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4 / 3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3 세계의 시선(18) 자신의 국민과 싸운 '철의 여인'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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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지금은 한 시대가 바뀌는 국면이다.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시대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정치가 마가렛 대처다. 지난 4월 8일 사망하면서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마가렛 대처는 1979년에서 1990년까지 연속 3선으로 영국총리를 역임하면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집권 시절에는 물론이고 사망 후인 지금도 사람들에게 지지와 비판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통화안정에 힘쓰고, 세금과 정부지출을 줄여야 한다. 법인세와 준조세를 줄이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기업이 활동하기에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민영화를 확대해야 하고,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며 노동 유연성을 늘려야 한다.”는 대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원형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계경제 침체는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시작된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온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케인스 전기를 써서 유명해진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대처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은 짧지만 종합적으로 대처 시대를 요약하고, 대처가 남긴 잘못된 유산들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내용을 제공해주고 있다. 

 

 

 

대처의 호전적인 영혼
(Thatcherism's Bellicose Soul)


2013년 4월 1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마가렛 대처는 20세기 평화의 시기에 영국의 가장 위대한 총리였다. 동유럽 공산주의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위기가 거의 동시에 도래했던 1980년대에 대처는 위대한 공적을 쌓을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큰 업적을 이루자면 강력한 리더가 필요했다.

 

소비에트 지도자 고르바쵸프와 대처의 우호적 관계는 냉전을 끝내는 길을 열게 된다. 그녀의 사유화 정책(privatization policies)은 어떻게 국가사회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부활은 언제나 레이건-대처 혁명으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대처는 또한 똑 같은 정책에 대해 찬사와 반대가 극명하게 나뉘는, 현대 영국 수상 가운데 가장 분열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정확히 표현한 것처럼 ‘신념의 정치인(conviction politician)'이었다. 확신이란 논쟁을 용납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다. 그녀는 일부러 타협하려 하지도 않고 대신에 정치적 세계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었다.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시스를 인용하면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실을 가져오면 된다”고 총리관저 앞에서 선언했다.

 

"승리에는 아량이 필요하다“ 윈스턴 처칠의 충고다. 대처는 용감하고 단호했지만 아량이라곤 없었다. 그녀는 유명한 승리자가 되었지만 말과 행동 모두에서 패자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 분쟁 속에서 화합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녀의 사명은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천성적으로 그녀는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추종자였다. 하이에크나 대처에게 있어서 20세기의 가장 큰 지적 오류는 국가가 개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국민의 상태를 증진시키는데 국가의 역할이 있다고 보았다면, 대처는 (국가의 개입이) 노예의 길로 서서히 빠져드는 것으로 인식했다. 대처의 이러한 메시지가 동유럽에 어떻게 퍼졌는지를 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처 방식의 역사해석에 따르면 영국의 경기침체를 초래했던 사회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노동조합의 수중으로부터 부의 창조를 위한 자극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착한 사마리아인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이전에 스스로를 돕기 때문에 칭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부흥을 위한 대처의 편협한 프로그램은 유럽대륙의 좀 더 규제적인 접근법과 그녀의 차이를 점점 더 벌어지게 했다. 1988년 벨기에 브루헤(Bruges)에서 ‘영국과 유럽’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며 그녀는 소리쳤다.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 초국가가 지배를 다시 강화하는 것을 보려고 영국에서 국가의 국경을 봉쇄한 것이 아니다”대처는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단일 시장 완성보다 초국가적인 연방주의적 방향으로 나간다고 확신하면서 이런 경향에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대처는 유럽 공동체의 초국가 기구가 점차 정책권한을 확대해 주권 국가들 대신 각국 정부들에게 간섭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처는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를 애매한 상태로 내버려두었고 이후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다.

 

물론, 여타의 약삭빠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대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 보류를 해야 하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재에 도달하기 위해서 항상 싸워 이기는 것을 선호했다. 그녀는 포클랜드 전쟁(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보여준 결정적 지도력 덕분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대처가 벌인 대부분의 싸움은 국내에서 자국민들과 벌인 것이다. 대처가 1984~1985년 광부파업을 분쇄하면서 자국의 광부가 적이 되었고, 1986년에 그녀가 폐지한 런던지방자치단체(Greater London Council)가 적이 되었다.

 

대처는 자신이 잡화상 딸이라는 초라한 신분임을 중시했고 영국의 도덕적 경제적 추락을 불러온 기득권층을 싫어했다. 그녀는 중. 서민층을 이해했고 그들과 물질적 열망이나 도덕적 편견을 공유했다. 임대주택을 싼 값에 매각하여 출세 지향적 노동자층에게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대처가 가장 성공적인 여성 정치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페미니즘을 ‘독’으로 간주했고 그녀를 추종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0년대의 점증하는 산업적 혼란에 대한 대처의 대답은 인플레이션을 끝장낼 ‘통화주의’이었고, 노동조합에 대한 법적 제제였으며, 비대한 공기업의 사유화였다.  이 세 가지 정책의 목표는 모두 국가의 권위와 경제적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북해유전 덕택에 대처는 영국의 상대적 경기하락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승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는데, 1984년에 실업률이 1930년대 이래 최고 수준인 12%(3백만 명)까지 올랐던 것이다. 선진국에서 성장세를 다시 만들어낸 대처주의는 사실 미래를 담보로 한 것이었다. 새로운 경제는 금융과 세대를 뛰어넘는 쇼핑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많은 영국인들이 대처를 존경하기는 했지만, 대처의 정책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세 번의 선거에서 연승했지만 보수당은 선거에서 43%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고 이는 보수당 지도자들인 처칠과 앤서니 이든, 그리고 맥밀리언이 1950년대에 받은 지지보다 낮은 것이다. 그녀의 재임기간 137개월 중에서 5개월 정도만 국정 지지율이 50%를 넘었을 뿐이다.

 

사실 경제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대처의 재임 기간 중  대처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나중에 그의 선교적 열정은 무시되었다. 대처의 권력은 야당의 분열과 소선거구제도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도 있었다.

 

대처는 자신이 정치적 프로젝트를 요약하여 제안했다. “경제학은 수단이다. 목적은 영혼을 바꾸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대처의 성과측정 기준이라면 그녀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처리즘은 실패했다.

 

대처가 촉진시켰던 경제의 금융화는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구매권(right to buy)' 정책(공공주택 입주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공주택을 매우 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일종의 주택 민영화 정책)은 주택가격의 상승적 악순환을 초래했고, 가계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빚을 지도록 부추겼다. 금융규제완화를 추진한 1986년 '빅뱅(Big Bang)'은  런던의 금융가 시티(the City)에 위험한 투자 행위들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개혁들은 모두 2008년 금융위기의 씨를 뿌린 셈이 되었다.

 

대처가 조성하려고 했던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가치“(근면, 자존, 검약, 이웃과의 친교 등 대처가 강조하고 보수당 강령에까지 집어넣은 가치들)는 대처 집권이 초래한 물질적 부에 대한 무제한 추구와 충돌했다. 대처가 건설하려고 했던 ’건전한 개인이익 추구에 기초한 도덕적 사회‘는 조악한 자존심에 기초한 탐욕스런 사회로 변질되었다.  
 

 

* 원문 게재 사이트: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margaret-thatcher-s-polarizing-politics-by-robert-skidel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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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이명박 정부 5년간 노동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규모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보건·복지서비스 노동자의 급팽창이다. 전체 종사자가 74만명에서 140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동안 4대강 사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은 7만명이 순감소했고, 제조업도 9만명 정도만 늘어나는 데 그쳤던 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폭발적 팽창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라고 부르는 21세기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 5년 만에 두 배의 일자리 증가라니.

과연 경제위기와 보편복지의 분출은 복지서비스 종사자, 특히 노동자를 거의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한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국민들의 복지서비스도 늘고 동시에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도 폭발했으니 말이다. 그동안 진보가 복지를 늘리라고 정부를 압박하면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이중의 효과(복지와 일자리 증가)가 액면 그대로 실행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복지서비스가 늘어나는 방식이 공적 인프라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보육이나 요양 등의 분야 민간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방치한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서비스 이용 시민들에게 바우처 형식으로 현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폈다. 통계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노인요양 복지시설은 2007년 900개에서 2011년 3천개 이상으로 3배 이상 팽창했다. 보육시설도 같은 기간 2만4천개에서 3만4천개로 급증했는데 대부분이 영세 민간업체였다. 이에 따라 노인요양 복지시설 종사자는 같은 기간 120% 증가했고, 보육시설 종사자는 52% 늘어났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양적인 복지인프라는 사적부문 중심으로 팽창했고 정부 재정지원도 늘어났지만, 복지서비스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은 1천700만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나쁜 노동환경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이 69%에서 55%로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 유일한 분야가 복지서비스 분야다. 이명박 집권기간 동안 비정규직의 임금 절대액수가 하락한 유일한 분야도 다름 아닌 보건·복지서비스 분야다. 신자유주의 유연 노동시장은 이렇게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주변 노동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노동시장 왜곡이 건설 분야가 아니라 보건·복지서비스 분야라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가장 진보적인 해법은 사적 복지서비스 업체의 난립을 억제하고 공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 복지정책도 현금지원 방식보다는 공적 인프라 확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적 인프라의 구체적 구현방법이 국공립인가 아니면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지역공동체 방식인가 정도의 고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도 공공어린이집을 선호하는 등 공적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지지는 높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난제가 있다. 이미 들어선 사적서비스 업체들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만 개의 사립 보육시설을 포함해 상황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계속 이들에게 현금지원을 할 것인지, 또는 경영이 쉽지 않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점차 공적소유 경영구조로 이전을 유도할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사적업체 난립을 억제하면서 공적 인프라 확충을 직접 시도할 것인지 현실적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복지서비스에서 급팽창하고, 대부분 여성·비정규직인 이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그들에 의해 불가피하게 공급될 낮은 복지서비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 그러면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복지를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에 의해 제공되는 복지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선순환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 열쇠는 복지서비스 노동자들 자신이 쥐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들이 스스로 노동권을 회복시켜 나가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가되, 그것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에게 좋은 복지서비스를 위하여’ 단결해 가는 것이다. 사업체당 평균 10명도 안 되는 복지서비스 산업구조의 특성상 사업장별 조직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청년유니온과 유사하게 사업장을 뛰어넘어 지역별로 노동자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지자체 및 지역단위 사용자집단과 노동권 및 좋은 복지서비스 제공에 대해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복지 발전은 복지서비스 노동자에게 상당부분 좌우될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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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신자유주의는 사적 재산권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해 극단적인 재산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다. 기업의 소유자를 주주로 한정하고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은 기업 지분의 소유자인 주주의 이익에 맞추고자 했다. 통상 이를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고 불렀다. 주주들의 재산은 주가로 표현됐다.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고 장기적으로 어떤 전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앞서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오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기업이 평가될 정도였다.

‘잔여 청구권’이라고 하는 그럴듯한 이론적 명분을 업고, 기업은 오직 지분을 소유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므로 당연히 기업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업이라는 존재 안에 파묻히게 된다. 주주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의 비용은 최소화돼야 했다. 그리고 노동자는 최소화시켜야 할 비용의 하나에 불과했다. 이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비용 최소화에 저항하려는 노동자의 모든 권리는 철폐됐다. 노동자에게 신자유주의 규제철폐는 노동권 자체의 철폐였던 것이다.

이처럼 노동권을 철폐하고 최상의 지위를 누리게 된 신자유주의 소유권과 재산권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또 다른 권리인 주거권 역시 희생시키게 된다.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가치보다는 기업의 재산청구권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주택에 대해서도 ‘주거’라고 하는 본래의 사용가치를 종종 무시하고 ‘자산가치’만을 중시하게 된다. 살기(Living) 위해서가 아니라 자산을 불리기 위해 사는(buying) 것이 주택이 됐다.

주가가 끝없이 올라 줘야 하는 것처럼 주택가격도 끝없이 올라야 했다. 주택이 끊임없이 스스로 가치가 불어나는 자산이 되면서 한 번도 살지 않은 주택을 구매하고 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전체 가구의 8%에 달하는 140만 다주택 가구들은 그렇게 형성됐다. 심지어는 부동산 펀드를 통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집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입했다가 또 매도하는 일까지 흔하게 벌어졌다. 이런 주택거래를 방해하는 모든 규제들은 역시 철폐돼야 했다. 세금도 낮아져야 했고 거래제한도 완화돼야 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어야 할 주택을 가지고 이처럼 거대한 자산시장이 형성되고 자산증식을 위한 매매거래가 복잡하게 진행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더욱이 이러한 시장의 규모를 끝없이 키우기 위해 금융시장의 막대한 자금까지 동원한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다름 아닌 주택가격의 급등과 거품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99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까지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은 평균 2.5배 이상 폭등했다. 그리고 주지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 거품이 붕괴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한국은 급격한 거품붕괴 수준은 아니지만 2008년 이후 수도권 주택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투자한 자산이 하릴없이 줄어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자 재산권을 가진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자산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를 압박해 세금·금융·건축 등에 남아 있는 규제를 풀어 왔고, 지금도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오직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물론 국민에게는 실수요자의 거래 활성화나 경기회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을까. 지난 10여년 동안 주택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서울시민들은 8~10년 정도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소득 대비 집값 격차가 커졌다.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는 주택이라는 자산구입은 진작에 포기한 꿈이 됐다. 턱없는 소득에도 불구하고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아 주택소유자가 된 서민과 중산층 일부 가정들은 지금 ‘하우스푸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자산가치 증식을 위한 주택 소유자들의 무모한 질주로 인해 집 없는 45% 국민의 주거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무리하게 빚을 얻어 집을 소유한 10% 정도의 하우스푸어에게도 주거권은 은행에 빼앗길 처지 직전에 와 있게 됐다.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주택가격이 소득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더 내려야 하건만, 주택소유자들의 가격상승 요구에 아직도 밀리고 있는 중이다.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정부는 부동산 경기부양 이전에 공공임대주택 등의 정책에 집중해야 하지만, 아직 5% 남짓에 그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무제한으로 풀린 재산권이 노동권뿐만 아니라 주거권까지 국민에게서 빼앗아 간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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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정치2013.01.09 15:32

2013.01.0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 결과 보수 세력의 10년 집권이 굳어지자, 역사의 퇴행이 심화되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노동권 회복이라고 하는 선거 공약 틀이 신자유주의적인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 금융화를 대체했다는 것 또한 중대한 역사적 변화다. 진보는 다수 국민과 호흡하면서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도 이 의제들을 진보적 내용으로 확장시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상식은 바뀌고 있다.

특히 보편 복지와 경제민주화, 노동권 회복의 구체적 내용들을 국민과 공유하면서 ‘과거의 당연한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상식들 대신에 진보적 전망과 정책을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당연한 상식’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은 이제 보편 복지의 상징으로서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무상급식이 상식이 되면서 중등교육까지 무상 의무교육 실시, 대학 등록금 절반으로 인하 등 다양한 교육복지가 전파되고 있는 중이고 이를 박근혜 정부도 회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이 ‘투자자산’이며 ‘매매차익’을 기대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살아왔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 문제가 ‘주거 가치’, ‘주거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고, 점점 더 주거복지가 주택 문제를 대하는 새로운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 소유나 매매시장보다는 공공 임대주택의 중요성이 함께 커져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과거의 상식을 유지하기 위해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취득세 감면 연장 등 얼마 남지 않은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세력도 존재하지만.

전 세계의 경제가 적자와 부채문제로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특히 가계부채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인식하고 있는 가계의 신용위험 정도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서 카드 대란 시절의 위험도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10대 공약 중 첫 번째가 가계부채 대책이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상식의 전복’은 일어나고 있다. ‘빚진 죄인’이라고 부채의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 덮어씌우고, 온갖 고금리 연체이자에 채권추심과 압류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관행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사연의 과제는 진보 정책을 국민의 상식으로 바꾸는 것

채무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권과 생존권과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약탈적 대출과 터무니 없는 고금리 수익을 추구한 금융회사도 일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새로운 상식’이 확립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부채의 노예로 삶이 속박된 최근의 신자유주의 금융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빚을 진다는 것은 오늘날 사회적 삶의 일반적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빚을 지지 않고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학자금 대출, 주택 구입을 위한 담보대출, 자동차 신용대출, 의료비를 위한 대출 등등. 대출이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주요한 수단이 됨에 따라, 사회적 안전망은 복지 체계에서 채무체계로 나아갔다.”(안토니오 네그리,2012,『선언(Declaration)』50쪽)

대안은 다수 국민들의 생활과 생각 안에 진보의 ‘새로운 상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반대로 길어야 2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 규제완화와 시장 자율, 금융혁신과 신용거품, 자산투기 등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 동안 진보에서 만들어진 참신하고 진취적인 정책들을 ‘새로운 상식’의 이름으로 국민 곁에 다가서도록 하는 집요한 노력이 쌓이고 또 쌓이면 시대는 결국 바뀐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새사연은 진보 정책들이 국민 생활의 저변에서 새로운 상식으로 확립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비록 정권은 일시적으로 역사를 역행하더라도 국민의 생각은 의연히 미래를 바라보며 진보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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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언론매체와 서점가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년 예측과 전망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 비관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유럽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가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경제의 회복력도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BRICs의 고성장 동력도 이제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도 2% 초반 대에 불과한 올해의 경기 둔화 양상이 내년에도 유사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꺾여 나가자 대기업과 보수진영에서는 다시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성장 담론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얼마 전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이슈별 오해와 진실' 이라는 자료를 발표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번째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인데, 전경련이 제시하는 해법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라면서 1% 성장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6만개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를 성장론으로 대치해버리는 한국 재벌의 전형적 논리다. 지금까지 잘못된 성장론을 고집한 결과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고 바로 그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는데 여전히 전도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재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처음에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더니, 지난 달 부터는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함께 가야 한다”면서 성장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장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경제 민주화의 내용은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지금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 침체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내년은 올해와 유사한 침체가 거의 확실시 됨은 물론, 차기 정부 집권 5년 기간 동안에도 침체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 세력,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성장 동력, 성장 경로,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보수의 성장론은 양적인 GDP 숫자에 초점을 두는 양적 성장이다. 신자유주의 보수의 성장론은 노동의 소득 증대 보다는 자본의 투자 수익률에 집착하는 자본 친화적 성장이다. 보수의 성장론은 국가의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무력화시킨 불평등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세계적으로 한쪽에서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 주도형 성장 방식에 의해, 다른 한쪽에서는 소득이 아닌 부채를 동원한 소비로 성장하는 방식에 의해 구현되어 왔다. 바로 이런 성장 방식의 종말을 보여준 것이 2008년 금융위기이고 지금의 장기 침체다. 한마디로 보수적 성장론의 붕괴가 바로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어떻게 성장을 시켜주겠다고 ‘공약(空約)’하는 것인가?

침체에 빠진 경제의 회복과 성장 해법은 더 이상의 보수의 수중에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성장은 보수의 담론이라는 관념이 지금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진보가 성장 담론을 책임져야 한다. 보수의 양적 성장, 자본 친화적 성장, 불평등 성장과 달리 진보가 주장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이다. 노동 친화적 성장이며 소득 주도형 성장이다. 기업 현금창고가 아니라 가계의 살림을 튼튼히 하는 성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진보적 성장은 경제 민주화의 기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처럼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진보의 성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주주를 위한 단기적 수익률 제고 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고려한다. 금융적 투기 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적 투자를 중시한다. 인건비용 줄이기에 집착하지 않고 안정된 노동시장 유지에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탄탄한 공공지출을 통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고 공공교육을 확대하는데 정책적 비중을 둔다. 

또한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발”로 정의된다.(1983년 유엔에 의해 지명된 브룬트란트위원회의 선언에서 제시) 다음 세대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토대로서 지금의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에너지 고갈 위험과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등의 최근 상황을 감안해볼 때 더 이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 성장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성장론에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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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