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정치2012.12.19 10:04

2012.12.19정태인/새사연 원장

 

시대교체?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를 해야 합니다" 누구 얘기일까? 바로 지난 16 일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한 얘기다. 민주당은 '명백한 표절'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가 9월 16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문을 열어주십시오.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봄에 새사연에서 출간한 <리셋 코리아-18 대 대통령이 꼭 해야 할 16 가지 개혁과제> 제1부의 제목이 바로 '정권교체에서 시대교체로'이다. 굳이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말은 2007년에 이미 언론 매체에 보도된 바 있다.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처음 사용한 말이고 그 말을 만든 사람은 나였다.  

불행하게도 너무 앞서 나갔다. 1년이 지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사람들이 시장만능의 세계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는 새로운 역사의 단계에 들어섰다. 어느 곳이 새 시대의 정책기조를 먼저 시행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지극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새사연은 문재인 후보에 이어 박근혜 후보까지 감복시킨 것일까? 불행하게도 박근혜 후보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다. 줄푸세는 시장근본주의, 경쟁지상주의의 한국어 번안이니 그야말로 구시대의 정책기조라 할 만 하다. 반면 문 후보의 정책기조는 <리셋코리아>가 제시한 '소득주도성장', 아래로부터의 성장을 그대로 받아 안았다.


새 시대의 과제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안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갈 체제를 5 년 내에 완성시킬 수는 없다. 구체제 기득권 세력, 즉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3 각 동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어떤 것은 조심스럽게 구체제를 해체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은 다행히 빈 터라서 바로 주춧돌을 놓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먼저 국민들부터 다독여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시대교체'의 과제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머릿속에서 해결될 리 없다. 문후보가 밝힌 '국민정당'과 '시민의 정부'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선 문후보가 명확히 밝히지 않은 핵심 과제 몇 개만 짚어 놓는다.

우선 가장 장기적인 것으로,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좌우할 생태문제를 들 수 있다.

어제 토론에서도 드러났듯이 박근혜 후보는 원전 마피아들을 해체할 생각이 전혀 없다(종합적으로 꼼꼼히 검토하겠단다). 문재인 후보는 수명이 다 한 원자로를 폐쇄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할 뜻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원전의 축소와 함께 탄소 배출도 시급히 줄여야 한다. 전기의 생산과 소비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 전격적으로 충분히 높은 세율의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 늦어도 인수위가 탄소세 부과의 청사진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새 시대의 패권교체기에 우리나라가 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도 미국의 패권도 , 중국의 패권도 원하지 않는다. 생태공동체, 경제공동체로 동아시아를 묶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다. 동아시아의 외환보유고를 공동 관리해서 2조 달러 이상의 여유분을 동아시아 경제의 생태화, 낙후지역의 개발에 사용해야 한다. 이런 동아시아판 마샬플랜은 이 지역 총수요를 확대해서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구할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미국도 반대하기 어렵다. 정권 초기에 중국, 일본, 동남아와 논의해서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천명해야 한다.

구시대의 유물인 FTA 협상에 목매달 때가 아니다. 최근 IMF 가 허용한 나라별 자본통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토빈세를 부과할 때 가장 효과가 클 것이다. 참고로 0.05% 정도의 토빈세를 부과하면(즉 1억 원의 외국 돈이 국경을 넘을 때 5만 원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면) 약 7-8조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셋째는 복지국가 건설의 경로를 밝히는 일이다.

국회의 다수를 점하는 새누리당은 '재정 건전성'을 들어 거의 모든 복지 확대에 반대할 것이다. 현재 표류 중인 유통법이 곧 닥칠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시행령만 바꿔도 해결할 수 있는 복지 정책, 경제민주화 정책도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시행령만 개정해도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확대할 수 있다. 인수위는 모든 분야의 시행령을 검토해서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일괄 처리해야 한다.

서민들에 대한 이런 복지는 동시에 단기 침체를 극복할 원동력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복지의 힘을 피부로 느낄 때 법을 바꿔야 하는 정책들도 해결할 수 있다. 기존 국회의원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오직 국민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은 새 시대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밝히고 국민이 합의한 일부터 재빨리 실행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강조한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가 커다란 방향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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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은 기후변화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걸린,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집단행동의 논리’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나 홀로 아무리 애써봐도 아무 소용 없고 우리나라만 이산화탄소를 줄여봐야 중국이 지금처럼 석탄과 석유를 땐다면 비극을 막을 수 없다. 하여 최근 작고한 오스트롬은 자신의 지론인 다중심접근(polycentric approach)이 기후변화 문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개인, 지역공동체, 국가, 국제적 협력이라는 각 차원의 중심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개혁은 시스템 전체를 대상으로 대규모로 일어나야 하며, 1·2차 네트워크혁신(철도와 IT 네트워크)에 버금가는 에너지 네트워크의 혁신이 필요하니 개혁의 심도 역시 깊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1차 에너지원의 이산화탄소 함유량에 따라 탄소세를 부과한다. 세율을 매기는 원칙은 우선 배기구혁신(부가혁신)이 아니라 엔진혁신(돌파혁신)이 일어날 정도로 높아야 하고, 동시에 제본스역설(기술혁신에 의해 가격이 낮아져서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녹색역설’(green paradox·미래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여 현재의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점진적 증가가 아니라 단번에 인상해야 한다.

정밀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평균 석유 1ℓ당 70∼80원의 세금만 추가해도 8조원 정도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탄소세 외에도 교통혼잡세, 매립세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든 요인에 매기는 세금을 생태세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핵과 화석연료에너지 공급을 줄인다. 현재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는 폐쇄하고 추가 원전 건설은 중지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의 확대에 비례해서 핵발전의 비중도 줄이는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핵에너지가 청정에너지로 둔갑한 것은 지난 호에 얘기한 것처럼 미래의 위험을 가볍게 여긴 결과로, 다시 말해서 현재의 비용을 미래세대에게 넘긴 결과일 뿐이다.
 
이런 변화는 중앙집중식 에너지체제에서 분산형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발전차액지원제(FIT·재생가능에너지 생산비용이 현재의 전기요금을 상회할 경우 그 차액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와 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결합하여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분산된 에너지원을 스마트그리드(똘똘한 전력망)로 연결해야 한다. 스마트그리드는 네트워크이므로 공공투자가 집중되어야 하며, 각 기업은 네트워크와의 접속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현재 대기업 중심의 혁신 보조금을 중소기업으로 돌린다. 앞으로 예상되는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간투자의 확대가 필수적인데, 이미 충분히 현금을 지니고 있는 대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이런 투자가 상쇄되는 결과를 낳는다. 탄소세 등에 의한 비용 상승과 혁신에 의한 수요 증가는 그 자체로 충분한 투자유인이 된다. 녹색혁신은 그 자체로 불황타개책이다.
 
넷째, 중국이 대대적인 ‘에너지혁신’을 내건 것도 한국이 더 이상 녹색혁신을 미룰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그리고 아세안)에 에너지/환경 협력을 제안해야 한다. 탄소배출 목표와 방법에 관한 합의, 사막화와 황사와 같은 현안 해결, 스마트그리드 표준에 관한 협력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정부와 개인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한편 탄소함유량이 낮은 제품(국가는 모든 상품에 탄소함유량을 표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을 선택함으로써 기업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지역공동체는 예컨대 태양광협동조합에 의해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다양한 에너지원을 개발할 수 있다.
 
생태문제는 거대한 사회적 딜레마이고 착한 경제학은 신뢰와 협동을 그 해법으로 내놓았다. 적절한 정책은 이런 협동을 촉진할 것이다. 대처의 용어를 원용하자면 ‘다른 길은 없다’. 이번 대선은 생태문제를 신뢰와 협동으로 풀 지도자가 누구인지 선택하는 일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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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원전 이슈, 안전성에서 발전 체제로

 

이제 원자력 발전의 전환을 이슈화하자. 일본 동북부의 참사가 방사능 공포로 이어지면서 원전의 ‘안전신화’가 산산이 깨지고 있으나 우리의 관심은 ‘안전 그 이상’에 있어야 함을 감히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가, 경제적으로 원전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평가와 경제적 평가의 내용이 틀렸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 자체가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본질은 거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위험사회’에 있으며, 경제 이해의 관성에 따라 가속화되는 ‘불평등 사회’에 있다. 위험사회, 불평등사회의 질적인 수준은 아무리 정교한 것일 지라도 수치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다.

보다 적절한 평가 방식은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는 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을 달성한 국가라 할 만하다. 발전규모가 세계 6위의 선진국이며 추가 건설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인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갈등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전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은 왜일까? 그것은 현재의 에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이해당사자들이 있고 이러한 체제에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적응해 있기 때문이다. 원전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원전에 얽힌 이해(利害)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달리 갈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평가 방식은 문화적 가치, 제도적 조직 그리고 권력적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사회 과학’과 관련되어야 한다.

 

경성(hard) 에너지 체제의 황태자, 원자력 발전

 

모리슨과 라드윅(Morrison and Lodwick, 1981)은 사회과학의 (진정한) 과제는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들에게 크게 영감을 준 라빈스(Lovins, 1976)는 일찍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의 세계 에너지체제는 ‘경성 에너지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경성 에너지 경로(hard energy path)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바탕으로 거대자본과 거대기술로 구성되는 공급위주의 대규모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이용방식’을 말한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경제성장의 관건이라는 믿음 하에 에너지원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채택되고 통제권은 권위주의적 관료에 주어지며 운영 및 관리는 기술엘리트와 사적기업에 의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의해 황당하게도 녹색성장의 에너지원으로 지목된 원자력은 이상의 경성 에너지 경로의 결정판이다.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은 환경친화성, 공급지속가능성, 형평성과 민주성 등에 커다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예컨대 환경친화성의 문제점은 최근 일본 원전 사고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고 공급지속가능성은 자원의 고갈가능성에 의해 의심받고 있다. 에너지 과잉소비는 다음 세대의 선택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세대간 형평성을 훼손시키고 가격 부담의 차이는 동시대 저소득층에게도 생계비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에너지 빈곤층은 전력공급 인프라의 사각지대에서 구조화되고 값싼 공공전력 대신에 값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데로 내몰린다.

원자력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보다 훨씬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 의사결정의 중앙집중, 생산 및 소비 공간집중 수준-우리나라는 이 수치에서 세계 1위이다-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제한되는 것이다. 발전시설, 폐기물처리 시설은 지방의 일부 지역에 밀집되지만 전력소비는 대도시지역에 밀집된다. 이는 위험부담이 불평등하게 분배됨을 의미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투표권의 격차에 의해 무위로 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필자는 전력체제의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산은 산업부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규모에 있어 그러하다. 최종 소비부문에 있어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약 60%로 가정용의 약 3배에 이른다. 둘째로, 산업부문이 현재 에너지경제체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원의 변화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산업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변화가 동반해야만 새로운 소비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전과 산업부문의 관련성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산업부문은 그 특성상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기초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데(전체 발전량의 약 40%) 이는 한번 가동하면 멈추지 않고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원자력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자력을 기초 전력으로써 대규모 산업전력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원전 확대에 현실적 정당성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원자력이 기초 전력이 됨에 따라 전력소비가 적은 시각이나 계절에 막대한 잉여전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성 경로를 벗어나 연성 경로로 진입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이른바 ‘자원 안보’의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문제는 한층 국내외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수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생활 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원자력의 공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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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얻은 논문 윤순진(2009), “한국의 에너지체제와 지속가능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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