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전세계가 뒤흔들리고 있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에 학자들은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래도 불황(depression)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어감의 침체를 사용해서 빨리 이 수렁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희망도 담았을 것이다. 실제로 2009년에 세계 각국은 동시에 돈을 풀고 재정지출을 확대해, 출구전략의 시점을 가늠할 정도로 문제를 해결해 낸 듯했다.

시장만능 파국 맞아 ‘사회’ 가치 각광

그러나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가로막았고 유럽에서는 역내 불균형 때문에 남유럽을 중심으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미국과 동아시아 간의 글로벌 불균형 역시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또다시 파국을 맞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에 제로성장 언저리에 머무르는 일본형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갈 가능성이 높다. 위기 때는 뻔하게 보였던 미시적 금융제도 개혁이나 거시건전성 규제마저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완전히 파산한 주류경제학의 교수들은 오늘도 대학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똑같은 이론, 예컨대 효율시장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경제의 앞날은 말 그대로 ‘잔뜩 흐림’이다.

당연히 지난 30여년간 이 세계를 지배해 왔던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라는 말이 특별히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국가의 복지가 공격을 받으면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부상했는데, 이제는 시장경제마저 뒤흔들리고 있으니 더욱 각광을 받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이론대로, 기업의 단기 주주 이익 극대화로 사회 전체가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던져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책임 투자’를 새로운 글로벌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인기를 얻고, 행정학에서 신공공행정론이 물러간 자리를 ‘공공가치행정론’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가히 칼 폴라니의 말대로, 시장만능이 불러온 파국에 대응해 ‘사회’를 내세우는 대응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모두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몸부림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전히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가 “짜잔” 하고 나타날 수는 없는 상황이다(예컨대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한다면 지금 시점에는 이미 새로운 경제학이 나타났어야 하고 중국은 미국을 한참 제쳤어야 한다). 하지만 10년 내지 20년의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사회’로부터 분리됐던 경제가 다시 사회 속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즉 경제가 사회적 규제를 받는 쪽으로 나아갈 것은 틀림없다.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에 기초해(Homo Reciprocan)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경제부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성에 기초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시장경제와는 다른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에서 가장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협동조합의 7원칙은, 진화생물학과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인간 협동의 조건을 고스란히 반영한 인류의 오랜 지혜이다.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함께 협동조합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미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구성하는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신뢰와 협동으로, 다소 느리겠지만 아주 단단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에 뿌리박는다면 우리의 시장경제에도 인간과 사회의 따뜻함이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나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지배하여 가격의 움직임마저 부드럽게 규율하는 사회이다.

이기심 대신 협동으로 따뜻한 시장을

지금 국민들의 염원인 복지국가의 형성에도 사회적 경제는 기여한다. 복지의 마지막 전달경로에 공동체의 사회적 경제가 개입할 때 효율과 평등이 동시에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건강보험체계에서 의료생협이 1차 진료기관을 담당하게 되면 돈을 절약하면서도 훨씬 더 따뜻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에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경제 실험을 하고 있다. 복지와 사회적 경제, 이 둘이 손발을 맞출 수 있다면 한국은 어느덧 세계가 뒤따르고 싶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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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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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2 : 사슴사냥 게임

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이 게임은 확신게임(Assurance Game), 신뢰게임(Trust Dilemma)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A Discourse on Inequality)>에서 나온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은 이렇다.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사냥꾼이 힘을 합쳐 자신이 맡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냥꾼만으로도 충분하다. 토끼를 사냥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사슴을 사냥할 때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사냥꾼 A와 B가 함께 사슴을 사냥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맡은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 때 토끼를 잡으러 쫓아가야 할까? 아니면 사슴을 잡기 위해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사냥꾼 A와 B의 전략은 '사슴을 잡는다'와 '토끼를 잡는다' 두 가지가 된다. 사슴을 잡기로 했다면 서로 협력(cooperation)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C로 표시하고, 토끼를 잡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배반(defect)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D로 표시한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사슴을 잡았을 경우는 (4,4),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토끼를 잡았을 경우는 (2,2), A는 사슴을 기다렸으나 B가 토끼를 쫓아가버린 경우는 (1,3), A가 토끼를 쫓아가버리고 B는 사슴을 기다린 경우는 (3,1)이 된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4를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3을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도 협력한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는 협력하면 1을 얻는다. 반면 A도 배반하면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 A도 배반한다. 즉,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상대방이 사슴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킨다면 나도 그래야 하고,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나도 그래야 한다.

(4,4)와 (2,2) 둘 다 내쉬균형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인 경우의 게임을 조정게임(Coordinatioin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4,4)가 (2,2)보다 훨씬 이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슴을 기다릴 경우 얻을 이득은 4 또는 1이다. 상대방도 사슴을 기다린다면 4를 얻지만 만약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1밖에 못 얻는다. 반면 토끼를 쫓아갈 경우 얻을 이득 3 또는 2이다. 운이 나빠도 2는 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토끼를 쫓아가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슴사냥게임이 갖는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U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사슴사냥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U자를 그린다.

파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슴사냥게임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집단행동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다. 사장 한 명과 직원 두 명이 있는 직장이 있다. 사장은 권위주의적이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어느 날 두 명의 직원은 휴가를 제 때에 보장받기 위해서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파업이 성공하면 사장은 휴가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두 명의 직원 중 한 명이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 보장의 요구는 묵살되고, 이를 주장한 직원은 불이익을 받는다. 물론 두 직원 모두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두 직원을 A와 B라고 하자.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파업에 참여한다'와 '파업에 불참한다' 두 가지가 된다. 파업에 참여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고, 파업에 불참한다면 서로  배반하는 것이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파업에 성공하고 휴가를 보장받았을 경우는 (1,1),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파업에 불참하고 휴가를 보장받지 못했을 경우는 (0,0), A는 파업에 참여했으나 B는 불참하여 A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1,0), A는 파업에 불참했으나 B는 참여하여 B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0,-1)이 된다.

B가 파업에 참여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도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참여하는 게 이득이다. B가 파업에 불참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는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불참하는 게 이득이다. (1,1)과 (0,0) 둘 다 내쉬균형이 된다. 즉, 상대방이 파업에 참여하면 나도 참여해서 휴가를 따내는 것이 이득이고 상대방이 파업에 불참하면 나도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이득이다.

탐욕이 사라진 게임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을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협력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반하는 것과 상대방이 배반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도 배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전자가 탐욕(greed)이라면, 후자는 공포(fear)다. 사슴사냥게임에서는 적어도 탐욕으로 인한 배반은 사라진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사슴사냥게임이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을 배신하는 경우는 남이 나를 배신할까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바꿀 수만 있다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다. 적어도 탐욕에 의해서 나만 잘 살겠다는 선택과 그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는 결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했을 때는 남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일단 우리 아이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남들이 사교육 안 시킨다면 나도 안 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사교육 비용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고생하고 그런데 성적은 안 오르는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부모들이 많아진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교육은 이제 사슴사냥게임으로 변한다. 남이 사교육을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시키지만, 즉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지만 남이 사교육을 안 시키면 나도 안 시키겠다, 즉 남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2,2)라는 해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4,4)와 (2,2)이라는 두 가지 대안이 생겼다.

물론 이 두 가지 대안 중 서로 협력하는 (4,4)를 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나는 사교육을 안 시키고 싶은데 남들도 안 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키는 (2,2)의 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모두가 사교육을 안 시킬 것이라고, 모두가 협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방법을 들자면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된다. 적절한 제도와 규범을 도입한다면, 죄수의 딜레마는 사슴사냥게임으로 바뀔 수 있고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해를 택할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3 : 치킨게임

세 번째는 치킨게임이다. 치킨은 겁쟁이를 뜻하는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이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나오는 한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에서 두 건달이 여주인공을 놓고 게임을 한다. 절벽 위에서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다가 둘 중 먼저 차를 세운 사람이 지는 것이다. 누가 겁쟁이인지 보자는 무식한 게임이다.

또는 서로를 향해 차를 몰다가 누가 먼저 핸들을 돌리는가, 기찻길 위에 누워 있다가 누가 먼저 도망가는가를 겨루는 것들도 모두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은 매-비둘기 게임(Hawk-Dove Game)으로도 불린다. 매는 돌진하는 미친놈이고, 비둘기는 도망가는 겁쟁이다. 매와 비둘기가 만나면 언제나 매가 이긴다. 하지만 매와 매가 만나면 서로 멸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여기 치킨게임에 참가한 무식한 사람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선택한 게임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아 달려오는 것이다. 전략은 '핸들을 돌린다'와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가 있다.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협력(C)이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것이 배반(D)이다. 보수는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달리는 경우, 결국 둘 다 죽는 경우가 (1,1)이다.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는 경우는 둘 다 목숨은 건졌지만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3,3)이다. A가 핸들을 돌리고, B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2,4), B가 핸들을 돌리고 A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4,2)이다.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가 되었으니 2의 보수를 얻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게임에서 이겨 용감한 남자로 인정받았으니 4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보자. B가 협력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3을 얻고, 배반하면 4를 얻는다. 따라서 A는 배반하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B가 배반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2를 얻고, 배반하면 1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협력하고 핸들을 돌린다. 남이 협력하면 나는 배반하고, 남이 배반하면 나는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B가 핸들을 돌릴 것 같으면 A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해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B가 너무 무식한 놈이어서 절대 핸들을 돌릴 것 같지 않다면 A는 핸들을 돌려서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다.

이처럼 상대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이 되는 게임을 반조정게임(Anti-Coordination Game)이라고 한다. 앞서 본 사슴사냥게임과 정반대이다. 사슴사냥게임에 해당하는 경우는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과 내가 같은 것을 선택할수록 나눠 갖는 몫이 커진다. 혼자서 토끼를 잡는 것보다 둘이서 사슴을 잡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즉, 재화의 비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치킨게임은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하면 내 몫은 줄어든다. 서로 같은 것을 선택해서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재화의 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내쉬균형은 (4,2)와 (2,4)에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둘 중 어떤 놈이 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식한 인간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치킨게임에서는 미친놈이 이긴다고 말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로를 향해 차를 모는 경우라면 나는 핸들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핸들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자신의 손을 묶어서, 나는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치킨게임의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치킨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의 모양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핵무기 경쟁을 할 당시 미국의 닉슨(Ric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내 전략은 미친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핵무기가 가져올 엄청난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리는 것은 치킨게임과 같다. 그리고 닉슨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인식하면, 다시 말해 나를 언제라도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 바보와 미친놈의 게임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도 치킨게임이다. 여기서 미친놈은 북한이다. 남한 정부도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실제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남한이 이길 것이다. GDP의 차이가 20배 이상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쉽게 미친놈이 될 수 없다. 남한 정부는 미친놈보다는 바보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협력할 것이고, 이 때 너희도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을 주는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의 이득을 제시하여 협력할 때 북한이 얻는 이득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혹은 적어도 협력할 때 이득이 많아진다고 북한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상호주의 전략은 이를 다시 치킨게임으로 되돌려 놓았다. 상호주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협력과 응징이다. 문제는 협력보다는 응징에 방점이 찍혀서 북한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전략만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니 나도 응징을 하겠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방도 다시 나를 응징한다.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협력할 때보다 배반할 때 이득이 더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치킨게임이 되는 것이다.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게임을 이렇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보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나은 상황이 사슴사냥게임이다.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협력하는 경우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해결될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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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2 / 14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내는 시장의 효율성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시장경제의 명제가 틀렸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어떨까?

시장경제는 단 하나의 그림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바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그림이다. 수요곡선은 각각의 가격에서 수요자, 즉 소비자들이 얼마만큼 재화를 구매하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공급곡선은 각각의 가격에서 공급자, 즉 생산자들이 얼마만큼 재화를 판매하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수요곡선은 우하향하고, 공급곡선은 우상향한다. 왜 그러한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값이 비싸지면 소비자는 덜 사려고 하므로 수요곡선은 우하향하고, 반대로 생산자는 더 팔려고 하므로 공급곡선은 우상향한다.

예를 들어 사과 시장이 있다고 하자. 사과 가격이 매우 비쌀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과 하나에 1만 원일 경우 사과를 팔려는 사람은 많지만 사려고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면 사과가 남아돌게 되고 사과의 가격은 떨어진다. 반대로 사과 가격이 매우 쌀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과 하나에 100원일 경우 사과를 사려는 사람은 많지만 팔려고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면 사과는 부족하게 되고 사과의 가격은 오른다. 이런 식으로 가격에 의해 수요량과 공급량이 변화하면서 수요량과 공급량이 딱 맞아떨어지는 균형점을 찾아가게 된다.

두 곡선이 만나는 곳, 즉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는 곳을 (시장)균형이라 한다. 이 때의 가격을 균형 가격이라 한다. 그리고 모든 재화가 시장에서 이와 같이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을 일반균형이라고 한다. 수요곡선은 소비자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점을 모아놓은 것이며, 공급곡선은 생산자의 이윤이 극대화되는 점을 모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이 만나는 점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점이 된다. 물론 이는 이기적 인간을 상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누가 나서서 수요량과 공급량을 조정하지 않아도 저마다 자신의 효용과 이익을 추구하면, 가격 변동에 의해서 적정량이 정해지고, 그 점에서 사회 전체의 효용이 극대화된다는 것. 이것이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이를 표현한 말이 바로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이들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이들이 행동할 때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 항상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그가 공공의 이익을 의식적으로 추구했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 증진에 기여하게 된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중


시장실패 사례 1 : 공공재

그런데 경제학자들도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이 시장실패이다. 시장실패는 공공재, 외부성, 독점, 정보 불완전성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공공재는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다. 공공재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고 있는 재화이다. 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성질을 말한다. 따라서 비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사용해도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지 않음을 뜻한다. 배제성이란 특정 사람의 접근이나 사용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배제성이란 특정 사람을 배제시킬 수 없으므로 결국 모두가 이용가능함을 뜻한다.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은 같은 이야기인데 단지 비경합성이 수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면, 비배제성은 공급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이나 국방은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공중파 방송은 내가 시청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시청할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비경합적이다.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만 시청을 못하도록 막을 수 없으므로 비배제적이다. 국방도 그렇다. 내가 국방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누리는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므로 비경합적이다. 또한 국민 중 일부만을 배제하고 국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비배제적이다.

문제는 이 경우 시장에서는 공공재가 공급되지 못한다. 공급자 입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낸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을 차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공재는 비배제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돈을 안 낸다고 해서 공중파 방송을 못 보게 하거나 국방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돈을 낸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이 차이가 없다면 수요자 입장에서는 돈을 낼 이유가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마을에서 가로등을 세우려고 한다. 이 때 총 비용이 1000원이고, 이 마을에 10명이 산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10명이 각각 100원씩 내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가로등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데 가로등은 공공재이고,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아무도 비용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가로등이 세워지기만 하면, 내가 가로등 불빛을 이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용을 안냈다고 해서 내가 가로등 불빛을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재의 경우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준다는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재의 경우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공공재 중에도 국가가 가져다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공공재다. 내가 민주주의를 누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경합적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누릴수록 내가 누릴 수 있는 몫도 커진다. 과거 독재를 휘둘렀던 사람은 빼놓고 민주주의를 적용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비배제적이다. 자본주의, 주류경제학자 또는 시장경제주의자들은 말한다. 인류가 누리고 있는 엄청난 발전은 시장의 힘, 이기적 인간의 힘, 경쟁의 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었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실패 사례 2 : 외부성

두 번째, 외부성이 발생한다. 여기서 외부란 시장의 바깥을 말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외부성에 해당한다. 시장을 벗어난 행위는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므로 균형에 이를 수 없다. 외부성의 이러한 결과를 두고 사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불일치한다고 표현한다.

외부성은 외부선과 외부악으로 나눌 수 있다. 다른 말로 각각 외부경제와 외부불경제라고도 불린다. 외부선은 타인에게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외부성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과꽃향기를 좋아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사과꽃향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 옆에서는 사과꽃향기가 나고,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로 인해 기분이 좋아진다. 사과꽃향기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지만 그렇다고 과수원 주인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는 않는다. 사과꽃향기는 많을수록 좋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적게 생산된다. 즉, 사적 비용이 사회적 비용보다 크다.

외부악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외부성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공해물질을 배출하는 볼펜 공장을 예로 들 수 있다. 공해물질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만 그 비용이 볼펜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공해물질이 미치는 해악을 볼펜 가격에 반영한다면 볼펜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볼펜 생산량은 줄어들 것이다. 공해물질은 적을수록 좋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많이 생산된다. 즉, 사회적 비용이 사적 비용보다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피구(Arthur Cecil Pigou)이다. 피구는 외부악에 대해서 세금을 물리고, 외부선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부악에 세금을 물리면 생산비용이 늘어나니 생산량이 줄어든다. 이를 피구세(Pigou Tax)라 한다. 외부선에 보조금을 주면 생산비용이 줄어드니 생산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세금과 보조금을 주어야 적정한지 측정할 길이 없다.

한편 코즈(Ronald H. Coase)는 개인 간의 거래비용이 없다면 정부가 세금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개입하지 않아도 외부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외부악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과 외부악을 발생시키는 사람이 서로의 권리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악을 발생시킬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환경오염이라는 외부악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탄소배출권이 바로 이 원리에 기반한 것이다. 이를 코즈의 정리(Caose Theorem)이라 하며, 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 덕분에 노벨경제학상을 탄 코즈는 "적절한 제도가 없이는 어떤 시장경제도 불가능하다" 며 코즈의 정리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시장실패 사례 3 : 독점

세 번째, 독점이 있다. 독점은 공급자가 혼자인 경우이다. 이 경우 공급자는 균형 생산량보다 더 적게 생산하고, 균형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 효율적인 균형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이 효율적인 이유는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어서 그 누구도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서, 모든 정보가 가격을 통해 반영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점이 되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생활에 사용되는 재화의 대부분은 독점까지는 아니어도 과점 체제 아래서 생산되고 있다.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자동차, 휴대폰 등 서너 군데 기업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실패 사례 4 : 정보 불완전성

네 번째, 정보의 불완전성이다. 이에 대해 다룬 학문이 정보경제학인데 애커로프(George Akerlof)와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가 대표적 학자이다. 먼저 역선택은 애커로프가 발표한 '레몬시장(Market for Lemons)'이라는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중고차를 거래하는 시장이 있다. 자신이 타던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보다 그 차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한다. 이 상황에서 중고차 시장에서 가격이 400만 원으로 형성되었다고 가정하자. 400만 원보다 더 높은 품질을 가진 중고차를 보유한 사람들은 차를 판매하지 않고 시장을 떠난다. 그러면 전체 중고차의 품질은 낮아지고, 가격은 400만 원보다 낮아진다. 다시 좀 더 나은 품질을 가진 중고차 보유자들이 시장을 떠나고 자동차의 품질과 가격은 낮아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처럼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사전에 비정상적인 선택이 일어나는 것을 역선택이라 한다.

정보 불완전성의 다음 문제는 도덕적 해이다. 이는 원래 보험시장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보험가입자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보험을 믿고 운전을 거칠게 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만약 이 사람이 운전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보험회사가 알고 있었다면 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생긴다.


시장이 효율적이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지금까지 시장이 언제나 효율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확인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시장이 가진 근원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요곡선에는 돈 없는 사람들의 수요는 반영되지 않는다. 사과시장의 수요공급곡선을 생각해보자. 사과값이 아무리 높아도 수요는 존재한다. 이 사람들은 사과를 굉장히 좋아하거나 혹은 돈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다. 반대로 사과를 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과를 싫어하거나 혹은 돈이 없어서 사과를 사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시장이 아무리 효율적으로 작동되어도 높은 가격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사과를 공급받을 수 없다.

만약 이것이 사과가 아니라 식량이라면, 의약품이라면 어떤가? 지금 세계에서 식량이 가장 필요한 국가 중 한 곳이 북한이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식량은 공급되지 않는다. 에이즈 약이 가장 필요한 곳은 아프리카이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에이즈 약은 공급되지 않는다. 시장은 돈이 없는 사람들의 존재를 아예 무시한다.

시장의 근원적 한계는 또 있다. 시장은 가격이 변동하면서, 즉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하지만 극심한 가격 변동은 위기와 혼란을 가져온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가 그러한 예이다. 특히 가격 변동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면 큰 문제이다. 쉽게 생각해서 전쟁을 시장에 맡겨놓는 사회가 어디 있는가? 생명이 걸린 일들을 시장에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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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0  정태인/새사연 원장 

"결국 문제는 남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북유럽은 그런 신뢰가 쌓여서 사회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규범을 내면화 했다."

지난번에는 납세자 쪽의 무임승차를 얘기했지만 경제학자들이 툭하면 들먹이는 것은 ‘수혜자’ 쪽의 무임승차다. 만일 실업급여로 이전 월급의 80%를 받는다면 툭하면 회사 그만두고 일하지 않는 베짱이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독일과 스웨덴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 또는 그 다음날에 병가(스웨덴에서는 병가는 유급이며 진단서를 낼 필요가 없다)가 대폭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무임승차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영미형에서는 잔여복지 또는 선별복지(‘맞춤형 복지’라는 말도 다분히 잔여복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를 시행한다. 국가는 생존권을 보장하는 수준의 복지만 제공해야 한다는 ‘경험적 자유주의’(프리드만, 하이예크)가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는 철학이다. 이들 나라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얻는 수입, 그리고 가족에 의해 삶을 누려야 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복지를 받으려면 이런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철저한 자산조사(means test)가 필수적이며,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낙인효과(stigma effect)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각각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인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이 두 번째 무임승차 문제를 훌륭하게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히 실업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고용률(15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뚜렷이 높다. 어떻게 이런 신통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북유럽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불운을 당했다면 기꺼이 그를 도우려고 한다. 반면 노력할 여지가 충분한데도 도움을 청하면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스웨덴의 노동조합(LO)이 연대임금제도를 시행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파산하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실업자가 된 이들이 재교육·훈련을 거쳐 다른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완전고용도 달성하고 산업구조도 고도화될 테니 일석이조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인 셈인데, 고용률이 높아져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어서 이 정책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동력이 되었다.
 
치열한 시장경쟁은 언제나 패배자를 낳으며 누구나 판단 실수로, 또는 단순한 불운으로 패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으로 누구나 재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으랴. 결국 문제는 남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북유럽은 그런 신뢰가 쌓여서 사회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규범을 내면화했다. 이런 사회에서 남들이 낸 돈으로 그저 놀고 먹는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정부의(또는 국민 스스로 선택한) 적절한 정책과 사회적 신뢰, 이것이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두 번째 무임승차를 막는 첩경인 것이다.
 
반면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전제한다면, 따라서 무임승차가 필연이라면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전에 그런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이렇게 상대가 자신을 나쁜 놈 취급하면 사람들이 딱 그 수준에 맞춰서 행동한다는 것을 거듭 증명했다. 예비군복만 입히면 남자들이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기적 행동이 당연한 것이 되고 착한 사람은 오히려 바보(sucker) 취급을 받게 된다. 퍼트넘이 ‘나 홀로 볼링하기’(Bowling alone)에서 집어낸 미국 사회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북유럽처럼 신뢰로 가득찬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극도의 경쟁만 가득찬 현재의 한국에서 보편복지를 시행하면 무임승차가 만연하지나 않을까? 다음번에 다룰, 정말 고민스러운 주제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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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6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호에서 밝힌대로 보편적 복지국가는 공유자원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세금은 내지 않고 급여는 많이 받으려 할테니(무임승차) 결국 재정파탄이라는 ‘공유지의 비극’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재게임은 기여에서의 무임승차를 잘 보여준다. 5명에게 5만원씩을 나눠주고 공공계정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도록 해보자. 공공계정에 낸 돈은 3배로 커져서 5명에게 고르게 분배된다. 예를 들어 공공계정에 10만원이 모인다면 돈은 30만원(10×3)이 되어서 각자 6만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5만원을 전부 내서 75만원(25×3)의 공공재산을 만든 뒤, 각자 15만원의 서비스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나만 돈을 안 내면 어떻게 될까? 내 몫은 5만원 더하기 12만원(공공재산 60만원÷5)이니 17만원을 챙길 수 있다. 이제 모두 돈을 내지 않는다면 자기 돈 5만원만 남게 될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으니 사회적 딜레마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할까? 이 게임을 열 번 반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동안 수없이 행해진 실험의 결과는 첫 회에 기여한 돈은 전체 액수의 약 60~70%다. 그러나 게임이 반복될수록 기여는 점점 적어져서 10회에 이르면 경제학이 예측한대로 아무도 돈을 내지 않게 된다. 처음엔 기꺼이 돈을 냈던 사람들이 점점 액수를 줄이고 심지어 한푼도 내지 않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많이 냈는데 조금 내는 사람들, 심지어 한푼도 안 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대응한 것이다. 즉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응징 방법이 돈 안 내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데 이 응징은 그 자체가 불공정하고 자해적이기까지 하다. 돈을 많이 낸 사람, 심지어 다 낸 사람도 응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얼마나 냈는지를 알리고, 적게 기여한 사람을 자기 돈 들여서 응징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누군가 응징하고 싶을 때 내 돈 1만원을 내고 그 사람을 지적하면 그의 돈 3만원을 빼앗는 것이다. 이렇게 응징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면 그 다음부터 기여액은 다시 늘어난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보답하고 싶다면 돈으로 보상하는 제도도 있을 수 있다. 응징보다 효과가 적긴 하지만 보상 역시 기여액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응징은 음의 상호성, 그리고 보상은 양의 상호성을 제도화한 것이다.
 
반대로 사회에 무임승차자가 많은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세금 내는 게 아까울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규칙적으로 이런 상황을 목격한다. 장관 청문회를 보면 어쩌면 하나같이 후보들은 부동산 투기를 해서 재산을 늘렸고, 아이들을 위해 전입을 하며, 몇 푼 되지도 않는 세금이나 보험료를 떼어먹었다. 재벌들이 편법 또는 불법으로 거액의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검찰은 솜방망이 처벌을 할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보통 사람도 세금 회피를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이 없는 사회에서는 사회규범이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와 함께 사회규범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두 번째 존재조건이다.
 
하여 스웨덴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스슈타인(Rothstein)은 정부의 불편부당성(impartiality), 또는 정부의 질(quality)이 보편적 복지국가 성공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공정한 국가와 제도는 사람들의 신뢰와 협동을 낳아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적 인센티브에만 의존한다면 사회규범이 무시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다음 호에 다루기로 하자.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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