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정치2012.12.19 10:04

2012.12.19정태인/새사연 원장

 

시대교체?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를 해야 합니다" 누구 얘기일까? 바로 지난 16 일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한 얘기다. 민주당은 '명백한 표절'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가 9월 16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문을 열어주십시오.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봄에 새사연에서 출간한 <리셋 코리아-18 대 대통령이 꼭 해야 할 16 가지 개혁과제> 제1부의 제목이 바로 '정권교체에서 시대교체로'이다. 굳이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말은 2007년에 이미 언론 매체에 보도된 바 있다.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처음 사용한 말이고 그 말을 만든 사람은 나였다.  

불행하게도 너무 앞서 나갔다. 1년이 지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사람들이 시장만능의 세계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는 새로운 역사의 단계에 들어섰다. 어느 곳이 새 시대의 정책기조를 먼저 시행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지극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새사연은 문재인 후보에 이어 박근혜 후보까지 감복시킨 것일까? 불행하게도 박근혜 후보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다. 줄푸세는 시장근본주의, 경쟁지상주의의 한국어 번안이니 그야말로 구시대의 정책기조라 할 만 하다. 반면 문 후보의 정책기조는 <리셋코리아>가 제시한 '소득주도성장', 아래로부터의 성장을 그대로 받아 안았다.


새 시대의 과제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안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갈 체제를 5 년 내에 완성시킬 수는 없다. 구체제 기득권 세력, 즉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3 각 동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어떤 것은 조심스럽게 구체제를 해체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은 다행히 빈 터라서 바로 주춧돌을 놓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먼저 국민들부터 다독여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시대교체'의 과제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머릿속에서 해결될 리 없다. 문후보가 밝힌 '국민정당'과 '시민의 정부'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선 문후보가 명확히 밝히지 않은 핵심 과제 몇 개만 짚어 놓는다.

우선 가장 장기적인 것으로,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좌우할 생태문제를 들 수 있다.

어제 토론에서도 드러났듯이 박근혜 후보는 원전 마피아들을 해체할 생각이 전혀 없다(종합적으로 꼼꼼히 검토하겠단다). 문재인 후보는 수명이 다 한 원자로를 폐쇄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할 뜻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원전의 축소와 함께 탄소 배출도 시급히 줄여야 한다. 전기의 생산과 소비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 전격적으로 충분히 높은 세율의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 늦어도 인수위가 탄소세 부과의 청사진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새 시대의 패권교체기에 우리나라가 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도 미국의 패권도 , 중국의 패권도 원하지 않는다. 생태공동체, 경제공동체로 동아시아를 묶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다. 동아시아의 외환보유고를 공동 관리해서 2조 달러 이상의 여유분을 동아시아 경제의 생태화, 낙후지역의 개발에 사용해야 한다. 이런 동아시아판 마샬플랜은 이 지역 총수요를 확대해서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구할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미국도 반대하기 어렵다. 정권 초기에 중국, 일본, 동남아와 논의해서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천명해야 한다.

구시대의 유물인 FTA 협상에 목매달 때가 아니다. 최근 IMF 가 허용한 나라별 자본통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토빈세를 부과할 때 가장 효과가 클 것이다. 참고로 0.05% 정도의 토빈세를 부과하면(즉 1억 원의 외국 돈이 국경을 넘을 때 5만 원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면) 약 7-8조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셋째는 복지국가 건설의 경로를 밝히는 일이다.

국회의 다수를 점하는 새누리당은 '재정 건전성'을 들어 거의 모든 복지 확대에 반대할 것이다. 현재 표류 중인 유통법이 곧 닥칠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시행령만 바꿔도 해결할 수 있는 복지 정책, 경제민주화 정책도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시행령만 개정해도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확대할 수 있다. 인수위는 모든 분야의 시행령을 검토해서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일괄 처리해야 한다.

서민들에 대한 이런 복지는 동시에 단기 침체를 극복할 원동력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복지의 힘을 피부로 느낄 때 법을 바꿔야 하는 정책들도 해결할 수 있다. 기존 국회의원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오직 국민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은 새 시대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밝히고 국민이 합의한 일부터 재빨리 실행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강조한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가 커다란 방향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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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9.06.11 17:13
적정 외환보유고 논쟁에 부쳐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http://saesayon.org에서 PDF파일 다운로드

외환시장 충격이 주는 막대한 영향

금융위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환율이 1,200원 수준에서 안정되어 급격한 불안정성이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 1월초 기준으로 2,012억 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수개월 동안 이어진 무역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세에 힘입어 2009년 5월말 기준 2,267억 달러 이상으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에 다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해 두자는 것이다.

지난 5월 28일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장이 "경상수입액과 유동외채,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액 등을 감안해 볼 때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 정도 돼야 위기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외환보유액을 1,000억 달러 이상 늘리자는 주장과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에 정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관망하고 있다.

사실 주식시장, 대출시장, 채권시장과 달리 외환시장은 주로 은행들이나 해외 금융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금융시장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은 기억이 뚜렷한 우리 국민들에게 외환시장의 불안정성과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주요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걱정이 괜한 기우가 아님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09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격히 확산되자 한국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외환시장이었다. 1,100원대를 오가던 환율이 순식간에 1,500원 선을 넘었는가 하면, 외환보유고는 2008년 9월 2,400억 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3개월 만에 2,000억 달러에 턱걸이를 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300억 달러 한미 통화스왑이 없었다면 2,000억 달러마저 무너졌을 것은 분명하다.

외환위기는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의 외환지불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고, 외신들은 잇달아 국내 시중은행발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으며 시중은행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내려가면서 위기는 증폭되었다. 1997년 이후 엄청난 기회비용을 감수하며 축적해왔던 세계 5위 규모의 막대한 외환보유고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단지 외환지불능력 문제만 터져나왔던 것은 아니다. 환율 폭등으로 글로벌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의 수입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외환관련 파생상품 손실이나 외환헤지손실은 곳곳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었던 KIKO와 환변동보험 상품에 의한 기업손실이 총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자본시장연구원, “세계 외환시장의 최근 흐름과 국내 외환시장 안정에 대한 시사점”, 2009.5).

GM대우는 2008년 자동차 판매 영업이익으로 2,300억 원을 남겼음에도, 외환 손실이 1조 원을 넘겨 큰 손해를 봤다는 회계결과도 발표한 바 있다. 2009년 들어 무역수지는 큰 폭의 흑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이후 자본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본 것도 외환 파생상품 손실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결과이기도 하다.

외환보유고는 얼마나 쌓아야 안심할 수 있을까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 통화가 고작 0.5퍼센트 수준의 중요도 밖에 안되는 실정에서 우리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대처하면서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외환시장과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해야 한다고 여겨왔다. 그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외환보유고를 쌓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이 문제를 거의 사활을 건 과제처럼 다뤄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때 100억 달러도 안 되었던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001년 9월 기준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05년 2월에는 다시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때 환율이 떨어지면서 수출업체에게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었다. 한때 외환보유고가 너무 많다며 외환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해외투자를 촉진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던 적도 있었다. 당시 환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끌어올리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는 실제적인 시장개입을 하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2008년 3월 외환보유고는 2,642억 달러로 최고 수준에 도달해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에 이어 5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환율은 올라갔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직후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2,400억 달러를 넘겼지만, 급격한 외환시장의 불안과 환율 폭등은 막지 못했다. 결국 “최후 지불수단이 2,400억 달러나 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외환 보유고) 수준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최근 몇 달 동안의 경험이었다.”는 평가가 나올만 했던 것이다(금융연구원, “외환보유액과 원화의 위상”, 2009.3.)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3개월 수입물량 지급대금 정도의 외환보유고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3개월분 수입결재 대금 외에, 1년 안에 돌아오는 외채를 상환할 수 있는 금액이 더해져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추가로 외국인들이 투자한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를 대량 회수할 것까지 감안한 외환보유고가 쌓여야 한다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신흥국들의 자본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환율제도와 외환거래가 자유화된 것과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주식투자나 채권 투자, 파생상품 투자 등)가 급증하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금융위기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개방화되고 자유화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환투기 세력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그 정도가 심화되었다.

현재 외환보유고 확대 논란도 사실상 그 연장선에 있다. 2009년 3월말 기준으로 단순 계산을 해보자. 현재 3개월치 수입 금액은 712억 달러이다. 그리고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뜻하는 ‘유동외채’는 1,857억 달러이다(한국은행, “2009년 3월말 국제투자대조표 분석”, 2009.5)

여기에 외국인이 보유한 포트폴리오 투자(주식투자 +채권투자) 금액은 2,436억 달러이니, 이 가운데 1/3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최악의 가정을 해보면 812억 달러 정도가 나온다. 이를 모두 합하면 산술적으로는 3,381억 달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5월말 현재 외환보유고가 2,267억 달러이므로 추가로 1,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쌓아야 안심이 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이정도 규모면 외환시장 안정과 환율 안정을 이룰 수 있겠는가? 문제는 누구도 이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것은 2008년 10월 금융위기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과연 그 정도의 외환보유고를 확보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한 걸까. 2조 달러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는 세계 1위 외환보유국 중국이 과연 외환보유고 때문에 환율이 안정되어 있을까, 아니면 관리변동 환율제 때문일까.

세계 2위 외환보유국으로 약 1조 달러 가까운 외환을 보유한 일본의 단기외채가 1조 3,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은 또 무엇을 말해 주는가. 외환보유액이 1,500억 달러인 홍콩의 단기외채는 5,000억 달러를 넘는다. 이런 사실은 무얼 의미하는 건가. 외환보유고가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은 되겠으나, 근원적인 안정화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상당히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끝까지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면 답이 없다

외환 변동성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2008년 9월부터 최근의 외환보유고 확대 논쟁까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종합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외환시장 변동성이 매우 커지면서, 외환시장의 불안이 금융시장은 물론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는데 공감하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한다.

▶ 단기적으로는 유동외채를 감당하는 것은 물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것을 감안해서 외환보유고를 확대하자. 외환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기에 들어가고 환율이 하향 안정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이 좋다. 아울러 통화 스왑을 확대해 안정적인 외화 조달 통로를 확대하자. 그러나 외환보유고 확대를 위한 달러 매입으로 원화 통화가 지나치게 풀리고 달러 매입을 위한 외평채 발행 부담이 생기는 문제를 고려하자. 외국 특히 미국에서 ‘환율 조작국’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유의하자.

▶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규모 세계 14위인데 비해 외환시장 규모가 18위로 아직 작기 때문에 외환시장 규모를 키워서 외화 유출입으로 인한 변동성을 최소화하자(한국금융센터 창립 심포지엄 발표에서 <프레시안> 2009.5.15). 이 정도가 거의 대책의 전부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가정이 있다. 외환시장 불안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고, ‘개방된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을 다시 뒤로 돌리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는 가정을 미리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많은 대책이 나와도 한결같이 시장적 접근 방식의 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준비해서 필요한 때에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거나 사들이는 식으로 외환시장을 안정화시키자는 주장도 그렇고, 외환 시장 규모를 키워서 불안정성을 최소화 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제가 필요한 금융부문은 바로 외환시장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파생상품이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미국처럼 주택금융시장이 아니라 바로 외환파생상품시장을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금융규제를 이야기 한다면 반드시 외환시장 규제를 말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0여년간 외환시장에서 정부가 취한 규제완화, 자유화 조치들을 엄밀하게 재검토하고 현재 시점에서 재규제를 하거나 새롭게 규제할 영역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지난 신자유주의 30년간 완화되거나 폐지되면서 지금의 금융위기를 일으킨 각종 규제를 재도입하기 위해 다양한 검토를 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이 “이미 개방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불어나고 환율이 떨어지자 해외투자 등을 독려하면서 외화의 해외유출관련 규제를 폐지했던 2005년의 자본거래 허가제 폐지를 복원시키는 문제는 심각히 검토할 만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당시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거래 허가제는 “유사시 안전장치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보완장치의 하나로, 환투기 조장 등을 통해 국내 외환 및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자본 거래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를 얻도록 한 제도”였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한국 주식시장에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인투자 비중을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최근 환율변동성은 외국인 주식 매매 동향에 의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외환위기설이 모두 국가채무 문제라기보다는 시중은행들의 과도한 단기차입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은행의 단기차입 비중을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은행 단기차입 폭등의 이유가 주로 국내의 해외투자나 선박수주에 대한 선물환헤지 때문이라고는 하나, 단기차입이 커져서 환율이 크게 요동친다면 본래 헤지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고 오히려 환헤지로 인한 손실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관전에서도, 외환시장 규모를 키워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것은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시장 규모가 세계 18위로 경제규모보다 작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순위 문제가 아니라 규모의 격차 문제다. 세계 외환시장 일일 거래량은 2007년 기준으로 3조 2,000억 달러이고 외환파생상품을 포함하면 4조 달러에 이른다(새사연, 한국 경제의 큰 구멍, 외환시장, 2009.4)

그런데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일일 거래량은 고작 300억 ~ 500억 달러 수준이다. 세계 외환시장 규모의 1/100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규모를 조금 키운다고 해봐야 한 번에 수십억 달러씩 움직이는 환투기 세력과 ‘시장 안에서’ 경쟁하여 외환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규모 금융개방경제’에서 규모로 승부를 본다는 것은 자기모순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최근 달러 기축통화체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면서 아시아 통화 바스켓 등 글로벌하게, 그리고 지역별로 새로운 통화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향후 추세를 반영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아시아 통화체제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함께 연동시켜 우리의 환율제도 개혁을 검토하는 것이 먼저지, 외환시장 규모를 키우자는 것이 앞으로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외환시장에 대한 시장지상주의를 극복하고 규제와 제도개혁을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 때가 되었다. 이것이 외환보유고 확대 논쟁보다 중요한 이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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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본사, ‘닥치고 본방송 사수’를 줄인 인터넷 신조어로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발해진 요즘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만큼은 본방송 시간을 지켜서 보자는 뜻이다. 이 말을 빌려 요즘 경제상황을 표현하자면 닥달사, ‘닥치고 달러 사수’가 되겠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언제 어디서 무엇이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믿을 것은 지금 당장 내 손에 쥔 달러밖에 없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공급은 멈추고, 달러 수요는 널렸다

이 같은 전세계적 유동성 경색으로 인해 작년 말 930원대였던 환율이 최근 하루에 50원 가량씩 급상승하여 13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달러와 원화의 교환비율이다. 따라서 환율이 상승하면 달러의 가치는 높아지고, 원화의 가치는 낮아졌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달러를 팔겠다는 사람은 없을 때 환율이 상승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이 이외에도 현재 환율을 상승시키고 있는 요인이 몇 가지 더 있다. 우선 외국인 주식자금의 이탈이다. 월가의 자금이 부족해지자, 외국인들이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한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꾼 후 본국에 송금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순매도 주식은 38조 6691억 원으로, 약 30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이 빠져나갔다. 계속되는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외환보유고 감소도 환율 상승의 원인이다. 올해 들어 9월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142억 달러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규모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일관성 없는 환율정책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정부는 집권 초기 수출증대를 통한 7% 성장을 외치며 고환율 정책을 추진하여, 시중의 달러를 계속 사들였다. 달러는 귀해졌고, 수입물가는 상승했다. 그러더니 7월부터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저환율 정책을 추진하여, 달러 가치를 저렴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는 외국인들은 싼값에 달러를 얻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정책을 펼친 탓에 앞으로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던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리라는 점이다.

일관성 없는 환율 정책이 문제 악화

그렇다면 환율 상승은 어떤 문제를 불러올까? 일단 해외에 돈을 보낼 때 부담이 증가한다. 똑같은 1달러를 보내도 예전에는 900원을 환전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1300원을 환전해야 한다. 수입물가도 상승한다. 물건을 수입하려면 달러를 주고 사와야 하는데, 달러의 가격이 상승했으니 물건값도 오르는 것이다. 수입원자재를 사용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큰 타격을 입게 된다.

KIKO에 가입된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 심각해진다. 9월 말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KIKO 피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면서 “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경우 환율이 1200원선까지 오르게 되면 68.6%가 부도 위험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미 환율이 1200원을 돌파한 지금,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흑자를 내고도 부도에 이르는 흑자부도에 몰리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환율 상승과 함께 외환보유고 확보가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외환보유고는 2396억 7천만 달러이다. 전달보다 35억 3천만 달러 줄었으며, 올해 들어 총 226억 달러가 줄었다. 정부는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하지만, 97년 외환위기가 외환보유고의 부족으로 발생한 일임을 생각했을 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금의 국제적 신용경색이 장기화될 경우 외환보유고 확보는 더 중요해진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경제, 멈춰버린 화폐

‘환율대란’, ‘패닉’, ‘공포’ 라는 비명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외화자금시장에 100억 달러를 공급하고, 수출입은행을 통해서도 50억 달러를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부족한 달러를 정부가 방출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달러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달러가 돌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달러를 아무리 풀어도 서로 제 주머니에만 묶어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하루짜리 대출도 쉽사리 빌려주지 않는 상황이다. 온 몸을 돌며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야 할 혈액이 딱 멈춰버린 꼴이다. 말 그대로 ‘경색’이다.

지금의 불신이 폭발하여 모든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찾거나, 모든 펀드 투자자들이 펀드를 회수하는 뱅크런과 펀드런 같은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말로만 듣던 ‘공황’이 우리 앞에 와있다.

<용어 공부>

▶KIKO(Knock-in Knock-out)

일정한 범위 안에서 환율이 움직일 때 환차손을 보상받을 수 있는 환헤지 파생상품. 환율이 계약 구간 아래로 내려가면 계약이 종료되고, 계약 구간 위로 올라가면 원금 손실까지 입을 수 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은행과 KIKO 계약을 맺었으나, 최근 고환율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다.

▶외환보유고

한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대외 외환채권의 총액. 국가의 지급불능 사태에 대비하고 외환시장 교란 시 환율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의 규모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 국가가 급하게 필요한 자금 수요에 대비하여 여유자금으로 갖고 있는 외국돈, 외환의 규모이다.

▶외국환평형기금

달러 등 외화의 가격이 급등락하는 것을 막고 원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조성하는 기금. 1967년에 만들어졌으며 이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라 부른다.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은행에 돈을 맡기 예금자들이 예금을 찾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은행이 파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은행이 부실해지거나 경제가 불안해져서 예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발생한다.

▶펀드런(fund run)

대규모 펀드 환매 사태.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고 몰려드는 상황을 말한다. 뱅크런과 마찬가지로 투자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발생한다.

이수연 / 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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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