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의 [잇:북]2013.10.31 18:02

2013 / 10 / 28 새사연




[목 차]


여는 글 …3


Ⅰ.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리

협동하는 인간 5

-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원리와 가능성 / 이수연 새사연 연구원

불평등을 줄이는 사회적경제13

- 사회적 경제의 본질은 민주적 자본주의 / 이수연 새사연 연구원

- 우연도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 정태인 새사연 원장

착한 금융을 위한 사회적경제23

- ‘다같이 살기’ 위한 협동조합금융 실험 / 정태인 새사연 원장

- 토토리 마을 이장 ‘조금득’ / 정태인 새사연 원장



Ⅱ. 한국 사회적경제의 가야할 길

박근혜 정부의 사회적경제29

- 박 대통령이 만나야 할 사람, 박원순 서울시장 / 정태인 새사연 원장

- 사회적경제는 새마을 운동이 아니다 / 이수연 새사연 연구원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 얼만큼 왔을까?35

- 협동조합 설립, 연령별 지역별 분석 /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복지국가와 사회적경제 47

- 사회적경제는 복지국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이은경 새사연 연구원



[여는 글]


마음 맞는 5명 있으세요?
길을 가다 멈추고 다섯 손가락을 꼽아본다. 내게 마음 맞는 사람 5명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한다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시의 협동조합 지원 광고, “마음 맞는 5명 있으세요?”는 협동조합의 원리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목표, 운영방식, 관계에 가치를 불어넣으며 함께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일 아침 한 빌딩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출근하는 직장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처럼 협동조합은 동료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사업체다. 하지만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바로 성공하거나, 그 성공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협동조합은 엄연한 사업체다. 국제협동조합연맹 역시 협동조합을“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협동조합은 사업을 하는 조직이기에 이윤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이윤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익은 돈을 출자한만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1인 1표,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나누고 지역사회에 다시 환원해야 한다. 이는 곧 우리 모두가 사회적으로 얽혀있는 존재고 내가 획득한 부, 명예가 비단 나의 노력으로만 얻어지지 않음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받는 보상은 사실 대부분 사회적이자 우연에 의해 얻어진 것임을 원칙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체의 모습만 강조하면 보통의 사기업처럼, 그저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껍데기식의 협동조합으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몇몇 협동조합들 때문에 모든 풀뿌리 노력들이 폄하되어선 안 된다. 때문에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 같다. 지나치게 가치만 중요시하다보면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손을 놓기만 하면 떨어지고, 또 수익 창출에만 몰두하면 줄 자체가 끊어져 버린다.

때문에 사회적경제의 구성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현실의 제도로서 풀어내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인간은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협동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협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 [잇북]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사회적경제의 기본 원리와 현실을 보고자 한다. 앞으로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그 외줄타기를 하는 데에 새사연이 든든한 밑받침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떨어지더라도 다시 올라갈 수 있게끔 튼튼한 연구생산에 몰두하겠다.


2013년 10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임  경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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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사회적 경제는 어느날 갑자기 ‘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쾌한 협동에 필수적인 신뢰란 오랫동안 서서히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운동’처럼, 또 참여정부의 ‘국가균형사업’처럼 중앙에서 하향식으로 만들려다가는 그나마 남아 있는 지역의 역량만 허공에 날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없는 걸까? 문재인 전 후보는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 경제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48%의 문 전 후보 지지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자신의 공약과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공약은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8월 말 주간경향 990호에 나는 ‘SEQ’(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에는 서울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이제 중앙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04년 캐나다의 폴 마틴 총리는 “사회경제를 캐나다의 사회정책 수단의 핵심 부분으로 삼겠다. 기업가가 강한 경제에 필수적이듯 사회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퀘벡의 경험이야말로 연방정부의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자산이었다.
 
따라서 지금 박근혜 당선인에게 가장 긴요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1년여 ‘마을 만들기’라든가, ‘중간조직 만들기’를 하면서 부딪힌 여러 장애, 특히 중앙정부 차원의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을 몸으로 느꼈을테니 말이다. 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을 만난다면 서울시는 그동안의 경험을 요약해서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대통령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부담된다면 주무부처를 명확히 지정해야 한다. 현재 협동조합법은 기획재정부, 사회적기업법은 노동부, 생협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무부처이고, 마을 만들기와 관련해선 거의 전 부처가 고유의 사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제대로 간파했듯이 사회적 경제는 시ㆍ군ㆍ구 단위의 지역공동체가 주도해야 한다. 서울과 같은 광역정부, 나아가서 중앙정부는 이런 실천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자금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협동조합은 돈과 사람의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주식회사처럼 돈을 모을 수 없고 조합 내 임금 격차가 보통 6배 이하로 억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히 협동조합을 신설하거나 확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사회적 경제가 막 움튼 우리나라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적으로 협동조합은 출자금과 비분리자산(협동조합의 내부유보로 회사를 청산할 때도 출자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연합조직이 조성한 협동조합 기금(레가의 경우 ‘coopfond’, 모든 단위 조합은 수익의 3%를 연합조직에 낸다), 그리고 협동조합 자체의 금융기관(예컨대 레가가 소유한 보험회사 ‘unipol’)에서 필요한 돈을 조달한다. 하지만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조성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공동체 기금’이다. 각 지역에서 먼저 돈을 모으고 중앙정부가 이에 맞춰 출자해서 상당한 규모의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정부가 ‘상호성’이라는 사회적 경제의 원리에 따라 엄격하게 운용하면서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쌓아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모든 정책에 사회적 경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정부 조달의 일정 비율을 사회적 경제에 배정하거나 가점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형 주택개량사업이나 지역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과 같은 국가 차원의 사업을 지역의 주택협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울스와 긴티스 말대로 “제도설계를 잘 하면 공동체, 시장, 그리고 국가는 서로 대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자마니 교수의 말대로 사회적 경제는 우리나라에서 ‘제2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부디 박근혜 당선인이 이 정책을 받아들여서 자마니 교수의 예언이 실현되기 바란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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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2정태인/새사연 원장

나이가 들다 보니 해가 바뀔 때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툭툭 끊는 것도 마뜩찮은데 그 단절에 의미까지 부여해야 하다니. 요 몇 해동안의 곤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건 지난 열흘, 8개월간 굶은 술을 한꺼번에 마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이하랴. 세월이 먹여 준 나이를 거부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패배했다. 새사연이 지난 2년간 줄기차게 쓴 것처럼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앙시앵레짐의 종말을 고했지만 새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긴 구체제란 그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후,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고 인정하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나 출간되었고 역사적 흐름을 추적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944년에나 세상에 나왔다. 현실에서도 루즈벨트가 '뉴딜'을 내 건 시점은 1933년이었으니 이제 4년이 막 지난 시점의 한국에서 극적인 전기가 열릴 것을 기대한 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현실이 더딜지라도 시간은 흐르고 새 시대는 열린다. 그 방향 역시 분명하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개별 이익이 맞부딪히는 사회적 딜레마를 시장이 아름답게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붕괴했다. 그런 세상은 수학의 가정 속에나 존재하며 인간은 서로 협동할 때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최근 번역된 노박의 "초협력자"는 인간이라는 미미한 생물체를 강력한 종으로 만든 것은 바로 협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난 30년은 진화의 법칙을 무시한 시대였다. 하이예크의 '치명적 오류'는 오히려 시장만능론에 적용되어야 한다. 아니 백보 양보하더라도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가, 어느 나라가 더 빨리 새 시대를 여느냐에 운명이 갈린다. 아니 '기후온난화'라는 전 인류가 겪고 있는 '공유지의 비극'은 전 세계가 협동할 때만 해결할 수 있다. 내 옆의 '모르는 남'을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새 시대는 열린다. 물론 신뢰는 목숨을 건 도박일지도 모른다. 배반당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남을 불신하고 오로지 경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더 확실하게 세상은 붕괴한다.

어떻게 해야 서로를 믿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새사연이 앞으로 연구할 주제 중 하나에 틀림없다. 추상적인 방향을 정책과 제도로 만들고 어느 덧 사회규범이 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방향이 확실하다면 새로운 사회도 열릴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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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정태인/새사연 원장

 

여태까지 ‘착한 경제학’을 읽은 독자라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낱말인지 잘 알 것이다. 한마디로 신뢰는 협동의 기초다. 신뢰는 양의 상호성(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을 촉발시킨다. 일반 신뢰(generalized trust)란 잘 아는 사람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믿는 것을 말한다. 일반 신뢰의 사회는 협동이 사회규범으로 뿌리 내린 사회다. 신뢰와 협동이 개인에게 내면화한 이런 사회는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그 모범 사례이며 그 반대쪽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퍼트넘의 저 유명한 ‘나 홀로 보울링(bowling alone)’은 미국의 경우이다.
 
하지만 남을 믿는다는 건 매우 위험한 행위다. 자신을 무장해제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사랑을 떠올려 보라. 사랑에 제대로 데었던 사람은 웬만해선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여 오직 가족과 몇몇 사람만 신뢰하게 될 텐데, 이를 특수 신뢰(particularized trust)라고 부른다. 특수 신뢰는 강력하지만 폐쇄적이기 십상이다.
 
박근혜 후보의 최근 캠페인은 ‘위기-신뢰-통합’이라는 세 낱말로 요약된다. 프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잘 구성된 조합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해 한국 경제가 어렵고, ‘신뢰의 정치인’을 따라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며, 그것이 곧 국민통합이라는 메시지다.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 가지만 경험 많고 유능한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박 후보 홍보영상)는 문구는 그의 결기를 잘 보여준다. 노년층은 아마도 아버지 박정희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과연 그는 ‘신뢰의 정치인’일까? 그가 신뢰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7일자 경향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 “(청와대를 나온 후) 뒤돌아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지켜본 박 후보는 약속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배신에는 질색한다”. 아뿔싸, 그가 말하는 신뢰란 배반에서 비롯된 신뢰, 즉 위에서 언급한 특수 신뢰다. 그것은 폐쇄 집단의 신뢰이다. 따라서 “일단 믿기로 한 사람은 여러 번 기회를 주지만 정말 한 번 안 되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아웃시키는 특징”(같은 신문)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특징은 선거에서 유별난 힘을 발휘했다. 그의 카리스마는 특정 집단 내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한 종합편성 TV가 개국 기념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으로 내보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TV 조선, 2011년 12월 1일). 그가 보수집단을 결집시켜서 한나라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착한 경제학’의 ‘일반 신뢰’는 대화와 소통에 의해 형성되고 쌓인다. 반대로 특수 신뢰는 내부의 암호와, 외부와의 불통에 의해 더욱 견고해진다. 그의 말투, 예컨대 박지만씨에 대한 의혹에 대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방식, “참 나쁜 대통령”과 같은 단말마 방식은 특수 신뢰의 특징이다.


문제는 그의 ‘특수 신뢰’가 대한민국 전체,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통할 것인가이다. 그의 경제정책 기조인 ‘줄푸세’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한국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했다(경제 논리는 경향신문의 7일자 정동칼럼을 보시라).
 
케인즈 경제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돈이 아래로 흘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착한 경제학’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는 노동조합 지도자를 만나 “당신의 말이 옳다. 거리로 나가서 외쳐라. 내가 그 주장을 실현시키겠다”고 말하고, 국민연금법(보편복지의 확대)과 와그너법(노조의 단결권 보장)을 통과시켰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루스벨트와 같은 일반 신뢰요, 개방적 참여민주주의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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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7정태인/새사연 원장

 


박근혜 후보의 눈빛이 흔들린다. 경황이 없어서, 어린 동생들 생각에 30년 전 6억원을 받았고 나중에 돌려줄 거라는 말까지 했다. 만일 어린 동생들 때문에 모든 게 용서된다면 “무전유죄”를 호소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는 무죄다. 이처럼 이정희 후보는 송곳처럼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다.


5년 전 유권자들은 무려 14건이나 되는 이명박 후보의 전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릴 거 같은데 그 어떠랴”는 괴이한 분위기에 휩쓸렸다. 5년이 흐르는 동안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대통령의 모범을 따라 주변인사들은 줄줄이 전과자가 되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겠지…적어도 이명박보다는 낫겠지”, 현직 대통령의 실정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되는 요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1차 토론에서 박 후보는 시종일관 굵은 기조를 유지했다. “위기가 닥쳤다, 신뢰의 정치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위기-신뢰-통합이다. 박 후보의 취약점은 과거에 있지만 미래의 심장은 여기에 있다.


정치에선 박 후보의 위기-신뢰-통합이 그럴듯해 보인다. 박 후보가 30년 전 청와대에서 나온 이래 한 일이라곤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뿐이다. 분명 박 후보는 적을 간명하게 규정해서 궤멸시키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고도성장의 추억”은 그를 ‘선거의 여왕’으로 만들었고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경제도 그렇게 될까?


현재의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 때문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 양극화를 초래한 결과가 세계경제의 위기이고 곧 한국의 위기다. 박 후보의 “줄푸세”가 “시장만능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한글 번역이니 당연한 일이다. 최근 새누리당은 “줄”은 빼고 “푸세”만 한다지만 지난 5년 감세액만 82조원(국회 예산처 추산)이었고 세법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재정상태가 계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에 빠지면 부자에게 증세해서 아래로 돈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 위기대책을 아예 포기했다는 얘기다.

박 후보는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재벌의 투자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푸세”와 박정희의 “삽질”을 실천한 “불도저”였다. 그러나 주로 돈을 챙긴 재벌의 투자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고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당연하다. 불황기에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게 즉효약이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이들의 소비를 가로막고 있다. 박 후보는 18조원의 ‘행복기금’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은행의 부실채권을 해결해 주겠다는 데 불과하다. 즉 정부 돈으로 은행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은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빚을 탕감해주거나 이자를 줄여주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지난 5년간 천문학적 돈을 번 은행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여기서도 돈이 채무자에게, 즉 아래로 흐르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경제는요?”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선문답을 알아서 실행할 주변이 모두 “줄푸세”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돈이 위로 흘러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줄푸세가 양극화, 즉 국민 분열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위기를 심화한다는 것은 세계와 우리의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박 후보의 심장이 여기에 있다. 경제에서 그의 “위기-신뢰-통합”은 더 큰 위기와 불신, 그리고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1차 토론에선 박 후보가 조연에게 발목을 찔려 중심을 잃었는데도 주연은 그저 겨냥만 했다. 조연만 빛난 드라마는 실패한다. 과연 문재인 후보는 그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선거는 다음주 TV토론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고비를 맞을 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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