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1 / 11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

 

2013년이 밝았다. 하지만 밝아오지 않은 세계 경제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실 언제 밝아올지 예측하기도 힘든 상태이다. UN은 2.4%로 2013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면서, 각 국의 경제정책이 잘 작동할 경우 3.8%까지 높아질 수도 있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 0.2%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경제는 어떨까? 정부는 3% 성장을 예상했지만, 아마 2.5%대에 그칠 것이다. 세계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가 내부적으로는 가계부채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계 각 국 정부의 최대 목표는 이 침체를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이다. 새로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의 최대 과제도 경제 회복, 경제 안정이다. 새로운 세대투표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된 50대 유권자들이 박근혜 정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그나마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었다고 이야기된다.

그런데 스티글리츠 교수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위기 이후의 위기들"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더 큰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 침체보다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이며, 더 위협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지구온난화, 사회구조의 변화, 세계불균형, 불평등 심화이다. 위대한 학자가 가질 수 있는 거대한 시야이다. 스티글리츠가 제시한 진짜 중요한 문제들에 비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걱정 따위는 근시안적이다.


그렇다고 경제 문제가 하찮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스티글리츠의 의도도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문제에만 집중하느라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거나 혹은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들을 심화시키는 해결책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구온난화, 사회구조의 변화, 세계 불균형, 불평등 심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경제침체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새 정부도 경제성장에 급급해서 근시안적 대책을 내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라는 우리사회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경제회복과 성장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방향은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이다.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을 제한하여, 더 많은 경제주체들에게 기회를 주고, 노동권을 강화하고, 복지를 확대하여 국민들의 실질소득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뒷탈'없는 경제성장으로 가는 길이다.

 

 

위기 이후의 위기들

(The Post-Crisis Crises)

 


2013년 1월 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유로위기와 미국의 재정절벽 때문에 세계 경제의 장기적 문제들이 간과되고 있다.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느라 이 문제들은 더 악화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를 매우 큰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구온난화이다. 세계 경제 성장의 악화는 탄소배출 증가를 늦추겠지만, 이는 그저 짧은 유예기간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세계의 온도를 고작 섭씨 2도 낮춘다는 제한된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매우 느리게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갈 경우 미래에는 탄소 배출의 급격한 축소가 요구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경제 침체 상황에서 지구온난화는 나중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세계 경제를 개선하는 것이 총수요와 성장을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동시에 기술적 진보와 세계화의 흐름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급격한 구조 변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정도로 충격적일 수 있으며, 시장은 이런 충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농촌의 농업 경제로부터 도시의 제조업 경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처럼, 오늘의 문제도 일정 정도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새로운 기업들이 계속 탄생해야 하는데, 현대 금융시장은 새로운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보다 투자와 착취를 선택했다.

또한 구조적 변화를 만드는 과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현재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 중에는 건강과 교육이 있는데, 이 두 분야는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시장 불완전성을 근본적 특징으로 갖고 있으며 평등과 관련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 이전부터 세계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었다. 독일과 중국 등 무역수지 흑자 국가들이 소비를 늘려야 한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실제 유로 위기가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이 수출을 통해 장기간 쌓인 흑자를 처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역흑자는 GDP 대비 비중으로 보았을 때 줄어들고 있으나 장기 추세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국내 저축이 늘어나고 세계 통화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 저축 상황은 좋지 않아 경제 침체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아마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소비를 늘린다고 해도 반드시 미국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와 교육 같은 비무역재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공급 체인의 심각한 불안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중국 수출제조업자에게 생산요소를 공급하는 국가들에게 그렇다.


마지막으로 불평등 속에 세계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빈곤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함께 소득 상위 집단이 점점 더 많은 경제 성과를 가져갈 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중산층이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미국에서 기회의 평등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

대침체(Great Recession)가 불평등의 추세를 악화시켰지만, 대침체가 있기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였다. 실제로 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불평등의 심화가 경제 침체의 이유 중 하나이며, 세계 경제에 관한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다수 시민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경제, 정치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이 상태로라면 경국에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것이고, 사회 제도나 체제는 그 권위를 의심 받게 될 것이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의 격차가 지난 30년 동안 대단히 좁혀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빈곤상태에 있으며, 저개발국가와 그 외 국가 사이의 격차는 아주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다.

국가 간 격차에 관해서는 불공정한 무역 협정도 문제이다. 농업 보조금을 통해서 농산물 가격을 낮추는 것은 가난한 국가의 많은 이들의 소득이 농업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선진국은 친개발무역체제를 창출하기 위해 2001년 11월 도하에서 맺은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빈곤국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2005년 글렌이글스 G8 정상회의에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시장은 이런 문제들을 스스로 풀 수 없다. 지구 온난화는 본질적으로 "공공재" 문제이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정부가 더 많은 행동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재정감축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 때에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발생할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재정적자를 격렬히 반대하고 긴축정책을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은 오늘의 경제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미래의 전망도 어렵게 만든다. 이런 모순은 총수요 부족과 함께 오늘날 세계 경제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대안은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 지구온난화, 세계 불평등과 빈곤,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동시에 추구할 때 우리들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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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4정태인/새사연 원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48% 중 얼마쯤이 ‘멘붕’에 빠졌다 해도 첫사랑이 깨졌을 때보다 더할까? 이런저런 발버둥이 치유의 시간을 얼마나 줄였는지도 의문이지만 결국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지나지 않았던가? 다음으로 ‘먼저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극히 옳다 해도, 아직 관련 통계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민주진보진영’의 재편은 족히 1년은 걸릴 텐데 ‘정확한’ 진단을 지금 내놓아야 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48%의 ‘힐링’에 당장 필요한 일은 뭘까? 어쩌면 박근혜 당선인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예컨대 문재인 후보의 공약 중 쓸 만하고, 동시에 본인에 대한 지지를 넓히는 데도 방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인수위에서 확정하면 어떨까? 당선인도 ‘맞춤형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당장 현재의 ‘장기침체’를 벗어나려면 일단 소비가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서민층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고 동시에 소비를 가로막는 요인을 없애야 한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획기적 인상, 노동조합 강화, 하청업체 단체협상권 인정 등 시장에서 양극화를 억제하는 정책은 박 당선인의 정책기조에 비춰 차마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맞춤형 복지’를 늘리는 만큼 경제는 더 빨리 회복된다. 민주당 역시 이런 목적의 적자재정이라면 48%를 위해 찬성해야 한다. 증세냐 국채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물론 ‘부자증세’가 훨씬 낫지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복지인 동시에, 소비 방해 요인을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정책이다. 이 정책에 관한 한 문 후보의 정책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4대 중병만 중병인가’를 넘어서 만성병 환자 역시 절망적이다. 보장성을 90%까지 올리는 데 얼마 정도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한가는 이미 시민단체에서 정리해 두었으니 계산하느라 뜸을 들일 이유도 없다. 재정 문제나 급작스러운 국민 부담에 신경이 쓰인다면 연간 상한액은 200만원 정도로 조정해도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서민의 소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역시 가계부채다. 만일 집값까지 폭락한다면 우리 경제는 위기상태에 빠질 것이다. 금년과 내년 역시 2%대의 성장에 머물 것이기에 지금 정부나 언론처럼 안이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이 역시 문 후보 쪽의 정책 방향이 옳았다. 당선인의 ‘국민행복기금’은 기실 ‘은행행복기금’이다. 은행의 채권회수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일단 ‘약탈적 대출’을 통해 그동안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금융권이 책임져야 한다. 번번이 금융소비자에게만 이른바 ‘도덕적 해이’의 책임을 묻고 그 원인을 제공한 금융기관, 그리고 감독당국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는다면 이런 금융위기는 또 일어날 것이다.
 
셋째로는 사교육비인데 당선인은 심야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규제만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사실 대학입시를 개혁해서 ‘경쟁교육’을 뿌리뽑아야 해결될 문제지만 거기까지 기대하는 건 정책기조상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입시제도를 간소화하고 더 획기적인 사교육 규제를 하면 소비는 대폭(학원 관계자와 학부모의 한계소비성향 차이만큼) 증가할 것이다. 이 정책에는 돈도 들지 않는다.
 
쓴 김에 팁 하나 더. 우리나라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세수를 확보할 방법도 있다. 바로 토빈세(돈이 국경을 넘을 때 물리는 세금)다. 단 0.01%만 부과해도 약 2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탄소세까지 검토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건 그냥 꿈으로 간직하겠다.
 
이 정도만 인수위에서 확정한다면 48%는 절망을 거두고 생업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통합’을 원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엄동설한에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분들이 기꺼이 내려올 수 있도록 중재한다면 어느 누가 당선인을 ‘100%의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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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에서 가장 애매한 대목은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다. 18대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했고 박근혜 당선자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자 자신은 물론이고 소속된 정당의 성격이 경제민주화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진정성 논쟁이 나왔고 집권 후에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지 의문도 많았다.

일단 첫 시작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가장 기초적인 경제민주화의 관문이라 할 대형 할인마트 규제를 크게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법안처리를 미뤄 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저녁 10시부터 영업시간을 규제하자는 안도, 월 3회 이상 휴무를 규정하자는 안도 모두 새누리당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자의 자발적 의지로 실현될 경제민주화는 거의 없을 것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그렇게 간단히 집권당에 의해 박물관 속에 다시 봉인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보편적 과제와 궤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난 30년 동안 무차별적인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 지속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공공부문의 약화와 민영화, 그리고 체계적인 노동권 약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해 왔다. 30년 동안 추구된 신자유주의 결과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였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장기침체에 빠진 경기회복을 위해서도 불평등 해소는 점점 긴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99% 운동’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거시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화도 바로 이와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 차원과 완전히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한국에 특수한 재벌 문제가 있으니 이를 서구와 같은 기준으로 맞추자는 따위의 97년 버전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은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계속 확대될 것이며 당연히 우리 국민들의 경제민주화 운동도 계속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완전한 시장의 자유경쟁과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의 최소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독점 대기업의 시장 독식과 경쟁 제한에 대해 신자유주의도 반대한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 어느 때보다 금융과 제조업 모두에서 독점 대기업의 시대였으며,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독점화 수준을 글로벌 차원에서 확대한 시대다.

즉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 실질적 경쟁과 많은 수의 경쟁이 필요하다던 이전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기업 편향 정책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자유로운 경쟁이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시킨다는 개념 역시 포기했다. 대신 인수합병 등을 통한 거대기업의 출현이 설령 경쟁이 줄어드는 결과가 생기고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더라도,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경제 전반의 부를 확대시킨다면 소비자의 선택은 줄지 모르지만 ‘소비자 복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색다른 주장을 펴기 시작한다. 한국의 재벌들이 급격히 몸집을 키워 왔던 97년 이후 역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급격히 확대된 과정이며, 이 두 과정은 아무런 모순 없이 진행됐다. 따라서 재벌개혁과 신자유주의 극복이 하나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의 독점 대기업은 선진국과는 약간 양상이 좀 다르다는 비판도 있다. 신흥국은 선진국을 추격하고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기꺼이 정부가 지원까지 하면서 독점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등이 얼마간 희생될 수 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제 삼성과 현대자동차와 같이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한국 재벌이 성장한 상황이라면 어떤가. 그러면 당연히 국제 경쟁력을 위한 국내 경제주체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내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지금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그런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독점 대기업의 권력 확대는 자본주의 시장을 파괴할 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또한 용인될 수 없다.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 영국 워릭대 교수는 20세기 전반기에 발전한 미국의 고전적인 반독점법이 기업 권력의 대규모 축적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독점 대기업의) 권력의 집중이 심해서 효과적인 경쟁이 사라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경제민주주의와 정치민주주의 모두에서 필수조건이었다. 보통사람들은 언제나 기업이나 정치인과 어느 정도 대등한 조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과 정치인에 의해 지배될 터였다.”(<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The Strange Non-Death of Neoliberalism)>, 84쪽)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1세기 초에도 거대 금융권력과 기업권력이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한국의 재벌이 선두에 서 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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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2 / 23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기업 친화적 성장’에서 ‘노동 친화적 성장’으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목 차]

1.박근혜 정부는 친 기업 정책을 펴지 않을까?

2. 침체된 세계경제 회복을 위한 유엔의 대안

3. 줄어드는 소득기대가 국내수요을 억제한다.

4. 임금과 노동시장 정책을 통한 재 균형과 수요 진작

 

[본 문]

1. 박근혜 정부는 친 기업 정책을 펴지 않을까?

5년 전인 2007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성장전략은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성장’이었고, 그 논리는 대기업에게 규제완화와 감세, 수출위한 환율여건 조성을 해주면 낙수효과(trickle-effect)에 따라 전체 국민경제 구성원이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에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한국의 재벌 대기업들은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놀라운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재벌의 성장은 ‘나 홀로 성장’이었을 뿐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고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다수 국민은 세계경제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5년이 지난 2012년, 친 기업 정책으로 심화된 양극화와 경제위기 장기화 현실 앞에서 모든 대선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고용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중 가장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와 달리 과연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성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인가? 그녀는 정말 경제 민주화를 어디까지 실천할 것인가?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좋은 일자리로 질을 올리는(이른바 ‘늘.지.오’ 정책) 고용정책을 실천할 것인가. 공공부문의 상시적 근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최저임금을 크게 상향조정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 역대 정부 가운데 ‘공약’과 ‘실제’사이의 괴리가 가장 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태생이자 토양인 새누리당이 원천적으로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성장’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경제 민주화의 국민적 여론에 떠밀려 숨죽이고 있었던 재벌과 거대 자본들의 역습이 조만간 시작될 것이다. 그에 대한 대처 방식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전략은 그 일단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성장’에 경도 가능성이 높은 정권이 재창출되었건만, 지금 세계적으로는 일종의 ‘노동 친화적(Labour - Friendly)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 패러다임의 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이미 새사연이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제안한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우리의 성장전략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도 이미 이와 같은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무역과 개발 보고서 2012(Trade and Development Report 2012)"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양하게 소개하면서 소득주도 성장 전략의 전환과, 이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폐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에게 절박한 과제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성장’을 폐기하고, 글로벌 경제위기로 실패가 입증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도 폐기해야 한다. 그 대신에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노동권을 강화, 노동자와 자영업의 소득 증대를 통한 구매력 강화, 정부의 적극적인 소득정책을 통한 지원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차별되는 박근혜 정부를 원한다면 박근혜 당선자도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2. 침체된 세계경제 회복을 위한 유엔의 대안

여기서는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짧은 정책 브리핑으로 발표한 “Policy Brief No.26: Greater Income share for labour - The Essential Catalyst for Global Economic Recovery and Employment", 2012.12를 요약해서 소개해 보겠다. 2013년 한국경제 전망과 진보적 성장 전략을 위한 중요한 시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핵심 요약 

- 국민소득에서의 임금비중은 2차 대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가장 높아졌다.

- 노동자 가구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이지만, 낮은 임금과 높은 실업 상황에서 이들이 경제 회복을 지원할 만큼의 소비를 할 여력이 없다.

- 정부는 “유연 노동시장”의 주문을 폐기하고 대신에 적극적인 소득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 생산성에 비해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국가들의 행위는, 진정 바닥으로의 경주라고 하는 총체적인 궁핍화로 치달을 것이다.

선진국 경제에서의 지속적인 허약성은 세계 경제의 회복 전망에 대한 비관적인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개발도상국들의 국내 수요도 지금까지의 성장 경로를 유지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한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글로벌 경제의 엔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구 선진경제의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개발도상국만 성장해보려는 노력은 소진되고 있다. 분명하게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재정긴축이 중산층과 장기 성장을 위해 긴요한 것으로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이고 중기적으로 세계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들은 결국 장기적인 전망도 밝게 할 수 없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단기 전망이 어두울수록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충격이 커지고, 다른 나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전달된다.

통화정책의 소진에 이어 성장을 자극하기 위한 재정정책 실행을 반대하는 정치적 행위는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분석과 수단을 요구하고 있다. “무역과 개발 보고서 2012(Trade and Development Report 2012)"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현재의 문제가 주요 선진국들에서 노동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실업과 임금하락의 압력을 받고 있는 민간 가계들은 더 이상 소비를 할 수 없고, 기업들은 가동률도 낮은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과 결합되어 고수익에 현금이 넘쳐나는데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2차 대전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과 가장 낮은 임금 몫으로 인해, 악화된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함에 있어서 ”더 유연한 노동시장(more flexible labour markets)"로 가야 한다는 광범위한 신화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대신에 정부가 적극적 소득정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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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12 / 2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세대 간 대결이 아닌 세대 간 협력으로 다시 시작하자.

2012년 총선과 대선이 20년 만에 겹치는 시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세계사적으로도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전환기였다. 대선 주자들도 ‘시대교체’를 말했다. 그래서 여느 선거 때의 ‘정권교체’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객관적 선거결과는 양대 선거 모두에서 신자유주의와 분단을 고수하려는, 과거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국회와 행정부가 또 다시 보수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한국의 미래 5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에 의해 초래된 세계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 극심한 불평등이 한계점에 왔고, 이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진보적 정책이었다. 그래서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도 줄.푸.세가 아니라 경제 민주화, 복지, 일자리 창출을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야 했다. 양대 선거는 진보적인 의제를 매개로 치러졌던 것이다.

50대가 20~30대를 압도한 선거였다?

그런데 어째서 결과는 다시 신자유주의 분단 세력의 재집권으로 귀결되었는가? 이제 막 종료된 선거 결과를 두고 백가쟁명의 분석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중이라 차분한 평가를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대체로 일치하는 분석 중의 하나가 20~30대에 비해 50~60대가 더 압도적인 투표 참여, 더 압도적인 박근혜 후보 지지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 ] 16대, 17대 대선과 18대 대선의 연령대별 투표율 변동

한 마디로 진보와 보수가 세대 사이의 응집력과 세대 사이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냈는데 거기서 50대 이상의 응집력이 압도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50대의 투표율이 90%에 근접한 놀라운 수치가 그 증거가 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76%의 투표율에 가까울 정도로 지난 대선에 비해 13%정도 올라간 경이적인 투표율을 기록한다. 당연히 20~30대의 투표율도 크게 올라서 20대 18.6%, 30대 17.4%이상 투표율이 증가했다. 한마디로 20~30대는 이번 선거에서 할 만큼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과거 선거에서도 이미 투표율이 충분히 높아서(80대의 투표율), 더 이상 올라갈 여지가 적다고 간주된 50대의 투표율이 그 이상 올라가면서 더 압도적인 투표참여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변동이 적었던 40대의 투표율 증가와도 확연히 비교되는데 훨씬 큰 증가 폭이었다. 투표참여 운동을 독려하면 20~30만 투표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잠정적 가정은 무너졌다.

애초에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1%대 99%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번 선거가 마치 세대 사이의 투표 참여와 표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었을까? 최근 들어오면서 한국의 선거가 ‘(영호남) 지역 선거’에서 ‘세대 선거’로 전환되었다는 분석들이 확산되어왔고 실제로도 그런 양상이 확인된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나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등이 대표적이다. 세대선거 분위기 아래에서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급격히 부상한 배경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원래 2012년 양대 선거의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이자 경제 문제였다. 경제 민주화, 보편 복지, 일자리 등 선거의 주요 3대 이슈가 모두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던가? 또한 이 의제는 2011년부터 월가 점령운동이 상징적으로 제시한 99%운동에서 영감을 얻어 ‘극소수의 양극화 수혜자와 압도적 다수의 양극화 피해자’사이의 대결로 구체화되었다. 이를 두고 미국 선거에서는 ‘계급 전쟁(class warfare)'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경제 민주화 이슈가 부각될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우리나라 선거도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1%대 99%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외국 금융자본과 재벌에 대항한 노동자, 서민,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50대,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진정 보수화 되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50대는 누구인가? 최근 매년 20만 명 이상이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 은퇴하기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는 바로 베이비 붐 세대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 은퇴시작(2010년부터) -> 경기불황 -> 은퇴 가속화 -> 사회 안전망 미비 -> 노동시장 재진입 시도 -> 경기불황으로 노동수요 약화 ->도소매, 음식 숙박 등 생계형 자영업 창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면서 고통을 받고 있는 세대다. 부채가 많은 자영업도 이들이다. 아직 국민연급을 수급하려면 시간이 한참 많아 스스로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세대도 이들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복지의 필요성이 큰 세대이고, 일자리가 필요한 세대이며 대기업 골목 상권 침해 등으로 피해를 받는 세대이며, 가계부채로 고통 받는 세대다. 사회 경제적 처지와 조건으로 보면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동조할 이유가 없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기존 경제체제를 고수해야 이익이 될 것도 없다. 재벌체제에 이익을 보는 것도 없다. 더욱이 경제위기가 5년째 계속되면서 이제 더 이상 이들도 부동산 경기가 급등하거나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따위의 선전에 솔깃하지 않는다. 선거운동 막판에 박근혜 후보가 주가 3000을 만들어주겠다고 허황된 소리를 했지만 이에 귀 기울인 50대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도 1%가 아니라 99%에 속한 서민들이 아니겠는가?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이 진보의 정책이다.

물론 과거 20여년의 한국경제와 사회를 돌아보면, 일종의 ‘세대 간 착취’라는 용어를 사용할 만큼 세대 사이의 자원의 잘못된 분배가 있었던 점은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로 5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과거 부동산 거품의 수혜자가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20~30대가 주택이나 주거공간을 구매하기에는 너무 높은 주거비용이 형성되었다. 또한 부모 세대의 과열된 사교육 경쟁이 지금 젊은 세대에게 학교 교육과 과도한 등록금, 사교육비로 고통 받게 하고 있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 기성세대의 일부가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더 알바 등 나쁜 일자리에 전전하는 것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점들만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세대 일반의 대결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 부가된다. 10년 전에 비해 20~30대 유권자 비중은 48.3%에서 38.3%로 줄었다. 반대로 50대 이상의 유권자는 29.3%에서 40%로 10%이상 늘었던 것이다. 당분가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20~30대는 개혁적 후보에 70% 투표하고 50대 이상은 보수적 후보에 70% 이상 투표하는 구조가 확립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암묵적으로 이번 선거를 세대 간 대결로 보거나, 20~30대와 40대까지만 흡수하려는 노력을 하고 50대 이상에 대해서는 외면했던 점이 없지 않다. 더욱이 선거결과에 실망하여 50대 이상에게 비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매우 경계해야 한다.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세대 간 대결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정책 모델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세대 간 협력을 기반으로 다시 1%, 99%의 싸움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실 2012년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개혁과 진보의 조직적 틀은 상당히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다시 세대 사이의 협력을 전제로, 하나씩 새롭게 진보의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는 5년도 긴 시간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싹을 만들어 나가려는 깨어있는 시민들을 위한 진보적 정책 연구와 소통에 더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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