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18 새사연

이제는 에너지 분권화 정책이 필요하다.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목 차]

1.에너지 안보 패러다임을 넘어.

2. 탄소감축, 다양화, 탈 집중화를 위해

3. 권력 불평등을 해소하는 에너지 정책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 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리셋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 원래 원고들을 가지고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을 넘어

2011년은 에너지 위기가 어떻게 도래할 수 있을지를 마치 영화 예고편처럼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2월에는 리비아 사태, 3월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그리고 9월 한국에서는 대규모 정전이 있었다. 이 사건들은 각각 지정학적 위험, 핵발전의 위험 그리고 허약한 전력체제의 위험을 상징한다. 과학사회학과 재난관리이론 등에서 사용하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s)라는 용어로 설명하기에도 딱 맞다. 정상사고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인 기술체계가 사고의 위험을 줄일 것이라는 일반의 믿음과는 달리 오히려 필연적으로 사고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뜻한다. 시작은 조그만 사건이었지만, 통합되고 집중된 기술체계를 타고 가속화되면서 거대한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 위기의 발생가능성이 상존할 뿐만 아니라 발생가능한 피해가 재난의 수준이라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라 부를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정책은 값싼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핵심 목표로 하는 에너지안보의 패러다임 속에서 추진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전력 민영화라는 패러다임이 더해졌다. 에너지안보와 전력 민영화 패러다임은 에너지 자원에 대한 금융시장, 특히 파생상품시장의 개입이 높아지고 있는 국제 환경과도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자원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 하고 있다. 유가의 상승은 지나치게 팽창한 원유 금융시장의 불안과 석유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안보의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이후 국가 에너지 정책의 토대는 바로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에 기초해 왔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자원의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해외 자원의 안정적 확보란 1970년대 발생했던 석유파동과 같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두는 것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산업 생산 및 소비를 극대화시키는 것과 동일시되고 환경과 자원에 대한 가치는 배제되거나 부차화된다. 이 과정에서 중앙집중화된 대규모 전력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대규모 전력 체제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체제와 잘 조응할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급격한 변동에 대처하는 잉여 전력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십 수 년 동안에는 자주 개발률제고 정책과 원자력발전소건설 정책이 한국의 중요 에너지 정책으로 부상하였다. 혹자는 이 정책들이 수입 원유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경제 성장주의, 에너지 공급주의에 종속되어 있다. 또한 해외 자원 확보와 원자력 발전, 신 에너지 기술개발 등 최근 정부가 핵심 전략으로 채택한 사업들은 모두 대규모 자본이 주도하는 대형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에너지안보 패러다임에 종속된 에너지 정책을 지속하는 한 인류와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수 십 년간 이룩한 경제적, 기술적 성취는 동시에 다수의 새로운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특히 회복할 수 없는 환경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마저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기후 온난화와 탄소 배출 감소로 상징되는 환경적 가치가 주변화되거나 파괴될 뿐만 아니라 에너지 빈곤, 에너지 수익과 분배의 불평등 같은 사회경제적 소외가 심화되고 있다.

 

2. 탄소 감축, 다양화, 탈집중화를 위해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에너지 정책의 과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속가능한 환경 및 자연자본 유지를 위한 탄소 감축이 요구된다. 둘째, 1차 에너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 지속불가능한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부터 탈피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중앙집중식 전력 중심 체제에서 탈피한 탈집중화된 에너지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중앙집중식 전력 중심 체제란 에너지 생산과 분배에 있어 전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발전과 소비가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각각 집중되는 구조를 말한다. 이 체제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에너지 손실도 매우 높다. 또한 고도로 집중화된 시스템은 의사 결정의 집중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흔히 위계 구조의 강화로 이어진다.

 

...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용어해설

에너지 빈곤층이란?

지식경제부는 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 부담이 10% 이상인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정의하고, 약 123만 가구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표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해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약 201만 가구로 늘어난다.

정부가 제시한 지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소득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아 연구자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처분소득 또는 이에 상응하는 소득으로 변경, 확립되어야 한다.

2) 에너지 비용은 지출된 금액만을 단순 집계한다. 이는 많은 저소득 가구들이 에너지 비용을 필요량보다 적게 지출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여름과 겨울에 혹서와 혹한을 감내하고 비용을 거의 지출하지 않았다면 에너지 빈곤가구에 포함되지 못한다.


▶문제현상

소득 격차 만큼 에너지 빈곤 늘어나

2011년 현재 1분위 저소득 가구의 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 부담은 12.9%로 10분위 고소득 가구의 1.7%보다 무려 7.6배 높다. 이 때 1분위 가구의 소득은 10분위 가구의 1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즉, 소득은 적은데 에너지 비용은 많이 부담하고 있다. 이는 소득 격차만큼 에너지 빈곤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 에너지 빈곤 심화

게다가 최근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는 등 에너지 가격 폭등에 의해서 에너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2008년 초에는 1분위 가구의 광열비 비용이 무려 소득 대비 34.31%까지 치솟은 바 있다.

없는 살림일수록 비싼 에너지 사용

저소득, 빈곤층 가구가 밀집한 지역일수록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져 에너지비용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가정용 에너지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것은 도시가스이며(연탄은 제외) 전기. 석유. LPG 등은 고가 연료이다. 실내등유는 도시가스보다 약 60% 이상 비싸다. 그런데 저소득층은 도시가스나 지역난방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어 전기, 석유 등의 고가 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 진단과 해법

적정 온도 기준을 포함한 에너지 빈곤층 정의

먼저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재정의가 시급하다. ‘에너지 빈곤’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는 적정 온도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적절 난방온도를 거실 21 ℃, 거실 이외의 방 18 ℃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에너지 빈곤층을 ‘적정 난방 수준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처분소득의 5%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가구’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차상위계층으로의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 확대

현재 차상위계층은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수급계층보다 차상위계층의 난방 중단일수가 오히려 더 길게 나타나고 있다. 한파의 추위에 떠는 경험은 오히려 차상위계층에 더 진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에너지 빈곤층’을 재정의하게 되면 차상위계층은 물론 소득 중위 50% 미만까지 포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환형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의 확대

에너지 빈곤층의 확대는 저소득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인프라의 미비, 효율화라는 기술적 진보로부터의 소외에서도 발생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기반시설의 확대, 가정용 에너지기기와 주택의 효율화 사업 강화도 포함되어야 한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5.1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4월까지 4%를 넘어서며 국민 생활에 주름살을 만들고 있는 것이 물가다. 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빠르게 올라 부담은 4%라는 숫자의 의미를 넘어선다.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석유와 식품가격이 크게 올랐던 것도 한몫했다. 이처럼 국민생활에 부담을 주고 있는 물가상승의 핵심 원인이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유와 원자재, 그리고 세계 곡물가격의 급상승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올해 들어 다시 100달러를 돌파한 유가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온난화 등의 환경변화에 따라 최근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인식과 접근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전력이나 석유 등 에너지 산업 정책은 “높은 산업생산과 고도 경제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나서서 낮은 가격으로 충분히 공급해 준다고 하는 공급위주 정책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지속해 왔다. 70년대 이후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에너지 수요가 늘고 석유파동 충격을 받았지만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면서 공급위주 정책은 꺾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과잉 탄소배출에 의한 온난화가 빨라지고 화석연료 생산증대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에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원자력은 일본 원전사고가 명백히 입증해 주고 있듯이 당장 비용이 덜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험도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이 현실로 밝혀지면서 더 이상 기존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는 상태다. 중앙정부에 의한 공급위주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 저탄소·저에너지 소비형의 산업정책 전환을 포함하는 ‘수요관리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수요관리와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목표를 잡고 이를 녹색성장 산업이자 미래산업의 관점에서 정책적으로 집중하려는 추세다. 물론 우리 정부는 여전히 원자력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수요관리정책으로 적극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렇다면 농업은 어떨까. “자동차 팔아서 밀과 옥수수를 사오면 된다”는 주장이 압축해 주고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낮은 가격의 곡물이 무한히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해 이른바 산업 비교열위에 있는 국내 농업기반을 거의 폭력적으로 축소시키면서 해외수입으로 충당해 왔다. 그 결과 쌀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이 4%에 불과한 지경까지 왔지만 저가의 해외곡물 수입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최근까지는 당장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한때 곡물생산 증대가 한계에 다다르자, 마치 에너지 산업에서 원자력을 도입했던 것처럼 농업에서 이른바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이 개발되면서 자연적 증산의 한계를 넘어 버렸다고 안일하게 인식했다. 그 결과 한국은 GMO 농산물을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GMO 농산물은 원자력처럼 저비용의 대량생산이 가능한지는 몰라도 그 위험도는 무한일 수도 있을 만큼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2008년에 이어 지난해 말부터 두 번째로 곡물가격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물가불안이 이어지면서 중동에서 엄청난 저항과 시위가 발생하자 무언가 근본적이 대책이 시급한 것 아닌가 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에너지 산업에서 보여 줬던 사고 발상 이상의 발상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게 된 시점에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책을 보면 발상 전환의 조짐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해외곡물 생산기지 확보나 해외곡물조달체제 구축 등이 주요 대책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는 국내 농업기반을 재구축하기 위해 농업에 녹색산업이자 미래 핵심 전략산업의 가치를 부여하고 혁신적인 농업재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장기과정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도 엿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략적 접근의 대전환이 절박한 에너지 산업과 농업의 미래가 비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에너지 산업과 농업의 밀접한 연관성은 더 있다. 화석연료를 대체하고자 옥수수 같은 곡물을 원료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게 되고, 반대로 대규모 농업생산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다 쓰면서 서로 불가분하게 얽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옥수수 생산의 4분의 1은 사람의 식용이나 가축 사료용이 아니라 바이오에탄올 연료를 위해 재배되고 있고 이는 더욱 확대될 추세다. 석유 값이 뛰면 바이오에탄올 증산을 위해 더 많은 곡물이 원료로 투입된다. 옥수수가격이 동시에 뛰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얼핏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에너지 산업과 농업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3.31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원전 이슈, 안전성에서 발전 체제로

 

이제 원자력 발전의 전환을 이슈화하자. 일본 동북부의 참사가 방사능 공포로 이어지면서 원전의 ‘안전신화’가 산산이 깨지고 있으나 우리의 관심은 ‘안전 그 이상’에 있어야 함을 감히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가, 경제적으로 원전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평가와 경제적 평가의 내용이 틀렸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 자체가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본질은 거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위험사회’에 있으며, 경제 이해의 관성에 따라 가속화되는 ‘불평등 사회’에 있다. 위험사회, 불평등사회의 질적인 수준은 아무리 정교한 것일 지라도 수치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다.

보다 적절한 평가 방식은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는 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을 달성한 국가라 할 만하다. 발전규모가 세계 6위의 선진국이며 추가 건설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인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갈등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전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은 왜일까? 그것은 현재의 에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이해당사자들이 있고 이러한 체제에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적응해 있기 때문이다. 원전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원전에 얽힌 이해(利害)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달리 갈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평가 방식은 문화적 가치, 제도적 조직 그리고 권력적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사회 과학’과 관련되어야 한다.

 

경성(hard) 에너지 체제의 황태자, 원자력 발전

 

모리슨과 라드윅(Morrison and Lodwick, 1981)은 사회과학의 (진정한) 과제는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들에게 크게 영감을 준 라빈스(Lovins, 1976)는 일찍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의 세계 에너지체제는 ‘경성 에너지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경성 에너지 경로(hard energy path)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바탕으로 거대자본과 거대기술로 구성되는 공급위주의 대규모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이용방식’을 말한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경제성장의 관건이라는 믿음 하에 에너지원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채택되고 통제권은 권위주의적 관료에 주어지며 운영 및 관리는 기술엘리트와 사적기업에 의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의해 황당하게도 녹색성장의 에너지원으로 지목된 원자력은 이상의 경성 에너지 경로의 결정판이다.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은 환경친화성, 공급지속가능성, 형평성과 민주성 등에 커다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예컨대 환경친화성의 문제점은 최근 일본 원전 사고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고 공급지속가능성은 자원의 고갈가능성에 의해 의심받고 있다. 에너지 과잉소비는 다음 세대의 선택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세대간 형평성을 훼손시키고 가격 부담의 차이는 동시대 저소득층에게도 생계비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에너지 빈곤층은 전력공급 인프라의 사각지대에서 구조화되고 값싼 공공전력 대신에 값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데로 내몰린다.

원자력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보다 훨씬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 의사결정의 중앙집중, 생산 및 소비 공간집중 수준-우리나라는 이 수치에서 세계 1위이다-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제한되는 것이다. 발전시설, 폐기물처리 시설은 지방의 일부 지역에 밀집되지만 전력소비는 대도시지역에 밀집된다. 이는 위험부담이 불평등하게 분배됨을 의미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투표권의 격차에 의해 무위로 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필자는 전력체제의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산은 산업부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규모에 있어 그러하다. 최종 소비부문에 있어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약 60%로 가정용의 약 3배에 이른다. 둘째로, 산업부문이 현재 에너지경제체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원의 변화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산업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변화가 동반해야만 새로운 소비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전과 산업부문의 관련성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산업부문은 그 특성상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기초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데(전체 발전량의 약 40%) 이는 한번 가동하면 멈추지 않고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원자력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자력을 기초 전력으로써 대규모 산업전력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원전 확대에 현실적 정당성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원자력이 기초 전력이 됨에 따라 전력소비가 적은 시각이나 계절에 막대한 잉여전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성 경로를 벗어나 연성 경로로 진입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이른바 ‘자원 안보’의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문제는 한층 국내외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수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생활 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원자력의 공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얻은 논문 윤순진(2009), “한국의 에너지체제와 지속가능성”에 감사드립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2.10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역할과 외환시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발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수입 물가에만 그치지 않고 수출 성과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경로가 변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플레이션 해외요인이 원화가치 상승으로 완화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 분위기 속에서 국제 에너지가격에 초점을 맞춰 역사적 경험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생활물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시각을 조금 더 넓혀 보자는 취지에서다. 석유 기반의 경제체제가 성립된 이래 금융시장에서의 거품과 붕괴 사이클은 언제나 기축통화 표시 유가 사이클과 동행했다. 어떤 논자는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석유달러’(petrodollar)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유가와 기축통화 가치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체화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잠시 최근의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국제 금융위기가 ‘빵’ 하고 터지기 직전인 연초에 당시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이 가격은 1980년 전후 석유 파동 때의 가격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2008년 바로 그때 석유시장으로 달러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실수요자와는 관계없는 비상업적 거래량의 증가 추세와 유가의 상승 추세가 정확히 일치했다. 상품시장이 금융에 감염된 것이다. 비상업적 거래는 투기성이 매우 깊이 개입돼 있을 것이라고 의심된다. 즉, 투기자금의 유입 정도와 에너지 가격이 비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가에 비례하는 또 하나의 수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달러 환율이다. 최근 10여년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달러 환율이 높아질수록 에너지가격은 상승한다.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하락할수록 에너지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를 그래프로 나타내 보면 거의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나타낸다. 결국 유가와 투기수요(금융), 그리고 달러 가치가 한 몸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미국은 사실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벌써 무너졌어야 할 정도의 국가채무 수준에 다다른 지 오래다. 그렇다고 당장 무슨 큰 문제가 벌어지도록 국제적으로 그냥 놔두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해진 현재의 국제경제 체제는 질서 있고 부드러운 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란 바로 달러, 부채 그리고 석유기반 에너지 패러다임이 그 핵심이라 할 것이다.

 

달러가 주도하는 국제금융시스템은 주로 저금리 정책으로 나타나는 고위험의 인플레이션 통화정책과 침체를 회피하거나 연기시키기 위한 재정정책의 유혹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제3차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3) 체제'를 만드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제3차 브레튼 우즈체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 주는 사람은 없으나 어쨌든 현재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각국의 사정이 녹록지 않다. 미국경제의 경우 무역적자와 국가부채를 일정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저축률이 획기적으로 상승해야만 한다. 이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며, 화석연료 소비의 획기적 감소를 동반해야만 한다.

 

한편 아시아나 석유수출 국가들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내수 비중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그렇다면 수출산업을 뜯어고쳐야 하고 보유 달러자산의 일정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중동의 석유수출 국가들은 아마도 여기에 더해 국민들의 정치개혁 요구의 분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난 1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는 세계화의 확대를 경험해 왔다. 무역 증가와 세계화는 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가시켰고 결과적으로 석유가격을 밀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혁신과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생산증대가 일어났고, 이는 유가 상승을 어느 정도 막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간중간 에너지가격의 단기적인 급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켰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떨어뜨림으로써 다시 석유 수요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났던 것이다. 인플레이션 사이클은 우리가 최근 2008년에 경험했듯이 통화 시스템의 위기를 동반하는 침체를 겪고 나서야 끝이 난다. 침체는 물론 수요를 감소시키고 에너지가격을 떨어뜨리게 되지만, 낮은 에너지가격은 이른바 새로운 거품-파괴(boom-and-bust) 동학의 씨앗이 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