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3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드라마광이다. 특히 토요일, 일요일엔 어지러운 술자리 때문에 놓친 드라마 재방송을 보느라 어린 딸과 신경전을 벌이다 참다못한 딸이 “아빠가 아줌마야?”, 소리를 지를 정도다. 그래선지 드라마 1~2회를 보면 그 성패를 알아맞히는 경지에 이르렀다.

SBS <청담동 앨리스>. 요즘 내가 연구원에서 공부하다 말고 밤 9시경부터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때 맞춰 짐 챙기도록 하는 드라마다. 두 회를 남겨 놓고 스토리는 지지부진하고 ‘청담동’의 벽을 절감하도록 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도 이젠 식상해졌지만 마지막 회는 시청률 20% 언저리까지는 올라가지 않을까.

청담동은 말하자면, 새로운 귀족사회이다. 인화(김유리)의 말대로 디자인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해도 그들의 ‘안목’은 흉내 낼 수 없다. 인종이 다르다. 하지만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사회였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완전히 몰락했고 교육은 신분상승의 통로였다. 이런 역동성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지배계급이 생겨났고 이제 교육은 신분상승을 가로막는 벽이 됐다.

이때부터 세경(문근영)의 아버지 세대에게 부동산이나 주식 거품은 새로운 사회이동의 통로로 여겨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평생 흘린 땀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로 남았을 뿐이다. 이제 가난한 연인은 헤어지고 ‘청담동 앨리스’가 유일한 신분 상승의 길이 됐다.

▲ SBS <청담동 앨리스>

더구나 공부를 잘 못 했던 윤주가 보란 듯이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 있으니 세경에겐 결코 못 올라갈 나무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겨우 두 세대에 걸쳐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다 보니 아직 체념에 이르지 못한 절망은 더욱 더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이 상황은 한국에만 특유한 건 아니다. 지난 30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나라나 수출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그럼 수출이 잘 되지 않으면(모든 나라가 모두 무역흑자를 볼 방법은 없다) 국내수요가 줄어들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다.

그 탈출구는 당시 모든 규제를 풀어버린 금융이 제공했다. 돈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은행이 대출을 해 주고 신용카드를 뿌리면 된다. 저금리 상황, 그리고 저임금으로 남아도는 부자들의 돈은 집과 주식으로 향했다.

집값과 주가는 부풀어 오르고 이제 당장 빚을 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이 대열에 참여한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괜히 부자가 된 것 같으니 소비가 늘어난다(‘자산효과’). 소비를 무한정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지위재’(position goods)가 개발됐다.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고가의 상품이 그것이며 바로 아르테미스 장띠엘 샤 회장의 전략이기도 하다. 무슨 무슨 ‘캐슬’이 등장하고 명품 열풍이 불었으며 커피자판기는 전문점으로 대체됐다.

이런 소비의 유토피아가 지속 가능할까.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빚이 영원히 늘 수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게 비극이고 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만은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다는 허망한 자기 기만극은 2008년 금융위기로 막을 내렸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데도 청년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고, 청담동 바깥에 사는 노인들은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한다. 우울한 장기침체는 10년 이상 갈지도 모른다.

<청담동 앨리스>는 과장되었을지언정 현실이다. “줄푸세”의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으니 정책이 이런 현실을 바꾸지도 못할 것이다. 청담동과 그 바깥은 점점 더 벌어지고 언론이 이런 개인주의/소비주의를 계속 부추기는 한(이 드라마의 간접광고를 보라), 이미 붕괴된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아마 <청담동 앨리스>는 순수한 사랑의 승리를 답으로 제시할 것이다. 절망적인 벽을 뛰어 넘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드라마 속 대리만족으로 허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청담동이 아닌 곳에서도 앨리스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웅다웅 싸움도 하면서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다.

*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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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진보운동의 노선이나 전략은 다양하게 바뀌어 왔다. 하지만 변치 않은 것도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압도적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열망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로 힘을 모을 때 비로소 현실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된 힘을 계급이라 부르기도 하고 인민이나 민중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중이라고 불러도 좋다. 엘리트들이 그들을 각성시키거나 지도하거나, 또는 순전히 자연발생적이어도 좋다. 어쨌든 그들이 열망하고 분노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사회운동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된 이후로 민중의 중심에는 늘 노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농민이 있었다. 특히 후발 자본주의나 제3세계에서의 광범한 농민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어려움은 일찍이 노동자와 함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의 동력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들은 언제나 ‘노동자·농민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도시의 자영업자, 즉 ‘중소상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자 다음으로 많은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이 된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농민과 서민이라고 부르면서 대략 서민 안에 묻어가는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 처지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할까. 물론 실제론 노동자인데 자영업자로 위장돼 있는 잘못을 바로잡자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3권이나 사회보험 혜택을  자영업자로 취급받으면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소상인들이 우리경제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함에도 사회적·법적으로 인정된 권리나 사회운동적 위치 등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약간의 고려를 해 주는 정도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사회진보운동은 중소상인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현재 사회운동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재벌’이라고 하는 대자본에 맞서 경제민주화와 노동권을 확보해 내는 것임은 명확하다.

그런데 재벌 대자본과 맞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가장 집요하고 성실하게 싸우는 민중은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도 있지만,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하려는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수년째 대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확보한 것은 많지 않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의무휴업 확대 등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는 작업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와 민주통합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상인들에 대한 실업보험 지원도 거의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부담이다.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헌신적인 싸움에 대해 국민의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자 정부와 대형마트 대표들은 상인들을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을 내세워 이른바 ‘대형마트의 자발적 출점 자제와 자율휴무’ 협약이라는 것을 맺기도 했다.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앞세워 노사타협을 하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럼에도 이런 행태를 막을 마땅한 방법과 수단이 상인들에게 없다. 노동자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엄격한 법적 보호아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해 자주적인 노조를 만들고 사용자와 단체협상을 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자와 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상인들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적인 조직을 만들 법적 틀도 없다. 대형 유통재벌이나 정부를 상대로 단체협상을 하도록 보장받은 것도 없다. 점포 매출이 시원치 않아 문을 닫아도 실업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아도, 상가 임대료가 폭등을 해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 노동자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중이 큰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인 중소상인들에게 노동3권과 자영을 할 기본권, 대기업의 부당한 상행위를 제재할 대책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가. 중소상인을 위한 노동3권·자영 기본권·대기업의 부당상행위를 처벌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은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중소상인 기본권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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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올해는 400만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신용거품 붕괴가 국민생활과 내수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줬던 신용카드 대란이 발생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10년 만에 또다시 카드대란 위험이 있다면서 최근 언론매체들에서 경고를 주고 있다. 정말 근거가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용카드와 관련한 몇 가지 지표들은 확실히 나빠졌다. 그 하나는 연체율이다. 1% 수준으로 낮았던 신용카드 연체율이 지난해 다시 2% 수준으로 상승하는 추세에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아니다. 아울러 카드 가운데 가장 문제가 많은 카드론 사용이 늘고 있다. 사실 10년 전에 카드대란이 일어났던 이유도 단지 카드 발급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다. 카드 결제건수가 많아서도 아니다. 카드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카드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현금서비스도 그렇지만 카드론은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위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명백히 대출을 받는 것인데도 대출방식이 너무 편리(?)하다. 대출심사도 없고 면접도 없고 그저 신용카드로 긁기만 하면 된다. 도대체 돈을 빌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 하나는 이렇게 편리한 대출인데 이자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웬만한 신용등급이 아니고서는 카드론 대출금리는 15% 이상, 20%를 넘나든다. 은행 이자의 두 배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싼 이자의 대출을 손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위험에 대한 사전경고나 알림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말 카드론 사용액이 12조원이었는데 2010년 말 15조5천억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도 줄지 않고 늘어 15조8천억원이었다는 것이다. 카드론 사용액이 줄지 않는데, 올해 다시금 경제위축 조짐이 보이고 있으니 카드대란 걱정을 다시 할 법하다. 물론 카드론 증가속도가 2002년에 비해 현저히 느리고 신용카드사들의 레버리지 비율도 과도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카드대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용카드 하나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계부채라고 하는 큰 틀이 매우 취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가계부채가 축소되지 않고 계속 증가해 가처분 소득대비 가계부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높게 나타나고 있고, 변동금리부 대출이 압도적으로 많은 등 부채구조가 경기변동에 취약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새로운 위험요인이 자라나고 있다. 경제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서민들의 생활자금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드론 증가도 그 일환이다. 2010년부터 늘어난 대출의 경우 저소득층의 대출 증가율에서 비롯됐다. 최근 늘어난 대출의 절반 이상은 3천만원 미만 소득자들이 빌린 것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심지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에도 집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이나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48.4%를 차지한다고 한국은행은 밝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득 하위 20%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무려 200%가 넘는다. 전체 국민평균 부채비율이 150% 인 것을 비교해 보라.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저소득층들이 생활자금으로 빌리는 돈은 대부분 은행 돈이 아니다. 신용카드나 저축은행 등 이른바 제2 금융권 대출이 주종을 이룬다. 그런데 이들 제2 금융권은 은행에 비해 이자가 두 배 이상 높다. 신용카드 카드론이 급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축은행 대출도 늘어나고 있고 신협·새마을금고 등 서민 금융회사의 대출이 은행 대출에 비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신용카드 위험도 상승을 서민들의 제2 금융권 대출 증가와 위험도 상승의 부분으로 봐야지 신용카드만 떼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묶어서 보게 되면 확실히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저신용자나 저소득층, 다중 채무자들의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계속 누적되는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취약가구부터 단계적으로 연체와 파산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여기에 카드론 대출도 틀림없이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신용카드사를 포함해 저축은행이나 할부금융사 등 제2 금융권은 다중채무자의 연체나 파산 충격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한쪽 국면만 보고 과소평가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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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한국경제가 때늦은 금융부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곪았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이 도화선이 돼 연초부터 삼화저축은행을 필두로 2개월 동안 무려 8개 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저축은행들에 대해 한때 대량 예금인출 사태(뱅크런) 조짐까지 일어날 정도였으며 최근 국회 청문회를 여는 상황으로 번졌다. 영업정지 하루 전에 VIP고객에게 사전 예금인출을 했다는 의혹까지 증폭되면서 저축은행 부실이슈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채 수습되기도 전에 신용카드 대출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 금융시장은 더욱 혼란스럽다. 일부에서는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진단을 하기도 한다. 금융위기 자체는 대체로 수습되고 실물경기도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진단이 나온 지도 한참 됐다.

때늦게 저축은행과 신용카드 등 제2금융권의 부실 가능성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실 신용카드사들의 과열경쟁이 전면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부터 나왔다. 특히 올해 2월 업계 2위인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서 분사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예견됐다. 이는 관련 통계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카드 발급규모가 늘었다. 무실적 휴면카드를 제외한 신용카드는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500만장 정도 늘어났지만 지난해에는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900만장이 늘었다. 적극적인 신규회원 모집 경쟁이 재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발급받은 카드로 단순히 신용카드 결제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이용해 대출을 받는, 즉 카드론 사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론은 은행 대출과 달리 전혀 복잡한 대출절차가 없다. 대신 은행 대출 금리의 최소 2배 이상인 평균 16%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실제 지난해 카드론은 전년 대비 무려 42.3%나 늘어났다. 5년 전에 비하면 약 3배나 늘어났다. 신용카드 결제가 16.6% 늘어난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 결과 5개 전업카드사들의 카드론 영업수익은 30%나 신장됐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의 주범도 바로 짧은 시간에 60조원까지 팽창했던 카드 대출 때문이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누가 카드론을 받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워 제2 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700만명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지난해 이들에게 발급된 신규 신용카드는 104만장으로 62.5%가 급증했다. 저신용자들 가운데 평균 10% 이상이 카드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산은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카드대출을 받은 가구 가운데 하위 40%의 저소득 계층의 카드빚이 평균 1천71만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출이자가 낮은 은행에서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이 15% 이상의 이자를 감수하고 저축은행이나 신용카드 대출, 할부금융사 등을 전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이자가 30%를 훌쩍 넘어가는 대부업체로 가거나, 그보다 더 열악한 사채업체를 기웃거리게 된다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다. 실제로 지난해 은행들이 가계에 대출해 준 금액은 5% 내외밖에 늘어나지 않은 반면 저축은행과 신용카드 대출 등은 두 배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계대출이 800조원을 넘도록 한계상황에 온 지금, 시중은행들이 더 이상의 가계대출을 늘리기 어려워하는 동안 저축은행과 신용카드사·할부금융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위해 서민들을 상대로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가계대출 규모가 아직 크지 않았던 2003년 카드대란 당시와는 달리 한편에서는 이미 안고 있는 800조원의 대출부담 속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는 낮은 소득 환경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서민들이 시중은행도 아닌 고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경쟁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은행과 농협의 카드사 분사,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 합병, 우정산업본부와 산업은행의 카드사업 진출 등 신용카드사들이 출혈경쟁을 할 수 있는 동기는 수두룩하다. 정부는 아직 신용카드사의 연체율이 2%도 안 되기 때문에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003년 카드대란이 나기 직전인 2001년만 해도 신용카드 연체율은 2%에 불과했다. 연체율이 순식간에 20%를 넘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용카드 영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긴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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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대통령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나고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 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2009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새사연은 2010년을 전망하는 연속 기획 [2010 전망]을 마련했다. 올해는 ‘불확실의 시대’로 규정된다. 2009년 하반기로 가면서 차츰 소강상태로 접어든 위기가 다시 파국적 결말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OECD 최고의 경제회복과 G20 국격 제고라는 장밋빛 치장에만 몰두하는 전망 역시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처럼 2010년을 보는 시선 속에는 잿빛 비관과 장밋빛 낙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사연은 이 실타래 속에서 ‘희망’이 라는 가늘지만 질긴 실을 찾아 풀어내보려 한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보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총괄 : 2010년을 새로운 경제 화두의 원년으로
2. 미국 경제 : 불안한 2010년 미국경제 전망
3. 한국 경제 : 출구전략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한 2010년 한국경제
4. 고용 전망 : ’신(新)고용전략’의 과제
5. 정치 분야 : 진보세력은 지방선거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6. 보건(사회) 분야 : 2010년 화두, 살만한 세상만들기 프로젝트
7. 남북관계 : 전환기의 한반도,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할 때
8. 가계 부채 : 2010년 경제의 복병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9. 2010년 가정 경제 : 새해에는 신용카드부터 없애자
10. 교육 분야

재테크 광풍의 위험한 결말

‘빚도 자산이다’, ‘저축은 손해 보는 것이다.’ ‘투자하지 않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재테크의 유행과 더불어 만들어진 새로운 사회적 코드였다. 이 새로운 코드는 그것을 따르지 않을 경우 자신보다 공부 못한 사람들에게 조차 뒤처지게 될 것이란 엄포를 놓았다. 그 엄포는 효력이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이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다 어딘가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증을 가졌다. 보통 사람들조차 빚을 끌어서라도 투자대열에 동참했으며 그나마 저축해 모은 현금자산 또한 돈을 놀리는 것 같은 불안함에 투자금액에 묻어버렸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는 버블 경제학이라는 저서에서 ‘사고의 전염’이 자산시장의 가격 변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기술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란 논쟁들이 가열되기 시작하면 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 사회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진다. 그 믿음은 언론을 통해 부풀려지는데 그것들은 보통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회’라는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달콤한 것들이다. 미래에 대해 불안에 떠는 보통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새로운 기회’이면서 잘만하면 힘들이지 않고 공짜로 화려한 미래를 살 수 있으리라는 환타지를 안겨주는 것이다. 당연히 이 이야기들은 전염력이 강하다. 바로 이런 사회적 전염 때문에 자산의 가격은 실제 가치 이상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쉴러는 투기적 버블 시기에는 ‘가격 상승 - 이야기 - 가격 상승’이라는 순환고리가 형성되어 자산시장은 비이성적으로 과열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심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과한 기대심으로 인해 소외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 자산 가치가 커지면서 나를 제외한 알 수 없는 누군가는 앉은 자리에서 시세차익만으로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하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 1000만 원을 투자해서 놀라운 수익률 100%로 1000만 원의 공돈을 벌었다 해도 상대적 박탈감은 그를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돈 1000만 원을 쥐는 순간 누군가 1억 원 이상의 더 큰 투자금액으로 그 만큼 벌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화가 날 가능성이 크다. 공돈을 벌었다는 기쁨과 누군가는 더 벌었을 것이란 박탈감이 묘하게 얽혀 그 사람은 빚을 끌어다 투자규모를 늘려버릴 수도 있다.

이런 과정으로 투자를 통해 쉽게 돈을 버는 것은 자산시장에 참여했든 하지 않았든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게 만들어 폭탄으로 변해 가는 경향이 있다. 로버트 쉴러의 이론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가격 상승 - 이야기 - 가격 상승 - 박탈감 - 가격 폭등으로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비이성적 과열 국면을 맞는 것이다. 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은 나만 빼고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 같은 무언의 압력으로 멀쩡한 사람을 화나게 만들거나 결국은 재테크 대열에 뛰어들게 만들어 열풍을 이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비이성적 열풍의 결과 우리는 현재 가계부채 700조 원이라는 현실을 살게 되었다.

맞벌이를 하는 박씨 부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남편은 중소기업 과장, 부인은 공무원이다. 평범한 그들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한다. 10여년 전만해도 조그마한 빚에도 잠을 자지 못했고 저축을 하지 못하면 불안했으며 투자는 남의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4억 원의 빚을 갖고 있으며 최근까지도 그리 큰 빚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들은 매월 소득의 25%이상, 연간 2000여만 원을 이자로만 지출하고 있다.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지만 이자를 내고 나면 평달에는 생활비도 부족하기 일쑤다. 결국 13억 원에 가까운 자산을 소유하고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재무 상담을 받기 전까지 그들은 빚도 자산이고, 저축은 손해 보는 짓이며 어떻게든 투자를 더 해야 한다는 10여년 전과 전혀 다른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남들과 같다는 것에 늘 위안을 받고 있었다.

머니게임에서 지는 보통 사람의 재테크

박씨 부부가 소유한 아파트 두 채는 처음 매입가에 비해 30% 이상 오른 가격이다. 현재의 자산가치만 놓고 보면 대단한 수익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 때문에 팔아서 차익실현을 하지 못한다. 써보지도 못할 돈을 벌었다고 오해하면서 매월의 생활비가 부족해 빚이 늘어나는 위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나 버렸을 때 뭔가 문제가 있다 싶어 재무상담을 신청했다. 결론은 자산을 매각해서 부채를 없애고 현금흐름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으로 대단히 간단하다. 문제는 팔려고 내 놓으니 팔리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심이 팽배하면서 시장이 과열되고 상승기조가 지속되는 듯 했다. 그러나 대출 규제에 발목이 잡힌 부동산 시장은 집을 내놓아도 보러오는 사람조차 구경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재테크로 성공하려면 기대심이 풍부해 상승 대열 분위기가 팽배할 때 남들과 다르게 팔아치울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이 남아 있을 때가 차익실현의 적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빚 없이 혹은 적은 빚으로 박씨 부부의 차익실현을 도울 또 다른 매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해 졌다.

결국 10억 원이 넘는 돈은 그대로 깔고 앉은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챨스 킨들버그는 투기적 국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한 바보가 나타날 것이란 믿음으로 맨 마지막에 남겨지는 불운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박씨 부부가 처한 상황도 더한 빚을 끌어다 박씨 부부의 차익실현을 도울 사람이 없는 ‘맨 마지막’에 남겨진 불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숫자로만 존재하는 자산가치를 구경만 하면서 힘들게 번 돈으로 자산에 딸린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재테크를 통해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일확천금의 승자와 비용을 지불하는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는 머니게임인 셈이다. 문제는 보통의 사람들은 머니게임에서 적절한 시점에 털고 빠져나오는 승자의 기지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더 오를 것이란 소문에 나약한 욕심으로 팔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더 이상 자신보다 더한 바보가 없을 때에야 급하게 팔려고 서두른다. 그러나 결국에는 팔리지 않아 조급해지기 시작하고 바로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맨 마지막에 남겨졌다는 공포심을 자각하는 패자가 되는 것이다.

머니 게임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민스키 시점이라는 것이 있다. 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불리는 경제학자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에 대한 가설을 이론화 한 것이다. 이론의 핵심은 금융시장에서 과도한 부채를 진 채무자들이 부채의 상환을 위해 자신의 건전한 자산마저도 내다 팔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자산가치가 폭락하면서 금융공황이 시작되는 시점을 설명한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폭락론과 폭등론을 오가는 양극단 논쟁을 접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사태가 경제 위기설로 이어지면서 금리가 치솟고 그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 큰 위기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위기설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고 연초부터 강력하게 진행된 재정정책으로 금리는 금세 변덕스럽게 안정되었다. 위기설이 지나간 부동산 시장은 위험 경고에 내성이 생긴 듯 더 빠르고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불안해졌고 더욱 견고해진 부동산 불패신화로 뒤늦게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제는 가진 돈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위 소득 20%안에 드는 사람들의 금융 자산 평균액이 3000만 원 수준이다. 심지어 가계부채까지 안고 있는데 그 금액이 1억 원 가량이다(노동연구원 2007년 자료참조). 올해 더 오를 것이란 믿음으로 부동산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주로 상위 소득계층이라고 가정해 보면 가진 돈으로 부동산 매입을 한 것이 아니라 빚을 추가로 냈다는 이야기다. 그것 때문일까. 대출규제가 시행되자마자 부동산 시장은 급속하게 냉각되는 추세를 보이고 폭락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재테크로 돈을 번다는 것은 누군가 내가 산 가격보다 비싼 가격으로 나의 자산을 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의 수익은 너의 비용, 머니게임에서 승자가 되어야 재테크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부채 상승의 상관관계를 미루어 짐작컨대 누군가가 챙기는 재테크 수익이 또 다른 누군가의 부채로 만들어 진다는 점이다.

빚으로 남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의 평범한 중산층, 서민계층이라는 것도 서글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머니게임을 멈추어야 한다. 평생을 금융위기 연구에 바친 민스키는 머니게임의 끝을 제로섬, 즉 공멸로 결론짓는다. 남보다 잘 살기 위한 어리석은 게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언이 현실이 되기 전에 머니게임을 멈추고 건전한 재정관리 원칙을 되살려야 할 때이다.

새로운 마인드 셋(mind set)이 필요하다

빚도 자산, 저축은 손해,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등의 왜곡된 사회적 의식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버렸다는 현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왜곡된 프레임 안에서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돈에 대한 건전한 개념이 사라지고 무조건 다다익선이라는 풍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 때와 똑같은 마인드로는 그 문제를 해결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풍요와 부에 대한 왜곡된 프레임, 즉 마인드 셋(mind set)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많은 돈을 쓰고 좀 더 여유있게 사는 풍요로운 삶에 대한 본질을 뜯어봐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하나를 가지면 그것과 관련된 다른 것도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을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18세기 철학자 디드로라는 사람이 친구로부터 서재용 가운 하나를 선물 받고는 그 가운의 색상에 맞춰 서재 전체의 가구를 바꿨다는 데서 유래한 경제용어다. 새 집을 장만하면 가구나 가전제품부터 혹 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까지 세세하게 고려해 전동 드릴이 들어있는 공구함까지 장만하게 된다. 냉장고 하나 바꾸면 칸칸이 설계된 수납 시스템이나 냉장 냉동 시스템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식재료를 채워 넣기 바쁘다. 새 차가 생기면 오디오 시스템부터 핸즈프리 도구들을, 자전거 하나를 사더라도 안장이나 패덜까지 전부 연속적으로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심리적으로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한 욕구불만에 시달린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쉽게 욕구를 충족시켜 버리고 면 포부감이 형성되어 더한 욕구불만이 생겨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20평형대에 살면 30평형대에 사는 이가 부럽고 30평형대에 살면 40평형대에 사는 친구를 만나 한숨소리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소비에 있어 디드로 효과가 가중 되는 것은 알고 보면 다른 사람과의 비교, 그 비교를 부추기는 기업들의 마케팅이 한몫 한다. 얼음 나오는 정수기를 보며 아이의 간절한 눈망울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며 ‘엄마, 우리 집은?’ 한마디에 저소득층 가정에서조차 정수기가 필수 품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자동차로 답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을 만들고,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로 결혼 상대의 품격을 달리 평가해야 한다는 주문을 끝도 없이 쏟아내는 기업들의 광고가 문제다.

눈만 돌리면 광고문구로 도배된 세상에 사는 탓에 우리는 명절 가족 모임에 참여해서도 서로의 아파트 가치를 자랑하거나 부러워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남과 비교하고 기업의 광고나 마케팅에 의해 조작된 욕구로 만들어지는 풍요는 오히려 끝도 없는 욕구로부터의 소외를 낳게 돼 더한 빈곤에 갇히게 만든다. 또한 욕구를 자극하는 것에 쉽게 이끌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과 같은 못 되먹은 금융도구로 충동적인 소비를 하고는 잡동사니에 시달린다. 일본의 인류학자 쓰지 신이치는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창문도 없는 대형 쇼핑센터, 아스팔트, 스포츠클럽, 다이어트 지옥과 절대로 끝나지 않는 공사판에 갇히고 대신에 품위있는 자연환경과 멀어진다고 지적한다. 중산층들의 소비 구조를 분석해 봐도 1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한 전기 제품들을 소유하느라 적지 않은 전기세를 낭비하고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음식들을 보관하느라 커다란 냉장고를 소유한다. 혹은 버릴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가득히 보관한 채 대형마트의 카트를 채우는 쇼핑에 나서는 주말 이벤트를 어김없이 하기도 한다. 맛집 나들이로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유해성분이 가득한 다이어트 식품을 먹고 집안일이 귀찮아 자동화 시스템을 좋아하면서 정작 스포츠센터에 가서 살 빼느라 고생한다. 가족의 수는 점점 적어지는데 넓은 집을 소유하려 하고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주택담보 대출이자와 관리비에 허덕이고 청소 때문에 또 다른 비용을 감당한다. 수납공간들에는 무언가 가득해 있지만 거의 꺼내 쓸 일이 없다.
이렇게 잡동사니 소비를 하면서 정작 꼭 써야 하고 꼭 쓰고 싶은 곳에는 돈이 없어 빚을 낸다. 혹은 그런 미래를 살지 않기 위해 머니게임의 패자대열에 혹시나 하고 참여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사는 것이다.

많은 돈을 쓰고 소유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행복한 부자의 삶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마인드 셋이다. 필요 이상의 돈을 생각 없이 쓰고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은 그 자체가 피곤한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런 소비와 소유 유지를 위해 많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정작 돈 버느라 여유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정신적 여유나 충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즉 계속적으로 높은 고정비용을 감당하느라 많은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공포심마저 느끼는 것이다.

불필요한 곳에 혹은 수동적인 소비 욕구를 채우는 것에 돈을 쓰지 않는 지혜로운 경제 생활이야 말로 품위있고 여유있는 삶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제 새해에는 새로운 마인드 셋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삶이 구질구질해질 뿐이며, 빚이 있으면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구속당할 뿐이다. 돈을 편하게 쓰는 것은 기업들의 꼬임에 수동적 소비를 하고 집안 가득 잡동사니를 소유하는 것이라는 생각, 고정 지출이 적어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저축은 자산을 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목돈을 쓰기 위함이다.

2010년 지혜로운 경제 생활을 위한 제언

‘자기 인생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투자’라는 식의 마인드 셋을 스스로 가져보자.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신용카드부터 없애보자. 신용카드는 우리를 일상적인 채무에 허덕이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진심으로 원했던 욕구를 실현하느라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조작된 욕망 때문에 신용카드를 긁고 그 결제금을 갚기 위해 다니기 싫은 직장도 절대 때려 치우지 못할 만큼 채무 노예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새해부터는 신용카드보다 잔액 범위 내에서 카드 결제가 가능한 체크카드에 더 많은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고 한다. 포인트 혜택이니 할인 혜택같은 것들은 잊자. 어차피 포인트로 할 수 있는 쇼핑은 대부분 잡동사니들이며, 할인 혜택은 또 다른 소비를 유발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뻔한 속임수에 공짜를 얻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은 알고 보면 너무 순진하다 못해 무지한 것이다.

우리의 삶을 신용은커녕 외상과 가불구조로 만들어 버리는 신용카드 자르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달만 고생하면 된다.

두 번째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고정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각종 주거 관리비, 통신비와 식비 등의 일상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육비와 사보험료, 금융비용 등의 비교적 커다란 고정지출의 규모들을 조금씩이라도 줄여야 한다. 모든 항목에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줄이면 전체적인 고정지출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세 번째는 반드시 저축을 하는 것이다. 생활이 궁핍해도 행복한 사람은 저축이 있는 사람이다. 쓰지 신이치는 “저축이란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 친척, 우인, 지인 들과 가까운 지역이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자연계와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 등 살아가는 기술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 안전망’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가 폭넓은 사회안전망과 공동체 가치관이 사람들에게 크게 자리잡고 있다면 그 자체가 사회적 저축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런 사회안전망은 크게 부재한 상황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사회적 활동이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당장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보충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저축계좌를 늘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새해에는 우체국을 통해 서민 계층을 위해서는 10%짜리 서민 전용 보너스 금리 예금을 만든다니 한번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언론 발표에서와 같은 내용과 달라 실망하게 될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록 관리가 필요하다. 금전출납부 식의 가계부가 아니라 자신의 재정 원칙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자신만의 회계장부를 만들어 보자.

돈의 종이 되지 않고 돈을 능동적으로 통제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위에서 열거한 것들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안들이다. 부동산 거품붕괴에 대한 우려가 짙은 새해 모두 건전한 경제 마인드 셋으로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제윤경/에듀머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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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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