에서 상위1%로 이전된 것이다.

좀 더 긴 역사적 안목으로 살펴보면 소득 양극화의 추세는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 소득에서 상위10%와 1%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공황 이후 1950~60년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상위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28년 18.4%를 정점으로 1976년에는 6%까지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재임 기간 7%에서 12%로 상승하였다. 그리고 이 추세가 이어져 2008년 경제위기 직전에는 19.3%까지 올랐다. 19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대에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는 양극화가 확대되는 특징을 보인다.

통상 가계 소득분포의 장기적 추세를 가지고 양극화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누가 사회를 지배하는가?”, 즉 경제 민주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소득보다는 재산 분포가 더욱 중요하다. 재산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경제적 편익을 차지하더라도, 의회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권력의 분포는 소득보다는 재산과 더욱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1990년대 신경제로 주식시장이 폭등하던 시기, 미국의 상위1%는 전체 재산의 38.1%를 차지하였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상위1%가 차지하는 재산 비중은 조금 감소하였다. 그러나 감소한 부분이 하위 계층으로 이전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상위1~4%가 차지하는 비중이 21.3%에서 25.8%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상위5%, 또는 상위10%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10%가 차지하는 재산비중은 더욱 증가하여 75.1%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여 하위90%는 1963년 33%에서 2009년에는 24.9%로 줄어들었다. 하위90%를 조금 구분하면 하위60%는 전체 재산의 2.2%만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자산은 불과 0.3%에 불과하다. 국민의 절반이 넘는 60%가 재산의 2.2%, 금융자산의 0.3%를 차지하고 있다니 놀라운 양극화 현상이다. 하위40%는 재산 및 금융자산 모두 마이너스로 각각 -0.9%, -1.0%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빚이 더욱 늘어나 재산은 -0.5%에서 -1.4%로 더욱 감소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상위1%의 평균재산과 보통(median) 가구의 평균재산의 격차가 얼마나 확대디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1962년에 상위1% 부자들은 보통 가구보다 평균적으로 125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이 격차는 최고치로 늘어나 무려 225배에 달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금융위기로 모든 계층의 재산가치가 하락했지만, 주택가격 하락에 따라 중산층에 미치는 재산상의 손실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상위1% 내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400대 부자들의 재산 격차 또한 더욱 늘어나고 있다. 400대 부자들의 평균 재산을 2009년 달러로 환산할 경우, 1982년 5억 달러에서 2000년에는 37억 달러로 무려 633% 증가하였다. 1980년대 이후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두 번의 하락기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주로 2000년 IT 버블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주식가치의 손실에서 비롯되었다. 2009년 기준, 재산 10억 달러가 되면 400대 부자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1.3조 달러에 달한다.

400대 부자의 재산축적의 이면에는 하위계층의 몰락이 나타나고 있다. 재산이 거의 없거나 마이너스 상태인 극빈층의 증가가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을 보면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재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마이너스 상태다. 12000달러 미만인 가구는 37.1%로 1/3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위기나 실업에 매우 취약한 가구가 1/3을 넘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자산의 경우 상위1%가 2007년 기준 42.4%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1%는 평균적으로 420만 달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중간가구(40~60%)는 10200달러, 하위40%는 불과 1700 달러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자산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상위1%는 주식의 48.3%, 채권의 60.6%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 4]는 펀드나 연기금 등 모든 주식을 포괄하여 계층별 주식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상위1%는 대략 40%, 상위10%는 80%를 점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하위80%는 10%도 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주식 소유가 매우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 호황은 대부분 상위1% 부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위의 그림은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소유 계층별로 주식시장 호황의 수혜를 나타낸 것이다. 상위1%는 36.8%, 상위10%까지 확대하면 81.1%의 이득을 향유하였다. 이에 비해 하위80%는 불과 8.5%에 불과하였다. 미국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주식시장 호황은 부자들의 잔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3. 고용 없는, 그리고 임금 없는 회복

미국의 월가 시위대는 소득 및 재산의 극심한 양극화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든 것은,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분담과 경기회복의 과실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공식적으로 2009년 중반 종결되었다. 그러나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실업률과 고용률은 여전히 과거 경기침체의 최저 수준보다도 악화된 상태다. 실업률은 여전히 9.1%로 매우 높은 상태이고, 실질실업률(U-6)은 16.2%에 달한다.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전(44개월 전)보다 실업률은 4.4%p 높고, 고용률은 4.7%p 낮은 상태다. 노동시장의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미국은 여전히 경기침체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2009년 중반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은 기업에 천문학적인 이윤을 안겨다 주었다. 

2009년 2사분기부터 2011년 1사분기까지,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실질 기업이윤은 39.6% 증가하였다. 두 차례 양적완화와 기업이윤 증가에 따라 금융시장 또한 호황을 맞이하였다. 같은 기간 S&P 500과 다우존스 지수는 40% 이상의 수익률을 보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측정한 여러 지표들은 거의 변함없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마찬가지로 고용의 총량 또한 경기가 회복된 7분기 동안 거의 증가하지 못하였다. 즉 미국의 경기회복은 고용 없는, 그리고 임금 없는 회복이다. 노동자들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으며, 노동시장 악화의 영향으로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 또한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하락하고 있다.

이에 비해 금융위기로 파산에 직면한 월가의 금융기업들은, 정부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을 금융시장에 쏟아 부은 덕택으로 회생하였다. 그리고 두 차례 양적완화 조치로 월가는 천문학적인 자산 가격 상승의 수혜 또한 입었다. 극소수 1%부자들이 경기회복의 수혜 또한 모두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천문학적인 이윤에 기초하여 또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S&P 500에 속한 대기업 CEO들은 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 344배나 높은 보상을 받았다. 이 수치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 263배로 다소 감소하였다. 그러나 작년에 325배로 거의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S&P 500에 속한 대기업 CEO들의 평균보수는 2009년보다 27.8% 증가하여 1000만 달러가 넘었다. 이에 비해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명목상 3.3% 증가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좀 더 장기적인 시계열로 보면, 1960~70년대 2~30배 수준이던 격차가 80년대부터 가파르게 상승하여, 90년대 이후에는 200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월가 시위대가 분노할 만한 분명한 경제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4.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성장

미국경제는 고통분담, 성장의 과실, 소득 및 재산분포가 극도로 왜곡되어 있다. 비정상적인 시스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근본문제를 가장 간명하게 나타낸 것은 위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1947년을 기준(=100)으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50~60년대에는 생산성과 실질임금은 거의 같은 추세로 증가하였다. 기업의 공급능력 증대와 더불어 노동자의 임금이 동반상승했기 때문에 총수요 부족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기업의 생산성은 증가하는데 노동자의 실질보수는 증가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격차의 확대는, 기업 CEO들의 보상 증가와 금융 산업의 이윤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는 소득분포에서 상위1%의 소득 및 재산 증가로 이어졌다.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실질임금이 생산성에 조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통상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증가는 투자증가로 이어져 소비부족을 보충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는 비교우위가 있는 금융 산업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총수요 부족의 갭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정책실패를 보이게 된다.

첫 번째가 부유층과 대기업 감세를 통한 소비 및 투자 유인책이다. 왼쪽 그림은 소득세의 최고세율, 오른쪽은 법인세의 최고세율과 실효세율의 장기적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소득세의 최고세율은 70%에서 28%로 큰 폭으로 인하되었다. 그리고 법인세 실효세율은 1952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52.8%에서 지난해에는 10.5%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연방정부의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945년 35%에서 지난해 9%까지 하락하였다. 이는 최근 재정문제가 발생한 원인이기도 하다.

둘째, 부채의 증가다. 경제적 생산성이 증가하면 개인적?사회적 소비수요 또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질임금이 정체되어 구매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빚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규제 완화의 정책이 추진되었고 금융기업은 새로운 금융혁신으로 부채를 늘릴 수 있는 금융상품들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980년대 이후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여 2007년 137.6%로 늘어났다.

셋째, 주기적인 자산시장 버블이다. 소비수요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자산 가격의 상승이 필요했다.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노린 것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재산이 증가하여 부유해졌을 때 투자자와 부유층은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금융시장 호황이라는 경제적 환경과 부유층의 소비증가는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 또한 늘리게 된다. 금융시장 호황으로 투자자와 부유층의 소비성향 증가가 위에서 아래로 경제 전반적인 소비성향을 늘리기 때문에 자산시장 트리클 다운 효과라고도 한다. 주로 금융당국의 규제완화, 금융기업의 금융혁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3박자가 어우러져 추진되었다. 그리고 최근 양적완화 또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총수요 부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정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감세는 재정위기, 부채는 가계의 상환능력 악화, 그리고 버블과 붕괴는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경기침체를 초래한다. 그리고 위 세 가지 경제정책은 모두 양극화를 확대하는데 기여하였다. 다시 말해, 실질임금과 생산성의 괴리가 근본적인 정책전환으로 극복되지 않으면 미국경제는 저성장, 저고용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다. 미국경제의 현주소다.
 
5. 1%경제는 지속 가능한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국 사회는 한마디로 상위1%가 사회의 소득과 재산을 사실상 지배하는 ‘1%경제’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발표된 시티그룹 보고서도 “플루토노미의 핵심은 소득양극화”로 분석하고 있다. 플루토(Pluto)란 사회의 재산과 소득을 실제로 통제하는 최상위1%를 지칭한다. 따라서 플루토노미를 우리말로 옮기면 '1%경제'라 부를 수 있다.

시티그룹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을 기꺼이 인내하거나 인정하려는 사회는 1%경제 또한 인내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기술혁명과 금융혁신, 친기업적 정부와 감세정책이 지속되는 한 1%경제도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소득양극화가 지속되거나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또한 시티그룹은 1%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은 세제 개편이라고 보았다. 법인세, 소득세, 자본소득세 등의 인상은 1%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또한 이윤 몫 감소를 통해 부유층의 재산축적이 증가하는 것을 완화할 수도 있다. 이는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고전적인 예로서,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한 국내 노동시장 규제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1%-친화적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세계화가 지속되는 한 1%경제의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하였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시티그룹은 1%의 수중에 재산과 소비가 집중되는 사회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1%경제가 지체되거나 전복될 가능성에 대한 검토는 사회적 분석의 영역에 속한다. 유권자가 이 시스템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시스템을 원할 것인가의 문제, 즉 정치적 영역이다.

1%경제에서 1%는 사회의 재산과 소득을 통제하여 1%를 위한 정치적 이득 또한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99%는 1%와 동등한 투표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힘이 통제하는 정치적 영역에서 1%경제는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1%경제를 사회가 용인하는 이유는 유권자의 대다수가 1%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자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을 폐지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부자클럽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부자가 되는 것을 동경하기 보다는 재산의 파이를 나누려 할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유권자의 대다수가 상대적으로는 열악해졌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판단하는 한, 사회적 소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경기가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재산가치가 하락하는 기간에 사회적 소요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시티그룹의 전망에 견주어 월가시위를 분석하면, 99%의 1%클럽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1%경제에 대한 99%의 절망과 분노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 소득, 재산, 그리고 희망을 잃은 99%가 1%경제의 부정의와 탐욕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선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이라는 제목을 단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상위1%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자와 정책 당국 또한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우리 사회의 희망과 미래를 위해서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위1%는 최고의 주택, 최고의 교육, 최고의 의사, 최고의 생활양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상위1%의 운명은 다른 99%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다. 역사를 통해, 이것은 상위1%가 결국에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 PDF파일 원문에서는 그래프를 포함한 본문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 / 10 / 07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행동으로 찾아 나선 경제위기 대안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1%가 일으킨 경제위기, 99%가 문제해결에 나서다
2. 매우 명료한 요구, ‘전쟁을 끝내고 부자에게 과세를’
3. 어설픈 직접 민주주의 시위방법?
4. 99%의 중심에는 ‘무력했던’ 청년들이 있었다.

[요약]

지금 월가에서는 십 여 년 전 ‘금융혁명’이 유행한 이후 오랜만에 ‘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예의 금융혁명이 아니라 금융혁명으로 창조해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자는 혁명이 월가의 시위대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관심도 주식 시세 전광판과 서구의 지도자들을 떠나 월가 거리의 시위대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9월 17일 수 십 명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시간이 가면서 수 백 명, 수 천 명, 그리고 10월 6일에는 수 만 명 단위로 불어나자, 좀처럼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던 벤 버냉키 미국 연준(Fed)의장도 의회 청문회에서 이를 언급하기에 이른다.

"(미국) 시민은 지금 어려운 미국 경제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매우 불행해 하고 있다" "시위대는 금융부문에서 발생한 문제점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고 비난하고 있다"

월가의 시위가 단 3주 만에 미국사회의 중심 의제로 떠올랐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년 만에 재발된 세계경제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가 발끝까지 닥쳐오고 은행들이 다시 부실화되는 상황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범한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10.11정태인/새사연 원장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지난 일요일, 월스트리트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가 나타났다. 그는 시위의 성격에 대해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미국,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들은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고, (그 날 MSN에 출연해서) 금융위기의 원인, 정부가 한 일,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와 마찬가지로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크루그만은 이 새로운 대중운동이 월스트리트라는 올바른 표적을 잡았으며 궁극적으로 대전환으로 판명날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치에서 정의가 제대로 이긴 적이 없다는 데 시민들이 분노한 것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이번만 해도 첫째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들은 규제완화를 이용해서 거품을 만들어 거대한 폭리를 취했고, 둘째 거품이 터지자 시민들의 세금으로 구제되었는데도 셋째, 그들은 정치가들이 금융에 부과된 세금을 낮추고 위기 직후 만들어졌던 약한 규제마저 풀도록 만드는 것으로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연히 월스트리트가 적이다.

시민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시위를 맨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광고없애기”(Adbuster)운동은 “가장 간단한 요구로 시작한다. 정치에서 돈을 분리시키는 대통령 위원회를 만들라. 우리는 새로운 미국을 향한 의제를 만들고 있다”고 선언했다. “익명”(Anonymous)의 활동가들은 “맨하턴을 사람들로 넘치게 하라, 텐트를 세우고 부엌, 평화의 바리케이드를 만들어라, 그리고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고 호소했다.

이제 시위는 “부자에게 세금을”, “기업에 세금을”, “기업복지를 끝장내라”, “노동조합을 지원하라”, “메디케어(미국의 하층민 건강보험)와 사회안전망을 지키자”, 또 “미국연방준비은행을 감시하라” 또는 “없애 버려라”, “값싼 건강보험을 달라”, “군산복합체를 해체하라”, “전쟁을 끝내라”, 백화제방의 주장이 쓰나미를 이루고 있다.

오바마의 미약한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서도 “사회주의자”, “히틀러”등의 비난이 쏟아졌던 데 비하면 이들의 젊은 목소리는, 무너져 가는 미제국의 마지막 희망이다.

촛불, 그리고 한미 FTA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쇠고기 완전 수입자유화를 약속한 데 분노해서 시작됐던 2008년 촛불시위는, 우리의 여중생들이 시작했던 그 촛불 축제는 무려 6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살고 싶어요, 자고 싶어요”, “0교시 반대”, “4대강 사업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로 의제가 확산됐다. 여기서도 부자감세 등 1%를 위한 정책,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가 핵심이슈였고 휴대전화와 인터넷 방송이 우리의 무기였다. 말하자면 “점령하라”의 원조는 대한민국 “촛불”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소통을 원했다. 서울광장을 ‘점령’하려고, 상징으로라도 청와대를 점령하려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눈물까지 흘렸다지만 “명박산성”을 쌓아 소통을 완강하게 거부했고 시위가 잦아들자 벌금과 구류, 나아가 구속으로 맞대응했다. 쌓이고 쌓인 분노는 작년의 지자체 선거, 그리고 금년의 “무상급식 찬반 투표”로 표출됐다. 앞에 놓인 서울시장 등 재보궐선거, 그리고 내년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서도 우리는 “종이 짱돌”을 던질 것이다.

그러나 단지 정권 교체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월스트리트가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모두 매수했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들의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삼성 등 재벌의 돈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조중동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우리의 힘과 요구를 보여주지 않으면 정치인이 얼마나 제 앞의 이익만 챙기는지, 또 얼마나 상상력이 없는지...

한미 FTA를 슬그머니 통과시키려는 국회가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 미국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미국 시스템을 한국에 직수입하자는 게 한미 FTA다. 다시 한번 일어나자. 지난 4년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그런데도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지 정치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만 실제로 우리의 미래가,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열린다. 이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등록금을 어떻게 내릴지, 사교육을 그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4대강은 어떻게 되살릴지, 의료민영화 저지를 넘어 건강보험 보장성을 어떻게 강화할지, 재벌은 어떻게 규제할지, 가장 폭넓게 우리의 복지를 어떻게 설계할지 토론하자. 그리고 다시 한번 대통령에게 소통을 요구하자. 내년 의원후보,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하자. 세계는 변하고 있고 우리가 그 선봉이었다. 이제 그 변화를 최초로 제도화하는 나라가 되자. 월스트리트의 젊은이들에게 해법을 알려주자. 그게 존경받는 나라, 저들이 외쳐대는 “선진국”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